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경전들이 여시아문(如是我聞, 이처럼 내가 들었다)으로 시작해서 신수봉행(信受奉行, 믿어 지니고 받들어 실천했다)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훗날에는 이 것이 경전 서술 양식의 전형이 되었지만 처음에는 다양한 양식들 중의 하나였을 뿐이다. 초기 경전으로서 그 유명한 〈담마파다, 법구경〉도 〈숫타니파타, 경집〉도 이런 양식을 취하지 않고 있다. 경전으로서 이러한 양식을 취한 최초의 것이 〈이티붓타카, 여시어경(如是語經)〉이다. 따라서 이 경은 여시아문으로 시작해서 신수봉행으로 끝나는 모든 경전들의 양식상의 모태라고 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티붓타카는〈숫타니파타〉와 함께 불교 경전들 중에서 성립 연대가 가장 빠른 경전, 즉 최고(最古)의 경전으로 간주된다. 가장 오래된 경전일수록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접 설법일 가능성이 높아진다. 바로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는 이 경을 읽지 않으면 안 될 충분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나는 내용상으로 〈법구경〉이나 〈숫타니파타〉보다도 훨씬 더 풍요로운 〈이티붓타카〉가 이 두 경전들보다 덜 알려진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짐작되는 이유는 전자의 두 경전이 후자보다 분량이 적고 읽기 쉬운 게송 위주로 구성되었다는 사실뿐이다.
빨리어 〈이티붓타카, Itivuttaka〉는 ‘이처럼 말해졌음’ 혹은 ‘이렇게 말해진 것’이라는 뜻이다. 이 〈이티붓타카〉를 일본 학자들이 〈여시어경〉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티붓타카〉를 이해하기 위해서 참고하지 않으면 안 될 한역(漢譯) 경전으로서 〈본사경, 本事經〉이 있다. 〈본사경〉은 〈이티붓타카〉를 고스란히 그대로 한역한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동일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따라서 우리 불자들은〈이티붓타카〉를 반드시 읽어야 하지만, 빨리어나 한문 혹은 영어나 일본어를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은 한글대장경 제 165권에 실려 있는 〈본사경〉을 읽으면 된다.
〈본사경〉의 첫머리는 ‘나(Ananda)는 세존으로부터 이러한 말씀을 들었다[吾從世尊聞如是語]’로 시작한다. 우리는 이로부터 대부분 경전들의 첫머리 말씀인 여시아문의 최초 원형을 볼 수 있다. 경전을 처음으로 여는 말을 여시아문으로 시작하는 취지는 아난다(Ananda)가 석가모니 부처님으로부터 이와 조금도 다름없이 들었으므로 이곳에 실려 있는 그대로 믿어도 좋다는 것을 강조하는 데 있다.
〈본사경〉은 당나라 현장 스님의 최초 번역 경전이다. 이러한 사실로부터도 이 경전의 성립시기와 중요성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본사(本事)라고 하면 부처님의 인행(因行), 즉 깨달음의 원인이 된 전생 이야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이 경전이 부처님의 과거세 이야기를 다룬 것이라고 해설하고 있다. 그러나 〈본사경〉은 경 이름의 의미와 달리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다룬 것은 아니다.
〈이티붓타카〉는 단 한 권으로 구성된 경전이 아니라 총 4편 112경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역인 〈본사경〉은 3품 7권 138경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을 4편으로 나누는 기준은 해당 주제의 법수(法數)에 따른 것이다. 예컨대 제 1편에서는 무명(無明) 등 하나의 주제만을, 제 2편에서는 감각기관과 음식 등 두 가지 주제를 함께, 제 3편에서는 무명과 갈애와 업 등 세 가지 주제를 함께 해명하는 방식이다. 그리고 이런 주제들을 산문으로 해명한 다음 반드시 게송으로 거듭 간명하게 정리한다.
따라서 〈이티붓타카〉의 성립과 구성상의 특징은 첫째, 석가모니 부처님의 직설에 가장 가까운 최고(最古)의 경전, 둘째, 여시아문의 양식과 산문을 게송으로 간명하게 재차 요약하는 중송(重頌) 양식의 모태, 셋째, 초기 불교사상의 다양한 집대성으로 정리된다.
부처님의 육성
‘법을 보는자는 나를 보는자요
나를 보는자는 법을 보는 자이다.’
〈이티붓타카〉의 내용은 다양하고 풍부하여 어느 하나의 주제로 요약하기는 어렵다. 출가는 물론 재가에까지 미치는 중요한 가르침들을 두루 다루고 있지만, 이 경은 결국 수행론과 윤리론으로 집약된다.
“내가 설하는 번뇌를 멸하는 도리는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알 수 없고 볼 수 없는 것은 설하지 않노라.” 부처님은 형이상학 혹은 창조설처럼 입증될 수 없는 공론(空論)이나 희론(戱論)들에 대해서는 논할 필요가 없음을 분명히 하신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언제나 해탈을 목적하고 있어 그대로 수행하면 반드시 그 결과를 알 수 있고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불교는 철학이 아니라 종교이며 부처님은 이론가가 아니라 실용주의자라는 점이 명백해진다.
“비구들이여, 가령 어떤 비구가 내 옷자락을 잡고 내 뒤를 발자국마다 따른다 할지라도, 그가 욕망의 격정을 품고 성난 마음을 품었거나 그릇된 소견을 지니고 게을러서 깨달음이 없다면, 그는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고 나는 그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다. 왜냐하면 그 비구는 법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며, 법을 보지 못하는 자는 나를 보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법을 보는 자는 나를 보는 자요 나를 보는 자는 법을 보는 자이다’라는 그 유명한 대목을 만난다.
부처님은 그리스 사람들이 기대한 ‘형상’이나 히브리 사람들이 간증하는 ‘소리’로는 만날 수 없다. 부처님은 법(法, dharma), 즉 어떠한 하나의 형상이나 소리로 고정될 수 없는 진리다. 진리가 부처님이기에 부처님은 항상 온 세상에 편재하신다. 그러므로 진리를 보는 자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시공을 초월하여 부처님을 본다.
“내가 모든 중생을 관찰하니, 계를 가볍게 여기는 탓으로 악취에 떨어져 윤회를 받고 있다. 이와는 달리, 이 도리를 잘 알아서 길이 계를 마음에 새겨 잊지 않는 자가 있다면, 그는 기필코 불환과(不還果)를 얻어서, 다시는 윤회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불교사의 한 때 계율을 가볍게 여기던 때가 있어 그것이 오늘날까지 막대한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러나 부처님 초기의 육성은 이처럼 계율에 단호하다. 계율을 지키지 않고서는 해탈은 없다. 우리가 부처님의 후예임을 자처하려면 그분이 제시하신 계율에서 한 발짝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부처님의 육성을 의지해 살아야 한다.
“이익과 명성에 집착하는 사람들이나 이익과 명성이 없어서 마음이 찌들어 있는 사람들 모두 비참한 존재로 다시 태어난다.”명리(名利)를 좇아 불나방처럼 모여들고 스러지는 오늘의 우리들이 마음에 새겨야 할 대목이다. 명리를 좇는 사람들은 물론이거니와 그것이 없어 한탄하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라는 말씀은 명리의 부질없음에 대한 부처님의 태도가 얼마나 단호한지를 알게 해준다.
〈이티붓타카〉의 가장 큰 의의는 부처님의 육성에 가까운 말씀을 만날 수 있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경전의 양식을 갖춘 수많은 문헌들 가운데는 양식만을 빌린 후대 제자들의 신앙고백이 적지 않다는 것을 아는 우리들로서는 그것이 진정한 부처님의 육성이라고 믿는 순간, 그 말씀들 한 마디 한 마디가 소름끼치는 전율로 다가온다.
〈이티붓타카〉가 재가의 윤리를 다루고 있다고 해서, 혹은 부처님 입멸 후 상당한 세월이 흐른 다음에 논란이 된 주제들 즉, 무아윤회론의 문제나 효도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그 성립연대를 훨씬 낮춰 잡으려는 학자들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도 훨씬 더 많은 내용상의 근거들이 초기경전으로서의 이 경전의 권위를 확보해준다.
윤해영/ 동국대 교수
출처: https://gikoship.tistory.com/15782902
여시어경(如是語經)
여시어는 산스크리트어 이티붓타카(Itivuttaka)를 번역한 말로서 '이렇게 말해진 것'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거의 대부분의 경전 첫머리에는 여시아문 (如是我聞) 즉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라는 글귀가 적혀 있는데, 여시어는 바로 이러한 경문을 뜻한다. 다시 말해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라는 말은 곧 '부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다'라는 말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이 말 속에는 부처님이 설한 것이므로 그대로 믿고 의심하지 말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 그만큼 이 경전은 중요하다는 얘기가 된다.
<여시어경>은 전체 4편으로 이루어져 있다. 제1편은 3장 27경, 제2편은 2장 22경, 제3편은 5장 50경, 제4편은 1장 13경으로서 총 112경이 된다. 팔리어 경장 중 소부의 네번째 경전이다.
각 경의 구성은 산문과 게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앞뒤에 정형적인 서문과 결문을 두고 있다. 산문의 끝에 '세존은 이것을 말하였으니, 여기에 이와 같이 말해진다.' 고 하는 정형문이 있고, 계속해서 게문으로 산문의 내용을 다시 설한다. 이는 게문이 산문에 대하여 '중송(重頌; 앞의 산문의 서술을 거듭 설명하는 것) 의 관계에 있음을 나타낸다. 4법까지의 법수(法數)에 관계 있는 것을 모은 경으로서, 제1편에서는 1법을, 제2편에서는 2법을, 제3편에서는 3법을, 제4편에서는 4법을 설한 경전을 모아 기록한 것이라 하겠다.
원형은 아마도 부파분열을 전후하여 성립된 것으로 보여, 팔리어 5부 중 소부의 원형이 성립된 최초기부터 그 속에 포함되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숫타니파타>와 더불어 가장 오래된 내용을 담고 있다고 보여진다. 그 교설의 내용을 살펴보면 출가자에 대한 교설도 담고 있으며, 사상적으로도 중요한 것이 적지 않다. 이에 해당하는 한역본으로서는 현장(玄裝)이 번역한 <본사경(本事經)>(7권)이 있다. 3법품으로 구성되고 전체 138경을 담고 있어서 팔리어본과는 계통을 달리하고 있으나 그 원천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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