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얻은 첫직장에서 육개월만에 짤렸었다. IMF로 인해 어려운 시기였음에도 불구하고 교수님의 부탁으로 얻은 직장이었다. 일도 잘 못하고 경험도 없는 나는 당연히 해고 일순위였다.
쉬는 동안 달라이라마의 '행복론'을 읽으면서, 내가 왜 사는지도 모르면서 그저 살아남기위해 달려왔던 날들을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행복하기 위해서 사는구나' 라는 그 단순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다.
다음으로 현각스님의 '하버드에서 화계사까지'라는 베스트 셀러를 우연찮게 읽게 되었다. 그 내용은 자세히 기억나지 않지만 책 내용에 나와 있던 현각스님의 스승님이신 숭산스님의 '오직 모를뿐'이라는 책을 읽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은 나로 하여금 '나는 불자다'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문답형의 글이었는데, 모든 내용이 합리적이었고, 숭고했었던 기억이 난다. 숭산스님에 대한 존경심에 '부처님께 재를 털면' 이었던가.. 를 읽었고 '선의 나침반'을 읽다가 끝내지 못하고 쳐박아 두었다.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들이었다.
다시 취업을 했었고, 두번 더 직장을 옮겨야 했었다. 나름 잘 정착해가며 살고 있었으나, 삶의 괴로움들은 나로 하여금 김제에 있는 금산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게 했다. 일주일이었던가.. 휴가를 내어 참여했었다. 염불수행 중 알 수 없는 눈물이 폭포처럼 쏟아지는 경험을 했었다. 무의식적인 참회가 되었던 순간이 아닌가 싶다. 이때가 이십대 후반부.. 내 이십대의 불법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불꽃이 피는 듯 했으나 살아남지 못했다.
내가 극복해야하는 번뇌들은 아마 직장과 관련이 있는 듯하다. 나이 삼십이 되니 직장에 염증도 느껴졌고, 뻔한 희망없는 미래가 싫기도 하여 직장을 관두고 캐나다로 어학연수에 올랐다. 일년은 영어로 대화하기에 택도 없는 기간이었고, 칼리지를 다니게 되었다. 졸업을 하니 한국에서 일한 경력이 있었던 관계로 바로 취업이 되었다. 이력서를 인터넷 사이트에 올려 놓으니 알아서 연락이 왔다.
일은 할만했고 열심히 달려왔다. 나름 일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다. 캐나다 첫 직장 11년. 그동안 결혼도 했고 비교적 행복했으나, 나의 일에 대한 집착과 열정은 나를 괴로움으로 내몰았다. 우연히 유튜브에서 법상스님의 법문이 눈에 띄었다. 괴로움을 없애주겠다는 내용이었다. 스스로 불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내게 반가운 소식이었고, 법문을 듣기 시작했다. 법상스님은 법문 내용을 이해 못하더라도 적어도 일년은 들어 보라고 하셨기에 아침 저녁으로, 주말엔 하루종일 들었다.
댓글이나 법문들을 들어 보면 견성을 하셨다는 분들이 종종 나왔다. 난 견성이 도대체가 뭔지도 모르겠고 모르는 내용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중 내 귀를 솔낏하게 했었던 내용은 연기법을 알면 해탈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연기법에 대한 법문들을 다 듣기 시작했다. 같은 시기에 문광스님의 수행을 해야하는 이유에 대한 법문을 듣고 명상을 시작하기도 했다. 명상하는 도중 이중표 교수님의 연기법이 생각이 나면서 문득 오온이 내가 아님을 깨닫게 되었다. 명상중 내가 하는 생각들이 모두 나의 안이비설신의의 경험에 의한 것임을 깨달았던 것이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닥치는 대로 법문 듣기를 이년, 명상하기를 일년. 그러던 중 삼매에 들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겨 인터넷을 찾아보다가 우연히 순일선원의 홈페이지에서 비교적 상세한 체험담을 읽을 수 있었다. 이는 유튜브의 알고리즘으로 내게 순일스님의 '진리의 길을 보다. 사성제' 법문을 듣게 했다. BTN에서 상영됐고 총 51회인 법문 동영상. 그 동안 수없는 법문을 들었었고 공부돼야할 내용들이 순차적으로 다가왔다. 온 우주가 내가 공부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고 공부할 곳으로 데려다 주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순일스님의 법문은 남달랐다. 내용도 좋고 목소리도 좋고, 법문 속도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았다. 그 감동은 나로 하여금 BTN에 있는 순일스님의 모든 법문들을 듣게 했다. '행복으로 가는 여정', '초기 경전으로 바라본 금강경'.
순일선원의 홈페이지를 보니 수행을 할 수 있는 선원이었다. 안그래도 명상을 제대로 배워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혼자 힘으로나 유튜브 상으로는 도저히 알 수 없는 까시나 수행들이 궁금하던 차였다. '이곳이다' 라는 느낌이 왔다. 내가 적을 두고 의지해야 하는 수행처. 그동안 불자라는 생각은 있었지만 마땅히 마음에 두고 다니는 절은 없었다. 세상은 내게 직장을 그만두게 했고, 한국으로 삼매 수행을 위한 여행을 떠나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