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35. 삿짜까 짧은 경 [Cūḷasaccak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5. 24. 09:0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웨살리70)에서 큰 숲71) 중각강당72)에 머무셨다.

 

70) 웨살리(Vesali)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사자후의 긴 경」 (M12)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71) '큰 숲[大林]'Mahā()-vana()를 직역한 것이다. 세존께서 웨살리에 머무실 때는 주로 이 큰 숲의 중각강당에 계셨다고 한다. 초기경에는 몇 군데 큰 숲이 언급되고 있다. 여기 웨살리의 마하와나(D6; M35; M36; M71; M105 )와 까삘라왓투의 마하와나(D20; M18 )와 우루웰라 근교의 마 하와나(A.iv.437)와 네란자라 (Nerañjarā) 강 언덕의 마하와나(DhA.i.86) 등이다.

72) '중각강당'āgārasālā를 옮긴 것인데 a(위층 누각[이 있는])-āgāra(집의)-sālā(강당)라는 뜻이다. 여기 a는 뾰족한 지붕(우리의 기와지붕이나 태국의 사원들처럼 위가 솟은 지붕)을 뜻하기도 하고 누각 등의 위층을 뜻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꾸따가라는 크고 좋은 저택을 뜻하는 의미로 쓰였다. 중국에서 중각강당(重閣講堂)이라 한역하였으며 역자도 이를 따랐다.

 

2. 그때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73)가 웨살리에 살고 있었다.

그는 논객이고 스스로 학문이 깊은 자라 말하며74) 많은 사람들에게 사두 (종교가)75)로 인정되었다. 그는 웨살리의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73) 사짜까(Saccaka)는 본경에서 보듯이 니간타(Nigaṇṭha)이며 그의 족성인 악기웨사나(Aggivessana, Sk. Agnivesyāyana)로 불리고 있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의 양친도 모두 니간타였으며 두 사람 다 논쟁(vāda)에 뛰어났으며 각각 500개씩의 논쟁거리를 가지고 논쟁을 위해서 전 인도(Jambudīpa)를 돌아다니다가 웨살리에서 만났다고 한다. 그들은 논쟁에서 서로를 논파할 수 없었기 때문에 릿치위들이 둘을 결혼하게 하였고 그들의 살림을 돌보아주었다고 한다. 그들에게서 삿짜(Saccā), 롤라(Lolā), 빠따짜라(Patācārā), 시와와띠까(Sivāvatikā, 『자따까』 (J.iii.1)에서는 Avavādakā로 나타남.)라는 네 명의 딸이 태어났는데 그들은 사리뿟따 존자와 논쟁을 벌였으며 존자에게 패했다고 한다. 그래서 불교 교단으로 출가하여 모두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 삿짜까는 이들의 막내 동생이었는데 릿차위들의 스승이었고 웨살리에 살고 있었다고 한다.(MA.ii.268~270) 주석서에 의하면 삿짜까는 부처님께서 반열반 하신 200년 뒤에 스리랑카에 태어나서 출가하여 깔라 붓다락키따(Kāa-Buddharakkhita)로 불리게 되었으며 아라한과를 얻었다고 한다.(MA.ii.293, 본서 「삿짜까 긴 경」 (M36) §48의 마지막 주해 참조)

74) '스스로 학문이 깊은 자라 말하며'paṇḍita-vāda(학문이 깊은 자라는 주장)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나는 학문이 깊은 자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aha paṇḍitoti eva vādo).” (MA.ii.270)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풀어서 옮겼다.

75) 여기서 '사두(종교가)’sādhu를 음역한 것이다. 요즘도 인도의 힌두 수행자를 두고 사두라고 부르고 있어서 이렇게 음역을 하였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간에, 그가 승가를 가졌든 무리를 가졌든 무리의 스승이든,

또한 아라한 · 정등각자라고 자처하던, 나와 논쟁을 시작하면

동요하지 않고 떨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겨드랑이에 식은땀을 흘리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다.

비록 내가 무정물인 기둥과 논쟁을 시작하더라도 막상 논쟁이 시작되면

그 기둥도 동요하고 떨고 전율할 것인데 하물며 인간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

 

 

3. 그때 앗사지 존자76)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웨살리로 탁발을 갔다.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가 웨살리에서 산책을 나와 이리저리 경행하다가

앗사지 존자가 멀리 서 오는 것을 보았다. 보고는 앗사지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앗사지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는 앗사지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76) “앗사지 존자(āyasmā Assaji)는 부처님의 첫 제자인 오비구(五比丘) 가운데 한 사람이고, 사리뿟따 존자의 스승인 앗사지 장로를 말한다.”(MA.ii.270)

앗사지 존자는 오비구 가운데 마지막으로 언급되는 분이다. 그는 오비구 가운데 맨 마지막으로 예류자가 되었다고 한다.(AA.i.84) 그리고 오비구와 함께 『상윳따 니까야』제3권 「무아의 특징 경」 [無我相經, S22:59/ii.66f]을 듣고 아라한이 되었다. 사리뿟따 존자가 진리를 찾아다니던 끝에 라자가하 에서 탁발을 하는 앗사지 존자의 엄정한 품행을 보고 그가 공양을 마칠 때를 기다려 앗사지 존자에게 그의 스승과 가르침에 대해서 질문하자 그는 다음의 유명한 게송으로 대답을 한다.

원인으로부터 생긴 법들

그들의 원인을 여래는 말씀하셨고

그들의 소멸도 [말씀하셨나니]

대사문은 이렇게 설하시는 분입니다.”(Vin.i.40)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 hetu Tathāgato āha

tesañ ca yo nirodho

evavādī Mahāsamao

諸法從緣起 如來說是因

彼法因緣盡 是大沙門說根本說一切有部毘奈耶)

사리뿟따 존자는 게송의 첫 번째 두 구절을 듣고 예류과를 얻었다고 하며(Vin.i.39~40, DhpA.i.75ff) 사리뿟따 존자는 그 후로 항상 앗사지 존자에게 큰 존경을 표했다고 한다.(DhpA.iv.150~151) 그리고 본경에서 그는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가 부처님 가르침에 대해서 질문을 하자 부처님께서는 오온의 무상과 무아를 가르치신다고 대답한다.(§4) 이것이 인연이 되어 삿짜까는 500명의 릿차위들을 데리고 세존께 질문을 드리러 가게 되는 것이다.

 

4. “앗사지 존자여, 사문 고따마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인도합니까?

그리고 사문 고따마께서는 가르침을 어떻게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합니까?”

악기웻사나여,77)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제자들을 인도하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하여 제시하십니다.

'비구들이여, 물질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인식은 무상하다. 심리현상들[]은 무상하다.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물질무아이다.78) 느낌은 무아이다. 인식은 무아이다. 심리현상들은 무아이다. 알음알이는 무아이다.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은 무아이다.'라고,

악기웻사나여,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하십니다.79)

 

77) 니까야에서 악기웻사나(Aggivessana)라는 이름은 본경(M35)과 다음 경(M36)에서는 삿짜까를 부를 때 나타나고, 본서 제3권 「디가나카 경」 (M74)에서는 디가나카 유행승을 부를 때 나타나며, 4권 「길들임의 경지 경」 (M125)에서는 아찌라와띠 사미도 이렇게 호칭되고 있다. 그리고 『디가 니까야』제1권 「사문과경」 (D2) §28에서는 니간타 나따뿟따가 악기웻사나라 호칭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웨살리(Vesāli) 출신들이다. 그러므로 악기웻사나는 웨살리 지방에 사는 왓지 족들에게 사용되던 족성의 호칭이었던 것 같다.

78)『맛지마 니까야 주석서』는 무아인 이유를 다음의 넷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하고, 주인이 없고, 지배자가 아니고, 자아와 반대된다는 뜻(suñña-assāmika-anissara-attapaikkhep-aṭṭha)에 의해서, 이러한 네 가지 이유(kāraa) 때문에 '무아(anatta)'이다.” (MA.ii.113)

『청정도론』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일어난 형성된 것들[]은 머묾에 이르지 말고, 머묾에 이른 것은 늙지 말고, 늙음에 이른 것은 무너지지 마라.'고 이 세 단계에 대해서 어느 누구도 지배력(vasavatti-bhāva)을 행사하지 못한다.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므로 공하다. 그러므로 공하고, 주인이 없고, 지배력을 행사하지 못하고(avasavatti), 자아와 반대되기 때문에 무아다.”(VIS.XX.47)

한편, 세존의 두 번째 설법이요 이 설법을 듣고 오비구가 아라한이 된 『상윳따 니까야』제3권 「무아의 특징 경」(S22:59)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오온 즉 나라는 이 존재가 무아임을 천명하고 있다.

첫째, §3에서 오온에는 이와 같이 되어라거나 이와 같이 되지 말라는 등의 지배력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avasavattita)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본경 §§9~22에 나타나는 부처님의 비유를 통한 말씀과 일치한다.

둘째, §4에서는 삼특상을 통해서 설명하고 있다. 무상하고 괴로움이라는 처음의 두 가지 특상을 통해서 무아라는 특상을 설명하고 있다. 앗사지 존자는 이러한 「무아의 특징 경」 (S22:59)을 듣고 아라한이 된 분이다. 그러므로 본경에서 존자가 오온을 통해서 제행무상과 제법무아를 강조 하는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하겠다.

79) “'모든 형성된 것은 무상하다[諸行無常, sabbe sakhārā aniccā]'라는 것은 삼계에 속하는 모든 형성된 것들(te-bhūmaka-sakhārā)은 무상하다는 말이다. '모든 법들은 무아다[諸法無我, sabbe dhammā anattā].'라는 것은 4가지 세계(삼계 + 출세간)에 속하는 모든 법들(catu-bhūmaka-dhammā)은 무아라는 말이다. 이처럼 그 비구들은 장로에게 무상의 특상(anicca-lakkhaa)과 무아의 특상(anatta-lakkhaa)의 두 가지 특상은 말했으나 괴로움의 특상(dukkha-lakkhaa)은 말하지 않았다. ? 그들은 생각하기를 이 비구는 시비걸기를 좋아하기(vādī) 때문에 괴로움의 특상을 언급하는 순간에 '물질도알음알이도 괴로움이라면 도도 괴로움이요 과도 괴로움이다. 그러니 그대들은 괴로움을 얻은(dukkha-ppattā) 비구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여길 것이다. 그래서 두 가지 특상만 말한 것이다.”(SA. ii.318)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도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MA.ii.271)

한편 『상윳따 니까야』 제3권 「찬나 경」 (S22:90) §4에서도 장로 비구들이 재가에 있을 때 세존의 미부였던 찬나 존자에게 오온의 무상과 무아만을 설하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위에서 인용한 주석서는 이 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를 옮긴 것이다.

 

앗사지 존자여, 사문 고따마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다고 하시니, 우리는 참으로 달갑지 않은 것을 들었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든 고따마 존자를 만나 허심탄회하게 어떤 대화를 한번 나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면 그의 아주 나쁜 견해를 씻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5. 그때 오백 명의 릿차위들80)은 어떤 일 때문에 집회소에 모였다.

그때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는 그 오백 명의 릿차위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했다.

존경하는 릿차위들께서는 어서 오십시오. 존경하는 릿차위들께서는 어서 오십시오.

오늘 나는 사문 고따마와 함께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만일 그의 가장 잘 알려진 제자인 앗사지라는 비구가 내게 주장한 것처럼

사문 고따마가 내게 그렇게 주장하면, 마치81) 힘센 사람이 긴 머리털의 숫양을,

그의 머리채를 잡고 앞으로 끌고 뒤로 끌고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끌듯이,82)

그와 같이 나도 논쟁에서 사문 고따마를 앞으로 끌고 뒤로 끌고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끌겠습니다.

마치 힘센 양조업자가 술 거르는 체를 깊은 물탱크에다 던져 넣고는 그 가장자리를 잡고

앞으로 끌고 뒤로 끌고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끌 듯이,

그와 같이 나도 논쟁에서 사문 고따마를 앞으로 끌고 뒤로 끌고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끌겠습니다.

마치 힘센 양조 혼합사가 체의 가장자리를 잡고 위로 흔들고 아래로 흔들고 탁 탁 치듯이, 그와 같이 나도 논쟁에서 사문 고따마를 위로 흔들고 아래로 흔들고 탁탁 치겠습니다.

마치 60년 된 코끼리가 깊은 호수에 들어가서 대마 씻는 놀이83)를 즐기듯이,

그와 같이 나도 사문 고따마와 함께 대마 씻는 놀이를 즐기겠습니다.

존경하는 릿차위들께서는 어서 오십시오. 존경하는 릿차위들께서는 어서 오십시오.

오늘 나는 사문 고따마와 함께 대화를 나눌 것입니다.”

 

80) 릿차위(Licchavī)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사자후의 긴 경」 (M12)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81) 여기 본경 §5에 나타나는 네 가지 비유는 본서 「우빨리 경」(M56) §7에도 나타나고 있다.

82) '때로는 앞으로 때로는 뒤로 끌겠다.'는 것은 samparikaḍḍhissāmi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어떤 때는 앞으로 끌고 어떤 때는 뒤로 끌겠다(kālena ākaḍḍheyya kālena parikaḍḍheyya).”(MA.ii.271)라는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83) '대마를 씻는 놀이'adhovika nāma kīitajāta을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대마를 씻음(sāadhovika)'이 놀이의 이름이다. 사람들은 삼베를 만들기 위해 대마의 껍질을 가져와서 한 움큼씩 묶어서 물에 던져 넣는다. 그리고는 시큼한 미음과 술 등을 가지고 그곳에 가서 한 움큼의 대마를 건져서 오른쪽과 왼쪽과 중간에 놓인 세 개의 판자 위에 올려놓고 한 번은 오른 쪽, 한 번은 왼쪽, 한 번은 중간을 두들기면서 시큼한 미음과 술을 마시고 즐기고 먹고 하면서 씻는다. 이것은 큰 오락이 된다. 큰 코끼리가 그것을 보고 깊은 물속에 들어가 코로 물을 빨아올려 한 번은 배에, 한 번은 등에, 한 번은 양 옆구리에, 한 번은 안쪽 넓적다리에 뿌리면서 논다. 이런 놀이를 대마씻는 놀이라 한다.” (MA.ii.272)

 

6. 그곳에서 어떤 릿차위들은 이렇게 말했다.

어떻게 사문 고따마가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의 언설을 논파한다는 말인가?

오히려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가 사문 고따마의 언설을 논파할 것이다.”

어떤 릿차위들은 이렇게 말했다.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가 누구라고84) 감히 세존의 언설을 논파한다는 말인가?

그와는 반대로 세존께서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의 언설을 논파하실 것이다.”

그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오백 명의 릿차위들에게 둘러싸여 큰 숲의 중각강당으로 갔다.

 

84)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가 누구라고'라는 것은 ki so bhavamāno saccako nigaṇṭhaputto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즉 삿짜까가 무엇이 되어, 즉 어떤 모습으로, 그가 약카로 변하여, 혹은 인드라 혹은 범천이 되어 세존의 말씀을 논파할 수 있단 말인가?(vāda āropessati) 세존의 말씀은 평범한 인간(pakati-manussa)에 의해 절대 논파 될 수 없다는 말이다.” (MA.ii.272)

 

7. 그때 많은 비구들이 노지에서 경행을 하고 있었다.

그러자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가 그 비구들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지금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디에 머무십니까?

우리는 그분 고따마 존자를 뵙고 싶습니다.”

악기웻사나여, 세존께서는 큰 숲에 들어가셔서 어떤 나무 아래 앉아 낮 동안을 머물고 계십니다.”

 

8. 그러자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많은 릿차위 대중과 함께 큰 숲으로 들어가서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릿차위들도 어떤 자들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고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한 뒤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말없이 한 곁에 앉았다.

 

9. 한 곁에 앉은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 드렸다.

만일 고따마 존자께서 저의 질문을 허락해주신다면

저는 고따마 존자께 어떤 점에 대해 질문을 드리고자 합니다.”

악기웻사나여, 그대가 묻고 싶은 것을 질문하라.”

고따마 존자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인도하십니까?

그리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가르침을 어떻게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하십니까?”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나는 제자들을 인도한다.

그리고 이와 같이 나는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하여 제시한다.

'비구들이여, 물질무상하다. 느낌은 무상하다. 인식은 무상하다. 심리 현상들[]은 무상하다. 알음알이는 무상하다.

비구들이여, 물질무아이다. 느낌은 무아이다. 인식은 무아이다. 심리현상들은 무아이다. 알음알이는 무아이다.

제행은 무상하고 제법은 무아이다.'라고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나는 가르침을 분류하여 제자들에게 거듭해서 제시한다.”

 

10. “고따마 존자시여, 제게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악기웻사나여, 그것을 말해 보라.”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씨앗이나 식물이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이건

성장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는 것은

모두 땅에 의지하고 땅에 바탕을 두어 성장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게 되고,

다시 예를 들면 힘을 많이 써서 해야 하는85) 일이라면 그것이 어떤 종류이건

모두 땅을 의지하고 땅에 바탕을 두어 힘쓰는 일들을 하듯이,

고따마 존자시여, 이 인간이란 물질을 자아로 삼아 그 물질에 바탕을 두고 공덕을 짓기도 하고 악덕을 짓기도 합니다.

이 인간이란 느낌을 자아로 삼아 그 느낌에 바탕을 두고 공덕을 짓기도 하고 악덕을 짓기도 하며,

이 인간이란 인식을 자아로 삼아 그 인식에 바탕을 두고 공덕 을 짓기도 하고 악덕을 짓기도 하며,

이 인간이란 심리현상들을 자아로 삼아 그 심리현상들에 바탕을 두고 공덕을 짓기도 하고 악덕을 짓기도 하며,

이 인간이란 알음알이를 자아로 삼아 그 알음알이에 바탕을 두고 공덕을 짓기도 하고 악덕을 짓기도 합니다.”

 

85) '힘을 많이 써서 해야 하는'bala-karaīyā(힘을 써야 하는)를 옮긴 것인데 주석서에서 많은 힘으로 행해야 하는(bāhu-balena kattabbā)”(MA.ii.275)이라고 설명하고 있고 그 예로 농업, 상업 등을 말한다고 들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11. “악기사나여, 참으로 그대는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인가?

'물질은 나의 자아다. 느낌은 나의 자아다. 인식은 나의 자아다. 심리 현상들은 나의 자아다. 알음알이는 나의 자아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참으로 그와 같이 말합니다.

'물질은 나의 자아다. 느낌은 나의 자아다. 인식은 나의 자아다. 심리현상들은 나의 자아다. 알음알이는 나의 자아다.'라고, 그리고 이 많은 사람들도 그렇게 말합니다.”

 

악기웻사나여, 이 많은 사람들이 그대와 무슨 상관인가?86)

악기웻사나여, 그대는 자신의 주장을 설명하라.”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물질은 나의 자아다. 느낌은 나의 자아다. 인식은 나의 자아다. 심리현상들은 나의 자아다. 알음알이는 나의 자아다.'라고.”

 

86) “즉 이 많은 사람들은 나의 말을 논파하려고 온 것이 아니라, 오직 그대만이 나의 말을 논파하려고 온 것이니까 이 많은 사람들을 끌어들이지 말고 그대 자신의 교리(sakka vāda)를 스스로 설명하라는 말이다.”(MA.ii.276)

 

12. “악기웻사나여, 그렇다면 이것을 그대에게 물어보리니 그대가 원하는 대로 설명하라.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관정식을 거친 끄샤뜨리야 왕은, 예를 들면 꼬살라의 빠세나디 같은 왕이나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처럼, 그의 영토에서 사형에 처해야 할 자를 사형시키고, 벌금을 물려야 할 자는 벌금을 물리고, 추방시켜야 할 자는 추방시키는 권력을 행사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관정식을 거친 끄샤뜨리야 왕은, 예를 들면 꼬살라의 빠세나디같은 왕이나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처럼, 그의 영토에서 사형에 처해야 할 자를 사형시키고, 벌금을 물려야 할 자는 벌금을 물리고, 추방시켜야 할 자는 추방시키는 권력을 행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들 공화제나 집단 체제인 왓지들과 말라들도

그들의 영토에서 사형에 처해야 할 자를 사형시키고, 벌금을 물려야 할 자는 벌금을 물리고, 추방시켜야 할 자는 추방시키는 권력을 행사하는데

하물며 꼬살라의 빠세나디같은 왕이나 마가다의 왕 아자따삿뚜 웨데히뿟따처럼 관정식을 거친 끄샤뜨리야 왕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그는 그렇게 행하고 있고 또 충분히 그렇게 행할 만합니다.”

 

13.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물질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87)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침묵했다.

세존께서는 두 번째에도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에게 이렇게 말씀 하셨다.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물질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역시 침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 설명을 하라, 악기웻사나여. 지금은 그대가 침묵을 지킬 때가 아니다.

악기웻사나여, 여래가 세 번이나 법다운 질문을 해도 설명하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머리가 일곱 조각 날 것이다.”

 

87) “내 물질은 이와 같이, '호감가고 잘생기고 장엄하기에 적합하고 매혹적으로 되어라.'라고 바라는 바를 보여주거나(manāpa-dassana), '내 물질은 이와 같이, 즉 못 생기고 일그러지고 주름지고 머리카락이 새지 마라.'라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는(vattitu arahati) 것을 말한다.”(MA.ji.277) 물질을 비롯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에 대해 아무런 권한도 행사할 수 없고, 그들을 지배(vasa)할 수도 없으므로 그 다섯 가지 무더기는 자아가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14. “그때에 금강수(金剛手)88) 약카가 시뻘겋게 달구어지고 불꽃이 이글거리고 빛을 내는 금강저를 들고 만일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가 세존께서 세 번이나 법다운 질문을 했는데도 설명하지 않으면 이 자리에서 그의 머리를 일곱 조각 내어버리리라.'라고 생각하면서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의 바로 위쪽 허공에 나타났다.

세존께서도 그 금강수 약카를 보셨고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도 그를 보았다.

그러자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두렵고 떨리고 모골이 송연하여 세존께 보호를 청하고 세존께 피난처가 되어 주실 것을 원하고 세존께 귀의하기를 원하면서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질문해 주십시오. 설명하겠습니다.”

 

88) '금강수(金剛手)'는 와즈라빠니(Vajirapāī)를 옮긴 것이다. 와즈라빠니는

"그의 손에 금강저(혹은 벼락)를 가진(vajiraimhi assā ti)”(MA.ii. 277)이란 의미이며 바후워르히(Bahuvrīhi, 有財釋) 합성어이다. 주석서에 서는 이 금강수 약카는 다름 아닌 신들의 왕 삭까(Sakko devarājā, 인드라, 제석)라고 설명하고 있다.(Ibid) 한편 이런 합성어를 가진 이름으로는 연화수(蓮花手)로 옮기는 빠두마빠니 (Padumapāī) 등을 들 수 있다. 금강수 약카는 『디가 니까야』 제1권 「암밧타 경」 (D3) §1.21에서 세존과 암밧타 바라문 학도의 대화에서도 등장하고 있다.

 

16.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물질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내 물질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라고 그 물질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먼저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느낌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느낌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느낌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7, “악기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먼저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인식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인식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인식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8.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먼저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심리현상들[]은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심리현상들[]은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

심리현상들을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9.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먼저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알음알이는 나의 자아다.'라고 주장하는데, 그대는 '알음알이는 이렇게 되고, 이렇게 되지 마라.'고 그 알음알이를 지배할 수 있는가?”

아닙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0.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라. 악기웻사나여, 마음에 잡도리하고서 설명하라.

그대의 말은 먼저 한 말은 뒤에 한 말과 일치하지 않고 뒤에 한 말은 먼저 한 말과 일치하지 않는다.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인식은 항상한가, 무상 한가?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심리현상들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악기웻사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 것이 타당 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2.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기웻사나여?

괴로움에 들러붙고89) 괴로움에 의지하고 괴로움을 고수하여 괴로움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는90) 자가

그 스스로 괴로움을 통달하여 알 수 있거나91)

혹은 괴로움을 철저히 부수어버리고92) 머물 수 있겠는가?”

어찌 그럴 수 있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93)

 

89) “'괴로움에 들러붙는다(allīno dukkha)'는 등은 이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의 괴로움(pañca-kkhandha-dukkha)갈애사견(tahā-diṭṭhi)에 의해 들러붙는다는 말이다.” (MA.ii.279)

90) “'괴로움은 나의 자아다(dukkha eta mama)'라는 등을 본다(samanupassati)는 말은 다섯 가지 무더기의 괴로움을 갈애자만사견으로써 본다는 말이다.” (MA.ii.279)

91) “'통달하여 안다(parijāneyya).'는 것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라고 조사의 통달지(tīraa-pariññā)에 의해 철저히 아는 것을 말한다.” (MA.ii.279)

92) “'철저히 부수어버린다(parikkhepetvā).'는 것은 부수어지고(khaya) 사라지고(vaya) 다시 생기지 않는 것(anuppāda)에 이른다는 말이다.” (MA.ii.279)

93) BeSe에는 이 문단 다음에 다시 다음 문단이 들어있다.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악기웻사나여.

비록 그와 같다 하더라도 그대는 괴로움에 들러붙고 괴로움에 의지하고 괴로움을 고수하여 괴로움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이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보고 있지 않은가?”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고따마 존자시여? 참으로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2. “악기웻사나여, 예를 들면 심재가 필요하고 심재를 찾는 사람이

심재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면서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가서,

그는 거기서 야자나무 줄기가 크고 곧고 싱싱하지만 안이 꽉 차지 않은 것94)을 볼 것이다.

그는 그것의 뿌리를 자를 것이다. 뿌리를 자르고 꼭대기를 자를 것이다.

꼭대기를 자른 뒤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할 것이다.

이처럼 잔가지와 잎사귀까지 깨끗하게 제거해버리고 나면

그는 겉재목[白木質]조차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디서 속재목을 얻겠는가? 95)

 

94) '안이 꽉 차지 않은 것'akukkuka-jāta를 의역한 것이다. 주석서에서 안에 유조직(柔組織)이 들어 있지 않은 것(anto asañjāta-ghana-daṇḍaka) (SA.ii.322) 이라거나, “꽃이 필 시기에 안에 손가락 크기만 한(aguṭṭhappamāa) 하나의 유조직(柔組織)이 생기는데 그런 것이 없다는(virahita) 뜻이다.”(MA.ii.279)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이것은 야자나무의 껍질이 시멘트 같이 생겨서 두껍지만 내부가 비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꾹꾸까(kukkuka)는 길이를 뜻하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이 경우에 꾹꾸까는 길이로는 핫타(hattha)와 같다고 한다.(AA.iv.192, 『앙굿따라 니까야』제5권 「돌기둥 경」 (A9:26) §5와 주해를 참조할 것.) 도량단위로서의 핫타(hattha)는 영어의 큐빗(cubit, 46~56cm)에 해당하는 길이라고 한다.(PED)

95) 이것과 같은 비유가 『상윳따 니까야』 제3권 「포말 경」(S22:95) §7 등에도 나타난다.

 

악기웻사나여, 그와 같이 그대는 그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내가 질문하고 반문하고 추궁하자 실없고 헛되고 좌절되었다.

악기웻사나여. 그런데도 그대는 웨살리의 집회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든 간에, 그가 승가를 가졌든 무리를 가졌든 무리의 스승이든,

또한 아라한 · 정등각자라고 자처하든, 나와 논쟁을 시작하면

동요하지 않고 떨지 않고 전율하지 않고 겨드랑이에 식은땀을 흘리지 않는 자를 보지 못했다.

비록 내가 무정물인 기둥과 논쟁을 시작하더라도 막상 논쟁이 시작되면

그 기둥도 동요하고 떨고 전율할 것인데 하물며 인간이야 말해서 무엇 하겠는가?'라고,

악기웻사나여, 그런데 이제 그대의 이마가 온통 땀방울에 젖어서 윗옷을 몽땅 적시고는 땅에 떨어졌다.

악기웻사나여, 그러나 내 몸에는 땀이 한 방울도 없다.”

이렇게 세존께서는 말씀하시고 그 대중에서 황금색 몸을 드러내셨다.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삿짜까는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23. 그러자 릿차위의 후예인 둠무카는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가 말없이 의기소침하여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숙이고 우울한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을 못하는 것을 알고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제게 비유가 떠올랐습니다.”

그것을 말해 보라, 둠무카여.”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마을이나 성읍으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연못이 있는데

그곳에 게가 있다고 합시다.

세존이시여, 이제 많은 소년들이나 소녀들이 그 마을이나 성읍에서 나와 그 연못으로 갑니다. 가서는 연못에 들어가 그 게를 물 밖으로 끄집어내어 땅바닥에 던져 놓습니다.

그 게가 집게발을 내어놓을 때마다 그 소년들이나 소녀들이 막대기나

돌로 그것을 잘라버리고 끊어버리고 박살을 냅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그 게는 모든 집게발들이 잘리고 끊어지고 박살이나

다시는 전에처럼 그 연못으로 내려갈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와 같이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의 곡해, 안절부절, 동요96)

세존에 의해 모두 잘리고 끊어지고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다시는 세존과 논쟁을 벌이겠다고 찾아오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96) “삿짜까의 '곡해, 안절부절, 동요(yisūkāyitāni visevitāni vipphanditāni)'는 모두 사견(diṭṭhi)에 의한 곡해, 사견에 의한 안절부절, 사견에 의한 동요이다.” (MA.ii.280)

 

24. 이렇게 들었을 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릿차위의 후예인 둠무카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대는 기다리시오,97) 둠무카여. 그대는 기다리시오, 둠무카여.

우리는 그대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는 고따마 존자와 더불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97) “'기다리시오. (āgamehi).'라는 것은 다시 말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말이다.” (MA.ii.281)

 

[다시 삿짜까는 세존께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제 이것을 그만둡시다.

우리의 대화도 여느 보통 사문 · 바라문들의 논쟁처럼 단지 한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서 고따마 존자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를 받들어 행하고

의심을 건너고 회의를 극복하고 무외를 얻고98)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99) 스승의 가르침에 머뭅니까?”100)

 

98) “'무외를 얻는다(vesārajja-ppatta).'는 것은 지혜 얻음(ñāa-ppatta)을 말한다.” (MA.ii.281)

99)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apara-ppaccaya를 옮긴 것이다.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남의 증득이 아님(apara-ppattiya)을 뜻한다.” (MA.ii.281)라고만 밝히고 있는데 복주서는 다시 남이 증득한 것은 신뢰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na paro pattiyo saddahātabbo etassa atthīti).”(MAȚ.ii. 208)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제2권 「깟짜나곳따 경」 (S12:15) §5에 해당하는 주석서에는 “'그의 지혜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는다(aparapaccayā ñāa).'는 것은 남을 의지하지 않고(aññassa apattiyāyetvā) 자기 자신이 직접 경험한 지혜(atta-paccakkha-ñāa)를 말한다.”(SA.ii.33)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paccakkha는 눈앞에 드러난(prati+aka)에서 파생된 단어로 인명학(因明學)에서 말하는 직접지[現量, Sk. prataka]와 같은 말이다. 추론지[比量, anumāna]나 비유지[譬喩量 upamāna]나 성인의 가르침[聖言量, āpta-vaca]을 통해서 알게 된 지혜가 아니고 직접 체득한 지혜라는 뜻이며, · · · · · 연으로 대표되는 법에 대한 지혜가 생긴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류자 이상의 성자의 경지이기도 하다.

100) '가르침을 실천하고스승의 가르침에 머문다.'는 이 정형구는 본서 「우빨리 경」(M56) §8과 본서 제3권 「왓차곳따 긴 경」 (M73) §10과 「디가나 카 경」 (M74) §15 등에도 나타난다. 본경의 주석서의 설명처럼 이 정형구는 예류자, 일래자, 불환자의 유학(有學)의 경지(sekkha-bhūmi)를 설명하는 정형구로 알려져 있다.(sekkha-bhūmi dassitā MA.ii.281)

 

악기웻사나여, 여기서 나의 제자는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는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 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본다.

 

악기웻사나여, 여기서 나의 제자는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는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알음알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본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해서 나의 제자들은 가르침을 실천하고 훈계를 받들어 행하고 의심을 건너고 회의를 극복하고 무외를 얻고 다른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스승의 가르침에 머문다.

 

25.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어떻게 해서 비구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어

삶을 완성하고 할 바를 다 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이상을 실현하고 삶의 족쇄를 부수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합니까?”

악기웻사나여, 여기 비구는 물질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 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는, 저열하는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물질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보아 취착 없이 해탈한다.

느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인식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심리현상들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알음알이라고 하는 것은 그 어떤 것이든,

그것이 과거의 것이든, 미래의 것이든, 현재의 것이든, 안의 것이든 밖의 것이든, 거칠든 섬세하든, 저열하는 수승하든,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그 모든 알음알이에 대해

'이것은 내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내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이렇게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써 보아 취착 없이 해탈한다.

악기웻사나여, 이렇게 해서 비구는 번뇌 다한 아라한이 되어 삶을 완성하고 할 바를 다 하고 짐을 내려놓고 참된 이상을 실현하고 삶의 족쇄를 부수고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다.”

 

26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 비구는 세 가지 위 없음,

위없는 견해, 위없는 도닦음, 위없는 해탈을 구족한다.101)

악기웻사나여, 이와 같이 해탈한 비구는 여래를 존경하고 존중하고 공경하고 숭배한다.

'깨달으신 세존께서는 깨달음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102)

제어되신 세존께서는 제어를 위해 법을 설하신다.

고요하신 세존께서는 고요함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

건너신103) 세존께서는 건너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신다.

구경열반을 성취하신 세존께서는 구경열반을 위해 법을 설하신다.'라고.”

 

101) “'위없는 견해(dassana-anuttariya)' 등은 세간적인 통찰지와 출세간적인 통찰지(lokiya-lokuttarā paññā) 등을 말한다. 혹은 청정한 출세간(suddha-lokuttara)의 견해와 도닦음과 해탈을 말한다.

이처럼 [출세간에 속하는 것일 경우에] '위없는 견해(dassana-anuttariya)'란 아라한도의 정견(sanmā-diṭṭhi)을 말하고, '위없는 도닦음(paipādanuttariya)'은 아라한도의 정견을 제외한 나머지 일곱 가지 도의 각지(정사유부터 정정까지)를 말하고, '위없는 해탈(vimutta-anuttariya)'이란 아라한과의 해탈을 말한다. 혹은 첫 번째는 번뇌 다한 자가 열반을 보는 것을 말하고, 두 번째는 팔정도의 각지를 말하고, 세 번째는 최상의 과인 아라한과를 말한다.” (MA.ii.281 ~ 282)

102) “'여기서 깨달으신(buddha)'이란 네 가지 진리[四聖諦, cattāri saccāni]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법을 설하신다.(dhamma deseti).'는 것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사성제를 깨닫게 하기 위해 법을 설하신다는 말이다.” (MA.ii.282)

103) “'고요하신(santa)'이란 것은 모든 오염원들이 가라앉았다는(sabba-kilesa-vūpasama) 말이고, '건너신(tiṇṇa)'이란 것은 네 가지 격류(catur-ogha)를 건넜다는 말이다.”(MA.ii.282)

 

27. 이렇게 말씀하시자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제가 논쟁에서 고따마 존자와 맞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무례하고 무모했습니다.104)

고따마 존자시여, 사람이 취기 오른 코끼리와 대적하여 안전할 수는 있어도

고따마 존자와 대적하여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람이 타오르는 불덩이를 습격하여 안전할 수는 있어도

고따마 존자와 대적하여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사람이 맹독이 있는 독사를 습격하여 안전할 수는 있어도

고따마 존자와 대적하여 안전할 수는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논쟁에서 고따마 존자와 맞붙을 수 있다고 생각했으니

참으로 무례하고 무모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내일 저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104) “'무례했다.(dhasī)'는 것은 세존의 특질 혹은 공덕을 훼손시켰고(gua dhasakā), '무모했다(pagabbhā)'는 것은 말을 뻔뻔스럽게(vācā-pāgabbiya) 했다는 뜻이다.” (MA.ii.282)

 

28.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세존께서 하락하신 것을 알고서 그들 릿차위들에게 말했다.

존경하는 릿차위들이여, 들으시오. 내일 사문 고따마를 비구 승가와 함께 초대했습니다. 그러니 그대들은 그분께 적당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내게 가져오시오.”

 

29. 릿차위들은 그 밤이 지나자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에게 오 백 접시의 우유죽105)을 가져왔다.

그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자신의 원림에서 여러 가지 맛있는 부드러운 음식과 딱딱한 음식을 준비하게 하고서 세존께 시간을 알려 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공양이 다 준비되었습니다.”

 

105) '우유죽'은 탈리빠까(thāli-pāka)를 옮긴 것인데, 이것은 브라흐마나 문헌에도 등장하는 음식으로 가정제사의 기본 음식이 된다.

 

30.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의 원림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부처님을 비롯한 비구 승가에게

부드러운 음식과 딱딱한 음식 등 맛있는 음식을 손수 충분히 대접하고 만족시켜드렸다.106)

그때 니간타의 후예인 삿짜까는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발우에서 손을 떼시자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니간타의 후예 삿짜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106) “'만족시켜드렸다(sampavāresi),'는 것은 충분히 공양을 올린 뒤, '이제 그만, 이제 그만 충분하다.'라고 손짓으로 거절할 때까지 공양을 올린다는 말이다.” (MA.ii.283)

 

고따마 존자시여, 이 보시의 공덕107)과 큰 과보가

이 음식을 보시한 자들에게 큰 행복이 되기를 바랍니다.” 108)

 

악기웻사나여, 탐욕을 여의지 못하고 성냄을 여의지 못하고 어리석음을 여의지 못한

그대 같은 자에게 보시하여 얻는 것은 무엇이든지 보시자들을 위한 것이 될 것이다.

악기웻사나여, 그러나 탐욕을 여의고 성냄을 여의고 어리석음을 여읜 나 같은 자에게

보시하여 얻는 것은 무엇이든지 그대를 위한 것이 될 것이다.”109)

 

107) 여기서 '공덕'puñña를 옮긴 것이고 큰 과보'puñña-mahī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공덕(puñña)'이란 이 보시(dāna)에서 생기는 공덕으로 미래에 생길 과보 의 무더기(vipāka-kkhandha)를 뜻한다. '큰 과보(puñña-mahī)'란 이런 공덕의 무더기들에 의해서 에워싸인 것(parivāra)이다.” (MA.ii.283)

108) “이 음식을 보시한 자들에게 큰 행복이 되기를 바란다는 것은 바로 이들 릿차위들에게 큰 행복이 되길 바란다는 말이다. 왜냐하면 자기는 출가자 (pabbajita)이기 때문에 자기에게 보시의 공덕을 돌리는 것은 적당하지 않아서 그들 릿차위들에게 보시의 공덕을 돌렸다고 한다.”(MA.ii.283)

109) “릿차위들은 삿짜까에게 보시를 했지 세존께 보시를 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사짜까는 세존께 보시를 했다. 그래서 이 뜻을 밝히기 위해 · · 치를 여의지 못한 그대 같은 자에게 보시하여 얻는 것은' 등을 말씀하셨다.” (MAii.283)

즉 사짜까는 자기가 출가자임을 내세워 보시의 공덕을 모두 이들 릿차위들에게 돌리려 했지만 세존께서는 삿짜까에게 보시한 이들 릿차위들에게도 보시의 공덕이 있을 것이고, 세존께 보시한 삿짜까에게도 보시의 공덕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보시에 대한 여러 가지 논의는 본서 제4권 「보시의 분석 경」(M142)에서 논의되고 있다. 그 가운데 보시의 과보는 이 가운데서 축생에게 보시를 하면 백 배의 보답이 기대된다. 는 식으로 §6에서 있다.

 

 

삿짜까 짧은 경(M35)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