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19. 두 가지 사유의 경 [Dvedhāvitakkasuttaṃ]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내가 전에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지 못한 아직 보살이었을 적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사유673)를 둘로 나누어 머물리라.'라고,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와 악의와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를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다.674)
출리(出離)와 관련된 사유와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와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를
또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다.”675)
673) 본경에서 '사유'는 vitakka를 옮긴 것이다. 일반적으로 사유는 팔정도의 두 번째 구성요소인 sammā-saṅkappa(바른 사유, 正思惟)로 많이 나타나는 saṅkappa를 옮긴 것이다. 그리고 본경의 vitakka는 주로 초선의 정형구에서 vitakka-vicāra의 문맥에서 나타나며 이 경우에 vitakka는 '일으킨 생각'으로 vicāra는 '지속적 고찰'로 옮겼다. 그러므로 본경에서도 이 vitakka를 '일으킨 생각'이나 '생각'으로 옮기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그런데 본경에 나타나는 vitakka는 두 가지로 나뉘어져 언급되는데, 첫 번째는 감각적 욕망(kāma)과 악의(byāpāda)와 해코지(vihiṃsā)와 관련된 것이고 두 번째는 출리(nekkhamma), 악의 없음(abyāpāda), 해코지 않음(avihiṃsā)과 관련된 것이다. 그런데 이 출리, 악의 없음, 해코지 않음은 바로 팔정도의 정사유(正思惟, 바른 사유, sammā-saṅkappa)의 내용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본경에서의 vitakka는 팔정도에서 [정]사유로 옮기는 saṅkappa와 동의어가 된다. 그래서 여기서는 vitakka를 '사유'로 옮겼다.
674)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는 kāma-vitakka(감각적 욕망의 사유)인데 주석서에서 kāmapaṭisamyutta vitakka(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라고 설명하고 있어서(MA.i.79) 이렇게 옮겼다. 나머지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이다.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다.(ekāṃ bhāgam akāsiṃ).'는 것은 안의 것이건, 밖의 것이건, 거친 것이건, 미세한 것이건, 이 모든 사유는 오직 해로움에 속한다(akusala-pakkhiko yeva)고 생각하면서 비록 세 가지이지만 감각적 욕망과 악의와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kāma-byāpāda-vihiṃsā-vitakka)를 하나의 부분(eka koṭṭhāsa)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MA.ii.79)
675) 여기서 '출리와 관련된 사유'도 nekkhamma-vitakka(출리의 사유)인데 주석서에서 “감각적 욕망으로부터 벗어난 출리와 관련된 사유(kāmehi nissaṭo nekkhamma-paṭisaṃyutto vitakko)”(MA.ii.79) 2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출리와 관련된 사유'는 초선까지 작용한다.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abyāpāda-vitakka)'는 자애 수행의 예비단계(mettā-pubbabhāga)부터 시작하여 초선까지 작용한다.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avihiṃsā-vitakkka)'는 연민 수행의 예비단계(karuṇā-pubbabhāga)부터 시작하여 초선까지 작용한다. '또 하나의 부분으로 만들었다(dutiyaṃ bhāgam akāsiṃ),'는 것은 이 모든 것은 오직 유익함에 속한다고 생각하면서 두 번째 부분(dutiya koṭṭhāsa)으로 만들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보살이 사유를 제지할 때(vitakka-niggahaṇa-kāla)를 말한 것이다.” (MA.ii.79)
거듭 말하지만 이 셋은 팔정도의 바른 사유[正思惟, sammā-saṅkappa]의 내용에 해당하는 구성요소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에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알았다.
'내게 이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이것은 참으로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리고,676)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트리고,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린다.
이것은 통찰지를 소멸시키고677) 곤혹스럽게 하고 열반에 이바지하지 못한다.
676)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리고'로 옮긴 원문은 atta-byābādhāya pi(자신을 해치는)인데 주석서에서 atta-dukkhāya pi(자신을 고통에 빠트리는)'의 뜻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MA.ii.81) 이렇게 옮겼다. 본서 제3권 「깐나깟탈라 경」(M90) §13의 주해도 참조할 것.
“그렇다면 마하살(mahā-satta)에게도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리는 그런 사유가 일어나는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철저하게 알지 못함에 머무는 자(apariññāyaṃ ṭhita)의 사유는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리기 때문에 이러한 세 가지 이름을 얻는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씀하셨다.”(MA.ii.81)
677) “'통찰지를 소멸시키고(paññā-nirodhika)'란 일어나지 않은 세간적인 통찰지와 출세간적인 통찰지를 일어나지 못하게 한다는 말이다.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나면 이것은 세간적인 통찰지가 여덟 가지 증득[八等至, aṭṭha-samāpatti, 초선부터 비상비비상처까지]과 다섯 가지 신통지[五神通, pañca-abhiññā, 신족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천안통]로 일어나더라도 이것을 끊어버리고 던져버리기 때문에 통찰지를 소멸시키는 것이다.”(MA.ii.81)
비구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이것은 참으로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트린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이것은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린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이것은 통찰지를 소멸 시키고 곤혹스럽게 하고 열반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날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버렸고 제거했고 없앴다.”
4. ~ 5. “비구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에 악의와 관련된 사유678)가 일어났다. …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679)가 일어났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알았다.
'내게 이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이것은 참으로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리고,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트리고,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린다. 이것은 통찰지를 소멸시키고 곤혹스럽게 하고 열반에 이바지하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은 참으로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린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이것은 참으로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트린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이것은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린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이것은 통찰지를 소멸 시키고 곤혹스럽게 하고 열반에 이바지하지 못한다.'라고 숙고했을 때 그것은 사라졌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가 일어날 때마다
반드시 그것을 버렸고 제거했고 없앴다.”
678) “'악의와 관련된 사유(byāpāda-vitakka)'란 보살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주는 것과 관련된 사유가 마음에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비가 너무 많이 오거나 너무 많이 덥거나 너무 많이 추운 것에 관해서는 마음에 변화가 온다. 그것과 관련하여 악의와 관련된 사유라 했다.”(MA.ii.81)
679)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vihiṃsā-vitakka)'란 마하살(mahā-satta)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일으키는 것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마음이 안정되지 못한 상태, 여러 갈래의 상태가 있는데 그것을 취하여 해코지의 사유를 만든다. 초막의 문에 앉아서 호랑이와 사자 등의 숲 속 짐승들이 돼지 등 작은 동물들을 해치는 것을 본다. 그때 보살은 '이 평화로운(akuto-bhaya) 숲 속에 이런 동물들의 적들이 나타나는구나. 강자들이 약자들을 잡아먹고, 약한 자들을 먹으면서 생을 영위하다니.'라고 연민심(kāruñña)을 일으킨다. 그것과 관련하여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를 일으킨다고 했다. (MA.ii.81)
16.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떤 것에 대해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그대로 마음의 성향이 된다.680)
680)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 등에서 어떤 것을 사유하고 어떤 사유를 일으키면, 그 상태에 따라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 등으로 그에게 마음의 성향이 된다는 말씀이다.”(MA.ii.81~82)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출리와 관련된 사유가 없어져 버리고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를 거듭하여 그의 마음은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로 기울어진다.
악의와 관련된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가 없어져버리고 악의와 관련된 사유를 거듭하여 그의 마음은 악의와 관련된 사유로 기울어진다.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가 없어져버리고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를 거듭하여 그의 마음은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로 기울어진다.”
7.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우기철의 마지막 달인 가을에 곡식이 여물어 풍성해지면
소치는 사람이 소떼를 보호하는 것과 같다.
그는 소떼를 여기저기서 회초리로 때리고 제지하고 묶고 잘 단속해야 한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비구들이여, 그 소치는 사람은 그 때문에 매를 맞거나 구속되거나 몰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나는 해로운 법[不善法]들의 재난과 비천함과 더러움을 보았고
유익한 법[善法]들의 출리와 공덕과 깨끗함을 보았다.”
8. “비구들이여, [116]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에 출리와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알았다.
'내게 이런 출리와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이것은 참으로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트리지 않고,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리지 않는다. 이것은 통찰지를 증장시키고 곤혹스럽게 하지 않고 열반에 이바지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온 밤을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고찰해도
그로 인해 어떤 두려움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온 낮을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고찰해도
그로 인해 어떤 두려움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낮과 밤을 온통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고찰해도
그로 인해 어떤 두려움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오래 생각하고 고찰하면 몸이 피로할 것이고,
몸이 피로하면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고, 681)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삼매에서 멀어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681) “'혼란스러울 것이다(ūhaññeyya)'라는 것은 마음이 들뜨게 될 것이고(ugghātīyittha) 들(uddhacca)이 생긴다는 말이다.”(MA.ii.83)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안으로 마음을 확고하게 하고 가라앉히고 통일하여 삼매에 들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마음이 들뜨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9. ~ 10. “비구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에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
비구들이여, 그런 내가 이와 같이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물 때에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알았다.
'내게 이런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가 일어났다.
이것은 참으로 나 자신을 고통에 빠트리지 않고, 다른 사람을 고통에 빠트리지 않고,
둘 다를 고통에 빠트리지 않는다.
이것은 통찰지를 증장시키고 곤혹스럽게 하지 않고 열반에 이바지한다.
비구들이여, 나는 온 밤을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고찰해도
그로 인해 어떤 두려움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온 낮을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고찰해도
그로 인해 어떤 두려움도 보지 못했다.
비구들이여, 나는 낮과 밤을 온통 그것을 거듭 생각하고 거듭 고찰해도
그로 인해 어떤 두려움도 보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너무 오래 생각하고 고찰하면 몸이 피로할 것이고,
몸이 피로하면 마음이 혼란스러울 것이고,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삼 매에서 멀어질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다.]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안으로 마음을 확고하게 하고 가라앉히고 통일하여 삼매에 들었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나의 마음이 들뜨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11. “비구들이여, 비구가 어떤 것에 대해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그대로 마음의 성향이 된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출리와 관련된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 하다보면 감각적 욕망과 관련된 사유가 없어져 버리고 출리와 관련된 사유를 거듭하여 그의 마음은 출리와 관련된 사유로 기울어진다.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악의와 관련된 사유가 없어져버리고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를 거듭하여 그의 마음은 악의 없음과 관련된 사유로 기울어진다.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를 거듭해서 일으키고 고찰을 거듭하다보면
해코지와 관련된 사유가 없어져버리고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를 거듭하여 그의 마음은 해코지 않음과 관련된 사유로 기울어진다.”
12.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더운 여름의 마지막 달에 모든 곡식들을 마을 안으로 다 거둬들였을 때 소치는 사람이 소떼를 보호 한다고 하자.
그는 나무 아래로 가거나 노지에 가서
'여기 소떼가 있구나.'라고 싸띠 (마음챙김)만 잘 확립하면 된다.682)
682) “'마음챙김만 잘하면 된다(sati-karaṇīyam eva hoti)'는 것은 오로지 마음챙김을 일으키는 것만(sati-uppādana-matta)하면 되고 여기저기를 쫓아가서 밧줄로 때리는 등의 행동을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MA.ii.84)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런 마음의 현상들[法]이 있구나.'라고 나는 싸띠 (마음챙김)만 확립하면 되었다. 683)
683) 본문의 '마음의 현상들[法]'은 dhammā를 풀어서 옮긴 것이다.
“여기서 '이런 마음의 현상들[法]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만 하면 되었다.(satikaraṇīyameva ahosi ete dhammāti).'는 것은 '사맛타와 위빳사나의 법들이 있구나.'라고 마음챙김을 일으키는 것만 하면 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은 보살의 사맛타와 위빳사나가 굳건해진 시기(thāma-jāta-kāla)를 말한 것이다. 그때 보살이 본삼매의 증득(samāpattiṃ appana)에 들기 위해 앉아있을 때에는 여덟 가지 증득이 한 번의 전향에 의해 나타났고, 위빳사나를 확립하여 앉아있을 때에는 일곱 가지 수관(七隨觀, satta anupassanā)이 한 번의 꿰뚫음으로 실현되었다고 한다.”(MA.ii.84)
일곱 가지 수관(隨觀, 관찰)은 무상의 수관(anicca-anupassanā), 괴로움의 수관(dukkha-anupassanā), 무아의 수관(anatta-anupassanā), 염오의 수관(nibbida-anupassanā), 이욕의 수관(virāga-anupassanā), 소멸의 수관(nirodha-anupassanā), 놓아버림의 수관(paṭinissagga-anupassanā)이다.(MA.i.157) 본서 「원한다면 경」(M6) §3의 주해도 참조할 것.
13. “비구들이여, 내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
싸띠가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었고,
몸이 경안하여 교란하지 않았고,
마음이 집중되어 일념이 되었다.”
14. ~ 24. “비구들이여, 그런 나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과 지속적 관찰[伺]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렀다.
… 제2선(二禪)을 … 제3선(三禪)을 …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물렀다.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다. …
비구들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三更)에 증득한 세 번째 명지(明知)이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고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다.” 684)
684) 이상 본경 §§14~24는 본서 「두려움과 공포 경」 (M4) §§23~33과 같다.
25.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깊은 숲 속에 큰 호수가 있는데,
그 부근에 큰 사슴의 무리가 산다고 하자.
그들의 이로움을 바라지 않고 복리를 바라지 않고 안전을 바라지 않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그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막아버리고 나쁜 길을 열어
그들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를 놓아두고685) 꼭두각시를 설치하면,
큰 사슴의 무리는 나중에 재난과 참화에 처하고 점점 줄게 될 것이다.
685) “'미끼를 놓아두고(odaheyya okacaraṃ)'라는 것은 그들의 영역(oka)에서 움직이는 것처럼(caramānaṃ viya) 그렇게 영양(羊, dīpaka-miga)을 한쪽에 놓아둔다는 말이다.”(MA.ii.85)
비구들이여, 그러나 그들의 이로움을 바라고 복리를 바라고 안전을 바라는 어떤 사람이 나타나서
그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열고 나쁜 길을 막아버리며
그들을 유인하기 위한 미끼를 없애고 꼭두각시를 제거해버리면,
큰 사슴의 무리는 나중에 번창하고 증가하여 아주 많아질 것이다.”
26, “비구들이여, 내가 이 비유를 설한 것은 뜻을 전달하기 위해 서이다. 그 뜻은 이러하다.
비구들이여, 깊은 숲 속의 큰 호수는 감각적 욕망들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큰 사슴의 무리는 중생들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들의 이로움을 바라지 않고 복리를 바라지 않고 안전을 바라지 않는
어떤 사람이란 마라686)를 두고 한 말이다.
686) 마라(Māra)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마라 견책 경」(M50) §2의 주해를 참조할 것.
비구들이여, 나쁜 길이란 여덟 가지 그릇된 길을 두고 한 말이니
즉 그릇된 견해, 그릇된 사유, 그릇된 말, 그릇된 행위, 그릇된 생계,
그릇된 정진, 그릇된 싸띠, 그릇된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유인하기 위한 미끼란 향락과 탐욕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꼭두각시란 무명을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그들의 이로움을 바라고 복리를 바라고 안전을 바라는 어떤 사람이란
여래 · 아라한 · 정등각자를 두고 한 말이다.
비구들이여,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은 성스러운 팔정도[八支聖道]를 두고 한 말이니
즉 바른 견해, 바른 사유, 바른 말, 바른 행위, 바른 생계, 바른 정진, 바른 싸띠, 바른 삼매이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나는 평화롭고 안전하고 기쁨을 주는 길을 열었고 나쁜 길을 막아버렸고 미끼를 없앴고 꼭두각시를 제거했다.”
27. “비구들이여, 항상 제자들의 이익을 기원하며 제자들을 연민하는 스승이
마땅히 해야 할 바를 나는 연민으로 했다.
비구들이여, 여기 나무 밑이 있다. 여기 빈집이 있다. 참선을 하라.
비구들이여, 방일하지 마라. 나중에 후회하지 마라. 이것이 그대들에게 주는 나의 간곡한 당부이다.”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 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했다.
두 가지 사유 경(M19)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