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디가 니까야

D13. 삼명경 (三明經, Tevijja Sutta)

Daisy청량심 2023. 5. 18. 06:26

디가니까야 1(각묵스님, 2007) p.583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도와 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
와셋타와의 대화 – 삼베다는 벗어남으로 인도하는가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의 비유

사다리의 비유

아찌라와띠 강의 비유

범천과의 합일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

와셋타와 바라드와자의 귀의


서언

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세존께서는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꼬살라를 유행하시다가 마나사까따라는 꼬살라의 바라문 마을에 도착하셨다. 거기서 세존께서는 마나사까다의 북쪽에 있는 아찌라와띠 강 언덕의 망고 숲에 따무셨다.

2. 그 무렵에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마나사까따에 많이 머물고 있었는데 그들은 짱끼 바라문, 따룩카 바라문, 뽁카라사띠 바라문, 자눗소니 바라문, 또데야 바라문이었으며, 그 외에도 다른 잘 알려진 바라문의 큰 가문 출신들이 머물고 있었다.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3. 그때 와셋타와 바라드와자라는 [두 바라문 학도가] 산책을 나와서 이리저리 포행하며 다니다가 도와 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4.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이와 같이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

5.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이와 같이 말했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따룩카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

6.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에게 인식시킬 수 없었고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도 와셋타 바라문 학도에게 인식시킬 수가 없었다.

7. 그러자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을 불러서 말했다. “바라드와자여, 사문 고따마 존자는 사꺄의 후예인데 사꺄 가문에서 출가하여 마나사까따 북쪽의 아찌라와띠 강 언덕에 있는 망고 숲에 머무십니다. 그분 고따마 존자께는 이러한 좋은 명성이 따릅니다. ‘이런 [이유로] 그분 세존께서는 아라한[應供]이시며, 정편각(正遍覺)이시며, 삼명(三明)을 갖추시고 실천을 구족하신 분[明行足]이시며, 피안으로 잘 가신 선서(善逝)이시며, 세간을 다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시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시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님[天人師]이시며, 부처님[]이시며,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님[世尊]이시다.’라고. 바라드와자여, 우리 같이 사문 고따마께 가봅시다. 가서 사문 고따마께 이 뜻을 여쭈어봅시다. 그래서 사문 고따마께서 우리에게 설명해 주시는 대로 호지(護持)합시다.

 “여보게 그렇게 합시다.”라고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와셋타 바라문 학도에게 대답했다.


 도와 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

8. 그러자 와셋타 바라문 학도와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다가갔다. 가서는 세존과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아서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이와 같이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여, 여기 저희 둘은 산책을 나와서 이리저리 포행하며 다니다가 도와 도 아닌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따룩카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에 대해서 분쟁이 있고 말다툼이 있고 이견이 있습니다.

9. “와셋타여, 참으로 그대는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뽁카라사띠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그리고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 이것은 따룩카 바라문이 설하신 것이다.’라고 이렇게 말했다. 와셋타여, 그러면 무엇에 대해서 분쟁이 있고 무엇에 대해서 말다툼이 있고 무엇에 대해서 이견이 있단 말인가?

10. “고따마 존자시여, 도와 도 아닌 것에 대해서입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앗다리야 바라문, 띳띠리야 바라문, 찬도까 바라문, 찬다와 바라문, 브라흐마짜리야 바라문과 같은 바라문들은 무엇이든 간에 여러 가지 도에 대해서 천명(闡明)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도는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예를 들면 마을이나 성읍에서 멀지 않은 곳에 여러 가지 많은 길들이 있다면 그 길 모두는 마을에서 함께 만나는 것과 같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앗다리야 바라문, 띳띠리야 바라문, 찬도까 바라문, 찬다와 바라문, 브라흐마짜리야 바라문과 같은 바라문들은 무엇이든 간에 여러 가지 도에 대해서 천명을 합니다. 이런 여러 가지 도는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합니다.


 와셋타와의 대화 – 삼베다는 벗어남으로 인도하는가

11. “와셋타여, 그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와셋타여, 그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와셋타여, 그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하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벗어남으로 인도한다고 말합니다.

12. “와셋타여, 그런데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런데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런데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그런데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스승이라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있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3. “와셋타여,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한 선인(仙人)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그런데 그들은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였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4.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가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하는 선인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15. “와셋타여,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와셋타여, 예를 들면 눈먼 자들이 줄을 지어서 서로서로 닿아 있는데 처음 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사람도 보지 못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같이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설하는 것은 장님 줄서기와 같다고 생각되는구나. 처음 사람도 보지 못하고 가운데 사람도 보지 못하고 마지막 사람도 보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이런 말은 웃음거리가 되고 만다. 오직 이름뿐임이 밝혀지고 만다. 허망하게 되고 만다. 공허하게 되고 만다.

16.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하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도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합니다.

17.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18.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 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들이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하는 선인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 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와셋타여,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의 비유

19.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나는 이 나라 안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탐한다.’고 말한다 하자

 그러면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는 그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가 끄샤뜨리야인지 바라문인지 와이샤인지 수드라인지 알기는 하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러면 그런 그에게 다시, ‘이 사람아, 그대는 나라에서 제일가는 미녀를 갈망하고 탐하는데 나라에서 제일가는 그 미녀의 이름이 무엇이고 성이 무엇인지,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인지, [피부가] 검은지 흰지 황색인지, 어떤 마을이나 성읍이나 도시에 사는지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다시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이 사람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여인]을 갈망하고 탐하는가?’ 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그렇습니다.’라고 그가 대답할 것이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0.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 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들이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한 선인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와셋타여,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사다리의 비유

21. “와셋타여, 예를 들면 어떤 사람이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큰 사거리에서 사다리를 만드는 것과 같다.

 이런 그에게 ‘이 사람아, 그대는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들고 있다. 그런데 그대는 그 누각이 동쪽 방향에 있다고 아는가? 아니면 남쪽 방향이나 서쪽 방향이나 북쪽 방향이나 위나 아래나 가운데 있다고 아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는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이런 그에게 다시 ‘이 사람아, 그대는 그대가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는 그런 누각에 오르기 위해서 사다리를 만드는가?’라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물으면 ‘그렇습니다.’라고 대답할 것이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러하다면 그 사람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2.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다른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태양과 달을 보기도 하고 태양과 달이 뜨고 지는 곳에서 빌기도 하고 찬송하기도 하고 합장을 하기도 하고 절을 하면서 따라다니기도 한다. 그러면서도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게 한다.’ 라고 태양과 달의 일원이 되는 길을 가르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

 와셋타여, 이와 같이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 가운데 어느 한 바라문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스승들의 스승들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의 일곱 세대 전의 스승들의 계보 가운데 어느 한 스승도 범천을 직접 본 자가 없다.

 바라문들의 선조들이 되는 자들이 있었나니, 그들은 만뜨라를 만들고 만뜨라를 설한 선인들이었다. 지금의 바라문들은 [그 선조들이] 노래하고 설하고 모은 오래된 만뜨라 구절들을 따라 노래하고, 따라 설하고, 설한 것을 다시 따라 설하고, 말한 것을 다시 따라 말하나니, 그들은 앗타까, 와마까, 와마데와, 웻사미따, 야마딱기, 앙기라사, 바라드와자, 와셋타, 깟사빠, 바구이다. 그런데 그들도 ‘나는 범천은 어디 있는지, 범천은 어떻게 있는지, 범천은 언제부터 있는지 이것을 알고 나는 이것을 본다.’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결국 ‘우리는 우리가 알지 못하고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말하는 것이 되고 만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참으로 이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말지 않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분명히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와 같으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터무니없는 말을 한 것이 되고 맙니다.

23. “와셋타여,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그 바라문들은 ‘이것이야말로 곧은 도요 이것이야말로 바른 길이니 벗어남으로 인도하고 그대로 행하면 범천의 일원이 되게 한다.’라고 하면서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것의 일원이 되게 하는 길을 가르친다. 그러나 그런 경우란 존재하지 않는다.


 아찌라와띠 강의 비유

24. “와셋타여, 예를 들면 이 아짜라와띠 강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차 있다 하자. 그때 저 언덕을 원하고 저 언덕을 찾고 저 언덕으로 가려하고 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그는 이쪽 언덕에 서서 ‘저 언덕은 이쪽으로 오라. 저 언덕은 이쪽으로 오라.’고 저쪽 언덕을 부른다고 하자.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 사람이 부른다고 해서, 빈다고 해서, 원한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해서, 아짜라와띠 강의 저쪽 언덕이 이쪽 언덕으로 오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5.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이렇게 말한다. ‘인드라를 소청(所請)하나이다. 소마를 소청하나이다. 와루나를 소청하나이다. 이사나를 소청하나이다. 빠자빠띠를 소청하나이다. 범천을 소청하나이다. 마힛디를 소청하나이다. 야마를 소청하나이다.’라고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소청한다고 해서, 빈다고 해서, 원한다고 해서, 기뻐한다고 해서,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26. “와셋타여, 예를 들면 아찌라와띠 강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차 있다 하자. 그때 저 언덕을 원하고 저 언덕을 찾고 저 언덕으로 가려하고 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그는 이쪽 언덕에서 단단한 사슬로 손을 뒤로 한 채 꽁꽁 묶여 있다 하자.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그 사람이 아찌라와띠 강의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27.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이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사슬이라고도 부르고 얽매임이라고도 부른다. 무엇이 다섯인가? 눈으로 인식되는 형상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귀로 인식되는 소리들이 있으니, … 코로 인식되는 냄새들이 있으니, … 혀로 인식되는 맛들이 있으니, … 몸으로 인식되는 감촉()들이 있으니 원하고, 좋아하고, 마음에 들고, 사랑스럽고, 달콤하고, 매혹적인 것들이다.

와셋타여, 이것이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이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사슬이라고도 부르고 얽매임이라고도 부른다.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런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무지하여 그것을 즐기고 있다.

28.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에 묶이고 홀리고 푹 빠져서 위험을 보지 못하고 벗어남에 무지하여 그것을 즐기면서 감각적 욕망의 사슬과 얽매임에 묶여 있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29. “와셋타여, 예를 들면 이 아찌라와띠 강이 까마귀가 마실 수 있을 만큼 넘실대는 물로 가득 차있다 하자. 그때 저 언덕을 원하고 저 언덕을 찾고 저 언덕으로 가려하고 저 언덕으로 건너고자 하는 사람이 온다고 하자. 그는 이쪽 언덕에 머리까지 [덮개를] 뒤집어쓰고 누워있다 하자.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런데도 그 사람이 아찌라와띠 강의 이쪽 언덕에서 저쪽 언덕으로 갈 수 있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0.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덮개라고도 부르고 장애라고도 부르고 가리개라고도 부르고 씌우개라고도 부른다. 무엇이 다섯인가? 감각적 욕망의 장애, 악의의 장애, 해태∙혼침의 장애, 들뜸∙후회의 장애, 의심의 장애이다. 와셋타여, 이들 다섯 장애(五蓋)가 있나니 성스러운 율에서는 이것을 덮개라고도 부르고 장애라고도 부르고 가리개라고도 부르고 씌우개라고도 부른다.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이들 다섯 가지 장애에 덮이고 방해받고 가리고 씌어 있다. 와셋타여,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바라문들이 행하는 법들을 버려 버리고 바라문들이 행하지 않는 법들을 받아 지니면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에 덮이고 방해받고 가리고 씌어 있다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범천과의 합일

31.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그대는 늙고 나이 든, 스승들의 전통을 가진 바라문들이 말하기를 범천은 소유물이 있다고 들었는가, 범천은 소유물이 없다고 들었는가?

 소유물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다고 들었는가, 없다고 들었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하는 마음이 있다고 들었는가, 없다고 들었는가?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염된 마음이 있다고 들었는가, 없다고 들었는가?
 오염된 마음이 없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유자재하다고 들었는가, 자유자재하지 않다고 들었는가?
 자유자재하다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2.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소유물이 있는가, 소유물이 없는가?

 “소유물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적대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염된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오염된 마음이 있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유자재한가, 자유자재하지 않은가?
 “자유자재하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3. “와셋타여,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소유물을 가졌고 범천은 소유물이 없다. 그런데도 소유물을 가진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소유물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4. “와셋타여, 참으로 소유물을 가진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물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35. “와셋타여,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원망하는 마음을 가졌고 범천은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 …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적대하는 마음을 가졌고 범천은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 …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오염된 마음을 가졌고 범천은 오염된 마음이 없다. …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자유자재하지 못하고 범천은 자유자재하다. 그런데도 자유자재하지 못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자유자재한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지 않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36. “와셋타여, 자유자재하지 못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유자재한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하지 않는다.

 와셋타여, 여기서 참으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은 [잘못] 들어가서는 [진흙탕에] 빠져버린다. 빠져서는 낙담한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건너기 쉬운 것이라 생각하며 건너려 한다. 그러므로 삼베다에 능통한 바라문들이 처한 이런 것을 두고 삼베다의 사막이라고도 부르고, 삼베다의 황무지라고도 부르며 삼베다의 재앙이라고도 부른다.

37.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알고 계신다.’라고 들었습니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서 마나사까따까지는 가깝고 멀지 않지 않은가?

 “그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여기서 마나사까따까지는 가깝고 멀지 않습니다.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여기 어떤 사람이 그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가 마나사까따에서 나오자마자 사람들이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묻는다고 하자. 와셋타여, 그 사람이 그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물으면 그는 [대답하는 것이] 느리고 우물쭈물 대겠는가?

 “고따마 존자시여,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하면, 그 사람은 마나사까따에서태어나서 자랐기 때문에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모두 다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38. “와셋타여, 참으로 그 사람이 그 마나사까따에서 태어나서 자랐는데 그에게 마나사까따로 가는 길을 물으면 설혹 그는 [대답하는 것이] 느리고 우물쭈물 댈 수가 있겠지만 여래에게 범천의 세상과 범천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물으면 느리거나 우물쭈물 대지 않는다. 와셋타여, 나는 범천을 잘 알고, 범천의 세상을 잘 알고, 범천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도닦음을 잘 알고, 그 도를 닦아 범천의 세상에 태어나는 것도 잘 안다.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

39. “고따마 존자시여, 저는 ‘사문 고따마께서는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하신다.’라고 들었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 제게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을 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바라문 사람들을 구원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와셋타여, 그렇다면 들어라. 마음에 잘 새겨라. 나는 설하리라.

 “그러겠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라고 와셋타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응답했다.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40. “와셋타여 여기 여래가 이 세상에 출현한다. 그는 아라한[應供]이며, 정편각(正遍覺)이며, 삼명(三明)을 갖추고 실천을 구족한 분[明行足]이며, 피안으로 잘 가신 선서(善逝)이며, 세상을 다 알고 계신 분[世間解]이며, 가장 높은 분[無上士]이며, 사람을 잘 길들이는 분[調御丈夫]이며, 하늘과 인간의 스승[天人師]이며, 부처님[],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님[世尊]이다. 그는 신을 포함하고 마라를 포함하고 범천을 포함한 이 세상을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다. 그는 법을 설한다. 그는 시작도 훌륭하고 중간도 훌륭하고 끝도 훌륭하게 [법을 설하고], 의미와 표현을 구족하여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梵行)을 드러낸다.

41.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그는 이 법을 듣고서 여래에 믿음을 가진다. 그는 이런 믿음을 구족하여 이렇게 숙고한다. ‘재가의 삶이란 막혀 있고 때가 낀 길이지만 출가의 삶은 열린 허공과 같다. 재가에 살면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소라고동처럼 빛나는 청정범행을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니 나는 이제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하리라.’라고. 그는 나중에 재산이 적건 많건 간에 모두 다 버리고, 일가친척도 적건 많건 간에 다 버리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42.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바른 행실과 행동의 영역을 갖추고, 작은 허물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보며, 학습계목들을 받아 지녀 공부 짓는다. 유익한 몸의 업과 말의 업을 잘 갖추고, 생계를 청정히 하고, 계를 구족하고, 감각기능들의 문을 보호하고,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을 잘 갖추고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43. 75. “와셋타여, 그러면 비구는 어떻게 계를 구족하는가? 와셋타여, 여기 비구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읜다.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는다. 겸손하고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의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짧은 길이의 계 -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중간 길이의 계 -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긴 길이의 계 -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비구는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을 잘 갖춘다. 여기 비구는

나아갈 때도 물러날 때도 [자신의 거동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앞을 볼 때도 돌아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sampajāna) 행한다.

구부릴 때도 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sampajāna) 행한다.

가사∙발우∙의복을 지닐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sampajāna) 행한다.

먹을 때도 마실 때도 씹을 때도 맛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sampajāna) 행한다. 대소변을 볼 때도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행한다. 걸으면서∙서면서∙앉으면서∙잠들면서∙잠을 깨면서∙말하면서∙침묵하면서도 반야로 보여지면서 (sampajāna) 행한다.

 

깟사빠여, 이와 같이 비구는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을 잘 갖춘다.

 비구는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  해태와 혼침을 버려 …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그와 같이 비구는 자기 마음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와셋타여, 그와 같이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로운 자에게는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사마디에 든다.


 네 가지 거룩한 마음가짐[四梵住]

76. 그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자애가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77. “와셋타여, 예를 들면 고동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자애를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여기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는다. 와셋타여, 이것이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78. “다시 와셋타여, 비구는 연민[]이 함께한 마음으로 … 같이 기뻐함[]이 함께한 마음으로 …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한 방향을 가득 채우면서 머문다. 그처럼 두 번째 방향을, 그처럼 세 번째 방향을, 그처럼 네 번째 방향을, 이와 같이 위로, 아래로, 주위로, 모든 곳에서 모두를 자신처럼 여기고, 모든 세상을 풍만하고, 광대하고, 무량하고, 원한 없고, 고통 없는 평정이 함께한 마음으로 가득 채우고 머문다.

79. “와셋타여, 예를 들면 고동을 부는 자가 힘이 세면 별 어려움 없이 사방에서 다 들을 수 있게 하는 것과 같다. 와셋타여, 그와 마찬가지로 이처럼 평정을 통한 마음의 해탈을 닦은 자에게, 제한된 [욕계의] 업은 여기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고 여기에 더 이상 정체해 있지 않는다. 와셋타여, 이것도 범천의 일원이 되는 길이다.

80. “와셋타여, 이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와 같이 머무는 비구는 소유물이 있는가, 소유물이 없는가? 

 소유물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원망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원망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적대하는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적대하는 마음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오염된 마음이 있는가, 없는가?
 오염된 마음이 없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자유자재한가, 자유자재하지 않는가?
 자유자재합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81.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소유물이 없고 범천도 소유물이 없다. 그러면 소유물이 없는 비구가 소유물이 없는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참으로 소유물이 없는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소유물이 없는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와셋타여, 참으로 비구는 원망하는 마음이 없고 범천도 원망하는 마음이 없다. … 비구는 적대하는 마음이 없고 범천도 적대하는 마음이 없다. … 비구는 오염된 마음이 없고 범천도 오염된 마음이 없다. … 비구는 자유자재하고 범천도 자유자재하다. 그러면 자유자재한 비구가 자유자재한 범천과 합류하고 합일하겠는가?

 “그렇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와셋타여, 참으로 자유자재한 비구가 몸이 무너져 죽은 뒤에 자유자재한 범천의 일원이 될 것이라는 이런 경우는 존재한다.


 와셋타와 바라드와자의 귀의

82. 이렇게 말씀하시자 와셋타와 바라드와자 바라문 학도는 세존께 이렇게 말씀드렸다.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고따마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고따마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 주셨습니다.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고따마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