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디가 니까야

D25. 우둠바리까 사자후 경(Udumbarika sihanada sutta)

Daisy청량심 2023. 5. 23. 07:16

D25. 우둠바리까 사자후경48) 진정한 고행의 완성 Udumbarika-sīhanāda Sutta

 

48) 본경은 세존과 니그로다라는 유행승 사이의 대화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니그로다 유행승이 세존을 비난하자 세존께서는 그의 거처로 가셔서 그들이 최상으로 여기는 고행을 통한 금욕을 주제로 하여 타심통까지 설하신 뒤청정범행의 완성에 대해서 설하려 하셨지만 그들은 멍청히 있을 뿐 아무 질문도 하지 않는다본경은 고행을 위주로 하는 당시의 수행 풍토와 부처님 가르침의 차이를 분명하게 드러내 보이는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본경은 세존께서 우둠바리까 원림에서 외도 유행승들에게 사자후를 하신 가르침이므로 우둠바리까 시하나다 숫따(Udumbarikasīhanāda Sutta)라 이름하였고 역자는「우둠바리까 사자후경」이라 옮겼다그런데 미얀마 육차결집본에는 단지 우둠바리까 숫따(Udumbarika Sutta)라고만 나타난다사자후(sīhanāda)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깟사빠 사자후경」(D8)의 첫 번째 주해를 참조할 것.

본경은「산타나경」(散陀那經)으로 한역되어『장아함』의 여덟 번째 경으로 중국에 소개되었으며『중아함』에는「우담바라경」(優雲婆羅經)으로 번역되어 104번째 경으로 포함되어 있다.『장아함』에서「산타나경」(散陀那經)으로 제목을 붙인 것은 본경에 나타나는 산다나(Sandhāna) 장자의 이름을 딴 것이다.

 

니그로다 유행승

 

서언 산다나 장자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라자가하(왕사성)49)에서 독수리봉 산(영취산)50)에 머무셨다. 그 무렵에 니그로다 유행승51)은 3천명 정도의 큰 유행승의 회중과 함께 우둠바리까 왕비가 [소유하고 있는]52) 유행승의 원림에 정착해 있었다.

 

49) 지금의 인도 비하르(Bhihar) 주에 있는 라즈기르(Rājgir)이다부처님 당시에 인도는 16개 나라가 있었는데 그 중에 가장 강성했던 곳이 마가다와 꼬살라였다. 마가다의 수도가 바로 이 라자가하였다. Rāja()-gaha()라는 의미를 살려 중국에서는 王舍城으로 직역하였다.

50) 독수리봉 산에 대해서는 본서 제2권 대반열반경 (D16) §1.1의 주해를 참조할 것.

51) 니그로다(Nigrodha) 유행승에 대한 설명은 그가 나체수행자가 아닌 옷을 입고 있는 유행승(channa-paribbājaka)이라는 사실 외에는 주석서에 나타나지 않는다.(DA.iii.832)

니그로다 유행승과 세존 사이에 있었던 본경의 대화는 본서 제1권의「깟사빠 사자후경」(D8) §23에서 세존께서 언급하고 계신다.

52) 주석서에서는 우둠바리까 왕비의 소유(santaka)인 유행승의 원림에(DA.iii.832) 라고 설명하고 있다그리고 복주서에서는 우둠바리까 왕비가 지은 (nibbattita) 원림이 우둠바리까 원림이다그녀가 지은 것은 그녀의 소유(santaka)이기 때문이다. (DAȚ.iii.17)라고 덧붙이고 있다그래서 우둠바리까 왕비가 [소유하고 있는]' 으로 풀어서 옮겼다.

 

그때 산다나 장자53)는 이른 시간에 세존을 친견하기 위해서 라자가하에서 나왔다.

그런데 산다나 장자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금은 세존을 친견하기 위한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세존께서는 홀로 머물고 계신다.

지금은 마음을 닦는 비구들을 친견하기에도 적당한 때가 아니다.

그러니 나는 우둠바리까 왕비가 [소유하고 있는] 유행승의 원림으로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가봐야겠다.

그래서 산다나 장자는 우둠바리까 왕비가 [소유하고 있는] 유행승의 원림으로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갔다.

 

53) 주석서에 의하면 산다나(Sandhāna) 장자는 큰 위력(mahānubhāva)을 가진 재가 신도로서 500명의 청신사들 가운데 최상이며 불환과(anāgamī)를 증득하였다고 한다.(DA.ili.832) 그래서 『증지부』에서 세존께서는 불····지혜·해탈에 흔들림 없는 믿음을 가진 자로 이 산다나 장자를 들고 계신다.(A.iii.451)

 

2. 그 무렵에 니그로다 유행승은 3천명 정도의 큰 유행승의 회중과 함께 앉아 있었는데 그들은 시끄럽고 큰 목소리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겁나는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관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3. 니그로다 유행승은 산다나 장자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고 자신의 회중을 조용히 하도록 하였다.

“존자들은 조용히 하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시오.

사문 고따마의 제자인 산다나 장자가 오고 있소. 흰옷을 입은 사문 고따마의 재가 제자들이 라자가하에 살고 있는데 이 자는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인 산다나 장자라오.

그런데 저 존자들은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단련되고 조용함을 칭송한다오.

이제 우리 회중이 조용함을 알면 그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하오.”

이렇게 말하자 그 유행승들은 조용히 하였다.

 

4. 그러자 산다나 장자는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다가갔다.

가서는 니그로다 유행승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하고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산다나 장자는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외도 유행승들과 세존은 참으로 다릅니다.

외도 유행승들은 끼리끼리 모여서는 시끄럽고 큰 목소리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눕니다. 즉 왕의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세존께서는 숲이나 밀림54) 속에 있는 조용하고 소리가 없고 한적하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혼자 앉기에 좋은 외딴 처소들을 수용합니다.”

 

54) 숲이나 밀림'으로 옮긴 원어는 araññavanapattha이다복주서에서는 숲과 밀림(araññāni ca tāni vanapatthāni ca)(DAȚ.iii.18)으로 풀이하고 있다그래서 이렇게 옮겼다.

 

5. 이렇게 말하자 니그로다 유행승은 산다나 장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오호, 그런가요? 장자여, 그런데 그대는 사문 고따마가 누구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누구와 함께 토론하고 누구와 더불어 탁월한 통찰지를 증득하였는지 알기나 하오?

사문 고따마의 통찰지는 빈 집에서 망가진 것55) 이라오. 사문 고따마는 회중에 참여하지 않는다. 그는 대화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오. 그는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서] 변두리만을56) 다닌다오.

 

55) 빈 집에서 망가진 것 suññāgārahatā의 역어인데 주석서에서는 빈집에서 망가진 것(naṭṭhā)(DA.i.834)이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이렇게 옮겼다. 사문 고따마는 보리수 아래서 조그마한 통찰지(반야)를 얻었는데그것도 빈 집에서 혼자 앉아있는 동안에 망가져 버렸다만일 우리처럼 무리에 참여해 있으면 그의 통찰지가 사라져 버리지는 않을 것이라고 하는 말이다.(Ibid)라고 주석서는 덧붙이고 있다.

56) “‘변두리만을(antamantāneva)'이라는 것은 '누가 나에게 질문을 하지 않을까?' 라고 질문을 두려워하여 변두리 외딴 처소(pantasenāsana)들을 의지한다는 말이다. (DA.834)

 

이는 마치 외눈박이 소가 조심스럽게 변두리만을 다니는 것과 같소.

그와 마찬가지로 사문 고따마의 통찰지는 빈 집에서 망가진 것이라오.

사문 고따마는 회중에 참여하지 않는다오. 그는 대화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오.

그는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서] 변두리만을 다닌다오.

 

여보시오, 장자여, 사문 고따마가 이 회중에 오게 하시오.

우리는 한 방의 질문으로 그를 꼼짝 못하게 하고 빈 물동이처럼 그를 비틀어 버리겠소이다.”

 

6. 세존께서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 天耳通]로

산다나 장자가 니그로다 유행승과 더불어 나눈 이런 대화를 들으셨다.

그러자 세존께서는 독수리봉 산으로부터 내려오셔서 수마가다 연못의 언덕에 있는 공작 보호구역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수마가다 연못57)의 언덕에 있는 공작 보호구역의 노지에서 포행을 하셨다.

 

57) 수마가다(Sumāgadha)는 연못(pokkharaī)이다.(DA.iii,835)

 

니로그다 유행승은 세존께서 수마가다 연못의 언덕에 있는 공작 보호구역의 노지에서 포행을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는 자신의 회중을 조용히 하도록 하였다.

“존자들은 조용히 하시오. 존자들은 소리를 내지 마시오.

사문 고따마가 수마가다 연못의 언덕에 있는 공작 보호구역의 노지에서 포행을 하고 있소. 그런데 저 존자는 조용함을 좋아하고 조용함으로 단련되고 조용함을 칭송한다오.

이제 우리 회중이 조용함을 알면 그는 우리에게 다가올 것이라 생각하오.

 

만일 그가 온다면 그에게

‘존자시여, 세존께서 제자들을 인도하는 세존의 법은 참으로 어떤 것입니까?

어떠한 법을 통해서 세존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은 안심입명처를 얻어58)

굳은 의지로 청정범행의 시작을 맹세하게 됩니까?'라고 질문을 합시다.”

이렇게 말하자 그 유행승들은 조용히 하였다.

 

58) '안심입명처를 얻어'로 옮긴 원어는 assāsappatta이다. 여기서 assāsa ā(앞으로)+śvas(to breathe)에서 파생된 명사이다문자 그대로 [안도의숨을 내쉬는 것이다안식(安息)과 정확히 일치하는 의미라 하겠다본서에서는 안식으로도 옮기고여기서처럼 강조해서 안심입명처 (安心立命處)로도 옮기고 있다.

 

 

고행을 통한 금욕

 

7. 그러자 세존께서는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다가가셨다.

그러자 니그로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어서 오십시오, 세존이시여. 저희는 세존을 환영합니다.

세존께서는 오랜만에 여기에 오실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이리로 와서 앉으십시오. 세존이시여, 이것이 마련된 자리입니다.”

세존께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으셨다.

니그로다 유행승도 역시 다른 낮은 자리를 잡아서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그로다여, 그대들은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 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세존이시여, 여기서 저희들은 세존께서 수마가다 연못의 언덕에 있는

공작 보호구역의 노지에서 포행을 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만일 사문 고따마가 이 회중에 온다면 그에게

'존자시여, 세존께서 제자들을 인도하는 세존의 법은 참으로 어떤 것입니까?

어떠한 법을 통해서 세존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은 안심입명처를 얻어

굳은 의지로 청정범행의 시작을 맹세하게 됩니까?'라고 질문을 합시다.'라고,

세존이시여, 이것이 우리가 하다 만이야기 입니다.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니그로다여, 그대와 같이 다른 견해를 가졌고 다른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다른 [가르침을] 좋아하고 다른 수행을 추구하고 다른 스승을 따르는 자는59)

참으로 나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이 안심입명처를 얻어서

굳은 의지로 청정범행의 시작을 맹세하는 것을 알기 어렵다.

 

59) 이 정형구에 대한 설명은 본서 제1 「뽓타빠다 경」(D9) §24의 주해들과 본서 「빠띠까 경」(D24) §2.21 의 주해를 참조할 것초기경의 여러 군데서 부처님께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시면서 다른 사상과 다른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불교의 근본을 말씀해 주지 않으신다.

 

니그로다여, 그러니 그대는 나에게 그대 자신의 스승에게서 전승되어 온 금욕에 대해서

'세존이시여, 고행을 통한 금욕60)은 어떻게 해서 완성이 되며,

어떻게 해서 완성되지 않습니까?'라고 질문을 하여라.”

 

60)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 옮긴 원어는 tapo-jigucchā이다고행과 금욕으로 옮기지 않고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 옮긴 이유는 주석서의 설명을 따랐기 때문이다.

본경의 주석서에서는 "tapojigucchā란 정진에 의해서 사악함(pāpa)을 금욕(문자적으로는 혐오)하고 사악함을 버리는 것(vivajjanā)이다.(DA.ii.835)라고 설명하고 있으며『상응부 주석서』에서는 몸을 지치게 하는 고행으로 사악함을 금욕하는 것(SA.1.126)이라고 설명하는데 이 두 곳 어디에도 드완드와(병렬합성어로 해석하는 ca(그리고)를 넣어서 설명하지 않는다그래서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 옮겼다.

문자적으로 tapo(Sk. tapas) tap(to heat)에서 파생된 명사로 태운다는 의미이다. jigucchā  guo(to protect)의 원망법(Desid) 동사 jugucchati(피하고 싶어 하다싫어하다혐오하다)에서 파생된 여성명사이다일반적으로 혐오로 옮기지만 여기서는 수행의 입장이므로 금욕이라고 옮겼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유행승들에게 큰 소동이 일어나서 시끄럽고 큰소리로 떠들썩하게 되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존자들이여, 참으로 놀랍습니다.

사문은 큰 신통을 나투고 큰 위력을 가졌습니다.

자신의 교설을 제쳐두고 남의 교설을 선택하게 하다니요.”

 

8. 그러자 니그로다 유행승은 그 유행승들을 조용히 하게 한 뒤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고행을 통한 금욕을 설하고 고행을 통한 금욕을 본질로 하고

고행을 통한 금욕에 계합하여 머뭅니다.

세존이시여, 그러면 고행을 통한 금욕은 어떻게 해서 완성이 되며, 어떻게 해서 완성되지 않습니까?”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나체수행자이고,61)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오라 하면 가지 않고, [음식을 주기 위해서] 서라 하면 서지 않으며, 가져온 음식을 받지 않고, [자신의 몫으로] 지칭된 것을 받지 않으며,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

그는 그릇으로 [주면] 받지 않고, 접시로 [주면] 받지 않고, 문지방을 넘어서 주는 것,

막대기에 꿰어진 것, 절구공이 안에 있는 것을 받지 않으며, 두 사람이 먹을 때, 임신부로부터 [아이에게 젖을] 먹이는 여자로부터, 남자 [품에] 안겨 있는 여자로부터 받지 않으며, [보시한다고] 널리 알릴 때 받지 않으며, 개가 옆에 있을 때 받지 않으며,

나방이 날아다닐 때 받지 않으며, 생선과 고기를 받지 않으며, 술, 과즙주, 발효주를 마시지 않는다.

 

61) 이하 본 문단의 고행의 정형구는 본서 제1권「깟사빠 사자후경」(D8) §14에서 정형구로 정리되어 나타나는 것과 꼭 같다.

 

그는 한 집만 가서 한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두 집만 가서 두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 일곱 집만 가서 일곱 집의 음식만 먹는 자요.

한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두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고  일곱 닷띠의 음식만 구걸하며, 하루에 한 번만 이틀에 한 번만  이런 식으로 보름에 한 번만 방편으로 음식을 먹으며 산다.

 

그는 채소를 먹는 자이고, 수수, 니바라 쌀, 닷둘라 쌀, 수초, 등겨, 뜨물, 깻가루, 풀,

소똥을 먹는 자이며, 야생의 풀뿌리와 열매를 음식으로 해서 살고, 떨어진 열매를 먹는 자이다.

 

그는 삼베로 만든 옷을 입고, 마포로 된 거친 옷을 입고, 시체를 싸맨 헝겊으로 만든 옷을 입고, 넝마로 만든 옷을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옷을 입고, 영양 가죽을 입고, 영양 가죽으로 만든 외투를 입고, 꾸사 풀로 만든 외투를 입고, 나무껍질로 만든 외투를 입고 판자로 만든 외투를 입고, 머리카락으로 만든 담요를 입고, 꼬리털로 만든 담요를 입고, 올빼미 털로 만든 옷을 입는다.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는 수행에 몰두한, 머리카락과 수염을 뽑은 자이고,

자리에 앉지 않고 서있는 자이며, 쪼그리고 앉는 수행에 몰입한 쪼그리고 앉는 자이고,

가시를 가까이 하는 자이어서 가시로 된 침상을 사용하며

밤에 세 번을 물에 들어가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고행을 통한 금욕이 완성되었다고 하겠는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와 같다면 참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완성되었으며, 완성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니그로다여, 나는 이와 같이 고행을 통한 금욕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갖가지 오염원들이 있다고 말한다.”

 

 

오염원

 

9. “세존이시여, 그러면 세존께서는 어떻게 해서 고행을 통한 금욕이 완성되었다 하더라도, 갖가지 오염원들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마음이 흡족하고62)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긴다.

니그로다여, 그가 그 고행으로 마음이 흡족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기는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2) “‘마음이 흡족하다(attamano hoti)'는 것은 '다른 누가 나와 같은 이런 고행에 [몰두]한단 말인가?'라고 마음이 만족(tuṭṭhmana)한 것이다.(DA.iii.836) 자신의 고행에 대한 이러한 태도는 복주서의 설명대로 큰 자만 (atimāna, DAȚ.iii.22) 이니 그것은 오염원에 휩싸여 있는 것이라는 말씀이다.

한편 주석서에서는 말하기를이것은 외도들에게 해당되는 말이고 승단에서는 두타행(dhutaga, 두땅가)을 하는 자들이 이런 자만을 가지면 그것도 오염원이라고 설명하고 있다.(Ibid) 오염원의 완전한 소멸즉 해탈 · 열반을 지향하지 않는 두타행과 계행은 자만을 기르는 두타행에 지나지 않고 자만을 기르기 위해서 계를 지키는 꼴이 되고 만다는 뼈아픈 말씀이시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업신여긴다.63)

니그로다여, 그가 고행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업신여기는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3) 뻐기는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제는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업신여긴다그러니 이것도 당연히 오염원이다우리는 자신의 조그마한 계행으로 남들을 비난하고 남들을 업신여기는 수행자들을 많이 본다이런 것은 해탈·열반의 길이 아니다계를 지니는 자는 철저한 자기 단속(savāra)에 전념해야 한다이러한 근본을 놓쳐 버리면 단지 남을 비난하기 위해서계를 지키는 꼴밖에 더 되는가?

 

다시 니그로디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취하고 혹하고 방일함을 얻게 된다.

니그로다여, 그가 고행으로 취()하고 혹()하고 방일함을 얻는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10.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이양(利養)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자 마음이 흡족해져서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긴다].164)

니그로다여, 그가 이런 이양과 존경과 명성으로 마음이 흡족하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기는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4) 이것도 뼈아픈 말씀이다계율을 지키고 금욕을 하고 참선을 하는 것은 출가자의 기본일 뿐이다이러한 것을 통해서 명성과 이양을 구한다면 자기가 연마한 학문과 기술과 재능으로 돈을 벌고 세속적 성공을 추구하는 저 범부와 무엇이 다른가?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자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한다.

그가 이런 이양과 존경과 명성으로 자신을 칭송하고 남을 비난하는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자 취하고 혹하고 방일함을 얻게 된다.65)

니그로다여, 그가 이런 이양과 존경과 명성으로 취하고 혹하고 방일함을 얻는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5) 명성과 이양이 생기면 그것에 취하고 홀려서 해탈·열반의 본분사는 내팽개쳐 버린다오히려 마을 사람들보다 더 돈과 자리에 연연한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이것은 내게 맞다, 이것은 내게 맞지 않다.'라고 음식에서 분별을 하게 된다.66)

그에게 맞지 않는 것은 고의적으로 버려 버리고,

그에게 맞는 것에는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출구를 얻지 못하면서 즐긴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6) 분별을 하게 된다.'로 옮긴 원어는 vodāsa āpajiati인데 vodāsa는 다른 곳에는 나타나지 않는 단어이다주석서에서 두 부분을 얻는다두 부분으로 만든다.(dvebhāga āpajjati, dve bhāge karoti)(DA.iii.837)라고 설명하고 있어서 '분별을 하게 된다.'로 옮겼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이양과 존경과 명성에 집착하기 때문에

‘왕이, 왕의 대신들이, 끄샤뜨리야들이, 바라문들이, 장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한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11.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얕본다.

'그런데 많은 것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 자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군.

즉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가지로 번식하는 것,

다섯 번째로 종자로 번식하는 것이다.

그러고서도 자신이 사문이라고 떠벌리는군.'이라고 얕본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여러 가문들 가운데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 받는 것을 본다. 본 뒤에는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그런데 많은 것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 자는 여러 가문들 가운데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 받는구나.

그러나 나는 고행을 하여 어렵게 사는데도 여러 가문들 가운데서

존경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못하고 숭상되지 못하고 예배 받지 못한다.’

이렇게 그는 여러 가문들에 대해서 질투와 인색을 일으킨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붐비는 길에 앉아 [고행으로 시선을 끄는짓을 한다.67) …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7) '붐비는 길에 앉아 있는 자가 된다.(āpāthakanisādī hoti)'라는 것은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장소인 대로(āpātha)에 앉아 있는 것이다그는 그들이 보는 곳에 앉아 박쥐처럼 사는 서계(vagguli-vata)를 행하고다섯 가지 불(pañcātapa)로 몸을 뜨겁게 하고한쪽 다리로 서있고태양에 절을 한다. (DA.ii,838)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나는 이런 고행을 합니다. 나는 이런 고행을 합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척하면서68) 여러 가문들에게로 다닌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68) 주석서에서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면서(adassayamāno)에서 부정접두어 'a-' [의미가 없는분사일 뿐(nipātamatta)이다자신을 드러내면서라는 뜻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는데 오히려 역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척하면서'라고 원문을 살려서 번역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남이 모르게 딴청부리는 것을 즐겨 한다.

'이것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거나,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한다. 이처럼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한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12.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법을 설할 때에

좋은 방편이라고 인정된 것을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는다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분노하고 원한을 품는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분노하고 원한을 품는 이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경멸한다. … 앙심을 품는다. 질투한다. 인색하다. 속인다. … 완고하다. … 거만하다. … 사악한 소원을 가져서 사악한 소원의 지배를 받는다. 삿된 견해를 가져서 극단을 취하는 견해를 고루 가졌다. …

자기 견해를 고수(固守)하고69) 그것을 굳게 움켜쥐어서70) 폐기하기가 어렵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굳게 움켜쥐어서 폐기하기가 어려운 것도

고행자의 오염원이다.71)

 

69) 자기 견해를 고수하는 자' sandiṭṭhiparāmāsī의 역어이다. 주석서에서는 자신의 견해가 산딧티(sandiṭṭhi)이고 산딧티를 고수한다거머쥐고 주장한다고 해서 자기 견해를 고수하는 자이다.(DA.iii.839)라고 설명한다한편 『청정도론 복주서』에서는 고수(parāmāsa)란 법의 고유성질 (sabhāva)을 넘어서 잘못 잡아 붙드는 것을 뜻한다.(Pm.829)고 설명하고 있다.

70) 강하게 아주 확고하게 되도록 그렇게 만든 뒤 거머쥔다고 해서 굳게 거머 쥐는 것(ādhānaggāhī)이다.(DA.iii.839)

71) 이와 같이 세존께서는 고행자가 고행을 통해서 가질 수 있는 해로운 심리현상 [不善法]들을 상세하게 들고 계신다.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러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오염원이겠는가, 아니겠는가?”

“세존이시여, 참으로 그러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오염원입니다. 오염원이 아닌 것이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심지어 여기 어떤 고행자는 이런 모든 오염원들을

골고루 다 가지고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저런 몇 가지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말해서 무엇 하겠습니까?”

 

 

청정함의 지저깨비를 얻음

 

13.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마음이 흡족하지 않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니그로다여, 그가 고행으로 마음이 흡족하지 않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기지 않으면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업신여기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취()하지 않고 혹()하지 않고 방일함을 얻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그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어도 마음이 흡족하지 않고

이제 그의 의도하는 바는 성취되었다고 여기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그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어도 자신을 칭송하지 않고 남을 비난하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그 고행으로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된다. 그는 그 이양과 존경과 명성을 얻게 되어도 취하지 않고 혹하지 않고 방일하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이것은 내게 맞다, 이것은 내게 맞지 않다.’라고 음식에서 분별을 하지 않는다.

그에게 맞지 않는 것은 고의적으로 버려 버리고, 그에게 맞는 것에는 묶이고 홀리고 집착하여 위험을 보지 못하고 출구를 얻지 못하면서 즐기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가 고행을 하여 이양과 존경과 명성에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왕이, 왕의 대신들이, 끄샤뜨리야들이, 바라문들이, 장자들이,

종교 지도자들이 나를 존경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14.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얕보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것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 자는 모든 것을 먹어치우는군.

즉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가지로 번식하는 것,

다섯 번째로 종자로 번식하는 것이다. 그러고서도 사문이라고 떠벌리는군.'이라고 얕보지 않는다.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여러 가문들 가운데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받는 것을 본다. 본 뒤에는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

‘그런데 많은 것으로 삶을 영위하는 이 자는 여러 가문들 가운데서 존경받고 존중되고 숭상되고 예배 받는구나.

그러나 나는 고행을 하여 어렵게 사는데도 여러 가문들 가운데서 존경받지 못하고

존중되지 못하고 숭상되지 못하고 예배 받지 못한다.’

이렇게 그는 여러 가문들에 대해서 질투와 인색을 일으키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붐비는 길에 앉아 [고행으로 시선을 끄는짓을 하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나는 이런 고행을 합니다. 나는 이런 고행을 합니다.'라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척하면서 여러 가문들에게로 다니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남이 모르게 딴청부리는 것을 즐겨 하지 않는다.

‘이것을 좋아하십니까?'라고 물으면 좋아하지 않으면서도 '좋아합니다.’라고 대답하거나, 좋아하면서도 ‘좋아하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하지 않는다. 이처럼 고의적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15.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여래나 여래의 제자가 법을 설할 때에

좋은 방편이라고 인정된 것을 그렇게 인정한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분노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는다. …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다시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경멸하지 않는다. … 앙심을 품지 않는다. 질투하지 않는다. 인색하지 않다. … 속이지 않는다. … 완고하지 않다. 거만하지 않다. … 사악한 소원을 가져서 사악한 소원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 삿된 견해를 가져서 극단을 취하는 견해를 고루 가지지 않는다. …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그것을 굳게 움켜쥐어서 폐기하기가 어렵게 되지 않는다.

니그로다여, 그가 그 고행으로 자기 견해를 고수하고 그것을 굳게 움켜쥐어서

폐기하기가 어렵게 되지 않으면 그 경우에 청정함이 있다.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고행을 통한 금욕이 청정하다고 하겠는가, 청정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와 같다면 참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청정합니다.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心材, 핵심)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는 최상을 얻은 것도 아니고,

심재를 얻은 것도 아니다. 이 정도로는 지저깨비정도를 얻은 것72)에 지나지 않는다.”

 

72) 지저깨비를 얻은 것(papaikappattā)이라는 것은 심재(心材고갱이)를 가진 나무의 심재(sāra)와 백목질(白木質, pheggu)과 겉껍질(taca)을 지나쳐서 바깥의 지저깨비와 같은 것을 얻은 것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DA.iii.839)

 

 

청정함의 겉껍질을 얻음

 

16.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떠한 고행을 통한 금욕이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를 얻은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 최상을 얻게 해 주시고

심재를 얻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을 한다.

니그로다여, 그러면 고행자는 어떻게 네 가지 제어로 단속을 하는가?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산 생명을 죽이지 않고 산 생명을 죽이도록 하지 않고

산 생명을 죽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주지 않은 것을 가지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도록 하지 않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거짓말을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도록 하지 않고 거짓말을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감각적 욕망73)을 갈망하지 않고 감각적 욕망을 갈망하도록 하지도 않고

감각적 욕망을 갈망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니그로다여, 이와 같이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을 한다.

 

73) 여기서 '감각적 욕망'으로 의역한 원어는 bhāvita(존재하게 된 것, 닦아진 것)이다주석서에서 여기서 존재하게 된 것(bhāvita)이란 [탐내는 마음으로 존재하게 된(lobhacittena bhāvita - DAȚ.iii.26)] 그들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pañca kāmaguā)이다.라고(DA.iii.840) 설명하고 있어서 '감각적 욕망으로 의역을 하였다.

불살생·불투도·불사음·불망어의 기본 계 가운데 불사음 대신에 이렇게 감각적 욕망에 빠지지 않는 것으로 더 넓혀서 설하고 계신다.

 

니그로다여, 고행자가 네 가지 제어로 단속하기 때문에 그의 고행자됨이 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향상하며 저열한 것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그는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공양을 마치고 걸식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바로 세우고

전면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문다.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문다.

모든 생명의 이로움을 위하고 연민하여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와 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을 버려 머문다.

광명상을 가져 싸띠를 확립시키고 반야로 보여지면서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문다.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문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74)

 

74) 숲 속 등을 의지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하는 것까지는 본서 제1권「사문과경 (D2) §§67~68의 정형구와 일치한다그곳의 주해를 참조할 것.

 

17. “그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한 뒤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화시키면서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75)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같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75)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초선부터 4선까지를 닦는 대신에 이처럼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四無量心]의 정형구로 설하시는 것은 본서 제1권「삼명경 (D13) §76과 같다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은 『청정도론』 IX.1 이하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으니 참조하기 바람.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고행을 통한 금욕이 청정하다고 하겠는가, 청정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와 같다면 참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청정합니다.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핵심)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는 최상을 얻은 것도 아니고,

심재를 얻은 것도 아니다. 이 정도로는 겉껍질 정도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청정함의 백목질을 얻음

 

18.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떠한 고행을 통한 금욕이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를 얻은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 최상을 얻게 해 주시고

심재를 얻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을 한다  그의 고행자됨이 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향상하며 저열한 것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그는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한 뒤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화시키면서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연민[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같이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평온[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인다.76)

그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한다.

 

76) 이하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는 본서 제1권「사문과경」(D2) §93과 일치하고『청정도론』 XIII.13~71에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다.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고행을 통한 금욕이 청정하다고 하겠는가, 청정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와 같다면 참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청정합니다.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핵심)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 정도의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는 최상을 얻은 것도 아니고,

심재를 얻은 것도 아니다. 이 정도로는 백목질(白木質) 정도를 얻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19. “세존이시여, 그러면 어떠한 고행을 통한 금욕이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를 얻은 것입니까?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제가 고행을 통한 금욕으로 최상을 얻게 해 주시고

심재를 얻게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니그로다여, 여기 고행자는 네 가지 제어로 단속을 한다  그의 고행자됨이 실로 존재하는 것이다.

그는 향상하며 저열한 것으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 그는 외딴 처소를 의지한다.

그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를 제거한 뒤 마음의 오염원들을 통찰지로써 무력화시키면서 자애[慈]가 함께한 마음으로  연민[悲]이 함께한 마음으로 

같이 기뻐함[喜]이 함께한 마음으로  평온[捨]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그는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고 기울인다. 그는 여러 가지 전생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天眼通]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만일 이와 같다면 고행을 통한 금욕이 청정하다고 하겠는가, 청정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와 같다면 참으로 고행을 통한 금욕은 청정합니다.

청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며,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핵심)를 얻은 것입니다.”

“니그로다여, 이 정도의 고행을 통한 금욕이라야 최상을 얻은 것이고, 심재를 얻은 것이다.

 

니그로다여, 그대는 나에게

'존자시여, 세존께서 제자들을 인도하는 세존의 법은 참으로 어떤 것입니까?

어떠한 법을 통해서 세존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은 안심입명처를 얻어서 굳은 의지로

청정범행의 시작을 맹세하게 됩니까?'라고 질문하였다.

니그로다여, 이러한 경우가 더 높고 더 수승한 것이니 이러한 것을 통해서 나는 제자들을 인도한다.

이러한 것을 통해서 나의 인도를 받은 제자들은 안심입명처를 얻어서 굳은 의지로

청정범행의 시작을 맹세하게 된다.”77)

 

77) 고행을 통해서 증득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는 다섯 번째 신통인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지혜[天眼通]까지이다이것은 삼매 수행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경지이므로 세존께서도 고행을 통해서 다섯 가지 장애를 극복하고 자애 · 연민 · 같이 기뻐함 · 평온[···]을 닦아서 본삼매를 얻는다면 여기까지는 증득할 수 있다고 인정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아직 출가 수행이라는 청정범행의 완결인 번뇌를 소멸한 지혜[漏盡通]는 설하지 않으셨다이것은 어떤 고행으로도 결코 증득할 수 없으며 통찰지(반야)를 완성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세존께서는 아래 §§22 ~24에서  7일이면 이러한 청정범행의 완결인 번뇌를 모두 멸한 구경의 지혜(abhiññā, §24참조)를 얻을 수 있건만 아무도 거기에 대해서는 관심을 가지려 하지 않는구나.'라고 아쉬워하신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유행승들에게 큰 소동이 일어나서 시끄럽고 큰소리로 떠들썩하게 되었다.

“스승의 전통을 통틀어서 우리에게는 이런 것이 없다.

우리는 이보다 더 높은 것을 꿰뚫어 알지 못한다.”라고 하면서.78)

 

78) 이것을 통해서도 다른 사문 · 바라문 전통에서는 삼매 수행을 통해서 다섯 가지 신통[五神通]까지는 얻는 것을 가르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그러나 번뇌 다한 누진통의 경지는 그들이 알지 못하는 것이다그리고 이것이야 말로 부처님만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이며 부처님은 이러한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는 방법으로 8정도와 계··혜 삼학을 들고 있음을 우리는 본서의 도처에서 보아왔다이것이 불교의 핵심이요 심재(고갱이)이다.

 

 

니그로다가 초췌해짐

 

20. 그때 산다나 장자는 ‘이제야 참으로 외도 유행승들은 세존의 말씀을 들으려 하고

귀 기울이고 구경의 지혜를 위해서 마음을 확립하는구나.'라고 알았다.

그러자 그는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했다.

 

“니그로다 존자여, 당신은 저에게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오호, 그런가요? 장자여, 그런데 그대는 사문 고따마는 누구와 함께 대화를 나누고

누구와 함께 토론하고 누구와 더불어 탁월한 통찰지를 증득하였는지 알기나 하오?

사문 고따마의 통찰지는 빈 집에서 망가진 것이라오. 사문 고따마는 회중에 참여하지 않는다오.

그는 대화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오. 그는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서] 변두리만을 다닌다오.

이는 마치 외눈박이 소가 조심스럽게 변두리만을 다니는 것과 같소.

그와 마찬가지로 사문 고따마의 통찰지는 빈 집에서 망가진 것이라오.

사문 고따마는 회중에 참여하지 않는다오. 그는 대화할 준비가 전혀 되지 않았다오.

그는 [대화를 회피하기 위해서] 변두리만을 다닌다오.

여보시오, 장자여. 사문 고따마가 이 회중에 오게 하시오.

우리는 한 방의 질문으로 그를 꼼짝 못하게 하고 빈 물동이처럼 그를 비틀어 버리겠소이다.'라고.”

 

이렇게 말하자 니그로다 유행승은 말이 없고 의기소침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초췌하여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있었다.

 

21. 그때 세존께서는 니그로다 유행승이 말이 없어졌고 의기소침하게 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초췌하여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 있는 것을 아신 후

니그로다 유행승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니그로다여, 그대가 이런 말을 한 것이 사실인가?"

“사실입니다. 세존이시여. 저는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니그로다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로부터

'옛날에 아라한 · 정등각들이 있었는데 그분 세존들은 시끄럽고 큰 목소리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였다.’라고,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는가?

예를 들면 지금 그대와 그대의 스승의 전통에서 하듯이.

아니면 ‘그분 세존들은 숲이나 밀림 속에 있는 조용하고 소리가 없고 한적하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혼자 앉기에 좋은 외딴 처소들을 수용한다.'라고 이렇게 들었는가?

예를 들면 지금의 나처럼.”

 

“세존이시여, 저는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유행승들로부터

‘옛날에 아라한 · 정등각들이 있었는데 그분 세존들은 시끄럽고 큰 목소리로 여러 가지

쓸데없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이렇다거나 이렇지 않다는 이야기였다.’라고

그렇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 저와 저의 스승의 전통에서 하는 것과 같습니다.

대신에 저는 ‘그분 세존들은 숲이나 밀림 속에 있는 조용하고 소리가 없고 한적하고

사람들로부터 멀고 한거하기에 좋은 외딴 처소들을 수용한다.'라고, 그렇게 들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의 세존과 같습니다."

 

"니그로다여, 그대처럼 지혜롭고 나이가 든 사람에게 어찌해서

깨달으신 세존은 깨달음을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

잘 제어되신 세존은 제어를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

고요하신 세존은 고요함을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

이미 [격류를] 건너신 세존은 [격류를건너게 하기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

완전한 열반을 [실현하신] 세존은 완전한 열반을 위해서 법을 설하신다.'라는

이런 생각이 들지 않았는가?"

 

 

청정범행의 완결을 실현함

 

22. 이렇게 말씀하시자 니그로다 유행승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저는 세존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하였습니다.

세존이시여, 이렇게 제가 잘못을 범하였으니 세존께서는 미래의 단속을 위해서

제가 잘못을 범한 사실을 잘못을 범한 것이라고 섭수하여 주소서.”

 

“니그로다여, 확실히 그대는 잘못을 범하였다. 어리석고 미혹하고,

신중하지 못해서 그대는 나에 대해서 그런 말을 하였다.

니그로다여, 그러나 그대는 잘못을 범한 것을 잘못을 범한 것이라고 인정한 다음

법답게 드러내어 바로 잡았다.

그런 그대를 나는 받아들이노라.

니그로다여, 성스러운 율에서 잘못을 범한 것을 잘못을 범한 것이라 인정한 다음

법답게 드러내어 바로 잡고 미래의 단속을 얻은 자에게는 향상이 있기 때문이니라.

니그로다여,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정직한 지혜로운 사람이 온다면 나는 교계하고 법을 가르친다.

칠년을 가르친 대로 도를 닦으면, 오래지 않아 그것을 위하여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한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결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

 

니그로다여, 칠 년은 그만두자. … 육 년을  오 년을  사 년을  삼 년을  이 년을 … 일 년을  일 년은 그만 두자. 칠 개월을  육 개월을  오 개월을  사 개월을 … 삼 개월을  이 개월을  일 개월을  보름을 

 

니그로다여, 보름은 그만 두자. 교활하지 않고 속이지 않고 정직한 지혜로운 사람이 온다면 나는 교계하고 법을 가르친다.

 

칠 일을 가르친 대로 도를 닦으면, 오래지 않아 그것을 위하여

좋은 가문의 아들들이 바르게 집을 떠나 출가한 그 위없는 청정범행의 완결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79)

 

79) 부처님의 자신에 찬 말씀을 보라빠르게는 7늦어도 7년이면(본서 제2권「대념처경」 (D22) §22에서도 7년부터 7일까지의 정형구가 나타난다청정범행의 완결을 바로 지금여기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증득한다고 힘주어 말씀하고 계신다이제 니그로다 유행승을 비롯한 다른 종교인들은 그만두고 부처님의 제자가 된 우리는 과연 부처님의 심재(고갱이핵심)에 도달했는가아니 도달은 고사하고 제대로 이해라도 하고 있는가불교라는 이름으로 부처님의 거룩하신 가르침이라는 이름으로이런 외도 유행승보다 못한 삿된 견해에 붙들려 있지는 않은가?

 

 

유행승들이 초췌해짐

 

23. 니그로다여, 그런데 아마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를 제자로 만들 욕심에서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것을 두고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그대들의 스승이 누구든 그대로 그대들의 스승이면 된다.

 

니그로다여, 아마 그대에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의 가르침으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것을 두고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그대들의 가르침이 무엇이든 그대로 그대들의 가르침이면 된다.

 

니그로다여, 아마 그대에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의 생계수단으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것을 두고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그대들의 생계수단이 무엇이든 그대로 그대들의 가르침이면 된다.

 

니그로다여, 아마 그대에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의 법들은 해로운 것이요 스승들의 전통에 있는 것들도 해로운 것이라 불린다.

그러니 그런 법들에 우리가 굳게 서게 하려고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것을 두고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그대들의 법들이 해롭고 스승들의 전통에 있는 것들이 해로운 것이라면 그러면 된다.

 

니그로다여, 아마 그대에게 다시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우리의 법들은 유익한 것이요 스승들의 전통에 있는 것들도 유익한 것이라 불린다.

그러니 그런 법들로부터 우리가 멀어지게 하려고 사문 고따마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니그로다여, 그러나 이것을 두고 그렇게 봐서는 안된다.

그대들의 법들이 유익하고 스승들의 전통에 있는것들이 유익한 것이라면 그러면 된다.

 

니그로다여, 이처럼 나는 상좌로 만들 욕심에서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가르침으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생계수단으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그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의 법들은 해로운 것이요 스승들의 전통에 있는 것들도 해로운 것이라 불리니

그런 법들에 그대들이 굳게 서게 하려고 나는 그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그대들의 법들은 유익한 것이요 스승들의 전통에 있는 것들도 유익한 것이라 불리니

그런 법들로부터 그대들이 멀어지게 하려고 나는 그렇게 말하지도 않는다.

 

니그로다여, 오염원이요 재생으로 인도하고 걱정거리요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며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가져오는 해로운 법들이 제거되지 못한 채로 있다면,

그런 것을 제거하도록 나는 법을 설한다.

그대들이 그대로 도를 닦으면 오염원인 법들은 제거될 것이고 깨끗한 법들은 증장할 것이며 통찰지의 완성과 충만함을 지금여기에서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실현하고 구족하여 머물 것이다.”80)

 

80) 부처님께서는 참으로 간곡하게 말씀하신다. '내 제자가 되어라불교로 개종해라.는 어떤 말씀도 이처럼 당신이 스스로 거부하고 계신다누구의 제자가 되었든 어떤 가치체계나 신념체계를 고수하든 그것은 상관없다고 천명하신다단지 오염원불선법번뇌를 멸절할 그런 법을 일러주리니 그것을 듣고 그대로 행하라고 하시고 있다.

 

 

맺는말

 

24.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 유행승들은 말이 없어졌고 의기소침하고 어깨를 늘어뜨리고

고개를 떨어뜨리고 초췌하여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앉아 있었다.

마라81)에 마음이 사로잡혔기 때문이다.82)

 

81) 마라(Māra)에 대해서는 본서 제2 「대반열반경」 (D16) §3.4의 주해를 참조할 것.

82)『중부』「견서계경」(犬誓戒經개처럼 사는 서계를 지닌 자에 대한 경 M57) 등을 통해서 보면 고행자들이 고행을 하는 이유는 천상에 태어나기 위해서이다니그로다 유행승의 무리도 결국은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그러므로 그들은 세존께서 아무리 고구정녕히 번뇌를 완전히 소멸하는 길해탈 · 열반의 길을 가르쳐주려고 하셔도 거기에는 관심이 없다그래서 그들은 마라에 사로잡혀 있다고 표현하는 것이다천상의 즐거움을 누리려는 자체가 이미 즐거움이나 쾌락을 관장하는 마라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본경은 본서 제1권의 「깟사빠 사자후경」 (D8)과 대조가 된다꼭 같이 고행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하고 꼭 같이 고행보다 더 수승한 길을 제시하셨지만「깟사빠 사자후경」에서 고행승 깟사빠는 세존의 가르침을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였다그래서 그는 고행의 길의 한계를 절감하고 고행을 버리고 세존의 제자가 되어 아라한이 되었다그러나 여기서 니그로다 유행승은 고행의 길의 한계를 절감하지 못하고 그냥 고행을 통한 금욕에 주저앉고 만다아마 이것은 니그로다 유행승이 3천 명이라는 많은 대중을 거느리면서 이미 사회적으로 명성과 이양(利養)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예나 지금이나 자기가 이룬 조그마한 성취에 도취되어 더 큰 길을 받아들이기 힘든 것이 범부 인간들의 속성일 것이다.

 

그때 세존께 이런 생각이 드셨다.

'이 쓸모없는 인간들은 모두 빠삐만83)에게 붙잡혔구나.

단 한 명도 ‘오, 참으로 우리는 구경의 지혜를 얻도록 사문 고따마 아래서 청정범행을 닦도록 하자. 7일이 무슨 소용인가?'라고 이렇게 말하는 자가 없구나.'84)

 

83) 빠삐만(pāpiman)은 마라의 이름이다마라와 빠삐만에 대해서는 각각 본서 제2권「대반열반경」 (D16) §3.4의 주해와 §3.7의 주해를 참조할 것.

84) 부처님의 이러한 말씀을 지금의 우리 불제자들은 뼈에 사무치게 새겨야한다고 생각한다부처님이 제정하신 계를 수지하고 비구라고 사문이라고 출가자라고 부처님의 제자라고 남들에게 당당하게 말하면서도 우리는 모두 저 마라에 붙들린 자는 아닌가니그로다 유행승의 무리들보다 더 못한 삿된 외도의 소견에 새까맣게 물들어서는 물든 지조차도 알지 못하는 참으로 사견우치(邪見愚癡)에 빠진 불쌍하고 가련한 자가 아닌가 반성하고 또 반성해 봐야 할 것이다.

 

세존께서는 우둠바리까 왕비가 [기증한] 유행승의 원림에서 사자후를 토하신 뒤

허공을 날아서 독수리봉 산으로 돌아오셨다.

산다나 장자는 거기서 라자가하로 들어갔다.

 

우둠바리까 사자후경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