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존께서는 진지 드실 때가 되어 가사를 입으시고 발우를 가지시고 사위 큰 성에 들어가셔서 걸식을 하셨다. 그 성 안에서 차례로 걸식하신 후 본래의 처소로 돌아오시어 공양을 드신 뒤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승가는 하루에 한 끼 공양을 아침 일찍 하였는데 일곱 집을 차례로 돌아 걸식을 하였다. 일곱 집을 차례로 돌아 걸식을 한 데에는 연유가 있다. 그 당시에 부자 집으로만 걸식을 하는 스님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집으로만 걸식을 하는 스님들이 있었다. 여기서 부자 집으로만 걸식을 하는 스님들도 두 부류가 있었다. 한 부류는 맛있고 좋은 음식을 위해서였을 것이지만 다른 부류의 스님들은 차마 가난한 집에서 탁발하기에는 마음이 아파서였다.
가난한 사람들의 집으로만 걸식을 했던 대표적인 스님이 바로 마하가섭존자님-부처님이 열반하신 후에 스승의 위치를 물려받으신 분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시다. 가난한 사람들은 그들이 먹기에도 음식이 부족하였기 때문에 그런 집에서 음식을 공양 받으면 질도 안 좋고 양도 아주 적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집만 걸식하였던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가섭존자님이 보시기에 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경우에 이번 생에 분발하기가 쉽지 않았고 다음 생도 그와 같아서 특별한 기회 없이는 가난의 괴로움을 벗어나기란 지난한 일이었다. 그런데 만약 가난한 사람들이 가섭존자님께 공양을 올리게 된다면 그 공덕은 참으로 커서 오랜 세월 동안 그들에게 많은 이익과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을 아시기 때문에 가난한 집으로만 걸식을 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공덕의 과보가 얼마나 큰 것인지는 신들의 왕인 삭까마저도 가난한 사람으로 변신해서 가섭존자님께 공양을 올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이렇게 부자 집과 가난한 집을 스님마다 서로 따로이 걸식하는 것을 아신 부처님께서는 공평하게 부자 집과 가난한 집을 따지지 말고 걸식을 시작한 집으로부터 차례로 일곱 집을 돌아 걸식하게끔 새로이 율을 정하셨다.
그 당시에 대다수의 스님들은 맨발로 다녔다. 부처님께서 탁발에서 돌아와 발을 씻으신 대목에서 이것이 잘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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