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성제8A (2011-1-14)
2011/1/14 - 사성제8A - 순일 큰스님
오늘 보시면 저번에 8정도에서 사띠 있잖아요. 바른 사띠요. 오늘 교원연수에서 어떤 분이 질문을 하셨어요. 사띠는 처음 들어보는 용어라고 그러는 거죠. 교원연수용이 아니었는데, 칠판에 그대로 있었어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다른 글씨는 다 아시겠는데 사띠를 모르겠다. 설명이 뭐냐 하면 거 기독교식으로 설명을 했어요.
기독교분도 계시고 천주교 선생님들도 계시고. 그래서 성경에는 온전히 깨어있어라 말씀이 계시 잖아요. 그 말씀인거예요. 성경으로 하면 사띠가 온전히 깨어있어라. 그리고 삼매도 설명을 드렸는데, 마더테레사 수녀님을 예를 들어서 삼매를 설명 드렸어요.
테레사 수녀님도 삼매 들었어요. 책에 나와요. 뭐라고 하냐하면 테레사 수녀님이 절대침묵을 하면 하나님이 현존한다. 그런데 절대침묵이라는 것은 입의침묵만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하면서 눈의 침묵, 귀의침묵, 입의 침묵, 마음의 침묵 마음의 침묵은 무심이잖아요. 그래서 지금 경전 말씀에 위배 안 되는 것 아시죠.
부처님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다 얘기 하셨는데, 거기서 코하고 혀만 빼신 거에요. 테레사 수녀님이 그거 빼시고 다 아시고 한 거죠. 눈의 침묵, 귀의침묵, 마음의 침묵 말씀하신 거지요. 그 설명을 드렸죠. 실지로 테레사 수녀님이 수녀원에서 삼매에 들었다는 것이 있어요. 기록이. 거기서는 삼매라는 거는 안 쓰죠.
아이들을 가르치다 쉬는 시간인가 뭐 하다 질문을 하는데, 웅성웅성하는데 가만히 멍하고 들어간 거예요. 수녀님이. 그리고 그런 삼매 체험을 하고 수녀원을 나온 거예요. 원래 못 나오게 되어있는 수녀원을 들어간 것인데, 그런 어떤 절대적인 체험을 하니까.
부처님께서 무심삼매 공무변처가 되면 해탈은 아니지만, 깨달음을 몸으로 증득한거 맞다 그러셨잖아요. 그러니까 그분이 그런 체험이 있으니까 곤란을 겪는 거죠. 나온 겁니다.
세상을 향해서 나와서 몸과 마음을 던진 거죠. 세상을 향해서. 그런 겁니다. 그것은 삼매다 설명 드렸죠. 사띠와 오늘 사띠를 저희 들어가는데요.
사띠가 대념 처경으로 다들 보실 텐데요. 대념 처경이 마하 사띠의 처경이거든요. 큰 사띠의 처경 인데요. 처란 것은 전에 공무변처, 식무변처, 처가 들어가면 아직 궁극이 아니 예요. 그래서 마하 사띠가 대념이 처경 이기 때문에 대념이 궁극은 아니에요. 궁극이 될 려고 하는, 큰 사띠의 처가 되는 거죠. 처가 살 처자인가 그런 거 있잖아요. 장소로 쓰이는 겁니다. 빨리어로는 원래 큰 사띠의 장소경 장소가 있다는 것은 아직 궁극이 아니다. 이런 의미인데요.
처음에 몸의 관찰이 나오는데요. 몸의 관찰에서 비구들이여, 어떻게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가? 몸에서 몸으로 라는 것은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면 머무는가 한번 보시죠. 어떻게 몸을 관찰하는가? 와 어떻게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는가? 뉘앙스가 다르죠. 어떻게 몸을 관찰하는가보다 어떻게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는가? 완전히 몸을 내가 아니라 개체로 보았든 뉘앙스죠. 그런 뜻입니다. 어떻게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는가? 몸이 내가 아닌 것처럼 이런 말씀인데요.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숲속에 가거나, 나무아래 가거나, 외진처소에 가서 그러니까 말씀은 세 가지가 여러 가지 나왔지만, 외진장소에 가라는 거예요. 사람들이 없는 곳에 혼자 있는 곳에 가서, 가부좌를 틀고 몸을 곧추세우고 중요하죠. 삼매 할때도 몸을 곧추세우시죠.
몸을 곧추세우고 하면은 몸을 곧추 세우면은 결국은 허리가 곧추세워져요. 눈은요 과학적으로 뇌란 연결되어 있고요, 귀 코 혀 등등은 척추랑 연결되어 있답니다. 의학적으로.... 즉, 척추를 곧추세우게 되면, 눈 빼고는 전부다 통제가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눈 빼고는 척추가 안 움직이면은, 눈을 제외한 것들은 척추만 멈추고 가만히 있게 되면, 나머지들도 감각기능을 잃어버리는 거예요. 그러면 눈만 남는거죠. 눈을 멈추게 되면 뇌가 멈추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 기본은 척추를 멈추어서 눈을 제외한 나머지를 정지시켜 놓고, 그 다음에 눈을 어떤 대상을 봐갔고 관찰을 해서 눈을 정지시켜 버리면, 뇌가 정지되는 거죠.
그래서 기본은 몸을 곧추 세우고가 중요한 겁니다. 그런데 몸을 곧추세우지 않으면 삼매에 못 드냐 그런 건 아닙니다. 라마나 마하리쉬님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그분은 어떤 스승님에게도 배운적이 없죠. 삼매에 들어갈 때 보시면 자세가 구부정해서 들어가요. 그런데 보통은 그렇게 가 거의 안 되는 거예요. 삼매가 저절로 됐든 사람들은 그래서 들어가요.
그러나 그것은 쉽지가 않죠. 그런데 두 번째는 몸을 곧추세워야지 장시간 삼매에 들어가요. 그런데 라마나 마하리쉬님께서는 곧추 안세우고도 장시간 삼매 들어갔단 말이에요. 그래서 몸이 휜다 말이에요. 그래서 말년에 휜단 말이예요.
그 할아버지께서는 말년에 옆으로 휘어서 다니셨거든요. 그래서 곧추세워서 들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몸을 곧추세우고 그 다음에 전면에 마음 챙김을 확립하여 했는데 사띠에요. 전면에 사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했을 때 전면이라면 어딘 것 같아요? 전면이 한자상 으로 얼굴 앞쪽이잖아요.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의역이에요. 직역은 얼굴주위에입니다.
이 저자님이 다른 금강경 산스크리트어에서 벌써 얘기 하셨어요. 그러니까 전면에 하면 얼굴 앞쪽인 것 같잖아요. 또는 입술주위에 이렇게 메타포 이런 중의적인 뜻이 두 가지 뜻이 다 있다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이런 두 가지 뜻이 정말 절묘한거죠. 사띠 확립에는. 처음에는 얼굴 주위에 확립을 해야 되고 나중에는 더 공부가 되면 입술주위에로 가야 되는 겁니다. 그러나 입술 주위에는 이야기 안하고 넘어가겠습니다. 왜냐하면 좀 심도 깊은 얘기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얼굴 주위에 사띠를 확립해라가 무슨 말씀이냐 하면 얼굴주위에 여섯 가지 육근이 다 모여 있는 거 아시죠. 눈 귀 코 혀 몸 마음 뇌 여섯 가지가 다 모여 있잖아요. 얼굴 주위만 단속해라 가 육근단속을 하라는 거죠. 얼굴 주위에 사띠를 확립하라. 즉, 바깥쪽으로 눈이나 귀나 이런 게 바깥에 소리나 모양으로 나가지도 말고, 안으로도 들어가지도 말고, 안으로 들어가지 말라는 것은 잡생각 하지 말라, 는 것이죠. 안으로. 바깥을 안보면 내면으로 잡생각 하거나 혼침 으로 들어가잖아요. 바깥으로도 들어가지 말고 안으로도 혼침 이나 잡생각 들어가지 말라. 중간에 멈추라 이 얘기입니다.
모든 게 실지로 눈이 삼매에 들어 갈 때에, 눈이 생각이 없어지면, 보는 지점이 안광이 우리가 뭔가 볼 때에 안광이 나가죠. 실지로 과학적으로는 눈에 빛이 나가지는 않습니다.
과학은 빛이 저기에 비춰서 반사된 것을 들어온 것을 보는게 맞는데, 정말 그러냐면 별게에요. 저희가 저기다 주의를 주잖아요. 주의를 주니까 빛은 들어오긴 하는데 한번 여겨 보세요. 지금 빛은 다 들어오는 데요. 원래 빛은 다 들어오는데 원래 180도가 다 들어 오나요. 실지로 보고자하는것만 보잖아요.
저를 보면 옆에 뭐 있는 것 까먹어요 분명히 저에게 집중하셨기 때문에 이 얘기는 그런 이유로 얘기드린거 에요. 과학적으로 빛이 들어오는 것을 보는 것이 맞지만 실지로 우리는 보고자 하는 것을 보니까, 주의를 주는 건데 그걸 제가 안광을 거기에 보냈다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겁니다. 과학은 좀 틀린 얘기지만 그러나 거기에 주의만 준다는 것은 틀린 얘기는 아니거든요. 주의를 안주면 180도 다 들어와야 되니까요 빛은 다 들어오니까요. 주의를 안주게 되면은요, 어떤 특정한 사물에 안광을 안보이면은 바깥쪽에 주의를 안주면, 내면에 잡생각도 안 보면은요, 딱 가운데 멈춥니다.
눈 가운데, 눈동자 동글뱅이가운데, 그렇니까 눈동자가 요거 아니고 눈알은 이 전체죠. 이 안에서 더 들어가 있죠. 더 들어가 있는 전체에서 가운데 거기에 딱 멈춥니다. 그럴 수 밖에 더 없겠잖아요. 바깥쪽에도 관심 없고, 안쪽에도 관심 없고 그러면 거기에 멈추지 않겠습니다. 거기에 딱. 딱 멈춘게 사띠가 중도에 딱 확립 된 겁니다.
그와 같이 귀도 등, 등, 등 , 그래서 제가 테스팅할때 어떻게 하냐하면 양손을 잠깐 들어봐 주십시오. 양손을 드는게 눈에 안 보이는 위치에 눈보다 조금 뒤에 그래갔고 양손을 눈으로 마치 볼 려고 노력을 해보는 겁니다. 동시에 두 개다를 동시에 볼 려고 노력하는 거죠. 그때 압니다. 그때 보는 지점이 딱 거기 있는 겁니다. 한 개만 볼 려고 하지 말고, 두 개를 동시에 그러면은 동시에 두 개를 볼 려면 눈동자가 움직이면 안 됩니다.
가만히 있으갔고 동시에 두 개를 그러니 눈으로 볼 수는 없는 겁니다. 뒤에 있으니까 마음으로 볼 려고 한다는 거죠 두 개를 동시에 그때 가만히 보시면 눈이 지금도 해 보시면 알아요. 눈이 바깥으로 못 나가잖아요. 물론 지금 바깥에 갔다가 왔다 갔다 하지만 이게 연습이 잘 되면 ,바깥으로 도로 못 나가요. 그러면 그때 점에 바깥으로 보러 안 가고, 두 개가 잘 멈춰 있을 때에 보는 자가 보는 지점이 어디쯤 있나 생각해 보시면, 딱 거기 가운데 점에 있어요.
그 가운데서 오락가락하면 생각이 있는 거고요. 바깥쪽으로 갔다, 안쪽으로 갔다, 오락가락 하면서 멈추어 버리면 생각이 끊어지는 거예요 무심으로 들어가는 겁니다. 무심이 되면, 마음이 끊어지면, 본성이 드러나는 거죠. 그렇긴 한데 이치가 그렇다는 거지 눈으로 이런 식으로 연습해서 가운데 멈출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얘기입니다. 이치가 그렇다는 거지 이것은 어떤 일심삼매로 시작해서 무심으로 들어가는 자연스런 삼매 되었을 때 결과물이지 지금 그랬을 때 그렇다는 거지 이런 현상으로 삼매가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얘기입니다.
지금 돌아와서 사띠를 확립하라는 의미가 이해되시죠?
바깥으로 나가지도 말고 안으로도 들어가지 말라는 거예요. 그런데 여기 지금 얼굴주위에 사띠를 확립하여 머문다를 여기는 마음 챙김으로 의역했는데 그런 뜻이 분명히 있어요. 마음 챙긴다 라는 게, 나중에 마음 챙김이 아니라 마음을 넘어서 있어요. 사띠는 마음보다 더 우위개념이에요. 왜냐하면 나중에 마음관찰로 가거든요.
마음이 마음을 관찰 못하는 겁니다. 마음으로 마음을 못 관찰 합니다.
마음이 마음을 관찰 할려면 마음보다 더 이면에 더 본질적 이어지만 마음을 관찰할 수 있거든요 나중에 마음관찰까지가 사띠가 가기 때문에 마음이 아니에요 마음 챙김이 아니에요. 마음 챙김으로 부터 출발은 하지만, 나중에 다른 의미가 되요. 몸도 지켜보고, 마음도 지켜보는 본성의 어떤 자녀벌이 되요. 그래서 저는 원어로 사띠로 쓰겠습니다. 사띠를 확립하여 머문다.
자 사띠를 확립하고요.
몸을 곧추세우고 얼굴 주위에 사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곧 몸을 곧추세우고 앉은 다음에 그는 사띠를 확립하여 사띠가 있는 상태에서 숨을 들이쉬고, 사띠가 있는 상태에서 숨을 내쉰다.
그 다음에 칠판에 보시면 그겁니다.
1. 그냥 들숨 날숨 썼는데 사띠는 다 들어가기 때문에 제가 뺀 겁니다.
1)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들숨),
2)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내쉰다. (날숨).
2.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여기는 꿰뚫어 알고 라 고 되어있습니다. 여기 꿰뚫어 알고를 저는 분명히 알고라고 쉽게 얘기 할 것인데, 꿰뚫어 알고가 반야로 알고란 뜻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반야이죠. 그래서 제가 언어학자가 아니니까 잘 기억을 못하지만 프라자 낫티(PRAJAN-natti)가 이런 뜻일 겁니다.
꿰뚫어 안다 정확한지 모르겠습니다. 대충은 토시가 틀리겠지만 대충 그런 뜻입니다. 어원이 반야입니다. 꿰뚫어 안다가 그러니까 반야로 안다 라는 거죠. 통찰지로 이 통찰지는 마음이 아닌 겁니다.
그래서 사띠를 확립하여 반야의 눈으로 봐야 된다 이런 얘기입니다. 그런뜻 인데 다시 돌아와서 길게 들이쉬면서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그래서 역자가 꿰뚫어 알고를 쓴 거예요. 분명히 알고보다 훨씬 더 강한 어조입니다. 완전히 사실로 안다 라는 그런 뜻이에요. 꿰뚫어 알고 그런데 전 꿰뚫어 알고가 뜻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 발음하기 힘들어서 분명히 알고 하겠지만 분명히 알고의 뜻은 아주 꿰뚫어, 확고하게 알고 이런 뜻입니다.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짧게 들이쉬면 짧게 들이 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쉬면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여기 지금 사띠를 확립하여가 빠져있어요. 그런데 경전에서는(책에서는) 사띠를 확립하여 한번 나온 다음에 사띠 말씀 안 나오고 쭉 나와요 숨이. 이 얘기는 무슨 얘기냐하면, 사띠를 확립하여 괄호( )열고 쭉 말씀계시고 괄호( ) 닫고 에요. 전부다 사띠란 말이 별도로 안 붙어도 사띠 경이기 때문에, 숨에 관련해서 다 사띠를 확립해라 가 앞에 붙어 있는 말씀입니다. 처음에 한번 나왔기 때문에, 그래서 제가 별도로 모든 숨에 사띠를 확립하여 안 얘기해도 그런 겁니다. 그다음에 3번이 뭐냐 하면
3. 온몸을 경험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온몸을 경험하면서 내쉬리라는 것을 공부 짓는다. 이게 3번입니다.
경전에는 넘버링이 없습니다. 제가 임의로 한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 순으로 하신 겁니다.
4. 1) 몸의 의도(身行)를 행은 상카라입니다. 그래서 몸의 의도
2) 몸의 형성 12연기의 두 번째 의도 이런 겁니다.
몸의 의도를 편안히 하면서(편안히는 고요히의 뜻입니다) 몸의 의도를 고요히 하면서 들이쉬리라며 공부 짓고, 몸의 의도를 편안히 하면서, 내 쉬리라며 공부 짓는다.
여기까지가 숨의 끝입니다. 여기서 세 번째, 네 번째의 몸이라는 것은 온몸 그 다음에 몸의 의도라고 하는 몸은 상윳따니까야에 말씀 계십니다. [호흡도 하나의 몸이다] 호흡관찰이 계셔요. 그래서 나는 [호흡도 몸이다] 라고 이야기 한다.
그러므로 여기서 온몸이라는 것은 몸이 까야에요. 빨리어로.
여기서 몸이 라는 것은 호흡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온몸을 경험하면서 라는 것은 온 호흡을 모든 호흡을 이따가 다시한번 설명을 하겠지만 일단 몸이 호흡 이라는 것만 아시면 되겠지만, 네 번째 몸의 의도를 편안히 하면서라는 고요히 하면서 몸의 의도도 이게 호흡의 의도입니다. 호흡의 형성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전에 상수멸에 드는 거에 대한 [담마딘나경]에서 삼매에 드는 절차 상수멸의 절차가 제가
1. 언어의 형성이 먼저 끊어진다. 언어의 형성이란 언어의 의도는 같은 말입니다. 분별이 먼저 끊어져 말을 못한다. 그다음에
2. 신체의 의도가 끊어진다 할 때 이게 똑같은 거예요. 빨리어가
신체의 의도, 신체의 형성이 그때 숨이 멈추는 것이라고 얘기 드렸잖아요. 여기서는 멈추라가 아니라, 멈추기 직전까지 숨의 의도를 고요히 한다. 멈추기 일보 직전입니다. 멈추면 숨을 관찰할 수 없기 때문이죠. 여기는 숨 관찰이기 때문에, 그리고 삼매에 드는 그 다음 단계가 마음의 형성이 완전히 끊어진다고 얘기 드렸죠. 여기서는 마음의 형성은 관계가 없기 때문에 빼겠습니다.
드리고자 하는 얘기는 여기서는 몸이라는 것은 호흡이다. 그렇게 이해하시면 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상윳따니까야에서 직접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게 하고 한번 뒤를 잠깐보고 다시 돌아와서 설명하겠습니다. 비구들이여 마치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은 도자기 굽는 분입니다) 도공의 도제가 (도제는 제자입니다) 길게 돌리면서 길게 돌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돌리면서 짧게 돌린다고 분명히 아는 것처럼, 그와 같이 비구는 길게 들이쉬면서는 숨이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 (땡땡땡) 중략인 것은 아까 하신 말씀 다시 반복합니다.
신행을 편안히 하면서 몸의 의도를 편안히 하면서, 내쉬리라 하면서 공부 짓는다. 이렇게 되어 있는 데요. 여기에 보시면 아까 말씀 반복인데 도공이 물레를 돌리는 것처럼 하시고 반복해서 하나 빠진 것은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내쉰다 라는
1번이 빠졌어요. 반복하시는데 도공의 도제가 물레를 돌리는 것처럼 반복하실때는 2번부터 시작 하셨어요.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여기는 이유가 있어요. 여기서 2번을 빼 버리는 것이 1번은 기본 작입이라는 겁니다. 1번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2,3,4번을 하기 위한 1번은 기본작업이었다. 그래서 처음에는 1번은 분명히 해야 되지만 2번 이상이 되기 시작하면 2번 이상부터 하게 된다. 이런 뜻인 거죠.
돌아와서 도공의 도제가 물레를 돌릴 때 보세요. 저는 본적은 없습니다. 대충 알 것 같아요. 물레를 돌리 때 목 부분이나 배분이나 불룩 나온 부분이라면 돌리는 횟수가 분명히 다르겠죠. 안 봐도 우리가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목 부분은 빠르게 할 수 있지 늦게 할 수 있지 모르지만, 여기 속도와 이렇게 넓은데는 속도는 도자기가 물레가 다르겠죠. 물레를 그런데 도공이 물레를 돌리면서 목에다 100번 발로 밟아야 된다. 배 부분에는 몇 번 발로 밟아야 된다.
이거 세면서 하겠어요. 어떻게 할까요? 전자동으로 하겠죠. 숙련된 도공이라고 말씀하셨거든요. 부처님이 숙련된 도공은 전자동으로 하는 거죠. 그걸 세는 것이 아니라 지금 그런 것처럼 나중에는 전자동으로 숨이 분명히 보여야 한다는 겁니다. 봐야지가 아니라, 그런데 그러면서 2번부터 시작하셨단 말이에요. 2번부터 전자동으로 나중에 공부가 되면 보여야 되고. 1번은 바로 그렇게 전자동이 되기 위해서 숙련된 도공이 되기 위해서 아직은 숙련되지 않은 도공인 거죠. 초보도공인거죠.
초보도공은 1번을 해야 되는 거죠. 1번을 많이 해서 숙련되어지면 2,3,4번은 숙련된 도공이 되는 겁니다. 전자동으로 물레 돌아가듯이 이해 되셨겠죠. 이와 같이 안으로 몸에 대해서 몸을 관찰하면서 머문다. 밖으로 여기까지 나가면 쭉 길 것 같아요. 일단 숨을 한번 설명 드리겠습니다.
2번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들이쉰다. 사띠를 확립하고 숨을 내쉰다. 여기서 사띠를 확립하고는 처음에 아직은 마음보다 본질인 사띠가 아니고요. 초보이기 때문에 이럴 때는 마음 챙김이 맞습니다. 정신 차려서 마음 챙겨서 정신바짝 차려서 들이쉬고, 정신 바짝 차려서 내쉰다는 거죠. 즉 숨이 길든 짧든 그런 거 체크할 필요가 없다 라는 겁니다. 들이쉬었다면 들숨인지만 알라는 겁니다. 내쉬었다면 내쉬셨다는 것만 알라는 겁니다. 이유는 뭐죠? 이렇게 쉬운 것을 우리가 왜 못할까 라고 하실지 모르지만 이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마음은 동시에 두 개를 못하기 때문에 일상생활 하면서 내가 들이쉬었는지, 내쉬었는지 그것다 까먹지 않습니까? 그것 체크 안하지 않아요? 들이쉬었는지, 내쉬었는지만 최소한 알려고 하면 생각은 할 수가 없어요.
생각은 동시에 두 가지를 못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처음에 부처님께서 다른거 다 말고요 들이셨다면 들이셨다는 것만 알라는 거예요. 내셨으면 내셨다고만 알고요. 그런데 거기에는 두 가지 방법이 있는 겁니다. 저기에 1,2번 빨간 글씨로 해 놨습니다.
1.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 인데요.
저번 시간에 얘기 드렸지만 삼매에도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고요. 위빠사나도 일으킨 생각으로부터 지속적인 고찰로 가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어떻게 하냐면은 속으로 들숨, 들이셨으면 생각으로요 내셨으면 날숨, 이렇게 하라는 겁니다. 이게 일으킨 생각입니다. 들숨 그냥 들이셨음. 날숨 생각으로 제일 쉽습니다. 이것은 아직은 고찰은 아닙니다.
지속적인 고찰은 ... 부처님께서 왜 지속적인 고찰이라는 말씀을 쓰셨는지 잘 이해 해야돼요. 여기서는 숨을 관찰한다 그러셨어요. 그러면 제가 쓴 고찰이라는 단어보다 지속적인 관찰이 맞아요. 저걸 바꿔야 되는데 저는 고찰라고 쓴 이유가 부처님께서 일반적으로 모든 관찰을 다 고찰이라고 그러셨어요.
그 이유는 부처님 삼매에 두 가지 방법을 주셨거든요. 관찰하는 방법을 주되게 주셨어요. 11가지 수행 주제를 관찰해서 하는 삼매를 그런데 초선과 이선만은 별도의 삼매를 주셨어요. 뭐냐면 불법에 대한 사유와 숙고가 있고, 초선, 이선은 불법에 대한 사유와 숙고가 가라앉고, 없고, 이 경우는 고찰이란 말이에요. 사유와 숙고는 그런데 사유와 숙고의 고찰의 삼매는 2선까지 밖에 없어요.
그러데 관찰의 삼매는 8선까지 있단 말이에요. 그런데 관찰이 더 큰 삼매죠.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양쪽을 다 어우려서 고찰 말씀을 쓰신 거예요. 왜냐하면 관찰이라는 말도 지속적으로 관찰이란 말을 쓰실 수 있잖아요. 아까 사유와 숙고도 고찰한다고 쓸 수 있고, 그래서 고찰이라고 쓰셨지만 사실은 관찰이란 분위기들이 훨씬 많아요. 그래서 지금도 여기서는 숨에 대한 관찰이라고 분명히 얘기 하셨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찰이 옳은 건데 그렇게 썼습니다.
일반적인 언어로 쓰시기 때문에, 그래서 지속적인 관찰하기 전에 일단 들숨, 날숨, 이렇게만 생각을 하시는 거예요. 이렇게만 생각을 하면 좀 전에 뭐가 뭐를 못한다 그랬죠. 다른 생각을 못해요. 만약에 다른 생각을 하면 들숨, 날숨 한 것 까먹게 되죠. 다른 데로 상상하러가요. 여기 앉아 있지만 그러면 얼른 알아채고 다시 들숨, 날숨 이렇게 해야 되요. 또 그다음에 즐거운 상상으로 가든지 싫어하는거 막 그날 있었던 거 상상으로 가든지, 또 생각을 하게 되죠.
얼른 돌아와야 되요. 들숨, 날숨 자 그러면 이렇게 하다가 어느 날 쯤 다른 상상으로 잘 안게 되겠죠. 들숨, 날숨만 잘 체크 되겠죠. 그때 어떤 일이 벌어지냐면 언어의 의도가 끊어지기 시작해요. 언어의 형성이 분별이 끊어지니까, 다른 생각이 안 들고 들숨, 날숨만 들숨, 날숨 하다보니까 들숨, 날숨도 하기 할 수가 없는 상태로 들어가요. 분별이 그때 생각하기 귀찮으니까 들, 날, 들, 날 간단하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들, 날도 못하게 되면, 어떻게 되냐하면 들, 날도 없어지면은 관찰이 되기 시작하는 거예요.
관찰이 되든지 혼 침이 되든지 둘 중에 하나죠. 부처님께서 다섯 가지 장애 중에 해태와 혼 침을 넘어서라 그러신 것이 생각이 없어 지면은 삼매가 되거나 혼 침으로 들어가거든요. 그런데 초보는 전부다 혼 침으로 들어가는 거고 그 혼 침을 넘어서야지만 삼매가 되거든요. 그래서 제가 그런 의미로 드린건데 들, 날, 들, 날 분별의 생각이 없어지면, 혼침 아니면 위빠사나가 되는거요. 관찰이 여기서는, 혼 침 아닌 경우만 얘기 드리겠습니다.
들, 날이 없어지면 숨이 진짜로 관찰이 되요. 그 의미는 뭐냐면 들숨이면 들숨이라고 안다 이거에요. 관찰로 보인다 이거에요. 생각으로가 아니라 날숨이면 날숨이라고 보인다 이거에요. 그러면 2번이 목적이죠. 원래 부처님께는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들이쉬고 사띠를 확립하여 숨을 내쉰다. 이 말씀에는 결국은 2번이 목적 인거죠. 결국은 관찰이 되는 게 그렇지만 2번을 하기 위해서는 1번을 해야 되는 겁니다. 1번 없이 2번을 하면 무척 힘이 듭니다.
처음부터 관찰할려고 그러면 1번을 많이 하면 저절로 2번은 되는 거니까, 1번에 작은 1번입니다. 큰1번에서 1번을 먼저 하는 겁니다. 2번은 신경쓰지 말고 그러면 2번이 저절로 된다는 거죠. 2번이 저절로 되면 그러면 큰 2번이 저절로 된다는 겁니다. 길게 들이쉬면 길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길게 내쉬면 길게 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들이쉬면서 짧게 들이쉰다고 분명히 알고, 짧게 내쉬면 짧게 내쉰다고 분명히 안다.
경우수는 두 개지만 여러분 진짜 해 보시면 어떻게 되냐 하면, 길게 들이쉬면 꼭 길게 내 쉬는 것 아니에요. 길게 들이쉬고 짧게 내쉬는 경우도 있고, 짧게 들이 쉬었다고 짧게 내쉬는 것이 아니라, 짧게 들이쉬고 길게 내쉬는 경우도 있어요. 여러 개 도수가 있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 분명히 안다.
저 말씀에는 저것은 자연호흡이죠. 자연호흡 이라는 것이 체크포인트입니다. 큰2번 자연 호흡을 호흡 있는 자연 그 상태로 있는 그대로 관찰해야지 조작하지 말라는 겁니다. 호흡을 조작하지 말라는 것은 어느 특정지점 단전이 됐건, 코끝이 됐건 어디에다가 배가 됐건 특정지점에다 의식점을 두고 거기를 향해 숨을 쉬는 그런 조작을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조작을 하게 되면은 그럴듯한 효과가 오기는 하겠지만, 이제 2)번부터 안되고 그 뒤에 3,4번은 아예 안 됩니다. 왜 그런지는 좀 있다 설명드리겠습니다. 일단 2번의 체크포인트는 자연호흡입니다.
자연호흡인데 저 1번을 안하고 2번을 그냥 가는 사람은 알게 될 거예요. 호흡이 막 엉킨다는 것을. 자연호흡을 관찰 할려고 그러면 엉킵니다. 말도 못하게 막 호흡병 걸립니다.
숨이 차고 자연호흡 관찰 할려고 그러면 좀 전까지 자연스럽게 쉬어졌든것이, 이제는 숨도 못 쉬어요. 그래서 너무 귀찮으니까 이거 관찰 안하는것이 낫겠다 그렇게 쉽지가 않으니까 어디 한군데다가 몰아서 숨을 쉬는 거예요. 그러면 편하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해서는 부처님 말씀이 아닌 거예요. 그래서 2번이 어려우니까 포기하자가 아니라 2번부터 하면 안 되고 큰1번에 1), 2)을 하면 저절로 큰 2번이 되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차례대로 한번 가봅니다.
생각으로 들, 날 들, 날 하다가 생각이 없어지니까 진짜로 들숨, 날숨이 관찰이 되요. 작은 2번 지속적인 관찰이 되니까 그다음 큰 2번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그냥 관찰이 되요. 이치적으로 이해 되시죠. 숨이 관찰이 되니까 그 다음에 길든 짧든 저절로 관찰이 되는 거예요 여정이.
부처님 말씀은 여기서 잠간 제가 샛길로 빠지겠습니다. 부처님이 주신대로 해야 되요. 중간부터 가면 안 됩니다. 거룩하신 분이 처음부터 주신 이유가 있거든요. 전부다 순차입니다. 앞에 것 하면 뒤에 것 저절로 되는 겁니다. 앞에 것 안하고 뒤에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앞에 것 무척 쉬운 거다 하고 넘어가면 안 되는 거죠. 무척 쉬운 것 부터 주신 겁니다.
아까 거 들숨, 날숨만 알라. 진짜 중요한 포인트는 그겁니다. 그 아가가 걸을 때 말이죠. 걸음마부터 배우지 뛰음 안 가르키는 것이 분명하거든요. 걸음마만 하면 그 애는 언젠가는 뛰거든요. 걸음마만 하면 그겁니다. 그래서 들숨인지, 날숨인지만 알면은 그것도 쉬운거 아니에요. 들숨인지 날숨인지만 솔직히 1시간 앉아서 하시면서요. 안 놓칠 자신 있으신 분 계시기만 해도 삼매 드시는 분 많이 계셔갔고, 사실 한 시간동안 처음에 숨을 관찰하시면서 1번 1)에 관찰도 아니고 들숨, 날숨 속으로 생각만 하는 것도 1시간 동안 안 놓치는 것도 쉽지가 않은거거든요. 처음에 하셨는데 1시간 안 놓쳤다 이러면 엄청난 겁니다. 잡생각이 없다는 겁니다.
혹시 제가 우스개 얘기 하나 드려 볼께요. 한 시간 산책 하시는 분 있으면 저는 매일 산책하잖아요? 오래전부터 한 시간씩 매일 할 때 숫자를 세어보세요. 계속 일번부터 해 갔고 천일(1001, 3001, 3002, 3003) 한 시간 까지 가서 하루도 안 놓칠 수 있는지, 하나도 안 놓치면 그거 대단한 겁니다.
그리고 나중에 숫자가 너무 커지니까요 복잡해지죠. 그런데 그게 조금 더 어렵겠죠. 숫자가 너무 많아갔고 들숨, 날숨을 한 시간만 안 놓치면 일 납니다. 일 벌어집니다. 한 시간만 안 놓치면 분명히 지속적인 관찰이... 한 시간까지 가지도 않습니다. 몇 십분만 안 놓치면 은 저 큰 1번에 작은 2)번 지속적인 관찰 들숨인지 날숨인지가 됩니다.
들숨인지 날숨인지만 되 면은 큰2번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자유로운 호흡이 관찰이 되기 시작합니다. 저 자유로운 2번이 관찰이 되기 시작하면은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제가 오늘 힘이 좀 드니까 좀 큰 표현을 쓸께요. 기운 좀 낼려고 엄에이징(Amazing ; 놀랄일이 펼쳐질 것이다) 한 일이 벌어집니다. 맞는지 모르겠네요. 제가 기운이 빠져 우스개 말을 합니다. 큰일이 벌어집니다.
실지로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자유로운 관찰이 되시면, 수행할때만 아니라, 일상생활 할때 나가서도 하실 때도 관찰이 되기 시작해요. 잠자면서도 막 저절로 관찰이 되기 시작하고, 주무시기 전까지, 아직 잠에 못 깨어 있으니까, 일어나면 저절로 그것부터 하기 시작하고, 그러면 막 상태 억수로 좋아지고, 그렇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저 2번부터가 아까 그 쉽지도 않다고 그랬지만, 자꾸 조작이 되지만 앞에서 순서대로 하면 어렵지도 않은데요.
길면 긴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가 있는 그대로, 관찰이 된다는 것은 큰일이에요. 조작이 안 되고 막 엉켜버리거든요. 그것이 엉키지 않고 그대로 보인다는 것은 굉장히 생각이 없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거기까지 가면 훌륭한 일이 벌어집니다.
그 다음에 거기까지 간 다음에 이제 거 좀 전에 온몸을 경험한다가 온 호흡을 온 호흡이라는 게 뭐냐면, 호흡에 처음 호흡이 몸이다 했죠. 호흡전체가 보인다는 것은 첫 중간과 끝 호흡의 처음과 중간과 끝이 다 보인다는 거예요. 지금 부처님께서 호흡도 몸이다 하신 이유가 저를 잠깐 봐 주시면 숨을 들이쉬면, 처음 들이쉬는 처음 숨만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여기 중간 숨도 있고, 여기 아직 못 들어간 끝 숨도 있잖아요. 그러면 숨의 모양이 있잖아요. 그러면 숨의 모양도 몸인데, 온 호흡을 경험하면서 호흡전체가 다 보인다는 얘기입니다. 내 쉴 때도 호흡 전체가 다 보인다는 겁니다.
호흡에 맨 처음에 나가는 것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이 얘기는 만약에 어느한 지점에다 일부러 의식을 두고 거기만 호흡을 하면, 그 사람은 들어간 맨 처음에 다음 호흡밖에 못 보잖아요.
다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이래서 그렇게 한 지점을 두고 하면 3번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내 쉴 때도 만약에 이런 지점 하나만 거기에다 내쉬는 것만 하면, 그런 호흡 전체를 경험하는 것이 아니잖아요. 거기만 갖고 있는거죠. 여기다 호흡이 이만큼가고 있는데, 여기 호흡의 처음이고, 중간이고 끝이 있고, 호흡의 모양이 있잖아요.
내 쉴 때도 온 호흡을 경험한다. 그렇게 되잖아요. 그런 말씀인 겁니다. 그래서 들이 쉴 때도 온 호흡을 경험하면서 들이쉬고, 내쉴 때에도 나가는 온 호흡을 (모든 호흡) 경험하면서 내쉬고 이렇게가 되는데, 이렇게 온 호흡이 보여지기 시작하죠. 이게 한 2선쯤 이렇게 보입니다. 삼매란 빗대어서 얘기한다면 삼매한 2선쯤 되면 별도의 위빠사나를 안했어도 2선이 되면 그 이선에서 호흡관찰을 안했어도 호흡관찰로 돌리게 되면 이것에 해당하는 호흡이 보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4번째가 3선에 해당하는 건데요. 삼매로 따진다면 네 번째가 몸의 의도를 고요히 하면서는 좀 전에 얘기 드렸지만 ,호흡의 의도데 4선에서부터 호흡이 끊어지죠. 그러니까 4선전 호흡이 완전히 끊어지면 관찰이 안 되기 때문이죠. 완전히 끊어지기 직전이니까 한~참 가는 거예요. 있는 둥, 없는 둥, 거의 그때쯤이면 어떤 생각이 들죠. “나 숨 멈출 수 있겠다 숨 쉬는 것이 귀찮다.” “ 야~ 숨 야~ !! 숨 없이 살았으면 좋겠다. 숨 멈출 수 있겠다.” 그때쯤이 온 호흡을 고요히 하면서 의도를 그러면서 들이쉬고, 내쉬고
저희 몇 단계가 호흡보기가 2가지가 있어요. 배우셨나요? 안 가르켰나요? 매뉴얼에서 없어졌나요? 없어졌는지 몰라요. 매뉴얼에 예전에 지금 배운것 보다 더 따블이상 방법론이 있었어요. 배우는 사람들이 그때 유료였죠. 유로여서 6박7일 이었는데 현대인은 빨랑빨랑 이었기 때문에 너무 많으면, 하기 싫어 했는데, 막 쳐 버렸는 거예요. 그래서 없어졌는지 몰라요. 제가 호흡보기로 2개 해 놨는데 하나는 호흡을 멈출 수 있는 호흡이에요. 가늘게 해 갔고 하나는 2선쯤에 해당하는 아리아리가 쉽게 올 수 있는 호흡이고, 그런데 거기에 멈추어 가는 호흡법이 거기에 있는데, 그 호흡대로 하면 나중에 막 고요하고 가늘어지고 멈추어 들어가요. 그게 매뉴얼이 없어졌을지 모르니까 제가 무여 법사에게 물어보면 알 것이에요.
그 호흡을 호흡 중에 하나를 하게 되면은, 굉장히 가늘어지면서 호흡이 없어져 버립니다. 호흡이 없어져 가면 이거죠. 그래서 지금 4번째는 호흡의 의도를 고요히 하면서 거의 없어지면 꺼떡꺼떡 아~ 이거 멈 출수 있겠다!
그리고 그때는 명확히 보입니다. 관찰이. 관찰이 아주 조금 남았기 때문이죠. 전체를 넘어가 버립니다. 지금 부처님께서 거기까지를 하라고 그러신 겁니다.
거기까진데, 다시 한번 부처님께서 숙련된 도공이나 도공의 도제가 물레를 돌리듯이, 그와 같이 하시면서, 그때는 1번이 안 나옵니다. 길게 들이시면서 길게 들이 쉰다고, 거기서부터 다시 중복이 나옵니다. 아까 그 얘기 드린 겁니다.
1번에 사띠를 확립해서 숨을 들이쉬고, 사띠를 확립해서 숨을 내쉰다는 안 나온다는 이유가 이젠 그걸 출발해서 2,3,4번이 됐는데, 그렇게 숙련된 도공이 하듯이 2,3,4번을 하라는 거죠. 본격적인 말씀 2,3,4번을 하기위한 준비단계가 1번 이었든거죠. 이렇다면 이 말씀은 2,3,4번을 숙련된 도공이 물레 돌리듯이 하기 위해서 정말 중요한 것은 1번인데 1번을 계속해라는 말씀인거예요. 언제까지.. 2번이 저절로 될 때까지 숙련된 도공이 물레를 돌리듯이 2번이 저절로 될 때까지 물론.
부처님께서 2,3,4번이 될 때까지 이렇게 얘기 하신 겁니다. 제가 3,4, 잠깐하고 2번을 얘기한 겁니다. 2번이 되면 3번이 되는 거니까 이렇게까지 해라. 10분 쉬었다가 다시 하겠습니다.
녹취자 : 예 심 (7/13/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