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니까야 1권(각묵스님, 2006년) p.563
서언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살라와띠까에 도착하셨다. 그 무렵에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었는데, 그 곳은 사람들로 붐비고 풀, 나무, 물, 곡식이 풍부하였으며, 꼬살라의 빠세나디 왕이 왕의 하사품이자 거룩한 마음의 표시로 그에게 영지(領地)로 준 곳이었다.
로힛짜의 삿된 견해
2. 그 무렵에 로힛짜 바라문에게 다음과 같은 삿된 견해가 일어났다.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유익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유익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3. 로힛짜 바라문은 들었다, “존자들이여, 사문 고따마는 사꺄의 후예인데 사꺄 가문으로부터 출가하여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다가 살라와띠까에 도착하셨습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에게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정편각(正遍覺)이시며, 삼명(三明)을 갖추시고 실천을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선서(善逝)이시며, 세상을 다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님이시며, 부처님[佛]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님[世尊]이시다.’라고. 그분은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냅니다. 그분은 법을 설합니다. 그분은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냅니다. 그러니 그런 아라한을 뵙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입니다.”라고.
4. 그러자 로힛짜 바라문은 이발사 베시까를 불러서 말하였다. “이리 오라, 착한 베시까여. 그대는 사문 고따마께 가라. 가서 내 이름으로 ‘고따마 존지시여, 로힛짜 바라문은 고따마 존자께서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라고 사문 고따마 존자께서 병이 없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려라. 그리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비구 승가와 더불어 내일 로힛짜 바라문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려라.”
5.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이발사 베시까는 로힛짜 바라문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로힛짜 바라문이 세존의 발에 머리를 조아려 절을 드리고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비구 승가와 더불어 내일 로힛짜 바라문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립니다.” 세존께서는 침묵으로 허락하셨다.
6. 그러자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서 허락하신 것을 알고서 자리에서 일어나 세존께 절을 올리고 오른쪽으로 [세 번] 돌아 [경의를 표한] 뒤 물러나 로힛짜 바라문에게 갔다. 가서는 로힛짜 바라문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의 이름으로 저는 그분 세존께 ‘세존이시여, 로힛짜 바라문은 세존께서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더불어 내일 로힛짜 바라문의 공양을 허락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고 세존께서는 허락하셨습니다.”
7. 그러자 로힛짜 바라문은 그 밤이 지나자 자신의 집에서 맛있는 여러 음식을 준비하게 한 뒤 이발사 베시까를 불러서 말하였다. “이리 오라, 착한 베시까여, 너는 사문 고따마께 가라. 가서는 사문 고따마께 ‘고따마 존지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라고 시간을 알려드려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존지시여.”라고 이발사 베시까는 로힛짜 바라문에게 대답한 뒤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게 절을 올린 뒤 한 곁에 섰다. 한 곁에 서서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가실] 시간이 되었습니다. 음식이 준비되었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비구 승가와 함께 살라와띠까로 가셨다.
8. 그때에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의 뒤를 바싹 따라오고 있었다. 이발사 베시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로힛짜 바라문에게는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유익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유익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이러한 삿된 견해가 일어났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로힛짜 바라문이 이러한 삿된 견해로부터 벗어나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잘 알았느니라, 베시까여. 잘 알았느니라, 베시까여.”
비유로 삿된 견해를 나무라심
9. 세존께서는 로힛짜 바라문의 집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비구 승가와 함께 지정된 자리에 앉으셨다. 그러자 로힛짜 바라문은 부처님을 상수로 하는 비구 승가에게 맛있는 여러 음식을 자기 손으로 직접 대접하고 드시게 했다. 그때 세존께서 공양을 마치시고 그릇에서 손을 떼시자 로힛짜 바라문은 어떤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로힛짜 바라문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로힛짜여, 그대에게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유익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유익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는 이러한 삿된 견해가 일어난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0. “로힛짜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누가 말하기를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다. 살라와띠까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로힛짜 바라문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그대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인가, 주지 않는 자인가?” “장애를 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자애로운 마음을 확립하겠는가, 아니면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겠는가?”
“적대적인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된다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겠는가, 바른 견해이겠는가?”
“삿된 견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行處]만이 있다고 나는 말하나니,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니라.”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누가 말하기를 ‘빠세나디 꼬살라 왕은 까시꼬살라에 정착해 있다. 까시꼬살라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빠세나디 꼬살라 왕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빠세나디 꼬살라 왕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인가, 주지 않는 자인가?”
“장애를 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이익을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인가?”
“손해를 바라는 자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자애로운 마음을 확립하겠는가, 아니면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겠는가?”
“적대적인 마음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된다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겠는가, 바른 견해이겠는가?”
“삿된 견해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만이 있다고 나는 말하나니,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니라.”
12. “로힛짜여, 이처럼 ‘로힛짜 바라문은 살라와띠까에 정착해 있다. 살라와띠까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로힛짜 바라문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그대를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이고,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니라.”
13.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유익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유익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하는 자는 [다음 두 가지에] 장애를 주는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을 전승하여 선남자들이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여 예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일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불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아라한됨을 실현하기도 하는 이러한 것에 장애를 준다. 그리고 천상의 존재들에 태어나기 위해서 천상의 모태에 대한 과보를 닦는 자들에게도 장애를 준다.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니라.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만 있다고 나는 말하나니,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니라.”
14. “로힛짜여, 이처럼 ‘빠세나디 꼬살라왕은 까시꼬살라에 정착해 있다. 까시꼬살라에서 생산되는 것은 모두 그 빠세나디 꼬살라왕이 혼자서 다 누린다. 그는 남들에게 하나도 주지 않는다.’라고 한다면 그렇게 말하는 자는 빠세나디 꼬살라왕을 의지해서 살아가는 자들에게 장애를 주는 자이고,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니라.”
15.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여기서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 유익한 법을 증득했다 할지라도 유익한 법을 증득한 뒤 남에게 전해 주어서는 안 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남에게 전하는] 이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라고 말하는 자는 [다음 두 가지에] 장애를 주는 자이다.
이렇게 말하는 자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을 전승하여 선남자들이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여 예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일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불환과를 실현하기도 하고 아라한됨을 실현하기도 하는 이러한 것에 장애를 준다. 그리고 천상의 존재들에 태어나기 위해서 천상의 모태에 대한 과보를 닦는 자들에게도 장애를 준다.
장애를 주는 자는 그들의 손해를 바라는 자이고, 손해를 바라는 자는 그들에 대해서 적대적인 마음을 확립하며, 적대적인 마음이 확립되면 그것은 삿된 견해이니라. 로힛짜여, 삿된 견해를 가진 자에게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의 태어날 곳만 있다고 나는 말하나니, 그것은 지옥이거나 축생의 모태이니라.”
세 가지 질책 받아 마땅한 스승
16. “로힛짜여, 물론 세상에는 질책 받을 만한 세 종류의 스승이 있다. 이러한 스승들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어떤 것이 셋인가?”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 받아 마땅하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 이런 그대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이는 마치 떠나는 여인에게 매달리는 것과 같고 얼굴을 돌리는 여인을 안으려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이것은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로힛짜여, 이것이 첫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 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17. “다시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한다.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 받아 마땅하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아직 성취하지 못했다. 이런 그대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하지 못했으면서도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한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지 않는다. 이는 마치 자신의 밭을 버리고 남의 밭에 김을 매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로힛짜여, 이것이 두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 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18. “다시 로힛짜여, 여기 어떤 스승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다. 이런 그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 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그런 스승은 이와 같이 질책 받아 마땅하다. ‘존자가 집을 나와 출가한 바로 그 출가생활의 목적을 그대는 성취하였다. 이런 그대는 출가생활의 목적을 성취한 뒤 ‘이것은 그대들의 이익을 위해서이고 이것은 그대들의 행복을 위해서이다.’라고 제자들에게 법을 설한다. 그러나 그대의 제자들은 들으려 하지 않고 귀 기울이지 않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스승의 교법으로부터 벗어나 버린다. 이는 마치 이전의 속박을 자른 뒤 다른 새로운 속박을 만드는 것과 같다. 그와 마찬가지로 이것도 사악하고 탐욕스런 법이 되고 만다고 나는 말한다. 참으로 남이 남에게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로힛짜여, 이것이 세 번째 스승이다. 이러한 스승은 세상에서 질책 받아 마땅하며,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더라도 그 질책은 사실이고 옳고 법다워서 비난받지 않는다.”
질책 받지 않아야 할 스승
19.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로힛짜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세상에서 질책 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 있습니까?”
“로힛짜여, 세상에서 질책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 있느니라.”
20.∼53.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세상에서 질책 받지 않아야 할 스승입니까?”
“(1)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 그는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낸다.
(2)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서 태어난 자가 듣는다. …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3)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
(4) <짧은 길이의 계 -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5) <중간 길이의 계 -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6) <긴 길이의 계 -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7)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8)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
(9) 비구는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을 잘 갖춘다.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걸으면서∙서면서∙앉으면서∙잠들면서∙잠을 깨면서∙ 말하면서∙침묵하면서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을 잘 갖춘다.
(10) 비구는 [얻은 필수품만으로] 만족한다. …
(11)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 해태와 혼침을 버려 …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그와 같이 비구는 자기 마음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54. “로힛짜여, 그와 같이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환희가 생겨난다. 환희로운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사마디에 든다. 그는 오직 감각적 욕망들을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고,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림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55. “로힛짜여, 예를 들면 솜씨 좋은 때밀이나 그의 조수가 금속 대야에 목욕가루를 가득 담아 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가며 계속 이기면 그 목욕가루덩이 [반죽]에 물기가 젖어들고 스며들어 물기가 안팎으로 흠뻑 스며들 뿐, 그 덩이가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다. 로힛짜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나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 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56.∼61. “로힛짜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3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제4선을 구족하여 머문다. …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나니 이런 사람은 세상에서 질책 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62. ∼77.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1)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2)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3) 신통변화[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4)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 天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5)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6)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7)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8)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
로힛짜여, 제자는 스승에게서 이러한 형태의 크나큰 탁월함을 증득하나니 이런 사람도 세상에서 질책 받지 않아야 할 스승이다. 그리고 이러한 스승을 질책하게 되면 그 질책은 사실이 아니고 옳지 않고 법답지 않아서 비난받게 된다.”
로힛짜의 귀의
78. 이렇게 말씀하시자 로힛짜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어떤 사람이 나락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사람을 머리채를 쥐고 끌어올려서 땅바닥에 내려놓는 것과 같이 고따마 존자께서는 나락의 골짜기로 떨어지는 저를 끌어올려서 땅바닥에 내려놓으셨습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 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물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
로힛짜 경이 끝났다.
'빠알리어 경전 > 디가 니까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D14. 대전기경(大傳記經, Mahapadana sutta) (0) | 2023.05.18 |
---|---|
D13. 삼명경 (三明經, Tevijja Sutta) (0) | 2023.05.18 |
D11. 께왓따 경 (진정한 신통, Kevaddha Sutta) (0) | 2023.05.18 |
D10. 수바경 (Subha sutta) (0) | 2023.05.18 |
D9. 뽓타빠다 경 (Potthapāda Sutta) (1) | 2023.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