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53. 유학(有學) 경(Sekh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1

M53. 유학(有學) 481) Sekha Sutta

 

481) '유학(有學, sekha)'이란 그 수행자에게 아직 수행할 것[]이 더 남아있다.

[]는 뜻으로 네 가지 도와 네 가지 과 가운데 마지막 과인 아라한과를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예류도부터 아라한도까지의 처음 일곱 부류의 성인을 유학이라 부른다. 그래서 주석서(SA.ii.60; AA.ii.98 )에서는 '일곱 [단계의] 유학'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한다. 아라한과를 얻은 성인은 무학(無學, asekha)이라 하는데,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이미 모든 오염원들을 버렸기 때문이다.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삭까에서 까삘라왔투니그로다 원림에 머무셨다. 482)

 

482) 삭까(Sakka)와 까벨라왓투(Kapilavatthu)와 니그로다 원림(Nigrodhārāma)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괴로움의 무더기의 짧은 경」 (M14) §1의 주해들을 참조할 것.

 

2. 그 무렵 까삘라왓투에 있는 사꺄족들이 최근에 새 공회당을 지었는데

어떤 사문도 어떤 바라문도 어떤 다른 사람도 아직 머문 적이 없었다.

그래서 까삘라왓투의 사꺄483)들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까삘라왔투의 사꺄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483) 사까(Sakka)와 사꺄(Sakya) 등에 대한 논의는 본서 제1권 「괴로움의 무더기의 짧은 경」 (M14) §1의 주해와 특히 『상윳따 니까야』 제3권 「걸식 경」(S22:80)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세존이시여, 까삘라왓투에 있는 사꺄족들이 새 공회당을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어떤 사문도 어떤 바라문도 어떤 사람도 아직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부디 세존께서 가장 먼저 사용해주십시오.

세존께서 가장 먼저 사용하시고 난 후에 까삘라왓투의 사꺄들이 사용하려 합니다.

그러면 그것은 까삘라왓투의 사꺄 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이 되고 행복이 될 것입니다.” 484)

 

484) 같은 의식이 『상윳따 니까야』 제4권 「오염원들이 흐름에 대한 법문 경」(S35:243) §4와 『디가 니까야』 제3권 「합송경」 (D33/iii.207) §1.2에도 나타나고 있다. 『디가 니까야』제2권 「대반열반경」(D16/i1.84~85) §1.21도 참조할 것.

 

3.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동의하셨다.

그러자 까삘라왓투의 사꺄들은 세존께서 동의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공회당으로 갔다.

가서는 공회당을 덮개로 완전하게 덮고 자리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를 마련하고

기름 등불을 밝힌 뒤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까벨라왓투의 사꺄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공회당을 덮개로 완전하게 덮었고 자리를 준비하고 물 항아리를 마련하고

기름 등불을 밝혔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행하시옵소서.”

 

4. 그러자 세존께서는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비구 승가와 함께 공회당으로 가셨다.

가서는 발을 씻고 공회당으로 들어가 중앙의 기둥 곁에서 동쪽을 향하여 앉으셨다.

비구들도 역시 발을 씻고서 공회당에 들어가 서쪽 벽 근처에서

동쪽을 향하여 세존을 앞에 모시고 앉았다.

까벨라왓투의 사꺄들도 역시 발을 씻고 공회당에 들어가 동쪽 벽 근처에서

서쪽을 보고 세존을 앞에 모시고 앉았다.

 

5. 그때 세존께서는 까벨라왓투의 사꺄들에게 밤늦게까지 법을 설하여

가르치시고 격려하시고 분발하게 하시고 기쁘게 하시고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까삘라왓투의 사꺄들에게 도를 닦고 있는 유학(有學)의 경지485)를 설하여라. 나는 등이 아파 좀 쉬어야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대답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가사를 네 겹으로 접어 자리를 만들고

한 발을 다른 발에 포개어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워서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마음에 잡도리하셨다.

 

485) “'도를 닦고 있는 유학(有學)의 경지(sekha pāipada)'란 도를 닦고 있는 유학인 사문을 말한다. 여기서 '도를 닦고 있는 유학의 사문에 대해서 설하고, 그의 도닦음을 보여주라.'라고 도닦음으로써 사람(puggala)을 결정하여(puggala niyametvā)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무슨 이유로 세존께서는 이 유학의 도닦음을 결정하셨는가?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이 사꺄들은 축복의 살라 나무(magala-sālā)에서 축복을 바라고, 번영을 원한다. 이 유학의 도닦음도 우리 교단에 축복의 도닦음(magala-paipadā)이고 번영하게 하는 도닦음(vaḍḍhamānakapaipadā)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도닦음을 결정하셨다. 또한 그 회중에 유학 들이 많이 앉아있었다. 그들은 스스로 얻은 경지를 이야기할 때 지칠 줄 모르고 대화를 나누기 때문에 이 도닦음을 결정하셨다. 또한 아난다 존자는 유학으로서 이미 무애해를 얻었기 때문에 스스로 통찰하고 체험한 경지에 대해 이야기할 때 피로한 줄 모르고 드러낼 수 있기 때문에 이 도닦음을 결정 하셨다.

그리고 유학의 도닦음에 세 가지 공부지음(tisso sikkhā)이 포함되어 있다. 그중에서 높은 계에 대한 공부지음[增上戒學, adhisīla-sikkhā]을 이야기 할 때 모든 『율장』(Vinaya-piaka)을 말한 것이 되고, 높은 마음에 대한 공부지음[增上心學, adhicitta-sikkhā]을 이야기할 때 모든 『경장』 (Suttanta-piaka)을 말한 것이 되고, 높은 통찰지에 대한 공부지음[增上慧學, adhipaññā-sikkhā]을 이야기할 때 모든 『논장』(Abhidhamma-piaka)을 말한 것이 된다. 아난다는 많이 배웠고 삼장 법사(tipiaka-dhara)이다. 그러므로 그는 『삼장』(Ti-piaka)을 통해 세 가지 공부지음을 설할 수 있다. 이렇게 설할 때 사꺄들의 축복(magala)과 번영(vaḍḍhi)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 도닦음을 결정하셨다.”(MA.iii.27~28)

'유학(有學, sekha)'에 대한 설명은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 §27의 주해를 참조할 것.

 

6. 그러자 아난다 존자는 사꺄 사람 마하나마486)를 불러서 말했다.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지키고,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고,

깨어있음에 전념하며,

일곱 가지 바른 법을 갖추고,

바로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四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습니다.

 

486) 마하나마(Mahānāma)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괴로움의 무더기의 짧은 경」(M14)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7. “마하나마여, 그러면 어떻게 성스러운 제자는 계를 구족합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계를 잘 지킵니다.

그는 빠띠목카(계목)487)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뭅니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공부짓습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계를 구족합니다.”

 

487) 빠띠목카(pāimokkha, 戒目, 계목)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원한다면 경」(M6)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8. “마하나마여, 어떻게 성스러운 제자는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지킵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합니다.

 

귀로 소리를 들음에코로 냄새를 맡음에혀로 맛을 봄에몸으로 감촉을 느낌에마노[]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입니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합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지킵니다.”

 

9. “마하나마여, 어떻게 성스러운 제자는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압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다음과 같이 지혜롭게 숙고하면서 음식을 수용합니다.

그것은 즐기기 위해서도 아니고, 취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치장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고, 장식을 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단지 이 몸을 지탱하고 존속하고 잔인함을 쉬고 청정범행을 잘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래된 느낌을 물리치고 새로운 느낌을 일어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잘 부양될 것이고 비난받을 일이 없이 편안하게 머물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수용합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압니다.”

 

10. “마하나마여, 어떻게 성스러운 제자는 깨어있음에 전념합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낮 동안에는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밤의 초경에도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한밤중에는 발에다 발을 포개어 오른쪽 옆구리로 사자처럼 누워서

싸띠를 확립시키고 반야로 보여지면서 [正念·正知] 일어날 시간을 마음에 잡도리합니다.

밤의 삼경에는 일어나서 경행하거나 앉아서 장애가 되는 법들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합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깨어있음에 전념합니다.”

 

11. “마하나마여어떻게 성스러운 제자는 일곱 가지 바른 법을 갖춥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는 여래의 깨달음에 청정한 믿음이 있고 신뢰가 있습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시며,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시며,

깨달은 분[]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12. “그는 양심을 가집니다.

의 나쁜 행실과 의 나쁜 행실과 마음의 나쁜 행실을 부끄러워합니다.

나쁘고 해로운 법들에 빠져있음을 부끄러워합니다.

 

13. “그는 수치심을 가집니다.

의 나쁜 행실과 의 나쁜 행실과 마음의 나쁜 행실을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나쁘고 해로운 법들에 빠져있음을 수치스럽게 여깁니다.” 488)

 

488) '양심(hirī)' '수치심(ottappa)'에 대해서는 본서 「앗사뿌라 긴 경」 (39) §3과 주해를 참조할 것.

 

14. “그는 많이 배우고[多聞] 배운 것을 바르게 호지하고 배운 것을 잘 정리합니다.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내는 가르침들이 있으니, 그는 그러한 가르침들을 많이 배우고 호지하고 말로써 친숙해지고

마음으로 숙고하고 견해로써 잘 꿰뚫습니다.”

 

15. “그는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고 유익한 법들두루 갖추기 위해서 불굴의 정진으로 머뭅니다. 그는 굳세고 분투하고 유익한 법들에 대한 임무를 내팽개치지 않습니다.”

 

16 “그는 싸띠를 확립하는 자입니다.

그는 최상의 싸띠와 슬기로움489)을 구족하여

오래 전에 행하고 오래 전에 말한 것일지라도 모두 기억하고 생각해냅니다.”

 

489) “'마음챙김과 슬기로움(sati-nepakka)'을 구족했다고 했는데, 무슨 이유로 마음챙김의 해당란(sati-bhājaniya) [슬기로움이라는] 통찰지가 언급되었는가? 마음챙김의 강한 상태를 보여주기 위함(balava-bhāva-dīpanattha)이다. 통찰지가 함께하지 않은(paññā-vippayuttā) 마음챙김은 힘이 약하고(dubbalā), 함께 할 때는 강하기(balavati) 때문이다.”(MA.ji.30)

 

17. “그는 반야를 가졌습니다.

그는 일어나고 사라짐을 꿰뚫고, 성스럽고, 통찰력이 있고,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통찰지를 구족했습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일곱 가지 바른 법490)을 갖추고 있습니다.”

 

490) 이처럼 본경 §§11 ~17에 나타나는 믿음(saddha), 양심 있음(hirimā), 수치심 있음(ottappī), 많이 배움(bahussuta), 활발하게 정진함(āraddha-viriya) 마음챙김을 확립함(upaṭṭhita-sati), 통찰지를 가짐(pññavā)의 일곱 가지를 '일곱 가지 바른 법(satta-sad-dhamma)'이라 부르고 있다. 이것은 『디가 니까야』「합송경」(D33) §2.3 (5)에도 나타나는데, '일곱 가지 바른 법'이라는 용어는 『상윳따 니까야』 제3권 「아라한 경」 1(S22:76) §6의 게송 {3}에도 언급되고 있다.

 

18. “마하나마여, 어떻게 성스러운 제자는 바로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선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습니까?

 

마하나마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도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관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관찰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아니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二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 [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3(三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 4(四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마하나마여,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습니다.”

 

19.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하고,

이와 같이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지키고,

이와 같이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고,

이와 같이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이와 같이 일곱 가지 바른 법을 갖추고,

이와 같이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을 때,

그를 일러 도에 든 유학이라 합니다.

그의 계란은 상하지 않아서 껍질을 부수고 나올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위없는 유가안은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491)

 

491) “'껍질을 부수고 나올 수 있다(bhabbo abhinibbhidāya).'는 것은 위빳사나의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깨달을 수 있다(sambodhāya),'는 것은 성스러운 도를 깨달을 수 있다는 뜻이고, '위없는 유가안은을 얻을 수 있다.(anuttarassa yogakkhemassa adhigamāya).'는 것은 아라한과를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MA.iii.32)

 

마하나마여, 예를 들면 닭이 여덟 개나 열 개나 열두 개의 계란을 바르게 품고

바르게 온기를 주고 바르게 냄새를 느끼게 하면492)

그 닭에게 '이 병아리들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 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오기를 하는 바람이 일어나지 않더라도

병아리들 이 발톱 끝이나 부리로 계란 껍질을 잘 부순 뒤 안전하게 뚫고 나올 수 있듯이,

 

492) 이 비유는 본서 제1권 「추론 경」 (M16) §27에도 나타난다. 『상윳따 니까야』제3권 「까뀌 자루 경」 (S22:101) §5에도 나타나는데 다르게 적용이 되고 있다. 『율장』 (Vin.iii.3~5)도 참조할 것.

 

성스러운 제자가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하고, 이와 같이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지키고,

이와 같이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고, 이와 같이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이와 같이 일곱 가지 바른 법을 갖추 고,

이와 같이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을 때,

그를 일러 도에 든 유학이라 합니다.

그의 계란은 상하지 않아 서 껍질을 부수고 나올 수 있고,

깨달을 수 있고, 위없는 유가안은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20. “마하나마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평정으로 인해 청정해진 최상의 싸띠에 도달하여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 할 수 있습니다.

즉 한 생, 두 생이와 같이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宿命通, 숙명통].

이것이 그의 첫 번째 부숨이니 병아리가 계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21. “마하나마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평정으로 인해 청정해진 최상의 싸띠에 도달하여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압니다[天眼通, 천안통].

이것이 그의 두 번째 부숨이니 병아리가 계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22. “마하나마여, 이러한 성스러운 제자는 평정으로 인해 청정해진 최상의 싸띠에 도달하여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반야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 여기 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漏盡通, 누진통].

이것이 그의 세 번째 부숨이니 병아리가 계란 껍질을 깨고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23.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계를 구족하면 이것이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감각기능들의 문을 잘 지키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음식에 적당한 양을 알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깨어있음에 전념하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일곱 가지 바른 법을 갖추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물게 하는, 높은 마음인

네 가지 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으면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493)

 

493) “'이것도 그의 실천입니다(idampissa hoti caraasmi).'라는 것은 성스러운 제자가 계를 구족(sīla-sampanna)하면 그 계가 그 비구의 실천(caraa)이라는 말이다. 실천은 [본경에 나타나는] 계 등 열다섯 가지 법을 말하는데, 이것도 하나의 실천이다. 그러나 문자적인 뜻으로는 이 [열다섯 가지 법]에 의해 실천하고(carati), 이전에 가보지 못한 [불사의] 경지(disa)로 가기 때문에 실천(caraa)이라 한다.”(MA.ii.33)

『청정도론』에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실천[]이란 계[]로 절제함, 감각기능[]들의 문을 단속함, 음식에서 적당량을 앎, 깨어있으려는 노력, 일곱 가지 바른 법, 네 가지 색계선이라는 이 열다섯 가지 법들이라고 알아야 한다. 이 열다섯 가지 법들에 의해 성스러운 제자들은 스스로 실천하고 불사의 경지로 가기 때문에 실천이라 한다. 그래서 말씀하셨다. “마하나마여, 여기 성스러운 제자들은 계를 가진 자다.”(M.i.355 = 본경 §6)라고, 모든 것은 『맛지마 니까야』「가운데 50개 경들의 묶음」에서 설한 방법대로 알아야 한다. 세존은 이런 영지와 실천을 갖추셨기 때문에 영지와 실천을 구족하신 분[明行足]이라 불린다.”(Vis. VII.31)

 

24.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할 수 있습니다.

즉 한 생, 두 생이와 같이 한량없는 전생 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 낼 수 있습니다宿命通]. 이것이 그의 명지(明知)입니다.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봅니다. …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압니다[天眼通]. 이것도 그의 명지입니다.

 

마하나마여, 성스러운 제자가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반야의 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漏盡通]. 이것도 그의 명지입니다.”494)

 

494) “'이것도 그의 명지입니다(idampissa hoti vijjāya).'라고 했다. 성스러운 제자가 성취한 이 숙명통(pubbenivāsa-ñāa)이 그의 명지이다. 명지는 위빳사나의 지혜(vipassana-ñāa) 등 여덟 가지 지혜(aṭṭha ñāāni)이다. 그중에서 이 지혜도 하나의 명지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자적인 뜻으로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가로막는 오염원들을] 꿰뚫어 부수고(vinivijjhitvā) 이 지혜로 알기(jānāti) 때문에 명지(vijjā)이다.”(MA.iii.33)

여덟 가지 지혜란 천안통(dibbacakkhu-ñāa), 신족통(iddhividha-ñāa), 타심통(cetopariya-ñāa), 업에 따라 가는 것을 아는 지혜(yathākammupaga-ñāa), 미래를 아는 지혜(anāgatasa-ñāa), 현재를 아는 지혜(paccuppannasa-ñāa), 과거를 아는 지혜(atītasa-ñāa), 숙명통(pubbenivāsa-ñāa)이다.(AA.iv.143)

한편 『청정도론』 XXI.1 이하에는일어나고 사라짐을 관찰하는 지혜 (udayabbayānupassanā-ñāa) ② 무너짐을 관찰하는 지혜(bhagānupassanā-ñāa) 등의 다른 여덟 가지 지혜를 들고 있다. 여러 가지 초월지(abhiññā) 혹은 신통지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제13장 전체에 나타나는 설명을 참고할 것.

 

25. “마하나마여, 이를 일러 성스러운 제자는

'명지를 구족했다. 실천을 구족했다. 명지와 실천을 구족했다.'라고 합니다.

마하나마여, 사낭꾸마라 범천495)도 역시 게송으로 이렇게 읊었습니다.

 

495) “'사낭꾸마라(Sanakumāra)' [문자적으로 항상(sana) 소년(kumāra)이란 뜻] 오래된 소년(porāaka-kumāra)이라는 뜻인데, 오래전부터 꾸마라(소년)라고 불렸다. 그는 전생에 머리를 다섯 가닥으로 묶은 아직은 어린 시절에 禪을 닦아 禪에 든 채(aparihīna-jjhāna) 범천(brahma-loka)에 태어났다. 그의 몸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그리하여 그는 그런 소년의 모습 로 다녔고, 그리하여 사낭꾸마라(영원한 소년)라는 이름이 생겼다.”(MA.iii.33)

사냥꾸마라에 대한 묘사는 『디가 니까야』 제2권 「자나와사바 경」 (D18) §§17~29을 참조할 것.

 

'가문을 중시여기는 사람들 가운데 끄샤뜨리야가 최상이고,

신과 인간들 가운데 명지와 실천 갖춘 자[明行足]가 최상이다.'496)

 

496) 본 게송은 『디가 니까야』제1권 「암밧타 경」(D3) §1.28과 제3권 「세기 경」(D27) §32에도 사낭꾸마라가 읊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 제1권 「사낭꾸마라 경」 (S6:11) {596}과 제2권 「마하깝삐나 경」 (S21:11) §4에도 나타나고 있으며, 『앙굿따라 니까야』 제6권 「공작 보호구역 경」 (A11:11) §10에도 등장한다.

 

마하나마여, 사낭꾸마라 범천의 게송은 잘 읊은 것이지 잘못 읊은 것이 아니며,

좋은 말이지 나쁜 말이 아니며, 의미가 있는 것이지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세존께서도 그렇게 인정하셨습니다.”

 

26. 그러자 세존께서 일어나셔서 아난다 존자를 불러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장하구나. 아난다여, 장하구나.

그대는 까삘리왓투의 사꺄들에게 도를 닦고 있는 유학(有學)의 경지를 아주 잘 설했다.”

 

아난다 존자는 이렇게 설했고 스승께서는 인정하셨다.

그 까삘라왓투의 사꺄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아난다 존자의 설법을 크게 기뻐하였다.

 

 

유학 경(M53)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