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10. 수바경 (Subha sutta)
디가니까야1권(각묵스님, 2007년) p.507
1.1. 이와 같이 나에게 들리어졌다. 한때 아난다 존자는 세존이 반열반에 드신지 오래되지 않아서 사왓티에서 제따 숲의 급고독원에서 머물렀다. 그 무렵에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어떤 일 때문에 사왓티에 머물고 있었다.
1.2. 그때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다른 바라문 학도를 불러서 말했다. “이리 오시오, 바라문 학도여. 그대는 사문 아난다께 가시오. 가서는 내 이름으로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께서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라고 사문 아난다께서 병이 없고 어려움도 없으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리시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시오. ‘아난다 존자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을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1.3. “존자여,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그 바라문 학도는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대답한 뒤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그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께서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을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1.4. 이렇게 말하자 아난다 존자는 그 바라문 학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바라문 학도여, [오늘은]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오늘 나는 약을 먹었다. 내일 적당한 시간과 여건을 고려하여 가도록 하겠다.”
“알겠습니다, 존자시여.”라고 그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에게 대답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갔다. 가서는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에게 이렇게 말했다. “저는 존자의 말씀대로 그분 아난다 존자께,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께서 병이 없으시고 어려움도 없으시며 가볍고 힘 있고 편안하게 머무시는지 문안드립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드립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연민하는 마음을 내시어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을 방문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존자여, 이렇게 말씀드리자 사문 아난다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바라문 학도여, [오늘은] 적당한 시간이 아니다. 오늘 나는 약을 먹었다. 내일 적당한 시간과 여건을 고려하여 가도록 하겠다.’라고 존자여, 그분 아난다 존자께서는 내일 오기로 허락을 하셨기 때문에 일은 이 정도로 되었습니다.”
1.5. 아난다 존자는 그 밤이 지나자 오전에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발우와 가사를 수하고 쩨따까 비구를 뒤따르는 사문으로 삼아서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의 집으로 갔다. 가서는 마련된 자리에 앉았다. 그러자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에게 갔다. 가서는 아난다 존자와 함께 환담을 나누었다. 유쾌하고 기억할 만한 이야기로 서로 담소를 나누고 한 곁에 앉았다. 한 곁에 앉은 또데야의 아들 수바 바라문 학도는 아난다 존자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오랫동안 고따마 존자의 시자이었으며 항상 임석해 있었으며 항상 곁에 모시고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아난다 존자께서는 이러한 것을 잘 아실 것입니다. 즉 그분 세존께서는 법들을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그러면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신 그 법들은 무엇입니까?”
1.6. “바라문 학도여, 세 가지 조목[蘊, 무더기]들을 그분 세존께서는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면 무엇이 그 셋인가?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戒蘊], 성스러운 사마디의 무더기[定蘊], 성스러운 반야의 무더기[慧蘊]이다.
바라문 학도여, 이러한 세 가지 무더기들을 그분 세존께서는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아난다 존자시여, 그러면 무엇이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신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戒蘊]이고, 성스러운 사마디의 무더기[定蘊]이며, 성스러운 반야의 무더기[慧蘊]입니까?”
1.7 ~1.29. “(1) 바라문 학도여, 여래께서 이 세상에 출현하신다. 구분은 아라한[應供]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분[正遍覺]이시며 … 그분은 법을 설하여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고 지극히 청정한 범행을 드러내신다.
(2) 이런 법을 장자나 장자의 아들이나 다른 가문에 태어난 자가 듣는다. … 머리와 수염을 깎고 물들인 옷을 입고 집을 떠나 출가한다.
(3) 그는 이와 같이 출가하여 계목의 단속으로 단속하면서 머문다. …
(4) <짧은 길이의 계 – 모두 26가지로 계를 지님>
(5) <중간 길이의 계 – 모두 10가지로 잘못된 행위를 하는 것을 멀리함>
(6) <긴 길이의 계 – 모두 7가지로 삿된 생계를 멀리함>
(7) 이와 같이 계를 구족한 비구는 계로써 잘 단속하기 때문에 어느 곳에서도 두려움을 보지 못한다. …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조목을 구족하여 안으로 비난받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바라문 학도여, 이와 같이 비구는 계를 구족한다.”
1.30. “바라문 학도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러한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戒蘊]들을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러나 여기서 더 닦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아난다 존자시여, 이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는 구족되었습니다. 구족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그리고 저는 이와 같이 구족된 성스러운 계의 무더기를 그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서는 찾아보지[隨觀, 관찰] 못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이와 같이 구족된 계의 무더기를 그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에게서 찾아본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이 정도로 할 일을 다했다. 우리는 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했다.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그 정도로 마음이 기쁠 것입니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께서는 ‘그리고 여기서 더 닦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1. ~2.11. “아난다 존자시여, 그러면 무엇이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신 성스러운 사마디의 무더기[定蘊]입니까?”
“(1) 바라문 학도여, 그러면 어떻게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키는가? 바라문 학도여, 여기 비구는 눈으로 형상을 봄에 그 표상[全體相]을 취하지 않으며, 또 그 세세한 부분상[細相]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눈의 기능[眼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눈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눈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 귀로 소리를 들음에 … 코로 냄새를 맡음에 … 혀로 맛을 봄에 … 몸으로 감촉을 느낌에 … 마노[意]로 법을 지각함에 그 표상을 취하지 않으며, 그 세세한 부분상을 취하지도 않는다. 만약 그의 마노의 기능[意根]이 제어되어 있지 않으면 욕심과 싫어하는 마음이라는 나쁘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이 그에게 [물밀듯이] 흘러들어 올 것이다. 따라서 그는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 위해 수행하며,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방호하고 마노의 감각기능을 잘 단속하기에 이른다. 그는 이러한 성스러운 감각기능의 단속을 구족하여 안으로 더럽혀지지 않는 행복을 경험한다. 바라문 학도여, 이와 같이 비구는 감각의 대문을 잘 지킨다.
(2) 비구는 싸띠와 반야로 보여짐(sampajāna)을 잘 갖춘다. …
(3) 비구는 [얻은 필수품으로] 만족한다. …
(4) 그는 세상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여 욕심을 버린 마음으로 … 악의가 없는 마음으로 … 해태와 혼침을 버려 … 들뜸과 후회를 제거하여 … 의심을 건너서 머문다. …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자기 마음속에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五蓋]가 제거되었음을 자신에게서 관찰할 때, 비구는 스스로를 빚에서 벗어난 사람, 병이 쾌유한 사람, 감옥의 굴레에서 풀려난 사람, 자유인, 그리고 안전한 곳에 다다른 사람으로 여긴다.
2.12.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자신에게서 이들 다섯 가지 장애가 제거되었음을 관찰할 때 환희가 생긴다. 환희로운 자에게 희열이 생긴다. 희열을 느끼는 자의 몸은 경안하다. 몸이 경안한 자는 행복을 느낀다. 행복한 자의 마음은 사마디에 든다. 그는 오직 감각적 욕망들을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 적인 관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솜씨 좋은 때밀이나 그의 조수가 금속 대야에 목욕가루를 가득 담아 놓고는 물을 알맞게 부어가며 계속 이기면 그 목욕가루덩이 [반죽]에 물기가 젖어들고 스며들어 물기 안팎으로 흠뻑 스며들 뿐, 그 덩이가 물기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과 같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케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2.13.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오직 감각적 욕망들을 떨쳐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喜]과 행복[樂]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물러서, 그가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 온몸 구석구석 떨쳐버렸음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사마디에 속한다.”
2.14. “바라문 학도여, 다시 비구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밑바닥에서 솟아나는 물로 채워지는 호수가 있다 하자. 그런데 그 호수에는 동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서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북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고, 남쪽에서 흘러들어오는 물도 없으며, 또 하늘에서 때때로 소나기마저도 내리지 않는다면 그 호수의 밑바닥에서 차가운 물줄기가 솟아올라 그 호수를 차가운 물로 흠뻑 적시고 충만케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할 것이다. 그러면 온 호수의 어느 곳도 이 차가운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2.15.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이 가라앉았기 때문에,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이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관찰은 아니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물러서, 그가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 온몸 구석구석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사마디에 속한다.”
2.16. “바라문 학도여, 다시 비구는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이 피어 있는 호수에 어떤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들이 물속에서 생기고 자라서 물 밖으로 나오지 않고 물속에 잠긴 채 무성하게 어우러져 있는데, 차가운 물이 그 꽃들을 꼭대기에서 뿌리까지 흠뻑 적시고 충만케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든다면 그 청련이나 홍련이나 백련의 어떤 부분도 물이 스며들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한다.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희열이 빛바랬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반야로 보여지면서(sampajāna) 몸으로 행복을 경험한다. 이를 두고 성자들이 ‘평정하고 싸띠가 확립되어지고 행복하게 머문다.’고 묘사하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물러서, 그가 희열이 사라진 행복으로 이 몸을 흠뻑 적시고 충만하게 하고 가득 채우고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 온몸 구석구석 희열이 사라진 행복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사마디에 속한다.”
2.17. “바라문 학도여, 다시 비구는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문다. 그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사람이 머리까지 온몸에 하얀 천을 덮어 쓰고 앉아 있다면 그의 몸 어느 부분도 하얀 천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이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비구는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다.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다.”
2.18.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행복도 버리고 괴로움도 버리고, 아울러 그 이전에 기쁨과 슬픔을 버렸기 때문에 괴롭지도 즐겁지도 않으며, 버려서 평정하고 싸띠가 청정한[捨念淸淨]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물러서, 그가 이 몸을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으로 속속들이 스며들게 하고서 앉아 있으며, 온몸 구석구석 지극히 청정하고 지극히 깨끗한 마음이 스며들지 않은 데가 없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사마디에 속한다.”
2.19. “바라문 학도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러한 성스러운 사마디의 무더기[定蘊]들을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리고 여기서 더 닦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아난다 존자시여, 이 성스러운 사마디의 무더기는 구족되었습니다. 구족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그리고 저는 이와 같이 구족된 성스러운 사마디의 무더기를 그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서는 찾아보지 [隨觀, 관찰] 못합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이와 같이 구족된 사마디의 무더기들을 그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이 스스로에게서 찾아본다 할지라도 그들은 ‘이 정도로 충분하다. 이 정도로 할 일을 다 했다. 우리는 사문됨의 목적을 성취했다. 이제 더 이상 해야 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라고 하면서 그 정도로 마음이 기쁠것입니다. 그러나 아난다 존자께서는 ‘그리고 여기서 더 닦아야 할 것이 남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2.20. “아난다 존자시여, 그러면 무엇이 그분 고따마 존자께서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신 성스러운 반야의 무더기[慧蘊]입니까?”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반야로 본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 윈냐냐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2.21.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깨끗하고 최상품인 유리 보석이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다 갖추었으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다 하자. 그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 손에 놓고서 ‘이 유리 보석은 깨끗하고 최상품이며 팔각형이고 아주 잘 가공되고 맑고 투명하여 모든 특질을 다 갖추었는데 푸르고 누르고 붉고 흰 실이나 갈색의 실로 묶여 있구나.’라고 살펴보는 것과 같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와 같이 반야로 본다.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 윈냐냐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2.22.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지와 견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나의 이 몸은 물질로 된 것이고, 네 가지 근본물질[四大]로 이루어진 것이며, 부모에서 생겨났고, 밥과 죽으로 집적되었으며, 무상하고 파괴되고 분쇄되고 해체되고 분해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나의 이 윈냐냐는 여기에 의지하고 여기에 묶여 있다.’라고 반야로 보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23.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낸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사람이 문자 풀로부터 갈대를 골라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문자 풀이고 이것은 갈대이다. 문자 풀과 갈대는 다르다. 문자 풀로부터 갈대가 제거되었다.’라고. 바라문 학도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칼을 칼집에서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칼이고 이것은 칼집이다. 칼과 칼집은 다르다. 칼집으로부터 칼은 끄집어내어졌다.’라고. 바라문 학도여, 다시 예를 들면 사람이 뱀을 개미집으로부터 끄집어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뱀이고 이것은 개미집이다. 뱀과 개미집은 다르다. 개미집으로부터 뱀은 끄집어내어졌다.’라고.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낸다.”
2.24.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마음으로 이루어진 몸으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그가 이 몸으로부터 형상을 가지고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지고 감각기능[根]이 결여되지 않은 다른 몸을 만들어내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2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숙련된 도기공이나 도기공의 제자가 잘 준비된 진흙으로부터 그릇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바라문 학도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상아 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상아로부터 어떤 상아 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바라문 학도여, 다시 예를 들면 숙련된 금세공자나 그의 제자가 잘 준비된 금으로부터 어떤 금제품이든 원하는 대로 만들어내고 빚어내는 것과 같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 [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한다.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고 벽이나 담이나 산을 아무런 장애 없이 통과하기를 마치 허공에서처럼 한다. 땅에서도 떠올랐다 잠겼다 하기를 물속에서처럼 한다. 물 위에서 빠지지 않고 걸어가기를 땅 위에서처럼 한다. 가부좌한 채 허공을 날아가기를 날개 달린 새처럼 한다.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한다.”
2.26.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통변화 [神足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하나인 채 여럿이 되기도 하고 여럿이 되었다가 하나가 되기도 하고 … 저 막강하고 위력적인 태양과 달을 손으로 만져 쓰다듬기도 하며 심지어는 저 멀리 범천의 세상에까지도 몸의 자유자재함을 발하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27.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는다.[天耳通].”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먼 길을 여행하는 자가 큰북소리 무딩가 북소리 고동소리 빠나와 북소리 딘디마 북소리를 듣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것은 큰북소리다. 이것은 무딩가 북소리다. 이것은 고동소리다. 이것은 빠나와 북소리다. 이것은 딘디마 북소리다.’라고.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는다.”
2.28.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신성한 귀의 요소[天耳界]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그가 인간의 능력을 넘어선 청정하고 신성한 귀의 요소로 천상이나 인간의 소리 둘 다를 멀든 가깝든 간에 다 듣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29.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 [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을 반야로 본다.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② 탐욕을 여읜 마음은 탐욕을 여윈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③ 성냄이 있는 마음은 성냄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④ 성냄을 여읜 마음은 성냄을 여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⑤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은 어리석음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⑥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은 어리석음을 여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⑦ 단일한 마음은 단일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⑧ 흩어진 마음은 흩어진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⑨ 광대한 마음은 광대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⑩ 광대하지 않은 마음은 광대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⑪ 위가 있는 마음은 위가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⑫ 위가 없는 마음은 위가 없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⑬ 사마디에 든 마음은 사마디에 든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⑭ 사마디에 들지 않은 마음은 사마디에 들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⑮ 해탈한 마음은 해탈한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여인이나 남자가 젊으면 치장하기를 좋아하여 깨끗하고 흠 없는 거울이나 맑은 물에 자신의 얼굴모습을 비추어 보면서 점이 있는 것은 점이 있다고 알고 점이 없는 것은 없다고 아는 것과 같다.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에 대하여 반야로 본다.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 <중간 생략> …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본다.”
2.30.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남의] 마음을 아는 지혜[他心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그가 자기의 마음으로 다른 중생들과 다른 인간들의 마음에 대하여 반야로 보아서
① 탐욕이 있는 마음은 탐욕이 있는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고 … <중간 생략> …
⑯ 해탈하지 않은 마음은 해탈하지 않은 마음이라고 반야로 보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31.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 [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사람이 자기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가 다시 또 다른 마을로 갔다가 자기 마을로 되돌아온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나는 우리 마을로부터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 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나는 그 마을로부터 다시 다른 마을로 갔다. 그곳에서 이와 같이 서있었고 이와 같이 앉아 있었고 이와 같이 말하였고 이와 같이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 마을로부터 다시 우리 마을로 되돌아왔다.’라고.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세계가 수축하는 여러 겁, 세계가 팽창하는 여러 겁, 세계가 수축하고 팽창하는 여러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서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2.32.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전생을 기억하는 지혜[宿命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그가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하여 …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33.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뒤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사거리의 가운데에 높은 누각이 있는데 시력 좋은 사람이 거기에 서서 사람들이 집에 들어가고 나오는 것과 길을 걷거나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는 것을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사람들은 집에 들어가는구나. 이들은 나오는구나. 이들은 길을 걷고 있구나. 이들은 사거리 가운데 앉아 있구나.’라고.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天眼]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 [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이들은 몸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또 마음으로 못된 짓을 골고루 하고, 성자들을 비방하고, 삿된 견해를 지니어 사견업(邪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비참한 곳, 나쁜 곳[惡處], 파멸처, 지옥에 태어났다. 그러나 이들은 몸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입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 하고 마음으로 좋은 일을 골고루하고 성자들을 비방하지 않고 바른 견해를 지니고 정견업(正見業)을 지었다. 이들은 죽어서 몸이 무너진 다음에는 좋은 곳[善處], 천상세계에 태어났다.’라고.
이와 같이 그는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반야로 본다.”
2.34.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중생들의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아는] 지혜[天眼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 이와 같이 그가 청정하고 인간을 넘어선 신성한 눈으로 중생들이 죽고 태어나고, 천박하고 고상하고, 잘생기고 못생기고, 좋은 곳[善處]에 가고 나쁜 곳[惡處]에 가는 것을 보고, 중생들이 지은 바 그 업에 따라서 가는 것을 반야로 보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35. “그는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라고 반야로 본다.
바라문 학도여 예를 들면 깊은 산에 호수가 있어 맑고 고요하고 깨끗한데 그곳에서 시력이 좋은 사람이 둑에 서서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 멈춰있거나 움직이는 고기 떼를 보는 것과 같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는 참 맑고 고요하고 깨끗하구나. 여기에 이런 조개껍질, 자갈, 조약돌이 있고 고기 떼는 멈춰있거나 움직이는구나.’라고.
바라문 학도여, 그와 마찬가지로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한다. 그는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는 그는 감각적 욕망의 번뇌[慾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존재의 번뇌[有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무명의 번뇌[無明漏]로부터 마음이 해탈한다. 해탈했을 때 해탈했다는 지혜가 있다.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야로 본다.”
2.36 “바라문 학도여, 비구가 이와 같이 마음이 사마디에 들고, 청정하고, 깨끗하고, 흠이 없고, 오염원이 사라지고, 부드럽고, 신통에 적합하고, 안정되고, 흔들림이 없는 상태에 이르렀을 때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漏盡通]로 마음을 향하게 하고 기울게 하여 그가 ‘이것이 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고 … ‘태어남은 다했다. 청정범행은 성취되었다. 할 일을 다 해 마쳤다. 다시는 어떤 존재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라고 반야로 보는 것 – 이것 역시 그의 반야에 속한다.”
2.37 “바라문 학도여, 그분 세존께서는 이러한 성스러운 반야의 무더기[慧蘊]들을 칭송하여 말씀하셨으며 그 안에서 사람들을 격려하고 분발하게 하고 기쁘게 하셨다. 그리고 여기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란 없다.”
2.38.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놀랍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아난다 존자시여, 이 성스러운 반야의 무더기는 구족되었습니다. 구족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그리고 저는 이와 같이 구족된 성스러운 반야의 무더기를 그 밖의 다른 사문∙바라문들에게서는 찾아보지[隨觀,관찰] 못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더 이상 닦아야 할 것이란 없습니다.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경이롭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마치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시듯, 덮여있는 것을 걷어내 보이시듯, [방향을] 잃어버린 자에게 길을 가리켜 주시듯, ‘눈 있는 자 형상을 보라.’고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시듯, 아난다 존자께서는 여러 가지 방편으로 법을 설해주셨습니다. 아난다 존자시여, 저는 이제 고따마 존자께 귀의하옵고, 법과 비구 승가에 또한 귀의하옵니다.
아난다 존자께서는 저를, 오늘부터 목숨이 있는 날까지 귀의한 청신사로 받아 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