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쌍윳따 니까야

S12:21-S12:30. 제12상윳따 - 제3장 십력품(Dasabala vagga)

Daisy청량심 2023. 5. 25. 08:56

-     십력 경1

-     십력 경2

-     기반 경

-     외도 경

-     부미자 경

-     우빠와나 경

-     조건 경

-     비구 경

-     사문/바라문 경1

-     사문/바라문 경2

 

 

기반 경(S12:23) 
상윳따니까야 2권. (각묵스님, 2009년) p.173-180

3. “비구들이여, 알고 보는 자는 번뇌들이 멸진한다고 나는 말하고,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번뇌들이 멸진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는 자에게 번뇌들이 멸진하는가?
‘이것이 물질이다. 이것이 물질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물질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느낌이다.
이것이 느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느낌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인식이다. 이것이 인식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인식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심리현상들의 사라짐이다. 이것이 알음알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알음알이의 사라짐이다.’라고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자에게 번뇌들은 멸진한다.”

4. “비구들이여, [번뇌들의] 멸진에 대한 멸진의 지혜(ñāṇa)는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멸진의 지혜의 기반인가? 해탈(vimutti)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해탈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해탈의 기반인가? 탐욕의 빛바램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탐욕의 빛바램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탐욕의 빛바램의 기반인가? 염오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염오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염오의 기반인가? 있는 그대로 알고 봄[如實知見]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있는 그대로 알고 봄(ñāṇa-dassana)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의 기반인가? 삼매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삼매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삼매의 기반인가? 행복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행복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행복의 기반인가? 고요함[輕安]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고요함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고요함의 기반인가? 희열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희열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희열의 기반인가? 환희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환희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환희의 기반인가? 믿음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믿음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믿음의 기반인가? 괴로움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괴로움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기반인가? 태어남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태어남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태어남의 기반인가? 존재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존재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존재의 기반인가? 취착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취착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취착의 기반인가? 갈애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갈애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갈애의 기반인가? 느낌이라고 말해야 한다. … 감각접촉이라고 말해야 한다. … 여섯 감각 장소라고 말해야 한다. … 정신 ․ 물질이라고 말해야 한다. … 알음알이라고 말해야 한다. … 의도적 행위들이라고 말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의도적 행위들도 기반이 있는 것이지 기반이 없는 것이 아니라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의도적 행위들의 기반인가? 무명이라고 말해야 한다.”

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무명을 기반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기반으로 알음알이가, 알음알이를 기반으로 정신․물질이, 정신․물질을 기반으로 여섯 감각장소가, 여섯 감각장소를 기반으로 감각접촉이, 감각접촉을 기반으로 느낌이, 느낌을 기반으로 갈애가, 갈애를 기반으로 취착이, 취착을 기반으로 존재가, 존재를 기반으로 태어남이, 태어남을 기반으로 괴로움이, 괴로움을 기반으로 믿음이, 믿음을 기반으로 환희가, 환희를 기반으로 희열이, 희열을 기반으로 고요함이, 고요함을 기반으로 행복이, 행복을 기반으로 사마디가, 사마디를 기반으로 있는 그대로 알고 봄(ñāṇa-dassana)이, 있는 그대로 알고 봄을 기반으로 염오가, 염오를 기반으로 탐욕의 빛바램이, 탐욕의 빛바램을 기반으로 해탈이, 해탈(vimutti)을 기반으로 멸진의 지혜(ñāṇa)가 있다.”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러하다. 산꼭대기에서 억수같이 비가 내리면 경사진 곳을 따라 빗물이 흘러내려서 산의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득 채운다. 협곡과 계곡과 지류를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작은 못을 가득 채운다. 작은 못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큰 못을 가득 채운다. 큰 못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작은 강을 가득 채운다. 작은 강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큰 강을 가득 채운다. 큰 강을 가득 채우고는 다시 바다와 대해를 가득 채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무명을 기반으로 의도적 행위들이, 의도적 행위들을 기반으로 알음알이가, … 탐욕의 빛바램을 기반으로 해탈이, 해탈을 기반으로 멸진의 지혜가 있다.”

 

 

부미자 경(S12:25) 
상윳따니까야 2권(각묵스님, 2009년) p.188

2. 그때 부미자 존자가 해거름에 홀로 앉음을 풀고 일어나 사리뿟따 존자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사리뿟따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부미자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3.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남이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고 남도 짓는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업을 설하는데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천명합니다.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어떻게 설하며 어떻게 가르칩니까?
우리가 어떻게 설명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입니까? [세존께서 설했다고 전해진 이것을 반복 하더라도]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겠습니까?”

4. “도반이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已生(연이생)]이라고 세존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면 무엇을 반연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습니까? 감각접촉을 반연합니다. 이렇게 설하면 세존께서 설하신 것과 일치하게 되며, 세존을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세존께서 설하신 것을 반복해서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됩니다.
도반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합니다.
도반이여, 여기서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5.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부미자 존자와 나눈 대화에 대해서 들었다. 그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아난다 존자는 사리뿟따 존자가 부미자 존자와 나눈 대화를 모두 세존께 아뢰었다.

6. “장하고도 장하구나, 아난다여. 사리뿟따는 바르게 설명하였다. 아난다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연기된 것[緣而生(연이생)]이라고 나는 말했다.
그러면 무엇을 반연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이] 있는가? 감각접촉을 반연한다.
이렇게 설하면 내가 설한 것과 일치하게 되며, 나를 거짓으로 헐뜯지 않고 내가 설한 것을 반복하여 설한 것이며, 어떤 동료수행자도 나쁜 견해에 빠져 비난의 조건을 만나지 않게 된다.
아난다여, 여기서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한다. …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천명하는 것도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한다.
아난다여, 여기서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가 짓는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업을 설하여 즐거움과 괴로움은 자기 스스로도 짓지 않고 남이 짓지도 않는 우연히 발생한 것이라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이 없이 [그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할 것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7. “아난다여, 몸이 있을 때 몸을 반연하여 일어난 의도를 조건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아난다여, 말이 있을 때 말을 반연하여 일어난 의도를 조건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아난다여, 마노[意(의)]가 있을 때 마노를 반연하여 일어난 의도를 조건하여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이 의도는 무명을 조건으로 한 것이다.”

8. “아난다여, 스스로가 몸으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아난다여, 남들이 그에게 몸으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알아차리면서 몸으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몸으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9. “아난다여, 스스로가 말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아난다여, 남들이 그에게 말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알아차리면서 말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몸으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10. “아난다여, 스스로가 마노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아난다여, 남들이 그에게 마노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알아차리면서 마노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알아차리지 못하면서 마노로 의도적 행위를 짓더라도 그것을 조건으로 해서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이 일어난다.”

11. “아난다여, 이러한 법들은 무명의 영향을 받는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면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인 몸이 없으며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인 말이 없으며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인 마노가 없다. 내적인 즐거움과 괴로움을 일어나게 하는 조건인 터전이 존재하지 않고 … 기반이
 재하지 않고 … 장소가 존재하지 않고 …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