- 케마 경
- 아누라다 경
-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1
-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2
-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3
-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4
- 목갈라나 경
- 왓차곳따 경
- 토론장 경
- 아난다 경
- 사비야 깟짜나 경
설명하지 않음[無記]은 avyākata를 옮긴 것이다. 이 술어는 vi(분리해서) + ā(향하여)+√kṛ(to do)의 과거분사인 vyākata에다 부정접두어 a-를 첨가하여 만든 단어이다. 이 술어의 동사인 vyākaroti는 기본적으로 '설명하다, 대답하다, 선언하다, 결정하다' 등의 뜻이 있다. 여기서 파생된 명사인 vyākaraṇa는 문법이나 문법학을 뜻한다. 그러므로 avyākata는 '설명되지 않는, 답하지 못하는, 결정하지 못하는' 등의 의미이며 그래서 중국에서는 無記로 옮겼다.
avyākata는 본 상윳따의「목갈라나 경」(S44:7) 등에서 보듯이 초기불전에서는 최종적으로 10가지 설명하지 않음(十事無記)으로 정착이 되어 나타난다.(『디가 니까야』「타빠다 경」 (D9) §25 이하 등도 참조)
한편 중국에서는 이것이 '십사무기(十四無記)'로 알려졌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해제 §4의 주해 부분과 본서 「목갈라나 경」(S44:7) §3의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있다.
그런데 본 상윳따의 처음 여섯 개의 경들(S44:1~6)처럼 여래의 사후에 대한 네 가지만이 나타나는 곳도 있다.(『디가 니까야』「정신경」(淨信經, D29) §30과 『앙굿따라 니까야』「설명하지 않음[無記] 경」(A7:51) 등도 그러하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 「마할리 경」(D6) §15처럼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인가?',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인가?'라는 두 가지만 언급되는 곳도 있다.
한편 무기(無記, avyākata)는 아비담마에도 채용되어 중요한 술어로 쓰이고 있다. 아비담마에서는 유익한 법[善法, kusala-dhamma]도 아니고 해로운 법 [不善法, akusala-dhamma]도 아닌 법들, 정확하게 말하면 과보로 나타난 법들과 작용만하는 법들을 무기(無記, avyākata)라고 정의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1장 §3의 해설과 제6장 §6의 해설을 참조할 것.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왜 이러한 10가지나 네 가지에 대해서 설명을 하지 않으셨는가? 『앙굿따라 니까야」「설명하지 않음(無記 경」(A7:51)은 이렇게 설명한다.
첫째, 이것은 단지 견해일 뿐이기 때문이다. 사후에 여래가 존재한다는 것도 견해일 뿐이요, 그렇지 않다는 것도 견해일 뿐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신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이러한 견해를 꿰뚫어 알지 못하고, 견해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견해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견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에게 이러한 견해는 강해진다. 그는 태어남과 늙음 · 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A7:51 §2)
둘째, 그러면 이러한 견해는 어디서 나온 것인가? 그것은 갈애 등에서 기인한 것이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한다거나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하는 견해는 본인의 갈애나 인식이나 사량분별 등에서 생긴 것일 뿐이다. 그래서 「설명하지 않음 [無記] 경」 (A7:51)에서 세존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이러한 견해는] 갈애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인식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생각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사량분별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취착에서 나온 것이고, 이것은 나중에 후회할 일이다.”(A7:51 §4) 그런데도 “배우지 못한 범부는 나중에 후회할 일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후회할 일의 일어남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후회할 일의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고, 후회할 일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의 후회할 일은 증가한다. 그는 태어남과 늙음 · 죽음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 그는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A7:51 §4)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신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견해나 갈애나 인식이나 생각이나 사랑분별이나 취착을 없애기 위한 가르침이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것은 그 대답이 어떤 것이든 견해일 뿐이고 갈애일 뿐이고 사량분별일 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견해 등은 아무런 이익을 주지 못한다.
그래서 『맛지마 니까야』「말룽꺄뿟따 경」(M63, 한역 「전유경」(箭喩經)과 상응함, 독화살의 비유)과 『디가 니까야』 제1권 「뽓타빠다 경」(D9)에서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10가지 의문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뽓타빠다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지 못하고, [출세간] 법에 바탕한 것이 아니며, 청정범행의 시작에도 미치지 못하고,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소멸로 인도하지 못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지 못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지 못하고, 열반으로 인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는다.” (D9 §28)
부처님께서는 이러한 사량분별 대신에 “뽓타빠다여,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나는 설명한다.” (D9 §29)라고 하셨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뽓타빠다여, 이것은 참으로 이익을 주고, 청정범행의 시작이며, 전적으로 [속된 것들을] 역겨워함으로 인도하고, 욕망이 빛바램으로 인도하고, 소멸로 인도하고, 고요함으로 인도하고, 최상의 지혜로 인도하고, 바른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열반으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것을 설명한다.”(D9 §30)라고 하셨다.
그리고 「말룽꺄뿟따 경」(M63)의 결론 부분에서 세존께서는 “내가 설명하지 않은 것은 설명하지 않은 대로 호지하라. 내가 설명한 것은 설명한 대로 호지하라.”(M63 §7, §10)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신다. 불자는 이러한 부처님 가르침의 분명한 입각처에 바른 이해와 확신을 가져야 할 것이다.
케마 경(S44:1) Kemā-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374]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케마 비구니41)는 고살라에서 유행을 하다가 사왓티와 사께따42) 사이에 있는 또라나왓투에 거주하였다.
41) 케마 비구니(Khemā bhikkhunī)는 『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5-2)에서 “큰 통찰지를 가진(mahā-paññā) 비구니들 가운데서 으뜸(지혜제일)”이라 불려진다. 케마 장로니는 맛다(Madda) 지방에 있는 사갈라(Sāgala)의 왕족 출신이다. 그녀는 뛰어난 외모를 가졌으며 빔비사라왕의 첫째 왕비였다. 세존께서 라자가하의 대나무 숲(Veḷuvana)에 머무실때 세존께서는 형색의 덧없음을 말씀하신다는 말을 듣고 자신의 외모도 덧없다고 말씀하실 거라 여기고 세존을 뵈러 가지 않았다고 한다. 빔비사라 왕의 설득으로 세존을 뵈러 갔는데 세존은 그녀의 면전에 그녀보다 훨씬 아름다운 천상의 요정을 만들어서 그 요정이 점점 늙어서 형편없이 되어 쓰러져 죽는 모습을 보이게 하셨다. 그것을 본 그녀는 낙담에 빠졌고 부처님께서는 그녀에게 형색의 덧없음을 설하셨다. 세존의 설법을 듣고 그녀는 아라한이 되었다고 하며 왕의 허락을 받아서 출가하였다고 한다.(AA.i.342~345)
42) 사께따(Sāketa)는 꼬살라(Kosala)에 있는 도시였다. 『디가 니까야』「대반열반 경」(D16) §5.17에서는 당시 가장 번창했던 6대 도시 (짬빠, 라자가하, 사왓티, 사께따, 꼬삼비, 바라나시) 가운데 하나로 언급되고 있다.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사께따로부터 사왓티로 가다가
사왓티와 사께따 사이에 있는 또라나왓투에서 하룻밤을 머물렀다.
그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어떤 사람을 불러서 말했다.
3. “여봐라. 가서 오늘 내가 친견할 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는지 알아보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폐하.”라고 그 사람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대답한 뒤
온 또라나왓투를 구석구석 다녀봤지만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친견할 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을 보지 못했다.
4. 그러다가 그 사람은 케마 비구니가 또라나왓투에 거주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 뒤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갔다. 가서 빠세나디 꼬살라 왕에게 이렇게 말했다.
“폐하, 또라나왓투에는 폐하께서 친견할 만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습니다.
폐하, 그런데 케마라는 비구니가 있는데 그 스님은 그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자의 제자입니다.
그 스님에게는 [375] '그 스님은 현명한 분이고 영민한 분이며 슬기로운 분이고 많이 배운 분이며 명료하게 표현하는 분이고 선견지명이 있는 분이다.'라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케마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5. “스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43)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3) 이 질문과 대답은 본서 제2권 S16:12와 제3권 S24:15~18, S33:1~55에도 나타나고 있다.
6. “그런데 제가 스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스님은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
'스님,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스님은 ‘대왕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376]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7. “대왕이여, 그렇다면 이제 제가 그대에게 다시 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십시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셈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려서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백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천의 모래알이 있다.'라거나
'강가 강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의 모래알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님.”
“대왕이여, 그렇다면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셈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큰 바다의 물을 헤아려서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양에 해당하는 물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백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천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거나
'큰 바다에는 이만큼의 수십만에 해당하는 양의 물이 있다.'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스님.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면,
큰 바다는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기 때문입니다.”
8. “대왕이여, 그와 같이44) 사람들이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물질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물질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45)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44) 이하 본경에 나타나는 이 대답은 『맛지마 니까야』「불 왓차곳따 경」(M72/i.487 ~ 488) §20에서 세존께서 왓차곳따에게 하신 말씀과 동일하다.
45)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yena rūpena tathāgatam paññāpayamāno)'라는 것은 물질로써 길다거나 짧다거나 검다거나 희다라는 중생에게 속하는 것(satta-saṅkhāta)으로 여래를 묘사한다는 말이다. '물길을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tam rūpaṃ tathāgatassa pahīnaṃ)'라는 것은 앞서 말한 형태의 물질이 일어남(samudaya-ppahāna)을 버리는 것을 말한다.
'물질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다(rūpasaṅkhāya vimutto).'는 것은 미래에 물질이 생기지 않기(anuppatti) 때문에 그분에게는 물질적 부분이라거나 정신적 부분(rūpa-arūpa-koṭṭhāsa)이라는 그러한 것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인습적인 표현(vohāra)이 해당되지 않는다(paṭipassaddhattā). 그렇기 때문에 물질이라는 개념(rūpa-paṇṇatti)으로부터 해탈했다는 말이다.
'너무 깊고(gambhīro)'라는 것은 성향이 깊고(ajjhāsaya gambhīratā) 공덕이 깊기(guṇa-gambhīra) 때문에 깊다. 그분의 공덕이 깊기 때문에 일체지자인 여래가 태어나면 중생에게 속하는 여래라는 개념(paññatti)이 있게 된다. 그러나 그분에게는 더 이상 [오온이 - SAȚ]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한 [중생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런 것을 보는 자에게는 중생에게 속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 등은 해당되지 않고 적용되지 않는다는 말이다.”(SA.iii.113)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1377] 느낌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인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심리현상들(의도)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알음알이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알음알이를 여래께서는 제거하셨고 그 뿌리를 자르셨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드셨고 존재하지 않게 하셨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셨습니다.
대왕이여, 여래께서는 알음알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셨습니다.
여래께서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9.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케마 비구니의 말을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케마 비구니에게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10. 그후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378]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
“세존이시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11. “그런데 제가 '세존이시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여쭈면 …
세존께서는 '대왕이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12. “대왕이여, 그렇다면 이제 제가 그대에게 다시 물어보리니 그대가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설명해보십시오.
대왕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대에게 어떤 회계사나 경리인이나 셈하는 자가 있는데 그가 강가 강의 모래를 헤아려서 …
큰 바다의 물을 헤아려서 …
대왕이여, 그와 같이 사람들이 물질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379]
느낌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인식으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심리현상들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
알음알이로써 여래를 묘사하여 ['이런 분이 여래다.'라고] 드러낼
그런 알음알이를 여래는 제거하였고 그 뿌리를 잘랐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었고 존재하지 않게 하였고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하였습니다.
대왕이여, 여래는 알음알이라는 헤아림으로부터 해탈하였습니다.
여래는 마치 큰 바다처럼 너무 깊고 측량할 수 없고 깊이를 잴 수 없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적용되지 않습니다.”
13.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으뜸가는 구문46)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한번은 제가 케마 비구니에게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케마 비구니도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46) “'으뜸가는 구문(agga-pada)'이란 열반을 뜻한다.”(AA.v.79)
한편 본 문단은『앙굿따라 니까야』「인식 경」 2(A11:8) §5에서 아난다 존자가 사리뿟따 존자에게 하는 말로도 나타난다.
14. 그러자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세존의 말씀을 [390] 기뻐하고 감사드린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에 물러갔다.
아누라다 경(S44:2)47) Anurādha-sutta
47) 본경은 본서 제3권 「아누라다 경」 (S22:86)과 꼭 같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에서 큰 숲[大林]의 중각강당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숲속의 토굴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많은 외도 유행승들이 아누라다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아누라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외도 유행승들은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아누라다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48)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십니다.” 49)
48) 여기서 여래는 앞의 경에 해당하는 주석서가 중생(satta)이라 정의한 것과는 관계가 없다.(앞의 「케마 경」(S44:1) §8의 주해 참조) 여기서 여래는 부처님 혹은 아라한을 뜻한다. 본서 토론장 경」(S44:9) §4에도 이 표현이 나타난다.
49) 이 네 가지는 모두 여래를 자아로 파악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다. 첫 번째 견해는 상견을, 두 번째는 단견을, 세 번째는 혼합주의(일부 상견)를, 네 번째는 회피하는 회의론을 나타낸다. 본서 제3권 「왓차곳따 상윳따」(S33)와 여기 「설명하지 않음 상윳따」(S44)의 두 개의 상윳따에 포함된 모든 경들은 전적으로 이 네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다. 본서 제2권 「사후 경」 (S16:12)도 참조할 것.
4. 이렇게 말하자 아누라다 존자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그러나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시지 않습니다.”50)
50)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것은 교법(sāsana)에 위배(paṭipakkhā)되고 상반(paṭivilomā)된다. 스승께서는 이들이 말하는 것처럼 [여래에 대해서] 서술하지 않으실 것이다. 스승께서는 분명히 다르게 말씀하실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SA.ii.312)
5. 이렇게 말하자 외도 유행승들은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비구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참인 모양이다. 만일 장로라면 어리석고 우둔한 자일 것이다.”
6.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아누라다 존자에게 신참이라는 말과 어리석다는 말로 모욕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381]
외도 유행승들이 나간 지 오래지 않아서 아누라다 존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일 그 외도 유행승들이 나에게 더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여,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 될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될까?'라고,
7. 그때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누라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으로부터 멀지 않은 숲속의 토굴에 머물고 있었습니다.
그때 많은 외도 유행승들이 …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도반 아누라다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십니다.'
이렇게 말하자 저는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천명하시지 않습니다. 이렇게 말하자 외도 유행승들은 제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이 비구는 출가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신참인 모양이다. 만일 장로라면 어리석고 우둔한 자일 것이다.'
외도 유행승들은 이렇게 제게 신참이라는 말과 어리석다는 말로 모욕한 뒤에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습니다.
외도 유행승들이 나간 지 오래지 않아서 [382]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만일 그 외도 유행승들이 나에게 더 질문을 했더라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여,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 될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하더라도]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될까?'라고.”
8.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심리현상들은 …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9. “아누라다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내가 아니며, [383]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10. “아누라다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11.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1) 그대는 물질을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2.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2) 그대는 물질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대는 느낌 안에 … 인식 안에 … 심리현상들 안에 … 알음알이 안에 여래가 있다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3.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3) 그대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알음알이가
[모두 합해진 것이]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384]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4. “아누라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4) 그러면 그대는 물질도 아니요 느낌도 아니요 인식도 아니요 심리현상들도 아니요
알음알이도 아닌 것이 여래라고 관찰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5. “아누라다여, 이처럼 그대는 지금 · 여기(現法, 현재)에서도
여래는 실재하고 견고하다고51)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그대가 이렇게 설명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즉 '도반들이여, 그분 여래는 최상의 사람이며,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분입니다.
여래께서는 이러한 [자신에 대해서]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요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이러한 네 가지 경우 가운데 하나로 천명하십니다.'라고.”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51) '실재하고 견고하다고'는 saccato thetato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서 “실재하는 것과 견고한 것으로부터(bhūtato ca thirato ca)”(MA.i.70)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16. “장하고 장하구나, 아누라다여. 아누라다여,
나는 이전에도 지금에도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을 천명할 뿐이다.”52) 53)
52) 이 말씀은 두 가지 입장에서 이해할 수 있다. 첫째는 세존께서는 사후의 문제와 같은 형이상학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시지 않고 지금 · 여기(현재)에서 괴로움의 소멸에 도달하는 실천적인 길을 설할 뿐이라고 이해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이해만으로는 여래에 대한 관찰과는 연결짓지 못한다. 그러므로 다른 해석이 필요하다.
둘째는 여래란 무상한 여러 현상들이 합성된 것이요 그래서 괴로움이요 그래서 불변하는 실체가 없는 것이며 그래서 이것은 단지 인습적 표현(vohāra)일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여래에 대한 모든 사유나 설명은 단지 인습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습적인 것에 대한 설명은 하지 않고 존재의 근원적인 문제인 괴로움과 괴로움의 소멸만을 천명한다는 것이다. 『맛지마 니까야』「뱀의 비유 경」(M22/i.140) §38도 이런 해석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53) 본경은 중요하다. 세존께서는 먼저 여래라 불리는 개념적 존재(paññatti)를 오온으로 해체하시어 이 오온 각각이 무상이고 괴로움이고 무아임을 천명하신다. 그런 뒤 다섯 가지 방법으로 지금 · 여기에서 전개되고 있는 오온을 여래라고 볼 수 없다고 단정하신다. 그런 뒤 마지막으로 내생에 여래가 존재한다거나 아니라거나하는 언급 자체가 전혀 잘못되었음을 결론지으신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1(S44:3) Sāriputtakoṭṭhik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2. 그때 마하꼿티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도반이여, [385]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그런데 제가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제가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54)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물질에 대한 것입니다.
54) “'이것은 물질에 대한 것이다(rūpagataṃ etaṃ).'라는 것은 이것은 다만 물길일 뿐(rūpa-matta)이라는 말이다. 여기서는 물질 외에 다른 어떤 중생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러나 물질이 있을 때 단지 이러한 이름이 있을 뿐(nāma-matta)임을 보여주는 것이다.”(SA.iii.114)
“뿐(matta)이라는 것은 부정을 위한 것(visesa-nivatti-attha)이다. 그러면 여기서는 무엇을 부정하는가? 여기서 말하는 여래라는 것은 외도들이 상정하는(hāhira-parikappita) 자아(atta)인데 그것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다.”(SAȚ.iii.101)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느낌에 대한 것입니다. …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인식에 대한 것입니다. …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심리현상들에 대한 것입니다. [386] …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는 것은 알음알이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것도 알음알이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는 것도 알음알이에 대한 것입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는 것도
알음알이에 대한 것입니다.”
6. “도반이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2(S44:4)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존자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2. 그때 마하꼿티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
4. “그런데 제가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
제가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이여, 물질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물질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이여,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음알이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음알이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387]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6. “도반이여, 물질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물질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물질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알음알이의 일어남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알음알이의 소멸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고
알음알이의 소멸로 인도하는도닦음을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도반이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꼿티따 경3 (S44:5)
1.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2.그때 마하꼿티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마하꼿티따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
4. “그런데 제가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
제가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5. “도반이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이여, 느낌에 대한 … 인식에 대한 … 심리현상들에 대한 …
알음알이에 대한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열의를 여의지 못하고 애정을 여의지 못하고
갈증을 여의지 못하고 열병을 여의지 못하고 갈애를 여의지 못하는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388]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6. “도반이여, 물질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느낌에 대한 … 인식에 대한 … 심리현상들에 대한 …알음알이에 대한
탐욕을 여의고 열의를 여의고 애정을 여의고 갈증을 여의고 열병을 여의고 갈애를 여읜 자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도반이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리뿟따와 꼿티따 경4 (S44: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사리뿟따 존자와 마하꼿티따 존자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물렀다.
2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마하꼿티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꼿티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마하꼿티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꼿티따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
4. “그런데 제가 '도반이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라고 물으면 …
제가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라고 물으면 …
'도반이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라고 물으면
그대는 '도반이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세존께서는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까?”
(1) 물질을 즐거워함
5. “도반이여, 물질을 즐거워하고 물질을 탐닉하고 물질을 기뻐하는 자는
물질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389]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도반이여,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즐거워하고 알음알이를 탐닉하고 알음알이를 기뻐하는 자는 알음알이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합니다.”
6. “도반이여, 물질을 즐거워하지 않고 물질을 탐닉하지 않고 물질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물질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반이여,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즐거워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탐닉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알음알이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7. “도반이여, 이런 원인과 이런 조건 때문에 세존께서는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2) 존재를 즐거워함
8. “도반이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존재를 즐거워하고 존재를 탐닉하고 존재를 기뻐하는 자는
존재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
도반이여, [390] 존재를 즐거워하지 않고 존재를 탐닉하지 않고 존재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존재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
9. “도반이여, 이것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3) 취착을 즐거워함
10. “도반이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취착을 즐거워하고 취착을 탐닉하고 취착을 기뻐하는 자는 취착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
도반이여, 취착을 즐거워하지 않고 취착을 탐닉하지 않고 취착을 기뻐하지 않는 자는
취착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
11. “도반이여, 이것도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4) 갈애를 즐거워함
12. “도반이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있습니다, 도반이여. 도반이여, 갈애를 즐거워하고 갈애를 탐닉하고 갈애를 기뻐하는 자는 갈애의 소멸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합니다. …
도반이여, 갈애를 즐거워하지 않고 갈애를 탐닉하지 않고 갈애를 기뻐하지 않는 자는
갈애의 소멸을 알고 보기 때문에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 [391] …
13. “도반이여, 이것도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다른 방법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5) 다른 방법이 있는가?
14. “도반이여, 그러면 세존께서 그것을 언급하지 않으신 이유를 또 다른 방법으로도 설명할 수 있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여기서 그대는 이제 더 이상 무엇을 원하십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갈애를 부수어 해탈한 비구에 대해서는 그의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습니다.”55)
55) '존재양상을 천명할 방법이 없습니다.'는 Be, Se: vaṭṭaṃ natthi paññāpanāya로 읽은 것이다. 본서 제3권 「취착의 양상 경」(S22:56) §6의 마지막에도 이렇게 나타난다. vaṭṭaṃ(존재양상, 윤회) 대신에 Ee에는 vaḍḍaṃ(향상, 재산)으로 나타나는데 본 문맥과 어울리지 않는다. 「취착의 양상 경」(S22:56) §6의 주해를 참조할 것.
목갈라나 경(S44:7) Moggalāna-sutta
2.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56)이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56) 왓차곳따 유행승(Vacchagotta paribbājaka)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 「무지 경」1(S33:1)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3.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유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유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무한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무한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392] 생명과 몸은 같은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생명과 몸은 다른 것입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57)
57) 이상의 열 가지로 정리된 '설명하지 않음[無記, avyākata]'은 본경뿐만 아니라 『디가 니까야』 「뽓타빠다 경」 (D9) §§25~27과 『맛지마 니까야』「미끼 경」(M25) §§10~11 등과 『앙굿따라 니까야』「초연함 경(A4:38)등과 본『상윳따 니까야』의 「사색 경」(S56:8) 등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도 같은 10가지로 정형화 되어서 나타나고 있다. 그래서 역자는 이것을 십사무기(十事無記)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북방에서는 10가지가 아니라 14가지로 알려져서『아비달마 구사론』에서는 이러한 무기가 “열네 가지의 무기”(諸契經中說 十四無記事)라 하여 十四無記로 언급되고 있다. 이것은 아마 『잡아함』등에 나타나는 “세간은 영원[常]한가,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하고 영원하지 않은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닌가? 세간은 끝[邊]이 있는가, 없는가, 있고 없는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닌가? 여래의 사후는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고 존재하지 않는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닌가? 몸[身]과 생명[命]이 동일한가, 다른가? (世間常, 世間無常, 世間常無常, 世間非常非無常, 世有邊, 世無邊, 世有邊無邊, 世非有邊非無邊, 命即是身, 命異身異, 如來死後有, 如來死後無, 如來死後有無. 如來死後非有非無.)”(『雜阿含』 168)를 염두에 둔 듯하다. 여기서는 상 · 무상과 유변 · 무변과 여래에 대해서 모두 4가지씩의 무기가 적용되었고 명 · 신(命 · 身)에 대해서는 두 가지만 적용이 되어서 모두 14가지가 된 것이다.
그러나 한역 『아함경』들에는 경마다 이 무기가 다르게 나타난다. 예를 들면 우리에게 독화살 비유 경으로 잘 알려진 『중아함』의 「전유경」(『맛지마 니까야』 「말룽까뿟따 경」(M63)에 해당함)에는 빠알리 니까야들에서처럼 10가지로 나타난다.
그리고 『장아함』의 「布吒婆樓經」(포타파루경, 『디가 니까야』의 「뽓타빠다 경」(D9)에 상응함.)에는 16가지 무기로 나타나는데 상 · 무상과 유변 · 무변과 명 · 신과 여래에 모두 4가지씩의 무기가 적용된 것이다. 그러나 거듭 밝히지만 빠알리 니까야에서는 10가지로 정리되어 나타나지 14가지나 16가지 등으로는 결코 나타나지 않는다.
4. “목갈라나 존자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세상은 영원하지 않다.'라거나,
'세상은 유한하다.'라거나, '세상은 무한하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같은 것이다.'라거나, '생명과 몸은 다른 것이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지 않는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한다.'라거나,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목갈라나 존자여, [393] 그러나 사문 고따마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5.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귀를 두고 … 코를 두고 … 혀를 두고 … 몸을 두고 … 마노[意]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왓차여,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께서는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귀를 두고 … 코를 두고 … 혀를 두고 … 몸을 두고 …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여래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 … 라거나, …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6.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7.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 …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나는'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8.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394]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고따마 존자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9.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귀를 두고 … 코를 두고 … 혀를 두고 … 몸을 두고 …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한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 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왓차여,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는 눈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귀를 두고 … 코를 두고 … 혀를 두고 … 몸을 두고 … 마노를 두고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관찰한다.
그래서 여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10.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 저는 사문 마하목갈라나에게 [395]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문 마하목갈라나도 세존께서 설명하신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 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11.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왓차곳따 경(S44:8) Vacchagotta-sutta
2.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고따마 존자시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나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았다.”
… …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았다.”
4.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나 고따마 존자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고따마 존자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5. “왓차여, 외도 유행승들은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396]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한다.
왓차여,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는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래서 여래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6.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7. “목갈라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 …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8. “목갈라나 존자여, 그런데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그들은 이렇게 대답합니까?
목갈라나 존자여, 그러나 사문 고따마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은 '세상은 영원하다. 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습니다.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 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9. “왓차여, [397] 외도 유행승들은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합니다.
그래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이런 질문을 하면 그들은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왓차여,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께서는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느낌을 … 인식을 … 심리현상들을 …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래께 이런 질문을 하면 그분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거나, …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10. “경이롭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놀랍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여기 저는 사문 고따마께 다가가서 이 뜻에 대해 물었습니다.
사문 고따마께서도 목갈라나 존자가 설명한 것처럼 이런 단어와 이런문장으로 그 뜻을 설명하였습니다.”
11. “경이롭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놀랍습니다, 목갈라나 존자여.
으뜸가는 구문에 대해 참으로 스승과 제자의 뜻과 뜻이, 문장과 문장이 합치하고 합일하고 모순되지 않으십니다.”
토론장 경(S44:9) Kutūhalasālā-sutta
2. 그때 [398]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고따마 존자시여, 근래에 며칠간 여러 외도 사문 · 바라문 · 유행승들이
토론장58)에 모여서 함께 자리를 했는데 그때 이런 이야기가 생겼습니다.
58) '토론장'으로 옮긴 원어는 kutūhala-sālā인데 문자적으로는 동요나 흥분(kutūhala)이 있는 집(sālā)이라는 뜻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곳에서는 여러 교파(nānā-titthi)의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다양한 주제(nānā-vidha)의 토론에 참여했다고 한다. 이러한 토론장이 '동요나 흥분이 있는 집'으로 불리게 된 것은 '이 사람은 무엇을 주장하고 저 사람은 무엇을 주장하는가?'라는 동요가 생기는 장소(kutūhal-uppavatti-ṭṭhāna)이기 때문이라고 한다.(SA.iii.114)
'그분 뿌라나 깟사빠는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종교가)로 인정됩니다.
그는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나는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분 막칼리 고살라도 … 그분 니간타 나따뿟따도 … 그분 산자야 벨랏티뿟따도 …
그분 까꾸다 깟짜야나도 … 그분 아지따 께사깜발리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종교가)로 인정됩니다.
그도 제자가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리고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도
그 제자가 [399]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59)
59)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를 비롯한 여기서 언급되는 사람들은 세존 당시의 육사외도(六邪外道)들이다. 『디가 니까야』「사문과 경」(D2)에 나타나는 이들의 주장을 간략하게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1) 뿌라나 깟사빠(Pūraṇa Kassapa)의 사상은 한마디로 도덕부정론 (akiriya-vāda, 업지음 없음)이다. 그는 D2 §17에서 어떤 나쁜 짓을 하거나 어떤 선한 일을 해도 죄악도 아니고 공덕도 아니라고 업지음 없음을 주장한다.
(2) 막칼리 고살라(Makkhaligosāla)는 윤회를 통한 청정(saṃsāra-suddhi)을 주장한다. 그는 “어리석은 자나 현자나 똑같이 그것을 모두 치달리고 윤회하고 나서야 괴로움의 끝을 낸다.”(D2 §20)라고 주장한다. 그러므로 그의 사상은 운명론(niyati)이다. 모든 것은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에 어떠한 업지음(kiriya)도 노력(viriya)도 업의 결과(vipāka)도 있을 수 없다고 이 모두를 부정한다.
(3) 아지따 께사깜발리(Ajita Kesakambalī)는 [사후]단멸론(ucchedavāda)을 주장한다. 그는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멸절할 뿐이라서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 (D2 §23)라고 주장한다.
(4) 빠꾸다 깟짜야나(Pakudha Kaccāyana)의 사상은 한마디로 결정론이다. 그는 땅의 몸, 물의 몸, 불의 몸, 바람의 몸, 즐거움, 괴로움, 마지막으로 영혼이라는 이 일곱은 본래 결정되어 있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5) 니간타 나따뿟따(Nigaṇṭha Nātaputta)의 사상은 “모든 찬물을 금하고, 모든 악을 금하고, [모든 악을] 철저하게 금하여 모든 악을 제거하고, 모든 악을 금하여 [해탈을] 얻는다.”(D2 §29)라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함(cātuyāma-saṃvara)이라고 「사문과경」(D2)은 정리하고 있다. 그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 「니간타 나따뿟따 경」(S41:8)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6) 산자야 벨랏티뿟따(Sañjayena Belaṭṭhiputta)의 사상은 우리에게 회의론으로 알려져 있는데 「사문과경」(D2)은 애매모호함(vikkhepa)이라는 용어로 정리하고 있다. D2 §32는 16가지 질문에 대해서 애매모호하게 답변하는 것으로 그의 태도를 정리하고 있다.
육사외도에 대한 소개는 『디가 니까야』「사문과경」(D2) §16 이하의 주해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위의 간략한 설명에서 보듯이 이 가운데서 아지따 께사깜발리는 유물론자로 알려져 있는데 여기 「토론장 경」(S44:9)의 본문을 따르면 그도 윤회를 인정한 것으로 언급되고 있으며, 산자야는 회의론자라서 이런 주제에 대해서는 입장을 유보했을 것인데도 여기 「토론장 경」의 본문에서는 인정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4. “그분 사문 고따마도 승가를 가졌고 무리를 가졌고 무리의 스승이며 지자요 명성을 가졌고 교단의 창시자요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사두(종교가)로 인정됩니다.
그도 제자가 임종하여 죽은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최상의 사람이요 최고의 사람이며 최고에 도달한 자인 그의 제자는
그 제자가 임종한 뒤 태어난 곳에 대해서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 이 자는 어디에 태어났다.'라고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다만 '그는 갈애를 잘라버렸다. 족쇄를 풀어버렸다. 자만을 관통하여 마침내 괴로움을 끝내어버렸다.'라고만 설명합니다.'라고”
5. “고따마 존자시여, 그래서 제게는
'도대체 사문 고따마의 법을 어떻게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라는 의문이 있고 의심이 있습니다.”
“왓차여, 그대가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고 그대가 의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의문스러운 것에 대해서 그대의 의심이 일어난 것이다.
왓차여, 나는 천명하노니 취착이 있는 자에게 다시 태어남은 있지만
취착하지 않는 자는 그렇지 않다.
왓차여, 예를 들면 연료가 남아있는 불은 타오르지만 연료가 없으면 타오르지 않는 것과 같다.
왓차여, 그와 같이 취착이 있는 자에게 다시 태어남은 있지만
취착하지 않는 자는 그렇지 않다고 나는 천명한다.”60)
60) 여기서 '취착'과 '연료'로 옮긴 단어는 같은 upādāna이다. 역자는 불과 관계된 비유에 쓰일 때는 연료로 옮겼고 교학과 관계된 경우에는 취착으로 옮겼다. 이 유명한 불의 비유는 『맛지마 니까야』 「불 왓차곳따 경」(M72/i.487) §19에서도 세존께서 왓차곳따 유행승에게 열반을 실현한 자를 설명해주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6. “고따마 존자시여, 불이 바람에 날려서 멀리 가서 붙을 때는 어떤 것이 연료라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천명하십니까?”
“왓차여, 불이 바람에 날려서 멀리 가서 붙을 때는 바람이 연료라고 나는 천명한다.
왓차여, 그때는 바람이 연료이기 때문이다.”
7. “고따마 존자시여, [400] 그런데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어떤 것이 연료라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천명하십니까?”
“왓차여,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연료라고 나는 천명한다.61) 왓차여, 그 경우에는 갈애가 연료이기 때문이다.”
61) '중생이 이 몸을 내려놓고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는 갈애가 연료라고 나는 천명한다(yasmiṃ kho samaye imañ ca kāyam nikkhipati satto ca aññataram kāyam anuppanno hoti, tam ahaṃ taṇhupādānaṃ vadāmi).'라는 세존의 이 말씀은 죽음의 순간과 새로 수태되는 순간 사이에는 일시적인 간격이 있는 것을 인정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상좌부 불교에서는 중유(中有, 中陰, antarā-bhava)를 인정하는 듯한 이러한 간격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고 있다.
“'이 몸을 내려놓고'라는 것은 죽음의 마음(cuti-citta)으로 내려놓는다는 말이다. '아직 다른 몸을 받지 않았을 때'란 죽음의 순간(cuti-kkhaṇa)에는 아직 재생연결식 (paṭisandhi-citta)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몸을 받지 않았다고 한 것이다.” (SA.iii.114)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 「찬나 경」(S35:87) §12의 주해와 「말룽꺄뿟따 경」 (S.5:95) §13의 주해와 본서 「계(戒) 경」(S46:3) §13 (7)의 주해를 참조할 것
아난다 경 (S44:10) - 자아는 있는가? Ānanda-sutta
2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고따마 존자시여, 그런데 자아는 있습니까?”
이렇게 말하자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4.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자아는 없습니까?”
두 번째에도 세존께서는 침묵하셨다.
그러자 왓차곳따 유행승은 자리에서 일어나서 나갔다.
5. 그때 아난다 존자가 왓차곳따 유행승이 나간 지 오래지 않아서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왜 왓차곳따 유행승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6.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있다.'라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영속론자62)인 사문 · 바라문들을 편드는 것이63) 되었을 것이다.
62) '영속론자'로 옮긴 원어 sassata-vādā는 소유복합어 [有財釋, bahuvṛīhi]이다. 그래서 주석서는 '영원함을 설하는 자들(sassato vādo etesaṃ)'로 풀이하고 있다.(DA.i.104) 그리고 여기서 논자로 옮긴 vāda를 주석서는 diṭṭhin(견해를 가진 자)으로 설명하며 이하 모든 경우에 다 적용된다고 밝히고 있다.(Ibid) 그래서 '영속론자들'로 옮겼다.
63) '편드는 것이'는 Se: laddhi 대신에 Ee, Be: saddhiṃ으로 읽어서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그들의 이론과 함께하는 것(laddhiyā saddhiṃ)이 되었을 것이다.”(SA.iii.115)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laddhi(종교적 견해)는 주석서 문헌에서부터 나타나는 단어이다.
아난다,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없다.'라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401] 단멸론자인 사문 · 바라문들을 편드는 것이 되었을 것이다.”
7.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 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있다.'라고 대답했다면 이것은 나의 입장에서 보자면
'모든 법들은 무아[無我].'라는 지혜를 일어나게 하는 것64)과 부합하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4) '지혜를 일어나게 하는 것은 Ee: ñāṇassa upādāya 대신에 Be, Se: ñāṇassa uppādāya로 읽어서 옮긴 것이다. uppāda는 일어남(arising)이라는 의미이고 upādā는 파생된 것(derived)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한편 주석서는 여기서 '지혜(ñāṇa)'는 제법무아라는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ā-ñāṇa)라고 설명하고 있다.(SA.iii.115)
8. “아난다여, 왓차곳따 유행승이 '자아는 있습니까?'라고 질문했을 때
내가 만일 '자아는 없다.'라고 대답했다면 이미 미혹에 빠져 있는 왓차곳따 유행승은
'오, 참으로 이전에 있던 나의 자아가 지금은 없구나.'라고 하면서 다시 더 크게 미혹하게 되었을 것이다.”65)
65) 세존께서 대답을 하지 않으신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로 생각해볼 수 있다. ① 무아라는 표현은 당시 인도에서는 일반적으로 허무론자들이 사용하는 말이기 때문에 세존께서는 자신의 가르침이 이런 부류들과 같은 편이 되는 것을 경계하셨기 때문이다.
② 세존이 설하신 제법무아(sabbe dhammā anattā)는 그 어디에도 자아라는 실체가 없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제법(諸法)은 모든 유위법들과 무위법을 다 포함한 것이다.(본서 제3권 「찬나 경」(S22:90) §4의 주해 참조)
그러므로 제법무아는 모든 종류의 초월적이거나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고 주장하는 자아이론까지 다 포함하여 무아라고 설하는 것이다. 그러나 왓차곳따는 이미 어떤 식으로든 자아가 있다고 국집하고 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이미 자아가 있다는 견해에 굳게 물들어 있는 왓차곳따에게 더 큰 혼란을 주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 그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으신 것이다.
본서 제3권 「무지 경」 1(S33:1) §2의 주해에서 보듯이 왓차곳따 유행승 (Vacchagotta paribbājaka)은 『맛지마 니까야』「긴 왓차곳따 경」 (M73)을 통해서 마침내 출가하게 되고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 이런 아라한이 될 선근이 있는 분에게도 이처럼 자아의 문제는 좀처럼 해결되지 않는 주제임이 분명하다. 그는 이 문제가 해결되어서 마침내 유행승이기를 거부하고 세존 문하로 출가하여 아라한이 되었을 것이다. 이와 같이 자아의 문제는 인류를 당혹스럽게 하고 미혹하게 만들어온 중요한 주제임에 틀림없다 하겠다.
사비야 깐짜나 경(S44:11) Sabhiyakacc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사비야 깟짜나 존자66)가 냐띠까에서 벽돌집에 머물렀다.
66) 주석서와 복주서는 사비야 깟짜나 존자(āyasmā Sabhiya Kaccāna)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본서 제2권 「벽돌로 만든 강당 경」(S14:13)에는 냐띠까의 벽돌집과 삿다 깟짜야나 존자(āyasmā Saddha Kaccāyana)가 나타나고 있는데 본경의 사비야 깟짜나 존자와 같은 사람이 아닌가 여겨진다.
2. 그때 왓차곳따 유행승이 사비야 깟짜나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비야 깟짜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왓차곳따 유행승은 사비야 깟짜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깟짜나 존자여, 세상은 영원합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세상은 영원하다.'라고 이것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 [402] …
“깟짜나 존자여, 그러면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닙니까?”
“왓차여, 세존께서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것도 설명하지 않으셨습니다.”
4. “깟짜나 존자여, 그러면 무슨 원인과 무슨 조건 때문에 사문고따마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지 않습니까?”
“왓차여, '물질을 가졌다[有色].'라거나 '물질을 가지지 않았다[無色].'라거나
'인식을 가졌다[有想].'라거나 '인식을 가지지 않았다[無想].'라거나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非有想非無想].'라고
천명하는 데는 원인과 조건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원인과 조건이 어떤 것에 의해서도 어떤 식으로도 그 어디에도 그 누구에게도 남김없이 소멸해버린다면 도대체 어떻게 그를 두고
'물질을 가졌다.'라거나 '물질을 가지지 않았다.'라거나
'인식을 가졌다.'라거나 '인식을 가지지 않았다.'라거나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할 수 있겠습니까?”
“도반이여, 이 정도 된 분이 이렇게 보는 것은 많이 보는 것입니다.67)
그런데 하물며 이를 넘어선 분에 대해서는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67) '도반이여, 이 정도 된 분이 이렇게 보는 것은 많이 보는 것입니다.'는 yassa p' assa āvuso ettakena ettakam eva tam p' assa bahuṃ.을 옮긴 것이다. 주석서를 참조해서 이렇게 옮겼다.
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S44)가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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