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경 4 - 1 (2011-11-19 (토)) - 순일스님
제4.
復次須菩提 菩薩於法 應無所住 行於布施 所謂不住色布施 不住聲香味觸法布施 須菩提 菩薩應如是布施 不住於相 何以故 若菩薩不住相布施 其福德不可思量 須菩提 於意云何 東方虛空 可思量不 不也世尊 須菩提 南西北方 四維上下虛空 可思量不 不也世尊 須菩提 菩薩無住相布施福德 亦復如是 不可思量 須菩提 菩薩但應如所敎住
부차수보리 보살어법 응무소주 행어보시 소위부주색보시 부주성향미촉법보시 수보리 보살응여시보시 부주어상 하이고 약보살부주상보시 기복덕불가사량 수보리 어의운하 동방허공 가사량부 불야세존 수보리 남서북방 사유상하허공 가사량부 불야세존 수보리 보살무주상보시복덕 역부여시 불가사량 수보리 보살단응여소교주
제4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법에 있어서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나니 이른바 형상(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소리(聲), 냄새(香), 맛(味), 접촉(觸)과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 하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응당 이와 같이 상(相)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느니라. 왜냐하면 만일 보살이 상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면 그 복덕은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不可思量). 수보리여 그대 생각은 어떠한가? 동쪽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可思量不)?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남서북방과 네 간방과 아래 위 허공을 가히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겠는가?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수보리여 보살이 상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보시하는 복덕도 또한 이와 같이 생각으로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보리여 보살은 다만 응당 가르친 바와 같이 머물지니라.
Ⅰ. 통론
해탈하기 위해서는 ‘나라고 하는 오취온이 소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眼耳鼻舌身意)’과 ‘형상, 소리, 냄새, 맛, 감촉, 법(색성향미촉법)’의 여섯 가지 감각장소를 초월해야 한다. 그 방법으로 ‘나(안이비설신의)’가 색성향미촉법에 머뭄이 없이 보시하라고 하셨다.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은 한 마디로 모두 ‘상(相)’이다. 모든 상(相)을 초월하면 해탈이다. 상(相)을 소멸하는 방법이 ‘머뭄이 없는 보시’이다. 그 결과인 공덕은 시방의 허공(해탈)과 같게 된다.
Ⅱ. 각론
“또한 수보리여 보살은 법에 있어서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하나니 이른바 형상(色)에 머물지 않고 보시하며 소리(聲), 냄새(香), 맛(味), 접촉(觸)과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 하느니라.”
3장에서 ‘내가 해탈 하려면 나 외의 다른 모든 중생들을 해탈 하게 하라’는 통론의 말씀이 계셨다. 이번 장부터는 그것을 행하는 각론의 방법들이 제시된다. 그 중에서 먼저 보시가 나온다. 다음은 보시와 관련된 원음경전의 말씀이다.
“비구들이여, 세 가지 경우를 통해서 신심 있고 확신 있는 자를 알아야 한다. 어떤 것이 셋인가?
그는 계를 잘 지키는 자 보기를 원하고, 정법 듣기를 원하며 인색함의 때를 여읜 마음으로 재가에 살고 아낌없이 보시하고 손은 깨끗하고 주는 것을 좋아하고 다른 사람의 요구에 반드시 부응하고 보시하고 나누어 가지는 것을 좋아한다.”
(앙굿따라니까야, 경우 경)
이것을 확신 있는 믿음의 3요소라고 한다.
1.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들을 보기를 원한다.
2. 정법 듣기를 즐거이 한다.
3. 아낌없이 보시한다.
‘믿음의 3요소’의 첫 번째로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을 보고 싶어 한다. 이러한 착한 남자(착한 여자)는 정법을 듣고자 한다.
두 번째로 정법을 즐거이 듣고자 한다. 정법을 듣고는 고요히 사유를 해본다.
세 번째로 정법을 따라서 실천한다. 즉 인색함의 때를 여읜 마음으로 아낌없이 보시를 즐거이 한다. 이와 같은 사람이 ‘믿음이 있는 자’이다.
보시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의 감각접촉을 조건으로 ‘자타로 나누어지는 경계’가 생기며 이어서 느낌, 갈애, 집착, 존재, 태어남(生) 그리고 늙고 병들고 죽음(老病死)과 함께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발생한다. 보시는 ‘인색’에 반대 되는 것이다. 인색은 ‘집착’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보시를 하게 되면 ‘집착’이 여의어지기 시작한다. ‘집착’은 이기적이다. 그러나 보시는 이타적이다. 이타적인 삶은 ‘자타의 경계’를 허문다.
그러므로 보살은 법-산스크리트본에는 ‘경계’로 되어 있다-에 대하여 응당 머무는 바 없이 보시를 행할 것이니 이른바 색에 머묾이 없이 보시를 해야 하며 성향미촉법에 머묾이 없이 보시를 해야 한다.
경계(법)에 머무르지 않고 아낌없이 보시를 하다보면 점차로 ‘안이비설신의와 색성향미촉법의 경계’가 소멸하게 된다. 경계가 완전히 소멸한 것은 ‘자타’가 소멸한 것이며 또한 오취온의 소멸이며 해탈이다.
보시와 반대 되는 ‘인색(함)’에 대해서 살펴보자. 다음은 원음경전의 9연기이다.
1. 갈애
2. 추구함
3. 얻음(취함)
4. 판단 분별
5. 탐욕(탐욕에 머물러)
6. 탐욕에 대한 집착(탐욕에 강요되어)
7. 움켜쥠(탐욕에 완전히 동요되어)
8. 인색함(질투와 인색)
9. 수호함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어떤 ‘대상’에 대해서 처음에는 갈애 정도만 갖는다. 곧 이어 그것을 취하고 난 후 그 감각적 욕망을 즐기게 된다. 그리고 탐욕은 점점 강해진다. 쉽게 이야기 하면 ‘중독’이 된다. 그 탐욕에 완전히 동요되면 이제 질투와 인색이 생긴다.
여기서 ‘인색함과 질투’는 수평적 상호의존성의 관계이다. 질투는 남의 성취를 싫어하는 것이며 인색함은 나의 성취를 남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인색해지면 ‘수호’하기 위해서 칼과 방패를 들고 싸우게 되고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의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일어난다. 이러한 ‘인색, 움켜쥠, 탐욕에 대한 집착, 탐욕’을 내려놓고 멀리 떠나보내는 방법이 바로 보시다.
인색함은 ‘非인색함’으로만 없어지고 탐욕은 ‘非탐욕’으로만 없어지는데 여기서의 ‘비인색함과 비탐욕’이 바로 보시다.
탐욕의 남김 없는 소멸이 해탈이므로 ‘색성향미촉법에 머무름 없이 아낌없이 보시를 해야 한다. 그런데 여기서 탐욕을 남김없이 소멸하기가 어려운 재가자의 경우에는 어떻게 살고 머물러야 할 것인가? 다음은 원음경전 말씀이다.
“계목을 잘 지키는 이는 방일하지 않은 이유로 탐욕에 머무르기만 하여도
1. 살아서 많은 재물을 모을 것이요
2. 좋은 명성을 얻을 것이요
3. 어떤 회중에 들어가도 두려움 없이 당당할 것이요
4. 몸이 무너질 때에 여행 가듯이 깨끗하게 준비하고 죽을 것이요
5. 몸이 무너진 후 누가 데려다 놓은 것처럼 바로 좋은 곳 혹은 천상세계에 태어나 있을 것이다.“
부양가족이 한명이라도 있다면 ‘탐욕’을 남김없이 소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이 경우에는 계율을 잘 지키며 ‘탐욕에 머무르는 정도’까지만 ‘탐욕’을 하라고 하셨다. 계율을 잘 지키는 사람은 방일(나태함, 게으름)하지 않은 이유로 살아서도 이익과 행복이 가득하고 죽어서도 이익과 행복이 넘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