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네 가지 법의 실천341)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지금은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342) 법의 실천이 있다.
비구들이여, 지금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 있다.
비구들이여, 지금은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 있다.
비구들이여, 지금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 있다.”
341) 여기서 '실천'은 samādāna를 옮긴 것인데 받아 지님으로 직역할 수 있다.
아래 복주서의 설명을 참조해서 실천으로 옮겼다.
“여기서 '법의 실천(dhamma-samādānāni)'이란 법을 이해하고 섭수하는 것(gahita-gahaṇāni)이다.”(MA.ii.371)
“법을 이해하고 섭수하는 것으로 실천(cariyā)을 뜻한다.”(MAȚ.ii.269)
342) “즉 업을 쌓는 순간에는 즐거워서(āyūhana-kkhaṇe sukha) 하기가 쉽고 즐겁게 완성할 수 있지만 미래에 과보를 받을 때에는(vipāka-kāle) 괴로운 과보(dukkha-vipāka)를 받는다는 말이다.” (MA.ii.371)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은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인가?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감각적 욕망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는 주장과 견해를 가졌다.
그들은 감각적 욕망에 흠뻑 취해버린다. 그들은 상투를 튼 여자 유행승들과 함께 다닌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 훌륭한 사문 · 바라문들은 감각적 욕망에서 어떠한 미래의 두려움을 보기에
감각적 욕망을 버리라고 하고,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안다고 선언하는가?
이 여자 유행승들의 연약하고 부드럽고 포근한 팔의 감촉은 정말 좋구나.'라고,
그들은 감각적 욕망에 흠뻑 취해버린다.
그들은 감각적 욕망에 흠 뻑 취해 [살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느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을 버리라고 하고,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안다.'고 선언하는,
그들 훌륭한 사문 · 바라문들이 감각적 욕망에서 본 미래의 두려움이구나.
우리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한
이런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느낀다.'라고.”
4.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여름의 마지막 달에 말루와 넝쿨의 꼬투리가 터져
그 말루와 넝쿨의 씨앗이 어떤 살라 나무 아래 떨어진다고 하자.
비구들이여, 그때 그 살라 나무에 사는 신이 두려워하고 떨고 놀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살라 나무에 사는 신의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 정원의 신들,
숲의 신들, 나무의 신들, 약초와 잔디와 교목에 사는 신들이 함께 모여와서
이와 같이 그를 안심시킬 것이다.
'존자여, 두려워 마시오. 두려워 마시오.
아마도 이 말루와 넝쿨의 씨앗을 공작이 삼키거나 동물이 먹거나 산불이 태우거나
나무꾼이 가져가거나 개미가 갉아먹거나 혹은 싹을 틔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비구들이여, 그러나 그 말루와 넝쿨의 씨앗을 공작이 삼키지도 않고 동물이 먹지도 않고
산불이 태우지도 않고 나무꾼이 가져가지도 않고 개미가 갉아먹지도 않고 싹을 틔울 것이다.
그것은 비구름이 동반한 비를 맞아 잘 자라게 될 것이다.
연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고 늘어진 그 말루와 넝쿨은 그 살라 나무를 잘 감아줄 것이다.
그러면 그 살라 나무에 사는 신은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참으로 나의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 정원의 신들, 숲의 신들, 나무의 신들,
약초와 잔디와 교목에 사는 신들은 말루와 씨앗에서
어떠한 미래의 두려움을 보았기에 함께 모여 와서 이와 같이 나를 안심 시켰는가?
‘존자여, 두려워 마시오. 두려워 마시오.
아마도 이 말루와 넝쿨의 씨앗을 공작이 삼키거나 동물이 먹거나 산불이 태우거나
나무꾼이 가져가거나 개미가 갉아먹거나 혹은 싹을 틔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라고,
연하고 부드럽고 포근하고 늘어진 말루와 넝쿨의 감은 참으로 좋구나.'라고,
이제 그 넝쿨은 그 살라 나무를 완전히 감싸버릴 것이다.
그 살라 나무를 완전히 감싸고는 위로 차양을 친 것처럼 덮고 다시 아래로 늘어뜨려
그 살라 나무의 크디큰 가지를 부수어 버릴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그 살라 나무에 사는 신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이 참으로 나의 친구와 동료와 친지와 친척, 정원의 신들, 숲 의 시들 나무의 신들,
약초와 잔디와 교목에 사는 신들이 말루와 씨앗에서 본 미래의 두려움이구나.
그들은 함께 모여 와서 이와 같이 나를 안심시켰다.
'존자여, 두려워 마시오. 두려워 마시오.
아마도 이 말루와 넝쿨의 씨앗을 공작이 삼키거나 동물이 먹거나 산불이 태우거나
나무꾼이 가져가거나 개미가 갉아먹거나 혹은 싹을 틔우지 못할지도 모릅니다.'라고,
이제 나는 말루와 씨앗으로 인해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느낀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감각적 욕망에 아무런 잘못이 없다.'라는 주장과 견해를 가졌다.
그들은 감각적 욕망에 흠뻑 취해버린다. 그들은 상투를 튼 여자 유행승들과 함께 다닌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들 훌륭한 사문 · 바라문들은 감각적 욕망에서 어떠한 미래의 두려움을 보기에
감각적 욕망을 버리라고 하고,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안다고 선언하는가?
이 여자 유행승들의 연약하고 부드럽고 포근한 팔의 감촉은 정말 좋구나.'라고,
그들은 감각적 욕망에 흠뻑 취해버린다.
그들은 감각적 욕망에 흠뻑 취해 [살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그들은 그곳에서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느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것이 감각적 욕망을 버리라고 하고, 감각적 욕망을 철저히 안다.'고 선언하는,
그들 훌륭한 사문 · 바라문들이 감각적 욕망에서 본 미래의 두려움이구나.
우리는 감각적 욕망을 원인으로 하고 감각적 욕망을 근원으로 한
이런 고통스럽고 극심하고 사무치고 혹독한 느낌을 느낀다.'라고.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금은 즐겁지만 미래에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나체 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려고]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려고]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내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고, 그릇에서 떠주는 음식을 받지 않고, 항아리에서 퍼주는 것을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막대기를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고,
절굿공이를 넘어와서 주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고 있을 때 받지 않고,
임신부에게 받지 않고, 젖먹이는 여자에게 받지 않고, 남자에게 안겨 있는 여자에게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린 그 음식을 받지 않고, 개가 옆에서 보고 있을 때 받지 않고, 파리 떼가 날아다닐 때 받지 않고,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고,
곡 차, 과일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는다.
그는 한 집만 가서 음식을 받고 한 입의 음식만 먹고,
두 집만 가서 음식을 받고 두 입의 음식만 먹고 …
일곱 집만 가서 음식을 받고 일 곱 입의 음식만 먹고,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 이런 식으로 보름에 한 번만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는 채소를 먹고, 수수, 니바라 쌀, 가죽 부스러기, 수초 왕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었으며, 나무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하여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다.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풀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 조각으로 만든 옷을 입고, 인간의 머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동물의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두르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는다.
머리털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하여 머리털과 수염을 뽑아버리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 있으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두하여 쪼그리고 앉고,
가시로 된 침상에 머물고, 가시로 된 침상에서 잠자며,
저녁까지 하루 세 번 물에 들어가는 수행에 몰두하며 지낸다.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데 몰두하며 지낸다. 343)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 불행한 곳,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343) 이것은 그때 당시 인도에서 널리 행해지던 고행으로, 본서 제1권 「사자후의 긴 경」 (M12) §45에서는 부처님도 성도하시기 전에 이 고행을 하셨다고 기술하고 있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금도 괴롭고 미래에도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라 한다.”
6.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은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탐욕이 강하여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한다.344)
선천적으로 성냄이 강하여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한다.
선천적으로 어리석음이 강하여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한다.
그가 비록 괴롭고 정신적 고통이 있고 얼굴이 눈물로 범벅이 되어 울지만
완전하고 청정한 범행을 닦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금은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라 한다."
344)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한다(rāgajaṃ dukkhaṃ domanassaṃ paṭisaṃvedeti)'는 것은 선천적으로 탐욕이 강하기 때문에(tibba-rāga-jātikattā) 대상이 보이는 족족 그 대상에서 표상(nimitta)을 취한다. 그리하여 스승이나 은사(ācariy-upajjhāyā)에게 벌(daṇḍa-kamma)을 받는다. 그가 항상 벌을 받을 때 괴로움과 정신적인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것을 고치지 않는다.” (MA.ii.373)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금은 괴롭지만 미래에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라 한다.”
7.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지금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탐욕이 강하지 않아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성냄이 강하지 않아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어리석음이 강하지 않아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항상 경험하지 않는다.
그는 오직 감각적 욕망들을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지금도 즐겁고 미래에도 즐거운 과보를 가져오는 법의 실천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가지 법의 실천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법 실천의 짧은 경(M45)이 끝났다.
A4:163
도닦음도 어렵고 최상의 지혜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최상의 지혜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이다.
A4:169
2.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온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의 인식이 잘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힘, 양심의 힘, 수치심의 힘, 정진의 힘,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힘을 의지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사띠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으로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4.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에 드는 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제2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사띠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지금여기에서
정력적인 노력 없이 완전한 열반을 증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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