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락 튀기기 품(A1:6:1~5) (대림스님 옮김, A1 p89)
뱀 왕 경(A4:67) (대림스님 옮김, A2 p195)
창(槍) 경(S20:5) (각묵스님 옮김, S2 p609)
자애 경 1(A4:125) (대림스님 옮김, A2 p308)
자애 경 2(A4:126) (대림스님 옮김, A2 p310)
자애 경(A8:1) (대림스님 옮김, A5 p57)
자애 경(A11:16) (대림스님 옮김, A6 p561)
자애 경(S46:62~65) (각묵스님 옮김, S5 p411)
수바 경(M99) (대림스님 옮김, M3 p539(556))
자애가 함께 함 경(S46:54) (각묵스님 옮김, S5 p384)
원한을 제거함 경 1(A5:161) (대림스님 옮김, A3 p358)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 (대림스님 옮김, M2 p600)
자애에 대한 경전모음
손가락 튀기기 품(A1:6:1~5) A1 p89 Accharāsaṅghāta Sutta
1.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러나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에 의해 오염되었다. 배우지 못한 범부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알지 못한다. 그리하여 마음을 닦지 않는다고 나는 말한다."
2. "비구들이여, 이 마음은 빛난다. 그 마음은 객으로 온 오염원들로부터 벗어났다.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그것을 있는 그대로 안다. 그러므로 마음을 닦는다고 나는 말한다."
3.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받들어 행하면 그를 일러 비구라 한다. 그의 선(禪)은 헛되지 않으며, 위의로써 머물고, 스승의 교법을 받들고, 교훈을 받아들이며, 백성들이 주는 보람된 공양을 먹는다. 그러니 자애의 마음을 많이 공부짓는 자들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4.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닦으면 그를 일러 비구라 한다. 그의 선(禪)은 헛되지 않으며, 위의로써 머물고, 스승의 교법을 받들고, 교훈을 받아들이며, 백성들이 주는 보람된 공양을 먹는다. 그러니 자애의 마음을 많이 공부짓는 자들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5. "비구들이여, 만약 비구가 손가락을 튀기는 순간만큼이라도 자애의 마음을 마음에 잡도리하면 그를 일러 비구라 한다. 그의 선(禪)은 헛되지 않으며, 위의로써 머물고, 스승의 교법을 받들고, 교훈을 받아들이며, 백성들이 주는 보람된 공양을 먹는다. 그러니 자애의 마음을 많이 공부짓는 자들에 대해서야 말해 무엇 하겠는가?"
뱀 왕 경(A4:67) A2 p195 Ahinda Sutta
1.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사왓티에서 어떤 비구가 뱀에 물려 죽었다. 그러자 많은 비구들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비구들은 세존께 말씀드렸다.
2. "세존이시여, 여기 사왓티에서 어떤 비구가 뱀에 물려 죽었습니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펴지 않았구나. 비구들이여, 만일 그 비구가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폈다면 그 비구는 뱀에 물려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무엇이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인가?
위루빡카 뱀 왕의 가문과 에라빠타 뱀 왕의 가문과 차뱌뿟따 뱀 왕의 가문과 깐하고따마까 뱀 왕의 가문이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 비구는 이러한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펴지 않았구나. 비구들이여, 만일 그 비구가 이러한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폈다면 그 비구는 뱀에 물려서 죽지 않았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자신을 지키고 자신을 보호하고 자신을 수호하기 위해서 이러한 네 가지 뱀 왕의 가문에 대해서 자애의 마음을 널리 펴는 것을 허락하노라."
창(槍) 경(S20:5) S2 p609 Satti Sutta
3.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날카로운 끝을 가진 창이 있는데 어떤 사람이 와서 ‘나는 이 날카로운 끝을 가진 창을 손이나 주먹으로 구부리고 비틀어버리고 꼬아버릴 것이다.’라고 한다 하자.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은 날카로운 끝을 가진 창을 손이나 주먹으로 구부리고 비틀어버리고 꼬아버릴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세존이시여.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세존이시여, 그 사람이 날카로운 끝을 가진 창을 쉽게 손이나 주먹으로 구부리고 비틀어버리고 꼬아버리는 것은 고사하고 그는 지치고 고생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어떤 비구가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있는데 비인간이 그의 마음을 혼란시키려고 한다면 그 비인간은 지치고 고생만 하게 될 것이다.”
4. “비구들이여, 그러므로 그대들은 참으로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우리는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정진하리라.’라고 그대들은 이와 같이 공부지어야 한다.”
자애 경 1(A4:125) A2 p308 Mettā 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이 선(禪)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을 만족한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 범신천(梵身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범신천의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일 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에도 가고 아귀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범신천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남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2.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연민[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이 선(禪)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을 만족한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 광음천(光音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광음천의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2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에도 가고 아귀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광음천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남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여기 어떤 사람은 더불어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이 선(禪)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을 만족한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 변정천(邊淨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변정천의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4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에도 가고 아귀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변정천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남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여기 어떤 사람은 평정[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이 선(禪)을 즐기고, 이것을 바라고, 이것을 만족한다. 그는 여기에 굳게 서고 여기에 확신을 가지고 여기에 많이 머물고 이것으로부터 물러서지 않아서 죽은 뒤에 광과천(廣果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광과천의 신들의 수명의 한계는 5백겁이다.
거기서 범부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지옥에도 가고 축생에도 가고 아귀에도 간다. 그러나 세존의 제자는 그 신들의 수명의 한계만큼 거기 머물다가 그 기간이 모두 다하면 바로 그 광과천에서 반열반에 든다. 비구들이여, 갈 곳과 태어남에 관한 한 이것이 많이 배운 성스러운 제자와 배우지 못한 범부 사이의 차이점이고 이것이 특별한 점이고 이것이 다른 점이다.”
자애 경 2(A4:126) A2 p310 Mettā Sutta
1.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인간은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몸)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의도들이건 윈냐냐이건 그러한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붕괴하는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attā가 아니다(anattā)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정거천(淨居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 [정거천에] 태어나는 것은 범부들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2.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연민[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몸)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의도들이건 윈냐냐이건 그러한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붕괴하는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attā가 아니다(anattā)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정거천(淨居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 [정거천에] 태어나는 것은 범부들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더불어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거기서 물질(몸)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의도들이건 윈냐냐이건 그러한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붕괴하는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attā가 아니다(anattā)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정거천(淨居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 [정거천에] 태어나는 것은 범부들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평정[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거기서 어떠한 물질(몸)이건 느낌이건 인식이건 의도들이건 윈냐냐이건 그러한 법들을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병이라고 종기라고 화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남이라고 붕괴하는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attā가 아니다(anattā)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정거천(淨居天)의 신들의 동료로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이 [정거천에] 태어나는 것은 범부들과는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세상에는 이러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자애 경(A8:1) A5 p57 Mettā Sutta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숲의 급고독원에서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慈心解脫]을 계발하고,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으면 여덟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무엇이 여덟인가?"
3.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비인간들이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그를 해치지 못하고, 더 높은 경지를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계발하고, 닦고, 많이 [공부]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으면 이러한 여덟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4. "무량한 자애를 닦는 싸띠를 확립하는 자는
족쇄들이 엷어지고 재생의 근거가 파괴됨을 보노라.
단 하나의 생명일지라도 타락하지 않은 마음으로
자애를 보내면 유익함이 있나니
모든 생명들에게 광대한 연민의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자는 공덕을 짓노라.
중생의 숲으로 된 땅을 정복한
왕이라는 선인(仙人)은 제사를 지내려고 작정하나니
말을 잡는 제사와 인간을 바치는 제사와
말뚝을 던지는 제사와 소마 즙을 바치는 제사와
[대문을 열고] 크게 공개적으로 지내는 제사라네.
그러나 이것은 자애의 마음을 잘 닦는 자에게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나니
마치 모든 별들의 무리가
달빛의 [16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과 같으리.
[스스로] 죽이지도 않고 [남을 시켜] 죽이지도 않고
약탈하지도 않고 약탈하게 하지 않으며
모든 존재들에게 자애의 마음을 가진 자
그에게는 어떠한 원한도 없노라"
자애 경(A11:16) A6 p561 Mettā Sutta
1. "비구들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으면 열한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무엇이 열하나인가?"
2. "편안하게 잠들고, 편안하게 깨어나고, 악몽을 꾸지 않고, 사람들이 좋아하고, 비인간들이 좋아하고, 신들이 보호하고, 불이나 독이나 무기가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마음이 쉽게 사마디에 들고, 안색이 맑고, 매하지 않은 채 죽고, 더 높은 경지를 통찰하지 못하더라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난다. 비구들이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반복하고, 닦고, 많이 [공부] 짓고, 수레로 삼고, 기초로 삼고, 확립하고,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닦으면 이러한 열한 가지 이익이 기대된다."
자애 경(S46:62~65) S5 p411 Mettā Sutta
"비구들이여, 자애를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아주 편안하게 머묾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연민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아주 편안하게 머묾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더불어 기뻐함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아주 편안하게 머묾으로 인도된다."
"비구들이여, 평정을 닦고 많이 [공부]지으면 아주 편안하게 머묾으로 인도된다."
수바 경(M99) M3 p556 Subha Sutta
24. “바라문 학도여, 어떤 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인가?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5. “다시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6. “다시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7. “다시 바라문 학도여, 비구는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옆으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악의 없는,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바라문 학도여,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예를 들면 나팔수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으로 자기의 소리를 알리듯,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이렇게 닦을 때 제한된 업은 더 이상 여기에 남아 있지 않고, 더 이상 여기에 정체해 있지 않다.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28. 이렇게 말씀하시자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자애가 함께 함 경(S46:54) S5 p384 Mettāsahagata Sutta
9. “비구들이여, 그러면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무엇이 그것의 목적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궁극적 경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결실이고 무엇이 그것의 귀결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싸띠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고요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사마디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자애가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 둘 다를 피한 뒤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문다.
혹은 그는 깨끗함을 통한 해탈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런 반야를 가진 비구가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꿰뚫지 못했을 때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은 깨끗함이 그 정점이라고 나는 말한다.”
10. “비구들이여, 그러면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무엇이 그것의 목적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궁극적 경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결실이고 무엇이 그것의 귀결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싸띠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고요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사마디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연민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 둘 다를 피한 뒤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문다.
혹은 그는 물질에 대한 산냐(相 형상과 분별)를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산냐(相)를 소멸하고 갖가지 산냐(相)를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연민을 통한 마음의 해탈은 공무변처를 궁극으로 한다고 말한다. 이런 반야를 가진 비구는 더 높은 해탈을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11. “비구들이여, 그러면 더불어 기뻐하는 마음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무엇이 그것의 목적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궁극적 경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결실이고 무엇이 그것의 귀결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싸띠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고요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사마디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더불어 기뻐함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 둘 다를 피한 뒤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문다.
혹은 그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윈냐냐’라고 하면서 식무변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더불어 기뻐함을 통한 마음의 해탈은 식무변처를 궁극으로 한다고 말한다. 이런 반야를 가진 비구는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12. “비구들이여, 그러면 평정을 통한 마음이 해탈은 어떻게 닦아야 하는가? 무엇이 그것의 목적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궁극적 경지이고 무엇이 그것의 결실이고 무엇이 그것의 귀결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싸띠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고요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사마디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평정이 함께하고 떨쳐버림을 의지하고 탐욕의 빛바램을 의지하고 소멸을 의지하고 철저한 버림으로 기우는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를 닦는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에 대해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진 자로 머문다. 만일 그가 ‘나는 혐오스럽지 않은 [대상]과 혐오스러운 [대상] 둘 다를 피한 뒤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무르리라.’라고 원하면 그는 거기서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평정하게 머문다.
혹은 그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나는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은 무소유처를 궁극으로 한다고 말한다. 이런 반야를 가진 비구는 여기서 더 높은 해탈을 꿰뚫지 못했기 때문이다.”
원한을 제거함 경 1(A5:161) A3 p358 Āghātapaṭivinaya Sutta
1. "비구들이여, 다섯 가지 원한을 제거함이 있나니, 어떤 곳에서든 비구에게 생겨난 원한을 이것으로 모두 제거해야 한다. 무엇이 다섯인가?"
2.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자애[慈]를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에 대해서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3.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연민[悲]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에 대해서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4.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평정[捨]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에 대해서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5.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싸띠를 확립하지 않음과 주의를 기울이지 않음을 닦아야 한다. 이와 같이 그 사람에 대해서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6. "비구들이여, 어떤 사람에게 원한이 생기면 그 사람에 대해서 업이 자신의 주인임을 굳게 확립해야 한다. '이 존자는 업이 바로 그의 주인이고, 그는 업의 상속자고, 업에서 태어났고, 업이 그의 권속이고, 업이 그의 의지처다. 좋은 업이든 나쁜 업이든 그가 업을 지으면 그는 그것의 상속자가 될 것이다.'라고 이와 같이 사람에게 생긴 원한을 제거해야 한다.
비구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원한을 제거함이 있나니, 어떤 곳에서 비구에게 생겨난 원한을 이것으로 모두 제거해야 한다."
라훌라를 교계한 긴 경(M62) M2 p600 Mahā Rāhulovāda Sutta
18. “라훌라야, 자애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자애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악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19. “라훌라야, 연민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연민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미워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20. “라훌라야, 더불어 기뻐함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더불어 기뻐함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싫어함이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21. “라훌라야, 평정의 수행을 닦아라. 라훌라야, 네가 평정의 수행을 닦으면 어떤 적의라도 다 제거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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