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맛지마 니까야

M049. 범천의 초대 경(Brahmanimantanikasuttaṃ)

Daisy청량심 2023. 6. 15. 03:20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아나타삔디까 원림(급고독원)에 머무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비구들이여.”라고 비구들을 부르셨다.

세존이시여.”라고 비구들은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2. “비구들이여, 한때 나는 욱깟타에서 수바가 숲의 큰 살라 나무 아래 머물렀다. 380)

비구들이여, 그때 바까 범천381)에게 이런 아주 나쁜 견해[惡見]382)가 생겼다.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유일하고, 383)

이것은 불멸의 법이고, 이것은 참으로

생겨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

이것을 넘어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은 없다.'라고.”

 

380) 본서의 첫 번째 경인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도 이곳에서 설하신 것이다.

381) 바까 범천(Baka brahma)은 초기불전에서 언급되는 유력한 범천들 가운데 하나이다. 문자적으로 바까(baka)는 왜가리(crane)를 뜻한다. 인도에서 왜가리는 교활하고 속임수를 잘 부리는 새로 통한다.

382) “'아주 나쁜 견해[惡見, pāpaka diṭṭhigata]란 저열한(lāmakā) 상견(常見, sassata-diṭṭhi)이 생긴 것이다.”(MA.ii.405)

383) '유일한'으로 옮긴 원어는 kevala(only, alone, whole)이다. 우리의 독존(獨存)에 해당하는 단어이다. 중국에서는 一向, 不共, , 唯 등으로 옮겼다. 주석서는 '깨어지지 않는(akaṇḍa)' '전체적인(sakala)'으로 해석하고 있다.(SA.i.208) kevala(독존)에 대해서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 「불에 헌공하는 자 경」 (S7:8) {637}의 주해를 참조할 것.

주석서는 바까 범천이 이런 견해를 가지게 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옛날에 그가 인간이었을 때 그는 禪을 닦아서 죽어서 제4선천인 광과천(Vehapphala)에 태어났으며 수명은 5백 겁이었다. 거기서 죽어서는 제3선 천인 변정천(Subhakiha)에 태어났으며 수명은 64이었다. 다시 거기서 죽어서 제2선천인 광음천(Abhassara)에 태어났는데 수명은 8이었다. 다시 거기서 죽어서 초선천인 [범천]에 태어났는데 수명은 1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자신의 이전의 업과 그 과보로 태어난 천상에 대해서 기억을 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그는 그것을 잊어버리고 이처럼 상견에 빠지게 되었다고 한다.(SA.i.208) 즉 그는 범천인 자신의 수명이 영원하고 유일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것은 아주 단편적인 것만을 보고 주장하는 잘못된 견해라는 것이다.

 

3. “비구들이여, 그러자 나는 마음으로 바까 범천의 마음을 알고

마치 힘센 사람이 구부린 팔을 펴고 편 팔을 구부리듯이

그렇게 재빨리 욱가타의 수바가 숲의 큰 살라 나무 아래에서 사라져 그 범천의 세상에 나타났다.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은 멀리서 내가 오는 것을 보았다.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어서 오십시오, 존자시여. 환영합니다. 참으로 오랜만에 여기 오실 기회를 만드셨습니다.

존자시여, 이것은 항상하고, 이것은 견고하고, 이것은 영원하고, 이것은 완전하고,

이것은 불멸의 법이고, 이것은 참으로 생겨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태어나지 않습니다.

이것을 넘어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은 없습니다.”

 

4.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이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했다.

참으로 바까 범천은 무명에 싸여있다. 그는 무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말하고,

견고하지 않은 것을 견고하다고 말하고, 영원하지 않은 것을 영원하다고 말하고,

완전하지 않은 것을 완전하다 말하고, 멸하기 마련인 법을 불멸의 법이라 말하고,

참으로 생겨나고 늙고 죽고 떨어지고 태어나는 것을 두고

'생겨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있는데도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다.'라고 말하다니

참으로 바까 범천은 무명에 싸여있다.'”384)

 

384) 이상 §4까지는 『상윳따 니까야』제1권 「바까 범천 경」(S6:4)의 산문부분인까지와 같은 내용을 담고 있다.

 

5. “그러자 사악한 마라385)가 어떤 범중천의 [몸에] 들어가서386)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비구여, 비구여, 이 분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이 분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이 분은 범천이고 대범천이며 지배자이고 지배되지 않는 자이며 모든 것을 보는 자이고

신이며 조물주이고 창조주387)이며 최고자이고 주재자388)이며 통치자이고

존재하는 것들과 존재할 것들의 아버지이십니다.

 

385) 마라(Māra)에 대해서는 본서 「마라 견책 경」 (M50) §2의 주해를 참조할

386) “어떻게 마라가 세존을 보았는가? 그는 자기의 거처에 앉아서 때때로 스승을 예의주시하고는 했다. '오늘은 사문 고따마가 어느 마을이나 성읍에서 머물까?'라고, 그렇게 마음을 기울일 때에 '사문 고따마는 욱깟타의 수바가 숲에 머무는구나.'라고 알고 '그가 어디로 갔을까?'라고 둘러보다가 범천(brahma-loka)으로 가시는 것을 보았다. 사문 고따마가 범천으로 가고 있다. 그곳에서 법을 설하여 범천의 무리를 내 영역(visaya)에서 벗어나게 하기 전에 얼른 가서 법을 설하고자 하는 마음을 거두게 하리라.'라고 생각하면서 스승의 뒤를 쫓아가서 범천의 무리 가운데 보이지 않는 몸(adissamāa kāya)으로 참석했다. 그는 바까 범천이 스승에게 비난받는 것을 알고 범천을 의지하여 참석했고, 그리하여 마라가 말하게 된 것이다.

'어떤 범중천의 [몸에] 들어가서(aññatara Brahmapārisajja anvāvisitvā)'라는 것은 한 명의 범중천의 몸(sarīra)에 들어갔다는 말이다. 그러나 대범천들(Mahā-brahmā)과 범보천들(Brahma-purohitā)의 몸에는 들어갈 수 없다.”(MA.ii.405)

범중천, 범보천, 대범천은 초선천의 신들의 무리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아비담마 길라잡이』 제5 §6 [해설]을 참조할 것.

387) “'조물주(kattā)'이고 '창조주(nimmātā)'라는 것은 땅, 히말라야, 수미산, 우주, 대해, , 태양이 이것에 의해 창조되었다(nimmita)고 말하는 것이다.(MA.ii.406)

388) “'최고자이고 주재자(seṭṭho sajitā)'라는 것은 '너는 끄샤뜨리야(무사 계급)가 되고, 너는 바라문(사제 계급)이 되고, 너는 와이사(상인, 농민 계급)가 되고, 너는 수드라(천민 계급)가 되고, 너는 재가자가 되고, 너는 출가자가 되고 너는 낙타가 되고, 너는 소가 돼라.'라고 이렇게 중생들을 통할하는 자(visajjetā)라고 말하는 것을 나타낸다.”(MA.ii.406)

 

비구여, 그대 이전에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있어 이 세상에서 땅을 혐오하여 땅을 비난했고389) 물을 혐오하여 물을 비난했고, 불을 혐오하여 불을 비난했고, 바람을 혐오하여 바람을 비난했고, 존재를 혐오하여 존재를 비난했고, 신을 혐오하여 신을 비난했고, 빠자빠띠를390) 혐오하여 빠자빠띠를 비난했고, 범천을 혐오하여 범천을 비난 했습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목숨이 다한 뒤 저열한 몸을 받았습니다.391)

 

389) “'을 비난했고(pathavī-garahaka)'라는 것은 지금 당신이 '땅은 무상하고 괴로움이고 무아이다.'라고 생각하면서 땅을 혐오하여 비난하듯이(garahasi jigucchasi), 그들도 역시 땅을 비난했다. 그러니 당신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나타낸다.”(MA.ii.406)

390) 빠자빠띠(Pajāpati, Sk. Prajāpati, 쁘라자빠띠, 창조의 신)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 §9의 주해를 참조할 것.

391) “'저열한 몸을 받았다(hīne kāye patiṭṭhitā ahesu).'는 것은 네 가지 불행한 곳(apāya), [즉 지옥, 축생, 아귀, 아수라]에 태어났다는 말이다.”(MA.ii.406)

 

비구여, 그러나 그대 이전에 사문 바라문들이 있어 이 세상에서 땅을 기뻐하여 땅을 찬탄했고,392) 물을 기뻐하여 물을 찬탄했고, 불을 기뻐하여 불을 찬탄했고, 바람을 기뻐하여 바람을 찬탄했고, 존재 를 기뻐하여 존재를 찬탄했고, 신을 기뻐하여 신을 찬탄했고, 쁘라자 빠띠를 기뻐하여 쁘라자빠띠를 찬탄했고, 범천을 기뻐하여 범천을 찬탄했습니다.

그들은 몸이 무너져 목숨이 다한 뒤 수승한 몸을 받았습니다.393)

 

392) “'땅을 찬탄했고(pathavī-pasasaka)'라는 것은 당신이 비난하는 것처럼 그들은 그렇게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땅은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고 끊어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고 무너지지 않는다.'라고 이렇게 땅을 찬탄하고 땅을 칭송했다고 말한다. '땅을 기뻐한다(pathavābhinandina)'는 것은 갈애와 사견을 가지고 땅을 기뻐한다는 말이다.”(MA.ii.406)

393) “'수승한 몸을 받았다(paīte kāye patiṭṭhitā).'는 것은 범천(brahma-loka)에 태어났다는 말이다.” (MA.ii.406)

 

비구여,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합니다.

'존자여, 그대는 저 범천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십시오.

그대는 범천의 말씀을 넘어서지 마십시오.

비구여, 만일 그대가 범천의 말씀을 넘어서려 한다면,

그것은 마치 사람이 다가오는 행운을 막대기로 쳐서 쫓아내듯이,

혹은 마치 사람이 지옥 절벽에 떨어질 때 손과 발로 움켜쥐고 설 땅을 놓쳐버리듯이,

그런 일이 그대에게 닥칠 것입니다.

존자여, 그러니 참으로 그대는 저 범천이 말씀하신 대로 행하십시오.

그대는 범천의 말씀을 넘어서지 마십시오.

비구여, 참으로 그대는 여기 모여 있는 범천의 회중을 보지 못합니까?'

비구들이여, 이렇게 하여 사악한 마라는 나를 범천의 회중으로 끌어들였다.”394)

 

394) “'여기 모여 있는 범천의 회중(brahma-parisa)을 보지 못합니까?'라는 것은 그대는 이 범천의 회중이 찬란하게 빛나고(obhāsamāna) 광채를 발하고(virocamāna) 광휘로운(jotayamāna) 것을 보고 있다고 하면서 범천의 위력(iddhānubhāva)을 드러내는 것이다.

'나를 범천의 회중으로 끌어들였다.'는 것은 범천의 회중이 이렇듯 명성(yasa)과 영광(siri)으로 찬란하게 빛나고 광채를 발하고 광휘로운 것을 그대가 직접 보듯이, 만일 그대도 대범천의 말을 넘어서지 않고 범천이 말하는 대로 행하면 그대도 그들과 같은 명성과 영광으로 빛날 것이라고 말하면서 나를 범천의 회중으로 데려갔다는 말이다.” (MA.ii.407)

 

6.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사악한 마라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악한 자여, 나는 그대를 아노라. 그대는 내가 그대를 알지 못한 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악한 자여, 그대는 마라이다.

사악한 자여,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천의 회중의 일원들은 모두

그대의 손아귀에 들어갔고 그대의 지배하에 놓였다.

사악한 자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자도 나의 손아귀에 들어왔고, 나의 지배하에 놓였다.'라고,

사악한 자여, 그러나 나는 결코 그대의 손아귀에 들어가지 않았고

결코 그대의 지배하에 놓이지 않았다.”

 

7. “비구들이여, 이렇게 말하자 바까 범천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나는 참으로 항상한 것을 항상하다고 말하고, 견고한 것을 견고하다고 말하고,

영원한 것을 영원하다고 말하고, 완전한 것을 완전하다고 말하고, 불멸인 것을 불멸이라고 말하고, 생겨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 것을 두고

'생겨나지 않고 늙지 않고 죽지 않고 떨어지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라고 말하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없으므로 '이것을 넘어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란 없다.'라고 말합니다.

 

비구여, 그대 이전에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이 이 세상에 있어

그대의 일생만큼이나 긴 세월 동안 고행을 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있으면 있다고 알았을 것이고,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이 없으면 없다고 알았을 것입니다.

 

비구여, 그러니 나는 그대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는 결코 다른 더 수승한 벗어남을 보지 못할 것이고 마침내 지치고 실망하게 될 것입니다.

비구여, 만일 참으로 땅을 집착하면 내게 가까워질 것이고 내 영역에 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끌어내기도 할 것입니다. 395)

만일 참으로 물을불을바람을존재를신을쁘라자빠띠를

범천을396) 집착하면 내게 가까워질 것이고 내 영역에 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끌어내기도 할 것입니다.”

 

395) “'땅을 집착한다(pathavi ajjhosissasi).'는 것은 갈애와 자만과 사견(tahā-māna-diṭṭhi)으로 땅을 거머쥔다는 말이고, '내게 가까워진다(opasāyiko me bhavissasi).'는 것은 내가 가면 따라 가고, 서면 가까이 서고, 앉으면 가까이 앉고, 누우면 가까이 눕는다는 말이고, 내 영역에 안주한다는 것은 나의 보호를 받는다는 말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끌어내기도 한다(yathākāma-karaīyo bāhiteyyo).'는 것은 내가 원하는 그것이 되어야 하고, 또한 끌려 나가 풀이나 덤불보다 더 저열한 난쟁이가 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 문단은 바까 범천이 부처님을 회유하고(upalāpeti) 협박하는(apasādeti) 것으로, 이 중에서 처음 두 가지는 부처님을 회유하는 것이고, 나중 두 가지는 '그대가 만약 땅을 집착하면 내게 가까워지고, 내 영역에서 쉬게 되겠지만 나는 그대를 내가 원하는 대로 할 것이고, 끌어내어 난쟁이로 만들 것이다.'라고 협박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은 이런 협박과 회유에 굴하지 않으신다.”(MA.ii.407~408)

396) 본경에서는 이처럼 땅 등의 8가지가 나타나지만 이것은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에 나타나는 24가지 대상(M1 §1의 주해 참조)을 축약해 놓은 것이라 연상된다.

 

8. “범천이여, 나도 그와 같이 알고 있다.

만일 내가 땅을 집착 하면 그대에게 가까워질 것이고 그대 영역에 안주하게 될 것이고

그대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끌려 나갈 것이다.

만일 참으로 물을불을바람을존재를신을쁘라자빠띠를

범천을 집착하면 그대에게 가까워질 것이고 그대 영역에 안주하게 될 것이고

그대가 원하는 대로 되어야 하고 끌려 나갈 것이다.'라고,

범천이여, 나아가서 나는 '바까 범천은 이와 같은 큰 신통을 가졌고,

바까 범천은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졌고, 바까 범천은 이와 같은 큰 영향력을 가졌다.'라고 그대의 성취를 꿰뚫어 알고 그대의 위대함도 꿰뚫어 안다.”397)

 

397) '성취' '위대함'은 각각 gati juti를 옮긴 것인데, 일반적으로 gati는 태어날 곳, 운명, 거취 등의 뜻으로 사용되고, juti는 광휘, 밝음 광채 등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여기서는 각각 성취(nipphatti)와 위대함(ānubhāva)을 뜻한다고 주석서는 밝히고 있어서(MA.ii.408) 이렇게 옮겼다.

 

존자여, 그대는 얼마만큼 '바까 범천은 이런 큰 신통을 가졌고, 이런 큰 위력을 가졌고,

이런 큰 영향력을 가졌다.'라고 나의 성취를 꿰뚫어 알고 나의 위대함도 꿰뚫어 압니까?”

 

9. “달과 태양이 사방을 비추고 광채가 빛나는 곳이라면

일천의 세계에 이르기까지 그대의 힘이 미치노라.

그대는 높고 낮음을 알고, 탐욕과 이욕을 알며398)

이쪽 상태와 다른 상태 [알고], 중생들의 오고 감을 아노라.399)

 

398) “'높고 낮음을 안다(paroparañca jānāsi).'는 것은 여기 일천의 세상에 높고 낮은, 수승하고 저열한 중생을 안다는 것이고, '탐욕과 이욕을 안다(atho rāga-virāgina).'는 것은 단지 '이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고, 이 사람은 평범한 사람이다.'라고만 아는 것이 아니라, 중생이 탐욕을 가졌는지 아닌지도 안다는 말이다.”(MA.ii.408)

399) “즉 이 세계와 다른 나머지 999개의 세계를 알고, 이 일천 세계에 재생연결을 통해 중생들이 오는 것(āgati)과 죽음으로써 가는 것(gati)도 바까 범처은 안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범천은 스스로 무척 위대하다 (atimahanto'hom asmi)고 생각하지만 일천 세계에만 영향력(pamāa)을 행사할 뿐 그보다 더 넓은 이천 세계, 삼천 세계, 일만 세계, 십만 세계에는 영향력을 해치 못한다고 부처님께서 지적하고 계신다.”(MA.ii.408)

 

범천이여, 이와 같이 나는 '바까 범천이 이와 같은 큰 신통을 가졌고,

이와 같은 큰 위력을 가졌고, 이와 같은 큰 영향력을 가졌다.'라고

그대의 성취를 꿰뚫어 알고 그대의 위대함도 꿰뚫어 안다.”

 

10. “범천이여, 참으로 다른 세 부류의 몸이 있으니

그대는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본다.

 

범천이여, 광음천의 신이라고 불리는 몸이 있으니 그대는 그곳에서 떨어져 이곳에400) 태어났다.

그대가 여기 너무 오래 머물렀기 때문에 기억을 잊어버려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본다.

범천이여, 이와 같이 신통지에 관한 한 나는 그대와 동등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 401)

 

400) 광음천(Abhassarā)은 제2선천의 영역에 속하지만 바까 범천이 태어난 이곳은 초선천의 세계이다. 2선천과 광음천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 (M1) §11의 주해와 『아비담마 길라잡이』제5 §6 [해설]을 참조할 것.

401) 『디가 니까야』제1권 「범망경」 (D1) §§2.2~2.6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타난다. 어떤 신이 수명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러자 다른 신들 역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그곳에 태어나 그 신의 동료가 된다. 그러자 먼저 태어난 신에게 자신의 염원 때문에 그들이 거기 태어났다는 착각이 일어난다. 뒤에 태어난 신들은 이 사실을 모르지만 세존께서는 이 사실을 꿰뚫어 보신다. 그래서 본경 여기서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범천이여, 변정천의 신이라고 불리는 몸이 있으니

광과천의 신이라고 불리는 몸이 있으니

그대는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을 알고 본다.

범천이여, 이것으로도 신통지에 관한 한 나는 그대와 동등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

 

11. “범천이여, 나는 땅을 땅이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고

땅에 내재된 땅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는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402)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았고,403) [자신을] 땅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을] 땅으로부터 생각하지 않았고, 땅을 내 것이라고 생각 하지 않았고,

땅을 기뻐하지 않았다.404)

범천이여, 이것으로도 신통지에 관한 한 나는 그대와 동등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

 

402) 원문 pathaviyā pathavattena ananubhūta tadabhiññāya를 주석서(MA.ii.412)의 설명에 따라 '땅에 내재된 땅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는 그것 (열반)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라고 옮겼다. 주석서는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땅이 가지고 있는 땅의 특질로 경험할 수 없는, 얻을 수 없는(appatta)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열반이다. 열반은 모든 형성된 것[有爲]에서 벗어났기 때문에(sabbasmā sakhatā nissaattā) 형성된 것에 속하는 땅의 특질(pathavi-sabhāva)로는 얻을 수 없다. 그런 열반을 실현했다는 말이다. 그리하여 부처님께서는 그 땅을 갈애와 사견과 자만으로 움켜쥐어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물 등에서도 같은 방법이 적용된다.” (MA.ii.412)

403) 이 이하의 내용은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 §3의 주해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니 참고할 것.

404) '[자신을] 땅이라 생각하지 않았고, … 땅을 기뻐하지 않았다.'와 같은 구문이 본서 제1권 「뿌리에 대한 법문 경」(M1) §27 이하에 나타난다. 그곳의 주해들을 참조하기 바란다.

 

12. ~ 23. “범천이여, 나는 물을불을바람을존재들을신들을쁘라자빠띠를브라흐마[梵天]광음천을변정천을광과천을승자천을일체를 일체라고 최상의 지혜로 알고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는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아

[자신을] 일체라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을] 일체에서 생각하지 않았고,

[자신을] 일체로부터 생각하지 않았고, 일체를 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일체를 기뻐하지 않았다.

범천이여, 이것으로도 신통지에 관한 한 나는 그대와 동등하지 않는데

어떻게 내가 그대보다 열등하겠는가? 오히려 내가 그대보다 더 수승하다.”

 

24. “존자여, 만일 그대가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405)로 체득 할 수 없는

[그것을 최상의 지혜로 알았다고 한다면],

그대의 주장을 허망하게 만들지 말고 무의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406)

 

405)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 sabbassa sabbatta를 옮긴 것이다. 이것은 '일체의 일체됨'으로 직역할 수 있는데 문맥을 참조해서 이렇게 의역을 하였다.

406)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로(sabbassa sabbattena)'라는 문구에 이르자, 범천은 자신의 교리(vāditā)에 따라 '일체(sabba)'를 영원함(akkhara)이라고 내세우면서 부처님 말씀에 결점(dosa)을 찾아 반박하고 있다.

스승께서는 자신의 몸과 관련하여 '일체(sabba)'라고 표현했고, 범천은 영원함과 관련하여 '일체(sabba)'라고 말한다.”(MA.ii.412)

계속해서 주석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범천은 '그대는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로(sabbassa sabbattena) 체득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일체(sabba)'에 체득할 수 없는 것(열반)이 없다고 한다면, 그렇다면 체득할 수 없는 것(ananubhūta, 열반)이란 것 [자체는] '있는 것'이란 [말이] 됩니다(yadi sabba ananubhūta natthi, athassa ananubhūta atthi), 그러니 그 열반은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로는 결코 체득할 수 없다고 한 그대의 주장을 허망하게 만들지 말고 무의미하게 만들지 마십시오(mā te rittakameva ahosi, tucchakam eva ahosi).'라고 하면서 부처님께서 거짓말(musā-vāda)을 했다면서 비난하고 있다.”(MA.ii.412~413)

 

25. “열반407)은 볼 수 없고408) 무한하고 모든 곳에 빛나나니409)

 

407) “그러나 스승께서는 이 범천보다 백 배, 천 배, 만 배 더 교리에 밝으시다. 그러므로 나는 '일체'를 말하고, '체득할 수 없음'도 말한다. 그것을 잘 들으라고 범천에게 말씀하시고, 그 이유를 보이시면서 '열반은(viññāa)'이라고 말씀을 시작하신다.”(MA.ii.413)

여기서 '열반'으로 옮긴 원어는 nibbāna가 아니라 viññāa이다. 일반적으로 viññāa는 알음알이, 의식 등의 뜻으로 사용되지만 이 부분에서 주석서는 vijānitabba(잘 알아야 할 것), 즉 열반으로 설명하고 있어 이렇게 옮겼다.(MA.ii.413)

이것은 『디가 니까야』제1권 「께왔다 경」(D11) §85에 나타나는 완결된 시구의 일부분인데, 그곳에서도 주석서는 viññāa[, 알음알이]를 열반의 동의어라고 설명하고, 복주서는 “'알아져야 하는 것'이란 특별하게 알아져야 하는 것으로, 최상의 지혜인 성스러운 도의 지혜(ariya-magga-ñāa)로 바로 눈앞에서 알아져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이것은 열반의 동의어이다.”(DAȚ.i.512)라고 더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열반을 viññāa라고 표현한 곳은 경전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붓다고사 스님은 이 두 곳 모두에서 viññāa를 열반이라고 설명했을까? 그 「께왔다 경」 (D11)의 흐름을 살펴보면 viññāa를 일반적인 의미의 알음알이나 마음으로는 결코 설명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정신과 물질은 어디서 소멸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부처님께서 viññāa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정신 · 물질로 표현되는 모든 형성된 것들의 가라 않음이 열반이라고 경전 곳곳에서 누누이 설명해 오셨기 때문에(본서 제1권「뱀의 비유 경」 (M22) §20, 본서 「말룽꺄 긴 경」 (M64) §9 등 참조) 붓다고사 스님이 viññāa를 열반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역자도 이 설명을 존중하여 '알음알이'로 옮기지 않고 '열반'이라고 옮겼다.

408) “'볼 수 없다(anidassana).'는 것은 [열반은] 눈의 알음알이의 영역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다.” (MA.ii.413)

409) “'무한하다(ananta).'는 것은 생멸에서 벗어났기 때문에 무한하다고 한다.

'모든 곳에 빛난다(sabbato-pabha).'는 것은 세 가지로 설명된다. 첫째, 광명(pabhā)을 완전하게 구족했다는 말이다. 이 열반 이외에 더 빛나고 더 청정하고 더 순결한 다른 법은 없다. 둘째, 열반은 모든 곳에 존재해있다.(pabhūta), 동방, 서방 등 가운데 어떤 곳에는 열반이 없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셋째, pabha은 여울(tittha)을 말한다. 즉 열반은 모든 곳으로부터 접근할 수 있는 여울을 가졌다. 마치 대해를 어떤 곳에서 건너고자 할 때 그것이 바로 여울이고, 여울이 아니라고 하지 않는다. 그와 마찬가지로 서른여덟 가지 명상주제 가운데 어떤 입구(mukha)를 통해 열반에 들려고 할 때 그것이 바로 여울이다. 열반으로 향하는 여울 아닌 명상주제는 없다. 그러므로 열반은 모든 곳으로부터 접근할 수 있는 여울을 가졌다고 한다. 이러한 열반은 땅에 내재된 땅의 특질로, 나아가서 물에 내재된 물의 특질로는 체득할 수 없다(ananubhūta).”(MA.ii.413)

 

그것은 땅에 내재된 땅의 특질410)로 체득할 수 없고, 물에 내재된 물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불에 내재된 불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바람에 내재된 바람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존재에 내재된 존재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신에 내재된 신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쁘라자빠띠에 내재된 쁘라자빠띠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브라흐마에 내재된 브라흐마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광음천에 내재된 광음천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변정천에 내재된 변정천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광과천에 내재된 광과천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승자천에 내재된 승자천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고,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로 체득할 수 없다.”

 

410) 여기서도 '땅에 내재된 땅의 특질' 등은 pathaviyā pathavattena 등을 옮긴 것인데, sabbassa sabbatta '일체에 내재된 일체의 특질'로 옮긴 것과 같은 방법을 적용했다.

 

26. “존자여, 그렇다면 내가 당신에게서 사라져보겠습니다.”

범천이여, 그대가 할 수 있다면 내게서 사라져보라.”

비구들이여, 바까 범천은 '사문 고따마에게서 사라질 것이다.

사문 고따마에게서 사라질 것이다.'라고 했으나 결코 나에게서 사라질 수 없었다.

 

비구들이여, 그래서 내가 바까 범천에게 이렇게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서 사라지겠다.'라고

존자여, 그대가 할 수 있다면 내게서 사라져보십시오.”

비구들이여, 그때 나는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천 회중의 일원 들이

나의 소리는 듣지만 볼 수는 없는 그런 신통을 나투었다.

그리고 내 모습을 숨기고 이 게송을 읊었다.”

 

27. “나는 참으로 존재에서 두려움을 보고

존재하지 않음을 찾지만 존재들만을 보노라.

나는 어떤 존재도 집착하지 않고

[존재에] 기꺼워함을 취착하지 않노라.” 411)

 

411) “부처님은 존재(bhava)에서 태어남과 늙음 등 두려움을 혜안으로 여실히 보셨다. 욕계 등 삼계 중생들의 존재가 해탈(존재하지 않음)을 찾지만(vibhavesi) 바른 방법을 얻지 못하여 결국 존재에 다시 태어남을 보시고, 어떤 존재에 대해서도 갈애와 사견으로 집착하지 않고, 존재에 대한 갈애를 움켜쥐지 않으셨다는 말이다. 이렇게 부처님은 사성제를 분명히 밝히시면서 이 가르침을 설하셨다.” (MA.ii.414)

즉 존재(bhava)로 괴로움의 진리(고제), 존재에 기꺼워하는 것(nandi)으로 일어남의 진리(집제), 존재하지 않는 것(vibhava, 해탈)으로 소멸의 진리(멸제)를 기꺼워함을 취착하지 않는 것(nandi na upādiyinti)으로 도의 진리(도제)를 밝히셨다.”(MAT.iii.319)

 

28. “비구들이여, 그러자 범천과 범천의 회중과 범천 회중의 일원들에게

놀라움과 경이로움이 생겼다.

존자들이여, 사문 고따마의 위대한 신통력과 위대한 위력은 참으로 놀랍고, 참으로 경이롭습니다.

우리는 사꺄의 후예로 사까 가문에서 출가한 이분 사문 고따마와 같은

이런 위대한 신통력과 이런 위대한 위력을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을

이전에 본 적도 없고 들은 적도 없습니다.

존자들이여, 그는 존재를 좋아하고 존재를 기뻐하고 존재를 즐기는

저 사람들의 존재를 뿌리째 뽑아버렸습니다.”

 

29. “비구들이여, 그러자 사악한 마라가 어떤 범중천의 [몸에] 들어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여, 만일 그대가 이렇게 꿰뚫어 알고, 이렇게 깨달았다 하더라도

재가의 제자들과 출가 제자들을 지도하지 마시오. 412)

재가자들과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마시오. 재가자들과 출자자들을 열망케 하지 마시오.

 

412) “그때 사악한 마라가 화가 많이 나 있었다. '내 영역(vicaranta)에서 이 사문 고따마가 법을 설하여 일만의 범천들을 나의 지배(vasa)에서 벗어나게 한다.'라고 생각하면서 분노에 휩싸여 어떤 범중천의 몸에 붙어 숨어서 부처님께 경고하고 있다. 만일 그대가 이렇게 스스로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를 깨달았다면 재가 제자들이나 출가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마시오.'라고”(MA.ii.415)

사실 부처님께서 처음 성도를 하셨을 때 부처님 마음에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본서 제1권 「성스러운 구함 경」 (M26) §19 이하를 참조할 것.

 

비구여, 그대 이전에 이 세상에 아라한이고 정등각 자라고 선언한 사문 · 바라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재가자들과 출가자들을 지도했고 재가자들과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했고 재가자들과 출자자들을 열망하게 했소.

그러나 몸이 무너져 목숨이 다한 뒤 저열한 몸을 받았소.

 

비구여, 그대 이전에 이 세상에 아라한이고 정등각 자라고 선언한 사문 · 바라문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재가자들과 출가자들을 지도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출가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았고 재가자들과 출자자들을 열망케 하지 않았소.

그래서 몸이 무너져 목숨이 다한 뒤 수승한 몸을 받았소.

 

비구여, 그러니 나는 이렇게 말하오.

'존자여, 이제 관심 두지 마시고 지금 · 여기에서 행복하게 머무는 데에만 전념하시오.

다른 사람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는 것이 좋소.

존자여,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들지 마시오.'라고.”413)

 

413) “'다른 사람을 가르치려 하지 마시오(mā para ovadāhi)'는 것은 때로는 인간 세계에, 때로는 천상에, 때로는 범천에, 때로는 용의 세계에 다니면서 가르침을 설하는 것을 그만두고 한곳에 앉아서 禪과 도와 과의 즐거움(jhāna-magga-phala-sukha)으로 시간을 보내라(vītināmehi)는 것이다.” (MA.ii.415)

법을 설하지 마시라는 마라의 이러한 말은 본서 제1권 본서 「성스러운 구함 경」 (M26) §19에서 세존께서 깨달음을 실현하시고 스스로 설법에 대한 사유를 하신 뒤에내 마음은 법을 설하기보다는 무관심으로 기울었다.”라고 하시는 대목과 비슷하다. 그리고 이것은 『디가 니까야』제2권 「대반열반 경」 (D16) §3.34에서 부처님께서 깨달으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마라가 다가가서 부처님께 즉시에 반열반에 드시라고 권유하는 것과도 비교가 된다.

 

20. “비구들이여, 사악한 마라가 이렇게 말했을 때,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악한 자여, 나는 그대를 아노라. 그대는 내가 그대를 알지 못한다고 생각하지 마라.

사악한 자여, 그대는 마라이다.

사악한 자여, 그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는 마음으로 내게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그대는 그들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는 마음 없이 내게 그렇게 말했다.

사악한 자여, 그대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사문 고따마에게서 법을 들은 자들은 나의 영역을 벗어날 것이다.'라고,

사악한 자여, 그들 사문 · 바라문들은 바르게 완전히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우리는 바르게 완전히 깨달았다.'라고 선언했다.

 

사악한 자여, 그러나 나는 바르게 완전히 깨달은 상태에서 '나는 정등각자이다.'라고 선언한다.

사악한 자여,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더라도 여여하고

여래는 제자들에게 법을 설하지 않더라도 여여하다.

사악한 자여, 여래는 제자들을 지도하더라도 여여하고

여래는 제자들을 지도하지 않더라도 여여하다.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사악한 자여,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 자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사악한 자여, 예를 들면 야자수가 그 윗부분이 잘리면 다시 자랄 수 없는 것처럼,

여래는 정신적 오염원이고 다시 태어남을 가져오고 두렵고 괴로운 과보를 가져오고

미래의 태어남과 늙음과 죽음을 초래 하는 번뇌들을 모두 제거하고, 그 뿌리를 자르고,

줄기만 남은 야자 수처럼 만들고, 멸절시켜, 미래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끔 했다.”

 

31. “여기에 대해서 마라가 더 이상 대답할 수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것은 범천의 초대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이 가르침을 '범천의 초대'라고 한다.”

 

 

범천의 초대 경(M49)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