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찰-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道聖諦(도성제)]
21.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의 성스러운 진리
[苦滅道聖諦(고멸도성제)]인가?
그것은 바로 여덟 가지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도[八支聖道(팔지성도)] 이니,
즉 바른 견해[正見(정견)],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 바른 말[正語(정어)], 바른 행위[正業(정업)], 바른 생계[正命(정명)],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 바른 싸띠[正念(정념)], 바른 사마디[正定(정정)]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견해[正見(정견)]인가?
비구들이여, 괴로움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일어남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에 대한 지혜,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에 대한 지혜 - 이를 일러 바른 견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유[正思惟(정사유)]인가?
비구들이여, 출리(出離)에 대한 사유, 악의 없음에 대한 사유, 해코지 않음[不害(불해)]에 대한 사유 - 이를 일러 바른 사유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말[正語(정어)]인가?
비구들이여,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모략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말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행위[正業(정업)]인가?
비구들이여, 살생을 삼가고 도둑질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는 것 - 이를 일러 바른 행위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생계[正命(정명)]인가?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삿된 생계 (1) 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한다. -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생계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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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삿된 생계
삼십이상 경(D30) 디가니까야 3권(각묵스님, 2006년) p.304-305
“비구들이여, 여래는 이전의 삶과 이전의 존재와 이전의 거주처에서 인간으로 태어나서그릇된 생계를 제거하고 바른 생계로 생명을 영위하였다.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금하였다.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치는 것을 금하였다. 상해, 살상,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금하였다. 그는 그런 업을 지었고 쌓았고 넘치게 하였고 풍부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선처)]이나 천상에 태어났다.
그는 거기서 다른 신들보다 열 배가 더 많이 하늘의 수명과 하늘의 용모와 하늘의 행복과 하늘의 명성과 하늘의 권위와 하늘의 형상과 하늘의 소리와 하늘의 냄새와 하늘의 맛과 하늘의 감촉을 누렸다. 그는 거기서 죽어 여기에 와서는 이가 고르고, 이가 아주 흰 이런 두 가지 대인상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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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정진[正精進(정정진)]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아직 일어나지 않은 사악하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 들을 일어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사악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기 위하여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유익한 법[善法(선법)]들을 일어나도록 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이미 일어난 유익한 법들을 지속시키고 사라지지 않게 하고 증장시키고 충만하게 하고 개발하기 위해서 의욕을 생기게 하고 정진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다잡고 애를 쓴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정진이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싸띠[正念(정념)]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身隨觀(신수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며 머문다. 느낌들에서 느낌들을 관찰하며[受隨觀(수수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며 머문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心隨觀(심수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며 머문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법수관)] 머문다. 세상에 대한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을 버리면서 근면하게, 분명히 알아차리고 싸띠를 확립하며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싸띠라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바른 사마디[正定(정정)]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 (불선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 고찰[伺(사)]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고, 희열[喜(희)]과 행복[樂(락)]이 있는 초선(初禪)에 들어 머문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없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에 들어 머문다.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를 확립하고 분명하게 알아차리며[正念正知(정념정지)]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정하게 싸띠를 확립하며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에 들어 머문다.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없앴으므로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싸띠가 청정한[捨念淸淨 (사념청정)] 제4선(四禪)에 들어 머문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사마디라 한다.
이와 같이 안으로(부터)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法隨觀(법수관)] 머문다.
혹은 밖으로(부터)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안팎으로(부터)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사라지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법에서 일어나기도 하고 사라지기도 하는 현상을 관찰하며 머문다.
혹은 그는 ‘법이 있구나.’라고 싸띠를 잘 확립하나니 지혜만이 있고 싸띠만이 현전할 때까지.
이제 그는 [갈애와 견해에] (그 어떤것에도)의지하지 않고 머문다.
그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움켜지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비구는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의 법칙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