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쌍윳따 니까야

S22:43-S22:52. 제22상윳따 - 제5장 자신을 섬으로 품 (Attadipa vagga)

Daisy청량심 2023. 6. 21. 01:23

-     자신을 섬으로 삼음 경

-     도닦음 경

-     무상함 경1

-     무상함 경2

-     관찰 경

-     무더기 경

-     소나 경1

-     소나 경2

-     즐김의 멸진 경1

-     즐김의 멸진 경2

 

 

소나 경1(S22:49)

상윳따니까야 3(각묵스님, 2009) p.197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그때 장자의 아들 소나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장자의 아들 소나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소나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인 
물질()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저열하다.’라고 관찰하는 자들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인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의도를 두고 … 윈냐냐를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동등하다.라고 관찰하거나, ‘나는 저열하다.’라고 관찰하는 자들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4. “소나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인 물질()을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저열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자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소나여, 어떤 사문들이든 바라문들이든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법인 느낌을 두고 … 인식을 두고 … 의도를 두고 … 윈냐냐를 두고 ‘나는 뛰어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동등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고, ‘나는 저열하다.’라고도 관찰하지 않는 자들은 있는 그대로 보는 자들 외에 그 무엇이겠는가?

5.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물질()은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attā.’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소나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느낌은 … 인식은 … 의도는 … 윈냐냐는 항상한가, 무상한가?

 “무상합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괴로움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것을 두고

 

‘이것은 나의 것이다. 이것은 나다.

이것은 나의 attā.’라고 관찰하는 것이 타당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


6. “소나여, 그러므로 그것이 어떠한
물질()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attā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아야 한다.

 소나여, 그것이 어떠한
느낌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인식이건 … 그것이 어떠한 의도이건 … 그것이 어떠한 윈냐냐이건, 그것이 과거의 것이건 미래의 것이건 현재의 것이건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칠건 미세하건 저열하건 수승하건 멀리 있건 가까이 있건 ‘이것은 나의 것이 아니요, 이것은 나가 아니며, 이것은 나의 attā가 아니다.’라고 있는 그대로 바른 반야로 보아야 한다.

7. “소나여, 이와 같이 보는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물질()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느낌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인식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의도에 대해서도 염오하고 윈냐냐에 대해서도 염오한다.

 

염오하면서 탐욕이 빛바래고, 탐욕이 빛바래기 때문에 해탈한다.

해탈하면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梵行)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야로 본다.


소나 경2(S22:50)
상윳따니까야 3(각묵스님, 2009) p.201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그때 장자의 아들 소나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장자의 아들 소나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물질()반야로 보지 못하고 물질()의 일어남반야로 보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반야로 보지 못하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 반야로 보지 못하고, 느낌을 … 인식을 … 의도를 … 윈냐냐반야로 보지 못하고 윈냐냐의 일어남반야로 보지 못하고 윈냐냐의 소멸반야로 보지 못하고 윈냐냐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반야로 보지 못하는 자들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수 없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수 없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지 못한다.

4. “소나여,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물질()을 반야로 보고 물질()의 일어남을 반야로 보고 물질()의 소멸을 반야로 보고 물질()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반야로 보고, 느낌을 … 인식을 … 의도를 … 윈냐냐를 반야로 보고 윈냐냐의 일어남을 반야로 보고 윈냐냐의 소멸을 반야로 보고 윈냐냐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반야로 보는 자들은 그 누구든지, 사문들 가운데서는 사문이라 불릴 만하고 바라문들 가운데서는 바라문이라 불릴 만하다.

그 존자들은 사문 생활의 결실이나 바라문 생활의 결실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