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12/15 - 사성제 3A - 순일 큰스님
저번 시간에요~ 색수상행식 사성제 중에요, 이것이 괴로움이다 했었죠. 그중에 마지막에 오취온 다섯 가지로 취착 하는, 집착하는 다섯 가지 무더기들 자체가 괴로움이다. 이랬었 잖아요.
그리고 생수상행식이 색은 몸은 몸뚱아리는, 항상 한가? 무상 한가? 했을 때에 답이 뭐였었죠? 네 몸뚱아리는 무상하다. 무상한 것은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죠. 몸뚱아리는 늙고 병들고 죽으니깐 그게 즐겁다 하면 큰일이죠. 괴로움입니다. 괴로운 것은 실체인가 실체가 아닌가? 실체가 아니죠. 그래서 몸뚱아리는 실체가 아니다 이렇게 했었고, 느낌은 항상 한가? 무상한가? 느낌은 무상한 것이라 했었죠.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고 그래서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느낌은 실체가 아니다. 상 인식은 인식작용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다. 여섯 가지 의도 행, 여섯 가지 의도 식, 무상한 거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이기 때문에 실체가 아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실체가 아니니까 어떻게 하라고 그러신 거냐면...
궁극의 불사의 문이 열렸다. 불성이 있다 그러신 거죠. 궁극의 불성이 있다. 불성이 될 려면 답은 간단하죠. 실체가 아닌 것을 버리면 되죠. 답은 그겁니다. 그래서 경전에 계신 말씀으로는 세상을 구원할 그 무엇이 없다면 구원은 없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할 그 무엇이 여기에 있다. 그것은 색수상행식은 아니다. 그래서 색수상행식이 그게 삭까야 거든요. 그걸 실체라고 믿으면 잘못된 견해다 가 유신견이죠. 몸과 마음이 실체라고 하면 아주 잘못된 견해죠. 그래 그게 실체가 아니라면 그것만 떠나 면은 실체의 불성이 드러나죠.
그런데 어떻게 떠나나는 거죠. 그래서 어떻게 떠나나는 건데, 그 죽으라는 얘기는 아니시잖아요. 색수상행식이 실체가 아니니깐 설마 죽으라는 말씀은 아니신 거죠. 살아서 떠나는 건데 살아서 어떻게 떠나는 거죠. 네~ 색수상행식이 즐거워하는 것들을 놓아 버려라. 그러신 거죠. 즐거워하는 것을 놓아 버리게 되면, 그것이 살아서 색수상행식을 놓은 거다... 그때 진실로 십 불성이 드러날 것이다. 이거죠 그래서 살아서 소멸을 체험한다. 비록 몸뚱아리는 남이 보기에 살아 있지만 그 자신은 나는 소멸 했다 라는 것을 소멸을 체험하는 거죠. 거기까지를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사성제에 네 가지의 성스러운 진리의 두 번째인 괴로움이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입니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는요 괴로움이 어떻게 해서 일어나는지 절차와 순서를 다 밝히신 거예요. 우리가 앞서서는 저번에 괴로움이 무엇인지 알아 봤고, 오늘은 괴로움의 일어남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는 겁니다.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 알아야지만 괴로움을 소멸할 수 있기 때문이죠.
괴로움의 일어남은 십이연기입니다. 칠판에 보시면 무명으로부터 해서 맨 마지막에 늙음,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라고 하는 전체의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그러셨던 거죠.
괴로움의 무더기라 할 때는 부처님께서 무더기 하면 실체가 아님을 애기 하는 거죠. 실체가 아니다. 무더기에 불과 한 거다. 그래 무명서 부터 쭉 가서 이렇게 괴로움이 생겼다 라는 걸 보여주는 건데요 이십이 연기에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본래의 목적은 괴로움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쭉 보여주셔 갖고, 소멸 할 수 있겠금 보여 주신 첫 번째 목적, 두 번째는 십이연기에서 세상의 일어남을 볼 수 있어요.
즉 두 가지를 요약하면은 아까 개체의 일어남과 또 하나는 세상의 일어남도 12연기에서 볼 수 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설명을 늘 어디서부터 하시냐면, 무명부터 안하시죠? 12연기 일어남을 말씀하실 때는 12번째로부터 시작 하세요. 거기엔 깊은 뜻이 있죠.
12번째를 가보면 노, 병, 사죠. 노 병 사부터 부처님께서 말씀 하십니다. 완전하게 열반 하시기전에 깨닫기 전에 보살님이 셨을 때 성불하시기 전에 도 닦으시고 계실때에, 공부가 많이 되셨을 때에, 나에게 전에 들어보지 못한 이러한 것이 생겼다 이렇게 고찰하시기 시작 하신 거예요.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없애야겠는데, 이걸 없애려고 하니까, 현명하게 관찰 하신게 이것이 원인을 먼저 알아야 겠다. 원인을 모르면 없앨 방법이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관찰 하시다 보니까 아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의 바로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태어남이다. 그렇죠. 태어남이 없으면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없죠. 아~~ 태어남이구나! 그럼 태어남의 직접적 원인은 뭘까, 아~~ 존재 구나... 왜 그러냐하면 저 존재가 욕계의 존재, 색계의 존재, 무색계라고 흔히 하는 비(非)색계의 존재인데요, 이렇게 되게 되면 세상 전체가 되죠.
욕계, 색계, 비색계 여기에 이러한 세계에 어떠한 식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어떠하게 라도 지금 존재가 없다면, 여기는 없는 거죠. 윤회라는 건 어떠한 형태로든 존재가 있어서 죽은 다음에 다른 세계나 그 세계에 태어나는 게 윤회인데 지금 세 가지 세계에 어떤 존재도 없다면 태어남이란건 없죠. 만약에 지금 말이죠. 지구 외에 이 욕계인데 우주가 지구 외에 우주만 해도 어떠한 존재도 없고 색계 비색계도 없다면 오직 지구 안에 우리만 있다 는게 되는데 한번 추론해 보죠.
우리만 있게 되면 이건 우연 발생론이 되는 거예요. 우연 발생론이기 때문에 죽으면 다 끝이다 라는 단멸이 되어 버리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경험적으로 단멸이 안 되고 계속해서 나고 죽고 하는걸 보는 데요. 이게 수학적으로 유의미성 아닙니까? 이렇게 의미가 있다는 건 단멸이 아니다 라는걸 얘기하는 겁니다. 우연 발생이 아니다 라는 거죠. 지금 논리적으로요 이렇게 존재가 있으려면 둘 중에 한가지 밖에 없어요. 윤회든지 창조론이든지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창조론은 아니다 라고 연기를 설하신 겁니다. 조건적 발생이다. 이러시는 거죠.
그러나 창조론이더라도 마찬 가지예요. 창조론이더라도 만약에 창조 되었더라도 천국 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처럼 욕계 색계 비색계는 다 있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창조가 아니다. 무명에 내에서 연기적으로 조건 발생 되었다.
이렇게 말씀 하신 건데요. 우선 여기서는 이렇게 간단하게 이야기 하구요 다시 돌아갑니다.. 존재가 있기 때문에 그 존재가 죽어서 윤회가 있어서 태어남이 있다 그러므로 욕계 색계 비색계 존재가 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초기 경전에서 여러 군데에서 천상은 지금 있다. 지옥도 있다. 조상도 있다. 초기경전의 말씀으로 없다고 생각 하는 사람은 잘못된 것이다.
있다고 그러시는데 있다가요 다 아시는 이야기 인데, 제가 왜 했냐 하면 어떤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은 지금 그런 게 없는데, 죽을 때 마음먹어서 그런데 가 만들어 지는 거다. 라고 잘못된 견해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야기 하는 거예요.
마음먹은 대로 그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라 그런 세계가 있고, 그 죽을 때의 마음의 상태가 현 상태가 공부가 된 상태가, 그 부합한 세계에 가는 거죠. 이렇게 말씀을 부처님께서 하신 겁니다.
그런데 지금 욕계 색계 비색계나 존재 존재의 원인은 뭘까? 부처님이 보신 거예요.
존재가 왜 존재 하냐는 거죠, 그래서 아~~ 취착이다 취착은 강하게 움켜쥠 이니까?
쉽게 집착이라고 이해 하시면 되는데. 집착하는 게 있으니까, 존재 한다는 거죠. 집착 하는 게 없다 면은 존재 할리가 없는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집착이 없는데, 다시 나 오고 픈 마음도 없는데, 윤회가 성립이 되겠어요. 다시 나오고픈 마음이 없으면 해탈이죠.
그래서 집착은 저 쪽에 쓰 있는데, 네 가지 취착 집착 감각적 욕망에 대한 취착, 견해에 대한집착, 계율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자아 교리에 집착, 아(我)가 있다, 아(我)가 없다. 는 이런 교리에 대한 집착이 있기 때문에 자만심 잘났다는 이런 것이 아닙니다. 내가 있다는 것이 성립이 되기 때문에 존재로 이룬다. 이런 말씀이 되는 겁니다. 집착의 직접적인 원인이 무엇일까 보시니까 갈애다. 갈애는 집착보다 낮은 집착이죠, 더 확고히 된 것이 집착입니다.
갈애의 원인이 뭘까 라고 했더니, 느낌이다. 라는 거죠. 한번 보시면 어떠한 형태로든 아무런 느낌이 없는데 말이죠. 갈애 한다 는게 있을 수 있나요? 아무 느낌도 없단 말이 예요. 어떤 식으로든 어떠한 형태로든 누구에게든 어떠한 느낌도 없는데 갈망한다. 있을 수 없죠...
그래 갈애의 원인은 느낌이다. 느낌의 원인은 뭘까.. 사유하시다 보니까 접촉이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 미촉법이 눈, 귀, 코, 혀, 몸, 마노라고 하는 마음. 안이비 설신의 하고 색성향 미촉법은 모양, 소리, 냄새, 맛, 감촉, 마음의 대상인 법, 이 양자가 접촉이 없는데, 아무접촉이 없는데, 느낌을 천명할 수 있겠냐는 거죠. 불가능하죠. 그래서 아~~느낌의 원인은 접촉이다. 감각접촉이다.
감각접촉의 원인은 뭔가? 감각 접촉의 원인은 바로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 미촉법이죠. 둘을 조건으로 해서 그래서 둘을 반연해서 접촉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원인은 안 이 비 설 신의 구나 여기에 안의비설신의라고 되어 있는 되요, 사실 안 이 비 설 신의 뿐 이 아니라, 색 성 향 미 촉 법 모두예요. 그것은 잠시 후 살펴보겠습니다.
안이비설신의의 원인은 뭘까? 아 정신과 물질의 무더기다.
이렇게 보신 거죠. 정신과 몸뚱아리등의 물질이 있어야지 만이 안 이 비 설 신 의가 생기니까 말이죠. 직접 원인이니까 정신 물질을 보면 사실은 세상 전체예요..
다 안 이 비 설 신 의만 있는 거예요. 어떻게 보면 정신 물질인데, 내 입장에서는 상대들이 색 성 향 미 촉 법이고, 상대 입장에서는 본인이 안 이 비 설 신 의고, 본인 외에는 다 색 성 향 미 촉 법이 되는 거죠.
그래서 저 밑에 안 이 비 설 신의라고 있지만, 안 이 비 설 신 의들 이렇게 보셔야 되는 거죠.
정신물질 밑에는 복수로 그래서 정신 물질이다. 정신물질 하게 되면, 이미 이 세상 전체를 총 망라해서 이야기 하는 겁니다. 정신물질 외에 더 이상 무엇이 있다 라고 여긴다면 그것은 범주를 벗어나는 것이다. 경에 계신 말씀이죠. 세상은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 미촉법 뿐이다. 이러셨죠. 부처님께서 그것을 넘어 서게 되면, 그것은 범주를 넘어서는 것이다. 이러셨습니다.
정신물질의 직접적인 원인은 뭔가요? 아뢰야식 입니다. 제가 비유 했었죠.
여기에 인조인간이 있는데 인간인간을 죽고 나면 인조인간을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 저장 칩, 기억을 저장하는 아뢰야식 칩만 뽑아갔고, 껍데기 다시 만들면 다시 인조 인간을 만들 수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의미로 본다면 정신 물질 보다 더 주체가 둘 중의 주인이 기억을 저장하는 아뢰야식이죠. 그렇게 본다면
정신 물질 보다 더 높은 애초의 원인이기 때문에 식이 원인이다.
식은 전에 얘기 드렸다 시피 함장식, 식별지 이렇습니다. 기억을 저장 하는 것 그 다음에 그것으로 식별 할 수 있는 것. 이렇게 가 아뢰야식이죠.
식의 원인은 뭘까? 부처님께서 보시니까 아~ 의도다, 저것은 상카라죠. 의도라고 하고 형성이라고도 직역입니다. 의도, 형성 이런 겁니다. 뭔가를 형성하게 하고 생기게 하고 만들려고 하는 것, 의도가 있는 것, 기독교식으로 얘기 하면 자유의지 뭐 이렇습니다. 제가 왜 자유의지~
자유의지는 조금 뉘앙스가 이상한데요, 굳이 기독교식으로 비유하는 이유는 여기 깡통 로봇이 있습니다. 깡통 로봇도 칩을 만들 수 있어요. 아뢰야식 같은 저장 칩을 만들고 모니터로 마노에 해당하는 뇌를 만들 수 있고, 눈, 귀, 코, 혀, 몸, 등을 만들어도 깡통 로봇은 못 움직입니다.
사람이 움직여 라고 해야지 움직이죠. 깡통 로봇이 스스로 움직일 려면, 의도가 있어야 됩니다. 의도만 있게 되면 스스로 움직입니다. 그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저도 잘 안 믿어지지만 그런 문제는 아닙니다. 의도가 있게 되면 꿈을 꿉니다. 말은 성립이 안 되지만, 만약에 깡통로봇에 의도만 줄 수 있다면, 깡통 로봇도 꿈을 꿉니다.
의지가 있기 때문이죠.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윤회가 되는 겁니다.
의도가 있어서 꿈을 꾼다는 것은 잠을 자면은 작은 죽음이 된 건데,일종에 잠속에서 의도가 있어서 식이 꿈을 꾼다는 것은 그것 자체로 작은 윤회를 보여 주는 겁니다. 꿈에서는 사실이지 않습니까? 깨면 은 덧없어도... 꿈에서도 느낌, 인식, 다 있지 않습니까..
12연기에 있는 것 꿈에 저 중에 빠진 거 있나 보십시오. 꿈을 꿔도 다 있습니다.
꿈에 늙고 병들고 죽는 거 다 있죠. 태어남도 있죠.
꿈에 갈애 취착 다 있죠, 느낌 인식 리얼하지 않습니까...
꿈에 다 있습니다. 그리고 꿈을 깨고 나니까, 가짜였구나! 알지만 꿈속에서는 진짜였지 않습니까? 그래서 저 12 연기에 꿈으로만 이야기해도, 의도가 있는 모든 존재들은 윤회를 하게 되는 겁니다. 어떠한 형태로 되었건 말이죠. 그러면
의도의 원인은 무엇일까 라고 부처님께서 사유하시니까 의도의 원인은 무엇일까요. 의도의 원인은 무명입니다. 적혀 있는데 왜 여쭈어 봤냐고 하면은요
의도의 원인이 불성이면 큰일 나잖아요 애초에 불성이 의도라고 해서는...
그러면 쭉 나가면 괴로움을 의도하셨다고 하는 건데, 곤란하잖아요? 무지가 무명이 어리석음이 이 의도를 해갖고 이렇게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 했다 는 거죠. 그래서 무명만 사라지면 불사의 문이 열렸다, 불성이 드러났다 는 거죠.
무명이 사라지면 명지가 드러난다고 그러셔요. 명지가 부처님께서 그대들의 목적은 우리들의 목적은 무엇인가 명지와 해탈이 목적이다. 이러셨을 때 그 명지예요. 반야와 좀 다른 단어 예요. 부처님께서 정형구로 법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가 생겼다 반야가 생겼다,
명지가 드러났다. 알록카가 드러났다 할 때 이렇게 정형구로 쓰시는데, 그때의 명지예요.
앞에 법에 대한 눈이 생겼다...할때는 작고 일반 눈이죠, 그 다음에 지혜가 생겼다 할때는 냐냐 그다음에 반야, 그다음에가 위쟈, 명지 이렇게 되는 겁니다. 광명 이렇게 나가는 거죠, 그래서 해탈....
무명이 사라지면 명지가 드러났고, 명지와 해탈을 이루는 거죠. 무명이 사라지면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관찰하신 거 쭈 ~욱 따라 올라가 봤는 되요. 맞다고 이해되시나요? 이게 맞다고 이해되시면, 법에 대해서 정말 밝은 눈이 생긴 겁니다. 자 우리가 한번 따라 올라 가면 부처님 말씀은 유일한 저번 시간에 얘기 했지만 유일한 원인 이예요. 두 번째가 없는 원인 이예요. 즉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의 원인은 태어남 하나 밖에 없다. 다른 원인은 없다.
태어남의 유일한 원인은 존재 밖에 없다는 거예요. 제 2의 원인은 없다. 존재의 유일한 원인은 취착 밖에 없다. 취착의 유일한 원인은 갈애다. 갈애의 유일한 원인은 오직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갈애가 있었던 거다. 느낌의 유일한 원인은 접촉이다. 접촉 없이는 느낌은 없다. 접촉의 유일한 원인은 안이비설신의 이다. 안이비 설신의의 유일한 원인은 정신과 물질의 무더기이다. 정신 물질이면 이 세상 다 만들어 지는 겁니다. 정신 물질의 유일한 무더기의 원인은 식이다. 식의 유일한 원인은, 의도, 형성, 이다.
형성의 유일한 원인은 무명이다. 라는 말을 쓰는 거예요.
이걸 사유해서 유일한 원인인지 알게 된 사람은 법을 관통한 자입니다.
7가지 경지 중에서 위에서 6번째 밑에서 두 번째 경지 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수다원이 되거나 그 생이 마감이 되기 전에 수다원이 된다 라고, 경에 계신 말씀이죠. 유일한 원인인지 알면은, 오늘은 물론 거~~ 세 번째인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은 알것 미다만 , 잠깐 살피고 가야 될 것이 다음번에 할 건 데요,
유일한 원인이면 얘기는 쉬워 지는 게, 무명이 소멸하면은 의도는 소멸하는 거지요.
의도가 소멸하면 식이 소멸하죠. 왜냐하면 이런 식으로 쭉 가서 식이 소멸하면 정신 물질이 소멸하고, 정신물질이 소멸 하니까 안이비설신의가 소멸할 수밖에 없고,
안이비설신의가 없는데, 접촉은 성립이 못되고 접촉이 없는데 느낌은 있을 수 없고, 느낌이 소멸하니까 갈애는 존재 할 수 없고, 갈애가 소멸하기 때문에, 취착은 소멸하고, 취착이 소멸하니까, 존재로 나오지 않고, 존재가 되지 않으니까, 태어남은 없고
태어남이 없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모두 소멸한다. 소멸하니까... 아~ 아무것도 없구나, 단멸이구나! 이게 아니죠.
부처님은 일곱 가지로 단멸을 부정하셨습니다.
개체가 소멸하니까 살아서 소멸이 되니까, 불성이 드러났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불성은
분명히 알고 본다. 이러셨죠. 태어남은 부수어졌고, 살아있는데 태어 났는건 부수어 졌다 색 수 상 행 식은 청청한 삶은 이루어 졌다.
하여야 할 일은 다하여 마치었고, 더 이상의 윤회란 없다.
열반이죠. 이런 말씀 하셨습니다. 그래 다시 두 번째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넘어 가기전에 잠깐만 이야기 드리면 유일한 원인, 유일한 원인이라 얘기해드렸듯이 유일한 원인으로 연결 되었을 때, 하나만 소멸되면 뚜루룩~ 이렇게 되는 거죠. 유일하기 때문에.... 그래서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살폈는데 하나 하나 보겠습니다.
무명은 부처님이 어떤 것이 무명이라고 그러셨나 하면,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라고 그러셨습니다. 즉 이것이 괴로움이다. 를 모르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를 모르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를 모르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이르는 길이다. 라는 팔정도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무명인 자가 괴로움을 소멸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 왜냐하면 괴로움이 무엇인지,
괴로움의 일어남의 원인도 모르고, 괴로움의 소멸도 모르고, 괴로움의 소멸에 이르는 길인 팔정도도 모르는 자가 괴로움을 소멸하는 것은 불가능 하다는 것은 맞는 거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그대들과 이 사성제를 몰랐기 때문에 이생에서 저 생으로 저 생에서 이생으로 수없는 생을 윤회로 치달려 왔도다... 그러나, 나는 이제 그것들을 보았도다. 이러시는 거잖아요. 게송에서 사성제를 모두 다 닦으셨죠? 그래서 나는 열반에 들었다. 그러므로 사성제를 모르면 해탈은 불가능 하다. 그래서 무명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 무명이다. 라고 하셨든 거예요. 이것은 팔정도에 가서도 마찬가지 이죠.
맨 처음 바른 견해, 정견 사성제를 아는 것이 바른 견해죠. 그래서 지금 우리는 사성제를 공부하고 있는 겁니다. 무명을 벗어나기 위해서 무명은 사성제를 모르는 것이다. 의도는 여기에 의도는 부처님께서 3가지의 의도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몸의 의도, 언어의 의도, 마음의 의도
이세가지 의도가 있다고 그러셨는데 쉽죠. 신. 구. 의. 삼업 할때 신,구, 의 생각 하시면 되요. 신(身) 구(口) 의(意) 삼업이 아니라 이 의도는 신, 구, 의, 의도. 그런데 색수상행식 할때 행은 달라요. 저번 잠깐 이야기 했지만 색수상행식이나 여기 두 번째 한자로 행이예요 상카라 라는 의도형성을 한자로는 두 번째 행으로 해 났어요, 직역은 의도와 형성인데 , 색수상행식의 행도 샹카라에요. 단어가 그런데 거기에 의도는 이 단어가 아니라 부처님께서는 여섯 가지 의도 눈의 의도, 코의 의도, 귀의 의도, 혀의 의도, 몸의 의도, 마음의 의도, 좀 다른 건데 저번에 간략히 설명을 드렸습니다. 지금 또 그 설명을 많이 드리면, 사족으로 빠질까봐 큰 줄기 이해 못할 까봐 건너갑니다.
지금 여기 의도는 몸의 의도. 언어의 의도. 마음의 의도, 세 가지 입니다.
그런데요 식 넘어가기전 이 의도를 잠깐 봐야 되는 이유가 세 가지가 [담마딘나 경] 에 비구니 스님인데 양면해탈 하셨어요. 놀라운 일입니다. 비구니 스님 무시 하는 것이 아니라 해탈에 경전에 양면해탈이 있고, 반야 해탈이 있어요.
통찰지 해탈 ,말은 위빠사나 해탈이라 하는 것, 양면 해탈은 심해 탈, 마음의 해탈과, 반야 해탈을 두 가지다 이룬 것이 양면 해탈이고, 부처님 이루신 것이 양면해탈이고, 양면해탈 보다 더 높은 열반은 없다. 제일 높은 해탈이예요 . 그것보다 조금 낮은 해탈이 반야 해탈 이예요. 그런데 초기 경전을 결집 하신 오백 명 의 스님들께서는 전부다 양면해탈 하신 분들로만 경을 결집 하였어요.
반야 해탈 하신 분은 전부 다 빠지셨죠. 부처님께서는 나는 스스로 양면해탈한 자이다.
이것보다 더 수승한 해탈은 없다. 이러셨는데 지금 담마딘나 비구니 큰스님께서 양면해탈 하신분입니다. 이분께서 경이 {담마딘나경}이예요. 거기서 상수멸에 대해서 남편이 여쭈어요.
전에 남편 이었든 분 전에 출가하기 전에 그래서 고귀한 스님이시어 열반하신 해탈하신 스님께 여쭙니다.
상수멸에 대해서 여쭙는데 담마딘나 스님께서 상수멸에 대해서 답을 하세요.
의문 나시면 석가모니부처님께 다시 가서 여쭈어 보세요. 전 남편께서 다시 석가 모니 부처님께 여쭈어 보니까 담마딘나 비구니는 아주 현자다. 현명한 비구니다.
상수멸은 그와 같다 라고 인정을 해 주세요.
상수멸의 절차가 뭐냐고 하면 상수멸이 8가지 삼매 다음에 제일 높은 궁극의 경지예요. 초선, 이선, 삼선, 사선, 오선, 육선, 칠선, 팔선, 우선 초선~ 사선까지는 색계의 네 가지 선 .저나나 일반적인 삼매라 하고, 뒤에 오선~팔선까지는 무색계라는 비색계 네 가지 삼매예요. 여기서 부터는 무심 삼매에요.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이것마저 초월한 궁극이 상수멸이거든요. 상과 느낌을 완전히 멸했다.
인식과 느낌이 멸했다. 그래서 이것을 들어가는 절차를 담마딘나 비구니 스님께 여쭈니까 스님이 답하시는게 먼저 1, 언어의 형성, 언어의 의도가 끊어집니다.
2. 몸의 의도가 끊어집니다. 3,마음의 의도가 끊어집니다. 그게 상수멸입니다. 이러신 거예요. 지금제가 이것을 증명한 이유가 이것이 상수멸에 대한 궁극의 경지를 말씀 하신거구요. 그전에 삼매의 절차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삼매의 절차입니다.
자~~ 언어의 형성이 먼저 끊어진다가, 분별이 끊어지기 시작해요. 삼매는 내면으로는 산란한 마음이 단일한 마음이 되는 것이요. 통일된 마음 그 방법을 어떻게 해야 하면 바깥으로는 하나의 수행주제에 가시나 수행 주제에 하나의 끝에 완전한 집중을 이루는 것예요. 삼매는 모두 공통된 이치입니다.
수행 주제에 관련해서 하나의 끝에 칼 같이 완전한 집중을 이루게 되면, 내면의 마음은 단일하게 된다.
그런데 언어의 형성이 먼저 끊어지는게 분별이 산란한 마음이 사라지기 때문에 말을 못해요. 마음이 말할 수 있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예요. 그래서 그 상태에 고요히 들어가면 누가 말을 시켜도 툭툭해도 억! 억! 억! 생각이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말을 못한다.
삼매에서는요, 그러다가 더 들어간 경지는 이것은 삼매는 하나더 나가기 전에 부처님께서는 삼매는 내면으로 들어가고, 고요히 가라앉고, 삼매에 든다. 절차이기도 합니다. 지금 분별이 끊어져서 말을 못하겠으니까, 좀 있다가 몸의 의도가, 몸의 형상이 끊어지기 시작 하는 것은 뭐냐면, 숨이 끊어지는 것입니다. 몸은 실지로 부처님께서 경에서 나는 꼭 몸이라고 한다고 하셨고, 사띠에 대한 경에서 많이 언급이 되고 계신 겁니다. 숨이 멈추어야 된다고 하셨고, 그런데 높은 삼매는 숨이 멈추지만 낮은 삼매는 숨은 안 멈추어도 그때는 몸이 숨이 아니고, 몸들이 신체의 형성이 전부다 움직임이 없는 쪽으로 갑니다. 움직일 수 없다..
그리고 그 다음에가 마음의 형성이 끊어진다. 그때 삼매에 든 겁니다. 상수멸은 궁극의 경지고....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드셔야 되요. 언어의 형성도 마음이 하는 거고, 마음의 형성도 마음이 하는 건데, 머가 앞서서 언어가 먼저 끊어진다고 뒤에 마음이 끊어진다고 할까,
언어도 마음이 있어야 하는 거잖아요, 둘 다 마음이 이렇게 적혀 있지 앞에 언어의형성의 마음은 분별의 마음, 뒤에 마음의 형성은 영상의 마음, 이것 다 이렇게 복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맨 처음에 자 경전의 얘기로 돌아갑니다.
부처님께서 색성향미촉법이 있다. 이것은 표상이 있다, 자~ 여기 모양이 먼저 있어요. 영상이 부처님이 이름이 생긴다. 그다음에 언어가 생긴다. 그 다음에 개념이 생긴다. 이 개념이 제일 확장된 분별 이예요. 자 다 마음이지만, 마음의 종류가 달라요 이중에 제일 산란한 마음이, 개념의 마음 이예요. 이해됐죠.
개념 마음 먼저 사라지고, 언어의 마음 먼저 사라지고, 이름도 몰라요 갑니다. 이름도 몰라요 하면 영상은 있죠. 영상을 안 하는 것도 마음이죠. 그 마음마저 사라지게 되면 영상까지 사라지면, 다섯 번째 공무변처가 되잖아요. 무심삼매의 첫 번째 세상을 다 초월해 버린자. 눈 뜬 채로, 그래서 좀 전에 언어의 형성이 사라진다면, 아까 언어의 마음이나 개념의 마음 정도 되는 거구요, 마음의 형성이 사라진다는 것은, 영상까지 사라진다는 거예요.
그래 전에 한번 얘기를 드렸지만, 실지로 일심 삼매에 들어가면, 여기 초가 두 개 있게 되요. 긴 초, 짧은 초, 눈으로 봅니다. 가이 없이 선명하게 봅니다. 선명하게 보는데 삼매에 들어가는 절차가 맨 처음 초란 이름을 잊어 먹어요. 이름을 몰라요. 그리고는 그 다음에 뭘 모르냐 하면, 길고 짧은 것을 몰라요. 영상만 있게 되요. 이것이 일심 삼매입니다.
일심 삼매는 조금 깊은 경지 입니다. 왜 이 순서냐 하면 지금 이름을 모르는 것은 아까 꽤 들어간 거죠. 이름을 모르니까, 언어나 분별이 먼저 끊어진 거예요. 이름을 몰라요 ...다음에 길고 짧은 것을 알지 않겠느냐. 길고 짧은 것도 배운 거예요. 태어난 다음에 그런데 왜 순서가 이름부터 모르냐 하면 길고 짧은 것을 먼저 배운거예요. 그래도 어렸을 때, 그리고 이름은 나중에 배운 거예요. 역순으로 나중에 배운 것들부터 분별이 끊어졌다고 하니까 그래서 영상만 있게 되면, 이것은 마음의 형상이 끊어진 것은 아니죠.
마음형상이 영상만 있는 거예요. 아까 담마딘나 스님께서는 그것까지 끊어서 상수멸 들어가는 것 말씀 하신 거고, 예를 든 것입니다. 자~~ 삼매의 절차 다시 요약합니다.
1 언어의 형성이 먼저 끊어진다는 이 얘기는 너무 많은 분별들이 먼저 사라 져야된다. 시끄러운 마음들이... 2 몸의 형성이 가이 없이 끊어진다는 것은 몸이 너무 조용해진다. 그러나 진짜 높은 그 다음에 경지는 몸이 조용해지는 것보다 더 가서 숨이 멈춘다. 그리고 마음의 형상만 딱하나 남으면 그게 일심삼매거나, 광활한 삼매라고 경에 계신 천안 삼매다.
형상마저 사라지면은 공무변처가 되는 겁니다. 공무변처는 물질을 초월하여 여기 물질이라는 것은 물질과 비물질을 다 포함 하는 거예요. 허공까지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상들을 색성향미촉법 모든 상들을, 마음에 잡도리 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든다.
마음의 형성이 끊어지면 그렇게 되는 겁니다.
2011년 2. 25 일 예심
'순일스님 법문 > 사성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성제 4A (2010-12-17) (1) | 2023.10.10 |
---|---|
사성제3B (2010-12-15) (1) | 2023.10.10 |
사성제2B (2010-12-3 ) (0) | 2023.10.09 |
사성제 2A (2010-12-3) (0) | 2023.10.09 |
사성제1B (2010-12-2 ) (0) | 2023.10.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