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간략하게 경
- 상세하게 경
- 부정 경
- 견딤 경1
- 견딤 경2
- 양쪽 모두 경
- 목갈라나 경
- 사리뿟따 경
- 정력적인 노력 경
- 쌍 경
간략하게 경(A4:161) Saṃkhitta-sutta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 (초월지)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337)
337)『디가 니까야』 제3권 「합송경」(D33) §1.11(21)에도 나타난다. 여기서 언급되는 네 가지 도닦음에 대해서는 『청정도론』Ⅲ. §14 이하에 잘 설명되어 있는데 중요한 부분을 옮기면 다음과 같다.
“[여기서] 처음 禪을 닦는 것부터 시작하여 그 禪의 근접삼매가 일어날 때까지 계속되는 삼매의 수행을 도닦음(paṭipadā)이라 한다. 근접삼매부터 시작하여 본삼매까지 계속되는 통찰지를 최상의 지혜(abhiññā, 초월지)라 한다. 이런 도닦음이 어떤 자에게는 어렵다. 장애(nīvaraṇa, 五蓋) 등 반대되는 법이 일어나는 것을 잡도리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반복하기 쉽지 않다는 뜻이다. 어떤 자에게는 그런 것이 없기 때문에 쉽다. 최상의 지혜(초월지)도 어떤 자에게는 더디다. 느리고 신속하게 일어나지 않는다.
상세하게 경(A4:162) Vitthat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 인가?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 (초월지)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338)이 약하게 나타난다.
338) 다섯 가지 기능[五根]은 37보리분법에 포함되며 초기불교에서 설하는 실참수행의 중요한 지침이 된다. 『청정도론』에는 이러한 다섯 가지 기능을 조화롭게 유지할 것을 강조하는데(Vis.IV.45~49) 그 가운데서 한 부분을 인용한다.
“여기서 특별히 믿음과 통찰지의 균등함(samatā), 삼매와 정진의 균등함을 권한다. 믿음이 강하고 통찰지가 약한 자는 미신이 되고, 근거 없이 믿는다. 통찰지가 강하고 믿음이 약한 자는 교활한 쪽으로 치우친다. 약으로 인해 생긴 병처럼 치료하기가 어렵다. 두 가지 모두 균등함을 통해서 믿을만한 것을 믿는다. 삼매는 게으름(kosajja)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삼매가 강하고 정진이 약한 자는 게으름에 의해 압도된다. 정진은 들뜸(uddhaca)으로 치우치기 때문에 정진이 강하고 삼매가 약한 자는 들뜸에 의해 압도된다. 삼매가 정진과 함께 짝이 될 때 게으름에 빠지지 않는다. 정진이 삼매와 함께 짝이 될 때 들뜸에 빠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 둘 모두 균등해야 한다. 마음챙김은 모든 곳에서 강하게 요구된다. 마음챙김은 마음이 들뜸으로 치우치는 믿음과 정진과 통찰지로 인해 들뜸에 빠지는 것을 보호하고, 게으름으로 치우치는 삼매로 인해 게으름에 빠지는 것을 보호한다.”(Vis.IV.48~49)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디다고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서 …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디다고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아주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르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부정(不淨) 경(A4:163) Asubh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339)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340)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341)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有學)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지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디다고 한다.”
339) 주석서는 “열 가지 부정함(asubha)을 비추어 바라봄(upasaṃharaṇa)을 통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무는 것이다.”(AA.iii.140)라고 설명한다. 열 가지 부정함은 40가지 명상주제(kammaṭṭhāna)에 포함되어 있는데 ① 부푼 것 ② 검푸른 것 ③ 문드러진 것 ④ 끊어진 것 ⑤ 뜯어 먹힌 것 ⑥ 흩어져있는 것 ⑦ 난도질당하여 뿔뿔이 흩어진 것 ⑧ 피가 흐르는 것 ⑨ 벌레가 버글거리는 것 ⑩ 해골이 된 것이다. 『청정도론』 VI장은 이 열 가지를 관찰하는 수행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본서 단속 경」(A4:14) §4와 본서 제1권 A1:20:88~92에는 각각 6가지와 5가지가 언급되고 있다.
340)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āhāre paṭikkūlasaññī)'도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포함되어 있다. 이것을 닦는 방법은 『청정도론』 XI.1~26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341) '죽음에 대한 인식(maraṇasaññā)'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念, maraṇa-ssati]으로 40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포함되어 있으며 이것을 닦는 방법은 『청정도론』 VIII.1~48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청정도론』 III.57~58에는 비구가 반드시 닦아야 하는 모든 곳에 유익한 명상주제로 비구승가 등에 대한 자애[慈, mettā]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死念, maraṇassati]을 들 정도로 죽음에 대한 인식은 수행의 기본이 되는 항목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더디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디다고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아주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르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견딤 경1(A4:164) Khama-sutta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견디지 못함의 도닦음, 견딤의 도닦음,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도닦음, 고요함의 도닦음이다.” 342)
342)『디가 니까야』제3권 「합송경」 (D33) §1.11(22)에도 나타나고 있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디지 못함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모욕을 모욕으로 되갚고 분노를 분노로 되갚고
다툼을 다툼으로 되갚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디지 못함의 도닦음이라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딤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모욕을 모욕으로 되갚지 않고 분노를 분노로 되갚지 않고
다툼을 다툼으로 되갚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딤의 도닦음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意根]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길들임의 도닦음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고요함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악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 계속적으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고요함의 도닦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견딤 경2(A4:165)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견디지 못함의 도닦음, 견딤의 도닦음,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도닦음, 고요함의 도닦음이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디지 못함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뙤약볕과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을 견디지 못하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디지 못함의 도닦음이라 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견딤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추위와 더위와 배고픔과 목마름과, 날파리와 모기와 바람과 뙤약볕과 파충류에 닿음과, 고약하고 언짢은 말들을 견디고, 몸에 생겨난 괴롭고 날카롭고 거칠고 찌르고 불쾌하고 마음에 들지 않고 생명을 위협하는
갖가지 느낌들을 감내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견딤의 도닦음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감각기능들을] 길들임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意根]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길들임의 도닦음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고요함의 도닦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악의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 해코지에 대한 생각이 일어나면 …
계속적으로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일어나면 그것을 품지 않고 버리고 제거하고 끝내고 없앤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고요함의 도닦음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양쪽 모두 경(A4:166)343) Ubhaya-sutta
343) PTS본에는 dutiya로 나타나는데 육차결집본의 ubhaya가 문맥상 더 나아서 이를 채택했다.
1. “비구들이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초월지)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2.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이러한 도닦음은
양쪽 모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즉 도닦음이 어려운 것도 저열하다고 일컬어지고
최상의 지혜가 더딘 도닦음도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도닦음은 양쪽 모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3.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도닦음이 있다.
이것은 도닦음이 어렵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4.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도닦음이 있다.
이것은 최상의 지혜가 더디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일컬어진다.”
5. “비구들이여, 이 가운데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이러한 도닦음은
양쪽 모두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즉 도닦음이 쉬운 것도 수승하다고 일컬어지고
최상의 지혜가 빠른 도닦음도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도닦음은 양쪽 모두 수승하다고 일컬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다.”
목갈라나 경(A4:167) Moggallāna-sutta
1. 그때 사리뿟따 존자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목갈라나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뿟따 존자는 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목갈라나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 목갈라나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2.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 가운데 어떤 도닦음을 통해서
스님은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까?”
“도반 사리뿟따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 가운데
나는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도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사리뿟따 경(A4:168) Sāriputta-sutta
1. 그때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목갈라나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사리뿟따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2.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 가운데 어떤 도닦음을 통해서
스님은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까?”
“도반 목갈라나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입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이 있습니다.
도반이여, 이러한 네 가지 도닦음 가운데
나는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도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
정력적인 노력 경(A4:169) Sasaṅkhāra-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44)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45)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여기 어떤 사람은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44) “첫 번째와 두 번째 사람은 순수 위빳사나 행자[乾觀者, sukkha-vipassaka]인데 정력적인 노력으로(sasaṅkhārena sappayoga) 상카라의 표상(aṅkhāra-nimitta)을 확립한다. 이 가운데 첫 번째 사람은 위빳사나의 기능들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 [금생에서] 오염원을 완전히 멸진하여(kilesa-parinibbāna) 완전한 열반을 실현한다. 두 번째 사람은 기능들이 약하기 때문에 여기 [금생에는] 불가능하고 다음 생의 몸(attabhāva)을 받아 거기서 근본 명상주제(mūla-kammaṭṭhāna)를 얻어 정력적인 노력으로 상카라의 표상을 확립한 뒤 오염원을 완전히 멸진하여 완전한 열반을 실현한다.” (AA.iii.142)
345) “세 번째와 네 번째는 사마타 행자이다. 한 사람은 정력적인 노력 없이도 기능들이 강하기 때문에 여기 [금생에서] 오염원들을 제거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네 번째)은 기능들이 약하기 때문에 다음 생의 몸을 받아 거기서 근본 명상주제를 얻어 자극이 없고 수단이 없이 오염원들을 제거한다.”(Ibid)
<*주석의 설명대로라면 목갈라나 존자가 순수 위빳사나 수행자였다는 설명이 된다.
반면에 사라뿟따 존자는 사마타 수행자였다는 설명이 된다. 그러나 경문과 배치되며
경문의 설명을 유추해서 짐작해 보면
목갈라나 존자는 욕계 애지 연기(66법)을 보시고 나서
삼계-욕계 색계 무색계-를 차례대로 벗어나신 분이고
사리뿟따 존자는 욕계는 어렵지 않게(고통을 느끼지 않고) 벗어나고
색계선에서 무명 연기를 보시고 삼계를 해탈하신 분이다.
금생에서 해탈하지 못한
불환자의 분류에 [asaṅkhāraparinibbāyī ,sasaṅkhāraparinibbāyī]라는 표현이 나타난다.>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의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인 고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이 약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약하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고 난 뒤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쌍 경(A4:170) Yuganaddha-sutta
1. 한때 아난다 존자는 꼬삼비에서 고시따 원림에 머물렀다. 거기서 아난다 존자는 “도반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응답했다.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어떤 비구든 비구니이든 나의 곁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설명하는 자는 모두 네 가지 특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 무엇이 넷인가요?”
<*M111는 사리뿟따 존자가 禪정(9차제정)에 들어서 위빳사나를 수행하는 내용이다.
증득에 든 상태에서 위빳사나를 한다고 나온다.
즉 [본삼매 즉 禪에 들어서 위빳사나를 닦는]다고 경문에 나타난다.
다만 비상비비상과 상수멸은 출정하고 나서.
또한 바른 삼매 등에 온전하게 들지 못하여 -아직 욕계의 법들(66법)이 출몰하여-
자주 들었다 나오고 들었다 나오고 반복하는 이유가
66법이라고 알고 그 기억(사띠)에 따라 고백한 것이 욕계 애지 연기이다.>
2.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습니다.346)
그가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을 때 도를 인식합니다.347)
그는 그 도를 거듭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짓습니다.348)
그가 그 도를 거듭하고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족쇄들이 제거되고349)
잠재성향350)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346) “이것은 사마타 행자(samatha-yānika)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첫 번째로 근접삼매(upacāra-samādhi)나 본삼매(appanā-samādhi)를 일으킨다. 이것은 사마타이다. 그는 삼매와 이러한 삼매와 함께하는 법에 대해서 무상 등으로 관찰한다.(vipassati), 이것은 위빳사나이다. 이처럼 첫 번째 사마타가 있고 그다음에 위빳사나가 있다. 그래서 '사마타를 먼저 닦고 위빳사나를 닦는다 (samathapubbaṅgamaṃ vipassanaṃ bhāveti)'고 한 것이다.”(AAȚ.ii.314)
347) “첫 번째 출세간 도(lokuttara-magga)가 생긴다는 말이다.” (A.iii.142)
“여기서 첫 번째 출세간 도란 예류도(sotāpatti-magga)를 두고 한 말이다. 혹은 세간적인 도(lokiya-magga)로도 이 성전의 뜻을 알아도 된다. 예비단계인 (pubbabhāgiya) 세간의 도가 생긴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AAȚ.ii.314)
348) “염오를 따라 관찰하는 것(nibbidānupassanā)을 통해서 '거듭한다 (āsevati)'. 해탈하기를 원함(muccitukamyatā)에 의해서 '닦는다(bhāveti)' 숙고함을 따라 관찰함(paṭisaṅkhānupassanā)을 통해서 '많이 [공부]짓는다(bahulīkaroti).'
혹은, 공포로 나타나는 지혜(bhayatupaṭṭhānañāṇa)를 통해서 '거듭한다.' 해탈하고자 하는 지혜(muñicitukamyatāñāṇa) 등을 통해서 '닦는다.' 도의 출현으로 인도하는 위빳사나(vuṭṭhānagāminīvipassanā)를 통해서 '많이 [공부] 짓는다.'” (Ibid)
여기서 언급되는 술어들은 『청정도론』 XXI.1 이하를 참조할 것.
349) 『청정도론』은 도(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에 의해서 족쇄(saṃyojana)들이 제거되는 것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유신견, 의심, 계율과 의식에 대한 집착, 악처로 인도하는 감각적 욕망, 악의 - 이 다섯 가지 법들은 첫 번째 도(예류도)의 지혜로 버리고, 나머지 거친 감각적 욕망과 적의는 두 번째 도(일래도)의 지혜로 버리고, 미세한 감각적 욕망과 적의는 세 번째 도(불환도)의 지혜로 버리고, 색계에 대한 욕망 등 다섯은 오직 네 번째 도(아라한도)의 지혜로 버린다.”(Vis.XXII.64)
350) '잠재성향'은 anusaya를 옮긴 것이다. 이 단어는 anu(~를 따라서, ~의 아래) + √śī(to lie)에서 파생된 남성명사이다. 문자적인 뜻을 살려 잠재성향으로 옮겼다. 『청정도론』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이들은 고질적(thāma-gata)이기 때문에 잠재성향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이들은 반복해서 감각적 욕망 등이 일어날 원인의 상태로 잠재해 있기 때문이다.” (『청정도론』 XXII.60)
『디가 니까야』 제3권 「합송경」 (D33) §2.3(12) 등에서 잠재성향은 감각적 욕망의 잠재성향, 적의(敵意)의 잠재성향, 자만의 잠재성향, 사견(邪見)의 잠재성향, 의심의 잠재성향, 존재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 무명의 잠재성향의 일곱 가지가 나타난다.
『청정도론』은 이들 일곱 가지 잠재성향이 어떻게 도에 의해서 버려지는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사견의 잠재성향과 의심의 잠재성향은 첫 번째 지혜(예류도의 지혜)로 버린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잠재성향과 적의의 잠재성향은 세 번째 지혜(불환도의 지혜)로 버린다. 자만의 잠재성향과 존재에 대한 탐욕의 잠재성향과 무명의 잠재성향은 네 번째 지혜(아라한도의 지혜)로 버린다.”(Vis.XXII.73)
3.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위빳사나를 먼저 닦고 사마타를 닦습니다.351)
그가 위빳사나를 먼저 닦고 사마타를 닦을 때 도를 인식합니다.
그는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짓습니다.
그가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351) “이것은 위빳사나 행자를 두고 한 말이다. 그는 앞서 말한 사마타를 성취하지 않고 다섯 가지 취착하는 무더기[五取蘊]에 대해서 무상 등으로 관찰한다.(vipassati)”(Ibid)
초기경에서 세존께서 고구정녕하게 강조하시는 것으로 많은 경들에서 거듭 나타나는 '오온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찰하라.'는 가르침을 바로 실천하는 것이 위빳사나를 먼저 닦는 수행이라는 설명이다. 이렇게 사마타와 위빳사나는 분명하게 정리할 수 있다.
4.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습니다. 352)
그가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을 때 도를 인식합니다.
그는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짓습니다.
그가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352) “'쌍으로 닦는다(yuganaddhaṃ bhāveti)'고 하였다. 그러나 증득[等至]에 든(samāpattiṃ samāpajjitvā) 마음(citta)으로 형성된 것(saṅkhāra)들을 명상할 수는 없다.(sammasituṃ na sakkā) 그러므로 이것은 증득에 든 만큼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고 형성된 것들을 명상하는 만큼 [다시] 증득에 든다는 [말이다.] 어떻게?
초선을 증득한다(samāpajjati), 거기서 출정(出定)한 뒤(tato vuṭṭhāya)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sammasati), 형성된 것들을 명상 한 뒤 제2선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다시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 비상비비상처의 증득에 든다. 거기서 출정한 뒤 형성된 것들을 명상한다. 이와 같이 하는 것을 사마타와 위빳사니를 쌍으로 닦는다고 한다.”(AA.jji.143)
주석서는 사마타와 위빳사나를 쌍으로 닦는다는 의미를 이렇게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본삼매 즉 禪에 들어서 위빳사나를 닦는 것이 지관겸수 혹은 정혜쌍수라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표상이라는 개념에 집중된 사마타와 법의 찰나성(무상) 등을 통찰하는 위빳사나는 그 성격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위빳사나 즉 법의 무상 · 고 · 무아를 통칠하는 것은 이처럼 반드시 사마타에서 출정한 뒤에야 가능하다. 이것이 상죄부의 정통 견해이다.
<*M128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5. “다시 도반들이여, 비구가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353)
353)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림(dhamm-uddhacca-viggahita)'이란 사마타와 위빳사나 [도중에 생기는] 법들 가운데 열 가지 위빳사나의 경계(dasa-vipassan-upakkilesa)라 불리는 들뜸에 의해서 붙들렸다, 완전히 붙들렸다는 뜻이다. (AA.iii.143)
한편 『청정도론』 XX.106은 이 문장에 대한 『무애해도』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고 있다.
“어떻게 [성스러운] 법이라고 생각하면서 일어난 들뜸에 의해서 마음이 붙들리게 되는가? 그가 [상카라들을]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① 광명이 일어난다. 광명이 법이라고 생각하고 광명으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들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무상이라고 마음에 잡도리할 때 ② 지혜가 일어난다. … ③ 희열이 … ④ 경안이 … ⑤ 행복이 … ⑥ 결심이 … ⑦ 분발이 … ⑧ 확립이 … ⑨ 평온이 … 10 욕구가 일어난다. 욕구가 법이라고 생각하고 욕구로 전향한다. 그것으로 인한 산만함이 들뜸이다. 그 들뜸에 마음이 붙들려 그들이 일어남을 무상하다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들이 일어남을 괴로움이라고 … 무아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Ps.ji.100~101)
열 가지 위빳사나의 경계는 『청정도론』 XX.105 이하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할 것.
그런 과정에서 일어난 마음을 안으로 확립하고 안정시키고, 하나에 고정하여
삼매에 들 때 그는 도를 인식합니다.
그는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짓습니다.
그가 그 도를 거듭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족쇄들이 제거되고 잠재성향들이 끝이 나게 됩니다.
비구들이여, 어떤 비구든 비구니는 나의 곁에서 아라한과를 증득했다고 설명하는 자는
모두 이러한 네 가지 특징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합니다.”
제17장 도닦음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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