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홀로 앉아 머묾동안 생긴 사유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데이지의 지나간 과거시간들을 떠올려보면 대부분 괴로움의 시간들이었습니다. 부모님의 품 안에 있었을땐 화목하지 못하고 가난했던 환경때문에 우울했고, 부모님 품을 떠났을땐 누구나 다 그랬겠지만, 쥐뿔도 없고 든든한 배경도 없고 뭐 하나 그리 잘난 것도 없어 세상에서 홀홀단신으로 버티고 견디고 살아남아야한다는 마음을 장착한 채로 때로는 그냥 흐름에 쓸려가듯이 때로는 분발하며 괴로움이 내재한 채로 살아야 했었습니다. 제행개고의 위빠사나는 이미 장착되었다고 봅니다. ^^
(세상을 보면 저보다 더 힘들고 더 어려운 분들이 많습니다. 연민의 마음으로 모든 분들이 행복하고 평화로워지시길 기원합니다.)
지금은 안정되고 뭐든지 내편이고 받쳐주는 남편이 있고 수행할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만, 여전히 제 안에 뭔지 모를 괴로움들이 배경처럼 있습니다.
앉아서 집중하려고 노력하다가 잘 안돼 여래십호를 되내이고, 부처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 순일 큰스님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냈습니다. 그러면 희열이 정말 잘 옵니다. 그러던 중 이 생각에 꼬리를 물어 부처님이 귀의처이고, 아따(궁극)가 귀의처이고 법이 귀이처라는 사유가 일어났고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에 눈물이 계속 쏟아졌습니다.
제가 수행을 시작하게 된 것은 직장에서의 고단함과 괴로움들 때문이었는데, 일을 정말 남들보다 많이 열심히 했었습니다. 남들보다 잘 하고 싶은 생각에서였습니다. 사유는 제가 이렇게 했던 것들이 제 깊은 내면에 있었던 살아남아야한다는 두려움이 원인이었다는 것을 알게했습니다.
그런데, 다 내려놓고 수행을 하니 이제 부처님과 순일 큰스님이 내 뒷배경이고 안식처이고 귀이처라고 생각하니 안도감에, 감사함에, 그동안 숨겨왔었던 서러움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시 생각하니 여전히 눈물이 고이네요. 정말 든든합니다. 이제 부처님께서, 순일 큰스님께서 항상 내곁에 있으시니 두려워할 것이 없겠구나. 이는 또 다시 데이지로 하여금 경전의 글귀들을 생각나게 했습니다.
'떨쳐버림, 탐욕의 빛바램, 소멸,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생각같아선 모두다 버리고 소멸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느분이 그러시더군요, 우리는 존재하고 싶어한다고, 그렇지 않다면 계속 먹을 필요도 없고, 돈을 벌 필요도 없고,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고.
무의식안에 깊이 깔려있는 이 존재에 대한 욕망을 부처님과 순일스님께 기대어 놓아버려도 되고 소멸하여도 상관없겠다는 사유가 일어났습니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습니다. 정진하겠습니다. 출리하겠습니다. 부처님께 가겠습니다. 라는 다짐이 올라옵니다.
최근들어 육근단속과 음식절제가 쉽지 않음을 많이 느낍니다. 일주일에 한두번 정도 찾아오는 방일함에 괴롭습니다.
쌍윳다니까야 (S35:94-103)의 경들이 제게 찾아옵니다. 법문 듣고 경전도 보고 해도 이 질긴 경향성은 없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으니 괴롭습니다.
육근단속과 음식절제가 잘 되시는분 있으시면 사연 공유해 주시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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