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지마니까야 2권 (대림스님) p.632-65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나는 한 자리에서 (하루에 한번)만 먹는다. 비구들이여, 나는 한 자리에서 (하루에 한번)만 먹을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한다. 오라, 비구들이여. 그대들도 한 자리에서(하루에 한번)만 먹도록 하라. 그대들도 한 자리에서 (하루에 한번)만 먹을 때 병이 없고 고통이 없고 가볍고 생기 있고 편안하게 머무는 것을 인식할 것이다.”
3. 이렇게 말씀하시자 밧달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한 자리에서 (하루에 한번)만 먹는 수행을 할 용기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한 자리에서 (하루에 한번)만 먹을 때 제게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밧달리여, 그렇다면 그대가 초청을 받은 곳에서 일부는 먹고 일부는 가져가서 먹도록 하라. 밧달리여, 이와 같이 먹을 때 그대는 자신을 지탱할 수 있을 것이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먹는 것도 행할 용기가 없습니다. 이와 같이 먹더라도 제게 걱정이 앞서고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4. 그때 세존께서는 이것을 학습계목으로 제정하여 공포를 하셨고, 밧달리 존자는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다. 그리고 밧달리 존자는 안거의 석 달 동안을 세존의 면전에 나타나지 않았다. 스승의 교법에서 이 학습계목을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5. 바로 그 즈음에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고 석 달의 안거가 끝나면 세존께서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6. 그때 밧달리 존자는 그 비구들을 만나러 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밧달리 존자에게 그 비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도반 밧달리여, 이것은 세존의 가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가사가 완성되고 석 달의 안거가 끝나면 세존께서 유행을 떠나실 것입니다. 도반 밧달리여, 그러니 그대가 선언한 것을 잘 마음에 잡도리해 보십시오. 나중에 더 어려워지지 않도록 하십시오.”
7. “그러겠습니다, 도반들이여.” 라고 밧달리 존자는 그 비구들에게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밧달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미숙하여 세존께서 학습계목을 공포하심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미래에 [다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제 자신을 단속하겠사오니 제 잘못에 대한 참회를 섭수해주십시오.”
8. “밧달리여, 확실히 그대는 잘못을 범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미숙하여 그대는 내가 학습계목을 공포하는데도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다.”
9. “밧달리여, 그대는 이런 상황을 꿰뚫어보지 못했다. ‘세존께서는 사왓티에 계시므로 세존께서 나에 관해 ‘밧달리라는 비구가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않는다.’라고 아실 것이다.’ 라고.
밧달리여, 또한 그대는 이런 상황도 꿰뚫어보지 못했다. ‘많은 비구들이 사왓티에서 안거를 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나에 관해 ‘밧달리라는 비구가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않는다.’라고 알 것이다.’라고.
밧달리여, 또한 그대는 역시 이런 경우도 꿰뚫어보지 못했다. ‘많은 비구니들이 사왓티에서 안거를 했으므로 그들이 나에 관해 … 많은 청신사들이 사왓티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나에 관해 … 많은 청신녀들이 사왓티에 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나에 관해 ‘밧달리라는 비구가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않는다.’라고 알것이다.’라고.
밧달리여, 또한 그대는 이런 경우도 꿰뚫어보지 못했다. ‘많은 외도 사문 ∙ 바라문들이 사왓티에서 안거를 하고 있으므로 그들이 나에 관해 밧달리라는 비구는 사문 고따마의 장로 제자인데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않는다.’라고 알 것이다.’라고.”
10.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미숙하여 세존께서 학습계목을 공포하심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미래에 [다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제 자신을 단속하겠사오니 제 잘못에 대한 참회를 섭수해주십시오.”
“밧달리여, 확실히 그대는 잘못을 범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미숙하여 그대는 내가 학습계목을 공포하는데도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다.”
11. “밧달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양면으로 해탈한 비구가 있는데,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자.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를 위해 진흙탕을 건널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해 달라.’라고. 그런데도 그가 그냥 지나가 버린다든가,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려 [외면]한다든가, ‘저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밧달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통찰지로 해탈한 비구가 … 몸으로 체험한 비구가 … 견해를 얻은 비구가 … 믿음으로 해탈한 비구가 … 법을 따르는 비구가 … 믿음을 따르는 비구가 있는데, 내가 그에게 이렇게 말한다 하자.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나를 위해 진흙탕을 건널 수 있도록 교량 역할을 해 달라.’라고. 그런데도 그가 그냥 지나가 버린다든가, 다른 쪽으로 몸을 돌려 [외면]한다든가, ‘저는 못하겠습니다.’라는 말을 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2. “밧달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밧달리여, 그대는 그 당시에 양면으로 해탈한 자였는가, 아니면 통찰지로 해탈했거나, 몸으로 체험했거나, 견해를 얻었거나, 믿음으로 해탈했거나, 법을 따르거나, 믿음을 따르는 자였는가?”
“그렇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밧달리여, 그렇다면 그대는 그 당시에 비었고 실속 없고 잘못한 것이 아닌가?”
13. “참으로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범했습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미숙하여 세존께서 합습계목을 공포하심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미래에 [다시 이와 같은 잘못을 범하지 않도록] 제 자신을 단속하겠사오니 제 잘못에 대한 참회를 섭수해주십시오.”
“밧달리여, 확실히 그대는 잘못을 범했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미숙하여 그대는 내가 학습계목을 공포하는데도 이 학습계목을 받아 지닐 수 없다고 비구 승가에 선언했다. 밧달리여, 그러나 이제 그대는 잘못을 범했음을 보아서 법답게 속죄하였다. 우리는 그런 그대를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섭수한다. 밧달리여, 참으로 성자들의 율에서 잘못을 범했음을 보아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법답게 속죄하는 자에게는 향상이 있기 때문이다.”
14.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하는데도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참으로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협곡이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하면,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협곡이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거기서 혼자 은둔하여 머물 때 스승도 그를 경책하시고,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도 검증을 해 보고서 경책하고, 신들도 경책하고, 그 자신도 자신을 경책한다.
스승의 경책을 받고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의 경책을 받고 신들의 경책을 받고 그 자신이 자신의 경책을 받았지만, 그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실현하지 못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라여, 그는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하면서 그와 같이 했기 때문이다.”
15.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참으로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협곡이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하면, 나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협곡이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가 거기서 혼자 은둔하여 머물 때 스승도 그를 경책하지 않고,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도 검증을 해 보고서 경책하지 않고, 신들도 경책하지 않고, 그 자신도 자신을 경책하지 않는다.
스승의 경책을 받지 않고 지혜로운 동료 수행자들의 경책을 받지 않고 신들의 경책을 받지 않고 그 자신이 자신의 경책을 받지 않았기에, 그는 인간의 법을 초월했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지와 견의 특별함을 실현한다.”
16. “그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였기 때문이다.”
17. “밧달리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밧달리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온하게 머물고, 마음챙기고 알아차리며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온하고 마음챙기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밧달리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온으로 인해 마음챙김이 청정한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18.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낼 수 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19.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 가고 나쁜 곳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이처럼 그는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녹을 완전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20.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은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들은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21.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그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밧달리여, 스승의 교법에서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기 때문이다.”
22. 이와 같이 말씀하셨을 때 밧달리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로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훈계하여 대중공사(승가의 중요한 일을 대중이 모여서 확정하는 회합)를 합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로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훈계하여 대중공사를 하지 않습니까?
23.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상습적으로 계를 범하고 아주 많은 계를 범한다.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고, 화제를 돌려버리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불만을 드러내며,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아서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지 못하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렇게 [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상습적으로 계를 범하고 아주 많은 계를 범합니다.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고, 화제를 돌려버리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불만을 드러내며,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아서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지 못하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존자들이 이 대중공사가 너무 빨리 마무리되지 않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 대중공사가 너무 빨리 마무리되지 않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한다.”
24.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상습적으로 계를 범하고 아주 많은 계를 범한다. 그러나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지 않고, 화제를 돌리지 않고,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며,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여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상습적으로 계를 범하고 아주 많은 계를 범합니다. 그러나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지 않고, 화제를 돌리지 않고,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며,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여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존자들이 이 대중공사가 빨리 마무리되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 대중공사가 빨리 마무리되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한다.”
25.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우발적으로 계를 범하고 많은 계를 범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고, 화제를 돌려버리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불만을 드러내며,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아서 그 [계를 범한 것에서]사면을 얻지 못하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는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렇게 [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우발적으로 계를 범하고 많은 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고, 화제를 돌려버리고, 화를 내고 분노하고 불만을 드러내며, 바르게 고치지 않고 순응하지 않아서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지 못하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존자들이 이 대중공사가 너무 빨리 마무리되지 않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을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 대중공사가 너무 빨리 마무리되지 않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한다.”
26.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우발적으로 계를 범하고 많은 계를 범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지 않고, 화제를 돌리지 않고,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며,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여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렇게 [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우발적으로 계를 범하고 많은 계를 범하지 않습니다. 그는 비구들로부터 책망을 받으면 얼버무려 넘기지 않고, 화제를 돌리지 않고, 화를 내거나 분노하거나 불만을 드러내지 않으며, 바르게 고치고 순응하여 그 [계를 범한 것에서] 사면을 얻고, ‘승가가 흡족하도록 행하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존자들이 대중공사가 빨리 마무리되도록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밧달리여, 그러면 비구들은 이 대중공사가 빨리 마무리되도녹 그렇게 이 비구에 대해 심문한다.”
27. “밧달리여, 여기 어떤 비구는 단순한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문다. 밧달리여, 이 경우에 비구들은 이렇게 [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단순한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비구에게 거듭 훈계하여 대중공사를 하더라도 그 비구가 단순한 믿음과 공경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밧달리여, 예를 들어 애꾸눈인 사람이 있다 하자. 그의 친구와 동료들과 일가친척들은 ‘나머지 한 눈마저 잃어버려서는 안된다.’라고 하면서 그 외눈을 보호할 것이다. 밧달리여, 그와 같이 여기 어떤 비구가 단순한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물 때, 비구들에게 이렇게 [의논할 것이다.]
“도반들이여, 이 비구는 단순한 믿음과 공경만으로 머뭅니다. 만일 우리가 이 비구에게 거듭 훈계하여 대중공사를 하더라도 그 비구가 단순한 믿음과 공경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28. “밧달리여, 이런 이유와 이런 조건 때문에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훈계하여 대중공사를 한다. 밧달리여, 이런 원인과 이런 이유로 어떤 비구에게는 거듭 훈계하여 대중공사를 하지 않는다.”
29.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로 이전에는 더 적은 학습계목으로 더 많은 비구들이 구경의 지혜를 성취했습니까? 세존이시여, 무슨 원인과 무슨 이유로 지금은 더 많은 학습계목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적은 비구들이 구경의 지혜를 성취합니까?”
30. “밧달리여, 그것은 이와 같다. 중생들이 그 근기가 약하고 정법이 사라질 때에는 더 많은 학습계목이 있고 더 적은 비구들이 구경의 지혜를 성취한다. 밧달리여, 스승은 번뇌 거리가 되는 어떤 사건들이 승가에 나타나기 전에는 제자들을 위한 학습계목을 제정하지 않는다. 밧달리여, 그러나 어떤 번뇌 거리들이 승가에 나타나면 스승은 그 번뇌 거리들을 물리치기 위해 제자들을 위한 학습계목을 제정한다.”
31. “밧달리여, 승가의 규모가 커지지 않는 한, 어떤 번뇌 거리들이 승가에 나타나지 않는다. 승가의 규모가 커지면 어떤 번뇌 거리들이 승가에 나타난다. 그러면 스승은 제자들을 위한 학습계목을 제정하나니 그 번뇌 거리들을 물리치기 위해서이다.
밧달리여, 승가가 이득의 절정에 이르지 않는 한, … 명성의 절정에 이르지 않는 한, … 많이 배우지 않는 한, … 오래되지 않는 한, 번뇌 거리들이 승가에 나타나지 않는다. 승가가 오래 되면 번뇌 거리들이 승가에 나타난다. 그러면 스승은 제자들을 위한 학습계목을 제정하나니 그 번뇌 거리들을 물리치기 위해서이다.”
32. “밧달리여, 내가 어린 준마에 대한 비유로 법문을 설할 때에 너희들 몇 명이 거기에 있었다. 밧달리여, 그대는 그것을 기억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밧달리여, 그것이 무엇 때문이라고 생각하는가?”
“세존이시여, 제가 스승의 교법에서 오랫동안 학습계목을 완전하게 실천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밧달리여, 이것만이 원인이 아니고 이것만이 이유가 아니다. 밧달리여, 나는 오랫동안 내 마음으로 그대의 마음에 대하여 알고 있다.
‘이 쓸모없는 인간은 내가 법을 설하더라도 뜻을 파악하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온 마음으로 몰두하고 경청하지 않는구나/’라고. 밧달리여, 그렇더라도 이제 나는 어린 준마의 비유로 법문을 설하리라. 그것을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밧달리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3. “밧달리여, 예를 들면 능숙한 조련사는 쌩쌩한 준마를 얻으면 먼저 그 말이 입에 재갈을 무는 일에 익숙하게 한다. 그 말이 재갈을 무는 훈련을 받으면, 그 말이 이전에 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틀고 안절부절하고 몸부림치지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점차적으로 숙달되어 마침내 그것에 유순해진다.
밧달리여, 그 쌩쌩한 준마가 끊임없이 반복하고 점차적으로 숙달되어 그것에 유순해지면 능숙한 조련사는 그 말이 다시 마구를 차는 일에 익숙하게 한다. 그 말이 마구를 차는 훈련을 받으면, 그 말은 이전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틀고 안절부절하고 몸부림치지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점차적으로 숙달되어 마침내 그것에 유순해진다.
밧달리여, 그 쌩쌩한 준마가 끊임없이 반복하고 점차적으로 숙달되어 그것에 유순해지면 능숙한 조련사는 그가 다시 [일격으로 네발을] 동시에 들고 놓으며, [땅바닥에 떨어진 무기를 주을 수 있도록] 둥글게 돌고, [소리를 내지 않도록] 발굽 끝으로 가고, 전력질주하고, [소리를 두려워 않고 적을 향해] 돌진하고, 왕다운 자질을 가지고, 왕다운 묘기를 가지고, 최상의 속력과 최상의 움직임과 최상의 조련에 익숙하게 한다. 그 말은 최상의 속력과 최상의 움직임과 최상의 조련을 거치는 훈련을 받으면, 그 말은 이전에 해본 적이 없기 때문에 비틀고 안절부절하고 몸부림치지만 끊임없이 반복하고 점차적으로 숙달되어 마침내 그것에 유순해진다.
밧달리여, 그 쌩쌩한 준마가 끊임없이 반복하고 점차저그로 숙달되어 그것에 유순해지면 능숙한 조련사는 최고로 꾸며주고 돌보아주는 보답을 한다. 밧달리여, 이들 열 가지 요소들을 구족한 어린 준마는 왕에게 어울리고 왕을 섬길 수 있으며 왕의 수족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34. “밧달리여, 이와 같이 열 가지 법들을 구족한 비구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무엇이 열 가지인가?
밧달리여, 여기 비구는 무학의 바른 견해를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사유를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말을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행위를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생계를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정진을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마음챙김을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삼매를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지혜를 구족한다. 무학의 바른 해탈을 구족한다.
밧달리여, 이와 같은 열 가지 법들을 구족한 비구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밧달리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밧달리 경(M65)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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