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가니까야 1권(각묵스님, 초기불전연구원, 2007년) p.419-45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우준냐에서 깐나깟탈라에 있는 녹야원에 머무셨다. 그때 나체수행자 깟사빠가 세존께 다가왔다. 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께서는 전적으로 고행을 비난하시나
2.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이렇게 들었습니다.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는 고따마 존자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자들입니까? 그들은 법에 따라 설명한 것입니까?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참으로 저는 고따마 존자를 헐뜯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3. “깟사빠여, ‘사문 고따마는 모든 고행을 비난한다. 그는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한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내가 말한 대로 말하는 자들이 아니다. 그 대신 그들은 있지도 않은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다.
여기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천안)]으로, 난행고행의 삶을 살았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 불행한 상태[苦界(고계)], 비참한 세계 [惡趣(악취)],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여기 깟사빠여, 그러나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천안)]으로, 난행고행의 삶을 살았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 좋은 세계[善處(선처)], 하늘 세계 [天界(천계)]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여기 깟사빠여,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천안)]으로, 적은 고통으로 머물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 불행한 상태[苦界(고계)], 비참한 세계 [惡趣(악취)],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여기 깟사빠여, 그러나 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한 하늘눈[天眼(천안)]으로, 적은 고통으로 머물던 어떤 고행자는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 좋은 세계 [善處(선처)], 하늘 세계 [天界(천계)]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깟사빠여, 나는 이런 고행자들의 온 곳과 갈 곳과 죽고 태어남을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고 있는데 어찌 내가 모든 고행을 비난하고 난행고행의 삶을 사는 고행자를 전적으로 힐난하고 비방하겠는가?”
4. “깟사빠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현명하고 영리하고 다른 자들과 논쟁에 뛰어나고 머리카락조차 맞힐 수 있는 지경이라서 그들은 예리한 반야로써 다른 견해들을 단번에 잘라버린다고 생각한다. 그들과 나는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일치하고 어떤 점들에 있어서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들이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어떤 때는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나도 어떤 때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이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나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그들이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나는 ‘옳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리고 내가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어떤 때는 ‘옳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그들도 어떤 때는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내가 어떤 때에 ‘옳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그들은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하고 내가 어떤 때에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을 어떤 때 그들은 ‘옳지 않다’고 말하기도 한다.”
서로 일치하는 점
5. “나는 그들에게 다가가서 이와 같이 말한다. ‘도반들이여, 서로 일치하지 않는 점들에 대해서는 일단 그대로 두도록 합시다. 서로 일치하는 점들에 대해서는 이제 지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saṅgha)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게 합시다.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까? 사문 고따마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입니까?’라고.’”
6. “깟사빠여, 그런데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은 부분적으로만 버렸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7. “깟사빠여, 또 다시 지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까? 사문 고따마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입니까?’라고.”
8. “깟사빠여, 그런데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은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였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9. “깟사빠여, 또 다시 지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까? 고따마의 제자들 집단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 집단입니까?’라고.”
10. “깟사빠여, 그런데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해로운 것이고 해로운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고 비난받아 마땅한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하지 않은 것이라 불리고, 검은 것이고 검은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고따마의 제자들 집단이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버렸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 집단은 부분적으로만 버렸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11. “깟사빠여, 또 다시 지자들이 [다음과 같이] 스승은 스승끼리, 집단은 집단끼리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도록 하자. 즉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이제 누가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까?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집단입니까, 아니면 다른 스승들의 제자들 집단입니까?’라고.”
12. “깟사빠여, 그런데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해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존자들이여, [우리 사이에서 서로 일치하는 점]들 가운데서 유익한 것이고 유익한 것이라 불리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고 비난받지 않는 것이라 불리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고 받들어 행해야 하는 것이라 불리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고 성자들에게 적합한 것이라 불리고, 흰 것이고 흰 것이라 불리는 이러한 법들이 있습니다. 사문 고따마의 제자들 집단이 이런 법들을 남김없이 성취하였습니다.
그러나 다른 스승들의 제자 집단은 부분적으로만 성취하였습니다.’라고. 깟사빠여, 이와 같이 여기서 지자들이 서로 문의하고 서로 이유를 묻고 서로 숙고하면 대부분은 내가 칭송된다.”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지성도), 八正道(팔정도)]
13. “깟사빠여, [우리에게는] 도가 있고 도닦음이 있나니 그대로 도닦으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된다. 깟사빠여, 그러면 [우리에게] 어떤 도가 있고 어떤 도닦음이 있기에 그대로 도닦으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되는가? 그것은 바로 이 여덟 가지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지성도)]이니,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노력, 바른 싸띠, 바른 사마디이니라. 깟사빠여, 이것이 바로 그 도요, 바로 그 도닦음이니, 그대로 도닦으면 ‘사문 고따마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다.’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되고 스스로 보게 된다.”
여러 가지 고행
14.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1) 그는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고,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기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산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나방이 날아다닐 때 받지 않으며,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습니다.
그는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 집만 가서 두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번만 … 이런 식으로 반 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삽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2) 그는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입니다.
도반 고따마시여, 다음과 같은 고행을 닦는 것도 이러한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사문의 본업이라 불리고, 바라문의 본업이라 불립니다.
(3) 그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습니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은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고, 가시를 가까이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데 몰두하며 지냅니다.”
고행의 무의미함
15. “(1) 깟사바여, 비록 그가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 먹고, … 이런 식으로 반 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더라도, 그는 단지 방편으로 음식을 먹기에만 몰두하여 사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반야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 [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2) 깟사빠여, 비록 그가 채소를 먹는 자이고, …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 할지라도,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반야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 [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3) 깟사빠여, 비록 그가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그는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반야의 구족을 수행하지 못하고 실현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는 사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고 바라문의 본업으로부터 멀리 있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 [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6.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1)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 먹고, … 이런 식으로 반 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나체수행자가 되어야지, 관습을 거부하며 살아야지, 손에 [받아] 핥아서 먹어야지, … 이런 식으로 반 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2)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채소를 먹는 자이고, …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이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채소를 먹는 자가 되어야지, …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가 되어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3)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 물 긷는 하녀까지도 ‘오, 참으로 나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살아야지,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살아야지, …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살아야지.’라고 하면서 이렇게 행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 어렵고 너무나 행하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행하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17.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습니다.”
“(1) 깟사빠여,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것은 세속에서는 당연하다.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 이런 식으로 반 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사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 물 긷는 하녀까지도 ‘이 사람은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 먹고, … 이런 식으로 반 달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산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2)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채소를 먹는 자이고, …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라는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 물 긷는 하녀까지도 ‘이 사람은 채소를 먹는 자이고, …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삶을 영위하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3) 깟사빠여, 그런데 만일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 할지라도,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지 못하다.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심지어 물 긷는 하녀까지도 ‘이 사람은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라고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깟사빠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닦는 것과는 다른 것을 두고 사문의 본업과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 어렵고 너무나 알기 어렵다고 한다면 ‘사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 바라문의 본업은 알기가 어렵다.’라는 말은 적절하다. 깟사빠여, 참으로 비구가 적의가 없고 악의가 없는 자애로운 마음을 닦고,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심해탈)]과 반야의 해탈[慧解脫(혜해탈)]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게 될 때, 이를 두고 ‘비구는 사문이다. 비구는 바라문이다.’라고 일컫는다.
계의 구족
18.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것이 계의 구족입니까? 어떤 것이 마음의 구족입니까? 어떤 것이 반야(paññā)의 구족입니까?”
“깟사빠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응공)]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정등각)]이며, 명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명행족)]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선서)]이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세간해)]이며, 가장 높은 분 [無上士(무상사)]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조어장부)]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 [天人師(천인사)]이며, 부처님[佛(불)]이며, 세존(世尊)이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법을 설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께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막혀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깍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 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깍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공부짓는다. 유익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싸띠와 알아차림[正念正知(정념정지)]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짧은 길이의 계
깟사빠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겸손하고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 생명의 이익을 위하고 연민하며 머문다. 이것이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읜다. 준 것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청정하게 머문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는다.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읜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그는 중상 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 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읜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서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그는 욕하는 말을 버리고 욕하는 말을 멀리 여읜다. 그는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 바르고 대중이 좋아하고 대중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하는 자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그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읜다. 그는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며, 담아둘 만하며 이유가 있고 의미가 분명하며 이익을 줄 수 있는 말을 시의 적절하게 말하는 자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①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② 하루 한 끼만 먹는 자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그만두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③ 춤, 노래, 음악,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④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⑤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의었다.
⑥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⑦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⑧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⑨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⑩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⑪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⑫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⑬ 코끼리, 소, 말,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⑭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⑮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⑯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⑰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⑱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⑲ 상해, 살상,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중간 길이의 계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친다. 즉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 번째로 종자로 번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하고, 옷을 축적하고, 탈것을 축적하고, 침구와 좌구를 축적하고, 향을 축적하고, 재산을 축적하여, 그 축적한 것을 즐기는데 빠져 지낸다. 그러나 그는 축적해두고 즐기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구경거리를 보는데 빠져 지낸다. 즉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심벌즈로 하는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 코끼리싸움, 말싸움, 물소 싸움, 황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 메추리싸움, 봉술, 권투,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열병이다. 그러나 그는 구경거리를 보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노름이나 놀이에 빠져 지낸다. 즉 팔목(八目) 체스장기, 십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놀이, 자치기, 맨손으로 벽에 그리는 놀이, 공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놀이, 재주넘기, 잎사귀 접어서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글자 맞히기, 생각 맞히기, 불구자 흉내 내기이다. 그러나 그는 노름이나 놀이에 빠지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낸다. 즉 아주 큰 침상, 다리에 동물 형상을 새긴 자리, 긴 술을 가진 이불,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이불, 꽃들을 수놓은 양털이불, 솜으로 채운 누비이불, 동물을 수놓은 양털이불,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양털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말 등덮개, 수레 깔개, 사슴가죽 깔개, 영양가죽 깔개, 차양 있는 양탄자, 붉은 베개와 붉은 발 받침이 있는 긴 의자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에 몰두한다. 즉 몸에 향 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안마하기, 향수로 목욕하기, 사지를 안마하기, 거울보기, 속눈썹 검게 칠하기,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기, 얼굴에 분칠하기, 화장, 팔찌, 머리띠, 장식용 지팡이, 장식한 약통, 긴 칼, 일산, 수놓은 신발, 터번, 보석으로 만든 관모, 야크꼬리로 만든 불자, 긴 술로 장식된 흰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치장하고 장엄하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쓸데없는 이야기에 몰두하면서 지낸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재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 번영과 불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이야기들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논쟁에 몰두하면서 살아간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논쟁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즉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가시오.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계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계략과 쓸데없는 말을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긴 길이의 계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賤)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몸의 특징으로 예언하기, 예감이나 징조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을 섬김, 주걱으로 헌공함, 벼 헌공, 쌀가루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입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수상(手相)보기, 집터보기, 대지보기, 묘지의 귀신 물리치기, 망령 물리치기,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주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에 대항하는 주문, 동물들의 울음을 아는 주문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보석, 옷감, 지팡이, 칼, 긴 칼, 화살, 활, 다른 무기, 여자, 남자, 소년, 소녀, 남녀 노비, 코끼리, 말, 물소, 황소, 암소, 염소, 양, 닭, 메추리, 큰 도마뱀, 귀걸이(혹은 집의 박공), 거북이, 다른 동물들 - 이런 것들의 색깔이나 모양이나 다른 특징들을 보고 점을 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입니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 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저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입니다. 저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 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저쪽 왕들이 패배할 것입니다. 저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이 패배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저편이 승리할 것입니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혹은 잘못된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있을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할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행성의 합삭은 다시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들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짙은 노을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천둥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의 뜨고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각각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풍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결혼할 때에 신부 집에 들어가는 날 또는 떠나는 날을 택일하고, 약혼이나 이혼의 길일을 택해 주고, 돈을 모으거나 지출하는 날을 택해주고, 불행이나 행운을 가져오게 하는 주문을 외우고, 발육부진의 태아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주문을 외우고, 말더듬이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에 풍이 들도록 주문을 외우고, 귀머거리가N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거울에 [신을 모셔 와서] 물어 보는 점을 치고, 소녀의 몸에 [신을 모셔 와서] 물어 보는 점을 치고, 하녀의 몸에 [신을 모셔 와서] 물어 보는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賤)한 재주를 부려 삿된 생계로 생계를 꾸린다. 즉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지낸다. 구토제와 하제와 거담제와 점액제거제를 주고,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 제거제를 주고, 안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의 일을 하고, 이전에 처방한 약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진통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하천한 재주를 부려 영위하는 삿된 생계를 멀리 여의었다. 이것도 그에게는 계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관정(灌頂)한 끄샤뜨리야 왕은 적을 정복하였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사마디의 구족
19. “(1) 깟사빠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전체상)]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세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안근)]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의)]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의근)]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 들어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2) 깟사빠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싸띠와 알아차림[正念正知(정념정지)]을 잘 갖추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분명히 알면서[正知(정지)]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가사 ․ 발우 ․ 의복을 지닐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걸으면서 ․ 서면서 ․ 앉으면서 ․ 잠들면서 ․ 잠을 깨면서 ․ 말하면서 ․ 침묵하면서도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싸띠와 알아차림을 잘 갖춘다.
(3) 깟사빠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하는가?
깟사빠여, 여기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위장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간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 날개만을 짐으로 하여 날아가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몸을 보호하기 위한 옷과 위장을 지탱하기 위한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것을 지키며 간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얻음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싸띠와 알아차림[正念正知(정념정지)]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돌아와서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 세우고 전면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4)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이 없이 머문다.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싸띠를 확립하고 알아차리며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빚을 내어 장사하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성공하여 옛 빚을 갚을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이 생길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빚을 내어 장사를 했다. 그런 나는 장사에서 성공하여 이제 옛 빚을 다 갚았다. 그뿐만 아니라 부인을 한 명 부양할 수 있는 여분이 생겼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는 사람과도 같다. 그 사람은 식욕도 잃어버릴 것이고 그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며칠 후 그는 병에서 회복될 것이다. 식욕도 왕성하고 힘도 다시 생겨날 것이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렸다. 식욕도 잃어버렸고 나의 몸에 힘이라곤 하나도 없었다. 그런 나는 이제 병에서 회복하였다. 식욕도 왕성하고 힘도 다시 생겨났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옥에 갇혔다가 얼마 뒤 옥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 그에게는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옥에 갇혔다. 그런 나는 이제 옥에서 풀려났다. 나는 안전하고 두려울 것도 없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종이 되어 자기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매여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얼마 뒤 종살이에서 풀려난 것과도 같다. 그 사람은 이제 독립하여 더 이상 남에게 매이지 않고, 제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종이 되어 내 생각대로 행동하지도 못하고 남에게 매여서, 가고 싶은 곳에도 갈 수 없이 지내다가 이제 종살이에서 풀려났다. 이제 나는 독립하여 더 이상 남에게 매이지 않고, 가고 싶은 대로 갈 수 있는 자유인이 되었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어떤 부유하고 번창한 사람이 먹을 것도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걷는 것과 같다. 그 사람은 얼마 뒤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처소인 마을 주변에 무사히 다다랐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전에 부유하고 번창했는데 먹을 것도 없고 위험이 도사리는 사막을 걸었다. 이제 나는 그 사막을 다 건너서 위험이 없는 안전한 처소인 마을 주변에 무사히 다다랐고 또 재산도 축나지 않았다.’라고. 그로 인해 그는 환희롭고 마냥 행복하기만 할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기 마음 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오개)]가 제거되지 못한 것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진 사람, 환자, 옥에 갇힌 사람, 종, 사막을 걷는 여행자로 여긴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로운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사마디에 든다. 그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 고찰[伺(사)]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희)]과 행복[樂(락)]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솜씨 좋은 때밀이나 그의 조수가 금속 대야에 목욕가루를 가득 담아 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가며 계속 이기면 그 목욕가루덩이 [반죽]에 물기가 젖어들고 스며들어 물기가 안팎으로 흠뻑 스며들 뿐, 그 덩이가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인 고찰[伺(사)]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은 없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가 있다 하자. 그런데 그 호수에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또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마저도 내리지 않는 다면 그 호수의 밑바닥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흠뻑 적시고 충만케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할 것이다. 그러면 온 호수의 어느 곳도 이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 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sati)를 확립하고알아차리며[正念正知(정념정지)]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 禪(선)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정하고 싸띠(sati)를 확립하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피어 있는 호수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차가운 물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든다면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어떤 부분도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소멸하였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사티(sati)가 청정한
[捨念淸淨(사념청정)]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람이 머리까지 온몸에 하얀 천을 덮어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깟사빠여, 이것도 역시 그에게는 마음의 구족이다.
반야의 구족
20. “(1)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반야로 본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 라고.
깟사빠여, 예를 들면 깨끗하고 최상품인 유리 보석이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다 갖추었으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다 하자. 그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서 ‘이 유리 보석은 깨끗하고 최상품이며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다 갖추었는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구나.’ 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반야로 본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 알음알이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 라고.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2)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낸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람이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골라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들 것이다.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갈대이다. 문자 풀과 갈대는 다르다. 문자 풀로부터 갈대가 제거되었다.’라고.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칼집으로부터 칼은 끄집어내졌다.’라고.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뱀을 개미집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개미집이다. 뱀과 개미집은 다르다. 개미집으로부터 뱀은 끄집어내졌다.’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만든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낸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3)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 [神足通(신족통)]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숙련된 도기공이나 도기공의 제자가 잘 준비된 진흙으로부터 그릇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상아 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상아로부터 어떤 상아 제품이나 원하는 대로 만들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금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금으로부터 어떤 금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 [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4)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 [天耳界(천이계)]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는다. [天耳通(천이통)]
깟사빠여, 예를 들면 먼 길을 여행하는 자가 큰북소리, 무딩가 북소리, 고동소리, 빠나와 북소리, 딘디마 북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큰북소리다. 이것은 무딩가 북소리다. 이것은 고동소리다. 이것은 빠나와 북소리다. 이것은 딘디마 북소리다.’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는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반야로 본다.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②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③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④ 성냄을 여읜 마음은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⑥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⑦ 수축한(단일한) 마음은 수축한(단일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⑧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⑨ 고귀한 마음은 고귀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⑩ 고귀하지 않은 마음은 고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⑪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⑫ 위가 없는 마음은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⑬ 사마디에 든 마음은 사마디에 든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⑭ 사마디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사마디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⑮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여인이나 남자가 젊으면 치장하기를 좋아하여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얼굴 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는 것은 점이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반야로 본다.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중간 생략>…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6)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람이 자기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또 다른 마을로 갔다가 자기 마을로 되돌아온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나는 그 마을로부터 다시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로부터 다시 우리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明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7)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천안통)]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깟사빠여, 예를 들면 사거리의 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시력 좋은 사람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과 걷거나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는구나, 이들은 나오는구나, 이들은 길을 걷고 있구나, 이들은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구나.’라고.
깟사빠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 (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8)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누진통)]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야로 본다. 깟사빠여, 이것 역시 그에게는 반야의 구족이다.
깟사빠여, 이러한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반야의 구족과는 다른 더 높고 더 수승한 계의 구족과 마음의 구족과 반야의 구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자후
21. “깟사빠여, 계를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계를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계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계[增上戒(증상계)]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깟사빠여, 고행을 통한 금욕을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을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고행을 통한 금욕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금욕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깟사빠여, 반야를 설하는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반야를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반야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반야 [增上慧(증상혜)]에 관한 한 내가 더 뛰어나다.
깟사빠여, 해탈을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서 그들은 여러 가지 방편으로 해탈을 칭송하여 말한다. 깟사빠여, 그러나 성스러운 최상의 해탈에 관한 한 거기서 나는 나 자신과 동등한 자들을 관찰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더 뛰어난 자가 있겠는가! 참으로 높은 해탈에 관한한 내가 더 뛰어나다.”
22.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빈집에 사자후를 토하지 대중들 가운데 그렇게 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러나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하지는 않는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아울러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여, 외도 유행승들이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있을지도 모른다.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러나 아무도 그에게 질문을 하지는 않는다. … 그에게 질문을 한다. 그러나 그의 질문을 설명하지 않는다. … 그들의 질문을 설명한다. 그러나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하지는 못한다. …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그러나 그들은 들어야 할 만한 것으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 들어야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듣고서 청정하게 믿지는 않는다. … 듣고서 청정하게 믿는다. 그러나 청정한 믿음을 행하지는 못한다. … 청정한 믿음을 행한다. 그러나 여여함을 닦지는 못한다. … 여여함을 닦는다. 그러나 도닦음을 성취한 분을 흡족하게 하지는 못한다.’라고. ‘그렇게 말하지 말라.’는 것이 내가 그들에게 하려는 말이다.
깟사빠여, 그들에게 나는 ‘사문 고따마는 사자후를 토한다. 그것도 대중들 가운데서 그렇게 한다. 아울러 그는 용맹스럽게 사자후를 토한다. 그에게 질문을 한다. 그들의 질문을 설명한다. 질문에 대한 설명으로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한다. 들어야 할 만한 것으로 생각한다. 듣고서 청정하게 믿는다. 청정한 믿음을 행한다. 여여함을 닦는다. 도닦음을 성취한 분을 흡족하게 한다.’라고 말한다.”
깟사빠가 구족계를 받음
23. “깟사빠여, 한때 나는 라자가하에서 독수리봉 산(영취산, 靈鷲山)에 머물렀다. 거기서 니그로다라는 어떤 고행자가 높은 금욕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다. 나는 그가 질문한 높은 금욕에 대해서 설명해 주었다. 내가 설명해 주었을 때 그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마치 크게 도취한 것 같았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세존의 법을 듣고 마음이 흡족해져서 마치 크게 도취한 것 같지 않은 자가 누가 있겠습니까?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에 출가하고자 합니다 저는 구족계를 받고자 합니다.”
24. “깟사빠여,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한다.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한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외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견습기간을 거쳐야 하고 넉 달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여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하신다면 저는 4년의 견습기간을 거치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하게 하시어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받게 해 주소서.”
나체수행자 깟사빠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였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 깟사빠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지냈다. 그는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성취하고자 집에서 나와 출가하는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렀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초월지로 알았다. 깟사빠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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