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
- 사마타와 위빳사나 경
-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음 경
- 공한 삼매 경
- 마음챙김의 확립 경
- 바른 노력 경
- 성취수단 경
- 기능 경
- 힘 경
- 깨달음의 구성요소 경
- 팔정도 경
제1장 첫 번째 품 Paṭhama-vagga
27) Ee, Be, Se 등 모든 빠알리 원본 『상윳따 니까야』에는 본 「무위 상윳따」(S43)와 다음의「설명하지 않음[無記] 상윳따」(S44)가 제4권에 포함되어 나타난다. 역자는 책의 분량을 맞추기 위해서 이 두 상윳따를 여기 한글 번역본 제5권에 포함시켰음을 밝힌다.
몸에 대한 마음챙김 경(S43:1) Kāyagatāsati-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無爲)28)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리라. … §3> …
28) '무위(無爲, asaṅkhata)'는 본 상윳따의 경들에서 '탐욕의 멸진, 성남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으로 정의되고 있는데, 이것은 본서 제4권 「열반 경」(S38:1)과 본서 「어떤 비구 경」 2(S45:7) 등에서 열반을 정의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무위는 열반을 뜻한다. 그리고 여러 주석서도 무위는 “열반과 동의어(nibbanass'etaṃ adhivacanaṃ)”(MA.iv.106 등)라고 설명하고 있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몸에 대한 마음챙김29) 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29) 경에서 '몸에 대한 마음챙김(kāya-gatā sati)'은 『디가 니까야』「대념처 경」(Mahāsatipaṭṭhāna Sutta, D22)과 『맛지마 니까야』「염처경」(Sati-paṭṭhāna Sutta, M10)의 몸의 관찰(身隨觀, kāya-anupassanā]에 포함된 14가지 전부를 일컫는다. 즉 「대념처 경」(D22)의 §§2~10과 「염처경」(M10)의 §§4~31까지를 말한다. 이 14가지는 『맛지마 니까야』에서 「염신 경」 (Kayagatāsati Sutta, M119)이라는 독립된 경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청정도론』 등의 주석서 문헌에서는 이 가운데서 몸의 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만을 몸에 대한 마음챙김이라고 지칭하기도 한다.(『청정도론』 VIII.44 참조)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4.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30)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30) “'참선을 하라(jhāyatha)'는 것은 ① 대상을 통해서 하는 참선(ārammaṇ-ūpanijjhāna)으로는 38가지 대상들을 참선하라, ② 특상을 통해서 하는 참선(lakkkhaṇ-ūpanijjhāna)으로는 무상 등으로 무더기[蘊]와 감각장소[處]등을 참선하라는 뜻이며,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증장시켜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SA.iii.111)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믿음 경」(S1:36) §4의 주해도 참조하고, 38가지 명상주제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두려움 경」(S1:75)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사마타와 위빳사나 경(S43:2) Samathavipassanā-sutta
2. “비구들이여, [360]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리라. … §3> …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31)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31) '사마타(samatha)'와 '위빳사나(vipassanā)'는 불교 수행을 대표하는 술어이며 특히 상좌부 불교의 수행 체계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핵심 술어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두 술어는 일찍이 중국에서 각각 지(止)와 관(觀)으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지와 관을 고르게 닦을 것을 강조하여 지관겸수(止觀兼修)로 정착되었고, 이것은 다시 선종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로 계승되었다. 불교 2,600년사에서 내로라하는 논사들이나 수행자들이 이렇듯 지와 관에 대해서 많은 말을 한 것을 본 때문에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관심은 '후대논사들이나 수행자들의 견해가 아닌 초기불전에서 부처님이 직접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설명하신 것이 있는가? 부처님께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어떻게 정의하셨는가?'하는 것으로 기울게 되었다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적지 않은 초기불전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분명하게 정의하고 있다.
먼저 언급해야 할 경이 『앙굿따라 니까야』「명지의 일부 경」(A2:3:10)이다. 이 경에서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사마타를 마음(citta)과 마음의 해탈(심해탈, ceto-vimutti) 즉 삼매(定, samādhi]와 연결 지으시고, 위빳사나를 통찰지(paññā, 반야)와 통찰지를 통한 해탈(혜해탈, paññā-vimutti) 즉 통찰지[慧, paññā]와 연결 지으신다. 그리고 삼매는 욕망을 극복하는 수행이고, 통찰지는 무명을 극복하는 수행이라고 밝히고 계신다.
그리고 「삼매 경」1(A4:92) 등 세 개의 경들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답변을 명확하게 제공하고 있다. 이 세 개의 경에 나타나는 “마음의 사마타” 와 “통찰지라 [불리는] 법들에 대한 위빳사나”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사마타는 마음의 개발을 뜻하는 삼매와 동의어이고, 위빳사나는 통찰지와 동의어이다.
그래서 「삼매 경」3(A4:94)에서는 사마타를 얻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체득한 분을 찾아가서 '도반이여, 어떻게 마음을 고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안정시켜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을 하나가 되게 해야 합니까? 어떻게 마음이 삼매에 들게 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위빳사나를 얻기 위해서는 위빳사나에 통달한 분을 찾아가서 '도반이여, 형성된 것들[行]을 어떻게 보아야 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명상해야합니까? 형성된 것들을 어떻게 깊이 관찰해야 합니까?'라고 물어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이처럼 사마타는 마음을 [하나의 대상에] 고정시키고 고요하게 하는 삼매를 개발하는 수행(삼매, 定, samādhi)이며, 위빳사나는 유위제법[行]을 명상하고 관찰하여 무상 ·고·무아를 통찰하는 수행(통찰지, 慧, paññā)이라고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밝히고 계신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사마타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위빳사나를 먼저 닦아야 하는가, 아니면 둘 다를 동시에 닦아야 하는가이다.
이것도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관심을 가진 모든 사람들의 토론거리가 되고있다. 「쌍 경」(A4:170)은 여기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준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마타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위빳사나를 먼저 닦을 수도 있고,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함께 닦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각 개인의 문제이지어느 것을 먼저 닦아야 하는가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앙굿따라 니까야』를 위시한 초기불전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중요한 언급들을 포함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4.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음 경(S43:3) Savitakkasavicāra-sutta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는 삼매,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고찰만 있는 삼매,
일으킨 생각도 없고 지속적인 고찰도 없는 삼매이다.32)
32) 이 세 가지 삼매(samādhi)는 『디가 니까야』「합송경」(D33) §1.10과 「십상경」(D34) §1.4와 『맛지마 니까야』「오염원 경」(M128/iii.162) §31과 『앙굿따라 니까야』「간략하게 경」(A8:63) §4에도 꼭 같이 나타나고 있다. 경에 의하면 삼매는 4종선(四種禪)으로 분류된다. 이 분류에 의하면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고찰만 있는 삼매(avitakka-vicāra-matta samādhi)'는 존재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초선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제2선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둘 다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경에서 언급한 '일으킨 생각은 없고 지속적인 고찰만 있는 삼매'라는 이 구절은 아비담마에서 삼매를 5종선(五種禪)으로 분류하는 경전적 근거가 된다. 4종선과 5종선의 분류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5장 §6의 해설 1과 『청정도론』 XIV.86과 담마상가니 주석서』 (DhsA.179~180) 등을 참조할 것.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공한 삼매 경(S43:4) Suññatasamādhi-sutta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공한 삼매[空三昧],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昧]이다.33)
33)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에는 '공한 삼매(空三昧, suññato samādhi]' 와 '표상 없는 삼매(無相三昧, animitta samādhi] 와 '원함 없는 삼매[無願三味, appaṇihita samādhi]'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디가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이 세 가지 삼매는 그 유래(āgamana)와 공덕을 가짐(saguṇa)과 대상(ārammaṇa)의 셋을 통해서 설명된다.
① 먼저 유래에 의해서 설명하면, 어떤 비구는 무아(anatta)라고 천착하고 (abhinivisitvā) 무아라고 본 뒤에(disvā) 무아라고 일어나서 나온다 (vuṭṭhāti), 그러면 그의 위빳사나는 공하다고 한다. 왜? 공하지 않은 행위자인(asuññatatta-kāraka) 오염원(kilesa)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러한] 위빳사나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의 삼매(magga-samādhi)는 공하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果)의 삼매(phala-samādhi)는 공하다고 한다.
다른 비구는 무상(anicca)이라고 천착하고 무상이라고 본 뒤에 무상이라고 일어나서 나온다. 그러면 그의 위빳사나는 표상이 없다고 한다. 왜? 표상을 만드는 오염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nimitta-kāraka-kilesa-abhāyā). [이러한] 위빳사나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의 삼매는 표상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果)의 삼매는 표상이 없다고 한다.
다른 비구는 괴로움(dukkha)이라고 천착하고 괴로움이라고 본 뒤에 괴로움이라고 일어나서 나온다. 그러면 그의 위빳사나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왜? 원함을 만드는 오염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paṇidhi-kāraka-kilesa-abhāyā), [이러한] 위빳사나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도의 삼매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러한] 도로부터 유래하기 때문에 [이러한] 과(果)의 삼매는 원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이것은 유래한 것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② 그런데 도의 삼매는 탐욕 등이 공하기 때문에 공이고, 탐욕의 표상 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표상이 없고, 탐욕 등을 원하는 것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원함이 없다. 이것은 공덕을 가진 것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
③ 열반은 탐욕 등이 공하고 탐욕 등의 표상과 원함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함이요 표상 없음이요 원함 없음이다. 이러한 대상을 가진 도의 삼매는 공하고 표상이 없고 원함이 없다. 이것은 대상을 통해서 설명한 것이다.”(DA..ii.1003~1004)
한편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공한 삼매 등의 세 가지 삼매를 통해 오직 위빳사나를 설했다. 왜냐하면 위빳사나는 영원함(常, nicca]을 천착함(abhinivesa), 영원함에 대한 표상(nimitta), 영원함을 원함(paṇidhi) 등이 없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이름을 얻는다.”(AA.ji.386)
즉 공한 삼매 등으로 삼매라는 술어를 사용하고 있지만 그 내용상 위빳사나를 뜻한다는 말이다. 위빳사나는 이처럼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해서 각각 無相 · 無願 · 空의 해탈을 실현하는 체계이다. 공 · 무상 · 무원의 해탈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XI.66~73 이하와 『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36을 참조할 것. 표상 없는 마음의 삼매(animitta ceto-samādhi)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 「표상 없음 경」(S40:9) §3의 주해를 참조할 것.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싸띠의 확립[念處] 경(S43:5) Satipaṭṭhāna-sutta 34)
34) 본경을 비롯한 다음의 6개 경들은 37가지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菩提分法, bodhi-pakkhiya-dhamma]을 다루고 있다. 37보리분법은 본서 제4권 「무위 경」(S43:12/ix~xiv)에서 자세하게 언급되고 있다. 이들은 깨달음의 편(bodhi-pakkha)에 있는 유익한 심리현상들이기 때문에 이렇게 불리었다. 37보리분법 혹은 조도품(助道品)은 모두 37가지의 수행에 관계된 요소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것은 ① 네 가지 싸띠의 확립[四念處] ②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③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④ 다섯 가지 기능[五根] ⑤ 다섯 가지 힘[五力] ⑥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⑦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正道]의 이런 일곱 부문이다.
이 일곱 부문은 본서 S45부터 S50과 본서 제6권 S51의 일곱 가지 상윳따로 나타나고 있는데 팔정도는 본서 S45로, 칠각지는 S46으로, 사념처는 S47로, 오근은 S48로, 사정근은 S49로, 오력은 S50으로, 사여의족은 제6권의 S51로 나타나고 있다.
중국에서는 보리분법(菩提分法)으로도 옮기고 삼십칠조도품(三十七助道品)으로도 옮겼는데 이 pakkha(分, 片)를 upakāra-bhāva(도와주는 상태)로 이해한 주석서들의 입장과 일맥상통하는 좋은 번역이다. 37보리분법에 대해서는 아래 「도 상윳따」(S45)의 첫 번째 주해와 『청정도론』 XXII.33 이하와 『아비담마 길라잡이』제7장 §§24~33을 참조할 것.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네 가지 싸띠의 확립[四念處] 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바른 노력[正勤] 경(S43:6) Sammappadhāna-sutta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성취수단[如意足] 경(S43:7) Iddhipāda-sutta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기능[根] 경(S43:8) Indriya-sutta
3. “비구들이여, [361]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힘[力] 경(S43:9) Bala-sutta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다섯 가지 힘[五力]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깨달음의 구성요소[覺支] 경(S43:10) Bojjhaṅga-sutta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이다.
…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팔정도 경(S43:11) Ațțhaṅgikamagga-sutta
2. “비구들이여,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리라. … §3> …
3.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인가?
비구들이여,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 멸진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무위에 이르는 길인가?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무위에 이르는 길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렇게 나는 그대들에게 무위와 무위에 이르는 길을 설하였다.”
4.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이제 나는 연민으로 그대들에게 하였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들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제1장 첫 번째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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