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꼬살라의 날라까빠나731)에 있는 빨라사 숲에 머무셨다.
731) 꼬살라의 날라까빠나 성읍(Naḷakapāna nigama)은 그곳에 있는 날라까빠나 호수(pokkharaṇi)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주석서는 이 이름이 붙여진 전설을 자따까를 인용하면서 길게 설명하고 있다.(MA.ii.178~180) 이 마을에는 께따 숲(Keta-vana)과 빨라사 숲(Palāsa-vana)이 있었다고 하는데 본경은 후자에서 설해진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6권 「날라까빠나 경」 1/2(A10:67~68)도 이곳 빨라사 숲에서 설하신 것이다.
2. 그 즈음에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많이 세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그들은 아누룻다 존자,732) 난디야 존자, 낌빌라 존자,733) 바구 존자,734) 꾼다다나 존자,735) 레와따 존자,736) 아난다 존자737)와 다른 잘 알려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었다.
732) 아누룻다 존자(āyasmā Anuruddha)에 대해서는 본서 「고싱가살라 긴 경」 (M32)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733) 난디야 존자(āyasmā Nandiya) 낌빌라 존자(āyasmā Kimbila)에 대해서는 본서 「고싱가살라 짧은 경」 (M31) §2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734) 바구 존자(āyasmā Bhagu)는 사꺄족 출신이며 본경과 『율장』과 주석서 문헌에서는 성도 후에 까삘라왓투를 방문하신 부처님을 따라서 사까의 아누삐야 (Anupiya)에서 아누룻다 존자(āyasmā Anuruddha), 아난다(Ananda), 낌빌라(Kimbila), 데와닷따(Devadatta) 같은 왕자와 이발사 우빨리(Upāli)를 비롯한 많은 사꺄의 청년들과 함께 출가하였다고 나타난다.(Vin.ii.180; AA.i.108; DhpA.i.133; iv.127)
그는 발라깔로나까라 마을(Bālakaloṇakāra gāma)에 머물면서 거기서 아라한과를 얻었는데(ThagA.ii.111~112) 이때 읊은 그의 게송이 『장로게』 (Thag) {271-4}로 전해온다.
그는 본서 제4권 「오염원 경」 (M128)의 §7에도 나타나는데 「오염원 경」 §§1~7에 의하면 꼬삼비에서는 비구들이 분쟁이 생겼는데 그들은 중재하려는 세존의 말씀도 듣지 않게 되자 세존께서는 발라깔로나까라 마을로 가셨고 [이미 아라한과를 증득하여] 그곳에 머무르던 바구 존자는 세존의 격려의 말씀을 듣고 크게 기뻐하였다고 한다. 주석서(SA.ii.304)에 의하면 이때 세존께서는 하루 낮과 밤 동안 그에게 설법을 하셨다고 한다.
735) 꾼다다나 존자(āyasmā Kuṇḍadhāna)는 사왓티의 바라문 가문에서 태어났으며 베다에 능통했다고 한다. 그의 이름은 원래 다나(Dhāna)였다. 그가 꾼다다나 혹은 꼰다다나라고 불리게 된 데는 이상한 인연이 있다. 그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였는데 그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자신은 모르지만 젊은 여인의 모습이 항상 그를 따라다녔다. 탁발을 가면 여인네들은 그에게 두 사람분의 음식을 주면서 '하나는 당신 여자 친구의 것입니다.'하면서 놀렸고 비구들도 그를 '우리 존자는 참 꼬부라지기도(꾼다, kuṇḍa/koṇḍa) 하지.'라면서 놀렸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이름이 꾼다다나 혹은 꼰다다나가 되었다 한다. 그는 상심하여 탁발을 갈 수도 없었고 제대로 수행을 할 수도 없었다고 한다.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이 소문을 듣고 그에게 늘 공양을 베풀기로 약속을 하여 탁발을 가지 않고도 수행에 전념할 수 있었으며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그러자 그 여인의 모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그는 세존을 상수로 여러 비구대중이 욱가나가라의 마하수밧다(Mahā Subhaddā)와 사께따(Sāketa)의 쭐라수밧다와 수나빠란따(Sunāparanta)로 유행을 갔을 때 늘 제일 먼저 식권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식권을 처음 받는 비구들 가운데 으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이다.
736) 레와따 존자(āyasmā Revata)에 대해서는 본서 「고싱가살라 긴 경」(M32) §3의 주해를 참조할 것.
737) 아난다 존자(āyasmā Ananda)에 대해서도 본서 「고싱가살라 긴 경」(M32) §3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3.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 둘러싸여서 노천에 앉아 계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두 번째로 … 세 번째로 세존께서는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 관해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은 내 아래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그 비구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었다.
4. 그러자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직접 그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 물어보리라.”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누룻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누룻다들이여738), 그대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하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청정범행에 기뻐합니다.”
738)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고싱가살라 짧은 경」 (M31) §5의 주해를 참조할 것.
5. “장하구나. 장하구나, 아누룻다들이여.
아누룻다들이여, 청정범행에 기뻐하는 것은 그대들과 같이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들에게는 참으로 어울리는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머리칼이 검고 축복받은 젊음을 두루 갖춘 인생의 초년에
감각적 욕망을 즐길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나 그런 검은 머리칼과 축복받은 젊음을 두루 갖춘 인생의 초년에 머리와 수염을 깎고 가사를 수하고 집을 떠나 출가했다.
그대들이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은 왕의 명령739)으로 인한 것도 아니고, 도둑의 협박 때문도 아니고, 빚 때문도 아니고, 두려움 때문도 아니고, 생계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한 것이 아닌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739) “'왕의 명령(rāja-abhinīta)'이라고 하였다. 어떤 사람이 왕에게 죄를 짓고 도망을 갔지만 결코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러나 출가를 한다면 면죄해주겠다는 왕의 말을 듣고 친구와 상의를 하였다. 친구는 목숨을 건지려면 출가를 하라고 권했다. 그리하여 그는 출가하여 목숨을 부지하였는데, 이것을 두고 말하는 것이다.”(MA.iii.180)
6. “아누룻다들이여, 그러면 이렇게 출가한 좋은 가문의 아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지 못하면
탐욕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문다.740)
악의가 그의 마음을 압도하고 제압하여 머문다.
해태와 혼침이 … 들뜸과 후회가 … 의심이 … 싫어함741)이 …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문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지 못하면 [이와 같이 된다.]
740) “'탐욕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문다(tassa abhijjhā pi cittaṃ pariyādāya tiṭṭhati).'고 하셨다. 감각적 욕망들(kāmā)과 해로운 법들(akusaladhammā)을 멀리 떨쳐버렸으므로(vivittena) 초선과 제2선이라 불리는 희열과 행복(pīti-sukha)을 얻어야 한다. 만일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지 못하거나 혹은 더 높은 두 가지 禪(제3선과 제4선)과 네 가지 도의 더 평화로운 행복(santatara sukha)을 얻지 못하면, 이런 탐욕 등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문다는 말씀이다.” (MA.iii.181)
741) '싫어함'은 arati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높은 유익한 법들(adhikusalā dhammā)에 대한 불만스러움(ukkaṇṭhitatā)이다.”(MA.ii.181)라고 설명하고 있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으면 탐욕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물지 않는다.
악의가 그의 마음을 제압 하여 머물지 않는다.
해태와 혼침이 … 들뜸과 후회가 … 의심이 … 싫어함이 …
게으름이 그의 마음을 제압하여 머물지 않는다.
아누룻다들이여, 감각적 욕망들을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멀리 여읜 희열과 행복을 얻거나 이보다 더 평화로운 경지를 얻으면 [이와 같이 된다.]
17. “아누룻다들이여, 그대들은 나에 대해서 이런 생각이 드는가?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라고,”742)
742)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함으로써, 감내함으로써, 피함으로써, 버림으로써 번뇌들을 없애는 이 네 가지 수행 방법은 본서 제1권 「모든 번뇌 경」 (M2) §4에서 ③ 수용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④ 감내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⑤ 피함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 ⑥ 버림으로써 없애야 할 번뇌들로 포함되어 나타나고 있고, 이것들은 다시 §13 이하에서 설명되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세존에 대해 그런 생각은 들지 않고, 오히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여래께서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버리셨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감내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시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리신다.'라고.”
“장하구나. 장하구나, 아누룻다들이여.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아누룻다들이여, 예를 들면 야자수가 그 윗부분이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를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그래서 여래는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수용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참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피하고, 숙고한 뒤에 어떤 것을 버린다.' 라고.”
8. “아누룻다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래는 어떤 목적을 보기에 제자가 죽어서 임종하면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재생을 설명하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의 법은, 세존을 근원으로 하며, 세존을 길잡이로 하며,
세존을 귀의처로 합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말씀 하신 뜻을 친히 밝혀주신다면 참으로 감사하겠습니다.
비구들은 세존으로부터 잘 듣고 마음에 새겨 지닐 것입니다.”
9. “아누룻다들이여,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죽어서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 하는 것은 결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743)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743) '큰 기쁨'은 uḷāra-vedā(광대한 영감)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큰 기쁨(mahanta-tuṭṭhi)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MA.iii.182) 이렇게 옮겼다.
10.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구경의 지혜에 확고하게 되었다[阿羅漢].'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744)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745)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746)
744) “여기서 '계행(sīla)' 등은 세간적인 것과 출세간적인 것이 섞인 것(lokiya-lokuttara-missakā)이다.”(MA.iii.182)
745) “여기서는 삼매의 편에 있는 법들(samādhi-pakkhikā dhammā)을 '법(dhamma)'이라 표현했다.”(MA.iii.182)
746) “'편안히 머문다(phāsu-vihāro hoti)'라고 하셨다. 그 비구는 완성된 도닦음(purita-paṭipatti)을 계속할 때 아라한과를 실현하여 과의 증득에 머물기 때문에 편안히 머문다. 아라한과를 증득할 수 없더라도 도닦음을 완성하면서(pūrayamāna) 머물 때에도 편안히 머문다고 한다.” (MA.iii.182)
11.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不還者].'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12.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一來者].'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13.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預流者].'라고,
그리고 그는 '그 존자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법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존자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존자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비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는 편안히 머문다.”
14.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구경의 지혜에 확고하게 되었다[阿羅漢].'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 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5.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不還者].'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6.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一來者].'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품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7.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비구니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비구니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 비구니에 대해
'그 비구니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는 법이 없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預流者].'라고 설명하셨다.'라고,
그리고 그 비구니는 '그 스님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법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 스님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 스님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비구니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묾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비구니는 편안히 머문다.”
18.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不還者].'라고,
그리고 그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 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19.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 이다[一來者].'라고,
그리고 그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20.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사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사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에 대해
'그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預流 者].'라고,
그리고 그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는 그 청신사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사는 편안히 머문다.”
21.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녀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에 대해
'그녀는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앤 뒤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 자이다[不還者].'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녀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468]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 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22.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녀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에 대해
'그녀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가 되어 한 번만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것이다[一來者].'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녀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23. “아누룻다들이여, 여기 청신녀는 이와 같이 듣는다.
'아무개라는 이름의 청신녀가 임종을 했는데, 세존께서 그녀에 대해
'그녀는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되었다.[預流者].'라고,
그리고 그녀는 '그분의 계행은 이러했고, 그분의 법은 이러했고, 그분의 통찰지는 이러했고, 그분의 머묾은 이러했고, 그분의 해탈은 이러했다.'라고
그녀 스스로 보거나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적이 있다.
그녀는 그 청신녀의 믿음과 계행과 배움과 베풂과 통찰지를 기억하면서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와 같이 청신녀는 편안히 머문다.”
24. “아누룻다들이여, 이처럼 여래가
'아무개는 이런 곳에 태어났다. 아무개는 저런 곳에 태어났다.'라고
죽어서 임종한 제자의 재생을 설명하는 것은 결코 사람들을 속이기 위한 것이거나,
사람들에게 발림 말을 하기 위한 것이거나, 이득과 환대와 명성을 얻기 위한 것이거나,
이와 같이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겠지.'라는 이유 때문도 아니다.
아누룻다들이여, 그것은 믿음과 큰 기쁨과 큰 환희를 가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이런 말을 들으면 그러한 상태로 마음을 향하게 할 것이고,
그것은 그들에게 오랫동안 이익과 행복이 되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누룻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날라까빠나 경(M68)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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