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3-4 - 사성제 12A - 순일큰스님
저번 시간에요, 다섯 가지 장애 했었습니다. 첫 번째가 감각적 욕망, 그리고 성냄,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 이렇게 다섯 가지 였었죠. 그래서 간략하게 비유했었습니다.
그 절차는 이렇습니다. 감각적 욕망을 먼저 어느 정도 없애고요, 그리고는 성냄을 어느 정도 없애고요, 그래야지만 욕계의 존재를 조금 벗어나는 겁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이 세계에서는 감각적 욕망하고 성냄으로 살잖아요. 거의 다 그렇잖아요.
그러니 그 두 가지만 어느 정도 벗어 나면은 이미 훌륭한 존재죠. 그 정도만 되어도 훌륭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그 정도는 안 되고 우리가 깨달을 려면요.
거~ 해태와 혼침 이죠. 해태는 공부하기 싫다 이런 건데요. 이 얘긴 뭘까요? 마음공부 안하는 사람은 전부다 해태라는 얘기예요. 학교 공부가 아니기 때문에 방일 이라는 얘기 보다는요, 여기에 해태는요, 세상일을 돈 벌기 위해서 열심히 한다. 이래도 해태예요 방일 이예요. 지금 여기서 얘기하는 방일은 세상일을, 명예를 추구 한다 돈을 추구한다. 이런 걸 방일 하지 않고 열심히 한다. 이런 게 아니고요 마음공부입니다. 삼매와 위빠사나죠, 그래서 해태하지 않는다 라는 것은, 이미 불법에 많이 들어선 거예요.
그런데 혼 침은요, 마음공부 안하는 사람은 전부다 혼침 이예요. 혼 침이 아니면, 산란한 마음 이예요. 낮에는 산란한 마음이고, 낮에 더러더러 혼 침이고, 저녁에 혼침 상태고, 그런데 마음공부 하는 사람은, 혼 침을 넘어 서는 거죠. 혼 침을 넘어서면 삼매가 되거나, 위빠사나 로는 명진해 지는 거죠. 본성이 드러난 겁니다.
즉 일반 중생은, 일반사람은 피라미드의 대부분의 많은 사람은 해태와 혼 침에 있는 건데요. 마음공부에 많이 들어선 사람은 해태와 혼 침을 넘어 선 거예요.
해태와 혼 침을 넘어서면 이미 어느 정도 궤도에 들어선 그래도 높은 중생이죠. 그러면 해태와 혼 침을 벗어나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지냐 하면, 들뜸과 후회가 벌어지는 겁니다. 들뜸과 후회는 우리식으로 하면 흥분과 비탄, 흥분과 비탄은 파동이 큰것, 그게 점점 줄게 되면 들뜸과 후회......
한 번 잘 생각해보죠. 처음으로 돌아가서 다시 얘기하는데, 감각적 욕망이 많은 존재와 많은 사람과, 감각적 욕망이 적은 존재가 있다면, 누가 더 천상세계를 갈 수 있겠습니까? 혹은 누가 더 해탈이 가깝겠나요?
감각적 욕망이 많은 존재는 욕계의 존재거든요. 그래서 쉬운 건 아니지만 감각적 욕망을 벗어라 그러셨어요. 벗는 이유는 감각적 욕망을 어느 정도 벗어야 만이 삼매가 되거든요. 삼매는 지고의 상태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삼매가 높게 안 된 사람은 감각적 욕망을 벗을 수 없다 그러셨어요. 삼매가 돼야지만 감각적 욕망을 다 버릴 수 있다. 왜죠? 삼매가 되면 지고의 상태니까, 감각적 욕망을 너무 작은 즐거움인 것을 알고 버리는 건데, 그러면 거꾸로 아니 우리는 삼매가 안 된 사람들은 어떻게 버리라는 말이세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삼매가 되기 전에는 다 버려라 가 아니라, 감각적 욕망을 쪼금이라도 버리고, 성냄도 쪼금이라도 버리고, 그리고 해태와 혼 침을 없애는 수행을 하면, 삼매가 될 거라는 거죠. 이해 되셨죠.
한번 생각해보시면, 감각적 욕망 다 남겨놓고, 성냄 다 남겨 놓고, 맨날 화내고 삼매 연습하면 삼매가 되면 이상한 거죠. 되면 이상한 겁니다. 그러니까 쉬운 말씀이세요. 감각적 욕망을 조금만 어느 정도 버리고, 성내는 것도 참고, 그리고는 해태와 혼 침을 버리는 삼매연습 해봐라 는 말씀인 거예요.
그제서야 될 법 하잖아요. 이해되시죠. 맨날 이러면 삼매 안 될 거잖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욕망 조금 버리고 성냄 좀 버리는데, 곤란함은 있을 것이다 그러셨어요. 곤란해도 버려야죠. 삼매가 할려면, 그것 조금 버리고 이제 해태하지 말고 방일하지 말고, 삼매 하다 보면, 누구나 혼침 와요. 위빠사나 할려다 보면, 누구나 혼침 와요. 그걸 넘어가야 대요. 넘어가면 왕도가 없어요. 앉으면 다 졸린 겁니다.
이유는요 앉으면 생각이 점점 없어지고, 우리는 생각이 점점 없어지면 삼매가 되는것이 아니라, 잠잘 때만 생각이 없어져 봤기 때문에, 잠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그걸 점점 버티면 본성이 드러나기 때문에, 혼 침이 안들 고 명료해 지는 거예요. 그러니 왕도는 없어요. 왕도는 삼매의 방법을, 좋은 방법을 해 갖고 꾸준히 앉아서 그 해태와 혼침하지 말고, 방일하지 말고, 매일 조금씩 해 줘서 결국은 혼 침을 넘어가게 되요 그러면 해태와 혼 침을 넘어서게 되면, 이제 높은 존재가 되는데 여전히 해탈 못했기 때문에, 들뜸과 후회를 한단 말이죠. 들뜸과 후회는 동전의 양면 이예요. 아까 들뜸과 후회보다 더 큰 게, 안 좋은 게 흥분과 비탄 이라고 그랬는데요,
조그마한 일에 여기 두 사람 이 있는데 똑같이 예를 들면 자동차를 샀어요. 똑같은 자동차를 이 사람은 너무너무 흥분했어요. 막 흥분했어요. 이 사람은 좋긴 해요 즐겁고 행복한데, 덜 흥분했어요. 그러면 이 자동차가 둘 다 똑같이 어디 막 부딪혔어요. 사고가 났어요. 망가졌어요. 너무 너무 흥분한 사람은, 어떻게 해야 겠죠? 비탄이 너무 클 거고 아까 자동차 새것 샀을 때, 덜 흥분한 사람은 비탄이 덜 하지 않겠어요. 흥분이 큰 만큼 비탄이 큰 거예요. 흥분이 오면 비탄은 필경 옵니다.
이유는 이 세상에 모든 것은, 변하는 거기 때문이죠. 항상 하지 않기 때문에, 생로병사 하니까, 자동차는 망가 질것이고, 중고가 되갈 거고, 사람도 그럴 거고, 죽을 거고, 이 세상이 모두 변하니까 흥분한일 당하면, 꼭 비탄은 있다는 거 이해되시죠.
그와 마찬가지로 아무리 작아도 들뜨게 되면 그 다음에는 꼭 후회가 있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경전에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미소만 짓고 말뿐, 이런 말씀이 계시는 거거든요.
미소만 짓는 것이 아니라, 참아야 되요. 좋은 일이 있어도, 왜냐하면 나쁜 일이 있을때 생각해 갔고, 말이죠. 그래서 우리가 해탈하기 전까지는 중생이다 보니까, 들뜸과 후회가 있잖아요. 그걸 점점 작게 하라고 그러신 거예요.
그리고는 마지막에 의심 그런데 이 세상은 의심하지 말라고 그러셨는데, 이 세상은 의심할만하게 되어 있어요. 욕계이기 때문에 .....
욕계는 “나는 이익볼께 그대는 손해 바라는 세계기 때문에 전부다 피해 줄려고 해요”상대방한테 그런데 정신 안 차리면 피해 봐요. 그런데도 의심하지 말라고 그러셨어요. 이유는요 의심하게 되면 작은 피해는 막을 수 있을 텐데요. 맨날 의심 속에서 살아야 됩니다.
꿈속에서만 의심하죠. 꿈속의 등장인물만, 꿈밖에서 꿈 안을 보면 은, 의심안하 거든요. 그래서 의심은 개체만이 하는 겁니다. 개아만이 의심을 건너야, 거~ 궁극에 도달하기 때문인데요. 그런데 여전히 부처님께서는, 의심안 하는 것이 얼마나 힘드는 줄 아시기 때문에, 맨 마지막에 넣으신 거예요.
아까 삼매도 되고, 들뜸과 후회도 좀 작아지고 그러면 마지막에, 의심 하지 말라.그러면 할 만하겠죠. 그만큼 높은 존재면 그죠. 의심 안 할만 하겠죠? 거의가 갔는데 뭐 의심해 봐야 뭐 하겠습니까? 이렇게 가 다섯 가지 장애 예요.
저번 시간에 간략하게 살펴 본건데, 부처님께서 여기서 뭐라고 하셨나하면, 일단 일번이 내게 나에게 감각적 욕망이 있으면, 있는 줄 분명히 알라. 저번에도 얘기 드렸지만 우리에게 감각적 욕망이 다 있죠. 욕망이 다 있는데, 부처님께서 분명히 알라는 것은, 단순히 나는 감각적 욕망이 있어요. 이렇게 알라는 말씀이 아니죠. 성욕 ,수면욕, 식욕, 재물욕, 명예욕, 건강욕, 그다음에 경험욕, ( 여행, 꽃꽂이, 모든 걸 하고 싶다 ) 견해욕, 견해욕은 감각적 욕망에 안 들어가죠.
이런 욕망도 어떤 사람은 나는 재물이 제일 좋아. 나는 명예가 제일 좋아. 나는 건강이 제일 좋아. 서로 다르니까 자기에게
①일 순위가 어떤 건지 그리고 얼마만큼의 욕망이 있는지, 이걸 전부다 알라는 말씀인거죠 그래서 지금 현주소 내가 이 만큼 있어요. 하면, 있는걸 알고,
②어떤 종류는 버렸 으면은, 차근차근 버렸으면 나는 이것을 버렸다 하는 것을 분명히 알고,
③ 전에 없었든 새로운 감각적 욕망이, 전에 없었는데 일어나고 있다 하면은, 아~이것 전에 없었는 건데 새로 일어나네. 이걸 분명히 알고, 이걸 어떻게 하면 없앨까하고, 이래서 이것을 이렇게 이렇게 하면 없앨 수 있겠다. 없애는 방법을 분명히 알고, 그리고 지금은 없앴지만 앞으로 또 언젠가는 올거 아니겠어요.
앞으로 살다 보면 은 어떻게 하면은 다시는 안 오겠다. 이걸 분명히 알라고 그러셨어요. 쉽지는 않지만 이렇게 하나하나 수학적 같이, 수학적 으로 하나하나 줄여 가면 줄어들겠죠. 성냄도 이렇게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다음에 해태와 혼침, 들뜸과 후회, 의심 다 마찬가지 입니다. 이 다섯 가지 장애는 부처님께서 여러 가지 도수로 말씀하시는데, 이 다섯 가지 장애는 통론으로 주신 도수 예요. 그래서 이렇게 넘어갑니다.
그리고 그 다음 장은요, 색.수.상.행.식.에 대한 겁니다. 색. 수. 상. 행. 식. 인데 색수 상 행 식 은 대부분 알지만, 모르는 분을 위해서 정리하죠.
색은 몸 작게는 내 몸이고, 크게는 이 세상의 물질 이예요. 이 세상의 물질 다 입니다. 지수화풍 얘기하는 거죠. 지수화풍이나 지수화풍으로 이루어 진거 물질, 수는요 느낌, 상은 인식, 행은 의도, 식은 아뢰야식, 즉 색은 몸뚱아리요, 수는 내 몸뚱아리가 느끼는 느낌이요,
내안에서 인식이라는 것은 뭐냐면, 내가 바깥에 눈으로 모양을 보면 인식하는 거고, 내가 바깥에 소리를 귀로 들으면 인식하는 거고, 바깥쪽에 것을 인식 하는 것을, 인식이라고 합니다. 바깥쪽에 것을 인식해서, 내 안에서 눈이 느끼면 느낀다고 하고, 귀가 느끼면 느낀다고 하고, 내 안에서 느끼는 거죠.
그 다음에 의도들은 뭐냐면, 밖에 것을 인식하고 느끼고 나니까,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생겨요. 뭔가 하고 싶은 그게 의도입니다. 예를 들어서 눈으로 사과를 보니까, 어 ! 이쁘네! 빨간색을 인식하고 나서, 어떤 느낌이 오는 거죠 야! 저거 괜찮겠는데
그러면 의도는 뭐냐면 그걸 사과를 따러 가는 겁니다. 따 먹으러.... 그리고 나서 먹고 나니까 어! 맛있다 맛있다가 어디에 저장 되냐 하면, 아뢰야식에 저장되는 겁니다. 식에 그래서 아뢰야식에 저장되니까 다음에 또 먹고 싶다. 저 사과는 이렇게 되는 거죠 자~ 지금 눈으로 얘기했는데 아~ 먹는 것 입으로도 얘기했구나.
색(色)은 몸뚱아리, 수(水)는 느낌, 상(相)은 인식, 행(行)은 의도들, 의도에는 여섯가지가 있죠. 눈의 의도, 귀의의도, 코의 의도, 혀의 의도, 몸의 의도, 마음의의도, 아까 눈이 사과를 보면 은 보고나서 뭔가 따라가면 눈의 의도, 귀가 소리를 듣고 야! 이 소리 클라식 음악 멋진걸! 듣고 싶다 귀의의도, 코의 의도 향냄새를 맡고 와~ 좋은걸 그럼 저걸 더 맡아야지, 아까 혀의 의도, 아까 사과를 먹고 나니까, 야~맛있다
이건 이제 아무도 못 따먹어 나만 따 먹어야지, 과수원을 만들죠. 과수원 서리해 가면 안 돼 지키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병사들을 놓고 지켜요 그리고 칼과 방패를 들고 싸움한다. 그러신 거예요. 즉 나만 먹어야지 라는 욕망이 너무 커지면, 다른 사람은 못 먹지하고 싸움한다. 그러셨어요. 자~
돌아와서 식에 아뢰야식에 감각적 욕망이 자꾸 저장 되는 거예요. 애초에는 널려있는 저 사과 남도 먹도, 나도 먹고, 다 먹자 이러다가 아뢰야식에 자꾸 저장되면, 욕망이요 저것 나만 먹어야 돼 이렇게 되는 거죠.
자~ 이게 색수상행식인데요 . 부처님께서 저희에 색은 물질의무더기, 수상행식은 정신의무더기 라고 그러셨어요. 우리가 흔히 몸뚱아리와 정신 이렇게 두 마디로 하는 건데, 이것 외에" 나 "라고 하는 것은 없다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설마 이런 생각이 들어요. 어! 얘가 얼마나 잘 움직이는데, 말도 하고 생각도 하고, 얼마나 멋진데 그것 외에는 없다고, 그러실까 여기 영혼이 이 안에 있을 거야 그런데 부처님께서 비유하세요.
인도에 악기가 있는데, 악기이름 제가 까먹었어요. 피리 종류 같은 거예요 어떤 왕이 거기서 소리가 나니까 ,피리를 와! 멋지다 피리 속에 어떤 요정이 숨어 있길 래 이런 소리를 내나하고, 피리를 분해해 봤어요. 요정은 없더라. 분해 하니까 소리도 안 나더라. 이런 비유를 하셨는데요. 부처님께서 우리는 색수상 행식 무더기무더기 라는 것은 어떤 의미냐 하면, 가짜 지금 잠시 덩어리들이 뭉쳐져 있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면 제가 더 이상 넘어가기 전에 한 가지 이야기 드릴깨요. 문득 이런 의문이 들 거예요
부처님께서 천상세계 분명히 있다. 지옥도 모두 있다. 천상이 없다고 여기는 자들은 정말 잘못 생각 하는 거다. 내 눈으로 보았다. 다 가 보셨어요.
아니 천상은 누가 봐도요 이 안에 아무것도 없다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사람이 죽자마자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만들 수 있다고 그러셨어요. 그게 우리가 얘기하는 영혼 이예요. 영혼이 이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죽자마자 새로운 몸뚱아리를 만든 체가 영혼이다.
그러면 살아서도 만드는데요. 우리 유체이탈 해본 적 있는 데요.
영혼이 빠져나가서, 살아서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잠시 만든 거예요. 동시에 두 몸을 못 움직이는데, 유체이탈 할때 보면, 자기 몸뚱아리는 죽은 상태예요. 못 움직여요. 진짜 죽지는 안했지만, 가(假), 가짜로 죽은 상태죠.
그랬다가 들어오게 되면, 다시 몸뚱아리가 움직이는 거죠. 드리려는 말씀은 화생(化生)이라 그러죠. 불교에서 죽으면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 영혼 같은 것을 만들어서 천국 간다 입니다. 동시에 두 몸은 존재 할 수 없다. 신통인 경우는 다르죠. 신통으로는 부처님께서, 얼마든지 몸뚱아리 만들어 내시죠.
돌아와서 자~ 부처님께서 말씀 하시는 것은 이겁니다. 몸뚱아리가 항상 하는가? 변하는가? 여기서 항상 하다는 것은요, 궁극을 얘기 하는 거예요.
불멸을 궁극은 항상 합니다. 불멸인데, 궁극의 실체가 아닌 것은 불성이 아니고, 실체가 아닌 것은, 변합니다. 모두 변해서 생(生) 로(老) 병(病)사(死) 하기 마련이죠. 궁극은 생로병사를 안 한다. 생멸을 초월한 거죠. 불생불멸(不生不滅) 입니다. 그러면 몸뚱아리는 생로병사 하잖아요.
그래서 부처님께서 몸뚱아리 색은 항상 하는가, 변하는가, 변하는가 한자로 무상 한가 이러죠. 항상 하지 않는다. 이 소리입니다.
그럼 몸뚱아리는 무상하죠. 항상 하지 않죠? 그러면, 무상한 것은 즐거움인가요, 괴로움 인가요? 즉 항상한 불멸은 지고의 즐거움인데, 무상하고 변하는 것은...
늙고, 병들고, 죽을 때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즐거움이 아니라 ,괴로움이잖아요. 그런가요.
그러나 예~ 지금 잠시 샛길로 빠집니다.
변하는 것이 무조건 괴로움 이다는 말씀은 아니요. 부처님께서 변하는 것들이, 단지 오직 괴로움뿐이 라면은 사람들은 몸뚱아리를 아주 저주 할 것이다 라는 거예요. 오직 괴로움뿐이라면 그러나 몸뚱아리는 분명히 몸뚱아리는, 즐거움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뚱아리를 싫어하지만은 않는다. 좋아한다. 이런 얘기 입니다.
그런데 몸뚱아리가 오직 전적으로 즐거움 만이라면, 사람들은 몸뚱아리를 싫어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몸뚱아리에는 오직 전적으로 즐거움만이 아니라, 분명히 괴로움이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몸뚱아리를 전적으로, 즐거워하지만은 않는 다는 거죠.
즉 몸뚱아리에는 분명히 즐거움도 있고, 괴로움도 있어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몸뚱아리는 변하는 거기 때문에 괴로움이다.
단적으로 얘기하신 게, 큰 측면에서 본다면, 노병사 하고서 괴로운 거니까, 분명히 괴로움이 맞다는 거예요. 큰 측면에서는 그러나 부분적으로 즐거움도 있다. 지금 여기에서 어떤 분은 야~ 몸뚱아리가 즐거움이 많은데, 왜 괴로움이야 그지 라고 하신다면, 부분적으로 분명히 즐거움이 많아요. 그러나 궁극적으로 볼 때는, 괴로움 이다 라가 맞죠.
노병사가 괴로움이잖아요. 우리가 그게 괴로움이 아니면, 마음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생사를 초월한 공부할 필요가 없어요. 그냥 노병사 맨날 노병사 하죠 뭐. 매번 늙고 병들고 죽고, 이거 괴로움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변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그러면 부처님께서 이러시는 겁니다.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몸뚱아리는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다. 이것은 나가 아니다. 이것은 나의 실체가 불성이 아니다.
이런 말씀인 겁니다. 지금 몸뚱아리는 궁극이 아니니까," 나"라고 하면 큰일 나죠.
나가 아닌 것은 맞아요. 이것이 본성 나의실체가 아니다 도 맞죠. 우리는 이런 생각이 들잖아요.
어이 몸뚱아리는 내가 쓰는 건데, 쓰임으로 쓰는 건데, 나의 것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부처님께서 그러지 말라고 하신 게, 앞서서 우리는 몸뚱아리가 괴로움 이라고거 알았잖아요. 비유 컨데, 똥이 괴로움이고 더러운 건데, 똥을 옆에다 놓고 끼고서, 같이 자고 자동차 옆에 갈 때 마다, 같이 드라이브 할 사람 없잖아요. 이것이 괴로움인데 나의 것이라고 하면 곤란하다 그러신 거예요.
이것은 나의 것도 아니다. 그리고 실체적으로 한번 얘기해보면, 꿈에서 깨어 있는 경지가 있어요. 공부가 깊어지면 꿈에서 깨어 있게 되면은, 꿈에서는 당연히 꿈인지 알뿐더러 ,꿈밖에서 꿈 전체를 영화처럼 보게 되는데, 그 꿈 안에는 나라는 얘도 있고, 이렇게 등장인물이 많아요.
그런데 그중에 여전히 찍어서 한명을, 쟤가" 나"야 라고 하면, 쟤가 나의 것이라 하는 것은, 꿈 안에서 하면 공부가 안되어서 그래요.
꿈에서 깬 만큼 공부가 된 건데, 더 공부가 되면 은, 그 꿈은 다 내가 만든 꿈이기 때문에, 등장인물들이 다 나예요. 특정 인물만 나의 것이라 할 수 없다. 만약에 굳이 나의 것이라 한다면, 본성입장에서는 우리 전체가 본성의 것일 것 아닙니까?
특정한 한명만 데리고, 나의 것이라 할리가 없다는 거죠. 그래서 이렇게 되고, 이와 마찬가지로, 느낌은 우리 한번 대답해보죠,
느낌은 항상 한가요 무상한가요? 무상은 변하는 겁니다. 느낌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을 오가면서 변하죠. 문제는 즐거운 느낌 하나만 있다면 느낌에 아무 문제없어요. 노프라브람 (No Problem) 보세요.
우리가 즐거운 느낌만 100년 동안만 있다면, 부처님 여기 안 오셨어요. 괴로움이 없는데 왜 오시겠어요. 괴로움이 없으면 끝난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즐거웠다 괴로웠다 이러잖아요. 이 괴로움이 문제거든요 그러니
느낌은 항상 한가 무상한가. 무상하다 변한다. 변하는 것은 즐거움일까요. 괴로움 일까요? 크게 보면 괴로움 입니다. 아까 즐거움도 있지만, ① 괴로움은 괴로움이 그자체가 괴로움이요 ② 즐거움은 왜 괴로움 이냐 하면, 곧이어 괴로움으로 변할 것이기 때문에, ③부처님께서는 모든 형성된 것 들은, 모든 만들어진 것들은, 전부다 괴로움이다. 모든 형성되고 만들어진 것들은, 생로병사를 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모두 괴로움이다.
그러면 형성되지 않는 것이 있는가. 있다고 하셨죠. 부처님께서 모든 형성되어지고, 조건 지어 지고, 생겨나고, 만들어진 것들은, 형성되지 않은 것이 있고, 조건 지어지지 않은 것이 있고, 만들어 지지 않은 것이 있고, 생겨나지도 않고, 태어나지도 않은 것이 있다. 있기 때문에....
형성되어지고, 조건 지어 지고, 생겨나지도, 만들어진 것들이, 해탈이 여윔이 알려질 수 있다. 궁극에는 생로병사가 없는 궁극이 있다 라는 거죠. 그게 있기 때문에 지금 조건 지어 지고, 만들어진 것들은 전부다, 해탈할 수 있다. 그러므로 한번 보시면 조건 지어 지지 않고, 만들어 지지 않고, 형성되어지지 않고, 생겨나지 않은 것, 그것은 괴로움이 아니죠. 그것은 궁극입니다.
그것에 비하면 지금 즐거웠다 괴로웠다 형성되어진 모든 것들은, 괴로움이다. 쉽게 생각하시면 되요 이것을 점점 벗어날수록, 점점 해탈 못하더라도, 더 오욕 락이 충만한, 다섯 가지 욕망을 모두 갖춘 욕계의 천상 세계에 가든지,
더 초월하게 되면, 오욕 락이 아니라 오욕 락은 버리고, 희열만 먹고 사는 색계의 신들이 되든지, 더 높은 세계에 가면 평온만, 평온만 먹고사는 삼선에 해당하는 신들이 되든지, 더 높은데 가면 오직, 대광명인 더 높은 신이 되든지, 이렇게 점점 초월해 가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좀 전에 느낌은 무상하다. 그리고 괴로움이다.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이 느낌들을, 눈이 느끼는 느낌, 귀가 느끼는 느낌, 코가 느끼는 느낌, 혀 바닥이 느끼는 느낌, 몸이 느끼는 느낌, 마음이 느끼는 느낌, 이 느낌들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고, 나가 아니고, 이것은 실체가 아니다. 궁극이 아니다.
지금 그냥 잠시 가벼운 표피적 느낌 이다. 이러 시는 거죠. 인식도, 행도, 아뢰야식도, 다섯 가지 나라고 할만한, 이 다섯 가지는 전부다, 결코 나의 것이 아니요. 이 다섯 가지는 결코 나가 아니요. 이 다섯 가지는 결코 실체가 아니다.
자~ 여기서 한번 잘 사유해보세요. 이 다섯 가지를 세상에서 많은 공부들은, 실체라고 하는 공부가 많아요. 지금 반대된 공부 예요. 부처님께서 그런데 잘 사유해보세요. 이 다섯 가지가 실체일까? 얘가 실체이면, 큰일 나요 아까 다섯 가지가, 다 괴로움이기 때문에 큰일 나지만 욕계까지는 그나마 더 큰일 나요.
욕계의 천상세계는 우리 인간보다 조금 높은 레벨이기 때문에, 거기는 모양이 사람모양 이예요 신들이
그러니 뭐 이대로 가도 되요. 거기도 화생 이지만, 여기보다 미세한 사람 모양이지만, 마음에 가까운 영혼에 가까운 사람의 모양이지만, 그것보다 더 높은 색계는 빛의 몸이잖아요. 빛의 몸에 못 가는 거예요. 이대로 실체면 그 만큼 또 거기도 그렇게 높은 세계는 아니 예요.
빛의 세계도 거기는 아예 못 가잖아요. 이런 모양 이라면, 점점 이런 모양이 아닌 쪽으로 가야지만, 개체를 떠나야지만 높은 존재가 되는 거예요. 더 높은 그런데 보통 사람들은 욕계 까지만 주로 생각하는 게, 사람세계에서 가까운 천상이기 때문에 여섯 개 하늘도 다, 차이가 다른데 거기는 다 사람 모양이거든요.
거기만 아는 거죠. 그 넘어가면 사람모양이 아니죠. 빛이죠. 더 넘어가면 아예 빛도 없는 순수의식의 세계들, 그런데 갈려면 자기 모양을 버려야지만, 가는 겁니다. 자기모양, 자기모양을 부여잡고 있으면 은, 그런데는 아예 못가고 그나마 자기모양을 부여잡고, 착하게 살면은, 욕계의 천상세계에 가는 거죠. 욕계는 사람모양이니까~ 그런데 문제는 욕계의 천상세계도 수명이 짧은 데만 해도, 팔만 사천 년이나 되죠.
그래 욕계의 천상세계 갔다고 해도요, 참 덧없는 것이 팔만 사천 살 후딱 갑니다. 문제는 사람 모양을 붙잡고 천상을 갔기 때문에, 이 지금 색수상행식이 공(空) 하다라는 것을 모르면, 거기서 죽어갔고, 사람 되기 거의 어렵다. 경전에 계시죠. 사람 이하로 간다. 왜냐면 모양을 붙잡고 갔단 말이 예요.
거기가면 오욕 락이 엄청나다 말이 예요. 모든 욕망을 즐길 수 있어요. 그러니 더, 색 수 상행식이 "나" 라고 믿을 거 아니 예요. 감각적 욕망은 더 커지고, 죽은 다음 어디 가겠어요.
그래서 우리는 색수상행식이 아니올시다. 해갔고, 욕계를 가더라도 욕계에 간 사람은, 오욕락 이 있더라도 충분히 오욕 락을 즐기면서, 나날이 더 높은 데로 올라가요. 아니올시다, 를 알기 때문에 그래 중요한 거죠.
돌아와서 색수상행식이 실체다 라고 믿는 게 대부분인데, 세상에서 아니올시다. 기다 (그렇다)라는 이런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그나마 색수상행식 에서 영생교 같은 것이 있었죠. 이거 큰일 날 소리죠. 그나마 천상 가서 영생하자도 아니고, 여기서 영생한다. 이 몸뚱아리 그대로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지금 색수상행식이 나라고 하는 것이 변한다. 항상 할 수 없다. 우리 다 알죠. 변하는 것은 괴로움이다.
괴로움인 것은 실체가 아니다. 여기까지 일단 얘기 드렸습니다. 다른 각도로 한 번 검토해보죠. 현실적인 각도로요 부처님께서 다른 경에서 색이, 느낌이, 인식이, 의도가 아뢰야식이 영원히 즐거운 것이다 라고 믿는 자들은, 곧 이 몸뚱아리는 다른 상태로 변해간다. 다른 상태로 변해 가기 때문에, 그는 괴롭다. 그는 왜냐면 이 몸뚱아리가 영원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몸뚱아리가 안 변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곧 늙고 병들고 그렇게 되면 막 괴로워지죠.
그런데 거기에 반해서 여기 어떤 사람은, 이 몸뚱아리는 곧 다른 상태로 변해 갈 것이다. 알고 있는 거예요. 그리고 그는 곧 그의 몸은 다른 상태로 변해간다. 그러나 그는 괴롭지 않다. 이유는 그는 이미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 제가 저 예를 들어 엇어요. 저는 [방어할 두려움 없는 자유]라는 1권에 썼지만 14살때 제 몸뚱아리 다 잘라져도 내가 웃으면서, 요번 생을 살아주마 이랬어요.
그래 몸에 눈을 다쳤고, 수술3번 했는데, 다쳐도 다치자마자 어린아인데도 평화로왔어요. 하나도 괴롭지 않았고요. 저를 다치게 한 얘를 끌어 안았 어요. 일부러가 아니 예요. 저 마음속에 화가 요만큼도 없었 어요. 그 얘만 걱정이 되었어요. 부들 부들 떨고 있길래 괜찮아 !괜찮아 ! 나 정말로 아무렇지도 않다. 괜찮다 의사선생님이 제가 앞으로 안보일 거라고 하는 데도, 저는 아무렇지도 않았어요.
이유는 뭐냐면, 정말 놀랍게 경전 말씀 그대로예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는 제 몸뚱아리가 운 좋으면 그대로 죽을 때 까지 일년 있겠지만, 아마 팔도 잘릴 수 있고, 다리도 잘릴 수 있고, 요번에 인생에 별일 다 있을 거다. 없으면 맞아주마 이랬어요. 그런데 사지가 다 잘라져도 괜찮다 했는데, 눈 하나 밖에 안 다쳤잖아요. 그러니 뭐 평화로울 수밖에요. 지금 부처님 말씀대로 이미 그럴 것이다, 라고 안자는, 그 일이 닥쳐도 괴롭지가 않아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느낌도 마찬가지로 얘기 하셨어요. 이 느낌은 즐거울 때 즐거운 느낌은, 영원할거야 안변할거야 이런 사람은 곧 그 느낌이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곧 괴롭다. 이유는 그는 안변할 것이다 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느낌은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오락가락하면서 한자의 새옹지마(塞翁之馬) 그래 나온 겁니다.
전화위복(轉禍爲福)도, 즐거울 때 괴로울 것을 미리 놓고를 생각하라. 괴로울 때 너무 괴로워하지 마라. 즐거움을 누릴 것이다. 이 느낌이 오락가락할 것이 다를 안자는, 그 느낌이 곧 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괴롭지 않다. 이미 그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삶은 고통반, 행복반 아닌가요. 오락가락하는 물론 공부 되갈수록 행복이 훨씬 커집니다. 반반은 아닙니다. 만, 일반적으로 이와 같이 인식도 상도 행도 식도 여기 변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안자는, 계속 괴로워할 수밖에 없고, 변할 것이다 라고 안자는 괴롭지 않다. 변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도 설명하십니다.
즉, 색 수 상 행 식은 분명히 변하는 거지, 항상 하지 않고 변하는 건데, 그걸 변할 것이다 라고 이미 알고만 있어도, 괴롭지 않다 이렇게 설명을 주셨고요.
세 번째 얘기 드리겠습니다. 아까 영혼 얘기란 비슷한 건데 부처님께서 색이 몸뚱아리가 실체인가 질문을 던지십니다.
만약에 몸뚱아리가 실체라면 노, 병사 하지 말아야 된다고 얘기 하십니다.
실체가 늙고 병들고 죽는 다면은 우리 이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까? 실체도 늙고 병들고 죽는데요. 그냥 이 공부할 필요가 없죠. 몸뚱아리 늙고 병들고 분명히 죽죠. 그러면 몸뚱아리는 실체가 아니다 느낌이 실체인가 부처님 이렇게 물으보십니다. 느낌이 실체라면 100% 즐거움만 있어야 됩니다.
우리는 안 그렇거든요. 이와 같이 인식도 의도도 아뢰야식도 각각이 실체인가 질문을 하시는데 아니다 아뢰야식이 실체라면 늘 100% 행복으로 윤회를 해야 되는 건데 안그런다. 그리고 아뢰야식은 장작이 탈 때는 장작불이요 쇠똥이 타면 쇠똥불이요 불이 아뢰야식 입니다.
그 저장이 훌륭하게 저장이 되면, 훌륭한 불이 켜지는 거고, 똥 같은 것을 저장해 놓으면 똥불 밖에 안 켜지는 거든 요. 그때 변하는 건데 실체가 아니다.
그러면 색 수 상 행 식이 각각이 실체가 아닌데
두 번째 질문도 이렇게 질문하십니다.
그러면 색 수 상 행 식은 다 합쳐놓은 이것이 실체인가?
아까 각각도 실체가 아니었는데 다 합쳐놓은 이것이 실체겠습니까?.
아니죠?
세 번째 질문이 나옵니다. 중요한 질문입니다.
그러면 색 수 상 행 식 안에 실체가 있는가? 이건 현대불교에서는 어떤 사람들은
색 수 상 행 식 안에 실체가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요. 부처님 아니다 그러셨습니다. 바로 색 수 상 행 식 안에
실체가 있다 라는 것이 영혼 같은 거예요. 영혼을 얘기하는 거예요.
한번 여겨 보시죠.
우리가 아는 영혼이라는 것은 잘 하면 천국 가고,못 하면 지옥 가는 것이 영혼입니다. 천국가고, 못하면 지옥 가는 것이 영혼입니다.
그런가요. 부처님 말씀하신 실체는 절대로 지옥갈수 없는 거예요
궁극이지 이해되시죠. 실체가 지옥가면 됩니까? 이 공부하실 필요 있으십니까
실체가 지옥 간다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안에 실체 없다 이러시는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잘 생각하세요.
이 안에 없다가 아니라 제가 4번째 질문을 던지고 얘기 드리겠습니다. 그러면 색 수 상 행 식 안에 실체가 없다면 색 수 상 행 식 바깥에 실체가 있는가?
얘를 제외한 바깥에 실체가 있는가. 라고 질문하십니다.
얘를 제외한 바깥에도 없다 예요
왜냐하면 이 실체가 없다고 아니라 실체는 얘 안에 갇혀 있을 수 없고, 얘 안에 갇혀 있다면 실체가 아니고, 얘의 바깥에만 있다면, 바깥에 있는 그 무엇과 얘라는 두 가지가 벌어지잖아요. 실체는 둘 일 수가 없다 라는 거예요
궁극의 전체이지, 그래서 실체는 안팎 없이 있는 궁극의 하나다. 이런 얘기입니다. 굳이 이야기 한다면 안과 밖이 없겠죠. 잘 여겨셔야 됩니다.
요즘 현대불교에서 누군가가 "불성은 내 안에 있고 각각의 불성이 다르다" 이렇게 얘기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각의 불성이 다르면 그대불성, 내 불성이 다르다는 겁니다. 그건 불성이 궁극이 아니다 라는 소리입니다.
그대 불성 내 불성이 다르면 불성이 쪼가리네요
그것도 궁극이 아니네요. 그것은 잘못된 얘기입니다.
비록 내 안에 있다고들 얘기하는데 그 말은 그 반 틀리지 않는데 내 안에 있다는 말이 뭐냐면, 내 안에 갇혀 있다는 것이 아니다. 안팎 없이 있다는 겁니다. 전체로서 그래서 부처님께서 뭐라고 하시냐 하면 "세상을 구원할 그 무엇이 없다면 구원은 없다 그러나 세상을 구원할 그 무엇이 여기에 있는데 여기에 있다.
그것은 몸과 마음은 아니다" 여기에 있다 라는 것은 꼭 이 안에 있다가 아니라요
그 전체이다 라는 겁니다. 그 몸과 마음만 버리면 전체가 드러난다.
그런데 또 경에서 저런 말씀도 하시죠. 그걸 안팎 없이 있는 그 전체를 드러 낼려면 찾는 방법은 바깥으로 나가서 못 찾는다. 이 안으로 들어가야 된다. 한길사람 마음속 안으로 계속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왜 그러죠. 나만 사라지면 안팎 없는 전체가 드러나는데 바깥으로 부행하는 것은 방법이 아니기 때문 이예요 이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게 전체로 편재하는 거예요 똑 같은 겁니다.
그러면 네 가지 질문을 다시 정리해 보죠.
첫 번째 질문은
1. 색 수 상 행 식을 각각을 분해해서 각각이 실체인가 질문하셨고요 그러면 아닙니다.
2. 그러면 색 수 상 행 식을 다 합친 것이 실체인가 아닙니다.
3. 색 수 상 행 식 그 안에 실체가 있는가? 아닙니다.
4. 색 수 상 행 식 그것밖에 실체가 있는가? 아닙니다.
그러면 실체가 없다는 말씀은 아니예요.
그게 아니다 라는 거지 그래서 그것만 네 가지만 없애면
실체가 드러난다. 이렇게 얘기 하신 겁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이해는 됐는데 어떻게 오온을 없애죠.
자살하나요. 자살하는 것은 방법이 안 됩니다
색 수 상 행 식의 다섯 가지 무더기를 없애는 방법은
부처님께서 먼저
① 달콤함을 알고, 색수상행식의 위험함을 알고, 벗어남을 알고 벗어나라 그러셨습니다. 달콤함은 우리가 감각적 욕망의 달콤함 알잖아요. 성냄의 달콤함도 알잖아요.그러니까 성내죠. 색수상행식의 나라고 믿는 이것의 달콤함을 알잖아요. 그런데 달콤함만 알아갔고 안 된다. 위험함을 알라고 그러셨어요.
위험함을 어떻게 아냐 하면, 우리가 감각적 욕망은 삼매가 되면, 위험함을 알아요. 감각적 욕망보다 삼매는 어마아마하게 높은 상태기 때문에, 아~~옛날에는 감각적 욕망이 최고 였는데, 이게 아니었구나? 이걸 떠나야 겠다. 더 더 더 위대한 상태가 되기 위해서는 지복으로...... .
화의 위험성을 언제 알죠. 참회해 보면 알잖아요. 화가 억수로 위험 했구나 이렇게 위험함을 알아야 된다고, 그랬어요. 달콤함만 알면 안 되고, 비유컨대 칼날의 꿀을 빨게 되면, 달콤하잖아요. 그런데 너무 허겁지겁 빨게 되면, 칼날에 혓바닥이 다 갈라지잖아요. 그게 위험함입니다.
벗어남은 뭐예요. 벗어남은 지금 팔정도 전체가 벗어나는 방법 이예요. 그리고 그 방법을 닦아서 벗어나라. 요야하면 이런 겁니다. 오온을 떠난다는 것이 자살 하는 것이 아니라, 몸뚱아리가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해라.
느낌이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해라. 인식이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해라. 의도들이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해라. 아뢰야식이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해라. 그렇게 되면 색수상행식은 점점 고요히 가라앉는다. 멸절 해간다. 고요히 가라앉는 만큼, 반비례로 본성은 틀림없이 드러난다 이거죠.
다르게 말하면, 감각적 욕망과 성냄을 하는 한은 개체다 개아다. 그래 갖고는 본성은 털겁 만큼도, 드러나지 않는다. 개체가 사라진 만큼 무아죠. 사라진 만큼만 본성이 드러나는데, 무아라는 것은 뭔가?
자살이 아니라 무아 무아 말로만 하는 것도 아니고, 진정한 무아는 몸뚱아리가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하는것. 느낌이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하는것,인식이 좋아하고, 의도가 좋아하고, 아뢰야식이 좋아 하는 것을 삼가 하게 되면,
마치 장작불에다가 장작불이 좋아하는 왠갖 땔감과 석유와 다 갖다 부어주면, 걔는 더 활 활 활 타는데, 그래서 계속 윤회를 하는데, 지금 장작불에다 장작이 좋아하는 연료를 더 이상 주지만 않으면, 곧 그 장작은 꺼질 것이다. 더 이상 기름을 부어주지 않으면, 몸뚱아리가 좋아 하는 것이 기름이었고, 느낌이 좋아 하는 것이 기름 이었고, 인식 의도 아뢰야식이 좋아 하는 것이 기름이었는데, 더 이상 기름을 안 부어 주면은, 그 장작은 죽는다. 그런데 죽는데 본성 이란게, 아무것도 없다. 그러면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그런데 부처님께서 분명히 불성은 여기에 있다. 개체만 한번 여기 살아서 소멸해봐라. 그러면 죽어서가 아니라, 지금 여기서 살아서 몸뚱아리 가진 채로, 생사를 해탈할 것이요. 지금 여기에서 궁극에 완전한 행복을 누릴 것이다. 해탈 만약에 이렇게 못된다면, 취착의 자취가 남아있다면, 즉 아직도 개체 스럽다면, 공부를 많이 했는데, 그렇다면 죽은 다음에, 사선천에 가서 수명이 우주 몇 만개 정도 되요. 어마어마한 수명 거기서, 제일 높은 천상세계에서 살다가 또 높이 올라갔다 가서, 여기 다시는 오지 않고, 거기서 원할 때 열반할 것이다.
그것보다 더 취착의 자취가 남아있다면, 여기 한번만 더 오면, 해탈할 자가 되서 올 것이다. 그래도 더 집착이 남아 있다면, 7번 안에 해탈하는 수다원이 예정된다. 그것보다 더 집착이 남아있더라 하더래도, 엄청나게 훌륭한 천상세계로 계속 태어나면서, 나날이 향상일로 해서 언젠가는 해탈 할 것이다. 이것이 왜인가? 잘 여겨 보실 게요. 5분 쉬었다 하겠습니다.
5분 휴식 ~~~~~
녹취자 :예심 2011.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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