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136. 업 분석의 긴 경(Mahākammavibhaṅg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6. 00:52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대나무 숲에 있는 다람쥐 보호구역에 머무셨다.

 

2. 그때 사밋디 존자가 숲 속의 토굴에 머물고 있었다.

그때 뽀딸리뿟따 유행승이 포행을 나와 이리저리 경행하다가 사밋디 존자에게 다가갔다. 다가가서 사밋디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뽀딸리뿟따 유행승은 사밋디 존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도반 사밋디여, 나는 이것을 사문 고따마의 면전에서 직접 듣고 면전에서 직접 받아 지녔습니다.

'으로 지은 업은 헛되다.409) 로 지은 업도 헛되다. 마음으로 지은 업만이 참되다.'410)라고,

그리고 '어떤 증득이 있어 그것을 얻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411)라고.”

 

409) “'헛되다(mogha)'는 것은 공허하고(tuccha) 과보가 없다는 것(aphala)이고 '참되다(sacca)'는 것은 과보가 있다는 것(saphala)이다.”(MAȚ.ii.376)

410) “이것은 「우빨리 경」(M56)을 잘못 이해한 것이다.”(MA.v.16)

보서 제2권 「우빨리 경」(M56) §4에서 부처님께서는 세 가지 업, 즉 몸으로 지은 악업, 말로 지은 악업, 마음으로 지은 악업 중에서 마음으로 지은 악업(mano-kamma)이 가장 비난받아야 할 것(mahā-sāvajjatara)이라는 말씀하셨다. 그것을 두고 뽀딸리뿟따 유행승(Potaliputta paibbājaka)은 이렇게 왜곡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경은 니간타인 디가따빳시(Dīgha-tapassi)에게 설하신 것이기에 뽀딸리뿟따가 세존께 직접 들은 것도 아니다.

411) “이것은 『디가 니까야』 제1권 「뽓타빠다 경」(D9) §17에서 설하신 인식이 차례대로 소멸하는 말씀(abhisaññā-nirodha-kathā)을 두고 한 말이다.”(MA.v.16)

 

도반 뽀딸리뿟따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도반 뽀딸리뿟따여, 그렇게 말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지 마시오. 세존을 비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세존께서는 '몸으로 지은 업은 헛되다. 말로 지은 업도 헛되다.

마음으로 지은 업만이 참되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그리고 '어떤 증득이 있어 그것을 얻으면 아무것도 느끼지 않는다.'라고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도반 사밋디여, 당신은 출가한 지 얼마나 되었습니까?”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도반이여. 삼 안거가 지났습니다.”

참으로 신참 비구가 이렇게 스승을 보호하리라고 생각하는데

여기서 우리가 장로 비구들에 대해 무엇을 말할 수 있겠습니까?

도반 사밋디여, 그러면 몸과 말과 마음으로 의도적인 업을 지으면 그는 무엇을 경험합니까?”

 

도반 뽀딸리뿟따여, 몸과 말과 마음으로 의도적인 업을 지으면 그는 괴로움을 경험합니다.412)

그러자 뽀딸리뿟따 유행승은 사밋디 존자의 말을 찬성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았다.

찬성하지도 않고 부정하지도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그곳을 떠났다.

 

412) “'그는 괴로움을 경험합니다(dukkha so vediyati)'라고 대답했다. 유행승(paribbājaka)이 오직 해로운(akusala) []에 대해서만 질문한 것이라고 인식하면서 이렇게 대답한 것이다.”(MA.v.16)

 

3. 그러자 사밋디 존자는 뽀딸리뿟따 유행승이 떠난 지 오래지 않아서 아난다 존자를 만나러 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밋디 존자는 뽀딸리뿟따 유행승과 나눈 대화를 모두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드렸다.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는 사밋디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도반 사밋디여, 이 문제는 세존을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입니다.

도반 사밋디여, 세존을 뵙고 이것을 말씀드립시다.

그리하여 세존께서 우리에게 설명해주시는 대로 우리는 기억합시다.”

그렇게 합시다, 도반이시여.”라고 사밋디 존자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했다.

 

4. 그러자 아난다 존자와 사밋디 존자는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아난다 존자는 사밋디 존자가 뽀딸리뿟따 유행승과 나눈 이야기를 모두 세존께 말씀드렸다.

 

5. 이렇게 말씀드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나는 뽀딸리뿟따 유행승을 본 적도 없는데 어떻게 이런 이야기를 나눈단 말인가?

아난다여, 뽀딸리뿟따 유행승의 질문은 잘 분석하여 대답해야 하거늘

이 미혹한 사밋디가 한쪽으로만 치우쳐 설명을 해버렸구나.”

 

6. 이렇게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그런데 사밋디 존자는

'느껴진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운 것이다.'413)라는 이런 말씀을 두고 한 것 같습니다.”

 

413) '느껴진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운 것이다(ya kiñci vedayita ta dukkhasmin).'는 『상윳따 니까야』제2권 「깔라라 경(S12:32) §11과 제4권 「한적한 곳에 감 경(S36:11) §§3~4에 나타나는 가르침이다. 「한적한 곳에 감 경」 (S36:11) §4에서 세존께서는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諸行]의 무상함을 두고 한 말이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은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탐욕이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기 때문이다. '느껴진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운 것이다.'라고 한 것은 바로 이것을 두고 한 말이다.”라고 설명하고 계신다. 즉 모든 형성된 것들[諸行]은 부서지기 마련인 법이며 사라지기 마련인 법이며 빛바래기 마련인 법이며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기 때문에 '느껴진 것은 무엇이든지 괴로운 것이다.'라고 하신 것이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아난다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아난다여, 이 미혹한 우다이가 끼어드는 것을 보아라.

아난다여, 나는 이 미혹한 우다이가 적절하지 못한 방법으로 끼어드는 것을 알았다.

 

아난다여, 처음부터 뽀딸리뿟따 유행승은 세 가지 느낌을 물었다.

아난다여, 이 미혹한 사밋디는 뽀딸리뿟따 유행승이 이렇게 물었을 때

이렇게 대답했어야 했다.

 

'도반 뽀딸리뿟따여, 즐거움을 느낄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을 의도적으로 지으면 그는 즐거움을 느낄 것입니다.

도반 뽀딸리뿟따여, 괴로움을 느낄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을 의도적으로 지으면 그는 괴로움을 느낄 것입니다.

도반 뽀딸리뿟따여, 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몸의 업과 말의 업과

마음의 업을 의도적으로 지으면 그는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은 느낌을 느낄 것입니다.'라고,

 

아난다여, 이렇게 설명해야 이 미혹한 사밋디가 뽀딸리뿟따 유행승에게 바르게 설명한 것이 된다.

아난다여, 그렇더라도 이들 어리석고 경솔한 외도 유행승들이 누구인데

여래가 설하는 업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을 알 수나 있겠는가?

아난다여, 그대들은 여래가 업에 대하여 광범위하게 분석할 때 잘 들어라.”

 

7.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업에 대해 상세하게 분석해주실 바로 그때입니다.

세존으로부터 배워서 비구들은 잘 호지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잘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8. “아난다여,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 무엇이 넷인가?

 

아난다여,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잡담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졌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414)

 

414) 본경 §21에서는 이 첫 번째 경우에 개재된 업을 '불가능한 업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abhabbañceva abhabbābhāsañca)'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불가능한 업은 해로운 업[不善業]과 동의어이다. 아래 §21의 주해를 참조할 것.

 

아난다여,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잡담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졌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 415)

 

415) 본경 §21에서는 이 두 번째 경우에 개재된 업을 '불가능한 업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kamma abhabba bhabhābhāsa)'이라 부르고 있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모략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가지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졌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 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 416)

 

416) 본경 §21에서는 이 세 번째 경우에 개재된 업을 '가능한 업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kamma bhabbañ ceva bhabbābhāsañ ca)'이라 부르고 있다. 여기서 가능한 업은 유익한 업[善業]과 동의어이다.

 

아난다여, 여기 어떤 자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모략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가지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졌다.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417)

 

417) 본경 §21에서는 이 네 번째 경우에 개재된 업을 '가능한 업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kamma bhabba abhabbābhāsa)이라 부르고 있다.

 

9.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몰입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하여418) 이러한 마음의 삼매419)에 도달한다.

즉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잡담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418) “'노력(ātappa)', '정진(padhāna)', '몰입함(anuyoga)', '방일하지 않음(appamāda)',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sammā-manasikāra)'이라는 이 다섯 가지 용어는 모두 정진을 두고 한 말이다(vīriyasseva nāmāni).”(MA.v.18)

419) “여기서 '마음의 삼매(ceto-samādhi)'란 천안(dibba-cakkhu)의 삼매를 말한다.”(MA.v.18)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참으로 악행은 있다. 참으로 그릇된 행위의 과보도 있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 완고하게 고집한다. 420)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420) “'완고하게 고집한다(abhinivissa voharati).'는 것은 삿된 견해를 가지고 완고하게(adhiṭṭhahitvā ādiyitvā) 고집한다는 말이다.” (MA.v.18)

 

10.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몰입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하여 이러한 마음의 삼매에 도달한다.

즉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고, 삿된 음행을 하고, 거짓말을 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욕설을 하고, 잡담을 하고, 탐욕스럽고, 악의를 가지고, 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참으로 악행은 없다. 참으로 그릇된 행위의 과보도 없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한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11.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몰입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하여 이러한 마음의 삼매에 도달한다.

즉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삼가고, 삿된 음행을 삼가고,

거짓말을 삼가고, 중상모략을 삼가고, 욕설을 삼가고, 잡담을 삼가고,

탐욕스럽지 않고, 악의를 가지지 않고,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참으로 선행은 있다. 참으로 좋은 행위의 과보도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한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12. “아난다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노력하고 정진하고 몰입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하여 이러한 마음의 삼매에 도달한다.

즉 마음이 삼매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본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 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내가 보았으니, 참으로 선행은 없다. 참으로 좋은 행위의 과보도 없다.'

 

그리고 그는 이와 같이 말한다.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

이처럼 그는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한다.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13. “아난다여,421) 여기서 사문이나 바라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악행은 있다. 참으로 나쁜 행위의 과보도 있다.'라고, 나는 이것을 인정한다.

 

421) “이와 같이 천안을 가진 자들(dibba-cakkhukā)의 주장에 대한 인정(anuññātā)과 부정(ananuññātā)을 보이신 뒤 지금부터는 '업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의 지혜(mahā-kamma-vibhaga-ñāa)'를 설하시기 위해 이 문장을 시작하셨다.” (MA.v.19)

그가 '나는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광범위 한 분석의 지혜는 다르기 때문이다.”

 

14. “아난다여, 여기서 사문이나 바라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악행은 없다. 참으로 나쁜 행위의 과보도 없다.'라고, 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나는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광범위한 분석의 지혜는 다르기 때문이다.”

 

15. “아난다여, 여기서 사문이나 바라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선행은 있다. 참으로 좋은 행위의 과보도 있다.'라고, 나는 이것을 인정한다.

그가 '나는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생겨난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이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광범위 한 분석의 지혜는 다르기 때문이다.”

 

16. “아난다여, 여기서 사문이나 바라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참으로 선행은 없다. 참으로 좋은 행위의 과보도 없다.'라고, 나는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나는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자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을 보았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인정한다.

 

그러나 그가 말하기를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자는 누구든

모두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난다.'라고 하는 것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가 '이와 같이 아는 자들은 바르게 아는 자들이다.

다르게 아는 자들은 그릇된 지혜를 가졌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또한 그 자신이 안 것과 자신이 본 것과 자신이 발견 한 것만을 완고하게 고집하여

'이것만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헛된 것 이다.'라고 하는 것도 나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아난다여, 여래가 지닌 업에 대한 광범위 한 분석의 지혜는 다르기 때문이다.”

 

17. “아난다여,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은

이전에 그가 괴로움을 겪을 악업을 행했거나422) 이후에 그가 괴로움을 겪을 악업을 행했거나 임종 시에 삿된 견해를 가지고 거기에 깊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 지옥에 태어나는 것이다.

 

422) “'이전에 그가 괴로움을 겪을 악업을 행했다(pubbe vāssa ta kata hoti pāpakamma dukkhavedanīya).'는 것은 그가 살아있는 생명을 죽이는 등 업을 짓는 것을 천안을 가진 자가 본 것보다 이전에 행한 것을 말한다. 이전에 행한 것으로도 지옥에 태어나고, 이후에 행한 것으로도 지옥에 태어나고, 임종 시에는 '아들이 최고라거나 신이 최고라거나 브라흐마가 최고라거나 신에 의해 세상이 창조되었다.'라는 이런 사견을 가짐으로써도 지옥에 태어난다.” (MA.v.19)

 

그가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지는 것은

현생에서 과보를 받거나 혹은 바로 다음 생이나 후세에423) 과보를 받을 것이다.”

 

423) “'후세에(apare vā pariyāye)'라는 것은 현생이나 바로 다음 생이 아닌 어떤 생을 말한다.” (MAȚ.ii.380)

 

18. “아난다여,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이전에 그가 즐거움을 누릴 선업을 행했거나 후에 그가 즐거움을 누릴 선업을 행했거나

임종 시에 바른 견해를 가지고 그것을 확고히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가 만일 여기서 생명을 죽이고삿된 견해를 가진다면

그는 현생에서 과보를 받거나 혹은 바로 다음 생이나 후세에 과보를 받을 것이다.”

 

19. “아난다여,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은

이전에 그가 즐거움을 누릴 선업을 행했거나 후에 그가 즐거움을 누릴 선업을 행했거나

임종 시에 바른 견해를 가지고 그것을 확고히 수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 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은

현생에서 과보를 받거나 혹은 바로 다음 생이나 후세에 과보를 받을 것이다.”

 

20. “아난다여,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진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 [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은

이전에 그가 괴로움을 겪을 악업을 행했거나 후에 그가 괴로움을 겪을 악업을 행했거나

임종 시에 삿된 견해를 가지고 거기에 깊이 빠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나는 것이다.

그가 여기서 생명을 죽이는 것을 삼가고바른 견해를 가지는 것은

현생에서 과보를 받거나 혹은 바로 다음 생이나 후세에 과보를 받을 것이다.”

 

21. “아난다여,424) 이처럼

불가능한425)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이 있고,

불가능한 업가능한 것426)으로 나타나 는 업이 있고,

가능한 업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이 있고,

가능한 업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이 있다.”427)

 

424) 이상 §§9~2012개 문단은 §§9~12, §§13~16, §§17~20의 세 개로 구분이 된다. 다시 이 세 개에는 §21에서 밝히듯이 각각 '불가능한 업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 '불가능한 업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 '가능한 업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 '가능한 업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의 네 가지가 포함되어 전체 12가지가 되는 것이다.

425) “해로운 것[不善]이기 때문에(akusalattā) 불가능한 것(abhabba)'이라 한다.”(MA.v.20) 즉 불가능한 업은 해로운 업 즉 불선업을 말한다.

426) 복주서에서는 유익한 것이기 때문에[, kusalattā] '가능한 것(bhabba)'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 이것은 향상의 표상(vaḍḍhi-nimitta)이 되는 것으로 풀이하고 있다.(MAȚ.ii.381) 즉 가능한 업은 유익한 업 즉 선업을 말한다. 그러므로 가능한 업은 향상이 가능한 유익한 업이요, 불가능한 업은 향상이 불가능한 해로운 업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427) “[본경 §8에서] 세존께서 네 부류의 사람이 있다고 하셨다. 그중에서 살생 등을 하여 지옥에 태어나는 중생의 업이 '불가능한 업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abhabbañceva abhabbābhāsañca)'이다. 그것은 해로운 것이어서 불가능한 것이고, 그것은 그가 지옥에 태어나서 또 지옥에 태어나게 하는 원인이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이다.

두 번째인 살생 등을 하여 천상에 태어나는 중생의 업이 '불가능한 업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kamma abhabba bhabbābhāsa)'이다. 그것은 해로운 것이어서 불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그가 천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이다. 외도 수행자들은 다시 천상에 태어날 원인으로 여긴다.

나머지 두 종류의 업 ['가능한 업과 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kamma bhabbañ ceva bhabbābhāsañ ca)''가능한 업과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나는 업(kamma bhabba abhabbābhāsa)']도 이와 같은 방법으로 이해하면 된다.”(MA.v.20)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업 분석의 긴 경(M136)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