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31. 교계 싱갈라 경285) 재가자의 삶 Siṅgālovāda Sutta
285) 초기경들을 결집한 분들은 모두가 출가한 비구들이고, 게다가 모두 장부일대사를 해결한 아라한들이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 그분들이 모은 경들은 장부일대사를 해결하는 가르침에 초점이 맞춰질 수밖에 없었다. 그분들이 부처님으로부터 들은 것은 이런 해탈도의 가르침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재가자들의 삶의 방식을 구체적으로 들은 경우도 적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초기경들에서 재가자들의 구체적인 삶의 윤리나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경들은 드물 수밖에 없다.
본경은 그런 의미에서 아주 특색이 있고 의미가 있는 경이다. 본경은 재가불자가 어떻게 불교적인 윤리로 가정생활과 사회생활을 영위해야 하는가를 기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재가자들의 삶을 다루는 경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본경의 빠알리어 제목은 싱갈로와다 숫따(Siṅgalovāda Sutta)이다 '싱갈라를 교계하신(ovāda) 경'이라는 뜻이다. 그래서「교계 싱갈라 경」으로 옮겼다. 중국에서는 「선생경」(善生經)으로 옮겨져서 『장아함』의 16번째 경으로 전해져오며, 『중아함』에도 역시「선생경」으로 옮겨져서135번째 경으로 나타나고 있다. 싱갈라 혹은 싱갈라까를 중국에서는 善生으로 음역하였다. 그리고 일찍이 후한 때에 안세고가 「불설시가라월육방예경」(佛說尸迦羅越六方禮經)으로 옮겨서 중국에 소개하였으며, 우리에게는 '육방예경'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여기서 시가라월은 싱갈라까의 음역이다.
서언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에서 대나무 숲의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싱갈라까286)라는 장자의 아들이 아침 일찍287) 일어나서
라자가하를 나가서 옷을 적시고 머리를 적시고 합장을 하고
동쪽 방향과 남쪽 방향과 서쪽 방향과 북쪽 방향과 아래 방향과 위 방향의
각 방향으로 절을 하였다.
286) 본경의 제목에는 싱갈라(Siṅgāla)로 나타나는데 본 문단에서는 큰 의미가 없는 '-ka' 어미가 붙어서 싱갈라까로 나타난다. 리즈 데이빗은 스리랑카의 필사본들에는 시갈라(Sigāla)로 나타나는 곳이 많다고 밝히고 있다.(리즈 데이빗 iii.173) 미얀마본에도Siṅgāla와 Siṅgālaka로 나타난다. 아마 sigāla가 자칼을 뜻하기 때문에 후대로 오면서 Siṅgāla로 정착이 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287) ‘아침 일찍'으로 옮긴 원문은 kālass' eva 인데 '제 시간에'라고 옮기는 것이 적당하다. 그러나 제 시간에 일어나는 것은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고 그리고 “제 시간(아침)에 일어나서 해거름까지(kālass' eva uṭṭhahantova sayanamhā)”(S.v.263) 라는 문맥을 통해서 보면 이 단어는 아침 일찍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하여 이렇게 옮겼다.
2-1. 그때 세존께서는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시고
걸식을 위해서 라자가하로 들어가셨다.
세존께서는 [라자가하로 들어가시다가] 장자의 아들 싱갈라까가 아침 일찍 일어나서
라자가하를 나와서 옷을 적시고 머리를 적시고 합장을 하고
동쪽 방향과 남쪽 방향과 서쪽 방향과 북쪽 방향과 아래 방향과 위 방향의 각 방향으로
절을 하는 것을 보셨다.
보시고서는 장자의 아들 싱갈라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의 아들이여, 왜 그대는 아침 일찍 일어나서 라자가하를 나와서
옷을 적시고 머리를 적시고 합장을 하고
동쪽 방향과 남쪽 방향과 서쪽 방향과 북쪽 방향과 아래 방향과 위 방향의 각 방향으로
절을 하는가?”
“세존이시여, 저의 부친께서 임종을 하시면서 제게 말씀하시기를
'얘야, 방위를 향해서 절을 해야 한다.'라고 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래서 저는 부친의 유언을 존경하고 존중하고 숭상하고 예배하고 공경하여서 아침 일찍 일어나서 라자가하를 나와서 옷을 적시고 머리를 적시고 합장을 하고 동쪽 방향과 남쪽 방향과 서쪽 방향과 북쪽 방향과 아래 방향과 위 방향의
각 방향으로 절을 합니다.”
여섯 방향
2-2. “장자의 아들이여, 그러나 성자의 율에서는288) 이렇게 육방(六方)으로 절을 해서는 안된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성자의 율에서는 어떻게 육방으로 절을 해야 합니까?
세존께서 제게 성자의 율에서는 어떻게 육방으로 절을 해야 하는지
법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장자의 아들이여, 그렇다면 들어라.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하리라.”
"그렇게 하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장자의 아들 싱갈라까는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88) '성자의 율에서'로 옮긴 원문은 ariyassa vinaye이다. ariya는 명사와 형용사로 다 쓰인다. 그러므로 만일 합성어로 ariya-vinaye로 나타나면 '성스러운 율에서'로 옮기는 것이 적당할 것이다.
어떻게 쓰이든 초기경에서 ariya는 모두 불교를 지칭하는 술어이다. 그러므로 성자의 율은 불교의 율이라는 의미이다. 그리고 아리야 사와까는 성스러운 제자 혹은 성제자로 옮겨지는데 부처님 제자 혹은 불교도를 칭하며, 아리야 삿짜는 성스러운 진리인데 불교의 진리라는 의미가 강하게 들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3-1. “장자의 아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네 가지 업의 오염원들을 제거하고
네 가지 경우로 사악한 업을 짓지 않으며
여섯 가지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을 추구하지 않는다.
그는 이와 같은 열 네가지 사악함을 없애고 육방을 감싸는 자가 되어
두 세상을 얻기 위해서도를 닦는다. 그는 이 세상과 저 세상을 다 얻는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이나 천상에 태어난다.
(1) 네 가지 업의 오염원
3-2. 그러면 무엇이 네 가지 업의 오염원들을 제거하는 것인가?
장자의 아들이여, 생명을 죽이는 것은 업의 오염원이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은 업의 오염원이다.
삿된 음행을 하는 것은 업의 오염원이다.
거짓말을 하는 것은 업의 오염원이다.
이런 네 가지 업의 오염원들을 버린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289)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289) 원문에는 satthā가 나타나므로 ‘스승께서는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라고 옮겨야 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자칫 선서와 스승이 다른 사람인 것처럼 생각될 수 있어서 ‘스승께서는'을 생략하여 옮겼다. 본서의 모든 문맥에서 모두 이와 같이 옮기고 있음을 밝힌다.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고
남의 아내를 범하는 것을 현자들은 칭송하지 않는다.”
(2) 네 가지 사악한 업을 지음
5. “어떻게 네 가지 경우로 사악한 업을 짓지 않는가?
열의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290)을 하면서 사악한 업을 짓는다.
성냄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면서 사악한 업을 짓는다.
어리석음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면서 사악한 업을 짓는다.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면서 사악한 업을 짓는다.
장자의 아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열의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성냄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어리석음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고,
두려움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네 가지 경우로 업을 짓지 않는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90) ‘하지 않아야 할 것'은 agati의 역어이다. '가지 않아야 함'으로 직역할 수 있다. 본경에서처럼 네 가지 하지 않아야 함으로 정리되어 나타난다. 예를 들면『청정도론』에서는 버려야 할 법을 ① 족쇄 ②오염원 ③ 삿됨 ④ 세간적인 법 ⑤ 인색 ⑥ 전도 ⑦ 매듭 ⑧ 하지 않아야 함 ⑨ 번뇌 ⑩ 폭류 ⑪ 속박 ⑫ 장애 ⑬ 고수(固守) ⑭ 취착 ⑮ 잠재성향 ⑯ 더러움 ⑰ [열가지] 해로운 업의 길 (不善業道) ⑱ [해로운] 마음의 일어남의 18가지로 정리하고 있는데, 그 여덟 번째에 이 '하지 않아야 함'을 들고 있다.
‘하지 않아야 함'은 본 문맥에 나타나듯이 열의(chanda), 성냄(dosa), 어리석음(moha), 두려움(bhaya)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할 것의 넷이다. 이것은 성자들이 해서는 안되기 때문에 하지 않아야 함이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XII.47과 55를 참조할 것. 본서의 「정신경」 (D29) §26에서는 아라한이 범할 수 없는 아홉 가지에 포함되어 나타났다. 그리고 본 문맥에서는 이러한 네 가지를 행하는 것을 사악한 업(pāpa-kamma)이라고 부르고 있다.
6.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하셨다.
“열의,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 때문에 법을 파하는 자는
그의 명성을 잃게 되나니
이는 마치 이지러지는 시기의 달과 같다.
열의, 성냄, 어리석음, 두려움 때문에 법을 파하지 않는 자는
그의 명성이 가득하나니
이는 마치 차는 시기의 달과 같다.”
(3) 여섯 가지 타락의 입구
7. “그러면 어떤 것이 여섯 가지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을 추구하지 않는 것인가?
장자의 아들이여,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의 섭취에 몰두하는 것이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이다.
때 아닌 때에 길거리를 배회하기에 몰두하는 것이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이다.
구경거리(공연)를 보러 다니기에 몰두하는 것이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이다.
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몰두하는 것이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이다.
사악한 친구를 사귀기에 몰두하는 것이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이다.
게으름에 빠지는 것이 타락의 입구가 되는 재물이다.”
① 술과 중독성 물질의 여섯 가지 위험
8. “장자의 아들이여,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의 섭취에 몰두하는 것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지금여기에서 재산을 잃고, 분쟁을 조장하며, 병이 발생하는 장소이고, 나쁜 명성을 낳고, 은밀한 곳을 드러내게 되고, 통찰지가 무기력하게 되는 이러한 여섯 가지 경우가 생긴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의 섭취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이다.”
② 때 아닌 때에 길거리를 배회하는 여섯 가지 위험
9. “장자의 아들이여, 때 아닌 때에 길거리를 배회하기에 몰두하는 것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자기 스스로를 지키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한다.
그의 자식들과 아내도 지키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한다.
재산을 지키지 못하고 보호하지 못한다.
[남이 저지른] 범죄행위들에 대해서 [자신이 저지른 것으로] 의심받는다.
그에 대한 헛소문이 증가한다. 많은 괴로운 것들이 그의 앞에 있게 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때 아닌 때에 길거리를 배회하기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이다.
③ 구경거리(공연)를 보러 다니기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
10. “장자의 아들이여, 구경거리(공연)를 보러 다니기에 몰두하는 것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어디서 춤을 추나, 어디서 노래하나, 어디서 연주하나, 어디서 낭송하나,
어디서 박수치며 하는 공연이 있나, 어디서 북치며 하는 공연이 있나?'라고
[찾아다녀 다른 것을 소홀히 한다.]291)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구경거리를 보러 다니기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이다.”
291) 주석서에서는 그가 이런 구경거리에 관심을 가지고 찾아다니느라 생기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들고 있다.(DA.iii.946)
④ 노름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
11. “장자의 아들이여, 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몰두하는 것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이기면 증오가 따른다. 지면 남에게 잃은 물건에 대해서 한탄한다. 실제로 재산이 없어진다. 법정에서 하는 진술에 신빙성이 없어진다. 친구와 동료들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이 사람은 노름꾼이니 아내를 부양하기에 적당하지 않아.'라고 하면서
아무도 그를 결혼상대로 원하지 않는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이다."
⑤ 사악한 친구를 사귀는 여섯 가지 위험
12. “장자의 아들이여, 사악한 친구를 사귀기에 몰두하는 것에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노름꾼, 방탕한 자, 술꾼, 사기꾼, 협잡꾼, 싸움꾼들이 그의 친구와 동료가 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사악한 친구를 사귀기에 몰두하는 여섯 가지 위험이다."
⑥ 게으른 자의 여섯 가지 위험
13. “장자의 아들이여, 게으름에 빠진 자에게는 다음의 여섯 가지 위험이 있다.
너무 춥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덥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이르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늦었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배고프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너무 배부르다면서 일을 하지 않는다.
그가 이와 같이 해야 할 일에 대한 핑곗거리를 많이 가지고 사는 동안
아직 벌지 못한 재산은 벌지 못하며 번 재산은 다 써 버리게 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것이 게으름에 빠진 자의 여섯 가지 위험이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14.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술친구가 있고,
'친구여, 친구여'라고 말만 하는 자가 있지만
필요가 생겼을 때 동료가 되어 주는 자
그가 진정한 친구이다.
해가 떠도 잠자는 자들과 남의 아내를 범하는 자들
증오의 화신인 자들과 손해를 주는 자들
사악한 친구들과 가슴이 메마른 자들
이런 여섯 경우는 사람을 파멸하게 만든다.
사악한 친구와 사악한 동료와
사악한 행위와 행동의 영역을 가진 자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두 곳으로부터 사람을 파멸하게 만든다.
노름과 여자, 술, 춤과 노래
낮에 자고 때 아닌 때 돌아다니는 것
사악한 친구를 사귀는 것, 가슴이 메마른 것
이런 여섯 경우는 사람을 파멸하게 만든다.
노름을 하고 술을 마시고
남들에게 목숨과 같은 여자들을 범하고
저열한 자를 섬기고 존경할만한 자를 섬기지 않는 자는
이지러지는 시기의 달과 같이 파멸하게 된다.
술꾼이 재산도 없고 무일푼인데
목마른 자가 물마시듯 [술만] 마셔대면
물에 던진 [돌멩이]처럼 빚 속에 가라앉아
즉시에 자신의 가문조차 사라지게 만들 것이다.
낮에 자는 버릇을 가진 자와
밤에 일어나 [돌아다니는] 버릇을 가진 자와
항상 술에 취해 있는 자는
가정을 가져 머물 수 없다.
너무 춥고 너무 덥고
너무 이르다고 하면서
일을 내팽개쳐 버리는 자에게
젊었을 때의 기회는 사라져 버린다.
여기 이 세상에서 춥고 더움을
마른 풀보다 하찮은 것으로 간주하여
사람으로서 해야 할 바를 하는 자
그는 행복으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4)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닌 네 가지
15.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면서도] 분명히 가져왔다고 하는 자는292)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말만 최고로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나쁜 짓에 동무가 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292) “‘분명히 가져왔다고 하는 자(aññadatthuhara)'는 스스로 빈손(tucchahattha)으로 왔으면서도 무엇인가를 가져왔다고 전적으로 [우기는 자]이다.”(DA.iii.948)
16. “①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면서도] 분명히 가져왔다고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적게 주고 많은 것을 원하고, 두려움 때문에 의무를 행하고, [자신의] 이익만 챙긴다.293)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으면서
분명히 가져왔다고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293) “‘이익만 챙긴다.(sevati atthakāraṇā)'는 것은 친구와 교제(mittasanthava)하여 자신의(attano) 이익만을 바라면서 사귄다는 [뜻이다.]"(Ibid)
17. "②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말만 최고로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과거에 [이렇게 하려 했다는 번지르르한 말에] 의지하고,
미래에 [이렇게 할 것이라는 번지르르한 말에] 의지하고,
아무 의미 없는 [말로] 호의를 얻으려 하고,
일이 생겼을 때는 문제가 생겨서294) [도와줄 수 없다고] 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말만 최고로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294) “수레가 필요하다고 하면 ‘바퀴가 고장 났소, 차축이 부수어졌소.'라는 등으로 말한다.” (Ibid)
18. “③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사악한 것에는 동의를 하고 좋은 것에는 동의를 하지 않으며295)
면전에서는 칭송하는 말을 하고 등 뒤에서는 비난하는 말을 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자는
친구인 척하는 적이라고 알아야 한다.”
295) 미얀마본 등에는 좋은 말에도 동의한다고 나타난다.
19. “④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나쁜 짓에 동무가 되는 자는
친구인 척하지만 친구가 아니라고 알아야 한다.
방일하는 근본이 되는 술과 중독성 물질의 섭취에 몰두할 때 동무가 된다.
때 아닌 때에 길거리를 배회하기에 몰두할 때 동무가 된다.
구경거리를 보러 다니기에 몰두할 때 동무가 된다.
방일의 근본이 되는 노름에 몰두할 때 동무가 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나쁜 짓에 동무가 되는 자는 친구인 척하는 적이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0.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가져오지 않았으면서도] 분명히 가져왔다고 하는 친구
말만 최고로 하는 친구, 듣기 좋은 말만 하는 친구, 나쁜 짓을 할 때의 친구
이들 넷은 친구가 아니라고 잘 알고서
현자는 두렵기만 한 이러한 길을 멀리 피해야 한다.”
(5) 가슴을 나누는 네 가지 친구
21.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는 친구로되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도움을 주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바른 것을 조언해 주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연민하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22. “①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도움을 주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취해 있을 때 보호해 주고, 취한 자의 소지품을 보호해 주고, 두려울 때 의지처가 되어 주고, 해야 할 일이 생겼을 때 두 배로 필요한 물품을 보태어준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도움을 주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23. “②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비밀을 털어놓고, 비밀을 지켜 주고, 재난에 처했을 때 떠나지 않고,
목숨까지도 그를 위해서 버린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24. “③ 장자의 아들이여, 다음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바른 것을 조언해 주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사악함으로부터 멀리하게 하고, 선(善)에 들어가게 하고, 배우지 못한 것을 배우게 하고, 천상의 길을 가르쳐준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바른 것을 조언해 주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25. “④ 장자의 아들이여,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연민하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친구]의 불행에 대해서 기뻐하지 않고, [친구]의 행운에 대해서 기뻐하며,
[친구]에 대해서 비난하는 자를 멀리하고, [친구]에 대해서 칭송하는 자를 칭찬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런 네 가지 경우를 통해서 연민하는 친구는
가슴을 나누는 친구라고 알아야 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6.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도움을 주는 친구, 즐거우나 괴로우나 한결같은 친구
바른 것을 조언해 주는 친구, 연민하는 친구
이들 넷이 친구라고 잘 알고서
현자는 전적으로 그들을 섬겨야 하나니,
마치 어머니가 친자식에게 하듯이.
계를 구족한 현자는
[밤에 언덕에서] 불이 타오르듯이 빛난다.
마치 벌들이 부지런히 재물을 모을 때
재물인 [꿀]이 모이는 것이
마치 개미집이 높이 자라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재물을 모은 뒤
재가자는 자신의 가문을 부양하나니
네 등분으로 재물을 나누어서
그는 [인생의] 친구들을 내치지 않고 돕는다.296)
296) ‘내치치 않고 돕는다.’로 옮긴 원어는 ganthati(묶다)인데 주석서에서 “[친구들이] 흩어지지 않게 하여 서게 만든다.(abhejjamānāni ṭhapeti)(DA.iii.951)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첫 번째 몫의 재물은 생활에 사용하고
두 번째와 세 번째 몫은 사업하는데 쓰고
네 번째는 저축을 해야 하나니
재난에 대처하기 위해서이다.”
(6) 육방을 감싸는 자
27. “장자의 아들이여, 어떻게 해서 성스러운 제자는 육방을 감싸는 자가 되는가?
장자의 아들이여, 이들 여섯 방향을 알아야 한다.
동쪽 방향은 부모라고 알아야 한다. 남쪽 방향은 스승이라고 알아야 한다.
서쪽 방향은 자식과 아내라고 알아야 한다. 북쪽 방향은 친구와 동료라고 알아야 한다.
아래 방향은 하인과 고용인들이라고 알아야 한다. 위 방향은 사문과 바라문이라고 알아야 한다.297)
297) “부모는 앞에서 도와주시기 때문에 동쪽(puratthimā, 앞쪽) 방향이라고 알아야한다. 스승은 보시를 드려야 하기(dakkhiṇeyya) 때문에 남쪽(dakkhiṇā) 방향이다. 자식과 아내는 뒤에서 따라오기 때문에 서쪽(pacchimã, 뒤쪽)이다. 친구와 동료를 의지해서 특별한 괴로움을 건너기(uttarati) 때문에 북쪽(uttarā) 방향이다.” (DA.iii.952)
① 동쪽 방향 - 부모
28. “장자의 아들이여, 아들은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동쪽 방향인 부모를 섬겨야 한다.
'나는 그분들을 잘 봉양할 것이다. 그분들에게 의무를 행할 것이다.
가문의 대를 확고하게 할 것이다. 유산인 [부모의 훈육대로] 잘 실천할 것이다.
부모가 돌아가시면 그분들을 위해서 보시를 잘할 것이다.'라고,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아들은 동쪽 방향인 부모를 섬긴다.
그러면 부모는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아들을 사랑으로 돌본다.
사악함으로부터 멀리하게 한다. 선(善)298)에 들어가게 한다. 기술을 배우게 한다.
어울리는 아내와 맺어준다. 적당한 때 유산을 물려준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아들은 동쪽 방향인 부모를 섬기고
부모는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아들을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동쪽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298) 여기서 선(善)은 ‘좋은, 선한'이라는 일반적인 뜻을 가진 kalyāṇa의 역어이다. 그래서 kalyāṇa-mitta는 선우(善友)로 옮겨지며 중국에서는 선지식(善知識)으로도 옮겼다.
② 남쪽 방향 - 스승들
2.20. “장자의 아들이여, 제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남쪽방향인 스승들을 섬겨야 한다.
일어나서 맞이하고 섬기고 배우려 하고 개인적으로 시봉하고 기술을 잘 배운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제자는 남쪽 방향인 스승들을 섬긴다.
그러면 스승들은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제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잘 훈육되도록 훈육한다. 잘 이해하도록 이해시킨다. 기술을 모두 다 배우도록 잘 가르쳐 준다.
친구와 동료에게 잘 소개해 준다. 모든 곳에서 안전하게 보호해 준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제자는 남쪽 방향인 스승들을 섬기고
스승들은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제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남쪽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③ 서쪽 방향 - 아내
30. “장자의 아들이여, 남편은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서쪽방향인 아내299)를 섬겨야 한다.
존중하고, 얕보지 않고, 바람피우지 않고, 권한을 넘겨주고, 장신구를 사준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남편은 서쪽 방향인 아내를 섬긴다.
299) §27에서는 자식과 아내(puttadārā)로 나타났는데, 여기서는 아내(bhariyā)만이 언급되고 있다.
그러면 아내는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남편을 사랑으로 돌본다.
맡은 일을 잘 처리하고, 주위 사람들을 잘 챙기고, 바람피우지 않고, 가산을 잘 보호하고, 모든 맡은 일에 숙련되고 게으르지 않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남편은 서쪽 방향인 아내를 섬기고
아내는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남편을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서쪽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④ 북쪽 방향 - 친구와 동료 .
31. “장자의 아들이여, 선남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북쪽방향인 친구와 동료들을 섬겨야 한다.
베풀고, 친절하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하고, 자기 자신에게 하듯이 대하고, 언약을 어기지 않는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선남자는 북쪽 방향인친구와 동료들을 섬긴다.
그러면 친구와 동료들은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취해 있을 때 보호해 주고, 취해 있을 때 소지품을 보호해 주고, 두려울 때 의지처가 되어 주고, 재난에 처했을 때 떠나지 않고, 그의 자녀들300)을 존중한다.
300) ‘그의 자녀들로 옮긴 원문은 aparapajā인데 문자적으로는 '다른(apara) 백성들 (pajā)'이라는 의미이다. 주석서에서 “친구(sahāya)의 아들과 딸들(puttadhītaro)이 바로 백성들(pajā)이다.” (DA.iii,956)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그의 자녀들'로 옮겼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는 북쪽 방향인 친구와 동료들을 섬기고 친구와 동료들은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북쪽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⑤ 아래 방향 - 하인과 고용인
32. “장자의 아들이여, 주인은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아래 방향인 하인과 고용인들을 섬겨야 한다.
힘에 맞게 일거리를 배당해주고, 음식과 임금을 지급하고, 병이 들면 치료해 주고,
특별히 맛있는 것을 같이 나누고, 적당한 때에 쉬게 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주인은 아래 방향인 하인과 고용인들을 섬긴다.
그러면 하인과 고용인들은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주인을 사랑으로 돌본다.
먼저 일어나고, 나중에 자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일을 아주 잘 처리하고,
[주인]에 대한 명성과 칭송을 달고 다닌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주인은 아래 방향인 하인과 고용인들을 섬기고 하인과 고용인들은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주인을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아래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⑥ 위 방향 - 사문 · 바라문
33. “장자의 아들이여, 선남자는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위 방향인 사문 · 바라문들을 섬겨야 한다.
자애로운 몸의 업으로 대하고, 자애로운 말의 업으로 대하고, 자애로운 마음의 업으로 대하고, 대문을 항상 열어두고, 일용품을 공급한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와 같이 선남자는 위 방향인 사문 · 바라문들을 섬긴다.
그러면 사문 · 바라문들은 다시 다음의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사악함으로부터 멀리하게 하고, 선(善)에 들어가게 하고, 선한 마음으로 자애롭게 돌보며, 배우지 못한 것을 가르쳐 주고, 배운 것을 깨끗하게 해 주고, 천상으로 가는 길을 드러내어 준다.
장자의 아들이여,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는 위 방향인 사문 · 바라문들을 섬기고 사문 · 바라문들은 다시 이러한 다섯 가지 경우로 선남자를 사랑으로 돌본다.
이렇게 해서 위 방향은 감싸지게 되고 안전하게 되고 두려움이 없게 된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34. 선서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 뒤 다시 [게송으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부모는 동쪽 방향이요.
스승들은 남쪽 방향이며
자식과 아내는 서쪽 방향이요.
친구와 동료들은 북쪽 방향이며
하인과 고용인들은 아래 방향이요.
사문과 바라문들은 위 방향이다.
재가자는 이들 방향에 예배해야 하나니
이렇게 해야 가문을 지킨다고 할 만하다.301)
301) “‘할 만하다(alam atho).'라는 것은 자식과 아내라는 짐을 지고 집에 거주할 자격이 있다는 말이다.”(DA.iii.957)
현자는 계를 구족하고
온화하고 영감을 갖추나니
겸손하고 완고하지 않은
이러한 자는 명성을 얻는다.
일찍 일어나고 게으르지 않고
재난에 처했을 때 떠나지 않으며
흠이 없고 총명한
이러한 자는 명성을 얻는다.
섭수하여 친구로 삼고
친절하게 말하고 인색하지 않으며
인도자요 훈도자요 조정자인
이러한 자는 명성을 얻는다.
이 세상에서 베풀고 친절하게 말하고
그들에게 이익이 되도록 행하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자기 자신에게 하듯이 대하고
어디서든 누구에게나 적절하게 행하면
이런 요소들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나니
마치 마차 차축의 핀과도 같다.
이런 요소들이 없다면
어머니도 아들이 하는
존경과 예배를 받지 못하며
아버지도 역시 그러하다.
그러므로 이런 요소들을
현자들은 바르게 관찰하나니
그러므로 이런 것들은 위대함을 얻게 되고
칭송이 자자한 것이다.
맺는 말 - 싱갈라까의 귀의
35. 이렇게 말씀하시자 장자의 아들 싱갈라까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세존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세존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세존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
교계 싱갈라 경이 끝났다.
'빠알리어 경전 > 디가 니까야' 카테고리의 다른 글
D33. 합송경(合誦經)(Sangiti Sutta) (0) | 2023.05.23 |
---|---|
D32. 아따나띠야 경(Atanatiya sutta. 아따나띠야 보호주(保護呪)) (0) | 2023.05.23 |
D30. 삼십이상경 (三十二相經, Lakkhan*a Sutta) (0) | 2023.05.23 |
D29. 정신경(淨信經, Pasadika Sutta) (0) | 2023.05.23 |
D28. 확신경(確信經)(Sampasadaniya sutta) (0) | 202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