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쌍윳따 니까야

S5:1-S5:10. 제5상윳따 - 비구니 상윳따(Bhikkhuni Samyutta)

Daisy청량심 2023. 5. 25. 08:25

-            알라위까 경

-            소마 경

-            고따미 경

-            위자야 경

-            웁빨라완나 경

-            짤라 경

-            우빠짤라 경

-            시수빠짤라 경

-            셀라 경

-            와지라 경

 

 

알라위까 경(S5:1) Āavikā-sutta

 

1. 이와 같이 [128]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의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알라위까 비구니524)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525)으로 갔다.

 

524) 『장로니게』(Thig)에는 알라위까 비구니avikā bhikkhunī)가 지은 게송이 나타나지 않는다그러나 본경 {519}는 셀라 비구니(Selā bhikkhunī)가 지은 『장로니게』(Thig.129) {57}과 같고, {521}은『장로니게』{58}과 같다『장로니게 주석서』(ThigA.62)에 의하면 알라위까 비구니와 셀라 비구니는 같은 사람이다셀라는 알라위까 왕의 딸avikassa rañño dhītā)이었기 때문에 알라위까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DPPN S. v. Selā도 동일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알라위avī)에 대해서는 본서 제2 「외동아들 경」(S17:23) §3의 주해를 참조할 것.

525) '장님들의 숲' Andha-vana를 옮긴 것이다이 숲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본서 제3 「떨쳐버렸음 경」 (S28:1)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세상에는 벗어남이란 없는데

한거가 무슨 소용이랴?

감각적 욕망의 기쁨 즐기라.

나중에 후회하지 말라.” {519}

 

4. 그러자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알라위까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알라위까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세상에는 벗어남이 있나니

나는 통찰지로 거기에 닿았노라.

방일함의 친척 빠삐만이여,

그대는 그 경지를 알지 못하도다.526) {520}

 

526) '벗어남(nissaraa)'이란 열반이고, '통찰지(paññā)'반조의 지혜(pacca-vekkhaa-ñāa)이다. (SA.i.189)

'이러한 도와 과의 지혜(magga-phala-ñāa) 이외에 다른 것은 말해서무엇 하겠는가?'라는 뜻으로 [마라에게 읊은것이다.(SAȚ.i.195)

 {520}은『장로니게』 (Thig)에는 나타나지 않고 있다.

 

감각적 욕망들은 칼과 쇠살과 같고

오온은 이들의527) 자르는 받침대이니

그대가 감각적 욕망의 기쁨이라 부르는 것

나에게는 결코 기쁨이 아니로다.” {521} [129]

 

527) '오온은 이들의'로 옮긴 원어는 khandhāsa인데 khandhā(오온) esa(=imesa, 이들의, PED s. v. aya 참조)으로 나누어 읽어야 한다. 주석서는 khandhā tesa(그들의)으로 설명하고 있다.(SA.i.189)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알라위까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소마 경(S5:2) Somā-sutta

 

2. 그때 소마 비구니528)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528) 본경에 해당하는 주석서와 복주서는 소마 비구니(Somā bhikkhunī)가 누구인지 설명을 하지 않는다그녀의 게송이 『장로니게』(Thig.129) {60~62}로 나타난다『장로니게 주석서』에 의하면 그녀는 빔비사라 왕의 궁중제관(purohita)의 딸로 태어났다세존께서 라자가하를 방문하셨을 때 찾아뵙고 재가신도가 되었으며 나중에 출가하여 무애해(paisambhidā)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고 한다.(Thig.66)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소마 비구니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 내팽개치게 하려고 소마 비구니에게 다가갔다가서는 소마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선인들이 도달한 경지는

성취하기가 참으로 어려우니

여인의 두 손가락만큼의 통찰지로는

도저히 그것을 얻을 수 없도다. 529) {522}

 

529) '경지(hāna)'란 아라한과이다. '두 손가락만큼의 통찰지(dvagula-paññā)'란 제한된 통찰지(paritta-paññā)이다혹은 [여자들은손가락 두 개로 솜뭉치 (kappāsa-vaṭṭi)를 잡고 거기서 실(sutta)을 뽑아내기(kantanti) 때문에 여인을 두 손가락만큼의 통찰지를 가진 자라 부른다.(SA.i.189 - 190)

한편 복주서와 『장로니게 주석서』 (ThigA.65)는 다르게 설명하고 있다.

일곱 살 때부터 여자들은 솥으로부터 쌀[]을 끄집어내어 손가락 두 개로 눌러서 밥이 되었는가를 살핀다그래서 그들은 두 손가락만큼의 통찰지를 가졌다고 일컬어진다.(SAȚ.i.196)

 

4. 그러자 소마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소마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소마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마음이 잘 삼매에 들고

지혜가 이미 현전하고

바르게 법을 꿰뚫어 보는데.

여자의 존재가 도대체 무슨 문제랴. 530) {523}

 

530) '지혜가 이미 현전하고(ñāamhi vattamānamhi)'란 과의 증득의 지혜(phala-samapatti-ñāa)가 존재한다는 뜻이다. '바르게 법을 꿰뚫어 보는데(sammā dhamma vipassato)'란 사성제의 법을 바르게 꿰뚫어 본다는 뜻이다혹은 그 이전의 단계(pubba-bhāga)에서 위빳사나의 대상이 되는(ārammaa-bhūta) 오온(khandha-pañcaka)을 그렇게 한다는 말이다.(SA.i.190)

과의 증득의 지혜를 언급함에 의해서 주석가는 그녀가 사성제에 대해서 미혹하지 않고 머묾(asammoha-vihāra)을 보여주고 있다. '깊이 꿰뚫어 보는(vipassanta)'이라고 했다이것은 미혹하지 않고 꿰뚫기(asammoha paivedha) 이전의 단계에서즉 사성제를 관통(sacca-abhisamaya)하기 이전의 단계에서 오온을 특별하게 꿰뚫어 보기(visesena passanta) 때문에 이렇게 말한 것이다.(SAȚ.1.196)

과의 증득의 지혜란 아라한과를 증득할 때 생기는 지혜로 이 지혜가 생겼다는 것은 이미 아라한이 되었다는 말이다소마 장로니는 이미 아라한이기 때문이다주석가와 복주서의 저자는 아라한이 되기 위해서는 사성제를 관통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으며사성제를 관통하기 위해서는 먼저 오온에 대한 위빳사나(특별하게 꿰뚫어봄)를 통해서 무상 · · 무아를 통찰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이렇게 함으로 해서 염오-이욕-소멸이 성취되는 것이다주석서는 여기서 염오는 강한 위빳사나이고 이욕(탐욕의 빛바램)은 도이며 소멸은 아라한과라고 설명하고 있다이것은 초기불전의 전반에서 특히 본서 제3 「무더기 상윳따」(S22)에서 강조되고 있는 가르침이다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3권「무상 경」(S22:12) §3 「아누라다 경」(S22:86) §16등의 주체들을 참조할 것.

 

만일 어떤 사람에게

'나는 여자'라거나 '나는 남자'라거나

'나는 무엇'이라는 것이 아직 남아 있다면

전적으로 그것은 마라에게나 어울리도다. 531) {524}

 

531) 주석서는 갈애와 자만과 사견(tahā-māna-diṭṭhi)을 통해서 이런 생각을 가지면 그렇다고 설명하고 있다.(SA.i.190)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소마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고따미 경(S5:3) Gotami-sutta

 

2. 그때 끼사고따미 비구니532)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130]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532) 끼사고따미 비구니(Kisāgotamī bhikkhunī)는 사왓티의 가난한 집안 출신이다그녀는 아주 말랐기(kisa) 때문에 끼사(Kisā)라 불리었고 고따미는 이름이었다그녀는 부잣집에 시집가서 구박을 받았지만 사내아이를 낳자 대접을 받았다그러나 막 걸을만했을 때 아이는 죽어버렸다그녀는 죽은 아이를 허리에 끼고 거의 미쳐서 아들을 살리려 이리저리 뛰어다녔다그녀를 불쌍히 여긴 사람들이 세존께로 보내었고 세존께서는 아직 사람이 죽은 적이 없는 집안에서 겨자씨를 구해 오면 아들을 살려주겠노라고 하셨다그녀는 하루 종일 그런 겨자씨를 구하러 다녔지만 헛수고였다.

그녀는 마침내 죽음은 필연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아이를 공동묘지에 내려놓고 세존께 와서 출가하도록 허락해달라고 하였다그때 그녀는 예류과를 얻었다출가한 뒤 어느 날 그녀가 깊이 위빳사나를 닦고 있는데 세존께서 광휘로운 모습으로 오셔서 설법하셨고 그래서 아라한이 되었다그 후 그녀는 항상 남루한 옷만을 입고(lūkha-cīvara-dhara) 다녔다고 한다그래서『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5-12)에서 부처님께서는 끼사고따미 비구니를 남루한 옷을 입는 자(lūkha-cīvara-dhar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칭송하셨다.

『법구경 주석서』(DhpA.ii.270~275)에 그녀에 대한 행장이 상세하게 나타난다한편 본경의 게송은 『장로니게』(Thig) {213~223}의 그녀의 게송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끼사고따미 비구니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끼사고따미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끼사고따미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아들 잃고 눈물 가득한 얼굴로

왜 그대 홀로 앉아있는가?

숲속 깊숙이 혼자 들어와서는

그대 남정네를 찾고 있는가?{525}

 

4. 그러자 끼사고따미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끼사고따미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끼사고따미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이전에 아들이 죽은 것으로

남자를 찾는 일도 이미 끝났네.

도반이여슬퍼하지도 울지도 않는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도 않도다. {526}

 

모든 곳에서 즐기는 것 파괴되었고

어둠의 무더기는 흩어졌으나 533)

죽음의 군대를 철저하게 정복하여

이제는 번뇌 없이 편안하게 머무노라. {527}

 

533) '모든 곳에서 즐기는 것은 파괴되었고(sabbattha vihatā nandi)'라는 것은 모든 곳에서 무더기[]와 감각장소[]와 요소[]와 존재[]와 모태와 태어날 곳[行處]과 머묾과 거주처(khandha-āyatana-dhātu-bhava-yoni-gati-hiti-nivāsa)에 대한 나의 갈애를 통한 즐김(tahā-nandi)은 파괴되었다는 뜻이다. '어둠의 무더기(tamo-kkhandha)'는 무명의 무더기(avijjā-kkhandha)이다. '흩어진(padālita)'이란 지혜(ñāa)로 부서진(bhinna)이란 말이다.(SA.i.191)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끼사고따미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위자야 경(S5:4) Gotamī Vijayā-sutta

 

2. 그때 위자야 비구니534)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534)『장로니게 주석서』(ThigA.156)에 의하면 위자야 비구니(Vijayā bhikkhunī)는 재가에 있었을 때 케마 비구니와 친구였다고 한다케마 비구니는 재가에 있을 때 빔비사라 왕의 첫째 왕비였다케마 비구니가 출가하자 그녀는 케마 비구니를 만나러 가서 감동을 받고 케마 비구니를 계사로 하여 출가하였다고 한다.

위자야 비구니의 게송은『장로니게』(Thig) {167~174}에 나타난다본경의 게송은 그곳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흥미롭게도 본경의 {528} {530}은 조금 다른 점은 있지만『장로니게』의 케마 비구니의 게송 {139~140}과 비슷하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위자야 비구니가 두려움과 공포와 전율을 일으키도록 하고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위자야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위자야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131]

 

그대는 젊었고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나도 또한 젊었고 청춘입니다.

여인이여오소서다섯 가지로 구성된

악기535)와 더불어 둘이 함께 즐깁시다. {528}

 

535) '다섯 가지로 구성된 악기(pañcagika turiya)'란 한 면만 있는 북(ātata), 양면이 있는 북(vitata), 현악기(ātata-vitata), 피리(susira, 관악기), 심벌즈(ghana, 북을 제외한 타악기)의 다섯이다.(SA.i.191; DA.ii.617)

 

4. 그러자 위자야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위자야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가 두려움과 공포와 전율을 일으키도록 하고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위자야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형색소리냄새,

마음을 끄는 감촉들 -

마라여이들은 그대에게 주노라.

나에게는 더 이상 아무 필요 없노라. {529}

 

썩어 문드러지고 부서지고

망가지기 마련인 이 몸이

너무나 역겹고 혐오스러워

애욕에 대한 갈애 뿌리 뽑아버렸도다. {530}

 

색계에 도달한 자들과

무색계에 확고한 자들과

평화로운 증득 얻은 자들은

모든 곳에서 어둠을 부수었도다. 536) {531}

 

536) 첫 번째 구는 색계를두 번째 구는 무색계를 나타낸다. [세 번째 구의] '평화로운 증득(santā samāpatti)'이라고 한 것은 여덟 가지 세간적인 [삼매의증득(aṭṭhavidhā lokiya-samāpatti,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은 그 대상이 평화롭고(ārammaasantatā) 또한 그 구성요소가 평화롭기 때문에(aga-santatā) 평화롭다고 하였다.

[네 번째 구의] 모든 곳에서(sabbattha)'란 모든 색계와 무색계(rūpa-arūpa-bhava)에서란 뜻이다이 두 가지를 언급함으로 해서 욕계(kāma-bhava)도 포함된 것이다여기에다 여덟 가지 증득을 포함한 이 모든 곳에서 자신은 무명의 어둠(avijjā-tama)을 부수었다고 말하고 있다.(SA.i.192)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위자야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웁빨라완나 경(S5:5) Uppalavaṇṇā-sutta

 

2. 그때 웁빨라완나 비구니537)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537) 웁빨라완나 비구니(Uppalavaṇṇā bhikkhunī)는 사왓티에서 상인의 딸로 태어났다그녀의 피부가 청련(uppala)과 같아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그녀는 아름다워서 많은 왕들로부터 청혼을 받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출가하기를 원했고 그녀도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다출가하여 포살일에 등불을 켜고 집회소를 청소하면서 그 등불의 불꽃을 불의 까시나(tejo-kasia)로 하여 禪을 증득하였고 무애해를 갖춘 아라한이 되었다 한다웁빨라완나 비구니는 특히 변형의 신통(iddhivikubbana, 『청정도론』 XII.22~24 참조)에 능했다고 한다사리뿟따 장로와 마하목갈라나 장로가 부처님의 두 비구 상수제자이듯이 경에서 케마 장로니와 웁빨라완나 장로니는 부처님의 두 비구니 상수제자로 거명된다그녀는 뛰어난 신통을 갖추었기 때문에『앙굿따라 니까야』「하나의 모음」(A1:14:5-3)에서 신통력을 가진 자(iddhimanta)들 가운데서 으뜸이라고 언급되고 있다웁빨라완나 비구니의 게송은 『장로니게』(Thig) {224~235}로 나타나고 있다본경의 게송 {532}~{535}는 『장로니게』 {230~233}에 해당한다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웁빨라완나 비구니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웁빨라완나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웁빨라완나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꼭대기에는 꽃이 만개한 살라 나무아래 가서

그대는 외롭게 홀로 서 있군요.

그대의 아름다움에 필적할 여인 없으니538)

어리석은 여인이여불한당들이 무섭지도 않나요? {532}

 

538) 이 구절과 다음 구절 사이에 Se, Ee1&2에는 idhāgatā tādisikā bhaveyyu(지금 여기에 온 그대 같은 불한당이)라는 구절이 포함되어 있다. Be와『장로니게』(Thig) {230}에는 나타나지 않는다이 구절은 바로 아래 {533}에 나타나는 구절인데 보디 스님은 필사할 때 생긴 오류라고 간주하여 옮기지 않고 있다역자도 옮기지 않는다.

 

4. 그러자 웁빨라완나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웁빨라완나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132]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옵빨라완나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지금 여기에 온 그대 같은 불한당이

백 명이든 천 명이든 아무 상관없도다.

털끝하나 움직이지 않고 떨리지도 않나니

마라여나는 혼자지만 그대를 무서워 않노라. {533}

 

내가 여기서 사라져서

그대의 뱃속으로 들어가거나

그대의 눈썹 사이에 서면

그대는 그런 나를 볼 수 없으리. {534}

 

나는 마음의 자유자재를 얻었고

[네 가지성취수단[如意足]539)을 잘 닦았고

모든 속박으로부터 잘 해탈하였으니

나는 그대를 두려워하지 않노라도반이여. {535}

 

539) 성취수단[如意足, iddhi-pādā]은 신통(iddhi)을 얻기 위해서 의지하는 조건(nissaya-paccaya)이다네 가지 성취수단(사여의족)에 대해서는 본서 제6 「이 언덕 경」(S51:1) §3의 주해와 「이전 경」 (S51:11) §§4~7을 참조할 것.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웁빨라완나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짤라 경(S5:6) Cālā-sutta

 

2. 그때 짤라 비구니540)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장님들의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540) 본경과 다음 두 경에 나타나는 짤라(Cālā) 비구니와 우빠짤라 (Upacālā) 비구니와 시수빠짤라(Sīsūpacālā) 비구니는 사리뿟따 존자의 여동생들이다사리뿟따 존자에게는 세 명의 남동생 즉 쭌다(Cunda), 우빠세나(Upasena), 레와따(Revata)와 이들 세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모두 출가하였다고 한다.(DhpA.ii.188)

이들의 게송은 『장로니게』(Thig)에서는 각각 {182~188}, {189~195}, {196~203} 으로 나타나고 있다짤라의 {537} 『장로니게』{191}, {538}은 『장로니게』 {192}에 상응하고우빠짤라의 {540~543} 『장로니게』 {197}, {198}, {200}, {201}에 상응하는데 『장로니게』에서는 시수빠짤라의 게송으로 나타난다. 시수빠짤라의 {544~546} 『장로니게』 {183~185}에 해당하는데 『장로니게』 에서는 짤라의 게송으로 나타난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이 짤라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짤라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니여, 그대는 무엇을 좋아하지 않는가?”

“도반이여, 나는 태어남을 좋아하지 않는다.”

“왜 그대 태어남을 좋아하지 않는가?

태어나면 감각적 욕망들을 즐기게 된다.

비구니여, 태어남을 좋아하지 말라고

대체 누가 이것을 받아들이라 했는가?” {536}

 

4. [짤라 비구니]

태어난 자에게는 죽음이 있어서

태어난 자야말로 속박살해외로움 등

괴로움을 겪게 될 것이로다. 541)

그러므로 태어남을 좋아하면 안되노라. {537}

 

541) Ee1 passati(보다대신에 Be, Se, Ee2 phussati(닿다겪다)로 읽었다.

 

태어남을 완전히 건너는 법을

나의 스승 부처님은 가르치셨으니

괴로움을 모두 다 제거할 수 있도록

그분은 나를 진리에 안주하게 하셨도다. {538} [133]

 

색계에 도달한 자들과

무색계에 확고한 자들도542)

소멸을 꿰뚫어 알지 못하기 때문에

다시 태어남[再生]으로 돌아오도다. {539}

 

542) 본서 「위자야 경」(S5:4) {531}의 주해를 참조할 것.

 

5.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짤라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우빠짤라 경(S5:7) Upacālā-sutta

 

2. 그때 우빠짤라 비구니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장님들의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이 우빠찔라 비구니에게 다가갔다가서는 우빠짤라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니여그대는 어디에 태어나고자 하는가?

도반이여나는 어디에도 태어나고자 하지 않는다.

 

4. [마라]

삼십삼천야마천도솔천의 신들이 있고

화락천의 신들과 타화자재천의 신들도 있도다.

그대 마음 만일 거기로 향하게 하면

그대 거기서 많은 기쁨 누릴 것이로다543) {540}

 

543) 본 게송에서 언급된 다섯 천상은 욕계 천상이다본 게송에서 언급 되지 않은 가장 낮은 사대왕천을 넣어서 육욕천(여섯 가지 욕계 천상)이라 한다육욕천 각각에 대한 설명은『아비담마 길라잡이』 5 §5의 해설을 참조할 것.

 

5. [우빠짤라 비구니]

삼십삼천야마천도솔천의 신들이 있고

화락천의 신들과 타화자재천의 신들도 있도다.

그러나 그들은 욕망의 속박에 묶여 있어

그들 다시 마라의 지배 받게 되도다. {541}

 

모든 세상은 불타오르고

모든 세상은 달아오르며,

모든 세상은 화염에 싸여 있고

모든 세상은 흔들리도다. {542}

 

흔들리지 않고 화염에 싸이지 않고544)

범부들이 의지하지 않으며

마라의 행처가 아닌 곳

나의 마음 거기에 즐거워하도다. {543}

 

544) Ee1&2: acalita(움직이지 않는대신에 Se: ajalita(타지 않는)으로 읽었다. Be: apajjalita(타오르지 않는)도 이 뜻이다.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우빠짤라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시수빠짤라 경(S5:8) Sīsūpacālā-sutta

 

2. 그때 시수빠찔라 비구니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장님들의 숲으로 들어가서 낮 동안의 머묾을 위해 어떤 나무 아래 앉았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이 시수빠짤라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시수빠짤라 비구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니여그대는 어떤 [외도의교의545)를 좋아하는가?

도반이여나는 어떤 [외도의교의도 좋아하지 않는다.

 

545) '[외도의교의' pāsaṇḍa를 옮긴 것이다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덫을 놓는다(pāsa enti)고 해서 빠산다(pāsaṇḍa, 외도의 교의)라 한다중생들의 마음에 사견의 덫(diṭṭhi-pāsa)을 던진다는 뜻이다그러나 교법(sāsana = 부처님 가르침)은 덫을 푸는 것이다그러므로 외도의 교의(빠산다)라 부르지 않는다외도들(ito bahiddhā) [가르침]만을 빠산다라고 한다.(SA.i.193)

 

4. [마라]

누구를 스승으로 머리를 깎았는가?

그대는 여자 출가 사문처럼 보이도다.

그런데도 교의를 좋아하지 않는다니

무엇 때문에 그대는 멍청하게 다니는가? {544}

 

5. [시수빠짤라]

외도들의 교의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견해를 믿지만

그들의 가르침을 나는 좋아하지 않나니

그들은 법에 능숙치 못하기 때문이라. {545} [134]

 

사꺄 가문에 태어난 부처님 계시어

그 어떤 인간과도 비견할 수 없으니

그분 모든 것을 지배하고마라를 정복한 분

모든 곳에서 패하지 않는 분

모든 곳에서 해탈한 분집착 않는 분

눈을 갖춰 모든 것을 보시는 분이로다. {546}

 

모든 업의 멸진을 증득하신 그분

재생의 근거를 부수어 해탈하신 그분546)

그분 세존께서는 바로 나의 스승이시니

그분의 교법을 나는 좋아하느니라. {547}

 

546) '모든 곳에서 해탈한 분(sabbattha mutto)'이란 모든 무더기[등에서 해탈하셨다는 말이다. '집착 않는 분(asito)'이란 갈애와 사견(tahā-diṭṭhi)을 두고 집착하지 않는 분이란 말이다. '모든 업의 멸진을 증득하신 분(sabba-kamma-kkhaya patto)'이란 모든 업의 멸진이라 불리는 아라한과(arahatta)를 증득하신 분이라는 뜻이다. '재생의 근거를 부수어 해탈하신 분(upadhi-sakhaye vimutto)'이란 재생의 근거를 부숨이라 불리는 열반을 대상으로 하여 해탈하신 분이라는 뜻이다.(SA.i.193)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시수빠짤라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셀라 경(S5:9) Selā-sutta

 

2. 그때 셀라 비구니547)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하여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547) 본서 「알라위까 경」(S5:1) §2의 주해에서 밝혔듯이『장로니게 주석서』(ThigA.60)에 의하면 셀라 비구니(Selā bhikkhunī)와 알라위까 비구니avikā bhikkhunī)는 동일인이다. DPPN s. v. Selā도 동일인으로 간주하고 있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셀라 비구니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셀라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셀라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누가 이 꼭두각시548)를 만들었는가?

꼭두각시를 만든 자는 어디에 있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생겼는가?

꼭두각시는 어디에서 소멸하는가?” {548}

 

548) '꼭두각시(bimba)'자기 존재(atta-bhāva)를 두고 한 말이다.(SA.i.193)

여기서는 자기 존재라고 인식되는 이 꼭두각시를 범천(Brahma), 위슈누(Visau), 뿌루샤[原人], 빠자빠띠(조물주등 가운데서 누가 만들었는가누가 드러내었는가, 누가 창조하였는가등을 묻는 것이다.(SAȚ.i.199)

 

4. 그러자 셀라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셀라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셀라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이 꼭두각시는 자신이 만든 것도 아니요

이 불쌍한 것은 남이 만든 것도 아니로다.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났으며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549) {549}

 

549) '불쌍한 것(agha)'이란 괴로움의 토대가 되는 곳이기 때문에(dukkha-patiṭṭhānattā) 자기 존재(atta-bhāva)를 말하는 것이다.

'원인이 부서지면(hetu-bhaga)'이란 것은 원인이 소멸하면(hetu-nirodha), 조건이 결핍되면(paccaya-vekalla)이란 뜻이다.(SA.i.193)

부처님 당시의 학자들은 괴로움은 자신이 만드는 것[自作, atta-kata]이라는 설과 남이 만드는 것[他作, para-kata]이라는 설로 나뉘어 졌다전자는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의 입장이고 후자는 단견(斷見, uccheda-diṭṭhi)의 입장이다전자는 영원한 자아가 있어서 이 자아가 한 생에서 다음 생으로 자신이 지은 업의 과보에 따라 윤회전생(transmigration) 한다는 견해이다후자는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버려서 아무 것도 남지 않는다그러므로 자신이 겪는 괴로움과 즐거움은 모두 외부의 조건에서 기인한 것이라고 주장한다이런 논쟁은 본서 제2권「나체수행자 깟사빠 경」 (S12:17~18; 24~25)에 나타나고 있으므로 참조할 것.

 

마치 씨앗이 들판에 뿌려져서

잘 자라기 위해서는

땅의 영영분과 수분의 

있어야 하는 것과 같도다550) {550}

 

550)『앙굿따라 니까야』「존재 경」(A3:76) §등에서 세존께서는 하나의 존재가 있기 위해서는 (kamma)이 있어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난다여이처럼 업은 들판이고 알음알이는 씨앗이고 갈에는 수분이다중생들은 무명의 장애로 덮이고 갈애의 족쇄에 계박되어 알음알이를 확립한다.라고 말씀하시는데 본 게송과 같은 말씀이다이렇게 해서 온··계가 생기고 머물고 사라지고 하면서 흘러가는 것이 중생이라는 존재의 현주소이다여기에 대해서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한다.

선업과 불선업이 자라는 장소(hāna)라는 뜻에서 업은 '들판(khetta)'이다. [업과함께 생긴 업을 형성하는 알음알이는 자란다는 뜻에서 '씨앗(bīja)'이다. [씨앗을돌보고 자라게 하기 때문에 '갈애'는 물과 같다. (AA.ii.335)

 

그와 같이 무더기들[]

요소들[]과 여섯 감각장소들[]

원인을 조건으로 생겨났지만

원인이 부서지면 소멸하도다.{551}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셀라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와지라 경(S5:10) Vajirā-sutta

 

2. 그때 와지라 비구니551)가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걸식을 위해서 사왓티로 들어갔다. 사왓티에서 걸식을 하여 공양을 마치고 [135] 걸식에서 돌아와 한거(閑居)를 위하여 장님들의 숲으로 갔다.

 

551) 아래 주해에서 보듯이 와지라 비구니(Vājirā bhikkhunī)의 게송은 자주 인용되고 있지만 주석서에는 와지라 비구니에 대한 설명이 나타나지 않고『장로니 게』에도 그녀의 게송은 나타나지 않는다.

 

3. 그때 마라 빠삐만은 와지라 비구니에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지라 비구니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와지라 비구니에게 게송으로 말했다.

 

"누가 중생을 창조하였는가?

중생을 창조한 자는 어디에 있는가?

중생은 어디에서 생겼는가?

중생은 어디에서 소멸하는가?” {552}

 

4. 그러자 와지라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게송을 읊는 자는 인간인가 비인간인가?'

그때 와지라 비구니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

그는 내게 두려움과 공포를 일으키고 털이 곤두서게 하여

한거를 내팽개치게 하려고 게송을 읊었구나.'

 

5. 그러자 와지라 비구니는 '이 자는 마라 빠삐만이로구나.'라고 알고

마라 빠삐만에게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왜 그대는 '중생'이라고 상상하는가?

마라여그대는 견해에 빠졌는가?

단지 형성된 것들[]의 더미일 뿐

여기서 중생이라고 할 만한 것을 찾을 수 없도다. {553}

 

마치 부품들을 조립한 것이 있을 때

'마차'라는 명칭이 있는 것처럼

무더기들이 있을 때 '중생'이라는

인습적 표현이 있을 뿐이로다. {554}

 

단지 괴로움552)이 생겨나고

단지 괴로움이 머물고 없어질 뿐이니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생겨나지 않고

괴로움 외에 어떤 것도 소멸하지 않도다. 553) {555}

 

552) '괴로움(dukkha)'이란 오온의 괴로움(pañca-kkhandha-dukkha)이다.(SA.i.194)

이것은 위 {553} '단지 형성된 것들[]의 더미(suddha-sakhāra-puñja)'와 같은 것이다본서 제2 「깟짜나곳따 경」(S12:15) §5에서도 자아는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괴로움이 일어날 뿐이고단지 괴로움이 소멸할 뿐이다.'라고 나타나고 있다불교에서 나를 오온으로 해체해서 보는 것은 이처럼 오온개고(五蘊皆苦)와 오온무아를 극명하게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나라는 존재를 온···연 등으로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염오-이욕-소멸이나 염오-이욕-해탈-구경해탈지를 통해서 깨달음을 실현할 수 없다는 점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본서 제5 「마음챙김의 확립 상윳따」(S47)의 여러 경들이나『디가 니까야』「대념처경」(D22) 등의 초기불전에 나타나는 수행 방법의 핵심도 나라는 존재를 몸·느낌·마음·심리현상들 (···)로 해체해서 그 중의 하나에 집중(삼매사마타하거나 그 중의 하나에 대해서 무상··무아로 그것을 해체해서 보는 것(위빳사나)이다. 해체해서 보지 못하면 그는 불교적 수행을 하는 자가 아니다뭉쳐두면 속는다해체해야 깨닫는다.

553) 본 게송에 나타나는 마차의 비유는『밀린다빤하』(Mil.27~28)에 인용되어 자세하게 설명되고 있다『청정도론』 XVIII.25~28도 본경의 두 게송을 인용하면서 정신 · 물질을 떠나 중생이라는 것이 따로 없음을 설명하고 있다.

 

6. 그러자 마라 빠삐만은 “와지라 비구니는 나를 알아버렸구나.”라고 하면서

괴로워하고 실망하여 거기서 바로 사라졌다.

 

 

비구니 상윳따(S5)가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