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67. 짜뚜마 경(Cātum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8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짜뚜마718)아말라끼 숲에 머무셨다.

 

718) 주석서는 짜뚜마(Cātumā)에 대해서이런 이름을 가진 마을(gāma)이다.” (MA.ili.172)라고만 설명하고 있다. 본경 §6에 의하면 짜뚜마는 석가족들이 사는 마을이다.

 

2. 그 즈음에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의 비구들이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 짜뚜마에 도착했다. 719)

새로 도착한 방문객 비구들은 그곳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720)과 더불어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721)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722)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었다.

 

719) “이들은 갓 출가한(adhunā pabbajitā) 오백 명의 비구들이다. 두 장로는 '이 선남자들은 열 가지 힘[十力, dasa-bala]을 갖추신 세존을 아직 친견하지 못한 채(adisvā) 출가했다. 이들에게 세존을 친견하게 하리라. 세존을 뵙고 면전에서 법문을 들으면 각자 자신이 강하게 의지하는 것에 따라 (yathā-upanissayena) 굳건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들을 데리고 세존을 찾아갔다.”(MA.iii.172)

720) 여기서 '방문객 비구들' āgantukā bhiklkthū를 옮긴 것이고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 nevāsikā bhilkkhū를 옮긴 것이다.

비슷한 표현이 『앙굿따라 니까야』 제3권 「소임승 경」(A5:231) āvāsika nevāsika로 나타나고 있다. 전자는 '소임승'으로 옮겼고 후자는 '거주승'으로 옮겼다. 여기에 대해서는 「소임승 경」 (A5:231)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721)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senāsanāni paññāpayamānā)'라는 것은 자기의 스승과 은사(ācary-upajjhāyā)가 머물 곳을 물은 뒤 문과 창문을 열고 잠자리와 좌구를 밖으로 옮겨 먼지를 털어서 본래 있던 곳으로 정리를 하는 것이다.” (MA.ii.173)

722) “발우(patta)와 가사(cīvara)와 컵(thālaka)과 물병(udaka-tumba)과 작은 지팡이(kaṭṭara-yatthi) 같은 사문의 자구(資具, samaa-parikkhāra) 를 잘 정리해서 두는 것이다.” (MA.iii.173)

 

2.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그런데 이들은 누구인데 이렇게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가?

꼭 어부가 물고기들을 끌어올릴 때와 같구나.”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는 오백 명의 비구들이

세존을 뵈러 짜뚜마에 도착했습니다.

그들 방문객 비구들은 이곳에 이미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과 더불어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고 있습니다.”

 

4. “아난다여, 그렇다면 내 말이라 전하고 그 비구들을 불러오라.

'존자들이여, 스승께서 그대들을 부르십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하고 그 비구들을 만나러 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스승께서 그대들을 부르십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그 비구들은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런데 왜 그대들은 이렇게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드는가?

꼭 어부가 물고기들을 끌어올릴 때와 같구나.”

세존이시여, 저희 오백 명의 비구들은 사리뿟따와 목갈라나를 상수로 하여

세존을 뵈러 짜뚜마에 도착했습니다.

저희들은 여기 거주하고 있는 비구들과 더불어 서로 담소를 나누고, 잠자리와 좌구를 준비하고, 발우와 가사를 정리하면서 큰 소리로 시끄럽게 떠들었습니다.”

 

5. “비구들이여, 물러가라. 나는 그대들을 내쫓는다. 그대들은 나와 함께 머물 수 없다.”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침구와 좌구를 정리하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떠났다.

 

6. 그때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어떤 일 때문에 집회소에 모여 있었다.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멀리서 그 비구들이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서는 그 비구들을 만나러 갔다. 가서는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은 어디로 떠나십니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 비구 승가를 내치셨습니다.”

그러시다면 존자들께서는 잠시만 앉아계십시오.

아마도 저희들이 세존께서 신뢰를 회복하도록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겠습니다, 도반들이여.”라고 그 비구들은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에게 대답했다.

 

7. 그러자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72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이전에 비구 승가를 섭수하셨듯이 지금의 비구 승가를 섭수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723) 이하 본경에 나타나는 이 일화는 『상윳따 니까야』제3권 「걸식 경」(S22: 80) §2 이하에 나타나는 것과 비슷하다. 그곳에는 짜뚜마의 석가족들이 본 경의 이곳처럼 세존께 권청하는 것이 아니라 세존께서 스스로 사유를 하시고 그 뒤에 사함빠띠 범천이 세존께 권청을 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달라지고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 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막 태어난 어린 송아지가 어미를 보지 못하면 달라지고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이전에 비구 승가를 섭수하셨듯이 지금의 비구 승가를 섭수해주소서.”

 

8. 그러자 사함빠띠 범천724)이 자기의 마음으로 세존의 마음속 생각을 알고서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재빨리 범천의 세상에서 사라져 세존 앞에 나타났다.725)

그때 사함빠띠 범천은 한쪽 어깨가 드러나게 윗옷을 입고서 세존을 향해 합장하고 이렇게 말했다.

 

724) 사함빠띠 범천(brahmā Sahampati)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성스러운 구함 경」 (M26) §20의 주해를 참조할 것.

725) 이하 본경 §§8~9에 나타나는 일화는 『상윳따 니까야』 제3권 「걸식 경」(S22:80) §4와 유사하다.

 

9.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 서는 마치 이전에 비구 승가를 섭수하셨듯이 지금의 비구 승가를 섭 수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어린 씨앗이 물을 얻지 못하면 달라지고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막 태어난 어린 송아지가 어미를 보지 못하면 달라지고 변하는 것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그와 같이 여기에는 갓 출가하여 근래에 이 법과 율에 입문한 신참 비구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세존을 친견할 기회를 얻지 못하면 다른 생각을 품게 되고 변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기쁘게 해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반겨주소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마치 이전에 비구 승가를 섭수하셨듯이

지금의 비구 승가를 섭수해주소서.”

 

10. 짜뚜마에 사는 사까족들과 사함빠띠 범천은 씨앗의 비유와 송아지의 비유로

세존께서 신뢰를 회복하도록 할 수 있었다.

 

11. 그러자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들이여, 일어나십시오. 발우와 가사를 수하십시오.

짜뚜마에 사는 사꺄족들과 사함빠띠 범천이 씨앗과 송아지의 비유로 [간청을 드리자]

세존께서는 신뢰를 회복하셨습니다.” 726)

 

726) “목갈라나 존자는 그곳에 남아 있었지만 천안(dibba-cakkhu)으로 범천이 가는 것을 보았고, 천이계(天耳界, 天耳通, dibbā sota-dhātu)로 간청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타심통(cetopariya-ñāa)으로 세존께서 신뢰를 회복하신 것도 알았다. 그러므로 '어떤 비구를 보내어 부를 때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스승께서 사람을 보내기 전에 가야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께서는 신뢰를 회복하셨다.'라고 말한 것이다.” (MA.iii.175)

 

12. “그러겠습니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대답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사리뿌따 존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내가 비구 승가를 내칠 때 그대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내치시는구나.

세존께서는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무실 것이다.

우리도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물러야겠다.'727)

그만하라, 사리뿟따여. 그만하라, 사리뿟따여.

사리뿟따여, 그대는 다시는 그런 마음을 일으키지 마라.” 728)

 

727) “우리도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물러야겠다.(mayampi dāni appossukkā dițțhadhammasukhavihāra anuyuttā viharissāma).'라고 하였다. 이것은 '세존께서는 이제 다른 일에 대해 일체 관심을 두지 않고, 과의 증득(phala-samāpatti)에 몰입하여 머물고자 하시나보다. 스승께서는 이제 자신이 하시고 싶은 대로 머무실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훈계하는 것에서 벗어났다(nikkaḍḍhitā), 남에게 훈계(parovāda)를 해서 무엇하겠는가? 이제 우리도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리라.'라는 것을 드러낸 것이다.”(MA.ii.175~176)

728) “장로는 이 경우에 실수(viraddha)하여 자기의 책임(bhāra-bhāva)을 알아차리지를 못했다. 이 비구 승가는 두 분의 큰 장로에게 책임(bhāra)이 있었기 때문에 세존께서 그에게 '그만하라.'라고 말문을 닫게 하셨다. 그러나 목갈라나 장로는 자신의 책임을 알아차리고 있었기 때문에 세존께서 그를 칭찬하신 것이다.”(MA.iii.176)

 

13. 그러자 세존께서는 마하목갈라나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목갈라나여, 내가 비구 승가를 내칠 때 그대에게 어떤 생각이 들었는가?”

세존이시여, 제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를 내치시는구나.

세존께서는 이제 무심히 지금 · 여기에서의 행복한 삶에 열중하여 머무실 것이다.

나와 사리뿟따 존자가 비구 승가를 돌보아야겠다.”

장하구나. 장하구나, 목갈라나여.

목갈라나여, 참으로 내가 비구 승가를 돌보아야 하고

아니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가 그렇게 해야 한다.”

 

14. 그리고 나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729)

비구들이여, 물속에 들어가는 자들에게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예상된다.

무엇이 넷인가?

파도에 대한 두려움과 악어에 대한 두려움과

소용돌이에 대한 두려움과 상어에 대한 두려움이다. 730)

비구들이여, 물속에 들어가는 자들에게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예상 된다.”

 

729) 이하 본경의 마지막까지는 『앙굿따라 니까야』제2권 「파도 경」(A4:122) 전체와 동일하다.

730) 비슷한 표현이 『상윳따 니까야』 제4권 「바다 경」1(S35:228) §4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도깨비가 있는 눈의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라고 언급되고 있다. 여기서는 육근이 육경의 흐름을 견디는 것을 두고 파도와 소용돌이와 상어와 도깨비가 있는 육경의 바다를 건넜다고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한편 『쿳다까 니까야』의 『여시어경』(It.114)에 의하면 '파도(ūmi)'는 분노와 절망(kodh-upāyāsa), '소용돌이(āvaṭṭa)'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상어와 도깨비(gāha-rakkhasa)'는 여인들을 뜻한다고 나타난다. 본 경에서 상어는 susukā로 나타나고 있다.

 

15.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집을 나와 이 법과 율에 출가한 사람에게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예상된다. 무엇이 넷인가?

파도에 대한 두려움과 악어에 대한 두려움과 소용돌이에 대한 두려움과 상어에 대한 두려움이다.”

 

1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파도에 대한 두려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은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이렇게 출가한 그를 청정범행을 닦는 동료 수행자들은 가르치고 훈계한다.

 

'그대는 앞으로 볼 때는 이와 같이 해야 하고, 뒤로 돌아볼 때는 이와 같이 해야 하고,

구부릴 때는 이와 같이 해야 하고, 펼 때는 이와 같이 해야 하고,

가사와 발우와 의복을 수할 때는 이와 같이 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는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고 훈계했다.

그러나 이제 아들뻘이 되어 보이고 손자뻘이 되어 보이는 이 [비구들이]

우리에게 가르치고 훈계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구나.'

 

그는 화가 나서 가르침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 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파도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파도에 대한 두려움이란 분노에 따른 절망을 두고 한 말이다.”

 

17.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악어에 대한 두려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은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이렇게 출가한 그를 동료 수행자들은 가르치고 훈계한다.

 

'그대는 이것을 씹을 수 있고, 이것은 씹으면 안 됩니다.

그대는 이 것을 먹을 수 있고, 이것은 먹으면 안 됩니다.

그대는 이것을 맛볼 수 있고, 이것을 맛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이것을 마실 수 있고, 이 것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허락된 것만을 씹을 수 있고, 허락 되지 않은 것을 씹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허락된 것만을 먹을 수 있고, 허락되지 않은 것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허락된 것만을 맛볼 수 있고, 허락되지 않은 것을 맛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허락된 것만을 마실 수 있고, 허락되지 않은 것을 마셔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바른 때에 씹어야 하고, 때 아닌 때에 씹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바른 때에 먹어야 하고, 때 아닌 때에 먹어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바른 때에 맛보아야 하고, 때 아닌 때에 맛보아서는 안 됩니다.

그대는 바른 때에 마셔야 하고, 때 아닌 때에 마셔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전에 재가자였을 때는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씹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먹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맛보았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건 마셨다.

우리는 허락된 것도 씹었고 허락되지 않은 것 도 씹었다.

우리는 허락된 것도 먹었고 허락되지 않은 것도 먹었다.

우리는 허락된 것도 맛보았고 허락되지 않은 것도 맛보았다.

우리는 허락된 것도 마셨고 허락되지 않은 것도 마셨다.

우리는 제때에도 씹었고 때 아닌 때에도 씹었다. 우리는 제때에도 먹었고 때 아닌 때에도 먹었다. 우리는 제때에도 맛보았고 때 아닌 때에도 맛보았다.

우리는 제때에도 마셨고 때 아닌 때에도 마셨다.

신심 깊은 장자들이 우리들에게 한낮의 때 아닌 때에 맛있는 여러 음식을 공양 올리는데

[비구들은] 우리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것 같구나.'

그는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악어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악어에 대한 두려움이란 게걸스러움을 두고 한 말이다.

 

18.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소용돌이에 대한 두려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은 믿음으로 집을 나와서 출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그는 이렇게 출가하여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마을이나 성읍으로 탁발을 간다.

그러나 그의 은 보호되지 않았고 도 보호되지 않았고 마음챙김도 확립되지 않았고

감각기능들도 제대로 단속되지 않았다.

그는 거기서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기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러면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전에 재가자였을 때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갖추고 완비하여 즐겼다. 우리 가문은 재물이 풍족하다. 나는 재물을 즐기고 공덕을 지을 수도 있다.'

그는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소용돌이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소용돌이에 대한 두려움이란 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들을 두고 한 말이다.

 

19.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상어에 대한 두려움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좋은 가문의 아들은 믿음으로 집을 나와서 출가하여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과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절망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짓눌렸다. 괴로움에 압도되었다.

이제 참으로 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의 끝을 꿰뚫어 알아야겠다.'

 

그는 이렇게 출가하여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마을이나 성읍으로 탁발을 간다.

그러나 그의 은 보호되지 않았고 도 보호되지 않았고 마음챙김도 확립되지 않았고 감각기능들도 제대로 단속되지 않았다.

그는 거기서 제대로 몸을 감싸지도 않고 제대로 옷을 입지 않은 여인을 본다.

제대로 몸을 감싸지도 않고 제대로 옷을 입지 않은 그런 여인을 보고서 마음이 애욕에 물든다.

그는 애욕에 물든 마음으로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상어에 대한 두려움에 질려 공부지음을 버리고

낮은 [재가자의] 삶으로 되돌아간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상어에 대한 두려움이란 여인을 두고 한 말이다.”

 

20. “비구들이여, 집을 나와서 이 법과 율에 출가한 사람에게는 이런 네 가지 두려움이 예상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짜뚜마 경(M67)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