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28. 확신경(確信經)(Sampasadaniya sutta)
디가니까야 3권(각묵스님, 2006년) p.185
서언 – 사리뿟따의 사자후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날란다에서 빠와리까 망고 숲에 머무셨다. 그때 사리뿟따 존자가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
“사리뿟따여,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구나.
사리뿟따여, 그런데 그대는 ‘그 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반야를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셨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셨다.’
라고 과거의 모든 세존∙아라한∙정편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그러면 그대는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반야를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들이실 것이다. 그분 세존들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들이실 것이다.’라고 미래의 모든 아라한∙정편각들을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나는 지금 이 시대의 아라한∙정편각이다. 그러면 그대는 ‘세존께서는 이러한 계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법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반야를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러한 머묾을 가진 분이다. 세존께서는 이런 해탈을 성취한 분이다.’라고 [나에 대해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알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사리뿟따여, 여기서 참으로 그대에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정편각들에 대해서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다. 사리뿟따여, 그런데 어떻게 그대는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 이러한 청정한 믿음이 있습니다.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며 지금도 없습니다.’라고 이처럼 황소같이 우렁찬 목소리로 말을 하고 확신에 찬 사자후를 토하는가?”
2. “세존이시여, 제게는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아라한∙정편각들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가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예를 들면 왕의 국경에 있는 도시는 튼튼한 기초와 튼튼한 성벽과 망루를 가지고 있고 하나의 대문을 가지고 있습니다. 거기서 지혜롭고 입지가 굳고 현명한 문지기가 모르는 자들은 제지하고 아는 자들만 들어가게 합니다. 그는 그 도시의 모든 다니는 길을 순찰하면서 성벽의 이음매와 갈라진 틈으로 고양이가 지나다니는 정도로까지는 보지 않습니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이 도시를 들어오고 나가는 큰 생명체는 누구든 모두 이 대문으로 들어오고 나간다.’라고. 세존이시여, 그와 마찬가지로 저는 법다운 추론으로 알았습니다.
세존이시여, 과거의 모든 세존∙아라한∙정편각들께서는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반야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싸띠의 확립[四念處]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편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미래의 모든 세존∙아라한∙정편각들께서도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시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반야로써 무력하게 만드시고 네 가지 싸띠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시며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편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실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현재의 세존께서도 아라한∙정편각이시니 다섯 가지 장애[五蓋]들을 제거하셨고 마음의 오염원들을 반야로써 무력하게 만드셨고 네 가지 싸띠의 확립에 마음이 잘 확립되셨으며 일곱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들을 있는 그대로 닦으신 뒤 위없는 정편각을 완전하게 깨달으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전에 법문을 듣기 위해서 여기 세존께 왔었습니다. 그런 제게 세존께서는 점점 더 높고 점점 더 수승하게, 검고 흰 부분들을 잘 갖추어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세존께서 점점 더 높고 점점 더 수승한, 검고 흰 부분들을 잘 갖추어 법을 설해 주실 때마다 저는 그 법에 대해서 초월지로 안 뒤, 법들 가운데서 여기 어떤 법을 통해서 완성에 도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스승님께 ‘세존께서는 정편각이시다. 법은 세존에 의해서 잘 설해졌다. 세존의 제자들의 승가는 잘 도를 닦는다.’ 라는 청정한 믿음이 생겼습니다.”
유익한 법들에 대한 법문
3.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유익한 법들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유익한 법들이란 네 가지 싸띠의 확립[四念處], 네 가지 바른 노력[四正勤], 네 가지 성취수단[四如意足], 다섯 가지 기능[五根]. 다섯 가지 힘[五力],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 여덟 구성요소를 가진 성스러운 길[八支聖道]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는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반야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유익한 법들에 대한 이것이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유익한 법들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다른 [법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감각장소의 천명에 대한 법문
4.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감각장소[處, 入]의 천명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눈과 형상, 귀와 소리, 코와 냄새, 혀와 맛, 몸과 감촉, 마노와 법이라는 이들 여섯 가지 안팎의 감각장소[六內外處]들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감각장소의 천명에 대한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십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감각장소의 천명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만한 다른 [법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입태에 대한 법문
5.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입태(入胎)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들 네 가지 입태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반야로 보여지지(sampajāna) 못하면서 모태에 들어가고 반야로 보여지지(sampajāna) 못하면서 모태에 머물고 반야로 보여지지(sampajāna)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모태에 들어가지만 반야로 보여지지(sampajāna) 못하면서 모태에 머물고 반야로 보여지지(sampajāna)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모태에 들어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모태에 머물지만 반야로 보여지지(sampajāna) 못하면서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입태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모태에 들어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모태에 머물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모태에서 나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입태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입태입니다. 세존이시여, 입태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예언의 분류에 대한 법문
6.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예언의 분류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예언의 분류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에 기인한 일으킨 생각에 따라 퍼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합니다. ‘이런 것이 당신의 마음이오, 당신의 마음은 이러하오. 당신의 마음은 이와 같소.’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세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표상을 통해서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인간들이나 비인간들이나 신들의 소리를 듣고 예언을 하지도 않습니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에 기인한 일으킨 생각에 따라 퍼져 나오는 소리를 듣고도 예언을 하지 않습니다. 그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아닌 사마디를 구족한 마음으로 마음을 통하여 반야로 봅니다. ‘이 존자의 마음작용이 이렇게 향하고 있으니 이런 마음은 즉시에 이러한 생각을 일으킬 것입니다.’라고. 그가 아무리 많은 것을 예언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이와 같고 다르지 않습니다. 이것이 네 번째 예언의 분류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예언의 분류입니다. 세존이시여, 예언의 분류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견(見)의 증득에 대한 법문
7.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견(見)의 증득에 대해서 법문을 해주신 이것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견의 증득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근막∙지라∙허파∙ 큰창자∙작은창자∙위∙똥∙담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 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이것이 첫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손발톱∙이빨∙살갗∙살∙힘줄∙뼈∙골수∙콩팥∙염통∙간∙ 근막∙지라∙허파∙큰창자∙작은창자∙위∙똥∙담즙∙가래∙고름∙피∙땀∙굳기름∙눈물∙[피부의] 기름기∙침∙콧물∙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이것이 두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 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 … 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윈냐냐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세 번째 견의 증득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서 이 몸은 발바닥에서부터 위로, 머리털 끝에서부터 아래로, 살갗으로 둘러싸여 있고 여러 가지 부정(不淨)한 것으로 가득 차있음을 반조합니다. 즉 ‘이 몸에는 머리털∙몸털∙ … 관절활액∙오줌 등이 있다.’라고. 그리고 나아가서 피부와 살과 피로 에워싸인 인간의 해골을 반조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저 세상에도 확고하게 머물지 않고, 둘로 끊어지지
않은 인간의 윈냐냐의 흐름을 꿰뚫어 압니다. 이것이 네 번째의 견의 증득입니다.
이것이 네 가지 견의 증득입니다. 세존이시여, 견의 증득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규정에 대한 법문
8.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인간의 규정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인간이 있나니 ① 양면으로 해탈[兩面解脫]한 자 ② 반야해탈 [慧解脫]한 자 ③ 체험한 자 ④ 견해를 얻은 자 ⑤ 믿음으로 해탈한 자 ⑥ 법을 따르는 자 ⑦ 믿음을 따르는 자입니다.
세존이시여, 인간의 규정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노력에 대한 법문
9.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노력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일곱 가지 깨달음의 구성요소[七覺支]가 있나니 ① 싸띠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念覺支) ② 법을 간택하는 깨달음의 구성요소(擇法覺支) ③ 정진의 깨달음의 구성요소(精進覺支) ④ 희열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喜覺支) ⑤ 고요함의 깨달음의 구성요소(輕安覺支) ⑥ 사마디의 깨달음의 구성요소(定覺支) ⑦ 평정의 깨달음의 구성요소(捨覺支)입니다.
세존이시여, 노력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도닦음에 대한 법문
10.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주신 도닦음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도닦음이 있나니 도닦음도 어렵고 초월지(신통지)도 더딘 것, 도닦음은 어려우나 초월지는 빠른 것, 도닦음은 쉬우나 초월지가 더딘 것, 도닦음도 쉽고 초월지도 빠른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도닦음도 어렵고 초월지도 더딘 이러한 도닦음은 어렵고 더디기 때문에 양쪽 다 저열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도닦음은 어려우나 초월지는 빠른 이러한 도닦음은 어렵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도닦음은 쉬우나 초월지가 더딘 이러한 도닦음은 더디기 때문에 저열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여기서 도닦음도 쉽고 초월지도 빠른 이러한 도닦음은 쉽고 빠르기 때문에 양쪽 다 수승하다고 불립니다.
세존이시여, 도닦음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말의 품행에 대한 법문
11. “나아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해주신 말의 품행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거짓말과 관련된 말을 하지 않고 이간질을 하지 않고 중상모략하지 않고 다른 것을 둘러대어 이기기를 바라지 않습니다. 그는 이유가 분명하고 시의적절한 지혜로운 말을 합니다.
세존이시여, 말의 품행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도덕적 품행에 대한 법문
세존이시여, 주신 인간의 도덕적 품행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자는 진실하고 믿음이 있으며, 계략하지 않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암시를 주지 않고, 비방하지 않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그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고 음식에서 적당함을 알고, [몸과 말과 마음으로] 바르게 행하며 깨어있음에 전념하고 게으르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고 참선을 하고 싸띠를 유지하고 명료하게 표현하고, 행실을 [뒷받침하는 반야]와 활력을 [뒷받침하는 반야]와 사상을 [뒷받침하는 반야]를 갖추었고 감각적 욕망에 대해서 탐착하지 않으며 싸띠를 확립하고 현명합니다.
세존이시여, 도덕적 품행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가르침의 분류에 대한 법문
13. “나아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해 주신 가르침의 분류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가르침의 분류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如理作意, 근원적으로 마음에 잡도리함]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도를 닦아,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도를 닦아,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기를.’이라고 한다면 계를 완전하게 갖춘 자가 될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도를 닦아,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을 것이다.[不還者]’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이 사람은 설한 대로 도를 닦아,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반야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 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阿羅漢]’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가르침의 분류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에 대한 법문
14.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네 가지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흐름에 든 자[預流者]가 되어, [악취에] 떨어지지 않는 법을 가지고 [해탈이] 확실하며 바른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자가 될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세 가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엷어져서 한 번만 더 돌아올 자[一來者]가 되어, 한 번만 더 이 세상에 와서 괴로움의 끝을 만들 것이다.’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다섯 가지 낮은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히 열반에 들어 그 세계로부터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을 것이다.[不還者]’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자신이 지혜로운 주의를 통해서 다른 사람에 대해 ‘모든 번뇌가 다하여 아무 번뇌가 없는 마음의 해탈[心解脫]과 반야해탈[慧解脫]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초월지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阿羅漢]’라고 아십니다.
세존이시여, 다른 사람의 해탈을 아는 지혜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영속론에 대한 법문
15.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영속론[常見]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 가지 영속론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수백 생, 수천 생, 수십만 생 전을 기억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했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수축할 것이고 팽창할 것이다. attā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첫 번째 영속론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은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하나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두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네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다섯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했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수축할 것이고 팽창할 것이다. attā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두 번째 영속론입니다.
다시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은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합니다. 즉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스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서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마흔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합니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냅니다.
그는 이와 같이 말합니다. ‘나는 과거를 아나니 세상은 수축하고 팽창한다. 나는 미래도 아나니 세상은 수축할 것이고 팽창할 것이다. attā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황무지와 같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이것이 세 번째 영속론입니다.
이것이 세 가지 영속론입니다. 세존이시여, 영속론[常見]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에 대한 법문
16.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합니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합니다.
세존이시여,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에 대한 법문
17. “나아가서 세존이시여, 세존께서 해 주신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에[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반야로 봅니다. ‘이분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분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분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분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반야로 봅니다.
세존이시여,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법문
18. “세존이시여, 나아가서 세존께서 해 주신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이러한 두 가지 신통변화가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고,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이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습니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여러가지 신통변화를 나툽니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합니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합니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합니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합니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합니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계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합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번뇌가 있고 취착이 있으며 성스럽지 못한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무엇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까?
세존이시여, 여기 비구가 ① 만일 ‘혐오스러운 것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② 만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③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지 않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④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에 대해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그는 혐오하는 인식을 가져 머뭅니다. ⑤ 만일 ‘혐오스러운 것과 혐오스럽지 않은 것 둘 다를 제거한 뒤 평정한 자가 되어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 (sampajāna) 머무르리라.’고 원하면 거기서 평정한 자가 되어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이것이 번뇌가 없고 취착이 없으며 성스러운 것이라 불리는 신통입니다.
세존이시여, 신통변화[神足通]에 대한 이 [법문]도 위없는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십니다. 세존께서는 이것을 남김없이 초월해서 아시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신통변화에 관한 한 이것을 능가하여 세존보다 더 초월해서 안다고 주장할 다른 [법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 외 세존의 다른 공덕
19. “세존이시여, 부지런히 정진하고 굳세고 근력이 있고 용감하고 분투하고 완력이 있는 신심을 가진 선남자가 성취해야 할 것을 세존께서는 이미 성취하셨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저열하고 촌스럽고 범속한 것이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감각적 욕망들에 대한 쾌락의 탐닉에 몰두하는 것에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괴롭고 성스럽지 못하고 이익을 주지 못하는 자기 학대에 몰두하는 것에도 빠지지 않으셨습니다. 세존께서는 높은 마음에 속하며 바로 지금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그 네 가지 선[四種禪]을 원하는 대로 얻고, 힘들이지 않고 얻고, 어렵지 않게 얻으시는 분이십니다.”
확신하는 이유
20.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과거에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미래에 있을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다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을 능가하고 세존을 초월하는 사문이나 바라문이 현재에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과 동등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과거에 있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었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과 동등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미래에 있을 것입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을 것입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도반 사리뿟따여, 그러면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세존과 동등한 사문이나 바라문이 현재에는 있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없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누가 만일 제게 ‘그런데 왜 사리뿟따 존자는 한 사람은 전적으로 인정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은 전적으로 인정하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다면 저는 이렇게 설명할 것입니다.
‘도반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과거의 아라한∙정편각들은 나와 동등하였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바른 깨달음에 관한 한 미래의 아라한∙정편각들은 나와 동등할 것이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 도반이여, 나는 세존의 면전에서 ‘하나의 세계에 두 분의 아라한∙정편각들이 전도 아니고 후도 아닌 [동시에] 출현한다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들었고 면전에서 받아 지녔습니다.’라고.
세존이시여, 제가 이와 같이 질문을 받아서 이와 같이 설명을 하면 세존께서 말씀하신 대로 말하는 것입니까? 혹시 거짓으로 세존을 헐뜯는 것은 아닙니까? 법에 따라서 법을 설명한 것입니까?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겠습니까?”
“사리뿟따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가 이와 같이 질문을 받아서 이와 같이 설명을 하면 내가 말한대로 말하는 것이 된다. 거짓으로 나를 헐뜯는 것이 아니다. 법에 따라서 법을 설명한 것이다. 누구든 함께 법을 닦는 동료가 이것을 따라 말하더라도 비난받아야 할 경우를 만나지 않는다.”
경이로움과 놀라움
21. 이와 같이 말씀하시자 우다이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소욕(少慾)과 지족(知足)과 번뇌의 말살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지셨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세존이시여, 만일 외도 유행승들이 자기 안에서 단 하나의 법이라도 관찰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깃발을 드날릴 것입니다.
세존이시여, 여래의 소욕과 지족과 번뇌의 말살은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여래께서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지셨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십니다!”
“우다이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는 여래의 소욕과 지족과 번뇌의 말살을 보라. 여래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만일 외도 유행승들이 자기 안에서 단 하나의 법이라도 관찰하게 된다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깃발을 드날릴 것이다.
우다이여, 그대는 여래의 소욕과 지족과 번뇌의 말살을 보라. 여래는 이와 같은 큰 신통과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졌는데도 불구하고 결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다.”
맺는 말
22. 그러자 세존께서는 사리뿟따 존자를 불러서 말씀하셨다.
“사리뿟따여, 그러므로 그대는 자주 비구들과 비구니들과 청신사들과 청신녀들에게 이 법문을 설해야 한다. 사리뿟따여 쓸모없는 인간들에게 여래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생기게 되면 그들은 이 법문을 듣고 여래에 대한 의문과 혼란이 제거될 것이다.”
이처럼 사리뿟따 존자는 세존의 면전에서 확고한 믿음[確信]을 드러내 보였다. 그러므로 확고한 믿음을 가지게 함이 이 상세한 설명[記別, 授記]의 제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