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쌍윳따 니까야

S56:11-S56:20. 제56상윳따 - 제2장 전법륜 품 (Dhammacakkapavattana-vagga)

Daisy청량심 2023. 6. 27. 04:39

-     초전법륜 경

-     여래 경

-     무더기 경

-     안의 감각장소 경

-     호지 경1

-     호지 경2

-     무명 경

-     명지 경

-     뜻의 함축 경

-     진실함 경

 

 

초전법륜 경(S56:11)252) Dhammacakkappavattana-sutta

 

252) 본경은 부처님의 최초의 설법을 담고 있는 가르침이다. 『율장』 (Vin.i.10~12)에도 나타나고 있고『맛지마 니까야』「진리의 분석 경」(M141) 『위방가』(Vbh.99~105)에서 분석되고 있으며, 『청정도론』 XVI.32~83과『위방가 주석서』(VbhA.93~112)에서 설명이 되고 있다주석서의 방법론을 따라서 설명을 하고 있는 책으로는 Rewata Dhamma, The First Discourse of the Buddha가 있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2. 거기서 [421] 세존께서는 오비구253)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253) '오비구' pañcavaggiyā bhikkhu를 옮긴 것이다오비구는 세존이 깨달음을 성취하시기 전에 고행을 하실 때부터 가까이에서 따라다니던 석가족 출신의 바라문 수행자들이다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 「무아의 특징경」(S22:59)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3. “비구들이여, 출가자가 가까이하지 않아야 할 두 가지 극단이 있다. 무엇이 둘인가?

그것은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하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과,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두 가지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여래는 중도(中道)를 완전하게 깨달았나니

[이 중도는안목을 만들고254)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한다.

 

254) 본서 제4 「라시야 경」(S42:12) §4의 주해를 참조할 것.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바른 사유바른 말바른 행위바른 생계바른 정진바른 마음챙김,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바로 여래가 완전하게 깨달았으며, 안목을 만들고 지혜를 만들며,

고요함과 최상의 지혜와 바른 깨달음과 열반으로 인도하는 중도이다.”

 

5.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이다.

태어남도 괴로움이다. 늙음도 괴로움이다. 도 괴로움이다. 죽음도 괴로움이다.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도 괴로움이다.]255)

싫어하는 [대상]들과 만나는 것도 괴로움이다. 좋아하는[대상]들과 헤어지는 것도 괴로움이다.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도 괴로움이다.

요컨대 취착의 [대상이 되는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자체가 괴로움이다.”

 

255) [ ]안의 부분은 soka-parideva-dukkha-domanass' upāyāsā pi dukkhā를 옮긴 것인데 Se, Be에는 나타나지 않고 Ee에만 나타난다물론 고성제를 정의하는 다른 경들(『디가 니까야』「대념처경」 (D22) )에서는 나타나지만 대부분의 이 「초전법륜 경」의 판본들에는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그래서 역자는 [ ] 안에 넣어서 이 부분을 옮겼다.

 

6.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이다.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256) 즐김탐욕이 함께하며257)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258) 이다.

259) 감각적 욕망 대한 갈애[欲愛],260) 존재 대한 갈애[有愛],261)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262)가 그것이다.”

 

256)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ponobbhavikā)'라는 단어는 다음과 같이 설명된다. '다시 태어남을 만든다.'는 뜻이 뿌놉바와(punobbhava)'이고, '습관적으로 다시 태어남을 만드는 것' '뽀놉바위까(ponobbhavikā,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는 것)'이다. (DA.iii.799) 더 자세한 설명은 본서 제3 「짐 경」 (S22:22) §5의 주해를 참조할 것.

257) '김과 탐욕이 함께하며(nandi-rāga-sahagatā)'라는 것은 [갈애가즐김과 탐욕과 뜻으로는 하나라는 뜻이다. (DA.iii.799)

258)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tatratatra-abhinandini)'이란 어느 곳에서 몸을 받더라도 즐거워한다는 뜻이다. (DA.iii.800)

259) '(seyyathida)'이란 부사로서 '만약 어떤 것이 그것 인가라고 한다면 이란 뜻이다. (DA.iii.800)

260)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kāma-tahā]'란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탐욕의 동의어이다. (DA.iii.800)

261)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bhava-tahā]'란 존재를 열망함에 의해서 생긴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이 함께하는 색계와 무색계의 존재에 대한 탐욕과 禪을 갈망하는 것의 동의어이다. (DA.iii.800)

262)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 vibhava-tahā]'라는 것은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이 함께하는 탐욕의 동의어이다. (DA.iii.800)

 

7.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이다.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263)

버림놓아버림벗어남집착 없음이다.”264)

 

263)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asesa-virāga-nirodha)'이라는 등은 모두 열반의 동의어들이다열반을 얻으면 갈애는 남김없이 빛바래고 소멸하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이라고 설하셨다열반을 얻으면 갈애가 떨어지고 놓아지고 풀어지지 달라붙지 않는다그러므로 열반은 버림놓아버림벗어남해탈집착 없음이라 불린다.(DA.iii.800 -801)

264) 열반은 하나이지만 그 이름은 모든 형성된 것들의 이름과 반대되는 측면에서 여러 가지이다즉 남김없이 빛바램남김없이 소멸함버림놓아버림벗어남집착 없음탐욕의 멸진성냄의 멸진어리석음의 멸진갈애의 멸진취착 없음생기지 않음표상 없음원함 없음업의 축적이 없음재생연결이 없음다시 태어나지 않음태어날 곳이 없음태어나지 않음늙지 않음병들지 않음죽지 않음슬픔 없음비탄 없음절망 없음오염되지 않음이다.(DA.iii.801)여기에 언급되고 있는 26개의 열반의 동의어는 원어로는 각각 다음과 같다.(모두 주격으로 표기했음)

 

8.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265) 진리 [苦滅道聖諦]이다.

[422]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265) '성스러운(ariyo)'이라는 것은 도에 의해서 파괴되어야 할 오염원들을 멀리 여의어 성스러운 상태가 되었으므로 성스럽다고 한다. (Ibid)

 

9.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266)

 

266) 이 정형구는 본서 제2 「위빳시 경」 (S12:4~10) §16 §29(12연기에 대해)「도시 경」(S12:65) §6 §9(12연기에 대해)4 「지혜 경」(S36:25) §(느낌에 대해)본서 제5 「전에 들어보지 못함 경」(S47:31) §(사념처에 대해)본서 「지혜 경」(S51:9) §(4정근에 대해)에도 나타난다.

여기서 눈[], 지혜[], 통찰지[], 명지[], 광명[]은 각각 cakkhu, ñāa, paññā, vijjā, āloka를 옮긴 것이다눈 등은 모두 지혜의 동의어(ñāa-vevacana)이고 명지는 꿰뚫음(paivedha)의 뜻이라고 한다.(SA.ii.21)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0.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1.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었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2. “비구들이여, 나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13. “비구들이여,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열두 가지 형태267)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지 못하였다면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하였다고 [423]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지 않았을 것이다.

 

267) '세 가지 양상' '열두 가지 형태'는 각각 ti-parivaṭṭa dvādas-ākāra를 옮긴 것이다. "세 가지 양상(ti-parivaṭṭa)'이란  진리에 대한 지혜(sacca-ñāa)  역할에 대한 지혜(kicca-ñāa)  성취된 지혜(kata-ñāa)라 불리는 세 가지 양상을 말한다여기서 첫 번째는 사성제 각각에 대한 여실한 지혜(yathābhūta ñāa)이고두 번째는 철저히 알아야 하고(pariññeyya) 버려야 하고(pahātabba) 실현해야 하고(sacchikatabba) 닦아야 하는(bhāvetabba) 사성제 각각에 대해서 행해져야 하는 역할을 아는 지혜(kattabba-kicca-jānana-ñāa)이며세 번째는 이러한 역할이 성취된 상태를 아는 지혜(kata-bhāva-jānana-ñāa)이다. '열두 가지 형태(dvādas-ākāra)'란 사성제 각각에 대해서 위의 세 가지 지혜를 곱하면 12가지 형태가 되는 것을 말한다.(SA.iii.297)

 

14. “비구들이여, 그러나 내가 이와 같이 세 가지 양상과 열두 가지 형태를 갖추어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있는 그대로 알고 보는 것이 지극히 청정하게 되었기 때문에

나는 위없는 바른 깨달음을 실현했다고 신과 마라와 범천을 포함한 세상에서,

사문 · 바라문과 신과 사람을 포함한 무리 가운데에서 스스로 천명하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나의 해탈은 확고부동하다이것이 나의 마지막 태어남이며,

이제 더 이상의 다시 태어남[再生]은 없다.'라는 이 일어났다.”

 

15.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오비구는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 상세한 설명[授記]268)이 설해졌을 때 꼰단냐 존자에게는

'일어나는 법은 그 무엇이건 모두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集法卽滅法].'라는

티 없고 때가 없는 법의 눈[法限]이 생겼다.

 

268) '상세한 설명[授記]'으로 옮긴 veyyākaraa(웨야까라나)에 대해서는 본서 제3 「무아의 특징 경」 (S22:59) §7의 주해를 참조할 것.

 

16. 이와 같이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셨을 때269) 땅의 신들이 외쳤다.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이러한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나니,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도다.”라고,

 

269) '법륜(dhamma-cakka)'에는 꿰뚫음의 지혜(paivedha-ñāa)가르침의 지혜(desanā-ñāa)가 있다사성제에 대해서 생겨난 열두 가지 형태의 꿰뚫음의 지혜와 이시빠따나에 앉으셔서 열두 가지 형태의 진리를 가르치신 것에 의해서 굴려진 가르침의 지혜, [이 둘을법륜이라고 한다이 둘은 십력을 갖추신 (부처님)의 가슴(ura)에서 굴려지는 지혜(pavatta-ñāa)이다안냐꼰단냐. (Aññā-Koṇḍañña) 장로와 18꼬띠(koi, 1 꼬띠는 천만을 뜻함)의 범천들이 예류과에 확립되기(sotapatti-phale patiṭṭhāti) 전까지는 세존께서는 법륜을 '굴리시는 (pavatteti)' 것이었고확립되었을 때는 법륜이 '굴려진(pavattita)' 것이다이것을 두고 '세존께서 법륜을 굴리셨을 때(pavattite ca pana bhagavatā dhammacakke)' 라고 한 것이다. (SA.iii.298)

두 가지 지혜에 대해서는 본서 제2 「십력 경」1(S12:21) §3의 주해도 참조할 것.

 

17, 땅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사대왕천의 신들이 외쳤다.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이러한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나니,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도다.”라고.

 

18. 사대왕천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삼십삼천의 신들  야마천의 신들이  도솔천의 신들이 화락천의 신들이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범신천의 신들이 외쳤다.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 있는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서 이러한 위없는 법륜을 굴리셨나니, [424] 어떤 사문도 바라문도 신도 마라도 범천도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이것을 멈추게 할 수 없도다.”라고,

 

19. 이처럼 그 찰나, 그 짧은 시간, 그 순간에 범천의 세상에 이르기까지 그 소리는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만 개의 세계는 흔들렸고 강하게 흔들렸고 요동쳤으며,

측량할 수 없이 광휘로운 빛이 나타났나니 그것은 신들의 광채를 능가하였다.

 

20. 그때 세존께서는 감흥어를 읊으셨다.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 참으로 꼰단냐는 완전하게 알았구나.”라고,

이렇게 해서 꼰단냐 존자는 안냐꼰단냐270)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270) '안냐(aññā)'가 초기불전에서 전문술어로 쓰이면 이것은 구경의 지혜를 뜻한다. '구경의 지혜(aññā)'란 아라한과(arahatta)를 뜻한다.(AA.iv.200)는 주석서의 설명처럼 이것은 아라한과를 얻었을 때 생기는 지혜를 나타낸다그리고 이것은 아라한과를 얻은 뒤에 태어남은 다했다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할 일을 다 해 마쳤다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선언하는 지혜를 뜻한다이러한 선언을 '구경의 지혜를 드러내다(añña vyākaroti)'로 초기불전의 여러 곳에서 표현하고 있다.(본서 제5권「동쪽 원림 경」 1(S48:45) §등 참조)

그러나 여기서는 꼰단냐 존자가 예류과를 얻은 것을 두고 이렇게 표현하고 계신다안나꼰단냐 존자(āyasmā Añña-Koṇḍañña)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꼰단냐 경」(S8:9)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여래 경(S56:12)

 

3.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진리는 철저하게 알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4.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진리는 버려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5.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어야 한다.'라는, [425]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는 실현되었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6. “비구들이여, 여래들에게는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이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져야 한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眼]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진리는 닦아졌다.'라는,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대한 눈이 생겼다. 지혜[智]가 생겼다. 통찰지[慧]가 생겼다. 명지[明]가 생겼다. 광명[光]이 생겼다.”

 

 

무더기 경 (S56:13) Khandha-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四聖諦]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취착의 [대상이 되는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라는 것이 그 대답이니,

그것은 취착의 [대상이 되는] 물질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느낌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인식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심리현상들의 무더기,

취착의 [대상이 되는] 알음알이의 무더기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苦集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갈애이니,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즐김탐욕이 함께하며 여기저기서 즐기는 것이다.

감각적 욕망에 대한 갈애[欲愛], 존재에 대한 갈애[有愛], 존재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無有愛]가 그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苦滅聖]인가?

그것은 바로 그러한 갈애가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함버림놓아버림벗어남집착 없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苦滅道聖諦]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이니,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말[正語], 바른 행위[正業], 바른 생계[正命], 바른 정진[正精進], 바른 마음챙김[正念], 바른 삼매[正定]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8. “비구들이여, [426] 이것이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안의 감각장소 경(S56:14) Ajjhattikāyatana-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가 있다. 무엇이 넷인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苦聖諦]인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六內處]라는 것이 그 대답이니,

그것은 눈의 감각장소 귀의 감각장소, 코의 감각장소,

혀의 감각장소, 몸의 감각장소 마노의 감각장소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라 한다.”

 

… <이 이하는 앞의 「무더기 경」 (S56:13)의 해당부분과 동일함.> …

 

 

호지 경1(S56:15) Dhārana-sutta

 

3.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호지하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427]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호지하고 있는가?”

 

4. “세존이시여, 저는 괴로움은 세존께서 설하신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일어남은 세존께서 설하신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소멸은 세존께서 설하신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은 세존께서 설하신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5.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으니 장하구나.

비구여, 괴로움은 내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괴로움의 일어남은 내가 설한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괴로움의 소멸은 내가 설한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은 내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이와 같이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그대는 잘 호지하라.”

 

6.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호지 경2(S56:16)

 

3.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호지하는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어떤 비구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비구여, 그러면 그대는 어떻게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호지하고 있는가?”

 

세존께서 설하신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괴로움의 일어남은 세존께서 설하신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

괴로움의 소멸은 세존께서 설하신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은 세존께서 설하신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호지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습니다.”

 

5. “장하고 장하구나, 비구여.

비구여, 그대는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잘 호지하고 있으니 장하구나.

비구여, 괴로움은 내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첫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괴로움의 일어남은 내가 설한 두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

괴로움의 소멸은 내가 설한 세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은 내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라고 그대는 잘 호지하라.

비구여, 그런데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그들이 말하기를, [429]

'이것은 사문 고따마가 설한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가 아니다.

나는 이런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버리고 다른 네 번째 성스러운 진리를 천명할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비구여, 이와 같이 내가 설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그대는 잘 호지하라.”

 

6.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무명 경(S56:17) Avijjā-sutta

 

2.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무명, 무명'이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것이 무명이고 어떻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됩니까?”

“비구여, 괴로움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무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무지 

이것을 일러 무명이라 하고, 이렇게 해서 무명에 빠지게 된다.”

 

4.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명지 경(S56:18) Vijjā-sutta

 

2.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명지, 명지'라고들 합니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명지이고 어떻게 해서 명지에 도달하게 됩니까?”

 

“비구여, [430]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

이것을 일러 명지라 하고, 이렇게 해서 명지에 도달하게 된다.”

 

4. “비구여, 그러므로 그대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뜻의 함축 경(S56:19) Sakāsana-sutta

 

3. “비구들이여,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나는 시설(施設)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조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271)이 함축되어 있다.

 

271) 주석서는 '색조(vaṇṇa)', '표현(vyañjana)', '(sakhāsana)'의 이 셋을 동의어로 간주하고 있으며문자(akkhara)를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SA.iii.298)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고 나는 시설하였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이다.'라는 여기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색조와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표현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진실함 경(S56:20) Tatha-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진실함, 거짓이 아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272)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272) '진실함(tatha)'이란 고유성질을 버리지 않음(sabhāva-avijahan-aṭṭha)의 뜻이다괴로움을 괴로움이라고 하기 때문이다고유성질은 헛되지 않는 것(amoghatā)이기 때문에 거짓이 아님(avitatha)'이라고 하셨다괴로움은 괴로움 아닌 것(adukkha)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다른 성질로 될 수 없기(añña-bhāva-anupagama) 때문에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anaññatha)'이라고 하셨다괴로움은 일어남 등의 성질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괴로움의 일어남등에도 이 방법이 적용된다.(SA.iii.298)

이 셋에 대해서는 본서 제2 「조건 경」(S12:20) §5와 주해도 참조할 것.

 

비구들이여, '이것이 괴로움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이것이 [431]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는 이것은 진실하다.

이것은 거짓이 아니다. 이것은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진실함, 거짓이 아님, 그렇지 않은 것이 아님이 있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수행해야 한다.”

 

제2장 전법륜 품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