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쌍윳따 니까야

S22:93-S22:102. 제22상윳따 - 제10장 꽃 품 (Puppha vagga)

Daisy청량심 2023. 6. 21. 01:28

-     강 경

-     꽃 경

-     포말 경

-     쇠똥 경

-     손톱 끝 경

-     간단함 경

-     가죽 끈 경1

-     가죽 끈 경2

-     까뀌 자루 경

-     무상의 (관찰로 생긴) 인식 경

 

 

강 경(S22:93) Nadī-sutta

상윳따니까야 3 각묵스님, p380-382

 

3.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산에서 쏟아지는 강물이 [떨어진 풀과 나뭇잎 등을] 쓸어 가면서 급류와 함께 멀리 흐른다고 하자.

그런데 만일 그 강의 양쪽 둑에 까사 풀이 자라서 그 둑에 붙어 있고,

꾸사 풀도 자라서 그 둑에 붙어 있고, 밥바자 풀도  비라나 풀도 

나무도 자라서 그 둑에 붙어 있다고 하자.

 

그런데 사람이 급류에 휩쓸려 떠내려가다가 까사 풀을 거머쥐면 그것은 떨어져 나가 버릴 것이고 그래서 그는 그 때문에 재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꾸사 풀을  밥바자 풀을  비라나 풀을 나무를 거머쥐면 그것은 [138] 떨어져 나가 버릴 것이고 그래서 그는 그 때문에 재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배우지 못한 범부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여

물질을 자아라고 관찰하고물질을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물질이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물질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물질은 떨어져 나가 버리고 그래서 그는 그 때문에 재난에 봉착하게 된다.

 

느낌을  인식을  심리현상들을 

알음알이를 자아라고 관찰하고알음알이를 가진 것이 자아라고 관찰하고,

알음알이가 자아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알음알이 안에 자아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러나 그런 그의 알음알이는 떨어져 나가 버리고 그래서 그는 그 때문에 재난에 봉착하게 된다.

 

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느낌은  인식은  심리현상들은  알음알이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내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자아다.'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내 것이 아니요이것은 내가 아니며이것은 나의 자아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통찰지로 보아야 한다.

 

7.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꽃 경(S22:94) Puppha-sutta

 

3. “비구들이여,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335) 세상336)이 나와 다툰다.

비구들이여, 법을 말하는 자는 세상의 누구와도 다투지 않는다.”

 

335) '다툰다.(vivadati)'는 것은 무상, , 무아, 부정(不淨, asubha)이라고 고유성질에 따라(yathā-sabhāva) 말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함, 즐거움, 자아, 깨끗함(···]이라고 말하면서 다투는 것이다.(SA.ii.320)

앙굿따라 니까야 전도(顚倒(A4:49) 청정도론 XXII.53 등에서는 이렇게 여기는 것을 전도(顚倒, vipallāsa)라 부르고 있다.

336) 본경에는 세 가지 세상을 설하고 있다본 문단의 '나는 세상과 다투지 않는다.'는 것은 중생의 세상[衆生世間, satta-loka]이다. [§6] '비구들이여세상에는 세상의 법이 있나니'라는 것은 유위의 세상(sakhāra-loka)이다. [§8] '여래는 세상에서 태어나서 세상에서 자랐지만'이라는 것은 [눈에보이는 세상[器世間, okāsa-loka]이다.(SA.ii.320)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세상의 세 가지 의미에 대해서는 본서 제1 「로히땃사 경」 (S2:26)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비구들이여, 세상에서 현자들이 없다고 동의하는 것을 나도 역시 없다고 말한다.

세상에서 현자들이 있다고 동의하는 것을 나도 역시 있다고 말한다.”337)

 

337) 본경의 이 부분은 본서 제2 깟짜나곳따 경(S12:15)과 좋은 대조가 된다여기 꽃 경에서 세존께서는 모든 존재론적인 명제를 거부하지는 않으신다고 한다단지 체험 가능한 한계를 넘어선 것을 거부하신다고 한다그러나 깟까나곳따 경 §6 깟짜야나여, '모든 것은 있다.'는 이것이 하나의 극단이고 '모든 것은 없다.'는 이것이 두 번째 극단이다깟짜야나여이러한 양 극단을 의지하지 않고 중간[]에 의해서 여래는 법을 설한다.라고 하면서존재나 비존재에 대한 고정불변하고 본질적인 개념을 배제하고 '중간의 가르침(majjhena dhamma deseti)'을 천명한다물론 본경도 '중간의 가르침'을 천명하지만본경은 이러한 존재론적인 논점들에 대해서 비구들이여세상에서 현자들이 없다고 동의하는 것을 나도 역시 없다고 말한다세상에서 현자들이 있다고 동의하는 것을 나도 역시 있다고 말한다.라고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다.

그리고 유념해서 살펴볼 것은 본경은 무상한 흐름인 오온의 존재를 분명히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이것은 존재를 환영이나 환상으로 보려는 자들에게 대한 부처님의 명쾌한 답변이 된다초기불전에서는 존재를 온 ·  ·  · 연 등으로 해체해서 이들의 무상 ·  · 무아를 천명하지 존재 자체가 환영이라는 등의 표현은 하지 않는다환영(幻影, māyā)이나 가탁(假託, adhyāsa, imposing)은 샹까라(Śakara)를 개산조로 하는 불이일원론(不二一元論, Advaita) 베단따 학파(Vedānta)에서 주창한 이론일 뿐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두고 세상에서

현자들은 없다고 동의하고 나도 역시 없다고 말하는가?

 

비구들이여, [139]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인 물질은 없다

세상에서 현자들은 동의하며 나도 역시 없다고 말한다.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인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은  알음알이 없다

세상에서 현자들은 동의하며 나도 역시 없다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두고 세상에서 현자들은 없다고 동의하고 나도 역시 없다고 말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을 두고 세상에서

현자들은 있다고 동의하고 나도 역시 있다고 말하는가?

 

비구들이여,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그러한 물질이 있다고 세상에서 현자들은 동의하며 나도 역시 있다고 말한다.

 

무상하고 괴롭고 변하기 마련인 그러한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이 

알음알이가 있다고 세상에서 현자들은 동의하며 나도 역시 있다고 말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을 두고 세상에서 현자들은 있다고 동의하고 나도 역시 있다고 말한다.”

 

6.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세상의 법338)이 있나니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338) '세상의 법(loka-dhamma)'이란 오온을 말한다이것은 허물어지는 고유 성질을 가졌기(lujjana-sabhāvatta) 때문에 세상의 법이라 부른다.(SA.ii.320)

본서 제4 「세상 경」(S35:82) §4에서도 loka(세상) lujjati(부서지다)에서 파생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이런 어원은 언어학적으로는 인정하기 어렵지만 교육적인 목적에는 도움이 된다어원상으로 loka lok/loc(to see, to light)에서 파생된 명사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상에는 어떠한 세상의 법이 있어서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으며,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가?”

 

7. “비구들이여, 물질은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이니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여래가 이것을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140]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범부이니

이렇게 어둠에 빠지고 눈이 멀어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는 세상에 있는 세상의 법이니

여래는 이것을 완전하게 깨달았고 관통하였다.

완전하게 깨닫고 관통한 뒤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한다.

 

여래가 이것을 알게 하고 가르치고 천명하고 확립하고 드러내고 분석하고 명확하게 하는데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는 어리석은 범부이니

이렇게 어둠에 빠지고 눈이 멀어서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자에게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8.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물에서 생겨서

물에서 자라지만 물을 벗어나서 물에 젖지 않고 피어 있는 것과 같다. 339)

 

339) 이 비유는 『앙굿따라 니까야』「세상 경」(A4:36/ii.38~39) §3 「바후나 경」(A10:81/v.152) §4에도 나타난다.

 

그와 같이 여래는 세상에서 태어나서 세상에서 자랐지만

세상을 지배한 뒤 세상에 젖지 않고 머문다.”

 

 

포말 경(S22:95) Phea-sutta

포말: 물이 무엇인가에 부딪혀 생겨나는 거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아욧자340)에서 강가 강의 언덕에 머무셨다.

 

340) 아욧자(Ayojjha) 혹은 아윳자(Ayujjha)는 니까야에서는 본경에서만 나타나고 있다몇몇 MSS에서는 본서 제4권「나무 더미 비유 경」1(S35:241)에 꼬삼비 대신에 아욧자가 나타나기도 한다고 한다아욧자의 산스끄리뜨는 아요댜(아요디야, Ayodhya)이다본경의 아욧자는 강가 강의 언덕에 있다고 나타나기 때문에인도의 서사시 『라마야나』(Ramayāna)에 수도로 나타나고 지금도 힌두교의 가장 중요한 성지 중의 하나인 아요다(아요디야, Ayodhya)와는 다른 곳이거나본경의 언급이 조금 거칠게 되었거나 둘 중의 하나일거라고 DPPN은 적고 있다.

 

2.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341)

 

341) 아욧자 도시에 거주하는 사람(Ayojjha-pura-vāsi)들이 세존께서 많은 비구들과 함께 유행을 하시다가 그들의 도시에 오신 것을 보고 강가 강이 굽어지는 곳의 큰 숲으로 장엄된 지역(mahā-vanasaṇḍa-maṇḍita-ppadesa)에 스승을 위해서 승원(vihāra)을 지어드렸다스승께서 이곳에 머무신 것을 두고 이렇게 말한 것이다세존께서는 그 승원에 머무시던 어느 날 해거름에 향실(香室향기로운 거주처, gandhakui)로부터 나오셔서 강가 강의 언덕에 마련된 자리에 앉아서 강가 강에 흘러가는 큰 포말덩이(phea-piṇḍa)를 보셨다이것을 본 뒤 오온에 관계된 법을 설해야겠다고 생각하시어 주위에 앉아있던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SA.ii.320)

 

3.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이 강가 강이 포말덩이를 싣고 흐르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포말덩이를]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포말덩이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342)

 

342) 주석서는 물질(즉 몸)이 어떻게 포말덩이와 같은지를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SA.ii.320~321) 중요한 몇 가지를 간추려보면 다음과 같다마치 포말덩이가 실체가 없듯이(nissāra), 이 물질()도 항상한 실체와 견고한 실체와 자아라는 실체가 없기에(nicca-sāra-dhuva-sāra-atta-sāra-viraha) 실체가 없다(nissāra). 마치 포말덩이가 구멍이 숭숭 뚫려 있고 균열이 있고 많은 벌레들이 사는 것처럼이 몸도 그와 같다마치 포말덩이가 퍼져서 마침내는 부서져버리듯이이 몸도 죽음의 아가리(maraa-mukha)에서 가루로 만들어져(cuṇṇa-vicuṇṇa) 버린다.

이것은 『위방가 주석서』(VbhA.33~35)에도 나타나고 있다물질은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고 환영도 아니다그러나 항상하고 견고하지 않기에 실체가 없는 것(nissāra)이다실체 없음(nissāra)이란 표현이 오온을 가장 적확하게 표현한 것이라고 역자는 파악한다.

한편 본경에 해당하는 복주서는 다음과 같이 실체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무상함(aniccatā) 때문에 실체가 아님(asāratā)이 성립되고 실체가 아님 때문에 무상함이 성립된다그러므로 무상하기 때문에 항상함이라는 실체(nicca-sāra), 강건함이라는 실체(thirabhāva-sāra), 견고함이라는 실체(dhuva-sāra)는 결코 없으며주인이 거주한다는 의미(sāmī-nivāsī-kāraka-bhūta)의 자아의 통제 하에 있는 것이라고는 결코 없다는 뜻이다그래서 '실체가 없다(nissāra).'고 한 것이다.(SAȚ.ii.223)

그 외에도 주석서들과 특히 복주서들은 무아를 실체 없음(nissāra)으로 설명하고 있다.

 

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 [141]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물질을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343)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물질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343) 본경 전체에서 '텅 빈 것' rittaka, '공허한 것' tucchaka, '실체가 없는 것' asāraka, '실체' sāra를 옮긴 것이다여기서 sāra는 나무의 심재(心材)를 뜻하기도 하고본질이나 핵심(substance. essence)을 뜻하기도 한다.(PED 참조이처럼 이미 초기불전에서부터 부처님께서 오온이 실체가 없음을 강조하고 계신다.

 

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을에 굵은 빗방울의 비가 떨어질 때

물에 거품이 생겼다가는 사라지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거품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거품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느낌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느낌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344)

 

344) 주석서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거품(bubbula)'은 연약하고 잡을 수가 없다쥐는 순간에 터져버리기 때문이다그와 같이 느낌도 항상하지 않고 견고하지 않아서 연약하고 잡을 수가 없다마치 거품이 조그마한 물에서 생겼다가는 사라지고 오래 가지 않듯이 느낌도 그와 같다손가락 한 번 튀기는 순간(eka-cchara-kkhaa)에 십만꼬띠(koi, 1꼬띠는 천만임그러므로 십만 꼬띠는 1조가 됨.)개의 느낌들이 일어나고 사라진다그리고 거품이 물의 표면과 물방울과 물의 더러움과 물 받는 통이라는 조건들에 의해서 일어나듯이 느낌도 감각장소(vatthu)와 대상(ārammaa)과 오염원의 더러움(kilesa-jalla)과 감각접촉의 자극(phassa-saghaṭṭana)이라는 네 가지 조건을 반연하여 일어난다.(SA.ii.322)

 

6.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무더운 여름의 마지막 달 한낮에 신기루가 생기는데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신기루를]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신기루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인식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인식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345)

 

345) 인식도 실체가 아님이라는 뜻(asārak-aṭṭha)에서 '신기루(marīcikā)'와 같다왜냐하면 신기루를 잡아서 마시거나 목욕하거나 물주전자에 채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그리고 신기루가 많은 사람들을 속이듯이(vippalambheti) 인식도 그러하다여러 가지 색깔에 대해서 아름답다즐겁다항상하다고 말하게 하여 사람들을 속이기 때문이다.(SA.ii.322)

여기서 인식도 실체 없음 혹은 실체 아님을 뜻하는 assāraka로 표현되고 있다.

 

7.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속재목[心材]이 필요한 사람이 속재목을 찾고

속재목을 탐색하여 돌아다니다가 날카로운 도끼를 들고 숲에 들어간다 하자.

그는 거기서 야자나무 줄기가 크고 곧고 싱싱하지만 안이 꽉 차지 않은 것346)을 볼 것이다.

그는 그것의 뿌리를 자를 것이다. 뿌리를 자르고 꼭대기를 자를 것이다.

꼭대기를 자른 뒤 잔가지와 잎사귀를 깨끗하게 제거할 것이다.

이처럼 잔가지와 잎사귀까지 깨끗하게 제거해버리고 나면

그는 겉재목[白木質]조차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어디서 속재목을 얻겠는가?

346) '안이 꽉 차지 않은 것' akukkuka-jāta를 의역한 것이다주석서에서 안에 유조직(柔組織)이 들어 있지 않은 것(anto asañjāta-ghana-daṇḍaka)(SA.ii.322)으로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이것은 야자수 나무의 껍질이 시멘트 같이 생겨서 두껍지만 내부가 비어 있는 것을 말한다.

 

그때 눈을 가진 사람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야자나무 줄기를]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142]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야자나무 줄기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심리현상들이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심리현상들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심리현상들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347)

 

347) 마치 야자나무 줄기(kadali-kkhandha)가 많은 잎과 껍질 등으로 조합(bahu-patta-vaṭṭi-samodhāna)되어 있듯이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도 많은 법들로 조합(bahu-dhamma-samodhāna)되어 있다마치 야자나무 줄기가 외부의 잎과 껍질 등의 색깔이 서로 다르고 내부의 것들도 서로 다른 등의 여러 가지 특징(nānā-lakkhaa)을 가지고 있듯이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도 감각접촉의 특징이 다르고 의도 등의 특징도 서로 다르다그러나 이들의 조합을 두고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라 부른다이처럼 심리현상들의 무더기는 야자나무 줄기와 같다.(SA.ii.323) 이렇게 서로 다른 개별적인 특징을 아비담마에서는 개별적 특징[自相, paccatta-lakkhaa = sabhāva-lakkhaa]이라 부른다그렇지만 이런 유위법들은 모두 무상하고 고요 무아라는 보편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보편적 특징[共相, sāmañña-lakkhaa]이라 한다이 자상(自相)과 공상(共相)은 법(dhamma)을 파악하고 규명하고 이해하고 정의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론으로 아비담마/아비달마와 중관과 유식과 여래장 계열의 모든 논서에 적용되어 나타나고 있다그러므로 자상과 공상에 대한 이해가 없이 불교교학을 논할 수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법의자상(自相)과 공상(共相등에 대한 논의는 본서 제4 「육처 상윳따」(S36)의 해제 §3-(6) '어떻게 해탈 · 열반을 실현할 것인가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그 부분을 참조하기 바란다그리고 본서 「삼켜버림 경」(S22:79) §4의 주해도 참조할 것.

 

8.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요술사나 요술사의 도제가 대로에서 요술을 부리는데

눈을 가진 사람348)이 이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하자.

그가 그 [요술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날 것이다.

비구들이여, 요술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348) '눈을 가진 사람(cakkhumā purisa)'이란 육체적인 눈[肉眼, masa-cakkhu]과 통찰지의 눈[慧眼, paññā-cakkhu]이라는 두 가지 눈을 가진 사람을 뜻한다육체적인 눈이란 깨끗한 손상되지 않은 안구(apagata-paala-piaka)를 말하고 통찰지의 눈이란 실체 없음을 보는 능력(asāra-bhāva-dassana-samattha)을 뜻한다.(SA.ii.323)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그것이 어떠한 알음알이이건 

비구는 그것을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한다.

그가 그 [알음알이를] 쳐다보고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면

그것은 텅 빈 것으로 드러나고 공허한 것으로 드러나고 실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난다.

비구들이여, 알음알이에 무슨 실체가 있겠는가?” 349)

 

349) 알음알이도 역시 실체가 아님이라는 뜻(asārak-aṭṭha)에서 그리고 거머쥘 것이 없다는 뜻(agayhūpag-aṭṭha)에서 요술과 같다알음알이는 요술보다도 더 일시적이고 재빠르다(lahu-paccupaṭṭhānā),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람이 오고 가고 서고 앉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 때의 마음과 가고 서고 앉을때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이처럼 알음알이는 요술과 같다.

요술은 많은 사람(mahā-jana)을 속인다(vañceti), 알음알이도 많은 사람을 속인다같은 마음이 오고 가고 서고 앉는 것처럼 보이지만 올 때의 마음과 가고 서고 앉는 때의 마음은 서로 다르다이처럼 알음알이는 요술과 같다.(SA.ii.323)

이 비유를 토대로 하여 알음알이가 가진 현혹시키는 성질에 대한 현대적 비유는 냐나몰리(Ñāamoli) 스님, The Magic of the Mind, pp.5~7에도 나타나고 있다.

주석서는 여기서 알음알이도 실체 아님(asāraka)으로 설명하고 있다이와 같이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오온 가운데 수(느낌)를 제외한 색 ·  ·  · 식을 모두 실체 없음(nissāra, asāraka)이라는 술어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나 『디가 니까야 복주서』는 여기서 무상하고 괴롭기 때문에 느낌(vedanā)은 자아가 없고(atta-rahitā) 실체가 아니고(asārā) 실체가 없고(nissāra) 지배자가 아니고(avasavattinī) 공허한 것(tucchā)이다.(DAȚ.iii.287)라고 하여 느낌도 실체 아님(asāra)과 실체 없음(nissāra)으로 설명하고 있다그리고 위의 느낌에 해당하는 주석서에서 느낌()은 손가락 한번 튀기는 사이에 십만 꼬띠(1번이 일어나고 사라지는 거품(bubbula)에 비유하고 있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생생하게 실체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처럼 오온은 실체 없음으로 설명된다.

 

9. “비구들이여, 이렇게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심리현상들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알음알이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므로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10.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스승이신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와 같이 설하셨다.

 

물질은 포말덩이와 같고 느낌은 물거품과 같고

인식은 아지랑이와 같고 심리현상들은 야자나무와 같으며

알음알이는 요술과 같다고 태양의 후예는 밝혔도다. {1}

 

면밀히 살펴보고 근원적으로 조사해보고

지혜롭게 관찰해보면 그것은 텅 비고 공허한 것이로다. {2}

 

광대한 통찰지를 [143] 가진 분은 이 몸에 대해서

세 가지를 제거하여 물질이 버려진 것을 보도다. {3}

 

생명과 온기와 알음알이가 이 몸을 떠나면

그것은 던져져서 의도 없이 누워 있고

남들의 음식이 될 뿐이로다350) {4}

 

350)『맛지마 니까야』「긴 방등 경」(M43/1.296) §24에서 사리뿟따 존자가 도반이여수명과 온기와 알음알이의 세 가지 법들이 이 몸을 떠날 때 이 몸은 내던져지고 내팽개쳐져서 마치 통나무처럼 누워 있게 됩니다.라고 비슷한 말을 하고 있다그리고,

오래지 않아 이 몸도 땅 위에 누워 있으리니

알음알이가 떠나 내팽개쳐져 쓸모없는 나무토막처럼.(Dhp {41})

(acira vataya kāyo, pathavi adhisessati

chuddho apetaviññāo, niratthava kaligara)

이라는 『법구경』 (Dhp.6) {41}도 참조할 것.

 

이러한 이것은 흐름이며요술이어서

어리석은 자를 현혹시키며

이것은 살인자라 불리나니

여기에 실체란 없도다351) {5}

 

351) '어리석은 자를 현혹시킨다(māyāya bālalāpini).'는 것은 알음알이의 무더기(viññāa-kkhandha)를 두고 한 말이다이 무더기라 불리는 것은 두 가지 이유에서 '살인자(vadhaka)'라 불린다첫째는 무더기들은 서로서로를 죽이기(ghātana) 때문이고둘째는 무더기들이 있을 때 살인(vadha)이란 것이 알려지기 때문이다.

 (1) 땅의 요소(pathavī-dhātu)가 무너지면(bhijjamānā) 나머지 요소들도 데리고 함께 무너지고물의 요소 등도 마찬가지이다물질의 무더기(rūpa-kkhandha)가 무너지면 정신의 무더기들(arūpa-kkhandha)도 데리고 함께 무너지고정신의 무더기들에서 느낌 등도 마찬가지이다. (2) 무더기들이 있기 때문에 살해하고 묶고 자르는(vadha-bandhana-ccheda) 등도 생겨난다이처럼 이들이 있을 때 살인하는 성질(vadha-bhāva)로부터 살인자 됨(vadhakatā)이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SA.ii.324)

오온을 살인자에 비유하는 다른 경으로는 본서 제3권 야마까 경」(S22:85) §§17~18을 참조할 것.

 

비구는 열심히 정진하여

이와 같이 []온을 굽어봐야 하나니

날마다 낮과 밤 할 것 없이

알아차리고 마음챙기라. {6}

 

모든 속박제거해야 하고

자신을 의지처로 삼아야 하리니

머리에 불붙는 것처럼 행해야 하고

떨어지지 않는 경지352)를 간절히 원해야 하리. {7}

 

352) '떨어지지 않는 경지(accuta pada)'란 열반이다.(SA.ii.324)

'떨어지지 않는 경지'란 열반이다이것은 스스로가 떨어지지 않는 성질(acavana-dhammatta)을 가졌고 증득한 자들에게 떨어지지 않는 원인이 있기(accuti-hetu-bhāva) 때문에 여기에 떨어짐이란 없다그래서 떨어지지 않음(accuta)'이라 한다유위법들(sakhata-dhammā)과 섞이지 않고 이것을 원하는 자들은 도닦음으로 성취해야하기 때문에(paipajjitabbatā) '경지(pada)'라고 불린다.(ThagA.i.18)

 

 

쇠똥 경(S22:96) Gomaya-sutta

 

1. <사왓티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 에서>

 

2.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이  인식이  심리현상들이  [144] 알음알이가 있습니까?”

 

4. “비구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없다.

 

비구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  인식  심리현상들  알음알이는 없다.”

 

5. 그때 세존께서는 작은 쇠똥 덩어리를 손에 들고 비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자기 존재란 것은 결코 있지 않다.

 

비구여, 만일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자기 존재란 것이 있다면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지 못할 것이다. 353)

 

그러나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자기 존재란 있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353)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지 못할 것이다.'라는 것은 이 도라는 청정범행을 닦는 것(magga-brahmacariya-vāsa)을 천명하지 못한다는 말이다왜냐하면 도는 삼계의 형성된 것들[有爲](tebhūmaka-sakhāra)을 그치게 하면서(vivaṭṭento) 일어나기 때문이다만일 이만큼이라도 자기 존재(atta-bhāva)가 항상한 것이라면 도를 일으켜서 형성된 것들의 윤회(sakhāra-vaṭṭa)를 그치게 할 수가 없다그래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지 못한다.(SA.ii.324)

 

6. “비구여, 먼 옛날에 나는 관정(灌頂)의 대관식을 거행한354) 끄샤뜨리야 왕이었다. 355)

 

354)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 muddhāvasitta를 풀어서 옮긴 것이다이 단어는 muddhā(머리)-avasitta(ava+sic, to anoint에서 파생된 과거분사)로 분석된다문자적으로는 '머리에 물을 뿌린'이란 뜻이며 머리에 물을 뿌리는 관정의식을 마친 자를 뜻한다그래서 주석서는 머리(muddhā)에 물을 뿌린 자(avasitta), 관정의식(abhiseka)을 마친 자라는 뜻이다.(AA.iii.113)라고 설명하고 있다그래서 '관정의 대관식을 거행한'으로 풀어서 옮겼다관정의 대관식은 물을 신성시 여기는 인도에서 제왕이나 태자의 책봉 때 거행하는 의식이며 관정식을 마친 왕이라야 진정한 왕으로 대접받는다서양에서 거행하던 대관식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본서 「나꿀라삐따 경」 (S22:1) §6의 주해도 참조할 것.

355) 만일 어떤 형성된 것이라도 항상한 것이 있다면 내가 마하수닷사나(Mahā-sudassana) 왕이었을 때 누렸던 번영(anubhūtā sampatti)도 항상한 것이었을 것이다그러나 그것도 무상한 것임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이 일화를 말씀하셨다.(SA.ii.324)

본경에도 나타나는 마하수닷사나 왕의 번영은 『디가 니까야』「마하수닷사나 경」(D17) 전체에 상세하게 묘사되고 있다특히 본경의 §6 D17 §2.5와 같고아래 §7 D17 §2.15와 같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도시가 있었나니

수도 꾸사와띠가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궁전이 있었나니

담마 궁전이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중각강당이 있었나니

대장엄 중각강당이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침상이 있었나니

황금으로 된 것, 은으로 된 것, 상아로 된 것, 향나무로 된 것, 다리에 동물 형색을 새긴 것, 긴 술을 가진 덮개가 깔린 것, 천 조각을 덧댄 이불이 깔린 것, 영양 가죽 깔개를 가진 것, [145] 차양으로 가린 것, 붉은 베개와 붉은 발 받침을 가진 것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코끼리가 있었나니 황금으로 장식되고

황금의 깃발을 가지고 황금의 그물로 덮였으며 우뽀사타 코끼리 왕이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말이 있었나니 황금으로 장식되고

황금 깃발을 가지고 황금의 그물로 덮였으며 왈라하까 말의 왕이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마차가 있었나니 사자 가죽으로 덮인 것,

호랑이 가죽으로 덮인 것, 표범 가죽으로 덮인 것, 황색 천으로 덮인 것, 황금으로 장식된 것, 황금의 깃발을 가진것, 황금의 그물로 덮인 것들이며 웨자안따 마차가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보배가 있었나니 보배보가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여인들이 있었나니 수밧다 왕비가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장자가 있었나니 장자보가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끄샤뜨리야 가신(家臣)들이 있었나니

주장신보(국무대신)가 최상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암소들이 있었나니

황마로 된 끈을 가졌으며 은으로 된 우유통을 가졌다.

 

관정한 끄사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옷이 있었나니 섬세한 아마로 된 것,

섬세한 면으로 된 것, 섬세한 비단으로 된 것, 섬세한 모직으로 된 것이었다.

 

관정한 끄샤뜨리야 왕인 나에게는 8만 4천의 탈리빠까(밥 보시)356)가 있었나니

저녁과 아침에 밥을 원하는 자가 먹었다.”

 

356) 주석서에 의하면 탈리빠까(thāli-pāka)는 결혼식(magala)이나 축제 등에서 준비하는 음식이다.(DA.i.267)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서는 존경하는 사람에게 드리기에 적당한 밥(bhatta)(AA.ii.266)이라고 설명하고 있다탈리빠까의 산스끄리뜨는 스탈리빠까(sthālīpāka)인데바라문들의『제의서』에 의하면 스탈리빠까는 가정제사(pāka-yajña) 가운데 하나이다본경의 주석서에서도 결혼식에서 준비하는 음식이라고 했듯이 이 제사의식은 특히 결혼을 한 부부가 결혼 후 처음 맞이하는 보름날에 올리는 제사의식이며그 후 일생 동안 매달 그믐과 보름에 실행하는 제사이다.(DVR)

 

7. “비구여, 그러나 그들 8만 4천의 도시 가운데 내가 살았던 곳은 오직 한 곳이었으니 수도 꾸사와띠였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궁전 가운데 내가 머물렀던 곳은 [146] 오직 한 곳이었으니

담마 궁전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중각강당 가운데서 내가 머물렀던 곳은 오직 한 곳이었으니

대장엄 중각강당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침상 가운데 내가 사용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그것은 금으로 만든 것이었거나, 은으로 만든 것이었거나,

상아로 만든 것이었거나, 혹은 향나무로 만든 것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코끼리 가운데 내가 탔던 것은 오직 우뽀사타 코끼리 왕뿐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말 가운데서 내가 탔던 것은 오직 왈라하까 말의 왕뿐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마차 가운데서 내가 탔던 것은 웨자얀따 마차 오직 하나뿐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여인들 가운데 끄샤뜨리야 여인이나

웰라미까 여인 한 사람만이 시중을 들었다. 357)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옷 가운데 내가 입었던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으니

그것은 섬세한 아마로 된 것이거나, 섬세한 면으로 된 것이거나,

섬세한 비단으로 된 것이거나, 혹은 섬세한 모직으로 된 것이었다.

 

비구여, 그들 8만 4천의 탈리빠까(밥 보시) 가운데 내가 먹었던 것은 오직 하나였나니 한 날리까 분량의 쌀밥과 그 안에 부은 국(카레)이 전부였다.”358)

 

357) 한편 Ee, Be, Se에는 모두앞의 §6에서 '' '사이에 언급되어 나타났던 '보배', '장자', '가신', '암소'와 관련된 문장들이 여기 §8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358) 새겨들어야 할 가르침이다제아무리 큰 궁전에 살아도 자는 곳은 한두 평 남짓한 침상뿐이며제 아무리 많은 재물과 재산과 음식이 있어도 한 끼 먹는 것은 일정분량의 밥과 반찬이다그 이상을 먹으면 배탈이 나고 병이 들뿐이다.

 

8. “보라, 비구여, 그 형성된 것들은 모두 지나갔고 소멸하였고 변해버렸다.

아난다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무상하다. 359)

 

359) 마치 어떤 사람이 높은 깜빠까 나무(campaka-rukkha)에 사다리(nissei)를 놓고 올라가서 깜빠까 꽃을 꺾어서 내려오듯이 세존께서도 마하수닷사나 왕의 번영(sampatti)의 이야기로 올라가서 그 번영의 꼭대기(sampatti-matthaka)에 놓여 있는 무상의 특상(anicca-lakkhaa)을 가지고 내려오신 것이다. (SA.ii.326)

 

비구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 견고하지 않다.

비구여, 이와 같이 형성된 것들은 안식(安息)을 주지 못한다. [147]

비구여, 그러므로 형성된 것들은 모두 염오해야 마땅하며

그것에 대한 탐욕이 빛바래도록 해야 마땅하며 해탈해야 마땅하다. 360)

 

360) 이 구절은 『디가 니까야』제2권「마하수닷사나 경」(D17)을 통해서도 세존께서 제자들에게 간곡하게 전하고자 하시는 메시지이다세속적인 것이든 비세속적인 것이든 그 성취가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것에 조금이라도 의미를 부여하는 한 염오-이욕-해탈은 불가능하다상카라(유위)들로 표현되는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해서 사무치도록 넌더리치지[厭惡못하는 한 해탈 · 열반은 학자들의 공허한 구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염오(厭惡, nibbidā)-탐욕의 빛바램[離慾, virāga]-해탈(vimutti) · 소멸(nirodha)은 초기불전의 도처에서 부처님께서 열반의 실현을 위해서 강조하고 계시는 체계이다여기에 대해서는 역자가 본서 전체에서 주해와 해제를 통해서 누차 강조하고 있다.

 

 

손톱 끝 경(S22:97)

상윳따니까야 3(각묵스님, 2009) p.399

2.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이 … 인식이 … 의도가 … 윈냐냐가 있습니까?

4. “비구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은 없다. 

 비구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은 … 인식은 … 의도는 … 윈냐냐는 없다.

5. 그때 세존께서는 조그만 먼지를 손톱 끝에 올린 뒤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비구여,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은 결코 있지 않다.

 비구여, 만일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물질()이 있다면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물질()은 있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비구여,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은 … 인식은 … 의도는 … 윈냐냐는 결코 있지 않다.

 비구여, 만일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윈냐냐가 있다면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이만큼이라도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인 그런 윈냐냐는 있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괴로움을 멸진하기 위해서 청정범행을 닦는 것을 천명하는 것이다.

6. “비구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물질()은 … 느낌은 … 인식은 … 의도는 … 윈냐냐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attā.’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7. “비구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의도이건 … 그것이 어떠한 윈냐냐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attā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아야 한다.

8. “비구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도에게 대해서도 염오하고 윈냐냐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야로 본다.

 

 

간단함 경(S22:98)

상윳따니까야 3(각묵스님, 2009) p.401

2. 그때 어떤 비구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3. “세존이시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이 있습니까?

 세존이시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이 … 인식이 … 의도가 … 윈냐냐가 있습니까?

4. “비구여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물질()은 없다

 비구여,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원 그 자체인 것처럼 확고부동하게 존속할 그런 느낌은 … 인식은 … 의도는 … 윈냐냐는
없다.

 

 

가죽 끈 1(S22:99)

상윳따니까야 3(각묵스님, 2009) p.402

3. “비구들이여,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윤회이다.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고 윤회하기 때문에 [윤회의] 처음 시작점은 결코 식별되지 못한다.

4. “비구들이여저 큰 바다가 모두 말라 들어가고 메말라버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는 한 그들의 괴로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산의 왕 수미산이 다 타서 없어지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는 한 그들의 괴로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대지가 다 타서 없어지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는 한 그들의 괴로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죽 끈에 묶인 개가 튼튼한 기둥이나 지주(支柱)에 단단히 묶여, 그 기둥이나 지주 주위를 맴돌고 따라 도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여 물질() attā라고 관찰하고, 물질()을 가진 것이 attā라고 관찰하고, 물질() attā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물질() 안에 attā가 있다고 관찰한다. 느낌을 … 인식을 … 의도를 … 윈냐냐를 attā라고 관찰하고, 윈냐냐를 가진 것이 attā라고 관찰하고, 윈냐냐가 attā 안에 있다고 관찰하고, 윈냐냐 안에 attā가 있다고 관찰한다

 그는 물질(몸) 주위를 맴돌고 따라 돌려, 느낌... 인식... 의도 ... 윈냐냐 주위를 맴돌고 따라 돈다.


 그는 물질()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느낌으로부터 … 인식으로부터 … 의도로부터 … 윈냐냐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하지 못한다고 나는 말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나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참된 사람들을 친견하고 참된 사람의 법에 능숙하여 물질() attā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을 가진 것이 attā라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attā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물질() 안에 attā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느낌을 … 인식을 … 의도를 … 윈냐냐를 attā라고 관찰하지 않고, 윈냐냐를 가진 것이 attā라고 관찰하지 않고, 윈냐냐가 attā 안에 있다고 관찰하지 않고, 윈냐냐 안에 attā가 있다고 관찰하지 않는다.

 그는 물질() 주위를 맴돌지 않고 따라 돌지 않으며, 느낌 … 인식 … 의도… 윈냐냐 주위를 맴돌지 않고 따라 돌지 않는다.

 

그는 물질()로부터 해탈하고 느낌으로부터 해탈하고 인식으로부터 해탈하고 의도로부터 해탈하고 윈냐냐로부터 해탈하고 태어남과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으로부터 해탈하고 괴로움으로부터 해탈한다고 나는 말한다.

 

 

가죽 끈 경2(S22:100)

상윳따니까야 3(각묵스님, 2009) p.405

3. “비구들이여, 그 시작을 알지 못하는 것이 바로 윤회이다. 중생들은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고 윤회하기 때문에 [윤회의] 처음 시작점은 결코 식별되지 못한다.

4. “비구들이여, 큰 바다가 모두 말라 들어가고 메말라버려 존재하지 않게 되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는 한 그들의 괴로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산의 왕 수미산이 다 타서 없어지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는 한 그들의 괴로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비구들이여, 대지가 다 타서 없어지는 그런 때가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비록 그렇다 하더라도 중생들이 무명에 덮이고 갈애에 묶여서 치달리는 한 그들의 괴로움은 끝이 나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가죽 끈에 묶인 개가 튼튼한 기둥이나 지주(支柱)에 단단히 묶여 있으면, 간다 하더라도 그 기둥이나 지주 주위만을 가게 되고, 멈춘다 하더라도 그 기둥이나 지주 주위에만 멈추게 되고, 앉는다 하더라도 그 기둥이나 지주 주위에만 앉게 되고, 눕는다 하더라도 그 기둥이나 지주 주위에만 눕게 되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물질()을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attā.’라고 관찰한다, 느낌을 … 인식을 … 의도를 … 윈냐냐를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attā.’라고 관찰한다.

 그는 간다 하더라도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 주위만을 가게 되고, 멈춘다 하더라도 취착이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주위에만 멈추게 되고, 앉는다 하더라도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주위에만 앉게 되고, 눕는다 하더라도 취착의 [대상이 되는] 다섯 가지 무더기 주위에만 눕게 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오랜 세월 이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오염되었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반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오염되기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되고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7.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행실도(行實圖)’라는 그림을 본 적이 있는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그 ‘행실도’라는 그림도 마음으로 생각하여 [그린 것]이다. 그렇지만 ‘행실도’라는 그림보다 마음은 더 다양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오랜 세월 이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오염되었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반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오염되기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되고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8. “비구들이여, 나는 축생으로 태어난 생명들보다 더 다양한 다른 어떤 하나의 무리도 보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축생으로 태어난 생명들도 마음에 의해서 다양하게 [태어난] 것이다. 그렇지만 축생으로 태어난 중생들보다 마음은 더 다양하다.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여기서 그대들은 ‘오랜 세월 이 마음은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으로 오염되었다.’라고 끊임없이 자신의 마음을 반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마음이 오염되기 때문에 중생들은 오염되고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에 중생들은 청정하게 된다.

9.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염색공이나 화가가 물감이나 붉은 랙(lac)이나, 노란 심황이나 남색의 쪽이나 심홍색의 꼭두서니로 잘 연마된 판자나 벽이나 흰 천에다 사지를 모두 다 갖춘 여인의 모양이나 남자의 모양을 그리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배우지 못한 범부는 물질()을 거듭해서 생기게 하고 느낌을 … 인식을 … 의도를 … 윈냐냐를 거듭해서 생기게 한다."

10. “비구들이여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 느낌은 … 인식은 … 의도는 … 윈냐냐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attā.’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11.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의도이건 … 그것이 어떠한 윈냐냐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attā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아야 한다.

12.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물질(몸)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도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윈냐냐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