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일스님 법문/사성제

사성제 5A (2010-12-29)

Daisy청량심 2023. 10. 10. 02:58

2010/12/29 - 사성제 5A - 순일큰스님

    오늘은 고집멸도 중에서 멸이예요.  괴로움의 소멸의 성스러운 진리 들어가겠습니다.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에서 소멸만 생각하면 되요.

 

먼저 맨 밑에 보면 노 병사인데요, 늙고, 병들고, 죽음인데요. 늙고, 병들고, 죽음의 원인이 태어남 맞나요.  한 번 사 유해 보셔야 합니다. 즉 태어나지 않았는데,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을 수 있나는 거죠? 이야기는 거꾸로요 태어남은 늙고, 병들고, 죽음이 있고, 죽음과 함께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근심, 탄식, 절망이 있다는 거예요.

태어남은 말이죠? 무조건 조건 없이 늙고 병들고 죽을 수 밖에 없고요. 늙음 죽음 과 함께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은 다 있다는 거예요. 지금 우리 한번 사유해 보시겠어요. 지구인 중에서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없는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있을까요? 없겠죠? 없는데 상대적 행복은 있을 거예요?
상대적인 것과 상대적인 괴로움이 있을 텐데요? 지구인은 한명도 빠짐없이 60억은 다 괴로운 것입니다.
괴로운데 보다 행복한 사람은 있겠죠? 괴로움이 적은 이걸 먼저 생각해 봐야 하는데요.  지구인이 아니더래도, 우주인이래도 천상의 신이래도 말이죠?
부처님께서는 늙고 병들고 죽는 존재는 모두 괴로움이 있다. 이러신 겁니다. 물론 신들은 상대적으로 우리들 보다 훨씬 행복하고 괴로움이 훨씬 작죠?
즉 태어나는 존재는 무조건 괴롭다 이겁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염세로 태어나는 존재는 다 괴로우니까, 다 죽자 가 아니고, 태어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는게 아니고요.

저 12연기가 아무것도 없는게 아니라, 본성이 불성이 있다는 거예요. 비유하자면 영화라는 세상이 있지만, 그 영화가 상영 될 려면, 눈에는 안보이지만 스크린이 있어야 되는 것처럼, 영화의 스크린은 죽어있는 무정물이지만, 이 세상의 바탕은 다 알고 다보는  불성이 있다는 거죠. 그래서 저 12연기는 부처님께서 두 가지를 얘기 하셨는데, 하나는 괴로움 전체의무더기가 생기는 여정이다. 하셨고요  
또  하나는 세상의 일어남이다.  그러셨어요. 저번 시간에 배운 괴로움의 일어남의 성스러운 진리 이지만, 다르게 얘기하면 세상의 일어남 이었고요. 오늘은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인데, 괴로움의 소멸은 세상의 소멸 이예요. 부처님께서 [까짜야나뽓따경]에서 얘기 하셨죠.  

세상의 일어남과 소멸을 둘 다 말씀 하셨죠?  그런데 세상이 소멸하면 단멸이냐 부처님이 법망경에서 “7가지 단멸”  저 높은 천상세계에서 제일 높은 무색계까지도 죽은 다음에 단멸은 없다고 그러셨어요. 윤회지 오로지 열반만은 윤회가 아니거든요. 그러면 열반한 다음에 어디로 간다는 거지요.  단멸은 없다  그러셨어요. 죽으면 끝이다. 라는 것은 없다.  죽은 다음에 아무것도 없는 그런 것은 없다.  그런데 해탈 못하면 윤회다. 그런데 해탈하면 세상의 소멸이 된다. 그러면 해탈한 분은 어디에 계시죠? 아무것도 없는 단멸도 아니고, 사라진 것도 아닌데, 세상에 있지도 않고 세상에 본질로 계신거예요. 바탕에 그러나 세상은 아니다. 세상은 실체가 아니다. 세상 어디에도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세상의 일어남도 있다. 세상이 있다. 그러신 거예요. 그런데 세상의 소멸도 있다. 이 전체 세상에서 그러나 오해는 마세요.  세상은 영원히 안 없어져요. 그분께만, 해탈한 분께만, 세상의 소멸이 있어서 편재 하는 거예요.

세상에는 욕계, 색계, 무색계(비색계), 라고 하는 크게 세 가지 세계가 있죠?
욕계는 지옥, 축생, 아귀, 사람, 여섯 가지 천상세계, 사람모양의 천상세계, 사람 바로 위가 사대천왕 천상세계죠. 그 위가 33천 천상세계, 그 다음에가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 이 있어요.  여섯 가지 천상세계가 욕계에 있는 사람모양의신들, 색계가 16가지 천상세계 빛의 몸의 신들, 초선천, 이선천, 삼선천, 사선천, 삼매가 되어야지만 되는 신의세계, 삼매가안 된 범부들은 갈 수가 없는 세계, 삼매가 안 된 신들은 계율 잘 지키고, 보시 많이 해갖고, 여섯 가지 욕계의 천상세계에 간다.

삼매가 많이 되어야지만 가는 비색계의 천상세계(무색계) 라고 하는, 거기는 무심삼매가 되어야지만 가는 세계, 거기도 공무변처, 식무변처, 무소유처, 비상비비상처, 무색계도 4개 세계가 있다. 그러면 세상을 크게 봤을 때, 욕계, 색계, 비색계 뿐이 없는데, 각각을 봤을 때는 세계가 많죠. 그 세계들은 세상이예요. 세상이라는 것은 뭐냐면, 늙고 병들고 죽는다. 혹은 신들은 병드는 일은 없으니까, 늙고 죽는 세계예요.  
수명은 굉장히 길죠. 늙고 죽는 세계다. 모든 세계는 그게 세상이예요.  그래서 세상은 실체가 아니다. 공부의 여정은 점점 높은 신들의 세계로 가야 되죠. 그렇지만 세상은 여전히 괴로움이다. 종래에는 세상을 초월해야 한다. 세상을 초월한다는 것은 그 모든 세계에 바탕으로 편재했다. 편재라는 것은 모두에 있다. 불성으로서 이렇게 되는 거죠. 돌아옵니다.

부처님께서 저기에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괴로움이 되는 거죠.  모든 중생들은 사바 세계라고 하는 것은, 사바세계가 직역이 모든 전체 이런 뜻이예요. 욕계, 색계 비색계가 모두 사바세계다. 모든 세계는 괴로움이다.  상대적 차이는 있지만, 그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은, 모두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 있을 수 밖에 없다. 라고 하신 건데,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냐 하면, 태어났기 때문이다. 태어남이 없으면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태어남이 없는 거는 좋은 거다. 단멸이 아니라고 하셨기 때문에, 태어남이 없는 건 태어났다 죽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개체가 아니라, 편재해 버렸기 때문에, 그래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음의 원인이 태어남이다. 원인 외에 다른 원인이 있다면 저한테 알려 주십시오. 유일한 원인 맞나요?   부처님께서 그러셨어요?  나에게 의지 하지 말라.  부처님께서 그렇셨기 때문에  스스로 사유해서 부처님께 의지 하지 않고, 스스로 답을 귀결 시킬 수 있다.  맞죠?  늙고, 병들고, 죽는 것의 유일한 원인은 태어남 맞죠? 사유해보면 그렇죠? 태어남도 없는데 늙고 병들고 죽을 수는 없잖아요?
그래서 태어남의 원인은 존재다. 그러니까 지금 욕계 색계 무색계의 살아있는 존재들이 있다는 거죠? 그 존재들이 죽은 다음에 어느 세계엔가 윤회해서 태어난다는 거죠? 그러니 지금 존재가 태어남의 원인이 맞나요? 그리고 존재의 원인은 취착 집착이다. 개체가 죽기 전에 요번 생에 집착이 많아요. 막 하고 싶고, 경험하고 싶고, 집착이 많아요. 그래 죽을 때 안타까와요. 나 이거 갈 수가 없는데, 그러니까 또 존재로 태어나요. 집착이 없는데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 태어 날 수 있겠어요. 어떤 사람은 아무 집착이 없어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어요.  하나도 없어요. 저항도 없고 그러면 다시존재로 나올 수 없는 거잖아요.

태어나고 싶지 않은데 태어나면 불구가 되잖아요. 물론 진짜 집착이 없어야 되는 건데, 어떤 사람은 너무  괴로워서, 나는 태어나기 싫다. 하고  자살하지만 그 사 람은 태어나죠. 그 사람은 집착이 없는 것이 아니라, 집착에는 저항이라는 말도 같이 포함된 말이기 때문에, 세상에 대한 분노, 증오, 싫어함, 괴로움이 있는 거예요.  
그건 태어나는 거예요. 여기서 집착(취착) 이라는 것은 정말 깨끗해져 갖고, 아무 취착이 없다는 거에요.

비유할께요. 우리가 꿈을 꾸죠. 꿈을 꾸는 이유는 아뢰야식에 집착 또는 저항, 탐욕또는 분노가 있기 때문에, 꿈을 꾸는 겁니다. 그것이 없다면 꿈은 없어져요. 쉽게 얘기하면, 뭔가 경험하고 싶으니까, 현실에서 못 한 게 뭔가 꿈에서 경함을 하는거든요. 만약에 아무런 집착도 분노도 없는 사람이, 꿈이 있을 수 없지만, 꿈을 꿨다고 해보죠? 비유로 꿈이 생기면, 꿈에서 집착과 저항이 있어야 도망을 가든 붙잡으러가든 그럴텐데, 꿈에서 뭔가 나타나도, 영상으로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두려운 것도 없기 때문에 그렇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 꿈은 아무리 영화가 진행 되어도, 가만히 앉아있거나, 너무 아무것도 안하니까, 꿈이 성립이 못 되니까, 금방 꿈이 없어져 버릴 거예요.  그렇죠, 꿈이 성인은 과학에 의하면, 하루 저녘에 두 시간 꾼데요.
한 번에 두 시간이 아니라, 꿨다, 잠잤다, 하면서 매일 매일 꿈을 꾸는데, 우린 기억  못하잖아요. 그 꿈에서 맨 처음 영상이 나오는데, 아무런 탐욕이 없으면, 영상이 나와도 쫓아가겠어요. 두려운 게 나와도 도망 안 가잖아요. 꿈이 성립이 안 되요.  즉 그 꿈에서 존재가 사라져버려요. 집착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가는 연료가 뭐죠?  삶에서, 자동차의 연료는 휘발유죠. 등불의 연료는 경유, 뭐 이런 거죠.  우리의 연료는 탐, 진, 치예요. 탐욕, 성냄, 교만, 자만, 어리석음이 없다면, 우리는 안 살아요. 그 연료가 없다면 불이 꺼진 거예요. 그게 해탈입니다.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 탐, 진, 치예요. 좋은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 연료료 끊임없이 달려가고 있는 거예요. 지금 괴로움을 마주하면서, 집착이 없으면 존재 할 수 없다.  등불에 경유가 다 떨어 지면은, 심지가 꺼지지 않습니까?
연료가 없는데, 심지가 불탄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죠? 그와 같이 집착이 없는데 존재 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연료가 다 타 버렸는데, 그래 집착이 존재의 원인인거죠.

집착의 원인은 갈애죠? 갈애가 뭐냐면 세 가지 갈애 1. 감각적 욕망의 갈애, 2,존재에 대한 갈애 3. 존재 하지 않음에 대한 갈애( 비존재에 대한갈애) 이렇게 세 가지죠.  그러니까 모든 중생들은 감각적 욕망이 다 있잖아요? 그러니까 갈증 갈애가 있고, 존재하고픈 갈애 어쨌든지 신이 되고픈 비존재에 대한 갈애는, 너무 괴로운  사람들이 죽고 싶은 갈애가 있거든요. 세 가지 갈애가 있는 한은 집착은 아래로 점점더 커진 덩어리거든요. 갈애가 더 커진 거예요. 안 좋게~  강하게 움켜쥠이 집착이 갈애가 있으면 강하게 움켜쥐지 않겠어요. 그러면 집착의 원인은 갈애다.
모든 중생들은 갈애가 있다는 거죠. 갈애의 원인은 느낌 외에 없다고 치는 거예요.
눈, 귀, 코, 혀, 몸, 마음 ,외에 접촉하는 눈이 보는 색, 모양, 냄새, 소리, 맛, 감촉, 뇌에 마음에 와 닿는 모든 법들 구성요소들 이런 접촉에 의한 느낌이 없다면, 갈애가 없죠.

느낌이 없는데, 감각적 욕망에 대한 욕구가 있을 수 있나요?  아예 모르는데, 비유하자면 아가들이 아예 아직 경험한 것 모르는데, 모르는 것에 대한 욕망이 있을 수  없잖아요. 뭔가  접촉이 생기고 닿으니까, 갈애가 생기는 거죠. 우리가 아무런 느낌이 없다면 갈애는 생길 수 없어요. 그러면 갈애의 원인이 느낌이잖아요. 느낌의 원인은 감각 접촉이예요.  좀 전에 얘기했다시피 눈, 귀, 코, 혀 , 몸, 마음이 나 라는거와 바깥쪽에 형상들, 소리들 , 냄새, 맛들, 바깥쪽에 몸에 부딪히는 촉감들, 대상들, 법들이 없다면, 느낌은 존재 할 수가 없죠.  즉 안 의 비 설 신 의 가 있다는 것이 바로 느낌이 있다는 거예요. 나라는 것이 있다는 것이,
느낌의 원인은 안 이 비 설 신 의 맞죠. 안 이 비 설 신 의 의 원인은 명색이다.
정신과 물질이라는 거죠. 저것은 세상의 일어남이다.  나뿐이 아니라, 이세상은 모두 정신의 무더기와, 물질의 무더기가 합해서 생긴 거다. 그래서 정신 물질로부터 안 이 비 설 신 의가 생긴 거죠.

정신물질의 원인은 뭐죠? 아뢰야식이죠.   저~ 아뢰야식이 우리가 살아온 세월들의 모든 생을 기억이 저장 된 거죠.  예전부터 기억이 저장된 거고, 지금 은 새로 살고 있는 것을 다 저장하고 있는 거죠. 변하면서,,,,
저 아뢰야식은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가 나쁜 짓 많이 해서 저장되면,  그때는 지옥가니까 지옥의 아뢰야식이 저장되고, 착한일 많이 하면 천상 가서, 천상의 아뢰야식이 되니까 변하는 거죠.  변하는 것은 실체가 아닌 겁니다. 그냥 저장하는 거다.
저 아뢰야식의 조건은 애초에 의도다. 어떤 형성 의도하는바가 있었든거죠.
의도 하는 것을 조건으로 의도하다 보니까, 기억이 저장이 되는 것이 생긴 겁니다. 의도를 왜 했냐?  의도의 원인은 무명이다.
어리석음 이것이 괴로움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길이다. 를 몰라서 어리석은 무명이기 때문에 의도를 시작했다는 겁니다. 그 사성제를 알았더라면, 의도를 시작하지 않았을 거다.

그래서 지금까지 살펴본 것이, 태어남의 원인은 늙고, 병들고, 죽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의 원인은 태어남이었다. 그렇다면 태어나지만 않는다면, 늙고, 병들고, 죽음도 없고,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다는 괴로움이 없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태어나지만 않으면, 왜냐면 태어남을 조건으로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생기기 때문에,  그러면 태어남의 원인은 존재이기 때문에, 존재하지 않으면, 태어남도 없지 않느냐? 존재의 원인은 집착이기 때문에, 집착만 하지않는 다면, 존재하지 않는다.

집착의 원인은 갈애이기 때문에, 감각적 욕망에 갈증, 존재하고 싶은 갈증, 존재하기 싫은 갈증만 없애면, 괴로움은 없어지지 않냐?  갈애의 원인은 느낌이기 때문에,
느낌만 없으면 괴로움은 사라진다. 느낌의 원인은 접촉이었기 때문에, 나와 세상과의 접촉만 소멸하면, 괴로움은 소멸한다. 접촉의 원인이 안 이 비 설 신 의였기 때문에, 안 이 비 설 신 의 만 소멸하면, 괴로움은 소멸한다.  안이비설신의의 원인은 명색(정신물질) 이었기 때문에, 정신물질만 소멸하면 괴로움은 소멸한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이 소멸 하면, 의도가 소멸하면, 무명이 소멸하면, 괴로움은 소멸한다.

즉 무명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가 소멸하고, 의도가 소멸하기 때문에 아뢰야식이 소멸하고, 아뢰야식이 소멸하기 때문에, 정신과 물질의무더기가 소멸하고, 정신물질의무더기가 소멸하기 때문에, 안 이 비 설 신 의가 소멸하고, 안이비설의가 소멸하니까, 감각 접촉이 소멸하고, 접촉이 소멸하니까, 느낌이 소멸하고, 느낌이 소멸하니까 갈애가 소멸하고, 갈애의소멸로조건으로 집착이 소멸하고, 집착의 소멸을 조건으로 존재가 소멸하고, 존재의 소멸을 조건으로, 태어남이 소멸하고, 태어남이소멸하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음,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이라는 모든 전체적 괴로움의 무더기가 완전히 소멸해 버린다고 하신 겁니다.

부처님께서 이것은 아무것도 없는 단멸이 아니라, 개체로 소멸했지만, 불성이 드러나서 궁극을 이룬 것이다. 이것이 너무 추상적이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라면, 아예 단적으로 이야기 하면, 탐, 진, 치의소멸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되시는데, 성냄부터 이야기해보죠. 성냄이 없는 사람이 우리 떠나서 우리가  “ 화” 나죠. 화 날 때 화를 내야 하는데, 그럼 나 자신을 떠나서 한번 사유해보죠.

어떤 사람이 화 가 없다면 화 자체가 없다면, 그 사람 은 되게 행복할 것 같나요. 어떤 사람이 탐욕이 없다면, 그 사람 청정하긴 청정할까요? 청정이라는 것이 고유하고 깨끗하고, 내 개인적인 생각 집어넣지 말고,  왜냐면 개인적 생각이 자꾸 들어가거든요. 아~ 그래도
그렇지 청정하면 뭐해 못 먹고 못 사는데, 탐욕이 없으면 거지 아니야! 내 개인적인 생각 빼고, 나 빼고 어떤 사람이 탐욕이 아예 없는데, 사람들 보면 깨끗하지 않겠습니까?  여기 사람이 있는데, 어리석음이라는 교만 자만이 없는데, 내가 있다 라는게  어떤 사람이 그러면 청정하고 행복할 거라는 생각이 우리가 드나요.
탐, 진, 치가 없는 사람은 다 소멸한 거예요. 깨끗하면 뭐해요. 청정하고 우리입장으로 돌아오면 선하고 그건 곤란하다. 그러한 삶은 나에게 곤란하다.

부처님께서 경에서 단적으로 말씀하셨어요. 탐욕의 멸진, 성냄의 멸진, 어리석음의멸진, 이 해탈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삼독, 삼독, 하는 겁니다. 탐, 진, 치 라고....  
그러니 여기서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그냥 탐, 진, 치를 멸해라 하면 할 수 없 어요. 저번 시간에 말씀드렸지만, 탐보다 추월해서요,  탐이 돈만은 아니지만, 돈을 놓을려고 해도 돈보다 좋은 다이아몬드 가 있긴 있어야 해요.  탐을 버려 가면서 삼매를 닦아라. 삼매는 돈으로 비교할 수 없는 신들의 상태기 때문에, 지복이니까, 대체 수단이 과정에 다 있는 겁니다.  

여기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해서 얘기했는데요. 어떻게 괴로움의 소멸은 이해했지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방법 도 닦음은 뭐냐면? 팔정도 인데요. 팔정도 들어가기 전에 어떻게 소멸하는가? 를  팔정도 와는 다르게 잠깐이야기 해 보겠습니다.  저기에서 두 번째 의도와, 세 번째 아뢰야식과, 네 번째 오래된 업이예요.
오래된 업과 새로운 업이 있어요. 오래된 업에 의해서 안 이 비 설 신 의 가 생겼다. 

그러면 새로운 업이란 무엇인가? 인이비설신의가 지금 지어나가는 몸과 말과 마음의 행위가, 새로운 업이 된다. 오래된 전에 업으로 지금 태어나서 안이비설신의가 생긴거죠. 전생에 지은 과보로 지금 태어났다면, 이제부터 짓는 몸, 말, 마음, 신구 의 삼업이라는 거죠. 이제부터 저장되는 새로운 업이 되는 거예요. 그러면 저기서 보면 의도 아뢰야식 다음에 이제 새로운 업이 보면은, 정신물질의 무더기에서 안이비설신의가 생겼는데, 즉 안이비설신의가 없으면, 접촉이 없을 거다. 라고 설명을 드렸죠.

이치적으로 그때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아~ 이치로는 맞지만 살아서 안이비설신의가 어떻게 없어지나? 살아서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어떻게 없어지나?  세 가진데 먼저 하나는 뭐를 알아야하면 이치를 먼저 이야기해야 하는데,
눈이라는 건 항상 한가? 무상한가?  무상 이라는 것은 변하는 것 입니다. 항상하지않고, 눈이 라는 것은 무상하잖아요. 무상한 것은 즐거움인가? 괴로움인가?  항상하지 않은 것은 즐거움이 아니고, 늘 괴로움입니다. 변하는 것은 변하기 때문에, 늙고, 병들고, 죽고, 저번에 괴로움 세 가지라고 했는데,
1. 괴로움 그 자체는 원래 괴로움
2. 즐거움도 괴로운 이유가 즐거움 도 좀 있다가 변하기 때문에 괴로움 항상 즐거울 수가 없기 때문에,,,
3. 모든 형성된 것들은 결국은 불멸이 아니기 때문에 괴롭다.
그러니 지금 눈은 무상함이요. 눈은 즐거움이 아니고, 괴로움이요. 즐거울 때도 있지만, 괴로움도 왔다 갔다 하니까, 그리고 눈은 바로 불멸의 실체가 아니다. 그렇죠.
귀도 코도 혀도 몸도 마음도 항상 하지 않고서는, 늘 오락가락 하면서, 변하니까 괴롭잖아요. 마음이 변한다. 무상하다. 그리고 늘 즐거운가 ? 아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이다.
그리고 눈, 귀, 코, 혀, 몸, 마음은 불성이 아니다.  불멸이 아니다. 얘는 실체가 아니다.  그러면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변하기 마련인 이 안이비설신의는 눈, 귀, 코, 혀, 몸, 마음은, 결코 나의 것이 아니고,  나가 아니고, 이것은  불멸의 실체가 아니지 않습니까?  이렇게 잘 배운 제자는 안이비설신의를 놓아야 되는 거죠?  

부처님께서 이렇게 얘기하십니다.
1. 그대의 것이 아닌 것을 버려라. 눈, 귀, 코, 혀, 몸, 마음은 그대의, 그대가 아니고, 그대의 것도 아니다. 그러셔요.

그것은 불멸이 아니고, 불멸에 속한 것도 아니기 때문에, 눈, 귀, 코, 혀 , 몸, 마음을 버려라. 그것은 불멸도 아니고 괴로움인데, 그것을 붙잡고 있으면 있을 동안은 더 괴로울 것이다. 실제적으로 색계의 신들도 몸뚱아리를 버렸기 때문에, 빛의 몸이잖아요? 더 높은 무색계의신들은 빛도 버렸기 때문에, 형체 없는 순수의식이잖아요. 그래서 버려라. 이것은 일번입니다.
이번은 방법론이 있어야 하잖아요. 어떻게 버리느냐 먼저 알았으니까,

2. 육근단속을 하라고 그러신 거죠.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좋아 하는 것들을 일단 좀 너무  좋아 하지 말고, 떨구기시작하라. 그러신 거죠. 그것이 두 번째 방법이고,


3. 세 번째 방법이 진짜 방법인데요.  다음번에 얘기할건데 삼매예요.  
삼매가 되어서 공무변처가 되면 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사라져요.  공무변처는 여덟 가지 삼매 중에서 5번째 경지예요. 물질을 초월하여 공이 가이 없는 상태, 내 눈, 귀, 코, 혀, 몸, 마음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라는 색성향 미촉법까지 다 사라져요. 죽었다 하는 것이 아니라, 살아서 물질을 초월하는 상태가 되요.
부처님께서 삼매를 왜 열심히 하라고 그러시냐하면, 삼매를 하게 되면 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고 그러셨어요. 삼매가 안 되면 법이 불분명하다가 바로 이 이유예요.

공무변처가 된 사람은 부처님 법의말씀을 바로 알아 듣습니다.  눈, 귀, 코, 혀, 몸, 을 버려라 왜 그려셨는지? 버리게 되면 공이 가이없는 상태가 된다 라는게, 자기가 가이없는 상태가 되는 거예요.
이 몸뚱아리는 아니고요. 다 사라진 상태에서 눈뜨고요. 그런데 그 공무변처라는 거기서부터가 무심삼매고 거기서부터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증득한 거 맞다. 궁극의 깨달음은 아니지만, 그 공무변처가 될려면, 그 전제조건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좋아하는 거 많이 버려야지만, 많이 버리고 삼매를 열심히 해야지만,  거 공무변처가 되요.

거꾸로 얘기하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좋아하는 거 집착이랑 탐욕이랑 싫어하는 저항을 많이 하는 사람은, 삼매를 열심히 공부해도 사실은 5선 공무변처가 못 되요. 혹은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좋아하는 거와 싫어하는 것을 많이 없애고, 없앴다쳐더라도 삼매를 일심삼매부터 안 닦으면  그것 역시 공무변처가 안 되요.

공무변처가 되는 큰 두 가지 조건은
1. 세상에서  좋아하는 눈, 귀 , 코, 혀 , 몸, 마음이 좋아하는 것들을 많이 버리고,
2. 싫어하는 것을 너무 싫어하지 말고, 삼매를 열심히 닦으면, 그 두 가지를 조건으로 공무변처가 되요.
공무변처는 무색계의 신의경지예요. 네 가지경지 중 첫 번째 예요. 그러면 돌아와서 지금 눈, 귀, 코, 혀, 몸, 마음이 없으면, 아까 접촉이 없다고 했는데, 살아서 어떻게 살아있는 사람이 눈, 귀, 코, 혀, 몸, 마음을 없애나 했는데, 진짜로 살아서 없앨 수 있다. 했습니다. 잠드는 것이 아니고, 눈뜨고 맨 정신으로, 그리고 접촉이 사라지면, 당연히 공무변처에서는 세상으로 하여금 느낌이 없습니다. 나 도 세상도 없기 때문에, 그때는 단지 어떤 느낌 이냐하면, 느낌 아닌 느낌이 공무변처를 조건으로 한 지복의 느낌이 있습니다.  그렇게 해갖고 쭉 갑니다.

안이비설신의가 사라지면, 접촉이 사라집니다. 접촉을 하게 되면요, 느낌이 즐거운 느낌, 괴로운 느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느낌 세 가지가 벌어지는 되요.
즐거운 느낌은 집착의 느낌인데, 집착의 느낌이 올 때, 너무 집착 하지 말라. 그러신 거예요.

괴로운 느낌은 혐오스런 느낌이 올 텐데, 쥐를 봤다든지 혐오 하지 말라. 중도적으로 가야 됩니다. 혐오스럽지 않은 아름다운 표상에게는, 너무 사랑스러워 하지 말고, 혐오하는 대상에 대해서는 혐오 하지 말라.
왜냐면, 사랑스런 대상에 푹 빠져버리면, 그것은 집착, 그것은 탐욕으로 가는 거고,
혐오하는 대상에게 싫어하고 좋아하면, 그것은 분노로 가게 된다.
적의의 표상으로 그래서 비록 경험을 하드래도 부처님 경에 말씀입니다. 눈으로 대상을 봤을 때, 그 대상을 경험 한다는 것은  뭔지 안다 이거죠. 경험을 하게 되더라도, 탐욕을 갖게 되거나 분노를 갖지 말라. 그러신 거예요.
우리는 경험을 하게 되면, 바로 탐욕 아니면 분노, 아니면 이 것 저것도 아닌,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은 보통상태 에 있거든요. 경험하면 바로 그렇게 되거든요.
부처님께서 경험하더라도 더 나아가 탐욕의대상이 되지 말고, 대상을 경험 하고나서 분노하는 대상이란 분노 하지 말고, 이렇게 되면 느낌을 중화 시킬 수 있죠.        

   
        2011.4/30  녹취자: 예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