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64. 말룽카 큰(긴) 경(Mahāmāluky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6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설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말룽꺄뿟따 존자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말룽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설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는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

세존께서 설하신 낮은 단계의 족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의심을 세존께서 설하신 낮은 단계의 족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

세존께서 설하신 낮은 단계의 족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감각적 욕망

세존께서 설하신 낮은 단계의 족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악의를 세존께서 설하신 낮은 단계의 족쇄라고 기억하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이와 같이 세존께서 설하신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3. “말룽꺄뿟따여, 그대는 내가 누구에게 이런 식으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설했다고 기억하고 있는가? 656)

말룽꺄뿟따여, 그렇게 되면 참으로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어린아이의 비유로써

그대를 논박하지 않겠는가?

 

656) “세존께서도 족쇄(sayojana)에 관해 질문하셨고, 장로도 또한 족쇄에 대해서만 대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대답에 세존께서는 잘못(dosa)을 지적하신다.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으로 그렇게 하셨는가? 장로는 '사람은 이들 [족쇄가] 실제로 드러나는 순간(samudācāra-kkhaa)에만 오염원들에 의해 묶이고, 다른 순간에는 묶이지 않는다.'라는 맹목적인 믿음(laddhi)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존께서 잘못을 지적하셨다.”(MA.iii.144)

한편 본서 제3권 「사마나만디까 경」(M78) §5에 의하면 다른 외도 유행승들 가운데 어떤 이는 몸으로 나쁜 행위를 하지 않고, 나쁜 말을 하지 않고, 나쁜 사유를 하지 않고, 나쁜 생계로 생활을 영위하지 않는 것, 즉 단지 실천 하지 않는 것만이 최고의 경지를 얻은 대적할 수 없는 사문”(35)이라는 맹목적인 믿음을 갖고 있었다. 여기에 대해서 세존께서는 그렇다면 갓난아이들은 그런 것들을 실천할 수 없으므로 최고의 경지를 얻은 대적할 수 없는 사문이라고 해야겠다면서 잘못을 지적하시고 그에 대한 해답을 주신다. 그처럼 말릉꺄뿟따 장로도 이런 견해를 갖고 있었던 사람이다.

 

말룽꺄뿟따여, 참으로 어리고 유약하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불변하는] 존재 더미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433]

어떻게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가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잠재성향으로 내재해있다.

 

말룽꺄뿟따여, 참으로 어리고 유약하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법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법에 대한 의심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의심 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말룽꺄뿟따여, 참으로 어리고 유약하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계율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계율들에 대해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말룽꺄뿟따여, 참으로 어리고 유약하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감각적 욕망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감각적 쾌락들에 대해 감각적 욕망이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감각적 욕망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말룽꺄뿟따여, 참으로 어리고 유약하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에게는 중생이라는 생각조차 없는데 어떻게 중생들에 대해 악의가 생기겠는가?

그러나 그 아이에게는 악의잠재성향이 잠재해있다.

 

말룽꺄뿟따여, 그렇게 되면 참으로 다른 외도 유행승들이

이러한 어린아이의 비유로써 그대를 논박하지 않겠는가?”

 

4. 이렇게 말씀하셨을 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657)

 

657) “그때 아난다 장로가 생각하기를,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에게 법을 설하리라.’라고 자신의 법성(dhammatā)에 의해 이 설법을 시작하셨는데 이 현명하지 못한 비구 때문에 그 맥이 끊어져 버렸다(visavāditā), 내가 세존께 청을 하여 비구들에게 법을 설하시도록 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린 것이다.” (MA.iii.144)

 

세존이시여, 지금이 바로 그때입니다.

선서시여, 지금이 세존께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해주실 바로 그때입니다. 세존으로부터 배워서 비구들은 잘 호지할 것입니다.”

비구들이여, 그렇다면 잘 듣고 잘 마음에 잡도리하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5. “아난다여, 여기 배우지 못한 범부는

성자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지 못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지 않아서,

그의 마음이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有身見]에 압도되고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히며,

이미 일어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가 견고하여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의 마음이 의심에 압도되고 의심에 사로잡히며,

이미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 의심이 견고하여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의 마음이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에 압도되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며,

이미 일어난 계행과 의례 의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 견고하여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의 마음이 감각적 욕망에 압도되고 [434]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히며,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 감각적 욕망이 견고하여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그의 마음이 악의에 압도되고 악의에 사로잡히며,

이미 일어난 악의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한다.

그 악의가 견고하여 제거되지 않으면, 그것이 그에게 낮은 단계의 족쇄가 된다.”

 

6. “아난다여, 잘 배운 성스러운 제자는

성자들을 친견하고 성스러운 법에 능숙하고 성스러운 법에 인도되고,

바른 사람들을 친견 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능숙하고 바른 사람들의 법에 인도되어서,

그의 마음이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에 압도되지 않고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불변하는] 존재 더미가 있다는 견해는 잠재성향과 더불어 그에게서 완전히 제거된다.

 

그의 마음이 의심에 압도되지 않고 의심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의심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의심이 잠재성향과 더불어 그에게서 완전히 제거된다.

 

그의 마음이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戒禁取]에 압도되지 않고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이 잠재성향과 더불어 그에게서 완전히 제거된다.

 

그의 마음이 감각적 욕망에 압도되지 않고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감각적 욕망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감각적 욕망이 잠재성향과 더불어 그에게서 완전히 제거된다.

 

그의 마음이 악의에 압도되지 않고 악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며,

이미 일어난 악의에서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그 악의가 잠재성향과 더불어 그에게서 완전히 제거된다.”

 

7.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도닦음이 있는 바, 어떤 사람이 도와 그 도닦음을 따르지 않고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

알게 되고 보게 되고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아난다여, 예를 들면 고갱이를 가진 큰 나무가 서 있는데 외피를 자르지 않고

겉재목[白木質]을 자르지 않고도 고갱이를 자를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도와 도닦음이 있는 바, 어떤 사람이 [435] 그 도와 그 도닦음을 따르지 않고서도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없다.

 

아난다여,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도와 도닦음이 있는 바,

어떤 사람이 그 도와 그 도닦음을 따라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있다.

 

아난다여, 예를 들면 고갱이를 가진 큰 나무가 서 있는데 외피를 자르고 겉재목을 자른 뒤 고갱이를 자를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있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도와 도닦음이 있는 바, 어떤 사람이 그 도와 그 도닦음을 따라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제거하게 될 것이라는 것은 근거가 있다.

 

8. “아난다여, 예를 들면 강가 강이 물로 가득 차 있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 하자.

이제 허약한 사람이 와서 '나는 두 팔로 헤엄을 쳐서 이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하리라.'라고 하더라도

그는 두 팔로 헤엄쳐서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존재 더미의 소멸658)을 위해 어떤 사람에게 법이 설해질 때

그의 마음이 그것에 들어가지 못하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안정되지 못하고

해탈하지 못한다면 그는 마치 저 허약한 사람과 같다고 여겨야 한다.

 

658) “'존재 더미의 소멸(sakkāya-nirodha)'이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五取蘊]와 취착의 [대상인] 다섯 가지 무더기의 일어남이라는 이 두 가지가 전개하지 않게 된 것(appavatti-bhūta)이니 바로 열반(nibbāna)을 뜻한다.”(DA.iii.992)

 

아난다여, 예를 들면 강가 강이 물로 가득 차있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댄다 하자.

이제 힘센 사람이 와서 '나는 두 팔로 헤엄을 쳐서 이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 하리라.'라고 하면

두 팔로 헤엄쳐서 강가 강의 흐름을 가로질러 안전하게 저 언덕에 도착하는 것과 같다.

아난다여, 그와 같이 존재 더미의 소멸을 위해 어떤 사람에게 법이 설해질 때

그의 마음이 그것에 들어가고 깨끗한 믿음을 가지고 안정 되고 해탈하면

그는 마치 저 힘센 사람과 같다고 여겨야 한다.”

 

9. “아난다여, 그러면 무엇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와 도닦음인가?

 

아난다여,659) 여기 비구는 재생의 근거를 멀리 여의고660)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고

몸의 무력증을 완전히 가라앉혀서661)

 

659) 본경의 §§9~12와 비슷한 가르침이 본서 「앗타까나가라 경」 (M52) §§4~7에도 나타나므로 참조할 것.

660) “'재생의 근거를 멀리 여의고(upadhi-vivekā)'다섯 가닥의 얽어매는 감각적 욕망을 멀리 여의는 것을 말한다. '해로운 법들(akusalā dhammā)'이란 다섯 가지 장애[五蓋, pañca nīvaraāni]를 말하고, '몸의 무력증(kāya-duṭṭhullā)'이란 몸의 게으름(kāy-āIasiya)을 말한다.”(MA.iii.145)

661) 여기 초선의 정형구 앞에 나타나는 '재생의 근거를 멀리 여의고 해로운 법들을 제거하고 몸의 무력증을 완전히 가라앉혀서(upadhivivekā akusalāna dhammāna pahānā sabbaso kāyaduṭṭhullāna paippassaddhiyā)'라는 이 구문은 빠알리 삼장 전체에서 본경에만 나타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감각적 욕망 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출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그는 거기에 있는662)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알음알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법들을 모두 무상하다괴로움이라고 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이라고 무아라고663) 바르게 관찰한다.

 

662) “'거기에 있는(yadeva tattha hoti)'이란 증득에 들어있는 순간(anto-samāpatti-kkhaa)에 증득에서 생긴(samāpatti-samuṭṭhita) 물질 등 오온을 말한다.” (MA.iii.145)

663) 본경에 나열되는 '무상', '괴로움', '', '종기', '쇠살', '재난', '질병', '[]', '부서지기 마련인 것', '한 것', '무아'11개의 술어들은 각각 anicca, dukkha, roga, gaṇḍa, salla, agha, ābādha, para, paloka, suñña, anatta를 옮긴 것이다. 이들은 본서 제3권 「디가나카 경」 (M74/i,500) §9에도 나다나고 있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 3권 「계 경」(S22:122) §3과 『앙굿따라 니까야』「다른 점 경」 2(A4:124/ii.128) §1과 「선() 경」(A9:36/iv. 422 ~ 423) §2 등에도 나타난다. 그리고 이것은 『무애해도』 (Psii 238)에서 40가지로 확장이 되고, 그것은 다시『청정도론』 (Vis.XX.19~20)에서 설명이 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 주석서』는 이 11개를 삼특상으로 간추려서 설명하고 있다. 즉 무상과 부서지기 마련인 것은 무상의 특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anicca-manasikāra)이고, 공과 무아는 무아를, 괴로움부터 남[]까지의 나머지 7가지는 괴로움의 특상을 마음에 잡도리하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하고 있다.(SA.ii.334) 그러나 아래 인용에서 보듯이 본서에 해당하는 『맛지마 니까야 주석서』 (MA.ii.146)와 『청정도론』 (Vis.XX.20)과 『무애해 도』 (Ps.iii.146)에서는 남[]인 것(para)을 무아에다 포함시키고 있는데 이것이 더 타당하다고 생각된다. 주석서를 인용한다.

이 오온은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asaka) 뜻에서 '(para)'이라고, 무너진다(palujjana)는 뜻에서 '부서지기 마련인 것(aloka)'이라고, 중생이라고 할 것이 없다(nissatta)는 뜻에서 '공한 것(suñña)' 이라고, 자아가 없다는 뜻에서 '무아(anatta)'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이 중에서 '무상하다는 것 (anicca)''부서지기 마련이라는 것(paloka)'의 두 단어는 무상의 특상(aniccalakkhaa)을 말했고, '괴로움(dukkha)'부터 여섯 단어는 괴로움의 특상(dukkhalakkhaa), '(para)''공함(suñña)''무아(anatta)'의 세 단어는 무아의 특상(anattalakkhaa)을 말했다.”(MA.iii.146)

 

그는 이런 법들에서 마음을 돌려버린다.664)

그는 [436] 이런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 뒤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665)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가라앉음[]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멸진이요, 탐욕이 빛바램[]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고,

그는 여기에 확고하게 머물러666) 번뇌의 소멸을 얻는다[阿羅漢].

 

664) “'이런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tehi dhammehi citta paivāpeti),'는 것은 이와 같이 무상 ·· 무아의 세 가지 특상(三特相, ti-lakkhaa]을 새긴 뒤 그가 관찰했던, 증득에 포함된 다섯 가지 무더기(오온)의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다. 즉 그 법들에서 마음을 벗어나게 한다(moceti apaneti)는 말이 다.” (MA.iii.146)

665) “'불사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amatāya dhātuyā citta upasaharati).'라고 하셨다. 여기서 '불사의 경지(amatā dhātu)'란 열반을 말한다. '향하게 한다(upasaharati).'는 것은 들음(savana)과 칭송(thuti)과 교학 공부(pariyatti)와 교학에 대한 개념(paññatti)을 통해서 '이 열반은 고요하다.'라고 이와 같이 형성되지 않은[無爲, asakhatā] 불사의 경지로 위빳사나의 마음(vipassanā-citta)을 향하게 한다는 말이다. 도의 마음(magga-citta)이 열반을 대상으로 삼는다는 측면에서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형태로 그것을 꿰뚫으면서 (paivijjhanto) 그곳으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는 말이다.”(MA.iii.146)

666) “'여기에 확고히 머물러(tathaṭṭhita)'라는 것은 세 가지 특상을 대상으로 하는 위빳사나에 굳건히 머무는 것이다. 그 위빳사나에 굳건히 머물러 차례대로 네 가지 도를 개발하여 '번뇌의 소멸을 얻는다(āsavāna khaya pāpuāti).'”(MA.ii.146)

 

만일 번뇌의 소멸을 얻지 못하더라도을 좋아하고 이 을 즐기기 때문에667)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不還者].

아난다여, 이것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와 도닦음이다.

 

M52 초선(初禪) 구족하여 머뭅니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합니다.

' 초선은 형성되었고 의도되었다.'라고.

그리고 그는 '형성되고 의도된 것은 무엇이건,

무상하고 소멸하기 마련인 법이다.'라고 꿰뚫어 압니다.

그는 여기에 확고하여 번뇌의 소멸을 얻습니다[阿羅漢].

 

667) “'이 법을 좋아하고 이 법을 즐기기 때문에(tena dhammarāgena tāya dhammanandiyā)'라는 것은 사마타와 위빳사나의 둘 다에 대한 열정과 요망(chanda-rāga)을 말한다.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해 모든 열정과 욕망을 완전히 끝낼 수 있으면 아라한이 되고, 그렇지 못하면 불환자가 된다.”(MA. iii.146)

그는 사마타와 위빳사나에 대한 모든 열정과 욕망을 완전히 끝내지 못하였기 때문에 4선의 의도(catuttha-jjhāna-cetanā)에 의해서 정거천(Suddh-āvāsa)에 태어난다. 이것이 스승들의 공통된 말씀(samāna-kathā)이다." (MA.iii.14, 본서 「앗타까나가라 경」 (M52)에 대한 주석)

 

10. ~ 12. “아난다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없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3(三禪)4(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물질과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알음알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법들을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아난다여, 이것도 역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와 도닦음이다.”

 

13. “아난다여, 다시 비구는 물질[]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면서 공무변처(空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668)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알음알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법들을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

아난다여, 이것도 역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와 도닦음이다.”

 

668) 이것은 무색계 증득(arūpa-avacara-samāpatti)이기 때문에 물질은 없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다.(MA.iii.147)

 

14 ~ 15. “아난다여, 다시 비구는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라고 하면서 식무변처(識無邊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다시 비구는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무소유처(無所有處)를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거기에 있는 느낌과 인식과 심리현상들과 알음알이라면 그것이 어떠한 것이든

그 법들을 모두 무상하다고 괴로움이라고 이라고 종기라고 쇠살이라고 재난이라고 질병이라고 []이라고 부서지기 마련인 것이라고 공한 것이라고 무아라고 바르게 관찰한다.

그는 이런 법들에서 마음을 돌려버린다. 그는 이런 법들에서 마음을 돌린 뒤

불사(不死)의 경지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이것은 고요하고 이것은 수승하다. 이것은 모든 형성된 것들[]가라앉음[]이요,

모든 재생의 근거를 놓아버림[放棄]이요, 갈애의 멸진이요, 탐욕이 빛바램[]이요,

소멸[]이요, 열반이다.'라고,

그는 여기에 확고하게 머물러 [437] 번뇌의 소멸을 얻는다[阿羅漢].

 

만일 번뇌의 소멸을 얻지 못하더라도 이 법을 좋아하고 이 법을 즐기기 때문에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를 완전히 없애고 [정거천에] 화생하여

그곳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어 그 세계에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얻는다[不還者].

아난다여, 이것도 역시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와 도닦음이다.”

 

16. “세존이시여, 만일 이것이 다섯 가지 낮은 단계의 족쇄들을 제거하기 위한 도와 도닦음이라면 여기서 왜 어떤 비구들은 마음의 해탈[心解脫]을 증득하고

어떤 비구들은 통찰지를 통한 해탈[慧解脫]을 증득합니까?”

아난다여, 그것은 그들의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669)

 

669) “'기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나는 말한다(indriya-vemattata vadāmi)'에서 '서로 다름(vemattatā)'이란 차이점(nānattatā)을 말한다.

아난다 존자는 열 가지 바라밀(dasa pāramiya)을 완성하여 일체지(sabba-ññutā)를 꿰뚫지 않았으므로 이것이 아난다 존자에게는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다. 그러나 부처님은 십바라밀을 완성하여 일체지를 꿰뚫었기 때문에 부처님께는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마타를 닦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비구에게는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 cittekaggatā] 이 강한데(dhura) 그를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자[心解脫者, ceto-vimutta]라 한다. 어떤 자에게는 통찰지가 강한데 그를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증득한 자[慧解脫者, paññā-vimutta]라 한다. 위빳사나를 닦는 사람들 가운데 어떤 비구에게는 통찰지(paññā)가 강한데 그를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증득한 자라 한다. 어떤 자에게는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心一境性]이 강한데 그를 마음의 해탈을 증득한 자라 한다.

두 명의 상수제자들(agga-sāvakā)은 사마타와 위빳사나 둘 모두를 강화하여 아라한과를 얻었다. 그중에서 법의 총사령관인 사리뿟따 존자는 통찰지를 통한 해탈을 증득했고, 마하목갈라나 존자는 마음의 해탈을 증득했다. 이와 같이 기능의 차이가 여기서 그 이유(kāraa)라고 알아야 한다.”(MA.iii. 147~148)

 

도반이여, 이러한 가지 도닦음 가운데

나는<*목갈라나 존자는>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도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A4:167)

 

도반이여, 이러한 가지 도닦음 가운데

나는<*사리뿟따 존자는>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도닦음을 통해서

취착이 없어져서 번뇌들로부터 마음이 해탈하였습니다.”(A4:168)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한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A4:162)

 

3.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몸에 대해서 부정함을 관찰하면서 머물고,

음식에 혐오하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대해 기쁨이 없다는 인식을 가지고,

모든 형성된 것들에 대해서 무상하다고 관찰하고, 안으로 죽음에 대한 인식이 확립되어 있다.

그는 믿음의 , 양심의 , 수치심의 , 정진의 , 통찰지의 힘인

다섯 가지 유학의 의지하여 머문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은 어려우나 최상의 지혜는 빠르다고 한다.”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선천적으로 심한 탐욕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탐욕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성냄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성냄에서 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선천적으로 심한 어리석음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아서

극심한 어리석음에서생긴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을 경험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이 강하게 나타난다.(A4:162)

 

5.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른 것인가?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不善法]들을 떨쳐버린 ,

일으킨 생각[] 지속적인 고찰[]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 행복[] 있는 초선(初禪) 구족하여 머문다.

2(二禪) 구족하여 머문다. 3(三禪) 구족하여 머문다.

4(四禪) 구족하여 머문다.

그에게는 믿음의 기능과 정진의 기능과 마음챙김의 기능과 삼매의 기능과 통찰지의 기능인 다섯 가지 기능[五根] 아주 강하게 나타난다.

이처럼 그의 다섯 가지 기능이 아주 강하기 때문에

바로 다음에 증득되는 번뇌들의 소멸도 아주 빠르게 얻어진다.

비구들이여, 이를 일러 도닦음도 쉽고 최상의 지혜도 빠르다고 한다.(A4:163)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아난다 존자는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말룽까 긴 경(M64)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