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억해야 함 경1
- 기억해야 함 경2
- 자애 경
- 복됨 경
- 고통스러움 경
- 나꿀라 경
- 잠경
- 물고기 경
-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1
-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2
기억해야 함 경1(A6:11) Sāraṇīya-sutta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은 기억해야 한다. 무엇이 여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서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 법을 기억해야한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서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 법도 기억해야 한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서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 법도 기억해야 한다.”
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답게 얻은 법다운 것들은 비록 발우 안에 담긴 것일지라도
그렇게 얻은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며21)
계를 잘 지키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한다. 이 법도 기억해야 한다.”
21)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는 자(appaṭivibhatta-bhogī)'라 했다. 두 종류의 나눔이 있다. 물질(āmisa)을 나눔과 사람(puggala)을 나눔이다. 이중에서 '이 만큼만 주어야지, 이 만큼은 주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나누어주는 것은 물질을 나누는 것이다. '이 사람에게는 주어야지, 이 사람에게는 주지 말아야지'라는 마음으로 나누어주는 것은 사람을 나누는 것이다. 이 둘 가운데 어느 것도 하지 않고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는 사람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는 자라 한다.”(AA.iii.340)
6.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 들러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들을
그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 법도 기억해야 한다.”
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를 그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 법도 기억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은 기억해야 한다.”
기억해야 함 경2(A6:12)23)
23) 『디가 니까야』제3권 「합송경」 (D33) §2.2(14)와 『맛지마 니까야』「고삼비 경」 (M48) §6에도 나타난다.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법을 기억해야 하나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무엇이 여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서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서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법답게 얻은 법다운 것들은 비록 발우 안에 담긴 것일지라도
그렇게 얻은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며,
계를 잘 지키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 들러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들을 그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6.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를 그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법을 기억해야 하나니 그것은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하나가 되게 한다.”
자애 경(A6:13)24) Metta-sutta
24) 6차결집본의 경제목은 '벗어남'(Nissāraṇīya-sutta)이다. 본경은 『디가 니까야』제3권 「합송경」 (D33) §2.2 (17)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와 같은 내용이다.
1.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가 있다. 무엇이 여섯인가?”
2.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습니다만,
여전히 악의가 나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뭅니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들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음에도,
악의가 그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악의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입니다.'라고.”
3.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悲心解脫]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습니다만,
여전히 잔인함이 나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뭅니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들이여,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음에도,
잔인함이 그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잔인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입니다.'라고.”
4.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喜心解脫]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습니다만,
여전히 따분함이 나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뭅니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들이여,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음에도,
따분함이 그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따분함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입니다.'라고.”
5.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捨心解脫]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습니다만,
여전히 애욕이 나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뭅니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들이여,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음에도,
애욕이 그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애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평온을 통한 마음의 해탈입니다.'라고.”
6.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25)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습니다만,
여전히 나의 마음은 표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들이여,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였음에도,
그의 마음이 표상을 기억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모든 표상들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입니다.'라고.”
25)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animittā cetovimutti)'은 강한 위빳사나(balava-vipassanā)를 뜻한다. 그러나 『디가 니까야』를 암송하는 자들은 아라한과의 증득을 뜻한다고 설명한다. 이것은 탐욕의 표상 등과 형상의 표상 등과 항상함[常] 등의 표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표상 없음(animitta)이라고 한다.”(AA.iii.347)
7.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말하기를
'나에게는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이] 없어졌으며 '이 내가 있다.'26)라고 보지도 않습니다.
그런데도 나에게는 의심의 화살이 나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뭅니다.'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말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세존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도반들이여, 내가 있다는 [자아의식이] 없어졌으며 '이 내가 있다.'라고 보지 않는데도, 의심의 화살이 그의 마음에 침입하여 머문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런 경우는 없습니다.
도반들이여, 이것은 의심의 화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니
그것은 바로 내가 있다는 자만을 뿌리 뽑는 것입니다.'라고,
26) “'내가 있다.(asmi)'는 것은 내가 있다는 자만(asmimāna)이다. '이 내가있다.(ayam ahamasmi)'는 것은 다섯 가지 무더기를[五蘊]을 두고 '이것이 참으로 내가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내가 있다는 자만이 없는 것과 이 내가 있다고 보지도 않는 것으로 아라한을 설한 것이다.”(Ibid) 즉, 아라한이 되었음에도 의심의 화살이 마음에 침입하여 머문다라고 비구가 말한 것이고, 그런 경우란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여섯 가지 벗어남의 요소가 있다.”
복됨 경(A6:14) Bhaddaka-sutta
1. 거기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 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2. “도반들이여,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복되게 죽지 못하고27)
복되게 임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복되게 죽지 못하고
복되게 임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삽니까?”
27) “복'되게 죽지 못한다.(na bhaddalkaṃ maraṇaṃ hoti)'는 것은 두려움에 떨면서 죽는 것을 뜻하고, 지옥에 재생연결식을 받는 자는 복되게 임종하지 못한다는 뜻이다.”(AA.iii.348)
3.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고 [잡다한] 일하기를 즐기고
[잡다한] 일을 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즐기고 말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잠자기를 좋아하고 잠자기를 즐기고 잠자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무리짓기를 좋아하고 무리 짓기를 즐기고 무리 짓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교제하기를 좋아하고 교제하기를 즐기고 교제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사량분별28)을 좋아하고 사량분별을 즐기고 사량분별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복되게 죽지 못하고
복되게 임종하지 못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有身, 五取蘊]29)을 즐겼을 뿐,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불변하는] 자기존재가 있음을 버리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28) “'사량분별(papañca)'이란 갈애(taṇhā), 사견(diṭṭhi), 자만(māna)을 통해 일어나서 취하는(madana) 형태로 자리 잡은 오염원(kilesa)의 사랑분별을 뜻한다.”(AA.iii.348)
29) “여기서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sakkāya)'이란 삼계 윤회(tebhūmaka-vaṭṭa)를 뜻한다.” (Ibid)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有身]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사자 경」(A4:33)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4. “도반들이여,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복되게 죽고 복되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복되게 죽고
복되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까?”
5.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잡다한] 일하기를 즐기지 않고
[잡다한] 일을 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하기를 즐기지 않고 말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잠자기를 좋아하지 않고 잠자기를 즐기지 않고 잠자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리 짓기를 즐기지 않고
무리 짓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교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교제하기를 즐기지 않고
교제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사량분별을 좋아하지 않고 사량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분별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복되게 죽고
복되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열반을 즐거워하고,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버렸다.'라고 합니다.”
6. “사량분별에 몰두하고 사량분별을 즐기는 어리석은 자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얻지 못하리.
사량분별을 버리고 사량분별 없는 경지30)를 좋아하는 자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성취하리.”
30) “'사랑분별 없는 경지(nippapañca-pada)'란 열반의 경지(nibbāna-pada)를 말한다.”(Ibid)
고통스러움 경(A6:15) Anutappiya-sutta
1. 거기서 사리뿟따 존자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불렀다.
“도반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사리뿟따 존자에게 응답했다. 사리뿟따존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들이여,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고통스럽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고통스럽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까?”
2.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고 [잡다한] 일하기를 즐기고
[잡다한] 일을 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말하기를 좋아하고 말하기를 즐기고 말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잠자기를 좋아하고 잠자기를 즐기고 잠자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무리짓기를 좋아하고 무리 짓기를 즐기고 무리 짓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교제하기를 좋아하고 교제하기를 즐기고 교제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사량분별을 좋아하고 사량분별을 즐기고 사량분별하는 즐거움에 몰두합니다.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고통스럽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有身, 五取蘊]을 즐겼을 뿐,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버리지 않았다.'라고 합니다.”
3. “도반들이여,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고통스럽지 않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고통스럽지 않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까?”
4. “도반들이여, 여기 비구는
[잡다한] 일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잡다한] 일하기를 즐기지 않고
[잡다한] 일을 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말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말하기를 즐기지 않고 말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잠자기를 좋아하지 않고 잠자기를 즐기지 않고 잠자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무리 짓기를 좋아하지 않고 무리 짓기를 즐기지 않고
무리 짓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교제하기를 좋아하지 않고 교제하기를 즐기지 않고
교제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사량분별을 좋아하지 않고 사량분별을 즐기지 않고
사량분별하는 즐거움에 몰두하지 않습니다.
도반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가 삶을 영위하면 할수록 고통스럽지 않게 임종하는 그런 삶을 삽니다.
도반들이여, 이를 일러 '비구는 열반을 즐거워하고,
괴로움을 종식시키기 위해서 [불변하는] 자기 존재가 있음을 버렸다.'라고 합니다.”
5. “사량분별에 몰두하고 사량분별을 즐기는 어리석은 자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얻지 못하리.
사량분별을 버리고 사량분별 없는 경지를 좋아하는 자
위없는 유가안은인 열반을 성취하리.”
나꿀라 경(A6:16)31) Nakula-sutta
31) 6차결집본의 경제목은 '나꿀라삐따'(Nakulapitā-sutta)이다.
1. 한때 세존께서는 박가에서 숨수마라기리의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 머무셨다.
그때 나꿀라삐따 장자32)가 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러자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가 나꿀라삐따 장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2) 박가(Bhagga)와 숨수마라기리(Suṃsumāra-giri, 악어산)와 베사깔라 숲(Bhesakalā-vana)과 나꿀라삐따(Nakulapitā, 나꿀라의 아버지) 장자와 나꿀라마따(Nakulamātā, 나꿀라의 어머니)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어울리는 삶 경」 1 (A4:55)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2. “장자여, 애착을 가지고33)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장자여, 아마 당신은 '내가 가고나면 내 아내 나꿀라 어미가
아이들을 양육하고 집안일을 돌볼 수 없을 것인데.'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저는 솜을 타고 [양털을] 땋는데34) 능숙합니다.
장자여, 당신이 가신 뒤에도 아이들을 양육하고 집안일을 돌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애착을 가지고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33) “'애착을 가짐(sāpekkha)'이란 갈애를 가짐(sataṇha)이다.”(AA.iii.349)
34) '[양털을] 땋는 데'는 veṇiṃ olikhituṃ(땋은 머리를 만드는)을 풀어서 옮긴 것이다. 주석서에서 “양털(eḷaka-loma)을 정리하고 잘 풀어서 땋은 머리를 만드는 일”(AA.iii.349)이라고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자여, 아마 당신은 '내가 가고나면 내 아내 나꿀라 어미가
다른 집으로 [시집] 갈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당신과 내가 16년을 재가에서 순결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당신은 잘 압니다.
그러니 당신은 애착을 가지고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장자여, 아마 당신은 '내가 가고나면 내 아내 나꿀라 어미는 세존을 친견하고자 하지 않고 비구 승가를 친견하고자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저는 당신이 가신 뒤에 더욱더 세존을 친견하고자 할 것이고
비구 승가를 친견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러니 당신은 애착을 가지고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장자여, 아마 당신은 '내가 가고나면 내 아내 나꿀라 어미는
계를 원만히 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계를 성취한 흰옷 입은 재가 여신도들이 그분 세존 곁에 있는 한,
저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의심과 혼란이 있으면 지금 그분 세존 · 아라한 · 정등각께서 박가에서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계시니 그분 세존을 찾아뵙고 질문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애착을 가지고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장자여, 아마 당신은 '내가 가고나면 내 아내 나꿀라 어미는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은 흰옷 입은 재가 여신도들이 그분 세존 곁에 있는 한, 저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의심과 혼란이 있으면 지금 그분 세존 · 아라한 · 정등각께서 박가에서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계시니 그분 세존을 찾아뵙고 질문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애착을 가지고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장자여, 아마 당신은 '내가 가고나면 내 아내 나꿀라 어미는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지 못하고 확고함을 얻지 못하고 위안을 얻지 못하고 의심을 건너지 못하고 혼란을 제거하지 못하고 무외를 얻지 못하고 스스로를 의지하지 못하고 스승의 교법에서 머물지 못할지도 모른다.'라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장자여,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장자여,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고 확고함을 얻고 위안을 얻고 의심을 건너고 혼란을 제거하고 무외를 얻고 스스로를 의지하고 스승의 교법에 머무는 흰옷 입은 재가 여신도들이 그분 세존 곁에 있는 한, 저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누구든지 의심과 혼란이 있으면 지금 그분 세존 · 아라한 · 정등각께서 박가에서
베사깔라 숲에 있는 녹야원에 머물고 계시니 그분 세존을 찾아뵙고 질문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당신은 애착을 가지고 임종을 하지 마십시오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세존께서는 애착을 가지고 임종하는 것을 나무라셨습니다.”
3. 그때 나꿀라삐따 장자는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의 이러한 교계를 받은 뒤 바로 병이 진정되었다.
그러자 나꿀라삐따 장자는 그 병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그 병에서 완쾌되었다.
그때 나꿀라삐따 장자는 병실에서 나왔다.
병실에서 나온 지 오래지 않아서 지팡이를 짚고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나꿀라삐따 장자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장자여, 연민을 가졌고 이익을 바라고 교계하고 조언하는 나꿀라마따를 아내로 두다니 그것은 그대에게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이로다.
장자여, 계를 성취한 흰옷 입은 재가 여신도들이 내 곁에 있는 한,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장자여, 안으로 마음의 사마타를 얻은 흰옷 입은 재가 여신도들이 내 곁에 있는 한,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장자여, 이 법과 율에서 발판을 얻고 확고함을 얻고 위안을 얻고 의심을 건너고 혼란을 제거하고 무외를 얻고 스스로를 의지하고 스승의 교법에 머무는 흰옷 입은 재가 여신도들이 내 곁에 있는 한, 장자의 아내 나꿀라마따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장자여, 연민을 가졌고 이익을 바라고 교계하고 조언하는 나꿀라마따를 아내로 두다니
그것은 그대에게 참으로 이득이고, 참으로 큰 이득이로다.”
잠 경(A6:17)35) Soppa-sutta
35) PTS본의 품의 목록에는 본경에 해당하는 경제목이 없다. 역자는 6차결집본의 경제목을 따랐다.
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서 머무셨다.
그때 세존께서는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으심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소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사리따 존자도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소로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마하목갈라나 존자도 … 마하깟사빠 존자도 … 마하깟짜나 존자도 … 마하꼿티따 존자도 … 마하쭌다 존자도 … 마하깝삐나 존자도 … 아누룻다 존자도 … 레와따 존자도 … 아난다 존자도 해거름에 [낮 동안의] 홀로 앉음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나 집회소로 갔다.36)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본36) 경에 나타나는 여러 존자들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하나의 모음」의 「으뜸 품」(A1:14)의 해당 주해들을 참조할 것.
그때 세존께서는 밤의 대부분을 앉아서 보내신 뒤 자리에서 일어나 거처로 들어가셨다.
그 존자들도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거처로 갔다.
그러나 거기서 출가한지 얼마 되지 않고 근래에 이 법과 율에 들어온 신참 비구들은
해가 떴는데도 이가는 소리를 내면서37) 잠들어 있었다.
세존께서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그 비구들이 해가 떴는데도
이가는 소리를 내면서 잠자는 것을 보신 뒤 집회소로 가셨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셔서 세존께서는 그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37) '이 가는 소리를 내면서'는 kākacchamāna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깍깍 소리(kāka-sadda)를 내는 것인데 이빨을 가는 것(dante khādantā)(AA.iii.30) 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2. “비구들이여, 사리뿟따는 어디에 있는가?
마하목갈라나는 어디에 있는가?
마하깟사빠는 어디에 있는가?
마하깟짜나는 어디에 있는가?
마하꼿티따는 어디에 있는가?
마하쭌다는 어디에 있는가?
마하깝삐나는 어디에 있는가?
아누룻다는 어디에 있는가?
레와따는 어디에 있는가?
아난다는 어디에 있는가?
비구들이여, 이 장로 제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세존이시여, 그분 존자들도 세존께서 나가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자리에서 일어나
각자의 거처로 갔습니다.”
“그렇다고 그대들이 장로들인가?
신참 비구들이 해가 떴는데도 이가는 소리를 내면서 잠을 자다니!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관정(灌頂)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사뜨리야 왕이 맘껏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면서 죽을 때까지 왕국을 통치할 때
백성들이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관정(願)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 맘껏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면서 죽을 때까지 왕국을 통치할 때 백성들이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지방 영주가 … 세습 직위를 누리는 자가 … 군대의 대장군이 … 촌장이 … 조합장이 맘껏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면서 죽을 때까지 조합을 관리할 때에
조합원들이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지방 영주가 … 세습직위를 누리는 자가 … 군대의 대장군이 … 촌장이 조합장이 맘껏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면서 죽을 때까지 조합을 관리할 때 조합원들이 사랑하고 마음에 들어 한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사문이나 바라문이 맘껏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면서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하고, 깨어있음에 전념하지 못하고,
유익한 법[善法]들을 찾지 않고38) 밤낮으로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菩提分法]들을 수행하는데 몰두하지 않는데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사문이나 바라문이 맘껏 잠자는 즐거움, 기대는 즐거움,
꾸벅꾸벅 조는 즐거움에 빠져 지내면서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지 않고,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지 못하고, 깨어있음에 전념하지 못하고, 유익한 법[善法]들을 찾지 않고 밤낮으로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菩提分法]들을 수행하는 데에 몰두하지 않는데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문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38) '유익한 법[善法]들을 찾지 않고'로 옮긴 원문은 avipassako kusalānaṃ dhammānaṃ인데 '유익한 법들에 대해서 위빳사나를 닦지 않고'로 직역할 수 있다. 그러나 주석서는 이 문맥에서 avipassaka를 '찾지 않는 자(anesaka, agavesaka)'로 설명하고 있어서(AA.iii.351) 이렇게 옮겼다.
3.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리라.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리라.
깨어있음에 전념하리라.
유익한 법[善法]들을 찾으리라.
밤낮으로 깨달음의 편에 있는 법[菩提分法]들을 수행하는데 몰두하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물고기 경(A6:18)39) Maccha-sutta
39) 6차결집본의 경제목은 '그물로 물고기를 잡음'(Macchabandha-sutta)이다.
1. 한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 [지방]에서 유행(遊行)하셨다.
세존께서는 대로를 따라 걷고 계시다가 어느 지역에서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계속해서 낚아서 팔고 있는 것을 보셨다.
그것을 보시고 길을 벗어나 어떤 나무아래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아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저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계속해서 낚아서 팔고 있는 것을 보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계속해서 낚아서 팔아 이러한 업과 이러한 생계 수단으로 코끼리를 타고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거나 재물을 즐기거나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산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어부가 그물로 물고기를 계속해서 낚아서 팔아 이러한 업과 이러한 생계 수단으로 코끼리를 타고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거나 재물을 즐기거나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산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죽어가고 죽음으로 내몰린 물고기들을 나쁜 마음으로40)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코끼리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말을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마차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수레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재물을 즐기지도 못하고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살지도 못한다.
40) “'나쁜 마음으로(papakena manasā)'란 죄받을(lāmaka) 살생의 마음으로라는 뜻이다.”(AA.iii,351)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백정이 소를 계속해서 잡아서 팔아 이러한 업과 이러한 생계 수단으로
코끼리를 타고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거나 재물을 즐기거나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산다.'라고 보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백정이 소를 계속해서 잡아서 팔아 이러한 업과 이러한 생계 수단으로 코끼리를 타고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거나 재물을 즐기거나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산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죽어가고 죽음으로 내몰린 소들을 나쁜 마음으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코끼리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말을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마차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수레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재물을 즐기지도 못하고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살지도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양을 도살하는 자가 … 돼지를 도살하는 자가 … 새를 잡는 자가 …
사슴을 잡는 자가 사슴을 계속해서 잡아서 팔아 이러한 업과 이러한 생계 수단으로
코끼리를 타고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거나 재물을 즐기거나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산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장하구나, 비구들이여. 나도 '양을 도살하는 자가 … 돼지를 도살하는 자가 … 새를 잡는 자가 … 사슴을 잡는 자가 사슴을 계속해서 잡아서 팔아 이러한 업과 이러한 생계 수단으로 코끼리를 타고 다니거나 말을 타고 다니거나 마차를 타고 다니거나 수레를 타고 다니거나 재물을 즐기거나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산다.'라고 보거나 들은 적이 없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비구들이여, 죽어가고 죽음으로 내몰린 사슴들을 나쁜 마음으로 쳐다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코끼리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말을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마차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수레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재물을 즐기지도 못하고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살지도 못한다.
비구들이여, 죽어가고 죽음으로 내몰린 동물들을 나쁜 마음으로 쳐다보는 자는
코끼리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말을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마차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수레를 타고 다니지도 못하고 재물을 즐기지도 못하고 많은 재물을 축적하면서 살지도 못한다.
그러니 죽어가고 죽음으로 내몰린 인간을 나쁜 마음으로 쳐다보는 것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에게는 오랜 세월을 해로움이 있고 괴로움이 있으며,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는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1(A6:19) Maraṇassati-sutta
1. 한때 세존께서는 나디까41)에서 벽돌집42)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1) 나디까(Nādika)는 『디가 니까야』 제2권 「대반열반경」(D16)에 의하면 꼬띠가마와 웨살리를 연결하는 대로변에 위치한 왓지(Vajjī)족의 마을이다. 『맛지마 니까야』「짧은 고싱가살라 경」 (M31)과 「긴 고싱가살라경」 (M32) 등을 통해서 보면 이 나디까의 고싱가살라 숲은 여러 유명한 장로들이 즐겨 수행하던 곳이었다. 그런 만큼 이 지역 사람들도 불교와 큰 인연이 있었으며 『디가 니까야』 제2권 「자나와사바 경」(D18)을 통해서 보듯이 과위를 증득한 신도들이 많이 배출되었다.
일찍부터 이 지명에 대해서는 나디까(Nādika)로도 전승되었고, 냐띠까(Ñātika, 본서 제5권 「산다 경」(A11:10) 참조)로도 전승되어 온 듯하다. 주석서들에서 각각 다른 해석을 하기 때문이다. 냐띠까는 친척(ñāti)들끼리 사는 마을로 설명되고, 나디까는 강(nadī)과 연관이 있는 이름으로 간주된다. 현재 인도 비하르주의 웨살리와 빠뜨나 사이의 강가(Gaṅgā) 강에 있는 나따까(Nātaka)라는 마을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42) 벽돌집으로 옮긴 원어는 giñjaka-āvasatha인데 주석서에서 iṭṭhakāmaya(벽돌로 만든) āvasatha(집)라고 설명하고 있다.(DA.ii.543) 그래서 '벽돌집'으로 옮겼다. 인도 유적지에서 흔히 보는 빨간 흙벽돌을 말한다. 『디가 니까야』 제2권 「자나와사바 경」(D18)과 『맛지마 니까야』 「짧은 고싱가살라 경」(M31) 등 몇몇 경들에도 이 나디까의 벽돌집이 나타나고 있다.
2.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아라.”
3.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하루 밤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4.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하루 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5.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한 번 밥 먹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6.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네다섯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7.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한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8. 그러자 또 다른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도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참으로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세존이시여, 저는 이렇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습니다.”
9.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하루 밤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하루 낮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한 번 밥 먹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네다섯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방일하게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둔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한 입의 음식을 씹어 삼키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
'참으로 나는 숨을 들이쉬었다가 내쉬는 시간밖에 살 수 없을지도 모른다.
세존의 교법을 마음에 잡도리하리라. 그러면 참으로 지은 것이 많을 것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러한 비구들을 일러 부지런히 살고,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예리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는다고 한다.”43)
43) 본 문단은 『청정도론』 VIII.36~37에서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설명하면서 인용되어 나타난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방일하지 않고 머무르리라. 번뇌를 멸하기 위하여
예리하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으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 경2(A6:20)
1. 한때 세존께서는 나디까에서 벽돌집에 머무셨다.
그곳에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떻게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공부] 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하는가?”
3.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날이 지고 밤이 돌아왔을 때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게 죽음을 가져올 여러 조건이 있다. 뱀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전갈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지네가 나를 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발부리가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먹은 음식이 탈이 날지도 모른다.
혹은 담즙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가래가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마치 칼처럼 [관절을 끊는] 바람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숙고해야 한다.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있다.' 라고 알게 되면
그는 그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옷이 불타고 머리가 불타는 자는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서 아주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그 비구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이 밤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없다'라고 알게 되면
그 비구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에 공부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 것이다.”
4.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밤이 지새고 낮이 돌아왔을 때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게 죽음을 가져올 여러 조건이 있다. 뱀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전갈이 나를 물지도 모른다. 혹은 지네가 나를 물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혹은 발부리가 걸려 넘어질지도 모른다. 혹은 내가 먹은 음식이 탈이 날지도 모른다.
혹은 담즙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가래가 성가시게 할지도 모르고,
마치 칼처럼 [관절을 끊는] 바람이 성가시게 할지도 모른다.
그것으로 인해 죽을지도 모르고, 그것이 나에게 장애가 될지도 모른다.
비구들이여, 그 비구는 이와 같이 숙고해야 한다.
'내가 오늘 낮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나에게 있는 것은 아닌가?'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오늘 낮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있다.'라고 알게 되면
그는 그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옷이 불타고 머리가 불타는 자는 옷이나 머리의 불을 끄기 위해서 아주 강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하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그 비구는 나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의욕과 노력과 관심과 분발과 불퇴전과 마음챙김과 알아차림을 행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자신을 반조하여서
'내가 오늘 낮에 죽게 되면 나에게 장애가 될,
아직 제거되지 않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나에게 없다.'라고 알게 되면
그 비구는 밤낮으로 유익한 법에 공부지으면서 희열과 환희로 머물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죽음에 대한 마음챙김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큰 결실과 큰 이익이 있고 불사(不死)에 들어가고 불사를 완성한다.”
제2장 기억해야 함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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