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60. 확실한(논파할 수 없는) 가르침 경(Apaṇṇak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3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살라라는 꼬살라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 하셨다.

 

2.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이렇게 들었다.

사꺄의 후예이고, 사꺄 가문에서 출가한 사문 고따마가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에서 유행하다가 살라에 도착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른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 응공]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 정등각, 정편각]이시며,

영지와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 명행족]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선서]이시며,

세간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 세간해]이시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 무상사]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 조어장부]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 천인사]이시며,

깨달은 분[, 부처님]이시며,

세존(世尊)이시다.'라고,

 

그는 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세상과 사문 · 바라문들을 포함하고 사람을 포함한 무리들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참으로 그러한 아라한을 뵙는 것은 축복이다.”라고,

 

3. 그러자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을 뵈러 갔다.

세존을 뵙고는 어떤 자들은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고 유쾌하고 기억할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께 합장하여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세존의 앞에서 이름과 성을 말한 뒤 한 곁에 앉았고,

어떤 자들은 말없이 한 곁에 앉았다.

 

4. 한 곁에 앉은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자들이여, 그런데 그대들에게는 적절한 이유로  믿음이 가는 그런 마음에 드는 어떤 스승이 있는가?”

세존이시여, 저희들에게는 적절한 이유로 믿음이 가는 그런 마음에 드는 스승이 한 분도 없습니다.”

장자들이여, 그대들에게 마음에 드는 스승이 한 분도 없다면 이 확실한 가르침584)을 받아 지녀 실천해야 한다.

장자들이여, 확실한 가르침을 받아 지녀 실천하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오랜 세월 이익과 행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장자들이여, 그러면 무엇이 확실한 가르침인가?”

 

584) '확실한 가르침'apaṇṇaka-dhamm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apaṇṇaka모순되지 않음(aviruddha), 애매모호하지 않음(advejjhagāmi), 확정적임(ekasa-gāhika)”(MA.iii.116)으로 설명하고 있다. 『상윳따 니까야』제4권에 해당하는 주석서는 잘못이 없는 경지(anaparādhakatā)”(SA. iii.110)로 설명하고 있다.

 

5. (A)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585)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 · 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586)

 

585) 여기서부터 본경 §5에는 아지따 께사깜발리(Ajita Kesakambalī)[사후] 단멸론(uccheda-vāda), 그리고 §13에는 뿌라나 깟사빠(Pūraa Kassapa)도덕부정론(akiriya-vāda), 그리고 §21에는 막칼리 고살라(Makkhaligosāla)무인론(ahetuka-vāda)이 나타난다. 주석서는 이 셋을 확정된 삿된 견해(niyata-miccha-diṭṭhi)”(MA.iii.122)라고 밝히고 있다. 확정된 삿된 견해에 대해서는 본서 「우빨리 경」(M56) §4의 주해를 참조할 것.

그리고 계속해서 §9 등에서는 이런 견해를 가진 자는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라고 언급되고 있다.

세존께서는 본경 §§5~28에서 이 세 가지 견해를 각각 모두 8가지 방법으로 드러내시어 모두 24가지로 설명하고 계신다. 역자는 각 문단에서 이 8가지를 각각 (A), (A1), (A2), (A3)(B), (B1), (B2), (B3)로 표기 하였다. 그 방법은 냐나몰리 스님/보디 스님, 1260~61621번 주해를 참조하기 바란다.

586) 이 정형구는 『디가 니까야』제1권 「사문과경」 (D2/i.55) §23에 나타나는 아지따 께사깜발리(Ajita Kesakambalī)[사후] 단멸론(uccheda-vāda)의 앞부분이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제3권 없음 경」 (S24:5) §3에도 나타난다. 주석서의 설명은 보디 스님, Discourse on the Fruits of Recluseship, pp. 77~83을 참조할 것. 이 정형구가 보시도 없고' 등의 열 가지 그릇된 견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청정도론』 XVII.243에서는 이것을 열 가지 그릇된 견해(dasa-vatthukā micchā-diṭṭhi)'라 부르고 있다. 니까야에서 이 정형구가 나타나는 곳은 「사문과경」 (D2) §2.23, 본서 제2권 「살라의 바라문들 경」 (M41) §10, 「확실한 가르침 경」(M60) §5, 3권 「산다까 경」(M76)§7, 「보름밤의 짧은 경」(M110) §11, 4권 「행하고 행하지 말아야 함 경」 (M114) §10, 「위대한 마흔 가지 경」 (M117) §5『상윳따 니까야』 제3권 없음 경」(S24:5) §3, 4권 「빠딸리야 경」 (S42:13)§512; 『앙굿따라 니까야』 제6권 「쭌다 경」(A10:176) §5 등이다. 본서 제3권 「산다까 경」(M76) §7과 『디가 니까야』제1권 「사문과경」 §23의 후반부와 『상윳따 니까야』 제3권 「없음 경」(S24:5) §3의 후반부에는 다음 부분이 더 나타나고 있다.

이 인간이란 것은 사대(四大)로 이루어진 것이어서 [207] 임종하면 땅은 땅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물은 물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불은 불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바람은 바람의 몸으로 들어가고 돌아가고, 감각기능들은 허공으로 건너간다. 관을 다섯 번째로 한 [] 사람이 시체를 메고 간다. 송덕문(頌德文)은 화장터까지만 읊어질 뿐이다. 뼈다귀는 잿빛으로 변하고 헌공은 재로 끝날 뿐이다. 보시란 어리석은 자의 교설일 뿐이니 누구든 [보시 등의 과보가] 있다고 설하는 자들의 교설은 공허하고 거짓되고 쓸데없는 말에 지나지 않는다. 어리석은 자도 현자도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멸절할 뿐이라서 죽고 난 다음이라는 것은 없다.”

 

16, (B)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그들 사문 · 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 른 도를 구족한 사문 · 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 · 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7. (A1)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도 없고 공물도 없고 제사(헌공)도 없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없고 과보도 없다.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어머니도 없고 아버지도 없다.

화생하는 중생도 없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 · 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없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 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그들은 으로 짓는 선행과 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피하고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 [不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지 못하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8. (A2)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그릇된 사유를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없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587)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588)

 

587)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asaddhamma-saññatti)'라는 것은 사실이 아닌 법(abhūta-dhamma)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라는 뜻이다. '자신을 칭찬하고(atta-anukkaseti)'라는 것은 '나를 제외하면 어느 누가 자신의 견(, dassana)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할 수 있겠는가?'라고 자신을 칭찬하는 것이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para vambheti).'는 것은 '이런 사람들 중에서 단 한 사람도 자신의 의견을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받아들이도록 할 수 없다.'라고 다른 사람들을 비방하는 것이다.”(MA.ii.116~117)

588)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iti pubbe va kho panassa susīlya pahīna hoti dussīlya paccupaṭṭhita을 직역하여 옮긴 것이다. 그런데 주석서는 일찍 그릇된 견(miccha-dassanā)을 받아들인 자에게 반드시 좋은 행실(susīlya)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dussīlya-bhāva)이 자리 잡게 된다.”(MA.iii.117)로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사유와 그릇된 말과 성자들에 대한 대항과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9. (A3)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저 세상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지면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 · 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저 세상은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이 사람은 나쁜 행실을 가졌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고 허무주의를 말한다.'라고

지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쪽 모두에서 최악의 패를 가진 것589)이 된다.

즉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지자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 지녀 실천하여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 면만을 충족시킨다.'590)

 

589) '최악의 패를 가진 것'kali-ggaha를 옮긴 것이다. 주석서는 “'최악의 패를 가진 것'이란 남에게 지는 [패를] 가진 것(parājaya-ggāha)”(MA.ii.117)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여기서 kali는 노름에서 다른 사람에게 패할 수밖에 없는 가장 나쁜 패를 말한다. 인도의 전통적인 노름은 주사위(akkha, die)를 던져서 나오는 패를 가지고 승부를 겨룬다고 한다. 패에는 네 가지가 있다. 가장 좋은 패는 끄르따(kta)라고 하며, 그다음은 뜨레따(tretā), 그다음은 드와빠라(dvāpara)라고 하고, 가장 나쁜 패는 깔리(kali)라고 한다. 그래서 인도 문헌 전반에서 깔리(kali)'사악함, 불운, 죄악' 등의 의미로도 쓰인다.

한편 인도에서는 일찍부터 이런 네 가지 패를 시대(yuga) 구분에도 적용시켜 부르는데 끄르따 유가(kta-yuga)는 참된 시대(satya-yuga)라고도 불리듯이 가장 좋은 시대를 뜻하고 이런 시대는 점점 타락하여 차례대로 뜨레따 유가, 드와빠라 유가가 되고 마침내 가장 나쁜 말세인 깔리 유가(kali-yuga)가 된다고 한다. 힌두 신화에서는 지금 시대를 깔리 유가(말세)라고 설명한다.

590) “'한 면만을 충족시킨다(ekasa pharitvā tiṭṭhati).'는 것은 한쪽 부분(ek-anta eka-koṭṭhāsa)인 자기의 주장(saka-vāda)만을 펴고 확신 하면서(adhimuccitvā) 지낸다는 뜻이다. '저 세상이 없다.'는 자기의 주장하에서만 내생에 관한 한 그는 안전하다(sotthi-bhāv-āvaha).”(MA. iii.117) 그러나 저 세상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의 나쁜 행실은 지자들로부터 비난을 사게 되고, 또 만약 저 세상이 있다면 그의 나쁜 행실은 그를 지옥으로 내몰기 때문에 두 가지 측면 모두에서 안전을 보장할 수 없게 된다.

 

10. (B1)장자들이여, 여기서

보시도 있고 공물도 있고 제사(헌공)도 있다. 선행과 악행의 업들에 대한 결실도 있고 과보도 있다. 이 세상도 있고 저 세상도 있다. 어머니도 있고 아버지도 있다.

화생하는 중생도 있고 이 세상과 저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선언하는, 덕스럽고 바른 도를 구족한 사문 · 바라문들도 이 세상에는 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들을 피하고 으로 짓는 선행과 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기 때문이다.”

 

11. (B2)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바른 사유를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 하는 것이 아니다.

저 세상이 실제로 있기 때문에 '저 세상은 있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 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나쁜 행실은 제거되고 좋은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와 바른 말과 성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음과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이런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이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12. (B3)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다음에는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 · 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저 세상은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이 사람은 좋은 행실을 가졌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내생이 있다고 주장한다.'라고

지자들의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저 세상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패를 가진 것591)이 된다.

바로 지금 여기에서 지자들의 칭송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 받아 지녀 실천하여

해로운[不善] 경우를 배제하고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592)

 

591) “'최고의 패를 가진 것(kaa-ggāha)'이란 반드시 이기는 패를 가진 것(jaya-ggāha)을 말한다.” (MA.iii.117)

여기서 kaa는 가장 좋은 패인 끄르따(kta)의 빠알리어이다. 네 가지 패에 대해서는 본경 §9의 주해를 참조할 것.

592)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ubhayasa pharitvā tiṭṭhati)'는 것은 양쪽 부분인 자기의 주장(saka-vāda)과 다른 사람의 주장(para-vāda)을 모두 펴고 확신하면서 지낸다는 말이다. '저 세상이 있다.'라고 해도 안전하고, '저 세상은 없다.'라고 해도 안전하다.”(MA.ji.118)

 

13. (A)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행하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키고, 슬픔을 주거나593)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주도록 시키고, 괴롭히거나594) 괴롭히도록 시키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집을 부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약탈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강간하고, 거짓말을 하고 하더라도 죄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595)

만일 어떤 이가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갈아서

하나의 고깃덩이 하나의 고기뭉치로 만들어버리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고, 죄악의 과보도 없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596)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켜도 그로 인한 어떤 죄악도 없고, 죄악의 과보도 없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도록 시키고,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도록 시키더라도 그로 인한 어떤 공덕도 없고, 공덕이 생기지도 않는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 진실을 말하더라도 공덕이 없고, 공덕이 생기지도 않는다.'”597)

 

593) “'슬픔을 준다(socayato).'는 것은 다른 사람의 재물을 빼앗는 등의 행위로 자기 스스로 슬픔을 주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MA.iii.118)

594) “'괴롭힌다(kilamayato).'는 것은 음식을 빼앗거나, 묶어놓거나, 주거침입 등으로 자기 스스로 괴롭히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하도록 시키기도 하는 것이다.” (MA.iii.118)

595) “'하더라도 죄악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karoto na karīyati pāpa).'라는 것은 '내가 어떤 죄악을 범하리라.'라는 생각을 가지고 행하더라도 죄악(pāpa)을 범하는 것이 아니다. 거기에는 어떤 죄악도 없다는 말이다.”(MA.iii.119)

596) “'남쪽 기슭(dakkhia-tīra)'에 사는 사람들은 무자비하고(kakkhaā) 거칠었기(daruā) 때문에 그들에 관해서는 '죽인다(hananta)'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 반면, '북쪽 기슭(uttara-tīra)'에 사는 사람들은 신심이 돈독(pasannā)하여 부처님과 법과 승가에 청정한 신뢰(māmakā)를 보였으므로 그들에 관해서는 '보시를 한다(dadanta)'는 등의 표현을 사용했다.”(MA.iii.119)

597) 이 구문은 『디가 니까야』제1권 「사문과경」 (D2/i.52~53) SS16~18에서 뿌라나 가사빠(Pūraa Kassapa)의 도덕부정론(akiriya-vāda)으로 정리되어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상윳따 니까야』 제3권 「행위 경」(S24:6) §3에도 나타난다. 주석서의 설명은 보디 스님, Discourse on the Fruits of Recluseship, 69 ~70쪽을 참조할 것.

 

14. (B)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그들 사문 · 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행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행하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키고, 슬픔을 주거나 다른 사람에게 슬픔을 주도록 시키고, 괴롭히거나 괴롭히도록 시키고, 생명을 죽이고, 주지 않는 것을 가지고, 집을 부수고, 다른 사람의 재산을 약탈하고, 주거침입을 하고, 노상강도질을 하고, 남의 아내를 강간하고, 거짓말을 하면 죄악을 범하는 것이다.

만일 어떤 이가 예리한 칼이 가장자리에 달린 바퀴로 이 땅의 모든 생명을 갈아서

하나의 고깃덩이 하나의 고기뭉치로 만들어버리면 그로 인한 죄악도 있고, 죄악의 과보도 있다.

강가 강의 남쪽 기슭에 가서 죽이거나 죽이도록 시키고, 절단하거나 절단하도록 시키고,

고문하거나 고문하도록 시키면 그로 인한 죄악도 있고, 죄악의 과보도 있다.

강가 강의 북쪽 기슭에 가서 보시하거나 보시하도록 시키고,

제사를 지내거나 제사를 지내도록 시키면 그로 인한 공덕도 있고, 공덕의 과보도 있다.

보시를 하고 자신을 길들이고 제어하고598) 진실한 말을 하면 공덕이 있고, 공덕이 생긴다.

 

598) “'길들이는(dama)'이란 감각기능[, indriya]을 길들이고, 포살을 실행하여 길들이는 것이고, '제어하는(sayama)'이란 계행(sīla)으로 제어한다는 뜻이다.” (MA.iii.118)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 · 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5. (A1)장자들이여, 여기서

'행하거나 행하게 하고, 공덕이 없고, 공덕이 생기지도 않는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그들은 으로 짓는 선행과 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피하고 으로 짓는 악행과 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지 못하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16. (A2)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그릇된 사유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없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사유와 그릇된 말과 성자들에 대한 대항과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 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17. (A3)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업 지음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지면 그 자신은 안전 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업 지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 · 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업 지음이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이 사람은 나쁜 행실을 가졌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고 업 지음이 없음을 말한다.'라고

지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업 지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 쪽 모두에서 최악의 패를 가진 것이 된다.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지자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 지녀 실천하여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 면만을 충족시킨다.”

 

18. (B1)장자들이여, 여기서

'행하거나 행하게 하고, 공덕도 있고, 공덕의 과보도 있다. '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피하고 으로 짓는 선행과 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기 때문이다.”

 

19. (B2)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있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있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바른 사유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있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있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업을 짓는 것이 있기 때문에 업 지음이 있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나쁜 행실은 제거되고 좋은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와 바른 말과 성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음과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이런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이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20. (B3)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업 지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 · 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업 지음이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이 사람은 좋은 행실을 가졌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업 지음이 있다고 주장한다.'라고

지자들의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업 지음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 쪽 모두에서 최고의 패를 가진 것이 된다.

즉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지자들의 칭송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 받아 지녀 실천하여

해로운[不善] 경우를 배제하고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

 

21. (A)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중생들이 오염되는 데에는 어떤 원인도 없고 어떤 조건도 없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해지는 데에도 어떤 원인도 없고 어떤 조건도 없다.

원인도 없고 조건도 없이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없고 노력도 없고 남자의 용기도 없고 남자의 분발도 없다.599)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지배력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우연의 일치천성의 틀에 짜여서

여섯 부류의 태생600)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601)

 

599) “즉 중생들을 오염시키고, 청정하게 하는 어떤 힘(bala)이나 노력(vīriya)이나 용기(thāma)나 분발(parakkama)이 없다는 말이다.” (MA.iii.120)

600) '여섯 부류의 태생'cha abhijāti를 옮긴 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제4권 「여섯 태생 경」(A6:57) §2와 『디가 니까야 주석서』 (DA.i.162)에 의하면 '여섯 부류의 태생(chaābhijāti)'은 흑인의 태생(kaha-abhijāti), 청인의 태생, 적인의 태생, 황인의 태생, 백인의 태생, 순백인의 태생이다. 동물들과 도적 등은 흑인의 태생에, [불교의] 비구들은 청인의 태생에, 니간타들 (자이나 수행자)은 적인의 태생에, 나체수행자(acelaka)들의 제자인 흰 옷을 입는 재가자들은 황인의 태생에, 아지와까(Ajīvaka)의 남녀 수행자들은 백인의 태생에, 난다, 앗차, 끼사, 상낏차, 막칼리 고살라는 순백인의 태생에 속한다고 한다. 『앙굿따라 니까야』제4권 「여섯 태생 경」(A6:57) §2에 상세하게 나타나므로 참조할 것. 그런데 「여섯 태생 경」(A6:57) §2에서 이 이론은 막칼리 고살라가 아닌 뿌라나 깟사빠가 주장하였다고 나타난다.

601) 본 문단의 이 정형구는 『디가 니까야』제1권 「사문과경」(D2) §§19~21에서 막칼리 고살라(Makkhaligosāla)의 윤회를 통한 청정(sasāra-suddhi) 혹은 무인론(ahetuka-vāda)으로 정리되어 나타나고 있으며, 『상윳따 니까야』 제3권 「원인 경」 (S24:7)에도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이 주장의 일부분이 『상윳따 니까야』 제3권 「마할리 경」(S22:60) §3에서는 뿌라나 깟사빠의 주장으로 언급되어 있다. 이곳의 주해를 참조할 것.

 

22. (B)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그들 사문 · 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중생들이 오염되는 데에는 어떤 원인도 있고 어떤 조건도 있다.

원인에 의해 조건에 의해 중생들은 오염된다.

중생들이 청정해지는 데에도 어떤 원인도 있고 어떤 조건도 있다.

원인에 의해 조건에 의해 중생들은 청정해진다.

힘도 있고 노력도 있고 남자다운 용기도 있고 남자다운 분발도 있다.

모든 중생들과 모든 생명들과 모든 존재들과 모든 영혼들은 지배력도 없고 힘도 없고

정진력도 없이 운명과 우연의 일치와 천성의 틀에 짜여서

여섯 부류의 태생에서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 · 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23. (A1)장자들이여, 여기서

'중생들이 오염되는 데에는 어떤 원인도 어떤 조건도 없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한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 된다.

즉 그들은 몸으로 짓는 선행과 말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피하고 몸으로 짓는 악행과 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받아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지 못하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24. (A2)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그릇된 견해를 가진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그릇된 사유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그릇된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인 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없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한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좋은 행실은 제거되고 나쁜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그릇된 견해와 그릇된 사유와 그릇된 말과 성자들에 대한 대항과

정법이 아닌 것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는

이런 여러 가지 나쁘고 해로운 법들이 그릇된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25. (A3)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원인이 없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지면 그 자신은 안전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 · 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원인이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이 사람은 나쁜 행실을 가졌고 그릇된 견해를 가졌고 원인이 없음을 말한다.'라고

지자들의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쪽 모두에서 최악의 패를 가진 것이 된다.

즉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지자들의 비난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못 받아 지녀 실천하여 유익한 경우를 배제하고 한 면만을 충족시킨다.”

 

26. (B1)장자들이여, 여기서

'중생들이 오염되는 데에는 어떤 원인도 있고 어떤 조건도 있다.

즐거움과 괴로움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들에게는 이런 것이 예상된다.

즉 그들은 몸으로 짓는 악행과 말로 짓는 악행과 마음으로 짓는 악행의 세 가지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피하고 으로 짓는 선행과 로 짓는 선행과 마음으로 짓는 선행의

세 가지 유익한 법[善法]들을 받아 지녀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해로운 법들에서 재난과 비열함과 오염원을 보고,

유익한 법들에서 출리의 공덕과 깨끗함을 보기 때문이다.”

 

27. (B2)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라는 견해를 가지면,

그는 바른 견해를 가진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라고 사유하면, 그는 바른 사유를 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라고 말을 하면, 그는 바른 말을 하는 것이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라고 하면 그는 저 세상을 아는 아라한들에게 대항하는 것이 아니다.

실제로 원인이 있기 때문에 '원인이 있다.'라고 다른 사람에게 알린다면 그는 그에게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는 것이다.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하면서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다.

이처럼 그가 이전에 행한 나쁜 행실은 제거되고 좋은 행실이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바른 견해와 바른 사유와 바른 말과 성자들에게 대항하지 않음과

정법을 받아들이도록 설득함과 자신을 칭찬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는

이런 여러 가지 유익한 법들이 바른 견해를 조건으로 생겨난다.”

 

28. (B3)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만일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天界]에 태어날 것이다.

이제 저들 사문 · 바라문들의 말이 옳건 그르건 간에 원인이 없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이 사람은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이 사람은 좋은 행실을 가졌고 바른 견해를 가졌고 원인이 있다고 주장한다.'라고

지자들의 칭송을 받는다.

그러나 만일 원인이 있다면 이 사람은 양쪽 모두에서 최고의 패를 가진 것이 된다.

즉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지자들의 칭송을 받고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 천상 세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는 이 확실한 가르침을 잘 받아 지녀 실천하여 해로운[不善] 경우를 배제하고 양면을 모두 충족시킨다.”

 

29.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절대로 무색계는 없다.'라고.”602)

 

602) “즉 무색계 범천(arūpa-brahma-loka)이란 것은 어떤 측면(sabb-ākāra)에서도 없다는 주장이다.” (MA.iii.122)

 

30.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그 사문 · 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반드시 무색계는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 · 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31.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이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절대로 무색계는 없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이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반드시 무색계는 있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것에 대해 한 면만 취하여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

만일 '절대로 무색계는 없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마음으로 이루어진603) 색계신들이 있는 그곳에 틀림없이 내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

만일 '반드시 무색계는 있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인식으로 이루어진604) 무색계의 신들이 있는 그곳에 틀림없이 내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

물질에 근거하여 몽둥이를 들고, 무기를 들고, 싸우고, 투쟁하고, 분쟁하고, 논쟁하고,

중상모략하고, 거짓말하는 것이 생기지만, 무색계에서는 이들이 전혀 없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하면서 물질들을 염오하고 그것에 대해 욕망을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605)

 

603) “'마음으로 이루어졌다(mano-mayā).'는 것은 [색계] 마음(jhāna-citta)으로 이루어진 것이다.”(MA.iii.122)

604) “'인식으로 이루어졌다(saññā-māya)'는 것은 무색계의의 인식(arūpa-jihāna-saññ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MA.iii.122)

605) “'물질들을 염오하고 그것에 대해 욕망을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rūpāna yeva nibbidāya virāgāya nirodhāya paipanno hoti).'는 것은 [] 얻은 사람(lābhī)이거나 그것을 사유하는 사람(takkī)이 도를 닦는 것을 말한다.

[] 얻은 사람이란 색계 얻은 사람(rūpāvacara-jjhāna-lābhi)이다. 그는 색계에 관한 한 의심이 없지만 무색계에 관한 한 그렇지 않다. 그는 '나는 무색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듣고 무색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듣지만 실제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색계 제4선을 기초 (pada-ṭṭhāna)로 삼아 무색계선을 증득하리라. 만약 무색계가 있다면 내가 그곳에 태어날 것이고, 만약 없다면 색계 범천의 세상(rūpāvacara-brahma-loka)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확실한 가르침(apaṇṇaka dhamma)은 틀림없이 내게 확실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도를 닦는다.

사유하는 사람이란 아직 얻지 못한 사람(appailaddha-jjhāna)이다. 그 사람도 색계에 관한 한 의심(kakhā)이 없지만 무색계에 관한 한 그렇지 않다. 그는 '나는 무색계가 있다고 말하는 것도 듣고 무색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듣지만 실제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까시나의 준비 (kasia-parikamma)를 지어 색계 제4선을 증득하여, 그것을 기초로 삼아 무색계선을 증득하리라. 만약 무색계가 있다면 내가 그곳에 태어날 것이고, 만약 없다면 색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확실한 가르침은 틀림없이 내게 확실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도를 닦는다.” (MA.iii.122~123)

 

32.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주장과 이런 견해를 가졌다.

'존재[]의 소멸606)은 절대로 없다.'라고.”

 

606) “'존재의 소멸(bhava-nirodha)'이란 열반을 말한다.”(MA.iii123)

 

33. “장자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그 사문 · 바라문들과 상반된 주장을 내세운다. '존재의 소멸은 반드시 있다.'라고,

장자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들 사문 · 바라문들은 서로에게 상반된 주장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34. “장자들이여, 여기서 지자는 이처럼 숙고한다.

'이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존재[]의 소멸은 절대로 없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본 적이 없다.

이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존재의 소멸은 반드시 있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지고 있지만

나는 아직 그것을 알지 못한다.

내가 알지도 못하고 본 적도 없는 것에 대해 한 면만 취하여

'이것만이 진실이고, 다른 것은 거짓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적절하지 않다.

만일 '존재의 소멸은 절대로 없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인식으로 이루어진 무색계의 신들이 있는 그곳에 틀림없이 내가 태어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

만일 '존재의 소멸은 반드시 있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의 말이 진실이라면,

'나는 바로 지금 · 여기에서 완전한 열반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라고 하는 것은 가능하다.

'존재의 소멸은 절대로 없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의 견해는 욕망에 가깝고 족쇄에 가깝고 환락에 가깝고 집착에 가깝고 취착에 가깝다.

'존재의 소멸은 반드시 있다.'라는 그런 주장과 그런 견해를 가진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의 견해는 욕망 없음에 가깝고 족쇄 없음에 가깝고 환락 없음에 가깝고 집착 없음에 가깝고 취착 없음에 가깝다.

그는 이와 같이 숙고하면서 존재들을 염오하고 그것에 대해 욕망을 빛바래고

소멸하기 위해 도를 닦는다.” 607)

 

607) “'도를 닦는다(paipanno hoti)'는 것은 [여덟 가지 증득을] 얻은 사람(lābhī) 이거나 그것을 사유하는 사람(takkī)이 도를 닦는 것을 말한다.

여덟 가지 증득을 얻은 사람(aṭṭha-samāpatti-lābhī)은 무색계(āruppa)에 관한 한 의심이 없지만 열반에 관한 한 그렇지 않다. 그는 '나는 열반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듣고, 없다고 말하는 것도 듣지만 실제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증득을 기초(pādaka)로 삼아 위빳사나를 증장시키리라. 만약 열반이 있다면 내가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들 것이고, 만약 없다면 무색계(āruppa)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확실한 가르침은 틀림없이 내게 확실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도를 닦는다.

사유하는 사람이란 아직 하나의 증득(eka-samāpatti)도 얻지 못한 사람이다. 그 사람도 무색계에 관한 한 의심이 없지만 열반에 관한 한 그렇지 않다. 그는 '나는 열반이 있다고 말하는 것도 듣고, 없다고 말하는 것도 듣지만 실제로 그것이 있는지 없는지 모른다. 까시나의 준비를 지어 여덟 가지 증득을 얻어서, 그 증득을 가장 가까운 원인으로 하는(samāpatti-padaṭṭhāna) 위빳사나를 증장시키리라. 만약 열반이 있다면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들 것이고, 만약 없다면 무색계에 태어날 것이다. 이와 같이 확실한 가르침은 틀림없이 내게 확실해질 것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도를 닦는다.”(MA.iii.123~124)

 

35. “장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네 부류의 사람들이 존재한다.608) 무엇이 넷인가?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한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을 학대 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한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며, 또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한다.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문다.”

 

608) “허무주의를 설하는 자(natthika-vāda), 원인이 없다고 설하는 자(ahetuka-vāda), 업 지음이 없다고 설하는 자(akiriya-vāda), 무색계가 없다(āruppā natthi)고 설하는 자, 열반이 없다고(nirodho natthi) 설하는 자의 다섯 부류의 사람은 여기서 설하는 네 부류의 사람 중에서 보다 낮은 앞의 세 부류에 속하고, 내생이 있다고 설하고, 원인이 있다고 설하는 자 등의 다섯 부류의 사람은 여기서 설하는 네 번째 부류의 사람에 속한다. 세존께서는 이 뜻을 드러내시기 위해 이 가르침을 설하셨다.” (MA.iii.124)

 

36. “장자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인가?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자는 나체수행자이고, 관습을 거부하며 살고, 손에 [받아] 핥아서 먹고,609)

이와 같이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데 몰두하며 지낸다.

장자들이여, 이를 일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 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609) 이하 본경의 §§36~39는 본서 「깐다라까 경」 (M51) §§8~11과 동일하다.

 

37. “장자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인가?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양을 도살하거나, 돼지를 도살하거나, 새를 잡거나, 사슴을 잡거나, 사냥꾼, 어부, 도둑, 사형 집행인, 옥사쟁이이거나 혹은 다른 잔인한 일을 하는 자들이다.

장자들이여, 이를 일러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38. “장자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며, 또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인가?

장자들이여, 여기 어떤 사람은 관정(灌頂)의 대관식을 거행한 끄샤뜨리야 왕이거나

큰 재력을 가진 바라문이다.

그러면 그의 하인들이나 심부름꾼들이나 일꾼들은 형벌에 떨고 두려움에 떨고 눈물을 흘리면서 [제사를 지내기 위해 이러한 여러] 준비를 한다.

장자들이여, 이를 일러 자신을 학대하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며,

또 다른 사람을 학대하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39. “장자들이여, 그러면 어떤 사람이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인가?”

 

40. ~ 55. “장자들이여, 여기 이 세상에 여래가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고, 완전히 깨달은 자[正等覺]이고,610)

 

610) 이하 본경의 §§40~55는 본서 「깐다라까 경」 (M51) §§12~27과 동일하다.

 

깐다라까 경 12-27

12. “비구들이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463)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等覺]이며,

명지와 실천이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분[善逝]이며,

세상을 잘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깨달은 분[]이며, 세존(世尊)이시다.

 

463) 이하 본경의 §§12~27은 본서 제1권 「코끼리 발자국 비유의 짧은 경」(M27) §§11~26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리고 §23 4선의 구족까지는 본서 「갈애 멸진의 긴 경」 (M38) §§31~ 40과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최상의 지혜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며 의미와 표현을 구족했고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법을 설하고,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13.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 여래에게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번잡하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둥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14.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비구들의 학습계목을 받아 지녀 그것과 더불어 생활한다.

그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고,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고, 양심적이고 동정심이 있으며,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그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고,

준 것 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자신을 깨끗하게 하여 머문다.

그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으며, 도덕적이고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윈다.

그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고,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그는 중상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의고,

여기서 듣고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고

저기서 듣고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그는 욕설을 버리고 욕설을 멀리 여의고,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한다.

그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의고, 적절한 시기에 말하고, 사실을 말하고, 유익한 말을 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며, 가슴에 담아둘 만한 말을 하고, 이치에 맞고, 절제가 있으며, 유익한 말을 적절한 시기에 한다.

그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읜다. 하루 한 끼만 먹는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여의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읜다.

, 노래, 연주,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화환을 두르고 향과 화장품을 바르고 장신구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읜다.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읜다.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염소 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코끼리, , ,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읜다.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읜다.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읜다.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읜다.

상해, 살해,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멀리 여읜다.”

 

15. “그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그는 어디를 가더라도 그의 자구(資具)를 몸에 지니고 간다.

예를 들면 새가 어디를 날아가더라도 자기 양 날개를 짐으로 하여 날아가는 것과 같다.

그와 같이 비구는 몸을 보호할 정도의 옷과 위장을 지탱할 정도의 음식으로 만족한다.

어디를 가더라도 그 의 자구를 몸에 지니고 간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戒蘊]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을 일이 없는 행복을 경험한다.”

 

16. “그는 눈으로 형색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 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로 소리를 들음에로 냄새를 맡음에로 맛을 봄에으로 감촉을 느낌에마노[]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17. “그는 나아갈 때도 돌아올 때도 [자신의 거동을] 반야로 보여지면서[正知]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법의(法衣) · 발우 · 의복을 지닐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갈 때도 서 있을 때도 앉아 있을 때도 잠잘 때도 깨어있을 때도

말할 때도 침묵할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행한다.”

 

18.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잘 갖추고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잘 갖추고

이러한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正念·正知]을 잘 갖추어

숲 속이나 나무 아래나 산이나 골짜기나

산속 동굴이나 묘지나 밀림이나 노지나 짚더미와 같은 외딴 처소를 의지 한다.”

 

19. “그는 탁발하여 공양을 마치고 탁발에서 돌아와 가부좌를 틀고 상체를 곧추세우고

얼굴주위에 싸띠를 확립하여 앉는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머물고,

욕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악의의 오점을 제거하여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머물고,

모든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악의의 오점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해태혼침을 제거하여 해태와 혼침 없이 머물고,

광명상(光明想)을 가져 싸띠를 확립하고 반야로 보여지면서[正念·正知, (sampajāna)]

해태와 혼침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들뜸후회를 제거하여 들뜨지 않고 머물고,

안으로 고요히 가라앉은 마음으로 들뜸과 후회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의심을 제거하여 의심 을 극복하여 머물고,

유익한 법들에 아무런 의심이 없어서 의심으로부터 마음을 청정하게 한다.”

 

20. “그는 마음의 오염원이고 통찰지를 무력하게 만드는 이들 다섯 가지 장애를 제거하여 감각적 욕망들을 완전히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1.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을 가라앉혔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 고찰은 아니고, 삼매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2(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2.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 [正念·正知]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3(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3. “비구들이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捨念淸淨] 4(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24.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해낸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 곳에서 죽어 다시 여기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宿命通 숙명통].”

 

2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말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 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처참한 곳[苦界], 불행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말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 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을 지었다.

이들은 몸이 무너져 죽은 뒤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 가는 것을 꿰뚫어 안다[天眼通 천안통].”

 

26.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집중되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활발발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다.' 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안다[漏盡通 누진통].”

 

27. “그가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볼 때 그는 감각적 욕망에 기인한 번뇌에서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 이 해탈한다. 무명에 기인한 번뇌에서도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생긴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꿰뚫어 안다.”

 

 

56. “장자들이여, 이를 일러 자신을 학대하지 않고 자신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으며, 또 다른 사람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학대하는 데 몰두하지 않는 사람으로, 자신도 학대하지 않고 다른 사람도 학대하지 않아서 지금 · 여기에서 갈애가 없고, [모든 오염원들이] 적멸하고, [안으로 열 받는 오염원들이 없어] 시원하고,

[ 도와 과와 열반의] 행복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고결하게 되어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57. 이렇게 말씀하시자 살라에 사는 바라문 장자들은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귀의합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재가신자로 받아주소서.

오늘부터 목숨이 붙어 있는 그날까지 귀의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