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57. 개의 습성(견서계) 경(kukkuravatik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꼴리야559)에서 할릿다와사나라는 꼴리야의 성읍에 머무셨다.

 

559) 꼴리아(Koiya/Koliya)는 로히니(Rohii) 강을 사이에 두고 사까(Sākya, 석가족)와 인접한 공화국 체제를 유지한 나라였다. 꼴리야의 선조가 사꺄의 여인과 결혼해서 꼴리야 나라를 만들었다고 할 정도로 사까와는 형제국이나 다름없는 사이였다고 한다. 라마가마(Rāmagāma)와 데와다하(Devadaha) 가 주요 도시였으며 그 외에도 꼴리야의 여러 곳이 초기불전에 언급될 정도로 부처님과 제자들과도 인연이 많은 나라였다. (DPPN)

『디가 니까야』제2권 「대반열반경(D16)§6.24§6.27에 의하면 라마가마의 꼴리야들도 부처님의 사리를 가져가서 사리탑(thūpa)을 세웠다고 한다. 이처럼 라마가마(Rāmagāma, D16 §6.24§6.27)와 할릿다와사나(Haliddavasana, 본경, S46:54도 참조) 외에도 웃따라(Uttara, S42:13), 삿자넬라(Sajjanela, A4:57), 사뿌가(Sāpūga, A4:194), 깍까라빳따(Kakkara-patta, A8:54) 등의 꼴리야의 지명이 초기불전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 초기불전에서 데와다하(Devadaha)는 사꺄의 도시로 언급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 제3권 「데와다하 경」 (S22:2) §1 참조) 데와다하는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하마야 왕비와 이모이자 계모인 마하빠자빠띠 고따미가 태어난 곳이다. 그런데 이들이 꼴리야 족 출신이라고 하는 것을 볼 때 데와 다하는 꼴리야의 도시였지만 후에 사꺄로 편입된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한편 『앙굿따라 니까야』제2권 「사뿌기야 경」 (A4:194) 등에서는 꼴리야 사람들을 '호랑이가 다니던 길에 사는 자들'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Vvagghapajjā(웨약가빳자)를 풀어서 옮긴 말이다. 여기서 vyaggha는 호랑이를 뜻하고 pajjapada()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이 웨약가빳자(Vvagghapajjā)는 꼴리야(Koliya)의 수도인 꼴라나가라(Kolanagara)의 다른 이름이면서 동시에 웨약가빳자 즉 꼴라나가라에 사는 사람들을 뜻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꼴리야 족들을 부르는 이름이기도 하다.(AA.iii.173) 꼴리야는 사까(석가족)와는 형제국이나 다름이 없었기 때문에 석가족 출신인 아난다 존자가 이런 친근한 호칭을 사용하는 것이라 여겨진다.

 

2. 그때 소처럼 사는 서계(誓戒)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560) 나체 수행자 세니야가 세존을 뵈러왔다.

세존을 뵙고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개처럼 자신을 구부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560) “'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자(go-vatika)'란 소처럼 사는 서계(誓戒)를 받아 지녀서(samādinna-go-vata) 머리에는 두 뿔(sigāni)을 달고 뒤에는 꼬리(naguṭṭha)를 달고 소들과 함께 풀(tiāni)을 먹는 것처럼 다니는 자를 말한다.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자(kukkura-vatika)'란 개처럼 사는 서계를 받아 지녀서 개의 행동(sunakha-kiriya)을 모두 행하는 자를 말하는데 이 두 사람은 [어릴 때] 흙장난을 하고 놀던 동무(saha-pasu-kīikā)와도 같은 [절친한] 친구(sahāyakā)였다.” (MA.iii.100)

여기서 '서계를 닦는 자'vatika를 옮긴 것인데 vata를 가진 자라는 뜻이다. vata(Sk. vrata)는 바라문들이나 인도 사문들이 받아 지키는 서원이나 금계 등을 말하는데 중국에서는 沒栗多(몰률다)로 음역하기도 하고, , 修行, 善行, , 威儀行, 律儀, , 正受, , 禁戒, 苦行, , 願 등으로 다양 하게 옮겼다. 초기불전연구원에서는 vata를 서계(誓戒)로 옮기고 있다. 한편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꼬락캇띠야(korakkhattiya)에 대한 흥미로운 일화가 『디가 니까야』 제3권 『빠띠까 경』(D24) §§1.7~1.10에 나타나므로 참조할 것.

 

세존이시여,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이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진 것만 먹습니다.

그는 개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실천했습니다.

그가 태어날 곳[行處]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만 하라, 뿐나여. 그것을 멈추어라. 내게 그것을 묻지 마라.”

 

두 번째에도 역시

세 번째에도 역시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이처럼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이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땅바닥에 던져진 것만 먹습니다.

그는 개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실천했습니다.

그 가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뿐나여, 참으로 '내가 그만 하라, 뿐나여. 그것을 멈추어라. 내게 그것을 묻지 마라.'라는 말로 그대를 설득할 수가 없으니,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3. “뿐나여, 여기 어떤 자는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의 습관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의 행동거지를 닦는다.

그는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의 습관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의 마음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개의 행동거지를 닦고 나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만일 그가 '이런 습관과 서계와 고행과 청정범행으로

신이 되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이것은 그의 그릇된 견해일 뿐이다.

뿐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는 두 가지 태어날 곳,

지옥 아니면 축생으로 향한다고 나는 말한다.561)

뿐나여, 이처럼 개처럼 사는 서계가 성취되면 그는 개들의 일원으로 태어날 것이고

성취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561)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는 두 가지 태어날 곳, 즉 지옥 아니면 축생으로 향한다고 나는 말한다.”는 이 말씀은 『상윳따 니까야』제4권 「딸라뿌따 경」 (S42:2) §7에도 나타난다. 그곳 §8에서도 연극단장 딸라뿌따는 눈물을 흘리고 세존께서는 안쓰러워하신다. 딸라뿌따는 출가하여 아라한이 된다.

 

4.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뿐나여, 나는 그대에게 '그만 하라, 뿐나여. 그것을 멈추어라. 내 게 그것을 묻지 마라.’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러자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제가 개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이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그는 소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실천했습니다.

그가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만하라, 세니야여. 그것을 멈추어라. 내게 그것을 묻지 마라.”

두 번째에도 역시

세 번째에도 역시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이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참으로 행하기 어려운 것을 행합니다. 그는 소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실천했습니다.

그가 태어날 곳은 어디이고, 그는 내세에 어떻게 되겠습니까?”

세니야여, 참으로 내가 '그만 하라, 세니야여. 그것을 멈추어라.

내게 그것을 묻지 마라.'라는 말로 그대를 설득할 수가 없으니 그대에게 설명하리라.”

 

5. “세니야여, 여기 어떤 자는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의 버릇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의 마음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의 행동거지를 닦는다.

그는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의 버릇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의 마음을 닦고, 완벽하게 끊임없이 소의 행동거지를 닦고 나서 몸이 무너져 죽은 후에 소들의 일원으로 태어난다.

만일 그가 '이런 습관과 서계와 고행과 청정범행으로

신이 되 거나 다른 [낮은] 신이 될 것이다.'라는 견해를 가진다면

이것은 그의 그릇된 견해일 뿐이다.

뿐나여, 그릇된 견해를 가진 자는 두 가지 태어날 곳,

지옥 아니면 축생으로 향한다고 나는 말한다.

뿐나여, 이 처럼 소처럼 사는 서계가 성취되면 그는 소들의 일원으로 태어날 것이고

성취되지 못하면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16.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니야여, 나는 그대에게

'그만 하라, 세니야여. 그것을 멈추어라. 내게 그것을 묻지 마라.'라고 말하지 않았더냐.”

[그러자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말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그렇게 말씀하셔서 우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단지 제가 소처럼 사는 고행을 오랜 세월 완벽하게 실천했기 때문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세존 께서는 제가 소처럼 사는 이 고행을 버리고,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가 개처럼 사는 고행을 버릴 수 있도록

그러한 법을 설해주소서.”

뿐나여, 그렇다면 잘 듣고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대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7. “뿐나여, 나는 이들 네 가지 업들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562) 무엇이 넷인가?

뿐나여, 어두운 과보를 가져오는 어두운 업이 있다.

뿐나여,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밝은 업이 있다.

뿐나여, 어둡고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어둡고 밝은 업이 있다.

뿐나여, 어두운 과보도 밝은 과보도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업이 있다.”563)

 

562) “왜 이 가르침을 시작하셨는가? 이 가르침은 확실하게 업이 되는 행위(ekacca-kamma-kiriya)를 설한 것이다. 이 네 가지 업(kamma-catukka)을 설 할 때 이들의 업이 분명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네 가지 업을 설하면 그들이 알아들은 뒤, 한 사람은 [삼보에] 귀의(saraa)할 것이고, 한 사람은 출가하여 아라한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아시고 이 가르침을 설하셨다.”(MA.iii.103)

563) “여기서 '어두운 업(kamma kaha)'은 열 가지 불선업도의 업(dasākusala-kamma-patha-kamma)으로 검은(kāaka) 업을 말하고, '어두운 과보 (kaha-vipāka)'는 악도(apāya)에 태어나기 때문에 검은 과보라 한다.

'밝은 업(kamma sukka)'은 열 가지 선업도의 업(dasa-kusala-kammapatha-kamma)으로 흰(paṇḍara) 업을 말하고, '밝은 과보(sukka-vipāka)'는 천상(sagga)에 태어나기 때문에 흰 과보라 한다.

'어둡고 밝은 업(kamma kaha-sukka)'은 섞인 업(vomissaka-kamma)을 말하고, '어둡고 밝은 과보(kaha-sukka-vipāka)'는 행복하고 괴로운 과보(sukha-dukkha-vipāka)를 말한다. 섞인 업(missaka-kamma)을 지은 뒤 불선업에 의해 축생계 가운데 좋은 말 등으로 태어난 자도 선업에 의해 삶의 과정에서는 행복을 느낀다. 선업에 의해 왕의 가문에 태어난 자도 불선업에 의해 삶의 과정에서는 고통을 느낀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업(kamma akaha asukka)'이란 업을 소멸하는(kama-kkhaya-kara) 네 가지 도의 지혜(catu-magga-cetanā-kamma)를 뜻한다. 만약 그 업이 어두운 것이라면 어두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고 밝은 것이라면 밝은 과보를 가져올 것이지만, 두 가지 과보 모두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것이라고 알아야 한다.”(MA.iii.103)

 

8. “뿐나여, 그러면 무엇이어두운 과보를 가져오는 어두운 업인가?

뿐나여, 여기 어떤 자는 악의가 있는 몸의 의도적 행위[身行]를 짓고,

악의가 있는 말의 의도적 행위[口行]를 짓고, 악의가 있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意行]를 짓는다. 564)

그는 악의가 있는 몸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가 있는 말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가 있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나서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난다.

그가 이런 고통스러운 세상에 태어나면 고통스러운 감각접촉이 그를 접촉한다.

고통스러운 감각접촉이 그를 접촉할 때

마치 지옥 중생들처럼 전적으로 괴로움뿐565) 고통스러운 느낌을 느낀다.

 

564) “'몸의 의도적 행위(kāya-sakhāra)' 등에서, 몸의 문(kāya-dvāra)에서 취하여 움직임에 이른 열두 가지 해로운 의도(akusala-cetanā)'악의가 있는 몸의 의도적 행위(sabyābajjha kāya-sakhāra)'라고 한다.

말의 문에서 [위아래의] 턱이 닿아(hanu-sañcopana) 여러 가지 말을 내는 열두 가지 해로운 의도를 '악의가 있는 말의 의도적 행위(sabyābajiham vacī-sakhāra)'라고 한다. 두 종류의 움직임에 이르지 않고 조용히 생각하는 자의 마음의 문에서 생기는 열두 가지 해로운 의도를 '악의가 있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sabyābajiha mano-sakhāra)’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문(dvāra)에서 몸으로 짓는 그릇된 행위 등으로 분류되는 해로운 의도(akusala-cetanā)'의도적 행위(sakhāra)'라고 알아야 한다.” (MA.iii.103~104)

565) “'전적으로 괴로움뿐인(ekanta-dukkha)'이라는 것은 간단없이 고통만 따른다는 말이다.” (MA.ili.104)

 

뿐나여, 이처럼 존재로 인해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566)

행한 업 때문에 태어난다.

태어나면 감각접촉이 그를 접촉하게 된다.

<* ( = 六入) : 되어진 것으로부터 되어진 것의 생겨남이 있다.>

뿐나여, 그러므로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뿐나여, 이를 일러 어두운 과보를 가져오는 어두운 업이라 한다.”

 

566) “'존재로 인해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bhūtā bhūtassa upapatti hoti)'는 것은 평소에 행한 업(bhūta-kamma)에 기인하여 중생의 태어남(upapatti)이 있다, 즉 중생이 행한 그 업에 의해서 그 업의 동질성(kamma-sabhāga)에 따라 그들의 태어남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기서 [존재로 옮긴] bhūtā는 원인(hetu)의 뜻으로 사용된 탈격(nissakka-vacana)이다.” (MA.ili.104)

(kamma)과 중생의 태어남(upapatti)에 대해서는 본서 제4권 「업 분석의 짧은 경」 (M135)과 「업 분석의 긴 경」 (M136)에서 자세히 논의되고 있으므로 참조하기 바란다.

 

9. “뿐나여, 그러면 무엇이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밝은 업인가?

뿐나여, 여기 어떤 자는 악의 없는 몸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 없는 말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 없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짓 는다.567)

그는 악의 없는 몸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 없는 말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 없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나서 고통 없는 세상에 태어난다.

그는 이런 고통 없는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 없는 감각접촉을 접촉한다.

고통 없는 감각접촉을 접촉할 때

마치 변정천의 신들처럼 전적으로 즐거움뿐고통 없는 느낌을 느낀다.

 

567) “몸의 문에서 일어난 여덟 가지 욕계 유익한 의도를 '몸의 의도적 행위(kāya-sakhāra)'라고 하고, 그들이 말의 문에서 일어나면 '말의 의도적 행위(vacī-sakhāra)'라고 하고, 마음의 문에서 일어난 그들 여덟 가지 욕계 유익한 의도와 처음 세 가지 禪의 의도(jhāna-cetanā)'악의 없는 마음의 의도적 행위(abyābajjha-mano-sakhāra)'라고 한다. 이와 같이 세 가지 문에서 몸으로 짓는 좋은 행위 등으로 분류되는 유익한 의도(kusala-cetanā)'의도적 행위(sakhāra)'라고 알아야 한다.” (MA.ii.105)

 

뿐나여, 이처럼 존재로 인해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행한 업 때문에 태어난다.

태어나면 감각접촉이 그를 접촉하게 된다.

뿐나여, 그러므로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뿐나여, 이를 일러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밝은 업이라 한다.”

 

10. “뿐나여, 그러면 무엇이어둡고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어둡고 밝은 업인가?

뿐나여, 여기 어떤 자는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몸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말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짓는다.

그는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몸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말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악의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마음의 의도적 행위를 짓고 나서

고통스럽기도 하고 고통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난다.

그는 이런 고통스럽기도 하고 고통이 없기도 한 세상에 태어나서

고통스럽기도 하고 고통이 없기도 한 감각접촉을 접촉한다.

고통스럽기도 하고 고통이 없기도 한 감각 접촉을 접촉할 때

마치 인간들일부의 신들568) 일부의 악도에 떨어진 자들569)처럼 괴로움과 즐거움이 섞인, 고통스럽기도 하고 고통이 없기도 한 느낌을 느낀다.

 

568) “여기서 '일부의 신들'이란 욕계의 신들을 말한다. 그들은 위력이 더 강한 신들을 보면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고 윗옷을 길게 늘어뜨리고 합장하여 손을 들어 올리는 등의 행동을 하기 때문에 때로는 괴로움이 생기기도 하며 천상의 복락(dibba-sampatti)을 누리기 때문에 때로는 행복하기도 하다.”(AA.iii.213)

569) “여기서 '부의 악처에 떨어진 자들이란 천궁의 아귀들(vemānika-petā)을 말한다. 그들은 쉼 없이(nirantara) 어떤 때는 즐거움을 느끼고, 어떤 때는 괴로움을 느낀다. 용과 가루다(supaṇṇa)와 코끼리와 말 등은 인간들처럼 즐거움과 괴로움이 섞여(vokiṇṇa) 있다.”(AA.iii.213)

뿐나여, 이처럼 존재로 인해 존재의 태어남이 있다. 행한 업 때문에 태어난다.

태어나면 감각접촉이 그를 접촉하게 된다.

뿐나여, 그러므로 중생들은 업의 상속자라고 나는 말한다.

뿐나여, 이를 일러 어둡고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어둡고 밝은 업이라 한다.”

 

11. “뿐나여, 그러면 무엇이어두운 과보도 밝은 과보도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업570)인가?

뿐나여, 여기서 어두운 과보를 가져오는 어두운 업을 제거하려는 의도,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밝은 업을 제거하려는 의도,

어둡고 밝은 과보를 가져오는 어둡고 밝은 업을 제거하려는 의도를 일러

어두운 과보도 밝은 과보도 가져오지 않고

업의 소멸로 인도하는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업이라고 한다.

뿐나여, 나는 이들 네 가지 업들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570) “이것은 네 가지 도의 의도인 업(catu-magga-cetanā-kamma)를 말한다.

만약 그것이 어두운 업이면 어두운 과보를 가져올 것이고, 밝은 업이면 밝은 과보를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어떤 과보도 가져오지 않아서 어두운 과보도 밝은 과보도 가져오지 않기 때문에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akaha asukka)'이라고 했다.” (MA.iii.102)

 

12.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소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꼴리야의 후손인 뿐나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 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13. 그러나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 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 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 합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합니다.”

 

14. “세니야여, 전에 이교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하면 그는 넉 달의 수습 기간을 가져야 한다.

넉 달이 지나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를 허락하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준다.

물론 여기에 개인마다 차이가 있음을 나는 인정한다.”

 

세존이시여, 만일 전에 이교도였던 자가 이 법과 율에 출가하기를 원하고 구족계를 받기를 원할 때 넉 달의 수습 기간을 가져야 하고, 넉 달이 지나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를 허락하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주신다면 저는 4년의 수습 기간을 가지겠습니다. 4년이 지나고 비구들이 동의하면 출가를 허락해주시고 비구가 되는 구족계를 주십시오.”

 

15. 개처럼 사는 서계를 닦는 나체 수행자 세니야는 세존의 곁으로 출가했고 구족계를 받았다.

구족계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세니야 존자는 혼자 은둔하여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 하며 지냈다.

오래지 않아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하는 목적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성을 지금 · 여기에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지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세니야 존자는 아라한들 중의 한 분이 되었다.

 

 

견서계경(犬誓戒經)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