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게송을 포함한 경
- 안거를 마침 경
- 담마딘나 경
- 병 경
- 예류과 경
- 통찰지를 얻음 경 등
게송을 포함한 경(S55:51) Sagāthaka-sutta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405]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응공]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遍覺,정편각]이시며,
명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명행족]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선서]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세간해]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무상사]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조어장부]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천인사]이시며,
깨달은 분[佛부처님]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부처님께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스스로 보아 알 수 있고,
시간이 걸리지 않고,
와서 보라는 것이고,
향상으로 인도하고,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법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바르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참되게 도를 닦고,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합당하게 도를 닦으니,
곧 네 쌍의 인간들이요[四雙]
여덟 단계에 있는 사람들[八輩]이시다.
이러한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공양받아 마땅하고,
선사받아 마땅하고, 보시받아 마땅하고,
합장받아 마땅하며,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닌다.
‘성자들이 좋아하며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성취한 것에]들러 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를 구족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구족한 성스러운 제자는 흐름에 든 자[預流者]여서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졌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간다.”
4.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여래께 움직이지 않고
잘 확립된 믿음을 가지고
선하고 성자들이 좋아하고
칭송하는 계를 지니고
승가에 청정한 믿음이 있고
올곧은 자를 보는 자
그는 가난하지 않다 일컬어지나니
그의 삶은 헛되지 않도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자는
부처님들의 교법을 억념하면서
믿음과 계와 청정한 믿음과
법을 봄에 몰두할지라.”227)
227) 본 게송은 본서 「아나타삔디까 경」1(S55:26) §13의 게송과 같다.
안거를 마침 경(S55:52) Vassavuttha-sutta
2. 그 무렵 어떤 비구가 사왓티에서 안거를 난 뒤 어떤 일 때문에 까삘라왓투에 도착했다.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 사람들은 어떤 비구가 사왓티에서 안거를 난 뒤
까삘라왓투에 도착했다고 들었다. 그러자 까삘라왓투에 사는 사꺄 사람들은 그 비구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그 비구에게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까삘라왓투의 사꺄 사람들은 그 비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3. “존자시여, 세존께서는 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십니까?”
“도반들이여, 세존께서는 병이 없으시고 건강하십니다.” [406]
“존자시여, 그러면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께서도 병이 없고 건강합니까?”
“도반들이여, 사리뿟따와 목갈라나께서도 병이 없고 건강합니다."
“존자시여, 그러면 비구 승가도 병이 없고 건강합니까?”
“도반들이여, 비구 승가도 병이 없고 건강합니다.”
4. “존자시여, 그러면 존자가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이해한 것이 있습니까?”
“도반들이여, 저는 이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이해하였습니다.
'비구들이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무는[阿羅漢] 비구들은 적다.
그러나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不還者]
비구들은 더 많다.'라고”
5. “도반들이여, 저는 다른 것도 역시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이해하였습니다.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은[不還者] 비구들은 적다.
그러나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비구들은 더 많다.'라고”
6. “도반들이여, 저는 다른 것도 역시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이해하였습니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세상에 와서 괴로움을 끝낼 비구들은 적다.
그러나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완전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비구들은 더 많다.'라고”
* 세 가지 족쇄 : 유신견, 의심, 계금취견
담마딘나 경(S55:53) Dhammadin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바라나시에서 이시빠따나의 녹야원에 머무셨다.
2. 그때 [407] 담마딘나 청신사228)가 오백 명의 청신사들과 함께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담마딘나 청신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228) “담마딘나 청신사(Dhammadinna upāsaka)는 부처님 시대에 500명의 재가신도의 무리(upāsaka-parivārā)를 거느린 일곱 사람 가운데 한 명이다.
다른 사람들은 위사카 청신사(Visākha upāsaka), 욱가 장자(Ugga gahapati), 찟따 장자(Citta gahapati),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ḷavaka), 작은 급고독(Cūḷa-Anāthapiṇḍika), 큰 급고독(Mahā-Anāthapiṇḍika)이다.” (SA.iii,291)
3.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교계하여 주십시오. 세존께서는 저희들을 훈도하여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은 저희들에게 오래도록 이익과 행복이 될 것입니다.”
“담마딘나여, 그러므로 그대들은229)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여래께서 설하셨으며, [가르침이] 깊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이고,
공함[空性]과 관련된 경들의 가르침에 자주자주 들어가서 머물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230)
229) 세존께서는 담마딘나를 불러서 말씀하시지만 본경 전체에서 이처럼 복수를 사용해서 말씀하신다. 그것은 담마딘나와 그의 전체 무리들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230) 본서 제2권「쐐기 경」(S20:7) §4를 참조할 것. 세존께서 재가자들에게 이러한 교계(ovāda)를 하시는 경우는 드물다. 주석서는 부처님의 이 말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색다른 설명을 하고 있다.
“'[가르침이] 깊고(gambhīrā)'라는 것은 『숫따니빠따』「살라 경」 (Sn3:8/112~114) 등을, '뜻도 깊고(gambhīr-atthā)'라는 것은 본서 제2권 「의도 경」1/2/3(S12:38~40) 등을, '출세간적이고(lokuttara)'라는 것은 본서 제4권 「무위 상윳따」(S43)를, '공함[空性]과 관련된 경들(suññata-ppaṭisaṃyuttā)'이란 중생의 공함(satta-suññatā)을 밝히는 본서 제3권 「삼켜버림 경」(S22:79) 등을 말한다.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는 것은 본서 제2권 「달의 비유 경」(S16:3)의 달의 비유에 관한 도닦음(candopama-paṭipadā)과, 『맛지마니까야』「역마차 계주 경」(M124)의 역마차의 계주에 대한 도닦음(rathavinīta-paṭipadā)과, 『숫따니빠따』「성자 경」(Sn1:12/35~38)의 성인의 수행에 대한 도닦음(moneyya-paṭipadā)과, 『앙굿따라 니까야』「계보 경」(A4:28/ii.27~29)의 위대한 성자들의 계보에 대한 도닦음(mahā-ariya-vaṃsa-paṭipadā)을 공부지어야 한다(sikkhitabba)는 말이다.
이처럼 스승께서는 이 재가자들에게 견디기 힘든 짐(asayha-bhāra)을 지우셨다. 왜? 이들은 자신의 경지에 서서(attano bhūmiyaṃ ṭhatvā) 교계(ovāda)를 청하지 않았고 차별 없이 모든 짐(sabba-bhāra)을 짊어질 수 있는 것처럼 세존께 요청을 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승께서는 이처럼 그들이 견디기 힘든 짐을 지우신 것이다. 그러자 [아래에서] 그들은 자신의 경지에 서서 다시 교계를 청하고 있다.”(SA.iii.291)
주석서는 본서 제2권「쐐기 경」(S20:7) §4를 설명하면서도 몇몇 경들을 추천하는데, 거기 나타나는 몇몇 경은 여기에서 언급되고 있는 경들과 다르다. 그곳의 주해를 참조할 것.
4.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자식들이 북적거리는 집에서 살고 까시에서 산출된 전단향을 사용하고 화환과 향과 연고를 즐겨 사용하고 금은을 향유합니다.
그런 저희들이 여래께서 설하셨으며, [가르침이] 깊고, 뜻도 깊고, 출세간적이고,
공함[空性]과 관련된 경들의 가르침에 자주자주 들어가서 머문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다섯 가지 학습계목에 서 있는 저희들에게
이보다 더 높은 법문을 설해 주십시오.”231)
231) 담마딘나의 이런 질문은 본서 「웰루드와라에 사는 자들 경」 (S55:7/v.353) §4에 나타나는 웰루드와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의 질문과 상응한다.
5. “담마딘나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 세존이시다.'라고
부처님께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법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고, …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닐 것이다.
성자들이 좋아하며 …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를 지닐 것이다.'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6.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설하신 네 가지 예류과를 얻은 자의 구성요소에 관한 법들은
저희들에게 있습니다. 저희들은 그대로 살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 [408] 세존이시다.'라고
부처님께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법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고, …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성자들이 좋아하며, …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를 지닙니다.”
7. “담마딘나여, 이것은 참으로 그대들에게 이득이구나.
담마딘나여, 이것은 참으로 그대들에게 큰 이득이구나. 그대들은 예류과를 천명하였구나.”
병 경(S55:54) Gilāna-sutta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벨라왓투의 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2. 그 무렵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었다.
3.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다.
그때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곁에 앉은 삭까 사람 마하나마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4. “세존이시여, 저는 많은 비구들이
'가사가 완성되면 세존께서 석 달 [안거가] 끝난 후 유행을 떠나실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세존의 가사를 만들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통찰지를 가진 재가신도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통찰지를 가진 재가 신도를 교계할 수 있다.'라는 것을 세존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5. “마하나마여, 통찰지를 가진 재가신도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통찰지를 가진 재가 신도232)에게
네 가지 안식(安息)을 가져오는 법으로 안식을 줄 수 있다.
232) “여기서 '통찰지를 가진 재가 신도(sappañña upāsaka)'란 예류자(sotāpanna)를 의미한다.” (SA.iii.291)
[그것은 다음과 같다.]
'존자233)는 안심하십시오. 존자에게는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이시며, … 세존이시다.'라고
부처님께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존자는 안심하십시오. 존자에게는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고, … 지자들이 각자 알아야 하는 것이다.'라고
법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존자는 안심하십시오. 존자에게는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고, … 세상의 위없는 복밭[福田]이시다.'라고
승가에 흔들림 없는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존자는 안심하십시오. 존자에게는 성자들이 좋아하며 … 삼매에 도움이 되는 계가 있습니다."
233) 여기서 존자로 옮긴 단어는 āyasmā인데 이 단어는 대부분의 경우에 출가자들에게만 사용되는 존칭어이다. 그러나 여기서처럼 드물게 재가자들에게 사용되기도 한다.
6. “마하나마여, [409] 통찰지를 가진 재가신도는
중병에 걸려 아픔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는 통찰지를 가진 재가 신도에게
이러한 네 가지 안식(安息)을 가져오는 법으로 안식을 준 뒤에 이렇게 말해야 한다.
'그대는 부모님을 염려합니까?'라고.”
7. “만일 그가 제게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존자여, 존자는 임종하기 마련입니다.
존자가 부모님을 염려해도 그대는 임종할 것이고 부모님을 염려하지 않아도 임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자는 그대의 부모님에 대한 염려를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8. “만일 그가 말하기를 '저는 부모님에 대한 염려를 버렸습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대는 자식과 아내를 염려합니까?'라고
만일 그가 '제게는 자식과 아내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존자여, 존자는 임종하기 마련입니다.
존자가 자식과 아내를 염려해도 그대는 임종할 것이고 자식과 아내를 염려하지 않아도 임종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자는 그대의 자식과 아내에 대한 염려를 버리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9. “만일 그가 말하기를 '저는 자식과 아내에 대한 염려를 버렸습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그대는 인간에 속하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해서 염려합니까?'라고,
만일 그가 '제게는 인간에 속하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대한 염려가 있습니다.'라고 대답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존자여, 인간에 속하는 감각적 욕망보다 신들에 속하는 감각적 욕망은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
그러므로 존자는 인간에 속하는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사대왕천234)의 신들에게 마음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234) 이하 본경에 나타나는 사대왕천부터 타화자재천까지의 여섯은 여섯 가지 욕계천상[六欲天, kāmāvacara-deva]이다. 이들 천상과 신들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5장 §§5~8의 해설들을 참조할 것.
10. “만일 그가 말하기를 '저는 인간에 속하는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사대왕천의 신들에게 마음을 확고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사대왕천의 신들보다는 [410] 삼십삼천의 신들이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
그러므로 존자는 사대왕천의 신들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삼십삼천의 신들에게 마음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11. “만일 그가 말하기를 ‘저는 사대왕천의 신들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삼십심천의 신들에게 마음을 확고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삼십삼천의 신들보다는 야마천의 신들이 …
야마천의 신들보다는 도솔천의 신들이 …
도솔천의 신들보다는 화락천의 신들이 …
화락천의 신들보다는 타화자재천의 신들이 …
타화자재천의 신들보다는 범천의 세상235)이 더 뛰어나고 더 수승합니다.
그러므로 존자는 타화자재천의 신들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범천의 세상에 마음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236)라고.”
235) '범천의 세상'은 brahma-loka를 직역한 것이다. 본서를 비롯한 니까야의 여러 곳에 범천의 세상이란 술어가 나타나고 있다. 주석서에서는 색계 초선천부터 삼선천까지의 9가지 천상과 4선천의 광과천과 무상유정천과 다섯 가지 정거천과 네 가지 무색계 천상 - 이 20가지 천상을 모두 범천의 세상(brahma-loka)으로 부르고 있다.(VibhA.521, 등) 본경에서도 욕계의 가장 높은 천상인 타화자재천 다음에 범천의 세상이 언급되고 있기 때문에 주석서의 이러한 설명은 타당하다. DPPN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로는 색계 초선천의 신들을 범천이라고 볼 수도 있다. 색계 초선천을 범신천(梵身天)이라 부르고 이 범신천은 다시 범중천과 범보천과 대범천으로 구분이 되는데, 이 천상의 키워드가 바로 범천(brahma)이기 때문이다.(범신천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5장 §6의 해설을 참조할 것.)특히 대범천의 몇몇 신들은 범천 혹은 대범천으로 초기불전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초선천을 범천으로 보는 것도 타당하다. 그러나 초선천을 범천이라 부르지 않고 범신천이라 부르고 있기 때문에, 범천과 범신천이 정확히 일치한다고는 볼 수 없다. 그래서 DPPN도 색계 이상의 천상 즉 범천의 세상에 머무는 신들을 통틀어서 범천으로 정리하고 있다.
한편 범천으로 옮긴 brahma는 초기불전에서는 보통명사로도 쓰이며 특히 합성어로도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 경우에는 예외 없이 모두 '신성함, 거룩함, 높음, 위대함' 등의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주석서는 “최상이라는 뜻에서(seṭṭhatthena) 브라흐마 (brahma)라 부른다.” (DA.iii.865 등)라고 설명하고 있다. 예를 들면 청정범행으로 옮기는 브라흐마짜리야(brahma-cāriya)와 거룩한 마음가짐으로 옮기는 브라흐마위하라(brahma-vihāra), 최상의 존재로 옮기는 브라흐마부따(brahma-bhūta), 최고의 처벌로 옮기는 브라흐마단다(brahma-daṇḍa) 등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색계와 무색계 천상을 일컫는 범천의 세상(brahma-loka)은 거룩한 천상 세계로 옮길 수 있다.
236)『맛지마 니까야』「다난자니 경」 (M97/ii.194~195) §30 이하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죽어가는 다난자니 바라문에게 본경과 유사한 순서로 회상을 하여 범천의 세상(brahma-loka)까지 이른 뒤에 멈춘다. 그가 다난자니 바라문을 범천의 세상에까지만 인도하고 멈춘 것 때문에 그는 나중에 부처님으로부터 일종의 꾸중을 듣게 되었다.(같은 경 §38 참조)
12. “만일 그가 말하기를 '저는 타화자재천의 신들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범천의 세상에 마음을 확고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하면 그에게 이렇게 말해 주어야 한다.
'도반이여, 범천의 세상도 무상하고 견고하지도 않고 영원하지도 않고 자기 존재에 포함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존자는 범천의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자기 존재의 소멸237)에 마음을 확고하게 해야 합니다.'라고.”
237) “'자기 존재의 소멸(sakkāya-nirodha)'이란 삼계윤회(tebhūmaka-vaṭṭa)라 불리는 자기 존재의 소멸이란 말이며 열반을 뜻한다.”(AA.iii.153)
자기 존재 혹은 자기 존재 있음[有身, sakkāya]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자기 존재 경」(S22:105)과 「사자 경」(S22:78) §5와 제1권 「아누룻다 경」(S9:6) {774}의 주해와 『앙굿따라 니까야』「사자 경」(A4:33) §2의 주해도 참조할 것.
이렇게 존재의 소멸로 인도하는 이유는 죽어가는 재가자를 범천의 세상에 재생하게 하지 않고 바로 열반의 증득으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13. “만일 그가 말하기를 '저는 범천의 세상으로부터 마음을 거두어들여서
자기 존재의 소멸에 마음을 확고하게 하였습니다.'라고 한다 하자.
마하나마여, 그러면 이와 같이 마음이 해탈한238) 재가자와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 지 백년이 되는239) 비구 사이에는,
즉 이 해탈과 저 해탈 사이에는240) 어떤 차이점도 없다241)고 나는 말한다.”242)
238) '이처럼 마음이 해탈한'은 Se: evaṃ vimuttacittattssa(인쇄상의 실수인 듯)와 Ee: evaṃ vimuttassa 대신에 Be: evaṃ vimuttacittassa로 읽어서 옮긴 것이다.
239) '[번뇌로부터] 마음이 해탈한 지 백년이 되는'은 Ee와 Be: āsavā vimuttacittena 대신에 Se: vassasata-vimuttacittena로 읽고 Ee와 Be를 절충하여 옮긴 것이다.
240) '이 해탈과 저 해탈 사이에는'은 Be: idam vimuttiyā vimuttan ti 대신에 Ee, Se: idam vimuttiyā vimuttin ti를 옮긴 것이다. vimuttiyā vimuttiṃ은 『앙굿따라 니까야』 「수마나 경」(A5:31/iii.34) §9에도 나타나는데 여기서도 아라한과를 얻은 경우에 쓰이고 있다. 그리고 『맛지마 니까야』「깐나깟탈라 경」 (M90) §12에도 비유 가운데 나타나고 있다.
241) 즉 부처님께서는 재가자도 아라한이 될 수 있다고 말씀하고 계신다. 『율장』 (Vin.i.17)에 나타나는 야사(Yasa) 존자의 경우나, 주석서에 나타나듯이 (AA.i.344, 본서 제4권 「케마 경」 (S44:1) §2의 주해 참조) 케마(Khemā) 비구니처럼 재가자의 삶을 버리고 출가하기 직전에 아라한이 된 재가자의 경우는 극히 드물다. 아마 니까야 가운데서는 본경의 이런 언급이 처음인 듯하다. 물론 이 경우도 임종 시에 들려주는 말이다. 그래서 『밀린다빤하』(Mil.264~266)에는 아라한과를 얻은 재가자는 그날에 바로 출가하여 비구나 비구니가 되거나 반열반에 드는 것밖에는 없다고 서술하고 있다.
242) 이쯤에서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해탈(解脫)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한 번 정리해보자. 초기불전에서 해탈의 의미로 많이 나타나는 술어는 ① vimutti(위뭇띠)와 ② vimokkha(위목카)의 둘을 들 수 있다. 이 두 술어는 vi(분리해서)+√muc(to release, muñcati)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이 둘을 解脫, 度脫, 毘木底, 毘目叉, 遠離, 離 등으로 옮겼다.
(1) vimutti(위뭇띠): 초기불전에서 해탈은 대부분 vimutti로 나타나며 이것은 대략 아래 9가지 문맥에서 나타난다.(vimutta는 본 논의에서 제외함.)
① 염오-이욕해탈- 구경해탈지의 정형구로 나타난다. 이것은 이미 본서의 도처에서, 특히 제3권과 제4권의 오온과 12처의 문맥에서 충분히 살펴보았다. 본서 제3권 해제 §3-(4)-②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
② 5법온(法蘊) 즉 계의 무더기, 삼매의 무더기, 통찰지의 무더기, 해탈의 무더기, 해탈지견의 무더기로도 여러 곳에서 나타난다. 본서 제1권 「존중 경」(S6:2) §§3~7과 주해와 제5권 「쭌다 경」(S47:13) §6 등을 참조할 것.
③ 심해탈(心解脫, ceto-vimutti), 혜해탈(慧解脫, paññā-vimutti), 양면해탈(兩面解脫, ubhatobhāga-vimutti)로도 많이 나타난다. 본서 제1권「자자(自恣) 경」(S8:7) §6의 주해 등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
④ 표상 없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animittā ceto-vimutti): 본서 제4권 「표상 없음 경」 (S40:9)의 주해와 「자애 경」(A6:13) §6을 중심으로 살펴볼 것.
⑤ 자애와 함께하는 마음의 해탈[慈心解脫, mettā ceto-vimutti]: 본서 제5권 「자애가 함께 함 경」 (S46:54)을 참조할 것.
⑥ 명지와 해탈(vijjā-vimutti): 본서 제5권 「꾼달리야 경」(S46:6) §3과 주해를 참조할 것. “'명지'는 도를, '해탈'은 과를 뜻한다.” (Pm 237)
⑦ 일시적인 마음의 해탈(sāmāyika ceto-vimutti): 본서 제1권 「고디까 경」(S4:23)과 『앙굿따라 니까야』「일시적 해탈 경」1(A5:149) 등에 나타난다. 예류자 이상인 성자의 경지는 실현하지 못했지만 삼매에 든 순간에는 다섯 가지 장애로 대표되는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에 일시적인 해탈을 얻은 자라고 한다는 뜻으로 주석서는 설명하고 있다.(AA.iii.292)
⑧ 확고부동한 해탈(akuppā vimutti):본서 제2권 「깨닫기 전 경」 (S14:31)을 참조할 것.
⑨ 해탈의 맛(vimutti-rasa): 『앙굿따라 니까야』「빠하라다 경」 (A8:19)에 나타나며, 해탈의 맛은 불사(不死)인 열반을 뜻한다.(AA.ii.39)
다시 정리해보면 해탈(vimutti)은 가장 넓게는 네 가지 과(즉 예류과 · 일래과 · 불환과 · 아라한과)의 증득을 뜻하기도 하고, 아라한과의 증득만을 뜻하기도 하고, 열반의 실현을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네 가지 과는 한 찰나라도 열반에 들었다 나와야 증득된다. 이러한 열반의 체험이 없으면 그 사람은 예류자 등의 성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해탈은 한 찰나라도 열반의 체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다. 그러므로 열반의 체험이야말로 해탈(vimutti)인 것이다.
(2) vimokkha(위목카): 초기불전에서 vimokkha는 대부분 ① 여덟 가지 해탈[八解脫]이라는 문맥(『앙굿따라 니까야』「해탈 경」(A8:66), 『디가 니까야』「합송경」(D33) 3.1 (11)과 「십상경」(D34) 2.1 (10) 등 참조)으로 나타나고, ② 세 가지 해탈(vimokkha) 즉 공한[空] 해탈, 표상이 없는[無相] 해탈, 원함이 없는[無願] 해탈로도 나타난다.(「공한 삼매 경」 (S43:4); Ps.ii.58; Vis.XXI.61;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9장 §47과 [해설] 참조)
예류과 경 등(S55:55~58) Sotāpattiphala-suttādi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예류과를 실현하게 된다.(S55:55) …
일래과를 실현하게 된다.(S55:56) …
불환과를 실현하게 된다.(S55:57) …
아라한과를 실현하게 된다.(S55:58) 무엇이 넷인가?
그것은 [411] 참된 사람을 섬김, 정법을 배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예류과를 … 일래과를 … 불환과를 … 아라한과를 실현하게 된다.”
통찰지를 얻음 경 등(S55:59~61) Paññāpaṭilābha-suttādi
3.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통찰지를 얻게 된다.(S55:59) …
통찰지를 증장하게 된다.(S55:60) …
통찰지를 충만하게 된다.(S55:61) 무엇이 넷인가?
그것은 참된 사람을 섬김, 정법을 배움, 지혜롭게 마음에 잡도리함,
[출세간] 법에 이르게 하는 법을 닦음이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네 가지 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통찰지를 얻게 된다.
… 통찰지를 증장하게 된다. … 통찰지를 충만하게 된다."
제6장 통찰지를 지닌 자 품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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