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2-13-사성제10A - 순일큰스님
날씨가 이렇게 추운데도 빠지지 않고 오신 여러분께 부처님의 가피가 가득할 것이라 믿습니다. 어제 이어 들어가기 전에 칠판을 잠깐보시면 피라미드입니다. 세상에는 가지가지에 마음공부가 있어요. 맨 밑에가 제일 넓죠. 제일 넓은데 공부로는 제일 낮은 공부고요 올라갈수록 사람 수는 적어지는데 공부는 높은 공부죠 맨 위 파란 데가 우리 공부입니다.
저만의 얘기가 아니고요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설하신 첫째로는 원음말씀 그대로를 니까야 말씀을 전하고요 두 번째로는 니까야 말씀을 전하는 곳이 여러 군데지만 실지로 체험이 되어갔고 전하는 데는 많지 않죠. 그래서 지금 우리가 배우는 공부는 제일 위에 공부입니다 그래서 어렵나하면 그렇지는 않고요 부처님께서 니까야에 이런 말씀이 계시죠 ;와서 보라고 할 만한 것이고 배우고 실천을 하면 머지않아 해탈하게 되는 그러한 공부다 ; 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공부를 나날이 지어갈수록 머지않아 곧 참으로 많은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됩니다.
대패경에서 제가 예를 자주 들지만 목수가 대패질을 하면 시간만 조금 지나면 엄지손가락 자국이 대패에 푹 들어가 있듯이 곧 머지않아 이렇게 공부를 열심히 지으시고 실천을 하시게 되면 은 정말 오랜 세월동안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됩니다.
경에서는 이익과 안녕 이익과 행복 이렇게 말씀이 계시죠 여기서는 이익이라는 것은 세상적인 축복이 분명히 있다. 그러신 거고요 안녕행복은 마음의행복 그러니까 형이하학 형이상학 다 있다고 그러신 거예요.
세상에 물질적 축복 건강적 축복 문명의축복 세상의 모든 축복이 이익이 분명히 있고 그 다음에 더불어 더 큰 마음의안녕 행복이 있다고 그러셨죠. 그리고 부처님께서 제자 스님들에게 탁발을 갔을 때에 탁발을 공양 받으면서 늘 기원을 하라고 그러셨죠
저들에게 이득을 원하는 자에게는 이득이 있기를 행복을 원하는 자에게는 행복이 있기를 공덕을 원하는 자에게는 공덕이 있기를 그러셨죠. 그 말씀은 공부를 지어서 그것을 이익과 행복이 있게 되는데 만약에 어느 한쪽에 더 크게 쓰고자 한다면 이득쪽 으로 눌릴 수 있고 행복 쪽으로 눌릴 수 있다.이런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자 오늘 어디냐 하면요 저번시간에 몸에 관련해서요. 잠에서 깨어있고 말하면서 분명히 알면서 행하고, 침묵하면서 분명히 알면서 행한다. 까지가 끝났습니다. 그래서 몸에 대한 관찰이 끝났고요
오늘은 몸의32가지 부위에 대한 혐오입니다. 몸의32가지는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를 발끝에서 머리끝까지를 부정(不淨) 깨끗하지 않은 것으로 가득차 있음을 반조한다.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즉 이몸에는 머리털 ,몸털, 손발톱, 이빨, 살갗, 살, 힘줄, 뼈, 골수, 콩팥, 염통, 간, 근막, 지라, 허파, 큰창자, 작은창자, 위, 똥, 쓸개즙, 가래, 고름, 피, 땀, 굳기름, 눈물,(피부의)기름기, 침, 콧물, 관절활액 ,오줌 ,등이 있다고 세어 본분 계셔요 여기에서는 31가지에요 제목은 32가지가 되어있는데 여기에 뇌수가 들어가면 32가지가 됩니다.
대념처경에 31가지로 나왔어요. 그래서 이렇게 해체해서 보는 거죠 왜 해체해서 보냐 하면요 통론으로는 해체하면은 우리 이 몸과 마음을 다섯 가지로 해체한 것은 많이 들으셨죠. 색수상행식 지금 더 해체해갔고 31가지로 해체시켜 벼렸어요. 해체해서 볼 때에 이런 비유가 나오죠.
마차를 해체해 버리면 은 해체 안 했을 때는 굴러가지만 해체 했을 때는 바퀴 따로 몸통 따로 따로 따로 가니까 마차 같지가않죠 또 다른 비유에서는 인도의 빨리어 이름인데 제가 까먹었어요.
피리 같은 건데 소리가 나는데 그걸 다 분해 해버리면 소리가 안 나죠. 살아 있는것 같은데 분해해 버리니까 아무것도 아니더라. 이겁니다. 지금부처님께서 31가지로 분해해갖고 여기에 아무것도 없다 라고 이렇게 알라는 겁니다. 여기에 실체가 없다 라는 거죠 또 한 가지는 분해해 보니까 깨끗하지 않다는 거예요 더럽다 라는 거죠
제가 이진도 나가기 전에 샛길로 빠집니다. 자기 몸을 더럽다고 부정하면은 결과는 뭐가 벌어질까요. 결과는 기분 나쁜 것이 벌어질까요. 아니면 기분 좋은 것이 벌어질까요. 결과는 좋은 것이 벌어집니다, 축복이 벌어집니다. 이유는요 언뜻 보면은 자기 몸을 부정했으니까 염세 같은데 염세란 다른 것은요 목적이 있기 때문 이예요 염세는 목적이 없어요. 부정 그 자체만 있을 뿐이기 때문에 염세주의로 빠지는데 지금 몸을 부정하는 것은 목적이 실체가 있다 라는 거죠 궁극이 그 궁극이 드러나기 위해서 지복이 청정지복이 드러나기 위해서 지금 괴로움덩어리인 31가지 에 이것 몸을 부정했는 거거든요 목적이 있는 수단적 부정 이예요 그래서 염세나 부정이 벌어지는 것이 아니라 축복이 벌어집니다.
비유하면은 자동차를 새로 사게 되면 막 세 차 해야 되고 걱정되고 저 자동차 집을 지어줘야 되고 창고를 누가 망가뜨릴까 잠도 못자고 그러는데 저 자동차는 그냥 쓰임이다 하면은 걱정 없이 편하게 자듯이 이 몸뚱아리는 그냥 쓰임이다 하면은 걱정이 없죠.
애지중지도 안하게 됩니다. 그리고 곧 이 몸이 다른 상태로 곧 변해가더라도 근심걱정이 없는 이유가 그는 곧 이 몸이 다른 상태로 변할 것이다 라는 것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라고 전에 얘기 드렸습니다. 제가 눈 다쳤을 때도 하나도 걱정이 안 되었든 것은 그전에 이미 저는 다치고 병들고 할 것이다 라는 것을 알았든 겁니다. 라고 제가 얘기 드렸죠.
31가지로 어차피 이것은 부정한 것이고 머지않아 곧 죽을 것이다 100년 안팎이다 라고 알게 되면 근심걱정이 사라지면서 축복이 벌어져요 삶이 그래서 얼마 전에 양평선원에 누가 이런 질문을 했어요. 부처님께서 괴로움이다 라고 하셨는데 축복이더라. 이겁니다. 삶이 공부해 보니까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축복을 주지 않았더라구요 그래서 제가 축복은 맞는데 그렇게 얘기하면 안 된다. 그랬어요. 이유가 이것은 괴로움이다 로 출발했기 때문에 축복의 결과가 나왔는데 과정이 또 이것이 축복이라고 여기고 다시 이것이 괴로움이다 잊어먹으면 축복이 없어져요 마치 제가 비유를 했어요.
참회를한 우리들은 참회하다 보면 은 나중에 에고를 참회 했잖아요 자기의 이기심이나 잘못한 것을 나중에 에고까지 사랑스러워지는 결과가 나와요 왜 그랬나하면 참회하다보니까 마음이 너무 행복해져갔고, 다 사랑스런 마음이 대갔고 자기의 에고마저 사랑하는 그런 마음이 들어요.
그때 에고를 사랑하면 곤란해요 에고를 참회했기 때문에 마음이 변해서 마음자체가 사랑이 되니까, 에고도 사랑스러워 진거다 라고 잘 알고, 내 마음이 사랑스럽게 변했다는 것을 잘 알고, 축복이다 알면 되지만 에고는 여전히 없애야 된다. 이렇게 해야 되는 거죠 거기서 에고를 사랑하면 점점 공부는 도로 아미타불로 간다. 무슨 얘긴줄 아실 거예요 축복의 상태가 벌어지더라도 축복의 상태가 벌어지고 있구나. 알 때 야! 이 삶은 또 축복이구나 하면 여기는 괴로움이거든요 그러면 공부는 다시 거꾸로 간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래서 돌아와서 31가지로 부정관을 해서 해체해 버리면 은 부정과 염세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축복이 벌어집니다. 근심 걱정이 없어집니다. 이렇게 관찰하며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지금 부정관을 하니까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죠? 얘가 나고 실체다 할 때에 애지중지하고 얘를 위해서 모든 것을 끌어 모아야 되는데 얘가 부정이 되 버리니까 끌어 모으고 뭐도 할 것도 없죠. 그런데 이 말은 잘못 들으면 혹시 세상에서는 너무 세상을 못 살아간다. 이럴 수 있어요 그런데 세상을 잘 살아 갈 수가 있습니다.
어떻게 잘 살아 가냐 하면요 비즈니스로 얘기해보죠. 이 부정관이 아니고 내가 실체다 하게 되면 비즈니스를 하면서 근심걱정이 끊일 날이 없어요. 세상은 늘 됐다 안됐다 여정이 있거든요
늘 근심걱정을 끙끙 앓아야 되는데 이것이 실체가 아니다 여기면 은 비즈니스를 하고자 한다면 비즈니스를 소품으로 할 수 있습니다. 소품 겁나는 것이없죠 이것이 실체가 아니고 이것이 쓰임이다. 몸뚱아리와 이 마음이 이렇게 여겼을 때 정치를 하고자하면 정치를 잘 할 수 있습니다.정직한 정치를 할 수가 있죠.
이 31가지 이것이 나 라고 여기고 실체라고 여기니까 국민을 괴롭히고 나를 위해서 정치를 해야 되는데 권력을 잡기위해서 이것이 실체가 아니다 라고 알게 되면 소품처럼 정직하게 대중을 위해서 정치를 할 수 있는 겁니다. 뭘 하든 자유롭게 할 수 있어요. 자유다 그런데 한번 여겨 보시면요 100년 안팎 삶인데 이것을 너무 애지중지하고 아끼고 이것을 위해서 근심걱정을 날 마다하면서 사는 것은 좀 그렇지 않을까요
그 다음이 오늘 빨리 빨리 갑니다. 여기는 네 가지 근본물질 (四大) 다시비구들이여 비구는 이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요소, 불의요소, 바람의요소,가 있다고 비구들이여 마치 솜씨 좋은 백정이나 그 조수가 소를 잡아서 각을 뜬 다음 큰길 네거리에 이를 벌여놓고 앉아 있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이 몸을 처해진 대로 놓여진 대로 요소별로 고찰한다. 이 몸에는 땅의 요소 물의요소 불의요소 바람의요소가 있다라고
그런데 비유를 보시면요 소를 각을뜨서 껍질을 짝 펴놓은 거예요 이 비유는 뭐죠 아까까지 소가 서 있을 때는 살아 있는 실체 같은데 껍데기만 짝 각을 뜨 서 펼치면 은 그냥 아무것도 없는 껍데기가 되버리잖아요 이와 같이 이 세상을 영상으로 보니까 다 실체처럼 살아서 움직이는 걸로 보이지만 껍데기를 펼쳐놓은 것처럼 요소별로 본다면 지수화풍 요소 밖에 없다 라는 말씀인겁니다.
지수화풍 요소 라는 것은 에너지라고 보셔도 되고 구성요소데 이세상은 모두 지수화풍 에너지로만 만들어 졌다는 거예요 이런 논리를 편 서양 철학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부처님 고유의 말씀만이 아니고 힌두교에서도 이렇게 얘기하고 서양철학자도 제가 알기에 유명한 철학자들이 이런 얘기 했습니다.그런데 다른 점은 뭘까요?
서양 철학자나 힌두교에서 얘기하는 것은 이 요소가 실체라고 한 거예요 부처님께서 이 요소는 가짜다 그러신 거예요 있긴 있는데 궁극이 아니다 . 그러신 거예요 정리하자면 이 세상의 가장 근본요소는 지수화풍이다. 이 얘기를 오해하시면 야! 세상의 근본요소가 지수화풍이 궁극인가보다 이 말씀이 아니고요 부처님세상 자체를 뭐라고 그러셨죠? 세상이 실체가 아니다 라고 그러셨죠
⌐까쨔야나뿟타경⌟에 있었죠.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일어남도 분명히 보시고 세상의소멸도 분명히 보신다. 세상은 변하는 거다 전체가 생멸을 짓는 거기때문에 세상은 실체가 아니다. 실체는 눈에 보이는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이면에 보이지 않는 것으로 서 실체가 있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종종 비유하듯이 영화가 세상이면 눈에 안 보이는 영화의 바탕이 스크린 죽어있는 스크린이 아니라 다보고 다 아는 스크린이 있다 그것은 세상이 아니다 세상은 영화인 거죠 그러니 세상의 요소는 네 가지 요소이지만 그 네 가지 요소는 마치 영화관에 가면 영사기에서 뒤에서 영사기에서 불을 짝 쏘면 저쪽 스크린에서 영화가 나오잖아요? 영사기에서 지수화풍을 쏘는 거와 같다 지수화풍은 실체가 아니다 그냥 세상을 만들 때에는 세상이 일어날 때에는 세상의 기본요소이다 이죠. 그러면 지수화풍까지를 일단 가야 되요 공부의여정은 너무 영상이 많은 이 세상에서 더 지수화풍으로 들어가서 지수화풍에서 더 들어가야 되는 거죠
근본으로 그래서 지수화풍 삼매가 있잖아요. 있습니다. 천안삼매 경에서는 광대한삼매 예를 들어서 흙에 대해서 삼매 하라 그러셨죠. 맨 처음에 어떻게요 세 그루 나무아래에 땅만큼을 삼매를 단일하게해라 삼매가 되라
단일한 상태가 그다음 열 그루 나무아래 땅만큼의 백 그루 나무아래의 땅만큼 점점 광대하게 가죠. 그 다음에 자기 동네만큼 땅을 그 다음에 한국만큼 예를 들면 그 다음에 지구만큼 지구보다 더 넓게 이렇게 땅을 짝 펼치는 거죠 그러면 세상은 사라지고 땅 삼매만 되잖아요.
땅 삼매가 종착역이 아니죠. 거기서 더 들어가면 공삼매가 되는 거죠 공삼매도 종착역이 아니죠 더 더 더 들어 가는거죠 그래서 일단은 세상은 수없는 영상이 많으니까 이 수없는 영상은 접고 땅 삼매가 되고 혹은 물 삼매가 되고 불 삼매가 되고 바람삼매가 되고 이거 우리 단계다 있습니다
강물보기 이런거 물 삼매고 다있죠 흙, 불, 물, 바람 그래서 일단 요소별로 고찰을 해서 해체해라 그러면요 앞서서 31가지보다 네 가지 요소로 고찰한 것이더 공부가 더 들어간 거요. 31가지는 내 몸뚱아리만 31가지로 분해시킨 것이고, 요소 네 가지 요소로 가면 네 가지 요소는, 내 몸뚱아리만 네 가지 요소가 아니라, 세상전체가 지수화풍 요소로 이루어 졌으니까 더 근원으로 들어가기 시작한 겁니다.
그리고 그 다음이 아홉까지 공동묘지 관찰입니다. 다시 비구들이여
①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죽은 지 하루나 이틀 또는 사흘이 지나 부풀고 검푸르게 되고 문드러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바로 자신의 몸을 그 시체에 비추어 바라 본다. 이 몸 또한 자신의 몸 또한 그 시체와 같고 그 시체와 같이 될 것이다 미래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한번보시죠 나 곧 죽을 거다 이겁니다 이걸 알면 두 가지가 기대가 됩니다. 하나는 막가파 막간다. 막산다 하나는 자유 둘 중에 하나가 기대가 됩니다.그런데 부처님 말씀을 법다웁게 배운 우리들은 막가파로 갈 리가 없죠. 그러면 우리에게 기대가 되는 것이 뭐냐 하면 곧 죽을 것이다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자유다 형이하학적으로 논리적으로만 따져도요 실체가 없다고 그러더라도 곧 죽을 것이다 라고 여기고 사는 사람은 자유입니다. 그럴까요. 아까 비즈니스하든 정치하든 마찬가지 입니다.마치 우리 영원히 살것 처럼 돈 끌어 모으잖아요. 그러나 곧 죽을 것이다 아는 사람은 쓸만큼 쓸 이상만 필요한 만큼 많이 필요하다면 좀 더 많이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노예가 되지 않습니다. 벌드래도 잘 벌고 노예가 아니고 주인으로써 씁니다. 돈을 써더래도 ...
우리가 언젠가부터 돈은 쓰임 이었는데 점점 주종이 바뀌어 가잖아요. 돈이 주인이 되고 마치 종처럼 되잖아요. 거기에 헐떡거려서 하고픈 일도 못하고 인생을 다 허비하잖아요. 곧 죽을 것이다 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법을 모르면 막가파 이지만 법을 배운 사람은 막가파가 아니고 자유이고 좀 더 유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논리적으로만 갖고도 삶에 대해서 다시 반조해 보기 시작하죠. 그리고 또 기대가 되는 것은 우리 시한부 생명 있죠. 시한부 생명의 사람에게 두 부류가 있습니다. 비종교적인 사람은 너무나 좌절하고요 종교적인 사람들에서 전부 다는 아니지만 자주 벌어지는 일이 한 3개월 남았다고 할 때에 세상이 아름다워집니다. 작은 풀꽃에서 천국을 봅니다. 인사 합니다 얘들아 안녕 야! 저는 몰랐는데 너는 거기에 거기에서 그렇게 예쁘게 방긋하면서 웃고서 피어 있었단 말인가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하죠. 그와 같이 곧 죽으리라 여기는 사람은요
첫 번째는 자유고 두 번째로 기대가 되는 것은 세상이 축복으로 보여집니다 아름다워 집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제일 중요한 거죠 세 번째로 기대가 되는 것이 곧 죽을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말씀하시는 제일 중요한 겁니다. 경전에서는 이것 때문에 부정관 공동묘지 보라는 것인데 ʺ그대도 곧 저와 같이 시체가 될 것이다 늦기 전에 공부 지어라 이 말씀인거죠 곧 저와 같이 시체가 될 것인데 그래서 또 윤회해서 사람으로 온다는 보장도 너무나 힘든데 지금 공부지어라 윤회가 없다면 안 지어도 되죠. 윤회가 필경 사실인데 공부를 안 지으면 큰일 나죠 공부를 늦기 전에 지어라는 말씀인 거죠ʺ
우리가 거 대부분의 모든 피라미드 사람들은 죽을 때 두렵죠. 두렵습니다. 나이가 먹어갈수록 점점 더 두렵습니다. 사실 겁납니다. 오늘 내일 오늘내일 육순 칠순 넘어가면 겁납니다. 인제 언제 올지 모르니까 비록 평균 수명이 팔십이라 해도 칠순 넘어가면 이제 겁나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예불 문에 있듯이 공부를 지은 사람은 해탈을 못해도 공부를 많이 지은 사람은 죽을 때 여행 가듯이 깨끗하게 준비하고 두려움 없이 죽는 다는 거죠
해탈을 못했어도 그래서 공자님 말씀으로 갑자기 돌아갑니다만 아침에 공부를 지어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말이 있죠( 조문도석사가의) 그 공부가 마음공부를 오늘 지으면 내일 죽어도 두려움 없이 죽을 수가 있다
그 누군가가 학교 때 배운 건데 스피노자가 ʺ 나는 내일 지구가 멸망 한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고 ʺ 그분이 죽을 때도 진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얘기가 그분의 마음이라면 그분은 공부가 많이 된 거죠 두려움 없다 이런 얘기입니다
저번에 얘기 했지만 버나드쇼우라는 영국의 극작가는 ʺ 이리저리 헤매다가 그럴 줄 알았다. ʺ ʺ내 우물 쭈물 하다가 이렇게 될 줄 알았다ʺ는 죽을 때도 두려움이 있다는 거죠 마직 막에 후회가 되는 건데 두려움 없이 간다. 그리고는 좋은 곳 또는 사람세계 천상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래서 부정관을 해야 됩니다
저 요번에 인도 성지 가셨든 훌륭한 분들께서 와라나시 흔히 바라나시 라고하는 강가 갠지스 강에서 보셨죠. 시체 타는 것을 직접 보았 습니다. 죽자마자 시체를 데려왔기 때문에 시체가 굳을 시간도 없었나봐요 굳고 태우는것이 아니라 죽자마자 딱 그 화장터로 데려 오는데 살이 물렁물렁하니까 툭툭툭 떨어지는 겁니다.
태우니까 그 자리에서 타는 것을 적란하게 보이는 거죠 장작으로 참 무상 했었죠 그 걸보면 삶이 무상합니다. 그래도 그들은 윤회 관을 영적인 나라이기 때문에 윤회를 믿으니까 우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죠. 가족들이 슬프게 우는 사람은 한명도 없었습니다. 그냥 묵묵히 보는 거죠 그냥 죽었는데 곧 죽자마자 태우니까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저는 매스미디어를 잘 안보기 때문에 사실 소 돼지 살 도축 살 도살 살 처분 이라고 그런가요. 몇 분이 오셔서 불쌍하다고 얘기하셨는데 별로 와 닿지 않았는게 몰랐어요. 오늘 봤어요. 인터넷에서 아! 정말 무참하네요! 불쌍하고 특히 어린가축들 그 걸보면서 경에 니까야 에 그런 말씀이 계시거든요 ʺ동물로 태어나지마라ʺ 그냥 오늘 모가지 댕강 내일 모가지 댕강 댕강 댕강 댕강 닭으로 태어나면닭고기 댕강 댕강 무참하게 목 잘리거든요 살 처분인가 거기서보면 아기 돼지들 아이쿠 소에서 아기소도 아이쿠 동물로 나면 안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어요.
참 비참하구나. 특히 동물 중에서도 가축으로 나면 안 되겠다. 이런 생각을 했어요. 먹히는 가축 애완용 말고 애완용은 괜찮은데 애완용은 가축이라고 안하죠. 애완용 말고 동물로 나더라도 자연에 나야겠죠.
그거 가축 동물로 났을 때에 잡아먹히는 가축 이걸로 나면 최악인 것 같습니다 동물 중에 그래서 지금 말씀드린 것이 샛길로 잠깐 갔는데 죽기 전에 공부 지어라 이 말씀인겁니다 시체를 보고서 경에 니까야에 다름 말씀 계시죠.
죽어서 저 세상에 가니까 그대는 천사를 보았는가? 못 보았는데요. 세상에 천사가 어디 있습니까. 죽는 사람을 못 보았는가 보았습니다. 그게 천사였다 이러 시잖아요. 그게 보낸 천사였다 이러는 거요 죽은 이들을 보고 그대도 이와 같이 곧 죽을 것이니 공부 지어라를 보낸 천사 였다. 병든 사람도 못 보았는가. 이렇게 또 나오죠. 요번에 그 살 처분 그 가축들이 천사였든 거예요 우리에게 지금 보여 주는 겁니다. 공부지어라고
거 두 번째는요 ②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를 까마귀 떼가 달려들어 마구 쪼아 먹고 솔개무리가 쪼아 먹고 독수리떼가 쪼아 먹고 개떼가 뜯어먹고 쟈칼들이 뜯어먹고 별의별 벌레들이 다 달려들어 파먹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지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그래도 여기는 지금 죽은 다음 이예요 아까거 예를 든 가축 이렇게 나오지 말아야 되는 게 인터넷 보니까 거기는 산채로 그러더군요. 지옥이죠. 굉장히 괴로웠을 거예요 살아서 그렇기 때문에 여기 조장도 나왔고 두 번째에는 개떼에게 쟈칼에게 뜯어 먹히는 것이 같이다 나왔습니다.
.앞에는 독수리 까마기떼가 쫓아먹고 요번에 오기 전에 양평에서 공부 하시는 분이 직접 보았는데 티벳에서 그것도 함부로는 아무나 못 보게 한데요 그런데 어느 친분 있는 법왕인가 그분인가 같이 가서 봤데요 직접 죽은 다음 그냥 먹으라고 주는 것이 아니래요 다 잘라낸대요 먹기 좋게 그렇게 해서 던진 데요 그것도 시체 한구씩 가져가는 것이 아니래요 한 번에 좀 모아갔고 이것 보면 정말 굉장한 두려움이 있을 거예요
조장은 그분은 별로 감흥이 없었다고 그러는데 그럴 수 있다고 그런데 지금개떼한테 뜯어 먹히고 쟈칼한테 뜯어 먹히면 메스껍지 않을까요. 개떼나 쟈칼이 사람을 막 뜯어먹으면 이렇게 곧 죽으리라고 사실 우리가 어렸을 때 라도요 작은 아이 더래도 곧 죽을 것이라는 것을 정확히만 인식하더라도 사람들이 다 맡길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참 묘한 게 나이가 들어도 머리로는 꼭 아는데 죽을 것이 라는 것을 내일 같이 생각 안 해요 남의일이다 이렇게 생각이 들죠. 분명히 알면서도 어떻게 보면 이것이 비이성적이죠.
③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해골이 되어 살과 피가 묻은 채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④해골이 되어 살은 없고 아직 피가 남아 있는 채로 힘줄에 얽혀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⑤해골이 되어 살도 피도 없이 힘줄만 남아 서로 이어져 있는 것을 보게 될것이다.
⑥백골이 되어 뼈들이 흩어져서 여기에는 손뼈, 저기에는 발뼈, 또 저기에는 정강이뼈, 저기에는 넓적다리뼈, 저기에는 엉덩이뼈, 저기에는 등뼈, 저기에는 갈빗대,저기에는가슴뼈,저기에는팔뼈,저기에는 어깨뼈, 저기에는 목뼈. 저기에는 턱뼈, 저기에는 치골, 저기에는 두개골 등이 사방에 널려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뒤로 갈수록 저희가 비참해 지지는 않죠. 이제 뭐 흩어지고 뼈가되고 이렇게되는데 이것을 보면 삶이 참무상하구나 이렇게 느껴서 생멸을 짓는 것을 떠나라는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불사의문은 열렸다 이러셨죠. 불생불멸의 궁극의 문을 열어 놓았으니 지금 이 삶에서 그 법을 쫓아 실천을 해서 궁극이 되어라 만약 궁극이 못되더라도 좋은 곳 또는 천상세계 이상으로 나날이 향상일로 하지 악처로는 떨어지지 말라 부처님 법을 실천 하게 되면 악처로는 떨어지지 않는 겁니다.
⑦ 다시 비구들이여 비구는 마치 묘지에 버려진 시체가 백골이 되어 뼈가 하얗게 변하여 조개껍질 색깔처럼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⑧ 백골이 되어 단지 뼈 무더기가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⑨ 그 백골이 해를 넘기면서 삭이 가루가 된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는 자신의 몸을 그에 비추어 바라본다.
이 몸 또한 그와 같고 그와 같이 될 것이며 그에서 벗어나지 못하리라고 이 와같이 안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밖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 몸에서 몸을 관찰 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몸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몸이 있구나. 라고 (객관적으로 보는 거죠) 사띠를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사띠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 )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것도 움켜쥐지 않는다. 세상을 초월했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문다. 몸에 대한 관찰이 끝났어요.
처음에는 31가지 해체가 나왔고 네 가지 지수화풍에 요소들로 고찰이 나왔고 아홉 가지 시체이자 뼈 해골을 공동묘지의 관찰 이라는 부정관이 여기서 끝났습니다. 좀 스피드하게 나가고 있습니다.
느낌의 관찰 비구들이여 이제 느낌입니다. 어떻게 비구가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비구들이여 여기비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끼면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낀다고 꿰뚫어 안다.
이렇게 세 가지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입니다 이 세 가지 느낌을 이와 같이 안으로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밖으로 혹은 안팎으로 혹은 느낌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혹은 느낌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혹은 느낌에서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입니다.
자 한번 보시죠. 먼저 들어가기 전에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그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 우리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요 즐겁다 라고 끝납니다. 그죠 부처님께서는 즐거운 느낌을 느끼면서 즐거운 느낌을 느끼고 있구나. 라고 꿰뚫어 알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자 어허 얘 봐라. 순일이가 맛 있는거 먹으면서, 순일이가 아~ 나는 즐거워하면 이걸 끝난 거예요. 보통의 우리들입니다.
순일이가 맛있는 거 먹으면서 얘 봐라. 순일이 얘는 맛있는 거 먹으면서 맛있다고 얘네 지금 느끼고 있네. 라고 꿰뚫어 안다. 그러면 꿰뚫어 아는 것은 순일이가 아닌 거예요.
반야죠 편재해있는 다 알고 다보는 궁극의 깨달음 깨어있음입니다. 그것이 드러날 때 까지 공부 지어라는 겁니다. 우리가 보통 아 맛있다 하면 내가 맛있는 걸로 끝나는데 얘가 지금 맛있어 하고 있구나. 라고 객관적으로 아는 앎이 있다 라는 거죠. 실지로 그저께 비유했지만 꿈에 깨어 있으면 꿈밖에서 꿈속의 등장인물들을 다 보면서 등장인물의 그중에 쟤가 나라는 얘가 꿈속에서 맛있어하고 있구나를 알아요. 객관적으로 그렇게 드러날 때 까지 하라는 말씀인거죠
그런데 지금 이 세 가지 느낌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에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눕니다.
육체적인느낌, 정신적인느낌, 육체적정신적으로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느낌, 이렇게 나눠지는 거죠
육체적 느낌은, 눈이즐거워 하는것 어떤 모양을 보면서 모습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느낌 귀가, 코가, 혀가, 몸뚱아리가 느끼는 것이 육체적 느낌 이것을 통합적으로 뇌에서 경험하는 현대 용어로 얘기하면 뇌 사실은 마음인데 마음에서 경험하는 것이 정신적인 느낌 이렇게 됩니다.
크게 두 개로 나눠지는데 여기 경에서는 부처님께서 세속적인 느낌과, 비세속적인 느낌으로 나눴어요.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이 뭐냐 하면요. 좀 전에 얘기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바깥에 무엇을 집착해서 얻어갔고 즐거워하는 것들 이것이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이죠. 세상에서 그것을 구했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 혓바닥이 맛보면서 즐거워하는 것이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눈이 아름다운 모양을 보면 즐거워 하는 게 세속적인 즐거운 느낌 세속적으로 괴로운 느낌은요 바로 나와 바깥세상의 사이에서의 접촉에 의해서 우리가 흔히 괴롭다고 하는 느낌을 괴로운 느낌 이라 해요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뭘까요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평소에 거의 모든 사람들의 모습 이예요 평소에 즐거워하는 일이 잠깐 있고 괴로워하는 일이 잠깐 있고 그 사이에 아무 일이 없다 하루 중에 하루에 그것이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다
그것이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것이 그게 무기 상태입니다 잠자는 시간 빼고 하루 중에 보면 그 시간이 제일 많죠.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시간이
아~그 안 좋은 시간 이예요. 보통은 그건데 또는 세속적으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그냥 평온한 느낌도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 입니다. 세속적으로 합니다.
예를 들어서 휴가를 가서 좀 한가롭다 평온 하죠 그때 딱히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데 평온하다 한가로 와서 이러면 세속적으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입니다.
그런데요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은 뭐냐 면요 삼매에서 오는 즐거운 느낌 행복 지복이죠. 부처님께서 세상에서 오는 감각적 욕망의 세속적 즐거운 느낌은 초선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초선은 감각적 욕망의 세속적 즐거운 느낌보다 훨씬 더 즐겁고 행복하다 이선은 초선 보다 더 이렇게 해서 계속 삼매가 되면 지복이라 그러셨죠.
그러시면서 경에서 그런데 상수멸도 열반도 상이 멸하고 느낌이 모두 멸한 상수멸도 궁극의 지복이다 이러셨어요. 그런데 여기서 외도들이 아마 이런 질문을 할 것이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 느낌도 멸했다고 하시면서 지복을 천명한다. 이것은 모순이다 왜냐하면 지복이란 건 느낌이 있어야 되잖아요.
느낌이 소멸했는데 지복이라고 한다고 외도들이 비난할 것이다. 라는 거죠 그런데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죠 느낌이 완전히 없어지면 가이없는 궁극의 지복이다. 이게 이해가 잘 안되시죠.
느낌이 있어야 지복을 알 것 같잖아요. 아~ 그렇지가 않다 이런 모든 느낌들이 사라져서 어제 그제 잠에서 깨어 있는것 얘기 드렸는데 잠에서 깨어 있는 건 거기에는 빛도 없고 어둠도 없고 마음이 일체가 없어요. 누가 와서 몸뚱아리 찔러도 모른다고 그랬잖아요. 그러니 무슨 느낌이 있겠어요. 그런데 제가 지복이라 얘기 드렸어요.
불멸이고 지복이다 느낌이 아니요 말로는 표현할 수가 없는데 그 상태에서는 아는데 그것은 느낌으로 오는 지복이 아니예요 “가이없는 지복이다. ” 말 할 수가 없다 그건 느낌으로 오는 게 아니예요 마음도 없는데 느낌이 있을수 있나요
몸뚱아리 찔러도 모르는데 그래서 그건 표현할 길이 없지만 그런 느낌이 아니다 .왜냐하면 몸뚱아리도 몰라요 마음도 몰라요 그 상태에서는 다 사라졌기 때문에 몸과 마음이 느끼는 느낌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복이다. 지복이라는 단어가 너무나 불충분한데 그 단어밖에는 우리가 사용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차용한 것이지
지복이라는 단어로는 너무나 부족한 거죠 그 상태는 그래 비세속적인 즐거운 느낌은 그겁니다
비세속적인 괴로운 느낌은요 아까 세간에서의 괴로운 그런 괴로움이 아니고요 공부를 짓는 동안에 곤란함 이예요 예를 들면 계목을 지킬려고 해도 못지키는 동안에 곤란함이 오고, 삼매를 할려고 해도 삼매가 안 되니까 곤란함이 오고, 삼매가 되었어도 또 그 위의 삼매가 안 되니까 안타깝고 ,또 위의 삼매가 되었어도 됐다 안됐다 하니까 안타깝고 이런 것들이 비세속적 괴로움 입니다
그러니 공부에 관련해서 괴로움인거죠 또 화를 참을 여니까 참는 동안에 곤란함이 있을 거잖아요 나중에는 지고스러워 지지만 처음에 인욕바라밀 하는 동안에 많은 곤란함이 있을 것이다 이것도 비세속적인 괴로움인 겁니다. 이런 괴로움은 받들어 행해야 되는 괴로움 이죠 공부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과정상만 곤란한 거기 때문에 비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은 아까 무기상태가 아니고 사선이죠.
네 번째 삼매 네 번째 삼매를 제가 한번 읊어 보겠습니다.
“행복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사띠가 현전하여서 청정한 제 사선에 들어 머문다”
아까 세속적인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그런 나쁜 쪽이 아니고요 이것은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행복하지도 않다 이런 거고요 가이없는 지복이 되는 겁니다. 이유는요 행복의 동전의 양면 반대쪽이 괴로움 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동안은 괴로움이 있습니다. 행복이 있으면 괴로움은 꼭 있습니다. 행복도 괴로움도 A와 anA 를 둘 다를 버리게 되면 그것은 지복이 된다. 원어로 본다면 반쪽의 행복 반쪽의 괴로움 이다.
행복이 있는 한 괴로움은 있다. 괴로움이 있는 한 행복이 있다. 늘 오간다. 들뜸과 후회를 둘 다를 초월하게 되면 가이없는 궁극이 된다는 거죠 그런데 처음부터 사선을 할 수는 없는 거죠 살면서 충분히 훌륭하게 잘 살고 많은 재물을 모으고 많은 명성을 얻고 어떤 회중에 들어가더라도 떳떳하고 죽을때 여행 가듯이 깨끗하게 준비하고 죽고, 죽자마자 천상세계 태어 난다 라는
부처님께서 살아서 계목을 어느 정도 지켜도 된다고 그러셨죠. 그리고 계목을 어느 정도 지킨 다음 삼매를 해야 되는 거죠 삼매를 하게 되면 초선 에서 희열과 행복이 넘칩니다. 더 높은 이선을 하게 되면 더욱더 넘칩니다. 더높은 삼선을 하게 되면 희열과 행복은 없어지고 몸과 마음은 행복하다 몸과마음은 너무 행복하다 거기서 사선을 가는 겁니다. 사선에서
사선에서 어떤 행복을 버리냐 하면 세상의 행복을 버리는 것을 넘어서서 삼선의 너무 행복 하다고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가이없이 고요해 지는 거죠
행복을 버리니까 괴로움은 저절로 버려 지는 겁니다.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앞서서 과거에 기쁨과 슬픔 이라는 진폭이 큰 행복과 슬픔을 옛날에 버렸다 이미 그래서 더 이상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지고하고 청정한 제 사선에 들어 머문다. 이게 비세속적인 즐거움입니다.
그런데요 비세속적인 즐거움인인 사선에 들라가 아니예요 사선은 뒤에 삼매할 때 나왔습니다. 사선에 들어서 사선에 든 것을 단순히 사선에 들어서는 삼매입니다 사선에 든 것을 관찰해라 지금 그 말씀인거죠. 사선에서의 느낌을 지고의 느낌을 관찰해라. 이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삼매도 돼있고 위빠사나도 있는 거죠 삼매와 위빠사나가 드디어 만난 거죠 그렇게 가 됩니다 이렇게 느낌관찰이 끝났고요 5분 쉬었다 마음관찰 하겠습니다.
녹취자 :예심 201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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