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노니게경 서문
쿳다까니까야 테리가타-장노니게경
테리가타 의석 (전재성 역주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서문 담마빨라(Dhammapāla)
§1. 이제 장로니의 시들의 의취에 대한 찬석을 달 기회가 왔다.
수행녀들이 출가하여 구족계15)를 받게 된 상황을 먼저 밝히고 그 의취에 대한 찬석이 이루어진다면, 각각의 시들의 의취의 생성을 설명하는 것이 쉽고도 명백해지기 때문에,
처음부터 그것을 보여주기 위해 차제적인 이야기를 간략하게 설한다.
15) upasampadā : 구족계(具足戒)는 승단에의 입단을 뜻한다. Vin. I. 58; Vin. IV. 130을 참조하라.
Mrp. III. 165에 따르면, 구족계에는 다음과 같은 종류가 있다.
① 수행승이여 오라는 입단(ehibhikkhu-upasampadā)
② 귀의를 통한 입단(saraṇāgamana-upasampadā)
③ 질의응답을 통한 입단(pañhavyākaraṇa-upasampadā)
④ 세 번을 물어본 뒤에 승단회의를 통해 결정되는 입단(ñatticatutthakamma-upasampadā)
⑤ 중요한 가르침을 통한 입단(garudhamma-upasampadā)
⑥ 양편승단에서의 입단(ubhatosaṅghe-upasampadā)
⑦ 사자(使者) 또는 전법사를 통한 입단(dūta-upasampadā).
§2. 이 세상의 수호자께서는 인간의 존재와 남성적 특징의 성취 등으로 언급한
여덟 가지 고리16)를 결합시키고 디빵까라17) 부처님의 발아래 위대한 결단을 내려
서른 가지 초월의 길18)을 채우고 스물네 명의 부처님19)에게 수기를 받아서
차례로 초월의 길을 따라서 친지를 이롭게 하고, 세상을 이롭게 하고,
깨달은 님들을 이롭게 하며 정점에 도달해서 도솔천궁20)에 태어나,
거기서 살만큼 살다가 철위산21)의 만 명의 천신들이
그가 부처님이 되도록 인간의 존재로 태어나길 요청하면서 말했다.
“위대한 영웅이시여,
당신의 시간이니, 모태에 드소서.
천신들을 뛰어넘어
불사(不死)의 경지를 깨우치소서.”22)
16) atthaṅgāni : Jāt. I. 14, 44; Bv. II. v. 59에 따르면,
'① 인간의 존재, ② 남성적 특징, ③ 인연(因緣)이 있는 것, ④ 부처님의 친견(親見),
⑤ 출가(出家)하는 것, ⑥ 공덕(功德)을 갖추는 것, ⑦ 봉사(奉仕), ⑧ 원심(願心)'의 고리를 뜻한다.
17) Dīpaṅkara : 디빵까라 부처님(燃燈佛), 또는 정광여래(錠光如來)라고도 한다.
역사적인 부처님인 싸끼야무니 부처님 이전의 과거세에 출현한 스물 네 부처님 가운데 첫 번째 부처님이다.
Buv.. 207과 Mhv. I. 5에 따르면,
그는 람마바띠(Rammavatī)에서 왕 쑤데바(Sudeva)와 어머니 쑤메디(Sumedhā) 사이에 태어났다.
그는 가장으로서 1000년간을 항싸(Haṃsā), 꼰짜(Koñcā), 마유라(Mayūrā)의 궁전에서 살았고,
아내 빠두마(Padumā)와 아들 우씨바칸다(Usabhakhandha)를 두었다.
그는 이후 코끼리를 타고 출가하여 십 개월간 고행을 닦아 깨달음을 얻었다.
그의 보리수는 삡팔리(Pipphalī) 나무였다.
그 때에 길상초를 제공한 자는 사명외도였던 쑤난다(Sunanda)였다.
그는 많은 외도를 교화시켰고 팔만 사천의 아라한의 시중을 받았다.
그는 3-4 미터정도의 키를 갖고 있었고
십만 년의 나이에 난다라마(Nandārāma)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그의 제자로는 수행승 쑤망갈라(Sumaṅgala)와 띳싸(Tissa), 수행녀 난다(Nandā)와 쑤난다(Sunandā),
재가의 남자신도로는 따빳쑤(Tapassu)와 발리까(Ballika),
여자신도로는 씨리마(Sirimā)와 쏘나(Sonā)가 유명했다. 그리고 그의 시자는 싸가따(Sāgata)였다.
디빵까라 여래가 완전한 열반에 드신 후에 그의 가르침은 십만 년간 지속되었다.
싸끼야무니 부처님이 전생에 쑤메다(Sumedha)라고 하는
아마라바띠(Amaravatī)의 부유한 바라문이었을 때에 출가하여 히말라야에서 대단한 고행자가 되었다.
그가 람마(Ramma)시를 방문하였을 때에 사람들이 디빵까라 여래를 위해 길을 장식하고 있었다.
디빵까라 여래는 그 나라 왕의 아들로서 왕의 귀의와 호의를 받으며 두루 가르침을 설하고 계셨다.
서른 두 가지 상호를 갖춘 거룩한 디빵까라 여래를 만난
젊은 바라문 쑤메다는 환희심을 느끼고 미래에 부처님이 될 것을 서원한다.
그는 부처님께 바치기 위해 그동안 모은 돈으로 오백 깔루빠하나라는
엄청나게 비싼 댓가를 지불하고 어떤 바라문 처녀에게서 연꽃 다섯 송이를 사게 된다.
그것을 인연으로 쑤메다는 이 처녀와 세세생생 부부의 연을 맺게 된다.
쑤메다는 처녀와 함께 그 꽃송이들을 디빵까라 여래가 지나갈 때에 뿌린다.
그런데 그 꽃들은 다른 사람이 뿌린 꽃과는 달리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디빵까라 여래의 신통력에 의해서 그 꽃들은 차양처럼
디빵까라 여래의 머리를 화려하게 장식하게 된다.
이 장엄한 광경을 본 젊은 바라문은 더욱 환희심을 느끼고 자신의 사슴 가죽옷을 벗어 땅에 깔고는
디빵까라 여래의 발에 엎드려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디빵까라 여래의 발에 묻은 흙을 닦아드린다.
디빵까라 여래는 인연이 무르익은 것을 보고 그 젊은 바라문에게
장차 먼 미래에 싸끼야 족의 까삘라국에 태어 나 자신과 같은 부처가 되어
싸끼야무니라고 불리고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며 중생을 제도하게 될 것이라고 수기를 준다.
18) tiṃsapāramī : Jāt. I. 73; Vism. 318-325에 따르면,
부처님의 전생담인《자따까》에 열 가지 초월의 길의 사상이 등장한다.
한역에서는 십바라밀(十波羅蜜)이라고 한다.
이것이 서른 가지 초월의 길 즉, 삼십바라밀(三十波羅蜜)이 된 이유는
각각의 바라밀은 정도에 따라 일반적 · 우월적 · 승의적으로 나누어 분류했기 때문이다.
초월의 길은 부처님께서 전생에 보살이었을 때의 전생담인《자따까》에서
보살이 닦고 익힌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그렇지만 전생담은 그 게송 부분들만이 원음 경전에 속하기 때문에 굳이 경장적인 근거를 찾는다면,
『붓다방싸』(Buddhavaṃsa)의 「쑤메다의 이야기』와
『짜리야삐따까』(Cariyapitaka)에서도 등장하지만,
상세한 논리적 설명은 붓다고싸의 『청정도론』에 보인다 :
네 가지 하느님의 삶(brahmavihāra : 四梵住 = 無無量心)을 실천하면,
이러한 열 가지 초월의 길을 달성할 수 있다고 한다.
위대한 존재(mahāsatta : 摩訶薩)는
① 일체의 뭇삶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일체의 뭇삶의 최상의 행복을 위하여 보시를 행한다.
② 그들에게 해악을 끼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계행을 지킨다.
③ 계행을 통한 초월을 이루기 위해, 여읨을 닦는다.
④ 뭇삶에 유익하거나 해로운 것을 분명히 이해하기 위해 지혜를 닦는다.
⑤ 뭇삶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 정진을 닦는다.
⑥ 영웅이 되고 최상의 힘을 얻고 보살이 되기 위해 뭇삶의 잘못에 대한 인내를 연마한다.
⑦ 보시나 무엇을 하기로 약속하면, 진실 때문에 그것을 깰 수가 없다.
⑧ 또한 흔들림 없는 결정으로 뭇삶의 이익을 위하여 일한다.
⑨ 또한 흔들림 없는 자애로 일체 뭇삶을 돕는다.
⑩ 그리고 평정으로 보답을 바라지 않는다.
일반적 초월의 길과 우월적 초월의 김과 승의적 초월의 길의 차이는 무엇인가?
『짜리야삐따까』의 주석서(Prd. VII)에는 여러 학자들의 견해가 상세히 나와 있지만,
여기서는 담마팔라(Dhammaphāla) 장로의 견해를 소개 한다 :
① 보시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을 기부하는 것은 일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기증하는 것은 우월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고,
목숨을 보시하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보시이다.
② 계행 : 예들 들어 남이 소유한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을 해치지 않는 것은 일반적인 계행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의 장기를 해치지 않는 것은 우월한 계행이고,
생명을 해치지 않는 것은 승의적 초월의 길의 계행이다.
③ 출리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자르고 출가하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출리이고,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에 대한 집착을 자르고 출가하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출리이고,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출가하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출리이다.
④ 지혜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해야 할 일과 유익한 일에 대해 분명하게 결정하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지혜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해야 할 일과 유익한 일에 대해 분명 하게 결정하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지혜이고,
그들의 생명에 대한 집착을 없애고
해야 할 일과 유익한 일에 대해 분명하게 결정하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지혜이다.
⑤ 정진 : 모든 일반적 초월의 길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정진 이고,
모든 우월적 초월의 길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정진이고,
모든 승의적 초월의 길을 만나려고 노력하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정진이다.
⑥ 인내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에 직면하여 인내하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인내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를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에 직면하여 인내하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인내이고,
그들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상황에 직면하여 인내하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인내이다.
⑦ 진실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의 기관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고,
그들의 생명과 관련하여 진실을 떠나지 않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진실이다.
⑧ 결정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의 기관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흔들림 없는 결정이 우월적 초워의 결정이고,
그들의 생명의 파괴의 위기에도 불구하고 방해받지 않는 결정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결정이다.
⑨ 자애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 대상의 파괴가 도래하더라도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를 떠나지 않는 것이 일반적 초월의 길의 자애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의 기관의 파괴가 도래하더라도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를 떠나지 않는 것이 우월적 초월의 길의 자애이고,
그들의 생명의 파괴가 도래하더라도
모든 존재에 대한 자애를 떠나지 않는 것이 승의적 초월의 길의 자애이다.
⑩ 평정 : 예를 들어, 아내들 · 아이들 · 재물들과 같은
외적인 대상을 동 건 해치건 상관없이 존재와 의지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일반적 평정이고,
그들의 손이나 발 등과 같은 신체의 기관을 돕건 해치건 상관없이
존재와 의지의 균형을 유지 하는 것이 우월적 평정이고,
그들의 생명을 돕건 해치건 상관없이 존재와 의지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승의적 평정이다.
19) catuvīsatibuddhā : 한역에서 과거이십사불(過去二十四佛)이라고 하는데,
석가모니 이전 스물네 분으로 부처님들의 존함은 다음과 같다 :
① 디빵까라(Dīpaṅkara)
② 꼰당냐(Koṇḍañña)
③ 망갈라(Maṅgala)
④ 쑤메다(Sumana)
⑤ 레바따(Revata)
⑥ 쏘비따(Sobhita)
⑦ 아노마닷씬(Anomadassin)
⑧ 빠두마(Paduma)
⑨ 나라다(Nārada)
⑩ 빠두뭇따라(Padumuttara)
⑪ 쑤메다(Sumedha)
⑫ 쑤자따(Sujāta)
⑬ 삐야닷씬(Piyadassin)
⑭ 앗타닷씬(Atthadassin)
⑮ 담마닷씬(Dhammadassin)
⑯ 씻닷타 (Siddhattha)
⑰ 띳싸(Tissa)
⑱ 풋싸(Phussa)
⑲ 빗빳씬(Vipassin)
⑳ 씨킨(Sikhin)
㉑ 벳싸부(Vessabhū)
㉒ 까꾸싼다(Kakusandha)
㉓ 꼬나가마나(Koṇāgamana)
㉔ 앗싸빠(Kassapa).
이들의 삶에 대해서 상세한 것은 『붓다방싸(Buddavaṃṣa:佛姓經)』를 참조하기 바란다.
20) Tusitabhavana : 한역의 도솔천(兜率天)을 말한다. 싼뚜씨따(Santusita)는 도솔천의 지배자이다.
도솔천은 다음 생에 사바세계에 와서 부처님이 되는 과거·현재·미래의 보살이
머물렀거나 머물거나 머물 곳으로 불교의 세계관에서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AN. II. 130에 따르면, 도솔천(兜率天宮)은 보살이 인간으로서의 최종적 삶의 직전에 태어나는 곳이다.
'보살이 만족을 아는 신들의 하느님 세계에서 몸을 버리고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면서 모태에 들어갈 때에
신들의 세계, 악마들의 세계, 하느님들의 세계, 성직자들과 수행자들,
그리고 왕들과 백성들과 그 후예들의 세계에서
신들의 위력을 뛰어넘어 측량할 수 없는 광휘로운 빛이 출현한다.
무시무시하고 바닥이 없고 암흑으로 덮여있고 칠흑같이 어두운 간극세계에는
큰 신력과 큰 위력을 지닌 해와 달도 비추지 못하는데,
그곳에도 측량할 수 없는 신들의 위력을 뛰어넘는 광휘로운 빛이 나타난다.
그곳에 태어난 뭇삶들은 그 빛으로 서로를 알아보고
'여기에 태어난 다른 뭇삶들도 있구나!'라고 부르짖는다.
이렇게 오신 님, 거룩한 님, 올바로 원만히 깨달은 님이 출현할 때에
이와 같은 첫 번째 아주 놀랍고 예전에 없었던 것이 출현한다.
21) cakkavāḷa : 세계는 원반모양의 철위산(鐵圍山)으로 이루어졌는데,
그 대부분은 물에 덮여 있고 북남동서로 네 개의 대륙이 있다. 이 우주에는 이러한 세계가 무수하게 있다.
이 세계가 셋이 둘레가 합하여 하나의 삼각 시스템을 형성하고 그 삼각 시스템 사이에 간극세계가 있다.
여기에는 어머니의 목숨을 빼앗고, 아버지의 목숨을 빼앗고, 거룩한 님의 목숨을 빼앗고, 악독한 마음으로 여래의 몸에 피를 흘리게 하고, 참모임을 분열시키는
오무간업(五無間業)을 지은 사람들이 들어간다.
§3. 그는 그 천신들에게 허락을 하고,
다섯 가지 광대한 관찰23)을 하고 싸끼야 족의 쑷도다나24) 대왕의 가문에 대해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모태에 들어가 열 달 동안,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지내다가, 새김을 확립하고 올바로 알아차리며 거기에서 나와서,
룸비니25) 숲에서 탄생하여 다양한 유모 등에 의한 커다란 도움을 적절히 받으면서 점차로 자라나 세 궁전26)에서 다양한 무희들과 사람들에 둘러싸여 천신처럼 번영을 누렸다.
23) pañcamahāviloka : Ja. I. 48에 따르면,
1 시기(時機), 2 국토(國王), 3 지방(地方), 4 가계(家系), 5 모친(母親)과 그 수명의 길이를 뜻한다.
24) Suddhodana : 부처님의 아버지로 한역의 정반왕(淨飯王)을 뜻한다.
25) Lumbīnī : 싸끼야 족의 수도인 까삘라밧투(Kapilavatthu) 근처로
룸비니(Lumbīnī) 숲에서 고따마 부처님이 태어났다.
이 도시는 고따마 부처님의 아버지 갖도다나(Suddhodana) 왕이 다스리고 있었고,
그곳을 흐르던 로히니(Rohiṇī) 강을 사이에 두고 꼴리야 족의 왕국과 마주하고 있었다.
26) tipāsāda : 고따마 부처님이 지낸 인도의 세 계절에 알맞은
람마(Ramma), 쑤람마(Suramma), 쑤바(Subha)의 세 궁전을 말한다.
§ 4. 그러다 늙고 병들고 죽는 사람들을 보았기 때문에 외경이 생겨나서 궁극적인 앎이 성숙하자 감각적 쾌락의 욕망에 서 위험을 보고 여임에서 공덕을 보고
왕자 라훌라27)가 태어나는 날에 찬나28)와 함께 준마 깐타까를 타고
천신이 열어놓은 성문을 통해 한 밤중에 위대한 출가를 결행했다.
27) Rāhula : 부처님의 제자 수행승 가운데
'배우기를 열망하는 님 가운데 제일(密行第一: aggo sikkhākāmānaṃ)'이다.
고따마 붓다(Gotama Buddha)의 외아들이다. 아버지가 출가하던 날 태어났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성취한 뒤 쑷도다나 왕의 초청으로 까삘라밧투 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
라훌라의 어머니는 아들을 부처님에게 보내서 유산의 승계를 요청했다.
부처님은 침묵한 채 공양을 들고 왕궁을 떠났다.
라훌라가 좇아 나서자 부처님은 마침내 싸리뿐따를 시켜 라훌라를 참모임에 출가시켰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어린 아이들의 출가는
부모의 허락을 맡아야 한다고 요청하자 부처님은 이에 동의했다.
그러나 라훌라는 이미 출가했고 부처님은 그에게 많은 가르침을 전했다.
어렸을 때 라훌라는 한 줌의 모래를 집어 들고
‘오늘 내가 이 모래알처럼 많은 가르침을 얻기를 바란다.'고 기도했다.
라훌라가 일곱 살이었을 때 부처님은
「암발랏티까에서 라훌라를 가르친 경(Ambalatthikarāhulovādasutta : MN. I. 414)」을 설해
농담으로라도 거짓말을 하지 말 것을 설했고, 라훌라가 열여덟 살 때
「라훌라에 대한 훈계의 큰 경(Mahārāhulovādasutta : MN. I. 420)」을 통해
위빠싸나 명상을 가르쳤으며, 나중에 지혜가 무르익었을 때
「라훌라에 대한 훈계의 작은 경(Cūlarāhulovādasutta : MN. III. 277)」을 설해
깨달음을 얻어 거룩한 님이 되도록 했다.
28) Channa : Srp. II. 317에 따르면, 그는 여래와 한 날 한 시에 태어나
위대한 유성출가의 날에(mahābhinikkhammadivase) 함께 했고 나중에 스승 앞에 출가하여
'나의 부처님, 나의 가르침'이라고 하면서
무례하고 악의적이었고 청정한 수행승들에게 욕지거리를 해서 그들과 충돌한 수행승이다.
이 경은 부처님께서 완전한 열반에 드신 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실 때에 수행승들이 찬나를 침묵으로 대할 것(brahmadaṇḍa)을 지시했다.
§ 5. 그날 밤 동안 세 왕국29)을 지나 아노마30) 강가에 도착 하여
위대한 하느님 가띠까라31)가 가져온 거룩한 님의 깃발을 들고32) 출가하여
즉시, 예순 살의 장로처럼 품행을 갖추어 경건한 위의로
차례로 라자가하33) 시에 도착하여 탁발을 하시고, 빤다바34) 산록에서 식사를 하고,
마가다35) 왕국의 왕이 초대하였지만 그것을 거절하고, 박가바36)의 공원으로 가서 그를 사사하고, 그후 알라라37)와 웃다까38)를 사사했으나 그 모든 것에 만족을 얻지 못하고 우루벨라39) 지역으로 가서 거기서 육년 고행40)을 했다.
<*arahattaddhaje gahetvā 거룩한 님의 깃발을 들고: '가사를 입고'라는 뜻이다.>
29) tīṇi rjjāni : 싸끼야 족의 왕국, 꼴리야 족의 왕국, 말라 족의 왕국을 말한다.
또는 까삘라밧투, 데바다하, 꼴리야를 뜻한다.
30) Anomā : 까삘라밧투 시에서 부처님께서 출가한 아노마 강까지는
30요자나(1요자나 = 약14~16km) 거리였다.
31) Ghaṭīkāra : MN. II. 45의 도기장이의 경(Ghāṭīkārasutta)에 따르면,
가띠까라는 깟싸빠(Kassapa) 부처님 시대에 살았던 도기장이였고 깟싸빠의 열렬한 신도였다.
그는 고따마 부처님의 도반으로서 성적 교섭의 습관을 멀리하고 세속의 자양을 여의고
청정히 수행해서 성공으로 타락하지 않는 하느님의 세계에 태어나서 하느님이 되었다.
32) arahattaddhajje gahetvā : ‘수행승의 의복인 가사를 입고'라는 뜻이다.
33) Rājagaha : 한역으로 왕사성(王舍城)인데, 부처님 당시 마가다(Magadha) 국의 수도였다.
지금은 라즈기르(Rājgir)라고 불리며 비하르(Bihār)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34) Paṇḍava : 빤다바 산은 라자가하 시를 둘러싼 다섯 산(五岳) 가운데 한 산이다.
35) Magadha : 마가다 국은 부처님 당시의 사대공화국 가운데, 그리고 십육대국 가운데 가장 큰 왕국으로 부처님 당시의 수도는 라자가하(Rājagaha)였고
나중의 수도는 빠딸 리끗따(Pāṭaliputta)였다.
당시 마가다 국은 8만 마을과 둘레가 1,260km에 달하는 넓이였다.
마가다 국은 수도인 라자가하의 남쪽에는 거대한 노천 철광석 광산을 갖고 있었고
동남쪽에는 황동광이 출토되었는데 그것으로 강력한 전제국가가 될 수 있었다.
부처님 당시의 마가다의 국왕은 빔비싸라(Bimbisāra)였는데,
그는 앙가(Aṅga) 국을 정벌하면서 갠지스 강변의 무역로를 확보하여 국가적인 부를 축적하였다.
빔비싸라 왕과 아자따삿뚜 왕에서 700년 후 아쇼카(Asoka) 왕에 이르기까지
마가다는 북인도의 역사를 장식했다. 빠알리어도 마가다어로 알려져 있다.
싸리뽕따와 목갈라나도 마가다 국 출신이다. 오늘날의 남 비하르에 해당한다.
36) Bhaggava : '옹기장이'라는 뜻이 있으나, 이 스승은 어디에서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천신을 포함한 다섯 명의 스승에 대해서는 Miln. 235에 언급되어 있다.
37) Āḷāra Kālāma : MN. I. 160의 '고귀한 구함의 경[Ariyapariyesanāsutta]'에
그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이야기가 있다.
알라라 깔라마(Āḷāra Kālāma 또는 Aḷāra Kālāma)는 고따마 씻닷타(Gotama Siddhattha)가 출가한 후에 만난 두 스승 가운데 한분으로, 다른 한 분은 웃다까 라마(Uddaka Rāmaputta)이다.
그는 요가 수행에서 '아무 것도 없는 세계(ākiñcaññāyatana)'에 들어 이를 고따마에게 가르쳤다.
<대반열반 경>(DN. II, 130)에 보면, 말라 족의 북꾸씨(Pukkusa)가 알라라 깔라마의 제자였는데 나중에 부처님에게 귀의했다.
그는 자신의 과거 스승에 대하여, '알라라 깔라마는 밖에 나와 깨어 있었지만,
선정에 들어 오백 대의 수레가 지나가는 소리를 듣지 못했다.'고 묘사하고 있다.
보살 - 깨닫기 전의 부처님 - 은 알라라 깔라마의 가르침을 성취하고
알라라 깔라마에 만족하지 못하여 그의 곁을 떠났다.
Miln, 230에 따르면, 그는 고따마의 네 번째 스승이었다.
38) Uddaka Rāmaputta : MN. I. 160의 '고귀한 구함의 경[Ariyapariyesanāsutta]'에
그에 대한 비교적 상세한 이야기가 있다.
고따마(Gotama)가 출가한 뒤에서부터 정각을 이루기 전까지의 스승들 가운데 한 분으로 그는 '지각하지도 않고 지각하지 않는 것도 아닌 세계(nevasaññānāsaññāyatana : 非想非非想處)'에
관하여 가르치고 있었다. 경전은 결정적인 결론을 이끌지는 못하지만,
그 자신이 아직 비물질계(無色界)의 네 번째 선정의 세계에 도달하지 못했음을 암시한다.
Miln. 230에 따르면, 그는 고따마 의 다섯 번째 스승이었다.
부처님은 곧 그의 가르침을 성취하고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를 떠났다.
39) Uruvelā : 붓다가야(Buddhagayā)의 보리수 근처에 있는 네란자라(Nerañjarā) 강가의 한 지역이다.
부처님은 정각을 이루기기 전의 보살이었을 때에 스승이었던
알라라(Āḷāra)와 웃다까(Uddaka)를 떠나 소위 다섯 무리의 수행승(五比丘) -
꼰당냐(Kondañña), 밥빠(Vappa), 밧디야(Bhaddiya), 마하나마(Mahānāma), 앗싸지(Assaji) – 와 함께 육년 간의 고행을 하던 장소였다.
나중에 부처님은 고행을 위해 선택한 장소가 쎄나니가마(Senānigāma)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오비구는 보살이 고행을 늦추자 보살을 떠났다.
보살은 쎄나니가마 마을의 쑤자따(Suiātā)의 유미죽의 공양으로 몸을 회복하고
네란자라 강에서 목욕을 하고 아자빨라니그로다 나무 아래서 정각을 이루었다.
40) chabbassadukkara : MN, I. 77-81을 참조하라.
§6. 그러나 고귀한 진리를 꿰뚫을 수 없는 것을 알고 '이것은 깨달음의 길이 아니다.'라고 알고 거친 음식을 받고 며칠 동안 기력을 회복하고 비싸카41) 월의 보름날에 쑤자따42)가 준 최상의 음식을 들고 황금색 발우를 강의 상류 쪽으로 던져 버리고, '나는 오늘 깨달은 님이 되겠다.'라고 결심했다.
저녁 무렵 용왕 깔라43)가 그 덕성을 찬탄했다.
그는 보리수 좌, 부동의 자리에 올라 동방세계를 향해 불패의 가부좌를 틀고
네 가지 고리를 갖춘 정진44)을 확고히 하고 태양이 사라지기 전에 악마의 힘을 쳐부수고 초야에 전생의 삶에 대한 새김45)을 새기고, 중야에 하늘눈46)을 깨끗이 하고, 후야에 조건적 발생에 대한 연기47)를 순역으로 조건의 행상을 파악하며 통찰을 계발하였으니, 모든 깨달은 님께서 성취하였으나, 다른 사람들과는 공통되지 않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성취했다.
그는 거기서 열반에 기초한 경지의 성취에 칠 일 간을 보내고
그러한 방식으로 다른 칠 일 간을 보리수 좌에서 보냈다.
라자야따나48) 나무 아래서 밀병(餠)을 들고,
아자빨라니그로다49) 나무 아래서 법성(法性)의 심오함을 자세히 관찰했다.
41) visākhā : = yesākha m. vesākhā f. [<visākhā] 비사거(毘舍佉), 비사거월(毘舍佉),
오월(五月 : 양력 4월 16일 ~ 5월 15일)[남방음력 1월 16일 ~ 2월 15일].
42) Sujātā : 상기의 우루벨라에 대한 주석을 참조하라.
43) Kāḷa : 용왕의 이름이다.
44) caturaṅgasamannāgataviriya : AN. I. 50의 '차라리 ① 피부와 ② 근육과 ③ 뼈는 말라버려라.
④ 몸 안의 살과 피는 고갈되어 버려라. 장부의 끈기, 장부의 노력,
장부의 용맹으로서 얻을 수 있는 것을 얻지 못하고 정진을 그만 두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또는 Stn. 433-434의
'이러한 정진에서 나오는 바람은 흐르는 강물조차 마르게 할 것이다. 이처럼 용맹을 기울이는 나에게
① 피가 어찌 마르지 않겠는가! 몸의 피가 마르면, ② 담즙도 ③ 점액도 마르리라.
④ 그리고 살이 빠지면, 마음은 더욱 더 맑아지고 나는 새김과 지혜, 그리고 삼매를 확립한다.'에서
①~④를 의미한다. 또는 네 가지 올바른 노력((四正勤)을 뜻한다 :
① 제어의 노력(律儀勸: saṁvarappadhāna)은
아직 생겨나지 않은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이 생겨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을 말한다.
마음의 장애는 정신적인 흐름 속에 지속되지만 감각적 체험의 유입을 통해서 활성화된다.
감각적 체험은 감각자료,
즉 시각자료(色), 청각자료(聲), 후각자료(香), 미각자료(味), 접촉자료(觸)로 구성된다.
이러한 감각자료들은 의식에 의존하는 감각과 만나게 된다.
이때 의식이 함께 수반하면서 감각자료는 지속되고 평가되고 적절한 반응을 일으킨다.
의식이 그러한 자료적 인상에 대해 이치에 맞는 정신활동[如理作意]을 하지 않으면
감각자료는 악하고 불건전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상태로 오염된다.
이러한 오염의 경향은 감각 대상에 따라서 규정된다.
매력적인 인상은 탐욕, 혐오적인 인상은 분노, 중성적인 대상은 어리석음을 수반하는 오염을 일으킨다.
따라서 이러한 오염을 제거하기 위해 감관을 다스려야 한다.
② 버림의 노력(斷勸: pahānappadhāna)은
이미 생겨난 악하고 불건전한 것들을 버리는 것이다.
감관을 제어하고 아직 생겨나지 않은 장애들을 극복하였더라도
과거의 업으로부터 유래된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가 남아 있게 마련이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것이 '버림에 의한 노력'이다. 여기에는 다섯 가지 정신적 장애가 포함된다.
다섯 가지 장애는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생겨난 것이므로
그 조건을 소멸시킴으로써 장애를 제거할 수 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악하고 불건전한 사유를 없애는 것은
착하고 건전한 것에 대한 숙고를 통해 없어지지만,
궁극적으로는 착하고 건전한 것에 대한 사유마저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착하고 건전한 것으로 악하고 불건전한 것을 대치하는 것은
마치 능숙한 미장이나 그 도제가 ‘작은 쐐기로 큰 쐐기를 제거하는 것
(MN. II. 116 : sukhumāya āṇiyā olārikam āṇiṁ abhinihaneyya)'과 같다.
궁극적으로는 그 착하고 건전한 것도 소멸되어야 하는 것이다.
③ 수행의 노력(修勤 : bhāvanāppadhāna)은
아직 일어나지 않은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수행은 다양한 측면을 가지지만 경전에서
특히 일곱 가지 깨달음 고리(七覺支: satta bojjhaṅgā)를 들고 있다.
새김의 깨달음 고리, 탐구의 깨달음 고리, 정진의 깨달음 고리, 희열의 깨달음 고리,
안온의 깨달음 고리, 집중의 깨달음 고리, 평정의 깨달음 고리를 닦아야 한다.
④ 수호의 노력(守護勤 : anurakkhaṇāppadhāna)은
이미 생겨난 착하고 건전한 것들을 유지하고 계발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정신의 집중을 통해 나타나는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를 상기시키는
지각에 대한 인상(現相 : nimitta)을 수호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수호의 노력은 해골과 뼈로 구성된 시체에 대한 지각, 벌레들이 모여 우글거리는 시체에 대한 지각,
푸르게 멍든 어혈을 지닌 시체에 대한 지각, 고름이 가득 찬 시체에 대한 지각,
부패해서 갈라진 시체에 대한 지각, 부푼 시체에 대한 지각 등을 수호하는 데 있다.
이러한 존재의 궁극적인 괴로움, 즉 죽음에 수반되는 현실의 처참함을 자각함으로써
본질적으로 존재의 속박을 싫어하여 떠나 그것에서 벗어나 해탈을 수호하는 데 있다.
45) pubbenivasānussati : 전생의 삶에 대한 새김(宿命通)을 뜻한다.
46) dibbacakkhu : 타인의 업과 과보를 아는 하늘(天眼通)을 뜻한다.
47) paṭiccasamuppāde ñāṇa : 연기(緣起)에 대한 앎을 뜻한다.
연기란 조건적 발생을 말하는 것으로 초기불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다.
부처님은 '연기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연기를 본다.(MN. I. 190)'라고 말했다.
조건적 발생의 법칙에 대한 가르침의 궁극적 목적은 윤회를 지탱하는 조건과
윤회에서 벗어나는데 필요한 조건을 설명하는 것이다.
윤회 안에서 존재는 무상한 것은 괴로운 것이다.
고통을 끝내려면, 윤회에서 벗어나야 한다.
해탈을 얻는다는 것은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인과적인 고리를 잘라내는 것인데,
그것은 인과적 유형을 규정하는 조건적 발생의 법칙인 연기에서의
인과적인 유형을 이해하기 시작하는 과정과 동시에 주어진다.
중요한 것은 연기의 일반원리와 십이연기의 원리로 설명할 수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 가운데, 연기에 관한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이것이 있다면, 저것이 있다.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
이것이 없다면 저것이 없다. 이것이 소멸하면 저것이 소멸한다.
(imasmiṁ sati idaṁ hoti, imassuppadā idaṁ uppajjati.
imasmiṁ asati idaṁ na hoti, imassa nirodhā idaṁ nirujjhati)'라는 원리 속에서 드러난다.(12 : 21)
이것에 대한 번역은 동진(東晉)의 승가제바(僧伽提婆)는 『중아함경』의 「설처경(說處經)」에서
‘약유차즉유피(若有此卽有彼) 약생차즉생피(若生此卽生彼)
약무차즉무피(若無此卽無彼) 약멸차즉멸피(若滅此卽滅彼)'라고 번역했는데,
이것은 현대철학에 맞는 가장 탁월한 한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연기의 일반적인 원리는 전형적인 십이연기뿐만 아니라
광범위한 다른 일반적인 인과원리에도 적용될 수 있다.
실제로 부처님의 모든 가르침은 그것이 우주론적이든 사회적이든 심리적이든
생물학적이든 해탈론적이든 모두 이 원리에 따르고 있다.
서양의 경험철학자 데이비드 흄의 인과율에 관한 공식은
'만일 C이면 언제나 E이다. (If C, then E always)'인데 그것은 연기의 일반원리의 첫 번째 명제인
“이것이 있다면, 저것이 있다.”는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그 원리의 맹점을 보완한 과학철학자 마리오 붕게의 인과성의 원리는
'만일 C가 생겨나면 그것에 의해 언제나 E가 생겨난다.
(If C happens, then E is always produced by it)'인데,
그것은 연기의 일반원리의 두 번째 명제인
'이것이 생겨나면 저것이 생겨난다.'는 원리와 정확히 일치한다.
첫 번째와 두 번째의 존재론적인 명제와는 달리 세 번째와 네 번째의 명제는 해탈론적인 것이다.
이 네 가지 일반 원리는 각각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의 존재론적 바탕이기도 하다.
이것에 대해서는 역자의 저술 「초기불교의 연기사상을 보라,
십이연기는 인간존재의 인과성의 원리를 다루는 가장 주요한 원리이다.
그것은 11개의 사슬로 연결된 12개의 고리(dvādasaṅga)로 이루어진 연기를 말한다.
그것은 두 가지 방식, 곧 발생에 의한 법칙(anuloma ; 順)과
소멸에 의한 법칙(paṭiloma : 逆)으로 전개된다.
우리는 이 십이 연기의 인과적 고리에서 현대적 인과론에서 기대되는 것처럼
조건적 계열에 대한 분명한 해설을 발견하려고 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여기서 언급되는 연기의 고리들은 그 풍부한 의미가 벗겨져서 뼈대만 기록된 것으로서
기억의 도구로서만 전승되어 온 것이다.
우리는 십이연기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의 독단과 임의적 해석의 경향을 피하기 위해
불교의 정통적인 해석학적 전통에서 발견되는
테라바다의 설명방식에 의존하는 것이 신중한 태도이기는 하다.
물론 그 방식을 채택하더라도 상세한 부분에서 상이한 이견이 존재하지만
대체로 초기불교 학파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관통하면서 일치한다.
십이연기에 대한 정통적 해석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무명(① avijjā) 때문에, 즉 네 가지 거룩한 진리[四聖諦]에 대한 곧바른 삶의 결여로,
사람들은 신체적 언어적 정신적으로 형성(② saṅkhārā)을 이루어
착하고 건전하거나 악하고 불건전한 형성에 종사하며,
이러한 형성이 의식(③ viññāṇa)을 이 생에서 다음 생으로 성숙하게 만들고 다시 태어나는 곳을 규정한다.
이와 같이 형성이 의식을 조건지우고 의식을 따라서 잉태의 순간이 시작되고,
살아 있는 정신·신체적 유기체인 명색(④ nāmarūpa)으로 전개된다.
이 살아 있는 유기체가 다섯 감각능력과 여섯 번째의 인식능력을 갖춘
여섯 감역(⑤ saḷāyatana)의 존재로 발전하여,
의식과 대상 사이에서 접촉(⑥ phassa)을 발생시키고, 접촉은 느낌(⑦ vedanā)을 낳고,
느낌은 불쾌를 버리고 쾌를 추구하는 갈애(⑧ taṇhā)를 일으키고,
갈애가 강력해지면 감각적 쾌락에 대한 욕망과 잘못된 견해를 바탕으로 한
강력한 집착(⑨ upādanā)을 낳게 되고,
집착이 촉진되어 정신적 언어적 신체적인 형성을 이루어
새로운 존재(⑩ bhava)로 잉태되어 새로운 태어남(⑪ jāti)을 얻게 되어
새로운 삶을 살다가 늙고 죽음(⑫ jarāmaraṇa)으로 끝나게 된다.
48) Rājāyatana : 나무 이름으로 이곳과 자따까(Jāt, I, 80)에 등장한다.
49) Ajapālanigrodha : SN. I. 103에 따르면, 보리수 옆에 있던
아자빨라니그로다(Ajapālanigrodha)나무는 또 다른 보리수 벵골보리수의 이름이다.
부처님이 최상의 올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을 얻은 장소로,
아자빨라(aiapāla)는 염소치기 또는 송출하지 못함을 뜻 하는데,
이 나무 밑은 염소치기들이 쉬곤 했기 때문에,
나이든 바라문이 베다(Veda)를 송출하지 못하게 되자(ajapā)
이 나무 밑에서 거처를 마련하고 살았기 때문에 붙여진 나무라는 전설이 있다.
니그로다(nigrodha)는 뱅골 보리수로 한역에서는 용수(龍樹) 또는 니구율(尼拘律)이라고 한다.
§7. 그런데 그의 마음이 세상에 대한 무관심으로 기울었을 때,
위대한 하느님의 청원으로 깨달은 님의 눈으로 세상을 살펴보면서
감각능력이 날카롭거나 감각능력이 무딘 뭇삶들을 보고나서 가르침을 설하기로 약속하고 '누구에게 먼저 가르침을 설할까?'라고 생각하여 마음을 바꾼 뒤에
알라라와 웃다까가 죽은 것을 알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준 다섯 명의 수행승들이 있다.
그들에게 먼저 가르침을 설하면 어떨까?'라고 생각하고
아쌀히 월의 보름날에 크나큰 보리수에서 바라나씨 시를 향해서 십팔 요자나의 길을 가다가 도중에 사명외도 우빠까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고,
마침내 이씨빠따나 지역에 도착해서 거기서 다섯 명의 수행승을 가르쳤다.
'수행승들이여, 출가자는 양 극단을 섬겨서는 안 된다.'라는 등의
[가르침의 수레바퀴 굴림의 경]을 설하여,
앙냐 꼰당냐를 비롯하여 십팔억 하느님들에게 진리의 감로수를 마시게 했다.
보름 기간의 초하루에 밧디야 장로를, 초이틀에 밥빠 장로를, 초사흘에 마하나마 장로를, 초나흘에 앗싸지 장로를 흐름에 든 경지에 확립시키고,
초닷새에 [무아의 특징에 대한 경]을 설하며 모두 거룩한 경지에 확립시켰다.
§8. 그후 젊은이 야싸를 비롯한 오십오 명의 사람들과
깝빠씨까바나 숲에서 서른 명의 지체 높은 공자들과,
가야씨싸 고원의 천명의 예전의 결발행자들이 있었는데,
이와 같은 많은 사람들을 고귀한 지평으로 들게 했고,
빔비싸라 왕을 비롯하여 십일 나후따의 사람을 흐름에 든 경지에,
나후따의 사람을 삼귀의로 인도했다.
§9. 그는 벨루바나 정사를 기증받고, 거기에서 지내면서
앗싸지 장로 덕분에 첫 번째의 길, 흐름에 드는 길에 들자 싼자야에게 이별을 고하고 대중과 함께 자신의 앞에 온 싸리뿟따와 목갈라나에게 최상의 경지를 깨우치게 하고 제자로서의 초월의 길의 정상에 도달하자, 최상의 제자의 자리에 세웠다.
§10. 장로 깔루다인의 요청으로 까삘라밧투 시로 가서 교만한 친지들을 쌍신변으로 길들이고, 아버지를 돌아오지 않는 경지에, 마하빠자빠띠 고따미 부인을 흐름에 든 경지에 확립시키고, 왕자 난다와 왕자와 라훌라를 출가시키고 스승으로서 다시 라자가하 시로 돌아왔다.
§11. 그 후, 스승께서 베쌀리 시에서 꾸따가라쌀라 강당에 계실 때에
쑷도다나 대왕이 하얀 일산 아래서 거룩한 경지를 깨우치고 완전한 열반에 들었다.
그러자 마하빠지빠띠 고따미는 출가에 마음을 내었다.
그때 로히니 강변에서 [투쟁과 논쟁의 경]의 가르침이 끝났을 때,
오백 명의 성년들이 출가했는데, 그들의 아내들도 같은 의도를 가지게 되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게 가서 '우리 모두 스승의 가르침에 출가하겠습니다.'라고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를 원로로 삼아 스승께 가고자 했다.
그러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는 전에 한 번 스승께 출가를 요청했다가 거절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이발사를 불러서 머리를 자르고 가사를 결치고
모든 싸끼야 족의 여인들과 함께 베쌀리 시로 가서 아난다 장로를 통해 부처님께 요청하여, 여덟 가지 공경의 원리를 수용하여, 출가하여 구족계를 얻었고, 다른 모든 여인들도 똑같이 구족계를 받았다.
§12. 여기까지 간략하게 설했다. 이 이야기에 대해서는 여기 저기 경전에서 상세히 설해져 있다.
이와 같이 구족계를 받은 마하빠자빠디 고따미는 스승께 다가가서 인사를 드리고 한 쪽으로 물러나 섰다.
스승께서는 그녀에게 가르침을 주었다.
그녀는 스승에게서 명상주제를 받아서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나머지 오백 명의 수행녀들도 [난다까에 대한 훈계의 경]의 가르침이 끝나자 거룩한 경지를 성취했다.
12. "자매들이여, 이 비유는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 내가 만든 것입니다. 그 뜻은 이러합니다.
자매들이여, 안의 살덩어리란 것은 여섯 가지 안의 감각장소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자매들이여, 밖의 가죽이라는 것은 여섯 가지 밖의 감각장소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내부의 근육과 내부의 힘줄과 내부의 인대라는 것은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입니다.
자매들이여, 예리한 도살용 칼이란 성스러운 통찰지를 두고 한 말입니다.
성스러운 통찰지로 안의 오염원과 안의 족쇄와 안의 속박을 자르고 절단하고 도려냅니다."
§13. 이와 같이 수행녀의 참모임이 확립되어 널리 퍼지자,
여기저기 여러 마음, 도시, 지방, 수도에서
훌륭한 가문의 여인들과 훌륭한 가문의 며느리들과 훌륭한 가문의 딸들이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부처님과 여법한 가르침과 잘 확립된 참모임에 대해 듣고,
교법에 청정한 믿음을 일으키고, 윤회에 외경을 일으켜
자신의 남편, 부모, 친지의 허락을 받고 교법에 헌신하여 출가했다.
출가 후에는 계행과 덕행을 갖추고 스승과 장로들에게서 가르침을 얻어
견인불발의 정진으로 거룩한 경지를 실현했다.
그들의 감흥어린 싯구로 여기저기서 읊은 시들은
나중에 결집자들이 하나로 모아 제일장 등으로 결집하였다.
이것들을 [테리가타]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