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 14B
사성제 14B - 순일큰스님
몸은 항상한가 항상하지 않고 변하는가.. 태어 났다는 자체가 태어남은 늙고 병들고 죽는거죠.
그 변하는 거다..변하는것 무상하는것은 ...변하는것을 한자로 무상이라고 그러죠..
무상한 것은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건 괴로움이죠..
그래서 부처님께서 몸은 결코 실체가 아니다..
변하고 괴로움이기 마련인 몸은 궁극의 실체가 아니니 몸을 버려라..
느낌은 항상한가 변하는가..변합니다...느낌에는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이렇게 셋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떠한 존재도 즐거운 느낌만 가질순 없죠...내안에 느낌 자체도 문제지만
바깥은 인식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것들이 ..어떤 것들은 즐거움 인식의 느낌을 갖고 있다지만..
어떤 인식은 괴로운 느낌을 갖고 옵니다..
예를 들어서 뱀을 보거나 쥐를 보거나 하수구에 더러운 쥐를 보면은 괴로운 느낌이 오죠...
아무리 즐거울려고 해도 그 내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세상에 눈을보고 귀로 듣고
코로 냄새 맡고 혀로 맛보는 몸뚱어리 부딪치는데 괴로운 것들이 반이나 있어요
즐거운 것도 반이나 있지만..그 괴로운 것들은 세상의 모든것들을 다 죽일수도 없잖아요
불가능 하잖아요..그래서 느낌의 반이나 괴로운 느낌이었는데..느낌은 변하는 거니까..괴로운 겁니다..
그래서 변하고 그 괴로움인기 마련인 느낌은..실체가 아니다..물론 즐거움도 반 있어요..
괴로움이 반 있다는 거죠..피할수 없다...
인식은 마찬가지로 변하고 괴로움이다...이것은 실체가 아니다..
이와 같이 의도도 아뢰아식도 즉 안이비설신의로 하면 눈은 항상한가 변하는가..눈은 변하죠..
눈이 어떤걸 보면 즐거워 했다가 어떤걸 보면 괴로워 했다가 이렇게 인식이 오락가락 변하는 겁니다.
눈도 괴로운거요 귀도 괴로운거요 코도 괴로운거요...혀바닥도 즐거웠다 괴로웠다 하면서 괴로운거요..
몸뚱어리...마음도 전부다 항상한가 변하는가..마음도 왔다 갔다 변합니다..
즐거웠다 괴로웠다 마음도 변합니다..그것이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 괴로움입니다..
변하고 괴로움이기 마련인 마음은 실체가 아니다..이렇게 해서 안이비설신의를 전부 떠나라 이러신겁니다..
어떻게 떠나는가 자살한다 이런게 아니구요...안이비설신의가 좋아하는 색성향미촉법을 버리기 시작하면...
안이비설신의가 괴로워하는 색성향미촉법도 사라진다..집착이 사라지면 싫어하는것도 사라진다...
둘 다를 초월해서 지금 여기에서 불멸과 완전한 행복을 이룰수 있다..어떻게..
몸뚱아리 다가 아니라...몸뚱아리가 좋아하는걸 버리기 시작하면은 몸 안에 같혀 있게 되는게 아니라..
전체의 불성이 들어나서 이 몸도 밖에서 보게되고..그 세상도 다 실지실견 할수 있다..
불성이 들어나기 땜에 몸뚱어리가 마음이 내가 아닌게 되기 땜에..다 지켜보기 땜에 객관적으로..
불성이 들어나서..그래서 불멸과 지금 여기에서에 완전한 행복을 이룰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 하신 겁니다.
쉬운 이야기로 다시 돌려서 하죠 부처님께서 이 몸과 마음이 실체이고 나 라면 큰일난다 그러신거에요..
그러면 구원은 없다 지금 앞서 살펴 봤듯이..몸도 죽는거요 눈도 귀도 코도 혀도 마음도 다 항상하지 않고
다 변하고 죽고 괴로움인데...이것이 실체라면은 구원은 없다..부처님께서 이렇게 이야기 하십니다.
세상을 구원할 그 무엇이 없다면 구원은 없다...그러나 세상에 구원할 그 무엇이 여기에 있는데
그것은 몸과 마음은 절대 아니다...왜냐하면 몸과 마음은 죽은거기 땜에...
그걸로 실체라고 구원을 받을려고 하면 그사람은 불가능한걸 하고 있다...그러면 몸과 마음이 변하고 죽고
괴로움인걸 안다면은 이게 실체가 아니니까..버리는..버리는것을 해야 됩니다..
그 몸을 이 몸을 버리면 더욱더 수승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이 되구요...천상세계에..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을 버리게 되면...
빛의 몸을 이루게 되고 더욱더 수승한 천상세계에서..빛의 몸을 버리게 되면 해탈은 못하더라도...
빛보다 그 더 큰 빛이 되고...천상세계에서 그 더 큰 빛도 버리게 되면..대 광명이 됩니다...
그 대 광명의 빛도 버리면 빛도 없는 순수의식의 몸이 됩니다...그 순수의식의 몸까지 버리면 해탈이다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느낌이라는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은 오직 감각적 욕망의 느낌일 뿐이다...눈이 느끼는 귀가 코가 혀가..
몸이 느끼는 감각적 욕망의 느낌 밖에 없습니다...부처님께서 그 느낌을 버리면 아무것도 없는게 아니라...
초선이라는 행복과 희열이 가득한 지복의 느낌이 있다...해탈은 못해드래도...
그 초선의 지복의 느낌 마저 버리게 되면은...
버린다니까 나쁜 의미가 아니어요 더 높은 경지가 되는겁니다..
스며드는 가슴에서 부터 스며나오는...아리아리한 희열과 행복이라는 느낌이 있다..
이 희열과 행복... 이선의 희열과 행복은 ..느낌은 어떤거냐하면..이 삶에서 곤란함이 닥쳐지며는
저절로 번져 나옵니다..가슴에서 부터...엄청나게 고난이 ..고난이 닥치게 되면 고난스러운게
아니라 저절로 이선이 되면은...가슴으로 부터..지고한 아리아리하게 행복하게 만듭니다...
아무 문제가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이러니 앞에 거친 느낌을 버리는거죠..
이제 이 이선에서도 만족하지 않고...이선의 느낌을 버리게 되면...
삼선 이라는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행복합니다..그때 부터 바른 사띠와 바른 알아차려짐이 드러나게 되고...
성자들이 이를 두고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행복하다는..제 삼선의 지복의 느낌이 일어날껍니다...
이래서 버리는 겁니다..부처님 께서 삼선을 완성한 다음에 삼선을 버려라..
그 온 몸과 온 마음으로 행복함을 버려라...그러면 제 사선에 들어갔고 그것도 버렸기 땜에..
사띠가 현전해서 청청한 제 사선에 든다...참으로 맑고 깨끗하다...그 맑고 깨끗한 느낌이 오는데..
그것도 버려라..그걸 버리게 되면 오선이라는 물질을 초월하여 공이 가이 없는 지복의 느낌을 이룰것이다...
한번 상상해 보세요..
물질이 있는 물질을 초월한 상태의 삼매에 안들어가서 모르는거지..물질을 초월한 상태의 삼매에 들면
물질이 있다는게 그렇게 귀찮을수가 없습니다..나 가 있다는게 귀찮고 세상이 있다는게 귀찮아 집니다...
한번 여겨보세요..눈으로 보는게 얼마나 귀찮은 작업인지 이해되세요..
눈으로 이것 저것 보는게 피곤한 겁니다...귀로 이것 저것 듣는게 피곤한 겁니다...
코로 혀로 몸뚱어리로 이게 다 피곤한 겁니다...죽었다가 아니어요 눈뜨고 공무변처에 듭니다...
나도 세상도 모두 초월해버립니다..그 때 공이 가이 없는데...그 지복은 말할수 없다...
이 지복 마저도 버려라..부처님께서..이유는 오선의 지복을 이루고 버리게 되면 육선이 된다..
육선은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인식이 가이 없는 세계가 벌어진다...
하나씩 보는게 아니라 눈으로...심안이죠 세상이 가이없이 들어온다...아뢰아식이 가이없이 펼쳐진다..
여기에 지복은 억수로 지복이 있다 느낌이 ..부처님께서 이걸 이루고 이것도 버려라..
왜 버려리고 하시는거죠 점점 자꾸..더 높은 지복이 있기 때문에...
무소유처라고 물질을 초월한 정도가 아니라 아무것도 없는 세계에 든다..
아무것도 없대래니까 아이구 이거 아무것도 없는거구나 단멸이구나 이게 아니라..
세상은 아무것도 없는데 거기에 본성이 있어서...가이없는 지복이다..
이게 순수 의식의 동료들이 있는 세계입니다..그것도 버려라 그때 드디어...
그 이 모든 세상에 바탕에 궁극으로 있었던 불성이 들어난다..
비상 비비상 여덟번째 삼매 내와산야 나 아산야 결코 상이 아닌..
.불성인데..비상도 아닌..아직 완성은 안된건데...여기로 부터 점차로 다른경지로 점차로 다른경지로...
구경에 까지 편재한다...뿟다 빳다 경에 게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산야의 상에 완전히 구경에 서게 된다 욕계 색계 비색계 할거 없이 다 망라해서 궁극에 서게 된다..
거기서 마지막으로 미세한 의도를 버리게 되면 열반에 든다..
즉 부처님께서 허물을 이야기 하기 위해서 여기 버려라 하신게 아니라 작은걸 계속 버려나가면
더 큰 세계, 더 큰 천상, 더 큰 지복이 되는데...그것마저 버리면 더 높은 그걸 버리면 더 높은 이렇게 해서
궁극에 까지 이름..즉 얻고자 하는 자는 얻을수 없을 것이요...버리는 자는 얻을것이다..
얻고자 하는 자는 결코 얻을수 없고...낮은 존재가 될것이지만...이 몸뚱어리 색수상행식을 버리는 자는...
점점 높은 경지를 얻고, 될것이다...몸은 버려서 자꾸 수승한 몸이 되는것이요...
느낌은 버리므로 해서 지고의 느낌이 되는것이요...인식을 버리니까..사람의 인식을 버리니까..
천안에 천안통이 되는것이요...의도를 버리니까 궁극이 되는것이요...
아뢰아식을 버리니까 아뢰아식 보다 더 세상보다 본질에 들어서게 된다...
이 개체의 아뢰아식을 버리면 여러분 큰 아뢰아식이 들어 납니다...아까 저 꿈속에서 나라고 하는 애도
아뢰아식이 있습니다..저 꿈 세개를 다 보는 저거를 창조한 또 나라는 아뢰아식은 꿈 속의 개인의
나의 아뢰아식 보다 큰 아뢰아식입니다 저 나 라는 것의 아뢰아식을 버리게 되며는더 큰 아뢰아식이 됩니다
이 버리는 작업은 염세가 아니요 허무가 아니요 버리므로 해서 더욱더 크게 들어날 것이다...
쉽게 이야기 하면 작은 나를 버리면 큰 존재가 될것이요...이렇게 해서 큰 존재를 버리면
더 큰 존재가 될것이요이렇게 해서 끝까지 버리게 되며는 완전한 아뇩다라샴막삼보리 .....
동물이 사람이 될려면 그 동물을 버려야만 됩니다...
동물의 껍데기를 버린다는게 아니라 동물이 좋아하는 동물적인 욕망을 버려야 사람이 됩니다...사
람이 그와 같이 천상의 신이 될려면...사람의 껍데기를 버려라가 아니라...
사람이 좋아하는 욕망을 버려야 신에 걸맞게 된다...이런 여정입니다...
동물이 동물을 좋아하는 욕망을 갖고 사람이 된다는건 불가능하죠..이유는 그 욕망을 자기가
좋아하기 때문에 그 동물보고 사람되라고 하면은 싫어할겁니다...그 욕망을 버리기가 싫어서..그런데
사람이 되고 보면은 그 동물은 상상할수 없는 더 많은 즐거움이 있는거죠사람이 버리기 힘든 욕망을 버리고
천상을 가게 되면은 사람의 상상을 불허하는 더 큰 뭐냐 오욕락이 있는거죠...
이런식으로 희열과 행복이 있게 되고..더 큰 지복이 나날이 있게 됩니다...
다른 도수로 이야기 한다면 사람이 욕망을 못 버린다는건 점 점 이기적이 되는것이요.
버린다는건 이타적이 되는건데...이치를 생각해 보면
이기적인 존재는 이 전체 세상은 이기적인 존재는 나날이 악처 파멸처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이요,,
이타적인 존재는 사람 천상 더 높은 천상 더 높은 천상 해탈에 까지 이르는거 아니겟습니까...
이와 같이 나를 이 색수상행식을 자꾸 좋아하는걸 하는 사람들은 이기적이요..
색수상행식이 좋아하는걸 버리는 사람들은
이타적이기 땜에 지금 여기에서 행복하고 높은 존재가 될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법문 여기서 마칩니다...해탈하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