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51. 깐다라까 경(Kandarak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1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짬빠442)각가라 호숫가443)에서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머무셨다.

그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 깐다라까 유행승이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깐다라까 유행승은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섰다. 444)

한 곁에 서서 깐다라까 유행승은 모두 침묵하고 있는445) 비구 승가를 둘러보고 세존께 여쭈었다.

 

442) 짬빠(Campā)는 옛 인도 중원의 16(Mahājanapada) 가운데 하나인 앙가(Aga)의 수도였으며 현재 바갈뿌르(Bhagalpur) 부근에 있는 짬빠나가라(Campānagara)와 짬빠뿌라(Campāpura)일 것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 경에 언급되는 다른 앙가의 도시로는 밧디야(Bhaddiya, DA.i.279; DhA.i.384)와 앗사뿌라(Assapura, M.i.271)가 있다. 앙가는 이미 부처님 시대에 마가다로 편입되었다. 그래서 초기경에서는 앙가가 독립된 나라로 언급되기 보다는 종족이나 지역으로 언급되고 있다고 봐야 한다.

443) 짬빠에 있는 각가라 호수(Gaggarā pokkharaī)는 각가라라는 왕비의 명령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렇게 명명된다고 한다. 이 호수의 언덕에 짬빠까 숲이 있었으며 부처님께서 오시면 이곳에서 머무셨다고 한다.(MA.iii.1; DA.i.279) 각가라 호수는 제따 숲의 호수와 더불어 아름다운 호수로 주석서에 언급되고 있다.(SnA.i.17) 부처님께서 여러 번 머무신 곳으로 경들에 나타나며, 이곳에서 사리뿟따 존자는 『디가 니까야』 제3권의 마지막 경인 「십상경」(D34)을 비구들에게 설하였다.

444) 세존께 인사를 드리는 방법이 서로 다른 것으로 볼 때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사(Pessa hatthāroha-putta)는 분명 부처님을 따르는 재가자였고, 깐다라까 유행승(Kandaraka panbbājaka)은 비록 부처님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외도 수행승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445) “'모두 침묵하고 있는(tuhībhūta tuhībhūta)'이라고 하였다. 모든 비구들이 세존을 향한 존경심(gārava)과 자신들의 수행(sikkhita-sikkhatā)으로 인해 서로에게 말을 걸지도 않고 기침 소리조차 내지 않았다. 마치 안전하게서 있는 기둥처럼, 바람 없는 대해의 물처럼 몸도 움직임이 없었고 (niccalā) 마음도 흔들림이 없었다(avikkhittā). 마치 수미산을 둘러싸고 있는 붉은 구름처럼 그들은 부처님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이렇게 앉아있는 많은 대중을 보고 유행승에게 환희와 기쁨(pīti-somanassa)이 일어났다. 그것을 가슴에 담아둘 수 없어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습니다.'라는 이런 말을 했다.”(MA.iii.2)

이러한 침묵은 본서 제3권 「산다까 경」 (M76) 4 등에 나타나듯이 외도 유행승들이 27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담론)로 떠들썩한 것과 비교된다. 그래서 거기서 산다까 유행승은저 존자들은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길들여져 있고 조용함을 칭송합니다.”라고 말한다.

 

2. “고따마 존자시여, 비구 승가가 고따마 존자의 지도로 이렇게 바르게 도를 닦고 있다니 참으로 경이롭고 참으로 놀랍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 고따마 존자께서 비구 승가를 바르게 도닦음으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과거세에 아라한이셨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셨던 그분 세존들께서도 가장 최고로 바르게 비구 승가를 도닦음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지금 고따마 존자께서 비구 승가를 바르게 도닦음으로 인도하시는 것처럼, 미래세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실 그분 세존들께서도

가장 최고로 바르게 비구 승가를 도닦음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3. “그러하다, 깐다라까여. 그러하다, 깐다라까여.446)

깐다라까여, 지금 내가 비구 승가를 바르게 도닦음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과거세에 아라한이셨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셨던 그분 세존들께서도

가장 최고로 바르게 비구 승가를 도닦음으로 인도하셨다.

깐다라까여, 지금 내가 비구 승가를 바르게 도닦음으로 인도하는 것처럼,

미래세에 아라한이시고 바르게 완전히 깨달으실 그분 세존들께서도

가장 최고로 바르게 비구 승가를 도닦음으로 인도하실 것이다.

 

446) “세존께서 깐다라까 유행승이 한 말을 들으시고 '깐다라까여, 그대는 이 비구 승가가 고요하다고 말하지만 이 비구 승가가 고요한 그 이유를 모른다. 왜냐하면 그대는 바라밀(pārami)을 두루 완성하여 유익함의 뿌리를 성숙시켜 보리좌(bodhi-pallaka)에서 일체지를 통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바라밀을 완성하여 친지들의 이로움을 도모하는 행위(ñatattha-cariya)와 세상의 이로움을 도모하는 행위(lokattha-cariya)와 부처의 이로움을 도모하는 행위(buddhattha-cariya)를 무수히 실천한 뒤에 보리좌에서 일체지(sabbaññuta-ññāa)를 통찰했다. 그래서 내게는 이들이 왜 고요한지 그 이유가 분명히 드러난다.'라는 이러한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 이 가르침을 시작하셨다.” (MA.iii.4)

즉 유행승에게는 과거와 미래의 부처님들이 가진 일체지가 없었기 때문에 단지 비구 승가가 잘 훈련되고 길들여진 것을 보고 이런 감탄사를 쏟아낸 것이다.

 

깐다라까여, 이 비구 승가에는 번뇌가 다했고 삶을 완성했으며 할 바를 다 했고 짐을 내려놓았으며 참된 이상을 실현했고 삶의 족쇄를 끊었으며 바른 구경의 지혜로 해탈한 아라한들이 있다.

 

깐다라까여, 이 비구 승가에는 항상 계를 지니고 항상 수행하며 현명하고 슬기롭게

수행하는 유학(有學)이 있다.

그들은 네 가지 싸띠의 확립 [四念處]에 마음을 잘 확립하여 머문다.447) 무엇이 넷인가?

 

447) 주석서는 여기서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을 말씀하시는 것은 비구 승가가 고요한 이유(upasanta-kāraa)를 말씀하시기 위해서라고 설명하고 있다. (MA.iii.6)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cattāro satipaṭṭhāna]은 본서 제1권 「마음챙김의 확립 경」 (M10, 염처경)을 볼 것.

 

깐다라까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문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受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문다.”

 

4. 이렇게 말씀하시자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중생들을 청정하게 하고, 근심과 탄식을 다 건너게 하고,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을 사라지게 하고, 옳은 방법을 얻게 하고,

열반을 실현하게 하기 위해 네 가지 싸띠의 확립을 이렇게 잘 설해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흰옷을 입은 저희 재가자들도 때때로

이들 네 가지 싸띠의 확립에 마음을 잘 확립하여 머뭅니다. 448)

세존이시여, 여기 저희들도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뭅니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뭅니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고 근면하고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면서 머뭅니다.

 

448) “뻿사는 세존께비구 승가에게는 오직 이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이 경작(kasi)이고 씨앗(bīja)이고 쟁기(yuganagala)이고 보습(phālapācana)이어서 항상 마음챙김의 확립을 최고의 이상으로 여기지만(satipatthāa-parāyaa), 저희들도 때때로 기회를 내어 이것을 마음에 잡도리합니다. 저희들도 수행자(kārakā)입니다. 무작정 명상주제를 게을리 하지는(vissaṭṭha-kammaṭṭhāna) 않습니다.'라고 말씀드리고 있다.”(MA.iii.6)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간들이 이와 같이 뒤엉켜있고, 이와 같이 오염되고, 이와 같이 간교하지만449) 그 중생들에게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450)을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인간들은 참으로 뒤엉켜있지만 동물들은 다 드러나 있습니다.

 

449) “'인간들이 뒤엉켜있다(manussa-gahana).'는 것은 인간들은 욕심의 엉킴(ajjhāsaya-gahana)으로 뒤엉켜있고, 그 욕심도 그들의 오염원의 엉킴으로 엉켜있다는 말이고, 인간들이 '오염되어 있다(kasaatā)'는 것은 청정하지 못하다는 뜻(aparisuddhaṭṭha)이고, '간교하다(sāheyyatā).'는 것은 속인다는 뜻(kerāiyaṭṭha)이다.” (MA.iii.7)

450),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hita-ahita)'이란 유익한 도닦음(paipada) [즉 그들을 위한 유익한 수행 방법과 해로운 수행 방법]을 말한다.”(MA.iii.7)

ahañhi, bhante, pahomi hatthidamma sāretu.

세존이시여, 저는 코끼리 훈련을 잘 기억할 수 있습니다. <*sāretu : to make go/remember>

 

짬빠로 오가는 도중에 그 [코끼리]는 모든 사기와 속임수와 비뚤어짐과 기만을 다 드러냅니다.451)

세존이시여, 그렇지만 저희들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이나 일꾼들은

몸의 행동과 말이 서로 다르고 그들의 마음은 또 다릅니다.

 

451) “동물들은 그것을 다 드러내어 보여준다. 그들은 이만큼은 제외하고 이들을 조금만 보여줄 수 없다.” (MA.iii.7)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인간들이 이와 같이 뒤엉켜있고, 이와 같이 오염되고, 이와 같이 간교하지만

그 중생들에게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을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이 인간들은 참으로 뒤엉켜있지만 동물들은 다 드러나 있습니다.”

 

5. “참으로 그러하다, 뻿사여. 참으로 그러하다, 뻿사여.

뻿사여, 이 인간들은 참으로 뒤엉켜있지만 동물들은 다 드러나 있다.

 

뻿사여,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452) 무엇이 넷인가?

뻿사여, 여기 어떤 자는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 한다.

뻿사여, 여기 어떤 자는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한다.

뻿사여, 여기 어떤 자는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한다.

 

뻿사여, 여기 어떤 자는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으며,

지금 · 여기에서453) 갈애가 없고,454)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문다. 455)

 

452) “이것은 뻿사가 부처님께 '세존께서는 이렇게 뒤엉켜있는 인간들을 위한 유익한 도닦음과 유익하지 않은 도닦음을 아신다.'라고 언급한 것에 대한 결론적인 말씀이다. 처음 세 부류의 사람은 유익하지 않은 도닦음(ahita-paipada)을 실천했고 맨 나중의 부류는 유익한 도닦음(hita-paipada)을 실천 했다고 하시면서, 부처님은 이와 같이 중생들에게 유익한 수행 방법과 유익하지 않은 수행 방법을 안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또 이것은 앞서 까란다까가 '고따마 존자의 지도로 비구 승가가 이렇게 바르게 도를 닦는다.'라고 비구 승가를 찬탄한 것과도 관련된다. 세존께서는 그에게 자신이 승가를 훈련시키지 않는 처음 세 가지 수행 방법과, 또 자신과 과거의 부처님과 미래의 부처님이 승가를 훈련시키는 마지막 네 번째 수행 방법도 보여주신 것이다.” (MA.ii.9)

453) “'지금 · 여기에서(diṭṭheva dhamme)'라는 것은 '바로 이 자신의 에서(imasmi yeva atta-bhāve)라는 말이다.”(MA.iii.10)

454) '갈애가 없다'는 것은 nicchāta를 옮긴 것이다. chāta는 주로 '배고픈, 굶주린'의 뜻으로 사용되나 여기서는 갈애(tahā)를 의미한다고 주석서에서 설명하고 있어서(MA.ii.10) 이렇게 옮겼다.

455) “모든 오염원들(sabba-kilesā)이 적멸했기 때문에 '적멸하다(nibbuta).'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tāpana-kilesā)이 없기 때문에 청량함이 생겨서 '시원하다(sīti-bhūta).' 그는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한다(sukha-paisavedī)', '스스로 고결하게(brahmabhūtena attanā)'라는 것은 스스로 으뜸가는 존재로(seṭṭha-bhūtena attanā) 머문다는 말이다.” (MA.iii.10)

이 문장은 본서 확실한 가르침 경」 (M60) §35이하와 제3권 「고따무카 경」 (M94) §5에도 나타나고 『디가 니까야』제3권 「합송경」(D33) §1.11 (47)과 『앙굿따라 니까야』제2권 「자기학대 경」 (A4:198)에도 나타나고 있다.

 

뻿사여, 이들 네 부류의 사람들 가운데서 어떤 사람이 그대의 마음에 드는가?”

세존이시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은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도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도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 하는데 몰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뭅니다.

이 사람이 제 마음에 듭니다.”

 

6. “뻿사여, 그러면 왜 이 세 부류의 사람은 그대의 마음에 들지 않는가?”

세존이시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은

스스로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면서도 자신을 괴롭히고 학대합니다.

그러므로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데도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학대합니다.

그러므로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이 행복을 원하고 괴로움을 싫어하는데도

자신과 다른 사람을 괴롭히고 학대합니다.

그러므로 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 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뭅니다.

이 사람이 제 마음에 듭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제 물러가겠습니다. 저는 바쁘고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뺏사여, 지금이 적당한 시간이라면 그렇게 하라.”

그러자 코끼리 조련사의 후예인 뻿사는 세존의 설법을 기뻐하고 감사드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물러갔다.

 

7. 그러자 세존께서는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가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현명한 사람이다.

그들이여,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큰 통찰지를 가졌다.

비구들이여, 만일 내가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에게

이 네 가지 사람들을 상세하게 설명할 때까지 그가 잠시만 더 앉아있었더라면

그에게 크나큰 이익이 있었을 것이다.456)

그러나 코끼리 조련사의 아들 뻿사는 그 정도로도 크나큰 이익을 얻었다.”

 

456) “'크나큰 이익이 있었을 것이다(mahatā atthena sayutto agamissa).'라는 것은 예류과를 얻었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도와 과를 얻을 강하게 의지하는 조건(upanissaya)이 있고, 부처님 면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 [도와 과를 얻지 못할] 장애가 있을 수 있는가?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부처님 때문이 아니라그것을 생기게 할 적절한 노력을 하지 않거나(kiriya-parihāniyā) 2 나쁜 친구 때문(pāpa-mittatā)이다. ② 그것을 생기게 할 적절한 노력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했다. 법의 대장군(사리뿟따 존자)이 다난자니 바라문의 성향을 잘 알아 법을 설했더라면 다난자니 바라문은 예류자가 되었을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본서 제3권 「다난자니 경」 (M97) §38과 주해 참조)

나쁜 친구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아자따사뚜가 데와닷따의 말로 인해 아버지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사문과경」 (D2)의 법문이 있던 날 그는 예류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데와닷따의 말을 듣고 아버지를 시해하였기 때문에 얻지 못했다.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D2 §102 참조)

[본경의] 이 청신사(뻿사)도 그것을 생기게 할 적절한 노력을 하지 않았다. 법문이 끝나기 전에 자리를 떠나버렸기 때문이다.”(MA.iii.10~11)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네 부류의 사람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바로 그때입니다. 비구들은 세존으로부터 듣고 잘 호지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8. “비구들이여,457)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인가? 458)

 

457) 본경의 §§8~28은 『앙굿따라 니까야』제2권 「자기학대 경」 (A4:198) 전체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458) 이 고행(tāpa)의 정형구는 니까야의 여러 곳에 나타난다. 본서에는 M12 §45. M36 §5, M45 §5, M51 §8, M60 §36, M94 §10 등을 들 수 있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려고]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려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내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릇에서 떠주는 음식을 받지 않고, 항아리에서 퍼주는 것을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막대기를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절굿공이를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고 있을 때 받지 않고,

임신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남자에게 안겨 있는 여자에게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린 그 음식을 받지 않고, 개가 옆에서 보고 있을 때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날아다닐 때 받지 않고,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고,

곡 차, 과일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집만 가서 음식을 받고 한 입의 음식만 먹고,

두 집만 가서 음식을 받고 두 입의 음식만 먹고

일곱 집만 가서 음식을 받고 일 곱 입의 음식만 먹고,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 틀에 한 번만이런 식으로 보름에 한 번만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는 채소를 먹고, 수수, 니바라 쌀, 가죽 부스러기, 수초, 왕겨, 뜨물, 깻가루, , 소똥을 먹었으며,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사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매 헝겁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 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고, 인간의 머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동물의 꼬리 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는다.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하여 머리털과 수염을 뽑아버리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으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두하여 쪼그리고 앉고, 가시로 된 침상에 머물고,

가시로 된 침상에서 잠자며, 저녁까지 하루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수행에 몰두하며 지낸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459)

 

459) 이 여러 가지 고행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사자후의 긴 경」 (M12) §§45 ~ 56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할 것.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을 도살하거나, 돼지를 도살하거나, 새를 잡거나, 사슴을 잡거나, 사냥꾼, 어부, 도둑, 사형 집행인, 옥사쟁이이거나 혹은 다른 잔인한 일을 하는 자들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관정(灌頂)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력을 가진 바라문이다.

그는 도시의 동쪽에 새로운 사당을 짓게 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거친 사슴 가죽을 입고 버터와 기름을 몸에 바르고 사슴뿔로 등을 긁고

그의 왕비와 왕실의 바라문 제관과 함께 사당으로 들어간다.

그는 거기서 맨땅에 짚을 깔고 앉는다.

같은 색깔의 송아지를 가진 한 마리 어미 소가 있어

그의 첫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이 먹는다.

두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비가 먹고,

세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을 왕실의 바라문 제관이 먹고,

네 번째 젖꼭지에서 생긴 젖은 불에 헌식한다. 나머지는 송아지가 먹는다. 460)

이것은 제사를 지내는 하나의 절차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만큼의 황소들을 잡아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만큼의 소들을 잡아라.

제사를 지내기 위 해 이만큼의 새끼 낳지 않은 암소들을 잡아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만큼의 염소들을 잡아라.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만큼의 양들을 잡아라.

제사 기둥을 만들기 위해 이만큼의 나무를 베어라.461)

제사 풀 로 쓰기 위해 이만큼의 다르바 풀462)을 베어라.'라고,

그러면 그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은 형벌에 떨고 두려움에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러한 여러] 비를 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데 몰두 하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461) 인도의 공공제사(Sk. śrauta-yajñā)는 동물희생이 기본이다. 한 제사에는 보통 8마리나 12마리 이상의 동물희생을 한다. 바라문교의 제의서들에 의하면 수백 마리의 동물을 희생하는 제사도 많다고 한다. 이 동물들을 그냥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각각 다른 제사 기둥(yūpa)에 묶어서 거행한다. 그래서 백 마리의 동물을 희생한다면 백 개의 제사 기둥이 필요하다. 제사 기둥에 사용될 나무는 엄격한 절차를 거쳐서 그 산에서 제일 좋은 나무들로 만든다. 그러므로 제사는 동물만 죽이는 것이 아니라 많은 나무를 자르게 된다. 그래서 불교와 자이나교에서는동물을 죽이고 나무를 잘라 천상에 가면 지옥에 갈 자 누가 있겠는가?”라고 강한 비판을 한다. 제사에 대해서는 『디가 니까야』제1권 「꾸따단따 경」(D5) §1의 주해를 참조할 것.

462) '다르바 풀'로 옮긴 원어는 dabbhā이며 산스끄리뜨 darbha이다. 이 풀은 꾸사(kusa) 풀이라고도 불리는데 제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풀이다. 꾸사 풀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사자후의 긴 경」 (M12) §45의 주해를 참조할 것.

 

11.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인가?”

 

12. “비구들이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463)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며,

명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상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이며, 세존(世尊)이시다.

 

463) 이하 본경의 §§12~27은 본서 제1권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M27) §§11~26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23 4선의 구족까지는 본서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31~ 40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13.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14.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그것과 더불어 생활한다.

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양심적이고 동정심이 있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준 것 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머문다.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으며, 도덕적이고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윈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그는 중상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의고,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고

저기서 듣고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는 욕설을 버리고 욕설을 멀리 여의고,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의고,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하고,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한다.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읜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여의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읜다.

, 노래, 연주,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화환을 두르고 향과 화장품을 바르고 장신구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읜다.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읜다.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염소 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코끼리, , ,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읜다.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읜다.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상해, 살해,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멀리 여읜다.”

 

15. “그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資具)를 몸에 지니고 간다.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 날개를 짐으로 하여 날아가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 의 자구를 몸에 지니고 간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을 경험한다.”

 

16. “그는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 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로 소리를 들음에로 냄새를 맡음에로 맛을 봄에으로 감촉을 느낌에마노[]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17. “그는 나아갈 때도 돌아올 때도 [자신의 거동을] 반야로 보여지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법의(法衣) · 발우 · 의복을 지닐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갈 때도 서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18.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 한다.”

 

19.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얼굴주위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물고,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고,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 없이 머물고,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正念·正知, (sampajāna)]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물고,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 을 극복하여 머물고,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20.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1.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아니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2.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 [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3(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3.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捨念淸淨] 4(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4.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해낸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 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宿命通 숙명통].”

 

2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 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 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天眼通 천안통].”

 

26.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漏盡通 누진통].”

 

27.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그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 이 해탈한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28.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데 몰두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禪과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깐다라까 경(M51)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