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048. 꼬삼비 경(Kosambiyasuttaṃ)
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세존께서는 꼬삼비362)의 고시따 원림에 머무셨다.
362) 꼬삼비(Kosambī)는 인도 중원의 16국 가운데 하나인 왐사(Vaṃsa, Sk. Vatsa)의 수도였다. (J.iv.28; vi.236) 부처님 재세 시에는 빠란따빠(Parantapa)가 왕이었으며 그의 아들 우데나(Udena)가 대를 이었다고 한다.(MA.iii.324) 주석서에 의하면 꾸숨바(Kusumba, Kusumbha) 선인이 머물던 아쉬람의 근처에 도시를 만들었다고 해서 꼬삼비(Kosambī)라고 한다.(UdA. 248) 또 다른 설명에 의하면 큰 꼬삼바 나무(Kosamba-rukkha, 님 나무)들이 도시의 주위에 많이 있다고 해서 꼬삼비라고 한다.(MA.ii.389; PSA.iii.584)
주석서에 의하면 꼬삼비에는 세 개의 원림이 있었는데 본경에 나타나는 고시따 원림(Gositārāma)은 고시따 상인(seṭṭhi)이 만든 것이고 꾹꾸따 상인 이 만든 꾹꾸따 원림(Kukkuṭārāma)과 빠와리까 상인이 기증한 빠와리까 망고 숲(Pāvārikambavana)이 있었다고 한다.(DA.i.319) 그 외에도 고삼비의 우데나 공원과 심사빠 숲(Siṃsapāvana)이 다른 경에 나타난다. 본경을 통해서 보듯이 꼬삼비 비구들 사이에 큰 분열이 생겨서 세존께서 꼬삼비를 떠나시는 것으로 대처하신 것도 초기불전에서는 잘 알려진 사건이다.(본 경(M48); Vin.i.337~357; J.iii.486) 꼬삼비는 야무나 강변에 위치하며 현재 인도 웃따라쁘라데쉬 주의 알라하바드(Allahabad)에서 150km 정도 떨어진 Kosam이라는 두 마을이라고 학자들은 말한다.(DPPN)
2. 그때 꼬삼비에서는 비구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 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그들은 서로를 설득 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았다.363)
363) 본경은 꼬삼비의 두 비구 간에 일어난 논쟁에 근거한 것으로 『율장』 『대품』(Mahāvagga, Vin.i.337)에 나타나 있다. 본서 제4권 「오염원 경」(M128)도 이 사건을 배경으로 설해진 것이다.
이 사건은 사소한 계율에 관한 오해로 시작된 것인데 그것이 큰 논쟁으로 변해 급기야 큰 승단과 꼬삼비에 사는 재가신도들이 두 쪽으로 분리되고 말았다. 주석서에 의하면 그 발단은 이러하다.
“율을 호지하던[律師, vinaya-dhara] 비구와 경을 호지하던[經師, suttantika] 비구가 한 거처에 살았는데, 그때 경사(經師)가 세면대에서 사용했던 물을 버리지 않고 대야에 그대로 담아두고 나갔다. 율사(律師)가 나중에 들어가서 그 물을 보고 나와 그 비구에게 '그대가 그 물을 그대로 두었소?'라고 물었다. 그렇다고 대답하자 그것이 계를 범하는 것(āpatti-bhāva)인지를 알지 못하느냐고 묻는다.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고 대답하자 그것은 계를 범한 것이라고 일러주고, 그렇다면 참회하겠다(desessāmi)고 대답한다. 그런데 만약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하자 그는 자신의 범계(āpatti)에 대해 범계가 아니라는 견해를 갖게 된다.
그런데 율사가 자신의 제자들에게 '저 경사는 계를 범하고도 알지 못한다.'라는 말을 했다. 그 제자들은 경사의 제자들을 만나 '그대들의 스승은 계를 범하고도 계를 범한 사실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들은 가서 자신들의 스승에게 고했다. 그러자 그 스승은 이렇게 말했다. 이 율사는 전에는 계를 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더니 이제는 계를 범했다고 말을 하니 이 자는 거짓을 말하는 사람(musā-yādi)이다.'라고, 다시 그의 제자들은 가서 '그대들의 스승은 거짓을 말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여 이와 같이 서로 말다툼(kalaha)이 생겼고, 그것과 관련하여 이렇게 말한 것이다.”(MA.ii.393~394)
3. 그러자 어떤 비구가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는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그 비구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지금 꼬삼비에서는 비구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그들은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4. 그러자 세존께서는 다른 비구를 부르셨다.
“오라, 비구여. 그대는 내 말이라 전하고 그 비구들을 불러오라.
'스승께서 그대들을 부르십니다.'라고.”
“그러겠습니다, 세존이시여.”라고 그 비구는 세존께 대답하고 그 비구들을 찾아갔다.
가서 그 비구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존자들이여, 스승께서 그대들을 부르십니다.”
“도반이여, 잘 알겠습니다.”라고 대답하고 세존을 뵈러 갔다.
가서 세존께 절을 올리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비구들에게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는다는 것이 사실인가?”
“그렇습니다, 세존이시여.”
15. “비구들이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을 때에 그대들은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몸의 업, 말의 업,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는가?”
“아닙니다, 세존이시여.”
“비구들이여, 참으로 그러하다. 그대들이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있을 때에 그대들은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몸의 업, 말의 업,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하지 못한다.
쓸모없는 자들이여, 그대들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보기에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고,
서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또한 서로를 설득시키지도 못하고, 설득되기를 원하지도 않는가?
쓸모없는 자들이여, 그것은 그대들을 긴 세월 불이익과 고통으로 인도할 것이다.”
6.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부르셨다.
“비구들이여,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이 있으니,
이것은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무엇이 여섯 가지인가? 364)
364) 이 여섯 가지는 본서 제3권 「사마가마 경」(M104) §21에도 나타난다.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① 몸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이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② 말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들에 대해
③ 마음의 업으로 자애를 유지한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번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④ 법답게 얻은365) 법다운 것들이 있을 때,
그것이 비록 발우 안에 담긴 것일지라도 그렇게 얻은 것들을 공평하게 나누어서 수용하고, 366) 계를 잘 지키는 동료 수행자들과 함께 나누어서 사용한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365) “법답게(dhammikā)'라는 것은 속임수(kuhana) 등으로 분류되는 그릇된 생계(micchajīva)를 버리고, 여법하게 공평하게 탁발의식(bhikkhācariya-vatta)으로 생긴 것을 말하고, '얻은 것(lābhā)'이란 옷 등의 필수품을 얻은 것(laddha-paccayā)을 말한다.”(MA.ii.396)
다시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는
⑤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고 벗어나게 하고 지자들이 찬탄하고 들러붙지 않고
삼매에 도움이 되는 그런 계들을 그 동료수행자들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367)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367) “일곱 가지 범계(āpatti)의 무더기들 가운데서 처음이나 마지막의 학습계율을 파한 자의 계는 '훼손되었다(khaṇḍa)'고 한다. 마치 가장자리가 끊어진 천 조각처럼.
중간에 파한 자의 계는 '뚫어졌다(chiddaṃ)'고 한다. 마치 중간에 구멍난 천 조각처럼.
그들을 차례대로 둘 혹은 셋을 파한 자의 계는 '오점이 있다(sabala)'고 한다. 마치 등이나 혹은 배에 나타난 얼룩덜룩한 검고 붉은 색깔을 가진 소처럼.
그 사이사이의 학습계율을 파한 자의 계는 '얼룩졌다(kammāsa)'고 한다. 마치 여러 색깔의 반점으로 얼룩덜룩한 소처럼.
그러나 어떤 것도 범하지 않은 그의 계를 '훼손되지 않았고 뚫어지지 않았고 오점이 없고 얼룩이 없다.'고 한다.
이 계들은 갈애라는 노예 상태에서 풀려나 벗어나게 하므로 '벗어나게 한다.(bhujissāni)'고 한다.
부처님 등 지자들이 찬탄하기 때문에 '지자들이 찬탄한다(viññuppasatthāni).'고 한다.
갈애와 사견이 들러붙지 않기 때문에 '들러붙지 않는다(aparāmaṭṭhāni).'고 한다. 혹은 '이것은 그대가 이전에 얻은 것이다.'라고 어느 누구에 의해서도 잘못 이해될 수 없기 때문에 '오해할 수 없다(aparāmaṭṭhāni).'고 한다.
근접삼매나 본삼매로 이끌기 때문에 '삼매에 도움 된다(samādhi-saṃvattanikānī).'고 한다.”(MA.ii.400)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에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가 있으니, 여기 비구는
⑥ 동료 수행자들이 면전에 있건 없건, 그 [바른] 견해를 그들 과 함께 동등하게 구족하여 머문다.
이것도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7. “비구들이여, 이것이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이니, 동료 수행자들에게 호감을 주고
공경을 불러오고 도움을 주고 분쟁을 없애 고 화합하고 단결하게 한다.
비구들이여,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비구들이여, 마치 이층 누각 집에 이층 누각이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처럼
그와 같이 이들 여섯 가지 기억해야 할 법 들 가운데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가 최상이고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것이다.”
8. “비구들이여, 그러면 성스럽고, 출리(出離)로 인도하는 [바른] 견해는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어떻게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 하는가?368)
368) “이 예류도의 견해(sotāpattimagga-diṭṭhi)는 성스럽고(ariyā), 출리로 인도하고(niyyānika), 그것을 실천하는 자를 바르게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한다(niyyāti)고 했는데, 그 예류도의 견해가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인도하는 가라는 뜻이다.” (MA.ii.401)
비구들이여, 여기 비구가 숲 속에 가거나 나무 아래 가거나 빈집에 가서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 마음을 사로잡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강박관념이 아직 제거되지 않은 채 내 안에 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감각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악의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해태와 혼침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들뜸과 후회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의심에 사로잡혀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369)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이 세상에 대한 사색에 몰두해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저 세상에 대한 사색에 몰두해 있으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비구들이여, 만일 비구가 논쟁을 하고 말다툼을 하고 분쟁하면서 혀를 무기 삼아 서로를 찌르면 그의 마음은 이미 사로잡힌 것이다.
369) 이상과 같은 감각적 욕망, 악의, 해태 · 혼침, 들뜸 · 후회, 의심의 다섯은 다섯 가지 장애[五蓋, pañca nīvaraṇāni]로 불린다. 다섯 가지 장애에 대해서는 본서 「앗사뿌라 긴 경」 (M39) §14의 본문과 주해들을 참조할 것.
이제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 마음을 사로잡아, 있는 그대로 꿰뚫어 알지 못하게 하고 보지 못하게 하는,
그런 제거되지 않은 강박관념이 내 안에 없다.
나의 마음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 잘 안정되어 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첫 번째 지혜이다.”370)
370) “이 지혜는 성인들에게만 있고 범부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성스럽다(ariya)'고 했고, 출세간법을 얻은 사람에게만 있고 다른 사람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출세간적(lokuttara)'이라고 했고, 범부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다(asādhāraṇa puthujjanehi).'고 했다.”(MA.ii.401)
9.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내가 이런 견해를 받들어 행하고 닦고 거듭하면
스스로 사마타[止]를 얻고371) 스스로 적멸을 얻게 되는가?'라고,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내가 이런 견해를 받들어 행하고 닦고 거듭하면
스스로 사마타[止]를 얻고 스스로 적멸을 얻게 된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 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두 번째 지혜이다.”
371) “'스스로 사마타[止]를 얻고(labhāmi paccattaṃ samathaṃ)' 등으로 말씀하셨다. 이것은 자신의 마음(attano citta)에 사마타를 얻는다는 뜻이다. '사마타(samatha)'는 마음이 한 끝에 집중됨[一境性, ekaggatā]을 말하고, '적멸(nibbuti)'은 오염원들이 가라앉은 것(kilesa-vūpasama)을 말한다.”(MA.ii.401)
10.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우리 교단 외부에372) 내 견해373)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있는가?'라고,
그는 이와 같이 꿰뚫어 안다.
'우리 교단 외부에 내 견해와 동일한 견해를 가진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이 없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세 번째 지혜이다.”
372) '우리 교단 외부에'는 ito bahiddhā(여기로부터 밖에)를 의역한 것이다. 이 표현은 『디가 니까야』제1권 「수바 경」(D10/ii.151~152) §2.19와 『상윳따 니까야』 제5권 「유학 경」(S48:53) §6 등에도 나타난다.
373) “예류도의 바른 견해를 말한다.”(MA.ii.401)
11.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374)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성품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복권(復權)이 제정된375) 그런 계를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지자들이나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하여 미래를 단속한다.
374) 여기서 '성품'으로 옮긴 원어는 dhammatā(法性)인데 주석서에서 sabhāva(고유성질, 성품)라고 설명하고 있어서(MA.ii.401) 이렇게 옮겼다.
375) “'복권이 제정된 것(vuṭṭhānaṃ paññāyati)'이란 대중 공사(saṅgha-kamma)를 하거나 참회(desanā)를 하여 그 범계에서 회복되는 것을 말한다.
성스러운 제자가 계를 범하는 것은 무거운 범계(garuk-āpatti) 등에서는 토굴을 짓는 것(kuṭi-kāra) 등이고, 가벼운 계(lahuk-āpatti) 등에서는 함께 자는 것(saha-seyya) 등으로 무심결에 계를 범하는 것(acittak-āpatti)이다. 고의로 범한 것이 아닌 것(asañcicca)도 숨기지 않는다.”(MA.ii.402)
비구들이여, 마치 어리고 아무것도 모르고 아직 뒤척이지도 못하고 반듯하게 누워만 있는 갓난아이의 손이나 발이 숯불에 닿으면 즉시에 끌어당기는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복권이 제정된 그런 계를 범하더라도
즉시에 스승이나 지자들이나 동료 수행자들에게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한다.
고하고 드러내고 공개하여 미래를 단속한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네 번째 지혜이다.”
12.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성품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해야 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도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통찰지를 공부짓기 위해 큰 뜻을 품는다.
비구들이여, 마치 어린 송아지를 거느린 어미 소가 풀을 뜯어 먹으면서도 송아지를 돌보는 것과 같다.376)
376) “어린 송아지(taruṇayacchā)를 거느린 어미 소(gāvī)는 숲 속에서 어린 송아지를 한 곳에 앉혀두고 혼자 멀리 가지 않는다. 어미 소는 송아지 근처에서 돌아다니면서 풀을 뜯고는 목을 빼서 한쪽에 있는 송아지를 쳐다본다. 그 와 같이 예류자는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karaṇīyāni)을 하면서 거기에 마음을 기울이고, 또 한편으로는 근면함을 앞세워 예리한 열정(tibba-cchanda)과 큰 뜻(bahala-patthana)을 품는다.”(MA.ii.403)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이다.
그는 동료 수행자들을 위해 해야 할 크고 작은 여러 가지 일들을 열심히 하면서도
높은 계와 높은 마음과 높은 통찰지를 공부짓기 위해 큰 뜻을 품는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성품과 동일한 성품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다섯 번째 지혜이다.”
13.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힘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이다.
그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그는 정신을 기울이고 마음에 잡도리하고
온 마음을 쏟고 귀 기울여 법을 배운다.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여섯 번째 지혜이다.”
14. “다시 비구들이여, 성스러운 제자는 이와 같이 숙고한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는가?'라고,
비구들이여, 그러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은 어떤 힘을 구족했는가?
비구들이여, 이것이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이다.
'그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뜻에서 영감을 얻고 법에서 영감을 얻고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377) 그는 이렇게 꿰뚫어 안다.
'나도 바른 견해를 구족한 사람의 힘과 동일한 힘을 구족했다.'라고,
이것이 성스럽고 출세간적이고 범부들과 함께하지 않는 그의 일곱 번째 지혜이다.”
377) '그는 여래가 선언한 법과 율이 설해지면 뜻에서 영감을 얻고 법에서 영감을 얻고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로 옮긴 원문은 labhati atthavedaṃ, labhati dhammavedaṃ, labhati dhammūpasaṃhitaṃ pāmojjaṃ이다.
『앙굿따라 니까야 주석서』는 '주석서(aṭṭhakatha)를 의지하여 생긴 희열과 환희(pīti-pāmojja)를 얻고, 성전(경전, pāḷi)을 의지하여 생긴 환희를 얻고, 법과 관계된 환희를 얻는다.'라고 설명한다.(AA.iii.337) 즉 여기서 '뜻(attha)'을 주석서로 '법(dhamma)'을 성전(경전)으로 해석하고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본서 제1권 「옷감의 비유 경」 (M7) §8의 주해도 참조할 것.
15,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의 성품은
예류과를 실현함으로써378) 잘 검증된다.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일곱 가지 요소를 갖춘 성스러운 제자는 예류과를 갖춘 것이다.”379)
378) “'예류과를 실현함으로써'라고 옮긴 원문은 sotāpatti-phala-sacchikiriyāya인데, 이것은 문법상 여격(Dative)이 아닌 도구격(Instrummental)으로 '예류과를 실현한 지혜에 의해(sotāpatti-phala-sacchikata-ñāṇena) 라는 뜻이다.”(MA.ii.404)
그러므로 이 예류과를 실현한 지혜에 의해 성자의 성품이 잘 검증되었다는 말이지, 예류과를 실현하기 위해 성자의 성품이 잘 검증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예류자는 자아가 있다는 견해인 유신견과 계행과 의례의식에 대한 집착과 의심의 세 가지 족쇄를 없앤 자이다. 이러한 일곱 가지 지혜(ñāṇa)를 갖춘 자는 예류과를 얻은 것과 같다는 말씀이라 하겠다.
379) 주석서는 이 일곱 가지 지혜를 큰 반조의 지혜(mahā-paccavekkhaṇa-ñāṇa)라 부르고 있다.(MA.ii.404)
반조의 지혜에는 19가지가 있다. 여기에 대해서는 『청정도론』 XII.19~21나『아비담마 길라잡이』 9장 §34의 [해설]을 참조할 것.
세존께서는 이와 같이 설하셨다. 그 비구들은 흡족한 마음으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꼬삼비 경(M48)이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