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04 . 두려움과 공포 경 [Bhayabherav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5. 24. 05:07

맛지마니까야 1(대림스님, 2012) p.203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 (급고독원)에 머무셨다.

 

2. 그때 자눗소니 바라문이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한 뒤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자눗소니 바라문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이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은 고따마 존자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그들의 지도자이시고, 고따마 존자께서는 그들을 돕는 분이시며 고따마 존자께서는 그들의 인도자이십니까? 이 사람들은 고따마 존자님을 본보기로 삼습니까?

 

 “바라문이여, 그러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러합니다. 바라문이여, 이들 좋은 가문의 아들[善男子]들은 나를 의지하여 믿음으로 집을 나와 출가했습니다. 나는 그들의 지도자이고, 나는 그들을 돕는 자이며 나는 그들의 인도자입니다. 이 사람들은 나를 본보기로 삼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은 참으로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숲은 사마디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고 생각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러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러합니다. 바라문이여,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은 참으로 견뎌내기가 어렵습니다.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습니다.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숲은 사마디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고 생각합니다.

 

3. “바라문이여, 전에 내가 정각을 이루지 못한 보살이었을 적에 이러한 생각이 들었습니다‘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은 참으로 견뎌내기가 어렵다. 한거는 행하기가 어렵다. 혼자됨을 즐기기는 어렵다. 숲은 사마디를 얻지 못한 비구의 마음을 빼앗아 가버린다.’“ 

 

4.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살생 등] 몸의 행위[身行]가 청정하지 못한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하지 못한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하다. 나는 몸의 행위가 청정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몸의 행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5. ~7.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말의 행위[口行]가 청정하지 못한 자들이 … 마노의 행위[意行]가 청정하지 못한 자들이 … 생계[]가 청정하지 못한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생계가 청정하지 못한 것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계가 청정하지 못한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생계가 청정하다. 나는 생계가 청정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생계가 청정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8.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욕심을 부리고 감각적 욕망들에 깊이 탐닉한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욕심을 부리고 감각적 욕망들에 깊이 탐닉함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욕심을 부리고 감각적 욕망들에 깊이 탐닉한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나는 욕심을 부리지 않는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욕심을 부리지 않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9.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악의와 타락한 생각을 품은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악의와 타락한 생각을 품음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악의와 타락한 생각을 품은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졌다. 나는 자애로운 마음을 가진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자애로움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0.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해태와 혼침에 압도됨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해태와 혼침에 압도된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해태와 혼침이 없다. 나는 해태와 혼침이 없는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해태와 혼침이 없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1.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들뜨고 마음이 고요하지 않은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들뜸과 고요하지 않은 마음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들뜸과 고요하지 않은 마음을 가진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내 마음은 고요하다. 나는 마음이 고요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고요한 마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2.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의혹과 의심을 품은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의혹과 의심을 품음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의혹과 의심을 품은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의심을 건넜다. 나는 의심을 건넌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의심을 건넜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3.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는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난함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나를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면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나는 나를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나는 자기를 칭찬하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나를 칭찬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 것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4.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무서움과 두려움에 질려 있는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무서움과 두려움에 질림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무서움과 두려움에 질린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소름끼침이 없다. 나는 소름끼침이 없는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소름끼침이 없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5.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는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람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득과 존경과 명성을 바라면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나는 바라는 것이 적다[小欲]. 나는 바라는 것이 적은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바라는 것이 적음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6.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는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음으로 인해 그 사문· 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게으르고 정진하지 않으면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열심히 정진한다. 나는 열심히 정진하는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열심히 정진함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7.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싸띠가 없고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이 없는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싸띠가 없고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이 없음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싸띠가 없고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이 없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싸띠를 확립했다. 나는 싸띠를 확립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싸띠의 확립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8.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한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집중하지 못하고 마음이 산란함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집중하지 못하고 산란한 마음을 가진 채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사마디를 성취했다. 나는 사마디를 성취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사마디의 성취를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19.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떤 사문이든 바라문이든 반야가 없고 어리석은 자들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게 되면, 반야가 없고 어리석음으로 인해 그 사문·바라문들은 해로운 두려움과 공포를 불러올 것이다.

 

 그러나 나는 반야가 없고 멍청이같이 되어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지 않는다. 나는 반야를 구족했다. 나는 반야를 구족한 성스러운 자들 중의 한 사람으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한다.’

 

 바라문이여, 나는 내 자신 안에서 이 반야의 구족을 보면서 더욱더 숲 속에 머무는 데 안전함을 느꼈습니다.”

 

20.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보름 중의 14일과 15일과 8일 밤은 상서로운 날로 알려져 있다. 그런 날 밤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동산의 탑전이나 숲의 탑전이나 밀림의 탑전 같은 그런 곳에서 내가 머물면 어떨까?’라고. 그러면 아마도 두려움과 공포를 볼 수 있으리라.’

 

 바라문이여, 그 후 상서로운 날로 알려져 있는, 보름 중의 14일과 15일과 8일의 그런 날 밤에 나는 무시무시하고 소름끼치는 동산의 탑전이나 숲의 탑전이나 밀림의 탑전 같은 그런 곳에서 머물렀습니다. 바라문이여, 내가 머무는 동안 짐승이 오거나 공작새가 마른 나뭇가지를 부러뜨리거나 바람이 낙엽과 쓰레기를 흩날렸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지금 다가오는 이것이 두려움과 공포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때 내게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내가 꼭 두려움을 기대하면서 머물러야 하는가? 내가 어떠한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어떤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오든, 그 자세를 유지한 채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치리라.

 

 바라문이여, 그때 내가 포행을 하고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않고 오직 포행을 하면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때 내가 서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포행도, 앉지도, 눕지도 않고 오직 서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때 내가 앉아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눕지도, 서지도, 포행도 하지 않고 오직 앉아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바라문이여, 그때 내가 누워 있을 때 그 두려움과 공포가 다가왔습니다. 나는 앉지도 서지도 포행도 않고 오직 누워서 그 두려움과 공포를 물리쳤습니다.”

 

21. “바라문이여, 어떤 사문·바라문들은 밤인데도 ‘이것은 낮이다.’라고 인식하고, 낮인데도 ‘이것은 밤이다.’라고 인식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이를 두고 그들 사문·바라문들은 어리석음 속에서 산다고 말합니다. 바라문이여, 그러나 나는 밤이면 ‘이것은 밤이다.’라고 인식하고 낮이면 ‘이것은 낮이다.’라고 인식합니다.

 

 바라문이여, 누군가가 말하면서 ‘어리석음의 본성을 초월한 분이 세상에 출현하셨으니, 그것은 많은 사람의 이익을 위하고 많은 사람의 행복을 위하고 세상을 연민하고 신과 인간의 이상과 이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다.라고 어떤 사람에 대해 바르게 말한다면, 그것은 바로 나를 두고 그렇게 말할 때 바르게 말한 것입니다.”

 

22. “바라문이여, 내게는 불굴의 정진이 생겼고싸띠가 확립되어 잊어버림이 없었으며, 몸이 경안하여 교란하지 않았고, 마음이 집중되어 일념이 되었습니다.

 

23. “바라문이여, 그런 나는 참으로 오직 감각적 욕망들을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4.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二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5.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렀고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몸으로 행복을 경험했습니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라고 묘사하는 3(三禪)을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6.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 제4(四禪) 구족하여 머물렀습니다.

 

27.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했습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했습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냈습니다.”

 

28.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초경(初更)에 증득한 첫 번째 명지(明知)입니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습니다.

 

 

29.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반야로 보았습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나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반야로 보았습니다.”

 

30.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이경(二更)에 증득한 두 번째 명지(明知)입니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습니다.

 

31. “그런 나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했습니다

 

 그런 나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습니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고,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았습니다.” 

 

32. “내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나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 [慾漏]에서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有漏]에서도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無明漏]에서도 마음이 해탈했습니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겼습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알았습니다. 

 

33. “바라문이여, 이것이 내가 밤의 삼경(三更)에 증득한 세 번째 명지(明知)입니다. 마치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스스로 독려하며 머무는 자에게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나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나듯이, 내게도 무명이 제거되고 명지가 일어났으며, 어둠이 제거되고 광명이 일어났습니다.

 

34. “바라문이여, 그대는 이와 같이 생각할지 모르겠습니다. ‘오늘도 참으로 사문 고따마는 탐욕을 없애지 못했고 성냄을 없애지 못했고 미혹을 없애지 못하여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하는구나.’라고.

 

 바라문이여, 그렇게 여겨서는 안됩니다. 바라문이여, 나는 두 가지 이익을 보면서 숲과 밀림의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거주합니다. 내 스스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묾을 보고, 또한 다음 세대를 연민하기 때문입니다.”

 

35. “참으로 아라한이신 정편각자께서 다음 세대를 연민하시는 것처럼, 고따마 존자께서 다음 세대를 연민하십니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

 

두려움과 공포 경(M4)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