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일스님 법문/사성제

사성제 6B (2010-12-31)

Daisy청량심 2023. 10. 10. 03:08

2010 /12/31- 사성제 6B - 순일큰스님

그건 어디 경에 계시나하면 괴로움의 다발에 대한 작은 경 [맛지마니까야]
마하나마여 만약에 고귀한 제자가 이와 같이 감각적 쾌락에는 만족은 적고 만족이 있긴 있다 이겁니다. 고통이 많고 고뇌가 많아서 위험이 훨씬 많다. 라고 있는 그대로 올바른 지혜로서 잘 살펴보아 감각적 쾌락을 떠나 악하고 불건전한 상태가 아닌, 희열과 행복에 도달하지 않고, 또는 그 보다도 평정한 더 수승한 다른 곳에 도달하지 않는 한, 그는 오직 감각적 쾌락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희열과 행복에 도달하고 또는 그 보다 더 높은 곳에 도달해야지만 그는 오직 감각적 쾌락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갈애를 못 벗어날 것을 알고 계셔요.

그런데 왜 말씀하시냐 하면 그래서 탐에 머물러를 인정하신 거예요. 재가자에게 좋다 과정에서 머무르자 탐 다하고 그러나 거친 것 들을 줄여라.  거친 것들을 줄이면서 삼매하라.  그런데 삼매가 감각적 욕망에 거친 것들 줄이지 않으면 삼매가 안 되거든요.  초선만 하더라도 감각적 욕망을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그 준비하고 하는 거잖아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 생긴 순간적으로 떨쳐지니까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가득한 초선에 들어 머문다.

지금 여기서 희열과 행복이 초선, 이선 이예요.  이 삼매거나 더 놓은 삼매가 되지 않으면 감각적 쾌락의 욕망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것은 왜 그러냐하면 삼매가 안 되어 보면 감각적 쾌락이 최고이기 때문 이예요.  삼매가 안 되면 감각적 쾌락이 최고이기 때문에 사실 누구도 벗어나려고 안 합니다. 더 좋은 감각적 쾌락을 쌓을려고 합니다.  그게 어찌 보면 정당한 거예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삼매를 갖고 나오신 거죠.  이렇게 어마어마한 상태가 있다.  이렇기 때문에 여기에 비하면 감각적 쾌락은 너무 작은 거기 때문에 이렇게만 알려지는 거죠.  그걸해보면 여기에서도 지고스럽지만 몸이 무너진 다음에도 천상세계 더 높은데 가니까 말이죠.  계속 지고스러워지니까. 그러니까 감각적 쾌락은 욕계에서만 통용되는 쾌락이고, 색계에서 높은 데는 희열이 주식이죠.  희열을 먹고 산다는 말 이예요.  지복을 먹고 산다는 말이죠.  고귀한 신들이란 말이죠.  거긴 다 삼매의 영역이거든요 여기서 살아서 삼매가 된 자들만 가는 곳이거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렇지만 삼매가 안 된 자는 이해하시는 거예요.  삼매가 안 된 자에게 최고는 감각적 쾌락 밖에 없으니까 삼매가 안 되었기 때문에 아 이 정도에 관두라 하는 거야.  여기서 나는 쾌락을 더 키우겠다.  그런데 삼매가 되면 그게 말짱 적은 것을 알게 되거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중도를 주신 거예요.  중도가 뭐냐면 탐 하세요 괜찮으니까 머물러 정도 하세요.  그런데 거친 거 한번 없애 보죠.  없애면서 뭐하냐 하면 삼매해 보죠.  이러신 거예요.
삼매가 안 되면 다시 이야기해도 감각적 욕망이 최고기 때문에 부처님이 없애라 해도 안 없애요.  그래서 지금 부처님께서 이 갈애가. 갈애가 적을수록 높은 존재고 분명히 지복스러워진다.  이러신 거거든요.
 
돌아와서 아까 이선만 깊어도 아까 비가 제 구멍에 오고 이 세상이 있는 그대로 안 읽혀져요  속된 말로 똥 묻은 휴지를 똥이 묻었는데 이렇게 하고 저기 던졌는데 그 사이가 다 우주가 있고 진공으로 완벽하단 말이예요.  그렇게 높지도 않은 삼매에서 왜 그러냐 하면 그게 똥이란 분별이 없기 때문이에요.  탐욕도 없고 저항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있는 그 상태에서 본성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죠

삼매에서. 그러니까 완전히 지고스러워 지는 거예요.  그 얘기 드렸지만 초선에서 강력할 때에는 막 정말 이럴 수가! 이럴 수가! 막 죽을 정도의 희열 이예요.  너무 좋아갔고 초죽음 상태인 거죠.  이런 것을 모르고 살았다니 이런거 거든요.  즉 쉽게 얘기하면 감각적 쾌락은 한계가 있잖아요.  아까 좀 전에 부처님께서 만족을 주었고 삼매는 어마어마한 겁니다.  지금 여기서도 어마어마하고 죽은 다음 높은 세계 가는 덕목이고요.  삼매에 관련해서는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할 거지만 미리 잠깐 얘기 드린 거고 그래서 부처님께서 갈애를 남김없이 소멸하면 궁극 그러나 남김없이 소멸은 안 하더라도 점점 소멸할수록 너무 높은 존재가 된다.  행복해진다.  괴로움은 작아진다.  뜻 인거죠.

실제로 우리가 탐욕이다라는 것이 머물러 정도만 충분하잖아요. 그런데 탐욕이 너무 커지면 성냄 교만 다 전 방위로 생기거든요.  성내는 사람이 행복할 수 없는 게 우리가 깨달은 공부를 괴로움을 없애고 평화롭자고 하고 있는 건데요.  사람의 얼굴이 두 개가 아니듯이 늘 하나이죠.  이사람 어떤 사람을 볼 때 그 사람 웃는 모습을 볼 때가 있어요.  그 사람 화내는 모습을 볼 때가 있어요.  그 사람의 웃는 모습을 보면 우리는 행복하잖아요.

그 사람도 행복하고. 얼굴은 한번 하나의 표정밖에 못 짓는데 마음도 한 번에 하나의 마음밖에 없어요. 그 사람이 화를 낼 때는 화내는 마음만 있지 평화로운 마음은 없거든요. 그 사람 행복한 마음이 다른 사람인데도 스스로 화를 낼 때는 화내는 마음만 있지 평화로운 마음은 없고, 그 사람이 교만하고 자만할 때는 교만하는 마음만 있지, 그 사람에게 평화로운 마음은 없잖아요.  그 사람이 살생할 때는 살생하는 마음만 있는 거거든요.  도둑질할 때는 도둑질하는 아주 그런 마음밖에 없거든요. 싸움할 때는 싸움하는 마음밖에 없고, 거짓말 할 때는 거짓말하는 마음밖에 없거든요. 남 중상모략 할 때는 중상모략 하는 마음이고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이 계율을 잘 지켜라 한 것이 사실은 부처님 보시기에 “중생사자생사고 희, 로, 애, 락, 고” “중생이 스스로 희로애락을 짓는다.” 이렇게 보시고 있는 거예요.  스스로 평화롭고 싶다.  행복한 마음이 되고 싶다 하면서 아까 계율을 어기 면은 스스로 부처님이 평화로운 마음하지 말란 적 없거든요.  화내는 마음 일 때에 스스로 평화로운 마음 깨뜨려 버린 거거든요.

 아까 그 탐욕이 너무 센 마음 성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을 가지면 그것은 스스로 마음을 그렇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그때는 평화로운 마음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는 거예요 스스로. 그래서 부처님께서 갈애는 많이 걷힌 걸수록 평화로워지는 거예요.  그러신 겁니다.  그렇죠.
우리가 평화로워 진다는 것은 마음일이 잖아요. 전부다 내 마음이 평화로워 지는 건데 그걸 대상에 의존해서 대상을 얻음으로 해서 쾌락을, 마음이 평화로워 질거다라고 하는 것은 한계가 있는 거잖아요.  얻고자 하는 것을 모두 얻을 수도 없고, 그리고 그것은 마음이 평화로워 지는 것이 아니고, 마음이 쾌락으로 즐거워지는 거잖아요.  진짜 마음의 평화는 아까 해로운 것을 버리는 거죠. 그래서 많이 버린 존재가 여기서도 지고스럽고, 몸이 무너진 다음에도 천상이다라고.  얘기 드린 거예요.  

또 하나 비유해 볼께요.  천상은 분명히 오욕락이 만족이 되면 어마어마한 세계죠.  몇 만겁 낮은 천상도 [경]에서 부처님 그러시죠.  천상은 정말 공대공(?)이다.  그런데 화가 많은 사람이 천상에 갈수도 없지만 천상에 갔다고 비유해 보죠.  있을 수 없는 비유입니다. 갔더니 처음 1년은 좋아요.  온갖 오욕락이 다 충족이 되니까  문제는 이 사람이 ‘화’가 있었다 라는 거예요.  세월이 한 6개월이나 1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까요.  말을 안 하기 시작할 거예요.  왜냐하면 화내는 사람은 왜 저들이 갖고 있는 취하는 것 나에게도 가지고 있으면서 오~ 저런 거 다 나에게만 오게 되기를.  저들에게는 없기를 같은 신들끼리 화나는 사람은 이렇게 되거든요.  [경]에 계시다시피 사람은요 욕망이 있는 존재는 히말라야만큼 금으로 쌓아놓아도 단 한명에게도 부족하다 한사람에게도. 그러니 화가 나는 사람이 천상에 가더라도 오~저들에게는 저것이 없고 나에게만 있기를. 이러지 않겠어요.


뭘 얘기 드리려고 하나하면 정말 전체법칙이 갈애가 감각적 쾌락이 많이 없어진 사람이 여기서도 지고스럽고 행복하고, 몸이 무너진 다음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세계 신들의 세계에, 그 사람은 그 만큼 상태가 되었기 때문에 간다는 거예요.
상태가 안 된 사람은 갈 수도 없고, 가 보아도 환경이 만들어 주는 게 아니다.  그 사람 마음이 문제이기 때문에 가 보아도 그 사람은 거기서도 괴로울 거다라는 거죠.  싸움할 거고요.
다시 돌아와서 그대에게 그것에 의함이 있지 않으면, 이 말씀은 볼 때 볾 만 있고,  들을 때 듦 만 있으면, 그것에 의해서 기억과 사유를 하지 않기 때문에, 그것에 의존하지 않는다. 라는 겁니다.  거기에 의존하지 않게 되면 거기에 라는 것은 없다. 그것에 의존함이 있게 되면 거기에 묶여 있게 된다.  대상들에게 묶여 있게 되면 개체가 된다. 그런데 거기에가 없다. 거기에가 없기 때문에 드디어 여기에도 없고, 저기에도 없고, 이 세상에도 없고, 저 세상도 없고, 그 가운데도 없다.  전체로 편재한 겁니다.  

아까 그 꿈에서 비유로 내가 다 만든 꿈에서 내가 등장인물 들이나 대상들에게 묶여있게 되면, 그것들에 의해서 탐을 하건 저항을 하게 되면 그것들에 의존하게 되죠.  그것에 의함이란 것이 생기고, 그것들을 생각하고, 그것들 가운데 생각하고, 그것들로부터 생각하고, 그것들은 내 것이라고 여긴다.  그리고 그것들에 대한 환락이 생기기 때문에 영원히 그것들에 의함이란 것이 생기고 그것들에게 묶여 버린다.
거기에 그 꿈속에서는....
그런데 그것들에 의하지 않게 되면, 거기에 라는 묶여 있는 게 사라져 버리니까 여기도 저기도 존재하지 않게 되고, 중간도 없게 되니까, 그 꿈에서 그 꿈의 등장인물 들을 다 내가 만들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꿈을 초월해 버리는 거죠.
  [10가지 장애]
   1.  삭까야디티
   2.  불법에 대한 의심
   3.  계율.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4.  감각적욕망
   5.  성냄
   6.  색계에 대한 집착
   7.  비색계에 대한 집착
   8.  자만
   9.  들뜸과 후회
   10. 무명
10가지 장애가 전체 법칙 이예요. 부처님께서 설하신 전체법칙 인데요. 세상 전체예요.  그 삭까야디티 유신견이라고 우리가 알고 있는 건데요 저게 원어예요. 빨리어로 제가 스펠을 몰라 저렇게 썼습니다.  삭까야가 오취온 이예요.  다섯가지 색. 수 .상. 행 .식 으로 집착하는 무더기가 실체라고 하는 잘못된 견해가 삭까야디티 예요.  색 .수. 상 .행 .식 은 몸. 느낌. 인식. 의도 .아뢰야식은 실체가 아니라는 겁니다.  저것을 실체로 보면 잘못된 거고 불법에 대한 의심, 계율. 의례의식 에 대한 집착. 이 세 가지를 넘으면 이 세 가지가 없으면 수다원이라고 그러셨죠.

7번 안에 해탈할 성자 그리고 감각적 욕망과 성냄 아까 갈애에 속하는 거죠. 저것이 희박하게 남으면 사다함 이예요.  사다함은 뭐냐 하면 한번만 더 오면 해탈하실 어마어마한 성자. 예정된 분. 그런데 그분도 저게 남았네요. 희박하게. 그런데 뭘 보여 드리려고 그러냐 하면 결국은 감각적 쾌락과, 성냄이, 줄어들수록 높은 존재라는 것 이예요.  전체법칙은 그리고 저 감각적 쾌락과 성냄이 하나도 없으면 제로가 아나함 이예요.  아나함은 이 전체대상 세계에서 제일 높은데 가셔갔고 여기는 다시는 안 올 분이예요.  이 동네는 아예 발걸음도 안하시고 사선천 이하의 세계에는 발걸음도 안 하세요.  사선천에만 계시다가 수명 어마어마해요.  뭐 우주 몇 만개 생기고 몇 만개 없어질 정도에 한 우주도 아니고 그런 수명 이예요.  거기서 그렇게 살다가 열반이 예정되신 분이예요. 아나함은...아나함은 좀 전에 얘기했지만 감각적 욕망과 성냄이 제로다.  제로니까 엄청난 신의 급 이죠.  높은 천상세계에 저게 제로니까 가는 겁니다.  
그런데 아나함은 뭐가 있냐 하면, 색계에 대한 집착이 있어요.  그래 거기 가신다고 했잖아요 .해탈을 못 하시는 이유가 해탈을 하지 않고 색계에 어마어마하게 높은 세계에 가고 싶은 욕망이 계신 거예요 집착이. 그래서 색계에 가신 겁니다. 여기 색계라는 게 뭐냐면 그제 얘기 드렸지만 지옥 이 우주는 욕계예요. 색계는 이 우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우주 전체는 오히려 거기에 부분집합 이예요. 이 우주가 다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 우주는 뭘 로 이루어졌냐 하면 지옥, 축생, 아귀, 인간, 사람모양의 여섯 가지 신들... 얘기 드렸죠.
여섯 종류의 천상세계. 그 신들 싸움하는 것 아세요?  그래서  삼십삼천 신들의 왕하고 아수라들하고 전쟁을 벌였잖아요. 신들이 싸움을 합니다.  그 신들은 욕계의 신이기 때문에. 색계의 신들도 낮은 단계는 지금 아까 그 감각적 욕망과 성냄이 다  없어진 것은요 색계에서도 사선천이 있잖아요.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에 사선천만이 아나함이셔요.  각각에 삼매천에도 세 개, 세 개씩 있죠.  삼선천까지는. 아나함은 어마어마하신 거예요.  색계에서도 제일 높은 데 가 계신 거예요.  빛의 신들 중에서도 아까 욕계의 사람모양의 신이 아니고 색계는. 그 중에 색계 중에서도 제일 높은데, 거기에 가 있는 분들이 아나함 이예요.  제일 높은 경지에 계신 분들이다.  이렇게 보면 되겠죠.

그런데도 색계에 대한 집착이 있다.  그래서 거기 가신 거고 그 다음이 그 무색계라고 하는 비색계에 대한 집착.  아까 빛도 싫다.  나는 형체 없는 순수의식이 좋다.  그래서 순수의식의 세계로 가신 분들.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집착이 있기 때문이죠.  
그 다음이 자만.  저 자만은 우리식의 교만이 아니고요.  완전히 편재를 못하고 어떤 형태로 내가 있다. 있으려고 하는 겁니다.  자만 그리고 들뜸과 후회 궁극의 부동이 아니고 궁극의 완전자가 아니기 때문에 미세하게나마 들뜸과 후회가 있는 거죠.  그 존재들에게. 그리고 무명 저것까지 다 초월하면 해탈.  이러신 거예요.

부처님께서.  여기에서 10가지 장애에서는 명확히 보여주시는 거예요.
세상 전체의 법칙을.  지금 제가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이 세상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죠.  이 세상, 저 세상 할 것 없이 그 초월한 세상까지를.  모든 세계를 이 10가지 장애에서 다 보여주신 거예요 법칙을.  어떻게 하면 높아지고 높아진다는 것은 더 지고스럽다는 거예요.  행복하고요.

그래서 그 감각적 쾌락이 사라지면, 그 이상의 존재들은 희열을 먹고 사는 거죠.  희열 다음에 그 희열보다 높은 삼매가 된 존재는 고요함과 몸과 마음으로 온통 행복함을 먹고 사는 겁니다.  그것보다 더 높은 삼매는 완전히 청정함을 먹고 사는 겁니다. 평정상태에서. 그것보다 더 높은 상태는 공무변처의 지고스러운거죠.  모든 걸 초월해서 순수의식의 상태인겁니다. 이렇게 점점 더 높아지는 거예요.
경전에서 부처님께서 이러십니다.  [사자후에 대한 큰 경] 입니다.
사리뿟따여 “누군가가 어떤 사람이 이와 같이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인간과 모든 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궁극의 현명한 분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서 세상에 오셨다”라고.  올바로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다.  그것은 나에 관해 이와 같이 많은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인간과 모든 신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현명한 궁극의 분이 세상을 불쌍히 여겨서 세상에 오셨다 고 말하는 것은 바로 나를 두고 말하는 것이다.  진실이다 그 말씀입니다.

 그러시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리자여 이와 같이 내가 잘 설한 법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확실하고 위선이 없다. (위선이 없다 직역은 천을 더덕 더덕 덧 되지 않았다 완전히 깨끗한 하나의 전체이다)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분명하고, 열려있고, 확실하고 위선이 없는 나의 법 가운데 만약 수행승들이여, 거룩한 이로서 번뇌를 부수고, 수행이 원만하고, 해야 할 일을 해 마치고, 짐을 내려놓고, 이상을 실현하고, 존재의 결박을 끊고, 올바른 지혜를 얻어 해탈하면 그들에게 윤회는 없다. 그래 내 말대로 하면은.. 쭉 아까 그 말씀입니다.

아나함이 된다. 그렇지 못한다면 수다원 될 것이고, 수다원까지 설했습니다. 수다원까지가 안되더라도  수행승들이여, 이와 같이 내가 설한 가르침은 분명하고, 열려있고, 확실하고, 위선이 없다. 분명하고, 열려있고, 확실하고, 위선이 없는 나의 가르침 안에서(법안에서) 만약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면 누구나 모두 천상세계에 이른다.  
지금 부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요.  인간과 신들을 모두 포함해서 불쌍히 여기셔서 예정된 분이 오셨다 그러신 거예요 그것이 바로 나다.  난 예정되어서 온 분이다.  그러나 내가 하는 말은 진실한 말이다.  위선이 없고 완전한 진실이다. 내 말대로 행하면은 아라한이 된다.  해탈이 못 된다하면, 저 높은 어마어마하게 높은 천상세계에 일반 천상도 아니고, 거기서 셀 수 없는 세월을 살다가(물론 거기서 죽는 겁니다) 해탈할 것이다.  그게 못 된다하면 사다함이 될 것이다.  그게 못 되더라도 일 곱생 안에 해탈되면 수다원이 분명히 된다.  이 법은 진실한 법이기 때문에.  만일에 그렇지 않다면 법에 수행이 더딘 자들이죠. 방일하고. 그렇더라도 나를 믿고 나를 사랑해라.  나를 사랑하는 자 모두 다 틀림없이 천상세계 가리라.  이러신 겁니다.(제일 낮은 단계가) 지금 모두 천상세계에 이를 것이다. 라는 것은 [뱀에 대한 비유의 경]에 나오는 겁니다.

위선이 없는 나의 법안에서 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면 누구나 모두 하늘나라에 이르게 된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입니까 이분께서 여래십호를 얘기하시지만 스스로가 누구신지 밝히신 거예요. 아니 궁극이 아니시고야  그 분 사랑한다 고야 어찌 하늘나라에 갑니까.  궁극이시다 얘기 한 겁니다. 그래서 왜 제가 궁극을 도로 얘기 하냐 하면, 그래서 궁극의 분께서 이 갈애를 없앨수록 높은 존재가 된다고, 하시는 것이 진실이다. 라는 거예요.  앞에서 제가 다 생략하고 그 대목만 얘기한 것은, 왜 그랬나하면 경을 다 보시면 알꺼지만 방일하는 자들이 나와요 안 하고, 안 믿고, 왜냐하면 아 설마 감각적 쾌락이 너무 좋다. 라는 거죠.  그것 없이 나 어떻게 될까?

부처님께서 의심하지마라 없앨수록 높은 존재가 된다.  내 법대로만 따르면 분명히 해탈하고, 취착의 자취가 남아 있다고 거기서 해탈하면 아나함이고 그렇게 하면 사다함이고 수다원인데, 그렇게 안 해도 정 아니라 면은 내가 말한 바, 법을 믿고 나를 사랑해라.  모두 천상세계다.  이렇게 얘기 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람들이 사실 갈애를 버려라 하면, 이 감각적 쾌락을 버려라 하면, 잘 버리기 쉽지 않잖아요.  부처님께서 진실을 다 말씀해 주신 거고 이제 우리가 다음시간에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이다. 를 들으시면 이해가 되실 거예요.  

감각적 쾌락보다 십 만 배, 천 만 배 쉴 수 없게 우주와 먼지차이 정도로 더 큰 뭐가 없다면 감각적 쾌락을 버리라고 부처님께서 하셨겠습니까?  그것은 비교 자체가 안 되는 거다 이런 겁니다.  안 되지만 여전히 부처님께서는 생으로 그냥 버려라 이러시지 않으셨어요. 불가능 안하시니까 조금씩만 버려보세요.  그리고 조금씩 버려도 그것 버릴 생각만 하지 말고 삼매하세요.  방일하지 말고, 삼매가 안 되면 지금 부처님 설하신 것 아예 모를 것이다.  삼매가 안 되면. [경]에 계셔요. 감각적 쾌락이 최고이기 때문에 삼매가 안 된 사람은 법을 이해할 수가 없는 거예요 사실은. 그래서 삼매가 안 되면 제자가 될까 도 하고 환속하는 거예요.  삼매가 안 되면 이해가 안 된다.  왜 그러냐 하면 삼매라는 것이 쾌락보다 어마어마하게 지복인데.  그것이 안 되었는데.  쾌락을 왜 버리겠냐는 거죠.

 지복이 없는 사람이. 기쁨과 행복과 마음이 초선의 희열과 행복을 넘어서 삼선을 넘어서 마음이 행복해 져야 한다.  행복한 자의 마음이 사선에 든다.  그지없이 행복한 자가 마음이 사선에 든다. 그제 서야 법을 안다.  이해 되셨죠.  처음부터 한 번에 생으로 다 버리라가 아니라, 아예 버리지 않으면 그러니까 삼매 자체가 안 돼요.  거친 것들을 좀 버리고, 삼매 같이 해주고, 삼매가 되니까.  오~ 경험해 근거한 믿음이 생기니까  부처님을 믿기 시작하는 거예요.  그제 서야 맹신이 아니라 오~ 말씀대로다 생긴다고 오~ 더 버려야지 이렇게 가는 겁니다.  축복이 있는 겁니다.  네 오늘은 일찍 끝내겠습니다.  다음시간에는 새해에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성스러운 길을 할거니까요.  
새해에 복을 원하는 자, 복이 있기를
공덕을 짓기를 원하는 자, 공덕을 짓기를
참! 공부가 많이 될 수 있는 새해라고 봅니다.
축복 많이 받으십시오.
나무석가모니불 _()_                

녹취자 : 예 심.
2011. 6.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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