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지와까 꼬마라밧짜510)의 망고 숲에 머무셨다.
510) 지와까 꼬마라밧짜(Jīvaka Komārabhacca)는 부처님의 주치의로 잘 알려진 부처님 당시의 명의(名醫)이다. 중국에서는 지와까를 기구(耆舊)로 음역하기도 하였고 꼬마라밧짜를 수명(壽命)이나 수명동자(壽命童子)로 의역하기도 하였다.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에 의하면 그는 라자가하의 기녀였던 살라와띠(Sālavati)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나자마자 광주리에 담겨서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졌다고 한다. 빔비사라(Bimbisāra) 왕의 아들이며 아자따뚜와는 이복형제인 아바야(Abhaya) 왕자가 이를 발견하고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가 묻자, '그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jīvati)'라고 대답해서 그의 이름이 지와까가 되었으며, '왕자(kumāra)에 의해서 양육되었다(posāpita)'고 해서 꼬마라밧짜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AA.i.399) 다른 설명에 의하면
그는 소아과 전문의(Kaumārabhṛtya)였다고도 한다.(VȚ.ii.174) 그는 자라서 그의 출신에 대해서 알게 되자 아바야 왕자 몰래 딱까실라(Takkasilā)로 가서 칠 년 동안 의술을 배웠다고 한다. 공부를 마치고 라자가하로 돌아와서는 빔비사라왕의 고질병을 치료하여 유명해졌다고 한다. 그래서 왕과 궁중의 주치의로 임명이 되었고 부처님과 승가의 주치의 역할도 하였다. 아버지 빔비사라왕을 시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아자따삿뚜도 지와까를 주치의로 삼아서 가까이에 두었다.(AA.i,399) 그래서 『디가 니까야』 제1권 「사문과경」 (D2)에서도 아버지를 시해한 괴로움에 시달리던 아자따뚜 왕은 지와까를 통해서 부처님을 뵙고 참회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이다.
지와까가 부처님을 치료한 일화는 『율장』과 주석서 등에서 나타나고 있다. 『앙굿따라 니까야』 「하나의 모음」(A1:14:6-9)에서 세존께서는 지와까를 “사람들을 신뢰하는 자(puggala-ppasann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찬하셨다. 지와까는 예류과를 증득한 뒤 항상 하루에 두 번씩 세존께 인사 드리러 갔으며 세존께서 머무시는 왕사성의 죽림정사(Veḷuvana)가 너무 멀어서 그가 소유하고 있던 망고 숲을 승가에 기증하여 부처님과 승가가 머물게 하였다고 한다. 그곳이 바로 여기에 나타나는 지와까의 망고 숲이다.『디가 니까야』제1권「사문과경」 (D2)도 이곳에서 설해졌다.
2. 그때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3. “세존이시여, 제게 이런 말이 들립니다.
사람들은 사문 고따마를 위해 산목숨을 죽이는데,
사문 고따마는 자신을 위해 동물을 죽인 것임을 알면서도 그 고기를 먹는다.'라고,
세존이시여, '사람들은 사문 고따마를 위해 산목숨을 죽이는데,
사문 고따마는 자신을 위해 동물을 죽인 것임을 알면서도 그 고기를 먹는다.'라고 말하는 그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했고, 혹시 거짓으로 세존을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유로도511) 그들의 주장은 비난받지 않겠습니까?”512)
511) '어떤 이유로도'는 koci saha-dhammiko를 옮긴 것이다. saha-dhammika는 문맥에 따라서 '같은 가르침을 따르는 자'라는 명사로도 옮길 수 있고(특히 본서 제1권 「사자후의 짧은 경」 (M11/i.64) $3 이하) '합법적으로, 합리적으로 정당하게'라는 형용사로도 옮길 수 있다.(특히 『상윳따 니까야』제4권 「니간타 나따뿟따 경」(S41:8)) 그리고 여러 곳에서는 '동료수행자'로 옮기기도 하였다. 그런데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이것을 “어떤 이유로도(sabb-ākārena pi) 그의 주장에 비난을 살만한 이유가 없는 것인지를 묻는 것이다.”(MA.iii.47)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여기서는 '어떤 이유로도'로 옮겼다.
512) '그들은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했고, 혹시 거짓으로 세존을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어떤 이유로도 그들의 수장은 비난받지 않겠습니까?'는 kacci te bhante bhagavato vuttavādino. na ca bhagavantaṃ abhūtena abbhācikkhanti dhammassa cānudhammaṃ byākaronti. na ca koci sahadhammiko vādānuvādo gārayhaṃ ṭhānaṃ āgacchati를 옮긴 것이다. 이 정형구는 니까야의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본서에서는 본경과 M71 §5이하, M90 §5, M101 §22, M103 §17, M117 §37, M126 §7이하 등에 나타나고 있다.
4. “지와까여, '사람들은 사문 고따마를 위해 산목숨을 죽이는데,
사문 고따마는 자신을 위해 동물을 죽인 것임을 알면서도 그 고기를 먹는다.'라고 말하는 자들은 내가 말한 대로 말한 것이 아니라 그들은 사실이 아닌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다.”
5. “지와까여, 나는 세 가지 경우에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고 설하나니
본 것과 들은 것과 의심스러운 것이다.513)
지와까여, 이 세 가지 경우에는 고기를 먹어서는 안된다고 설한다.
지와까여, 세 가지 경우에는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설하나니
보지 않았고 듣지 않았고 의심스럽지 않은 것이다.
지와까여, 이 세 가지 경우에는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설한다. 514)
513) “'본 것(diṭṭha)'이란 비구들에게 공양 올리기 위해 동물을 잡아서 요리하여 가져오는 것을 본 것이고, '들은 것(suta)'이란 비구들에게 공양 올리기 위해 동물을 잡아서 요리하여 가져왔다고 들은 것이고, '의심스러운 것(parisaṅkita)'이란 ① 보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diṭṭha-parisaṅkita)과 ② 들었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suta-parisaṅkita)과 ③ 그 둘과 상관없이 의심스러운 것(tad-ubhaya-vimutta-parisaṅkita)의 세 가지이다.
[이 가운데서 ① '보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diṭṭha-parisaṅkita)'은 비구들이 지금 사람들이 올가미를 들고 마을을 빠져나가 숲으로 들어가 돌아다니는 것을 본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의 마을에 탁발(piṇḍapāta)을 갈 때 그들이 신선한 고기를 탁발의 공양물로 올린다. 어제 그 상황을 목격했기 때문에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구들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라고, 이것이 보았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받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은 받아도 된다. 만약 사람들이 받지 않는 이유를 묻고, 그것이 비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요리한 것이라고 말을 하 면 받아도 된다.
[② 들었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suta-parisaṅkita)은 비구들이 이렇게 직접 목격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이 올가미를 들고 마을을 빠져나가 숲으로 들어가 돌아다닌다.'라고 듣는다. 그리고 그 다음날 그들의 마을에 탁발을 갈 때 그들이 신선한 고기를 탁발의 공양물로 올린다. 어제 그 상황을 들었 기 때문에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구들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라고, 이것이 들었기 때문에 의심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받으면 안 된다. 이러 한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은 받아도 된다. 만약 사람들이 받지 않는 이유를 묻고, 그것이 비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요리한 것이라고 말을 하면 받아도 된다.
[③ 그 둘과 상관없이 의심스러운 것(tad-ubhaya-vimutta-parisaṅkita)은 비구들은 본 것도 들은 것도 없이 그들의 마을에 탁발을 가면 발우를 받아 신선한 고기를 탁발음식으로 올린다. 그들은 의심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비구들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닐까?'라고, 이것이 그 둘과 상관없이 의심스러운 것이다. 이것은 받으면 안 된다. 이러한 의심이 들지 않는 것은 받아도 된다. 만약 사람들이 받지 않는 이유를 묻고, 그것이 비구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들을 위해 요리한 것이라고 말을 하면 받아도 된다.”(MA. iii.47~48)
이 문맥은 부처님께서 비구 승가에게 육식에 대한 규칙을 분명하게 설하신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육식을 완전히 금기시하지는 않으셨다. 그 대신 특별히 그들에게 공양 올리기 위해 죽인 것이 아닌 고기는 허락하셨다. 이런 음식을 주석서에서는 삼합이 청정한(tikoṭi-parisuddha) 음식이라 한다. 즉 죽이는 것을 보지 않았고, 듣지 않았고, 특별히 비구들을 위해 잡은 고기가 아닌지 하는 의심스러움이 없는, 이 세 가지 측면에서 청정하다는 말이다. 재가자들도 생명을 죽여서는 안되는 계율이 있기 때문에 음식을 준비하기 위해 죽여서는 안된다. 다만 이미 죽은 고기를 사오는 것은 금지하지 않으셨다. 더 자세한 내용은 『율장』 『대품의 제6품(Vin.i.237 ~238)과 I.B. Horner, Early Buddhism and the Taking of Life, 20~26쪽을 참조할 것.
514) “'세 가지 경우에는 고기를 먹어도 된다고 설한다(tīhi ṭhānehi paribhogan ti vadāmi).'라고 하셨다. 이러한 세 가지 이유 때문에 이것들은 청정한 것 parisuddha이니 이것을 '삼합이 청정한 것(tikoṭi-parisuddha)'이라 한다. 이러한 것을 먹는 것은 카레의 재료가 되는, 숲에서 생긴 야채로 된 음식(araññe jāta-sūpeyya-sāka-parbhoga)과 같은 것이다. 이러한 음식을 먹고 자애롭게 머무는(mettā-vihāri) 비구에게는 결점(dosa)이나 비난받을 일(vajja)이 없다. 그래서 이런 것은 먹어도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MA.iii.48)
6. “지와까여, 여기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 근처에 머문다.
그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 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에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찾아와 다음날의 공양청을 한다.
지와까여, 만일 비구가 원한다면 그에 동의한다.
밤이 지나고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의 집으로 간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는다.
그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 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니 참으로 장하구나.
앞으로도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 좋겠다.'라고,
그에게 그런 생각은 결코 들지 않는다.
그는 음식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재난을 보고 벗어남을 통찰하면서 먹는다.
지와까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에 비구가 자신을 해칠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을 하거나
둘 다를 해칠 생각을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지와까여, 그렇다면 그때에 비구는 참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7.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는 '범천은 자애를 가져 머문다.'라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있어 바로 이 말에 대한 산 증인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자애를 가져 머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와까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악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래는 제거했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지와까여, 만일 그대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라면 그 대의 말을 인정하겠다.”515)
“세존이시여, 저는 바로 이것을 두고 말씀드렸습니다.”
515) “대범천(Mahābrahma)은 억압에 의한 버림(vikkhambhana-ppahāna)으로써 악의(byāpadā) 등을 버렸고, 그리하여 그는 자애를 가지고 머물렀다(mettā-vihāri). 그러나 부처님은 아라한과를 얻어 근절(根絶)에 의한 버림(samuccheda-ppahāna)으로써 악의 등을 버렸고, 그리하여 자애를 가져 머무신다. 여기서 세존께서는 지와까에게 만약 그대가 이것과 관련하여 말한 것이라면 그대의 말에 동의하고 받아들이겠다고 하시는 것이다.” (MA.ii.50)
8. ~ 10. “지와까여, 여기 비구는 어떤 마을이나 성읍 근처에 머문다.
그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 음으로 …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에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찾아와 다음날의 공양청을 한다.
지와까여, 만일 비구가 원한다면 그에 동의한다.
밤이 지나고 아침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그 장자나 장자의 아들의 집으로 간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는다.
그때 장자나 장자의 아들은 맛있는 음식을 대접한다.
그러나 그는 이와 같이 생각하지 않는다.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니 참으로 장하구나.
앞으로도 이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 이런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면 좋겠다.'라고,
그에게 이런 생각은 결코 들지 않는다.
그는 음식에 묶이지 않고 홀리지 않고 집착하지 않고 재난을 보고 벗어남을 통찰하면서 먹는다.
지와까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때에 비구가 자신을 해칠 생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해칠 생각을 하거나
둘 다를 해칠 생각을 하겠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지와까여, 그렇다면 그때에 비구는 참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음식을 먹는 것이 아니겠는가?"
11.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저는 '범천은 자애를 가져 머문다.'라고 들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게 있어 바로 이 말에 대한 산 증인이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참으로 자애를 가져 머무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지와까여,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때문에 악의를 일으킬 수 있으므로
그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여래는 제거했고 뿌리를 잘랐고 야자수 줄기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지와까여, 만일 그대가 이것을 두고 말한 것이라면 그대의 말을 인정하겠다.”
“세존이시여, 저는 바로 이것을 두고 말씀드렸습니다.”
12. “지와까여,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위해 생명을 죽이는 자는 다섯 가지 이유로 많은 악덕을 쌓는다.
그가 가서 '그 생명을 데려오라.'라고 말할 때, 그가 많은 악덕을 쌓는 첫 번째 이유다.
그 생명의 목이 고삐에 채여 끌려갈 때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이것이 그가 많은 악덕을 쌓는 두 번째 이유다.
그가 '가서 이 생명을 죽이라.'라고 말할 때, 그가 많은 악덕을 쌓는 세 번째 이유다.
그 생명이 도살될 때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이것이 그가 많은 악덕을 쌓는 네 번째 이유다.
그가 여래나 여래의 제자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을 제공할 때,516)
이것이 그가 많은 악덕을 쌓는 다섯 번째 이유다.
516) “'허용되지 않은 것을 제공한다(akappiyena āsādeti).'는 것은 곰고기(accha-maṃsa)를 돼지고기(sukara-maṃsa)라고 하고, 표범고기(dīpi-maṃsa)를 양고기(miga-maṃsa)라고 하면서 먹게 한 뒤에 ‘당신은 사문이면서 어떻게 허용되지 않은 고기(akappiya-maṃsa)를 먹습니까?'라고 모욕을 주는 것이다(ghaṭṭeti).
그러나 기근(dubbhikkha) 등이 들거나 혹은 병을 낫게 하기(byādhi-niggahaṇa) 위해 '곰고기와 돼지고기는 비슷하고, 표범고기와 양고기는 비슷하다'라고 아는 사람이 '이것은 돼지고기이고, 이것은 양고기이다.'라고 하면서 유익한 의향(hit-ajjhāsaya)으로 먹게 하는 사람이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한 말은 아니다. 이 경우에는 많은 공덕을 쌓는 것(bahu-puñña)이기때문이다.”(MA.iii.51)
지와까여, 여래나 여래의 제자를 위해 생명을 죽이는 자는
이런 다섯 가지 이유로 많은 악덕을 쌓는다.”
13.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지와까 꼬마라밧짜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허용된 음식을 먹습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은 비난받을 일이 없는 음식을 먹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517)
517) “지와까는 여기서 다시 한 번 삼보에 귀의한다고 말한다. 그는 이미 [예류]과를 얻었고(āgata-phala), 교법을 알았고(viññata-sāsana), 진리를 본(diṭṭha-sacca) 성스러운 제자(ariya-sāvaka)였다. 그러나 이 법의 가르침에 깊이 들어갈 때 청정한 믿음(pasāda)을 일으켜 법문(dhamma-kathā)에 대해 만족(thuti)하면서 한 말이다.” (MA.iii.51)
지와까 경(M55)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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