빠알리어 경전/디가 니까야

D1. 범망경(梵網經. 범천의 그물, 견해의 그물, Brahmajala sutta)

Daisy청량심 2023. 5. 6. 05:14

디가니가야 1권(각묵스님, 2007년) p.79-92

 

서언

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한때 세존께서는 500명 정도의 많은 비구 승가와 함께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에 난 대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때 유행승 숩삐야도 역시 브라흐마닷따라는 바라문 학도 제자와 함께 라자가하와 날란다 사이에 난 이 대로를 따라가고 있었다.

 

거기서 유행승 숩삐야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했다. 그러나 유행승 숩삐야의 제자인 바라문 학도 브라흐마닷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하였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정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세존과 비구 승가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갔다.

1.2.
그러자 세존께서는 비구 승가와 더불어 암발랏티까 정원에 있는 왕의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으셨다. 유행승 숩삐야 역시 제자인 바라문 학도 브라흐마닷따와 더불어 암발랏티까 정원에 있는 왕의 객사에서 하룻밤을 묵었다.

 

 거기서도 역시 유행승 숩삐야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했다. 그러나 유행승 숩삐야의 제자인 바라문 학도 브라흐마닷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하였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정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머물렀다.


1.3.
그때 많은 비구들이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원형천막에 모여 앉아 이런 말을 하였다.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분,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중생들의 다양한 의향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유행승 숩삐야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합니다. 그러나 유행승 숩삐야의 제자인 바라문 학도 브라흐마닷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합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정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세존과 비구 승가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습니다.”


세존께서 비구들에게 오심


1.4.
그때 세존께서는 비구들이 이러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을 아시고 원형천막으로 가셨다. 가셔서는 마련해드린 자리에 앉으셨다. 자리에 앉으신 후 세존께서는 비구들을 불러서 말씀하셨다.


 “
비구들이여, 무슨 이야기를 하기 위해 지금 여기에 모였는가? 그리고 그대들이 하다만 이야기는 무엇인가?” 이렇게 말씀하시자 비구들은 세존께 말씀드렸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밤이 지나고 새벽이 되었을 때 일어나서 원형천막에 모여들어서 이런 말들을 하였습니다.

 

 ‘경이롭습니다, 도반들이여. 놀랍습니다, 도반들이여. 그분, 아시는 분, 보시는 분, 세존, 아라한, 정등각께서는 중생들의 다양한 의향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유행승 숩삐야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합니다. 그러나 유행승 숩삐야의 제자인 바라문 학도 브라흐마닷따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부처님을 칭송하고 법을 칭송하고 승가를 칭송합니다. 이처럼 스승과 제자 두 사람은 서로 정반대되는 말을 하면서 세존과 비구 승가의 뒤를 계속해서 따라오고 있습니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다가 중단하였고 그때 세존께서 오셨습니다.”


비방에 분노하거나 싫어하지 말라.

1.5. “
비구들이여, 그대들은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하더라도 거기서 적대감을 가져서는 안되고 기분 나빠해서도 안되고 마음으로 싫어해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한다고 해서 만일 그대들이 거기에 자극받아서 분노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장애가 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고 법을 비방하고 승가를 비방한다고 해서 그대들이 거기에 자극받아서 분노하고 싫어하는 마음을 낸다면 그대들은 남들이 말을 잘했는지 말을 잘못했는지 제대로 알 수 있겠는가?”


 “
알 수 없습니다, 세존이시여.”


 “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비방하거나 법을 비방하거나 승가를 비방한다면 거기서 그대들은 사실이 아닌 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설명해 주어야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이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것입니다.’라고.”


칭송에 즐거워하거나 기뻐하지 말라

1.6. “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칭송하거나 법을 칭송하거나 승가를 칭송하더라도 거기서 그대들은 즐거워해서도 안되고 기뻐해서도 안되며 의기양양해서도 안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칭송하거나 법을 칭송하거나 승가를 칭송한다고 해서 만일 그대들이 거기에 자극받아서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의기양양하게 되면 그것은 그대들에게 장애가 된다.

 

비구들이여, 남들이 나를 칭송하거나 법을 칭송하거나 승가를 칭송하면 그대들은 거기서 사실인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해 주어야 한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사실입니다. 이러하기 때문에 이것은 옳습니다. 우리에게는 이러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알려진 것입니다.’라고.”


계를 통한 칭송

1.7. “
비구들이여, 범부는 다만 제한되고 세속적인 계에만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어떤 것이 범부가 다만 제한되고 세속적인 계에만 국한하여 여래를 칭송하여 말하는 것인가?


짧은 길이의

1.8. “(1) ‘
사문 고따마는 생명을 죽이는 것을 버리고 생명을 죽이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그분은 몽둥이를 내려놓고 칼을 내려놓았다. 겸손하고 자비로운 자가 되어 일체 생명의 이익을 위하여 연민하며 머문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2) ‘
사문 고따마는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버리고 주지 않은 것을 가지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그분은 준 것만을 받고 준 것만을 받으려고 하시며 스스로 훔치지 않아 청정하게 머문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3) ‘
사문 고따마는 금욕적이지 못한 삶을 버리고 청정범행을 닦는다. 그분은 독신자가 되어 성행위의 저속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9. “(4) ‘
사문 고따마는 거짓말을 버리고 거짓말을 멀리 여의었다. 그분은 진실을 말하며 진실에 부합하고 굳건하고 믿음직하여 세상을 속이지 않는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5) ‘
사문 고따마는 중상모략하는 말을 버리고 중상모략하는 말을 멀리 여의었다. 여기서 듣고서 이들을 이간하려고 저기서 말하지 않는다. 저기서 듣고 저들을 이간하려고 여기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분은 이와 같이 이간된 자들을 합치고 우정을 장려하며 화합을 좋아하고 화합을 기뻐하고 화합을 즐기며 화합하게 하는 말을 한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6) ‘
사문 고따마는 욕하는 말을 버리고 욕하는 말을 멀리 여의었다. 그분은 유순하고 귀에 즐겁고 사랑스럽고 가슴에 와 닿고 예의바르고 대중이 좋아하고 대중의 마음에 드는 그런 말을 하는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7) ‘
사문 고따마는 잡담을 버리고 잡담을 멀리 여의었다. 그분은 시기에 맞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말하고, 유익한 것을 말하고, 법을 말하고, 율을 말하는 자이며, 담아둘 만하며 이유가 있고 의미가 분명하며 이익을 줄 수 있는 말을 시의 적절하게 말하는 자이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0. “(8) ‘
① 사문 고따마는 씨앗류와 초목류를 손상시키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② 사문 고따마는 하루 한 끼만 먹는 자다. 그는 밤에 [먹는 것을] 그만두고 때 아닌 때에 먹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③ 사문 고따마는 춤, 노래, 음악, 연극을 관람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④ 사문 고따마는 화환을 두르고 향수를 바르고 화장품으로 꾸미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⑤ 사문 고따마는 높고 큰 침상을 멀리 여의었다.
⑥ 사문 고따마는 금과 은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⑦ 사문 고따마는 [요리하지 않은] 날곡식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⑧ 사문 고따마는 생고기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⑨ 사문 고따마는 여자나 동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⑩ 사문 고따마는 하인과 하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⑪ 사문 고따마는 염소와 양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⑫ 사문 고따마는 닭과 돼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⑬ 사문 고따마는 코끼리, 소, 말, 암말을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⑭ 사문 고따마는 농토나 토지를 받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⑮ 사문 고따마는 남의 심부름꾼이나 전령으로 가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⑯ 사문 고따마는 사고파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⑰ 사문 고따마는 저울을 속이고 금속을 속이고 치수를 속이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⑱ 사문 고따마는 악용하고 속이고 횡령하고 사기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⑲ 사문 고따마는 상해, 살상, 포박, 약탈, 노략질, 폭력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중간 길이의

1.11. “(1) ‘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면서 살아간다. 즉 뿌리로 번식하는 것, 줄기로 번식하는 것, 마디로 번식하는 것, 싹으로 번식하는 것, 다섯 번째로 종자로 번식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씨앗류와 초목류를 해치는 것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2. “(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축적해두고 즐기는데 빠져 지낸다. 즉 음식을 축적하고, 마실 것을 축적하고, 옷을 축적하고, 탈것을 축적하고, 침구와 좌구를 축적하고, 향을 축적하고, 재산을 축적하여, 그 축적한 것을 즐기는데 빠져 지낸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축적해 두고 즐기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3. “(3)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구경거리를 보는데 빠져 지낸다. 즉 춤, 노래, 연주, 연극, 낭송, 박수치며 하는 공연, 심벌즈로 하는 공연, 북치며 하는 공연, 예술품 전람회, 쇠공놀이, 죽봉놀이, 곡예, 코끼리싸움, 말싸움, 물소싸움, 황소싸움, 염소싸움, 숫양싸움, 닭싸움, 메추리싸움, 봉술, 권투, 레슬링, 모의전투, 군대의 행진, 군대의 집합, 열병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구경거리를 보는 이런 것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4. “(4)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노름이나 놀이에 빠져 지낸다. 즉 팔목(八目) 체스장기, 십목 체스장기, 허공에 판이 있는 양 가정하고 하는 체스장기, 돌차기 놀이, 쌓기 놀이, 주사위 놀이, 자치기, 맨손으로 벽에 그리는 놀이, 공놀이, 풀피리 불기, 장난감 쟁기질놀이, 재주넘기, 잎사귀 접어서 돌리기, 장난감 저울놀이, 장난감 수레놀이, 장난감 활쏘기, 글자 맞히기, 생각 맞히기, 불구자 흉내 내기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노름이나 놀이에 빠지는 이런 일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5. “(5)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사용하면서 지낸다. 즉 아주 큰 침상, 다리에 동물 형상을 새긴 자리, 긴 술을 가진 이불, 울긋불긋한 천 조각을 덧댄 이불, 흰색 양털이불, 꽃들을 수놓은 양털이불, 솜으로 채운 누비이불, 동물을 수놓은 양털이불, 한쪽이나 양쪽에 술을 가진
양털이불, 보석을 박은 이불, 비단이불, 무도장의 양탄자, 코끼리 등덮개, 말 등덮개, 수레 깔개, 사슴가죽 깔개, 영양가죽 깔개, 차양 있는 양탄자, 붉은 베개와 붉은 발 받침이 있는 긴 의자이다.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높고 큰 [호사스런] 침구와 좌구를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6. “(6)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에 몰두한다. 즉 몸에 향 가루 바르기, 기름으로 안마하기, 향수로 목욕하기, 사지를 안마하기, 거울보기, 속눈썹 검게 칠하기, 화환과 향과 화장품으로 치장하기, 얼굴에 분칠하기, 화장, 팔찌, 머리띠, 장식용 지팡이, 장식한 약통, 긴 칼, 일산, 수놓은 신발, 터번, 보석으로 만든 관모, 야크꼬리로 만든 불자(拂子), 긴 술로 장식된 흰옷을 입는 것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치장하고 장엄하는 일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7. “(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쓸데없는 이야기에 몰두한다. 즉 왕의 이야기, 도둑 이야기, 대신들 이야기, 군대 이야기, 재난 이야기, 전쟁 이야기, 음식 이야기, 음료수 이야기, 옷 이야기, 침대 이야기, 화환 이야기, 향 이야기, 친척 이야기, 탈것에 대한 이야기, 마을에 대한 이야기, 성읍에 대한 이야기, 도시에 대한 이야기, 나라에 대한 이야기, 여자 이야기, 영웅 이야기, 거리 이야기, 우물 이야기, 전에 죽은 자에 대한 이야기, 하찮은 이야기, 세상의 [기원]에 대한 이야기, 바다에 관련된 이야기, 번영과 불운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이야기를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8. “(8)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논쟁에 몰두한다. 즉 ‘그대는 이 법과 율을 제대로 모른다. 나야말로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안다.’ ‘어찌 그대가 이 법과 율을 제대로 알겠는가?’ ‘그대는 그릇된 도를 닦는 자이고 나는 바른 도를 닦는 자이다.’ ‘[내 말은] 일관되지만 그대는 일관되지 않는다.’ ‘그대는 먼저 설해야 할 것을 뒤에 설했고 뒤에 설해야 할 것을 먼저 설했다.’ ‘그대가 [오랫동안] 주장해오던 것은 [한 마디로] 논파되었다.’ ‘나는 그대의 [교설의] 허점을 지적했다. 그대는 패했다. 비난으로부터 도망가라. 혹은 만약 할 수 있다면 [지금] 설명해 보라.’라고.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논쟁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19. “(9)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살아간다. 즉 왕, 대신, 왕족, 바라문, 장자, 젊은이들이 ‘여기에 가시오. 저기에 가시오. 이것을 저기로 가지고 가시오. 저것을 여기로 가지고 오시오.’ 라는 것에 대해서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전령이나 심부름꾼 노릇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0. “(10)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계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고, 암시를 주고, 비방하고, 이득으로 이득을 추구한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계략과 쓸데없는 말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길이의

1.21. “(1)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下賤)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몸의 특징으로 예언하기, 예감이나 징조로 예언하기, 벼락이나 하늘의 조짐에 따라 점치기, 해몽, 관상, 쥐가 파먹은 옷의 구멍에 따라서 점치기, 불을 섬김, 주걱으로 헌공함, 벼 헌공, 쌀가루 헌공, 쌀 헌공, 버터 헌공, 기름 헌공, 입으로 하는 헌공, 피의 헌공, 수상(手相)보기, 집터보기, 대지보기, 묘지의 귀신 물리치기, 망령 물리치기, 흙집에 사는 자의 주술, 뱀 부리는 주술, 독극물 제조술, 전갈 부리는 기술, 쥐 부리는 기술, 새 부리는 기술, 까마귀 부리는 기술, 수명 예언하기, 화살에 대항하는 주문, 동물들의 울음을 아는 주문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2. “(2)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보석, 옷감, 지팡이, 칼, 긴 칼, 화살, 활, 다른 무기, 여자, 남자, 소년, 소녀, 남녀 노비, 코끼리, 말, 물소, 황소, 암소, 염소, 양, 닭, 메추리, 큰 도마뱀, 귀걸이(혹은 집의 박공), 거북이, 다른 동물들 - 이런 것들의 색깔이나 모양이나 다른 특징들을 보고 점을 친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3. “(3)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왕들의 진격이 있을 것이다. 왕들의 퇴각이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저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저쪽 왕들의 공격이 있을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의 후퇴가 있을 것이다. 우리 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저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저쪽 왕들이 승리할 것이고 우리 쪽 왕들이 패배할 것이다. 이와 같이 이편이 승리할 것이고 저편이 승리할 것이다.’라고.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4. “(4)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월식이 있을 것이다. 일식이 있을 것이다. 행성의 합삭이 있을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혹은 잘못된 항로로 운행할 것이다. 유성이 떨어질 것이다. 짙은 노을이 낄 것이다. 지진이 있을 것이다. 천둥이 칠 것이다. 해와 달과 별들이 뜨거나 지거나 흐리거나 깨끗할 것이다. 월식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일식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이 가려지는 일은 다시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행성의 합삭은 다시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해와 달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별들이 올바른 항로로 운행함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잘못된 항로로 운행함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유성이 떨어짐은 이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짙은 노을은 저러한 결과를 가져올 것이고 천둥은 또 다른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해와 달과 별의 뜨고 지고 흐리고 깨끗함도 각각 여러 가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라고.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5. “(5)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비가 내릴 것이다. 가뭄이 들 것이다. 풍년이 들 것이다. 흉년이 들 것이다. 민심이 안정될 것이다. 민심이 흉흉할 것이다. 질병이 들 것이다. 건강하게 될 것이다.’라거나 계산법, 암산법, 셈법, 시작(詩作)법, 처세술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6. “(6)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결혼할 때에 신부 집에 들어가는 날 또는 떠나는 날을 택일하고, 약혼이나 이혼의 길일을 택해 주고, 돈을 모으거나 지출하는 날을 택해주고, 불행이나 행운을 가져오게 하는 주문을 외우고, 발육부진인 태아의 원기를 회복하도록 주문을 외우고, 말더듬이나 벙어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손에 풍이 들도록 주문을 외우고, 귀머거리가 되도록 주문을 외우고, 거울에 [신을 모셔 와서] 물어 보는 점을 치고, 소녀의 몸에 [신을 모셔 와서] 물어 보는 점을 치고, 하녀의 몸에 [신을 모셔 와서] 물어 보는 점을 치고, 태양을 숭배하고, 대범천을 숭배하고, 입에서 불을 내뿜고, 행운의 여신을
부르는 것이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1.27. “(7)
혹은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 존자들은 [재가자들이] 신심으로 가져온 음식으로 살면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으로 생계를 꾸린다. 즉 신의 축복을 비는 의식, 귀신을 부르는 의식, 흙집에 들어가서 주문을 외우는 의식, 정력을 왕성하게 하는 의식, 성불구자가 되게 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마련하는 의식, 집 지을 땅을 신성하게 하는 의식을 거행한다. 의식을 위해 입을 씻고 목욕재계하고 불에 제사지냅니다. 구토제와 하제(下劑)와 거담제와 점액제거제를 주고, 귀약과 안약과 코약과 연고와 연고 제거제를 주고, 안과의사, 외과의사, 소아과의사의 일을 하고, 이전에 처방한 약의 부작용을 없애기 위해서 정화제를 사용한다. 그러나 사문 고따마는 이러한 하천한 지식을 통한 삿된 생계수단을 멀리 여의었다.’
-
비구들이여, 이처럼 범부는 여래를 칭송하는 말을 한다.”
 
 
법을 통한 칭송

1.28. “
비구들이여, 또 다른 법들이 있어서 그것은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비구들이여, 그러면 심오하고, 보기 힘들고, 깨닫기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내었으며, 이것을 본 후에야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하는 자들이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는 그 법들은 어떤 것인가?”


I. 18
가지 과거를 모색하는 자들

1.29.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18가지 이유로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18가지 이유로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가?”


I-1.
영속론자들

1.30.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영속론자들인데 네 가지 이유로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영속론자가 되어 네 가지 이유로 영속하는 attā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1.31. “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宿明通(숙명통)]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수백 생, 수천 생, 수십만 전생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attā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나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한 생, 두 생, 세 생, 네 생, 다섯 생, 열 생, 스무 생, 서른 생, 마흔 생, 쉰 생, 백 생, 천 생, 십만 생, 수백 생, 수천 생, 수십만 전생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나는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attā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와 세상을 천명한다.”

1.32. “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해서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하나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두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네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다섯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attā 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 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나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하나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두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네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다섯 개의 수축하고 팽창 하는 [겁],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 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나는 한량 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attā 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 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계를 천명한다.”

1.33. “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스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서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마흔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attā 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 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 그것은 무엇 때문인가?

참으로 나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거기에 걸맞는 마음의 사마디를 얻기 때문이다. 나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수많은 전생의 갖가지 삶들을 기억한다. 즉 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스무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겁], 서른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 마흔 개의 수축하고 팽창하는 [겁]을 기억한다.

어느 곳에서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다른 어떤 곳에 다시 태어나 그곳에서는 이런 이름을 가졌고, 이런 종족이었고, 이런 용모를 가졌고, 이런 음식을 먹었고, 이런 행복과 고통을 경험했고, 이런 수명의 한계를 가졌고, 그곳에서 죽어 여기 다시 태어났다.’라고. 이처럼 한량없는 전생의 갖가지 모습들을 그 특색과 더불어 상세하게 기억해내기 때문이다. 이것에 의해서 나는 ‘attā 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attā 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재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한다.”

1.34. “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자신이 스스로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attā 와 세계는 영속하나니 그것은 생산함이 없고 산꼭대기처럼 움직이지 않고 성문 앞의 기둥처럼 견고하게 서있다.

중생들은 [이곳에서 저곳으로] 치달리고 윤회하고 죽고 태어나지만 이 [자아와 세계]는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존재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한다.”

1.35. “
비구들이여, 그들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attā 와 세상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영속론자가 되어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1.36.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 반야로 보지만[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1.37. “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있으며, 이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있을 것이다.”

 
 
I-2.
일부영속 일부비영속론자들

2.1.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들인데 네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네 가지 경우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2.2. “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수축한다. 세상이 수축할 때 대부분의 중생들은 광음천에 나게 된다. 그들은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산다.”

2.3. “
비구들이여, 참으로 긴 세월이 지난 그 어느 때, 어느 곳에서 이 세상은 [다시] 팽창한다.

세상이 팽창할 때 텅 빈 범천의 궁전이 출현한다. 그때 어떤 중생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하여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서 텅 빈 범천의 궁전에 태어난다. 그는 거기서도 역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2.4. “
그는 그곳에서 오랜 세월 홀로 살았기 때문에 싫증과 초조함이 생겨,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갈망하였다]. 그러자 다른 중생들이 수명이 다하고 공덕이 다해서 광음천의 무리에서 떨어져 범천의 궁전에 태어나 그 중생의 동료가 되었다. 그들도 역시 거기서 마음으로 이루어지고 희열을 음식으로 삼고 스스로 빛나고 허공을 다니고 천상에 머물며 길고 긴 세월을 살게 된다.”

2.5. “
비구들이여, 그러자 그곳에 먼저 태어난 중생에게 이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다. 나야말로 이 중생들의 창조자이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전에 내게 ‘오, 다른 중생들이 여기에 온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이 일어났고 그러한 내 마음의 염원 때문에 이 중생들이 여기에 생겨났기 때문이다.

뒤에 그곳에 태어난 중생들에게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야말로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무슨 이유 때문인가? 우리는 이분이 여기에 먼저 계신 것을 보았고 우리는 후에 생겨났기 때문이다.’라고.”


2.6. “
비구들이여, 거기서 먼저 태어난 그 중생은 수명이 더 길고 더 아름답고 더 힘이 세었으며 뒤에 태어난 중생들은 수명이 더 짧았고 더 못생겼으며 더 힘이 약하였다.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존자는 범천이요 대범천이고 지배자요 지배되지 않는 자요 전지자요 전능자요 최고자요 조물주요 창조자요 최승자요 서품을 주는 자요 자재자요 존재하는 것과 존재할 것의 아버지이시다. 이 존귀하신 범천이 우리들의 창조자이시다. 그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그분 존자 범천에 의해서 창조되었다. 그런 우리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7. “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유희로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싸띠를 놓아버렸다. 싸띠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2.8. “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2.9. “
그는 이렇게 말한다. ‘유희로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들은 싸띠를 놓아 버리지 않았다. 싸띠를 놓아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유희로 타락해 버려서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다. 오랜 세월 웃고 유희하는데 빠져 지냈기 때문에 우리는 싸띠를 놓아버렸다. 싸띠를 놓아버렸기 때문에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10. “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마음이 타락해 버린 자’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한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들은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그 신들은 그 무리에서 죽게 되었다.”

2.11. “
비구들이여,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곳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바로 그 전생의 삶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하는 그러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2.12. “
그는 이렇게 말한다 ‘마음이 타락하지 않은 그분 신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지 않았다. 그들은 서로 마음이 타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지 않고 마음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분 신들은 그 무리에서 떨어지지 않았고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마음이 타락하여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다. 그런 우리는 오랜 세월 [분노로] 서로를 응시하였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다. 그런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타락하게 하였기 때문에 몸도 피곤하고 마음도 피곤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리에서 떨어졌고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수명이 짧고 죽기 마련이며 이곳에 태어났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13. “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스스로 자신이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눈이라 하고 귀라 하고 코라 하고 혀라 하고 몸이라 부르는 이런 attā 는 무상하고 견고하지 않으며 변하기 마련인 것이다. 그러나 마음[心(심)]이라 하고 마노[意(의)]라 하고 알음알이[識(식)]라 부르는 이런 attā 는 항상하고 견고하고 영원하며 변하지 않기 마련이며 영속 그 자체인 것처럼 그렇게 존재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2.14. “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15.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3.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

2.16.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들인데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2.17. “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마음이 사마디에 들어 유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2.18. “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그 사마디에 들어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들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사마디를 얻는다. 나는 마음이 그 사마디에 들어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2.19. “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그는 마음이 그 사마디에 들어 위아래로는 유한하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문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역시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의 사마디를 얻는다. 나는 마음이 그 사마디에 들어 위아래로 유한하고 옆으로는 무한하다는 인식을 가져 세상에 머물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라고 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2.20. “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자신이 스스로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이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 이 세상은 유한하고 한정되어 있다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들은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고 한정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역시 거짓이다. 이 세상은 무한하기도 하고 유한하기도 하다고 말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역시 거짓이다. 이 세상은 유한한 것도 아니고 무한한 것도 아니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2.21. “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가 되어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22.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4.
애매모호한 자들
 
2.23.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애매모호한 자들인데,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 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2.24. “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善(선)]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不善(불선)]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면,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내가 거짓말을 하는 것은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될 것이다.’라고.

 
이처럼 그는 거짓말을 두려워하고 거짓말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5. “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열의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아니면 적개심을 가져올 것이다. 나에게 열의나 욕망이나 성냄이나 적개심을 가져오는 것은 나에게 취착이 될 것이요, 나에게 취착이 되는 것은 나에게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취착을 두려워하고 취착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함을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라고 대답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6. “
비구들이여, 그러면 세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한다.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한다. 만일 내가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고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보지 못하면서도, 이것은 유익함이라고 설명하거나 이것은 해로움이라고 설명한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학식 있는 사문 ․ 바라문들은 영리하고, 다른 자들의 교리에 정통하고, 머리털을 쪼갤 수 있는 능숙한 궁수처럼 [요점을 지적하고], 예리한 통찰지로써 다른 견해들을 단번에 잘라버린다고 생각되는데, 이 [유익함과 해로움에 대해] 그들은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서 [내가 말한 이유 가운데서 허점을 발견하여] 나를 논파해 버릴 것이다. 그들이 나에게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고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 나를 논파하면, 나는 그들에게 대꾸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그들에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나에게 곤혹스러운 것이고, 곤혹스러운 것은 나에게 장애가 된다.’라고.

 
이처럼 그는 계속된 질문을 두려워하고 계속된 질문을 혐오하여, ‘이것은 유익함이다.’라고 설명하지 않고, ‘이것은 해로움이다.’라고도 설명하지 않는다. 다만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아서,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라고 한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세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7. “
비구들이여, 그러면 네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멍청하고 대단히 어리석다. 그는 멍청하고 대단히 어리석어서,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①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이 있소?’라고 내게 묻고, 내가 ‘저 세상은 있다.’고 생각한다면, 나는 ‘저 세상은 있다.’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②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없소?’라고
 
③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있기고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④ 만일 그대가 ‘저 세상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⑤ 만일 그대가 ‘화생은 있소?’라고
 
⑥ 만일 그대가 ‘화생은 없소?’라고
 
⑦ 만일 그대가 ‘화생은 있기고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⑧ 만일 그대가 ‘화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라고
 
⑨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果(과)]과 과보[異熟(이숙)]는 있소?’라고
 
⑩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없소?’라고
 
⑪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오?’라고
 
⑫ 만일 그대가 ‘잘 지은 업과 잘못 지은 업의 결실과 과보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오?’ 라고
 
⑬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도 존재하오?’라고
 
⑭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는 존재하지 않소?’라고
 
⑮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기도 하고 존재하지 않기도 하오?’라고
 
⑯ 만일 그대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오?’라고 내게 묻고, 내가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여래는 사후에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라고 대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그러하다고도 하지 않으며, 다르다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라고도 하지 않으며, 아니지 않다고도 하지 않는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네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2.28. “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네 가지 경우로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을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애매모호한 자가 되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 놓는 것은 모두 이 네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넷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29.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집착하지 않는다. 집착하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5.
우연발생론자들

2.30.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우연발생론자들인데 두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두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가?”

2.31. “
비구들이여, 무상유정(無想有情)이라는 신들이 있다. 그들은 인식이 생겨나면 그 무리로부터 죽게 된다. 그런데 그 중 어떤 중생이 그 무리로부터 죽어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경우가 있다. 여기에 태어나서는 집을 떠나 출가한다. 집을 떠나 출가하여 애를 쓰고 노력하고 몰두하고 방일하지 않고 바르게 마음에 잡도리함을 닦아서 마음이 사마디를 얻는다. 마음이 그 사마디에 들어 [재생연결의] 인식이 생겨난 것은 기억하지만 그 이상은 기억하지 못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 나는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지금 존재하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았지만 실제로 존재하기 때문이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첫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한다.”

2.32. “
비구들이여, 그러면 두 번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가?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논리가요 해석가이다. 그는 [갖가지 방법으로] 추론하고 해석을 수반하며 자신이 스스로 규명하여 이렇게 말한다.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라고.

비구들이여, 이것이 두 번째 경우이니, 이것을 근거로 하고 이것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한다.”


2.33. “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 두 가지 경우로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우연발생론자가 되어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두 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둘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34.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2.35.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이들 18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선언하는 것은 모두 이 18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18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36.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있을 것이다.”

 
II. 44
가지 미래를 모색하는 자들
 
2.37.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어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가?”
 
 
II-1.
사후에 attā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2.38.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인데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는 인식을 가진 채 존재한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게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가 되어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는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천명하는가?

 
① 그들은 ‘attā 는 물질[色(색)]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② ‘attā 는 물질을 갖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③ ‘attā 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④ ‘attā 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⑤ ‘attā 는 유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⑥ ‘attā 는 무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⑦ ‘attā 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⑧  ‘attā 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⑨ ‘attā 는 단일한 인식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⑩ ‘attā 는 다양한 인식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⑪ ‘attā 는 제한된 인식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⑫ ‘attā 는 무량한 인식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⑬ ‘attā 는 전적으로 행복한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⑭ ‘attā 는 전적으로 괴로운 것이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⑮ ‘attā 는 행복한 것이기도 하고 괴로운 것이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⑯ ‘attā 는 행복한 것도 아니고 괴로운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다.’라고 천명한다.”
 
2.39.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인데 이들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진 채 존재한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가 되어 사후에 attā 는 인식을 가진 채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16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16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2.40.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보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I-2.
사후에 attā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3.1.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인데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는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가 되어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는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가?”
 
3.2. “
그들은 ① ‘attā 는 물질[色(색)]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② ‘attā 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③ ‘attā 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④ ‘attā 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는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⑤ ‘attā 는 유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⑥ ‘attā 는 무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⑦ ‘attā 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⑧ ‘attā 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지지 않는다.’라고 천명한다.
 
3.3.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인데 이들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가 되어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8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8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3.4.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알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있을 것이다.”
 
 
II-3.
사후에 attā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들

3.5. “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인데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가 되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가?”

3.6. “
그들은 ① ‘attā 는 물질[色(색)]을 가진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② ‘attā 는 물질을 가지지 않는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③ ‘attā 는 물질을 가지기도 하고 물질을 가지지 않기도 한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④ ‘attā 는 물질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물질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⑤ ‘attā 는 유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⑥ ‘attā 는 무한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⑦ ‘attā 는 유한하기도 하고 무한하기도 하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⑧ ‘attā 는 유한하지도 않고 무한하지도 않다. 죽고 난 후에도 병들지 않는다.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니다.’라고 천명한다.”

3.7.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인데 이들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자가 되어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8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8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3.8.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알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II-4. [
사후] 단멸론자들

3.9.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사후]단멸론자들인데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단멸론자가 되어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하는가?”

3.10. “
①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 ․ 바라문은 이와 같이 설하고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진다. ‘존자여, 이 attā 는 물질을 가졌고, 사대(四大)로 이루어졌으며, 부모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여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1. “
②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attā 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천상에 있고 물질을 가졌고 욕계에 있고 음식을 먹습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고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2. “
③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attā 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천상에 있고 형상을 가졌고 마음으로 이루어졌고 모든 수족이 다 갖추어졌으며 감각기능[根(근)]이 구족합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고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3. “
④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attā 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물질[色(색)]에 대한 인식(산냐)을 완전히 초월하고 부딪힘의 인식을 소멸하고 갖가지 인식을 마음에 잡도리하지 않기 때문에 ‘무한한 허공’이라고 하는 공무변처(空無邊處)를 얻은 자의 attā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고 죽은 후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4. “
⑤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attā 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공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무한한 알음알이[識(식)]’라고 하는 식무변처(識無邊處)를 얻은 자의 attā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고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5. “
⑥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attā 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식무변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아무 것도 없다.’라고 하는 무소유처(無所有處)를 얻은 자의 attā 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고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6. “
⑦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그것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렇게 철저하게 단멸하는 것은 아닙니다. 존자여, 참으로 다른 attā 가 존재합니다. 그것은 무소유처를 완전히 초월하여 ‘이것은 평화롭고 이것은 수승하다.’라고 하는 비상비비상처(非想非非想處)를 얻은 자의 attā 입니다. 그것을 그대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합니다. 그러나 나는 그것을 알고 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몸이 무너지면 단멸하고 파멸하고 죽은 후에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실로 철저하게 단멸합니다.’라고.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3.17.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단멸론자들인데 이들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단멸론자가 되어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7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7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3.18.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알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을 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있을 것이다.”
 
 
II-5.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3.19. “
비구들이여, 어떤 사문 ․ 바라문들은 지금여기[現在(현재)]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인데 5가지 경우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그러면 무엇을 근거로 하고 무엇에 의거해서 그들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은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되어 5가지 경우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가?”

3.20. “
① 비구들이여, 여기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은 이런 주장을 하고 이런 견해를 가진다. ‘존자여, 이 attā 는 다섯 가닥의 감각적 욕망을 마음껏 충분히 즐깁니다. 존자여, 이런 까닭에 이 attā 는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3.21. “
②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존자여, 참으로 감각적 욕망이란 무상하고 괴로우며 변하기 마련이며 변하고 바뀌는 성질이기 때문에 근심 ․ 탄식 ․ 육체적 고통 ․ 정신적 고통 ․ 절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attā 는 감각적 욕망을 완전히 떨쳐 버리고 해로운 법[不善法(불선법)]들을 떨쳐버린 뒤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인 고찰[伺(사)]이 있고, 떨쳐버렸음에서 생겼으며, 희열[喜(희)]과 행복[樂(락)]이 있는 초선(初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3.22. “
③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있는 한 초선은 거칠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attā 는 일으킨 생각[尋(심)]과 지속적인 고찰[伺(사)]을 가라앉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자기 내면의 것이고, 확신이 있으며, 마음의 단일한 상태이고, 일으킨 생각과 지속적인 고찰이 없고, 사마디에서 생긴 희열과 행복이 있는 제2선(二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3.23. “
④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희열에 의지한 의기양양함이 있는 한 제2선(二禪)은 거칠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attā 는 희열이 사라졌기 때문에 평정하게 머물고 싸띠를 확립하고 알아차리며[正念正知(정념정지)] 몸으로 행복을 경험합니다. 이 때문에 성자들이 그를 두고 ‘평정하게 싸띠를 확립하며 행복에 머문다.’라고 일컫는 제3선(三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3.24. “
⑤ 이것을 두고 다른 사람은 이와 같이 말한다. ‘존자여, 그대가 말한 attā 는 참으로 존재합니다. 나는 결코 부정하지 않습니다. 존자여, 그러나 [그대가 설한] attā 가 실로 그것으로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증득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무슨 이유 때문인가요? 행복이라는 내적인 관심이 남아 있는 한 제3선(三禪)은 거칠다고 일컬어지기 때문입니다. 존자여, 그래서 이 attā 는 행복도 버렸고 괴로움도 버렸고 아울러 그 이전에 이미 기쁨과 슬픔이 사라졌기 때문에 괴롭지도 행복하지도 않으며, 평정으로 인해 싸띠의 청정함이 있는[捨念淸淨(사념청정)] 제4선(四禪)을 구족하여 머뭅니다. 존자여, 바로 이런 attā 야말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어떤 자들은 지금 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천명한다.”

3.25.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인데 이들 5가지 방법으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지금 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자가 되어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모두 이 5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5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3.26.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알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을 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3.27.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이들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모두 이 44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44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3.28.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안 뒤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알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수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을 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62
가지 견해에 대한 결론

3.29. “
비구들이여,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이들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한다. 비구들이여, 사문 ․ 바라문들이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모두 이 62가지 방법으로 하거나 혹은 이 62가지 중 한 가지 방법으로 한다. 이것 이외에는 없다.”

3.30. “
비구들이여, 이와 같이 취하고 이와 같이 거머쥔 확정적인 견해들을 [가진 자들의] 태어날 곳은 어딘지, 다음 생에는 어디로 인도될 것인지 여래는 반야로 본다. 여래는 이것을 반야로 보고 이것을 넘어선 것도 반야로 본다. [이것을 넘어선 ] 반야로 보지만 [갈애와 견해와 자만으로] 더럽혀지지 않는다. 더럽혀지지 않기 때문에 스스로 완전한 평화를 분명하게 안다. 느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분명하게 여래는 취착없이 해탈한다.”

3.31. “
비구들이여, 참으로 이런 법들이야말로 심오하고, 알기도 힘들고, 깨닫기도 힘들고, 평화롭고 숭고하며, 단순한 사유의 영역을 넘어서 있고, 미묘하여, 오로지 현자들만이 알아볼 있으며, 그것은 여래가 스스로 초월지로 알고, 실현하여, 드러낸 것이다. [사람들이 만약 이러한 법들을 보고나서] 여래를 있는 그대로 칭송을 한다면 그제야 그들은 참으로 바르게 말한 것이라 있을 것이다.”

  
62
견은 단지 느낀 것이요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2. “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영속하는 attā 와 세상을 천명하는 것은 ,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3. “
비구들이여, 여기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4. “
비구들이여, 여기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5. “
비구들이여, 여기서 애매모호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6. “
비구들이여, 여기서 우연발생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두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7.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18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8.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하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39.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40.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진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41. “
비구들이여, 여기서 단멸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42. “
비구들이여, 여기서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5가지 경우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43.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3.44. “
비구들이,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갈애에 빠져 있는 그 사문 ․ 바라문 존자들이 단지 느낀 것에 지나지 않으며, 그 느낌이 [견해와 갈애에] 의해 동요된 것일 뿐이다.”
 
  
62
견은 단지 감각접촉[()] 조건한 것일 뿐이다
  
3.45. “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이 영속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46. “
비구들이여, 여기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47. “
비구들이여, 여기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48. “
비구들이여, 여기서 애매모호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이런 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49. “
비구들이여, 여기서 우연발생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두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0.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18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1.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는 인식을 가지고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2.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3.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감각접촉[觸(촉)] 을 조건한 것이다.”
 
3.54. “
비구들이여, 여기서 단멸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이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5. “
비구들이여, 여기서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이 5가지 경우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6.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3.57.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이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것은 단지 감각접촉[觸(촉)]을 조건한 것이다.”
 
 
62
견은 감각접촉 없이 경험 없다
 
3.58. “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네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이 영속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59. “
비구들이여, 여기서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네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이 일부는 영속하고 일부는 영속하지 않는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0. “
비구들이여, 여기서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네 가지 경우로 세상이 유한하거나 무한하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이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1. “
비구들이여, 여기서 애매모호한 그 사문 ․ 바라문들은 이런저런 것에 대해서 질문을 받으면 네 가지 경우로 얼버무리거나 애매모호하게 늘어놓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2. “
비구들이여,  여기서 우연발생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은 두 가지 경우로 attā 와 세상은 우연히 발생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3.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은 18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과거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4.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은 16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5.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은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6. “
비구들이여, 여기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은, 8가지 경우로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7. “
비구들이여, 여기서 단멸론자인 그 사문 ․ 바라문들은 7가지 경우로 중생의 단멸과 파멸과 없어짐을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8. “
비구들이여, 여기서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그 사문 ․ 바라문들은 5가지 경우로 지금여기에서 구경의 열반을 실현한다고 천명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69.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은 44가지 경우로 미래를 모색하고,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3.70. “
비구들이여, 여기서 그 사문 ․ 바라문들은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가지 교리를 단언하는데, 감각접촉[觸(촉)] 없이도 그런 [느낌]을 경험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불가능하다.”
 
 
62
견은 조건발생[緣已生(연이생)]이요 괴로움을 생기게 한다
 
3.71. “
비구들이여, 여기서 영속론자인 사문 ․ 바라문들도, 일부영속 일부비영속을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유한함과 무한함을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애매모호하게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우연발생론자인 사문 ․ 바라문들도, 사후에 [attā 가] 인식과 함께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사후에 [attā 가] 인식 없이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사후에 [attā 가] 인식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인식을 가지지 않은 것도 아닌 것으로 존재한다고 설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단멸론자인 사문 ․ 바라문들도, 지금여기에서 열반을 실현한다고 주장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과거를 모색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미래를 모색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62가지 경우로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 ․ 바라문들도
 
- 
그들 모두는 여섯 가지 감각장소들[(), ()] 통해 [갖가지 대상과 맞닿아]
 계속해서 일어나는 감각접촉으로 인해 [사견의 느낌을] 경험한다. 그런 느낌이 그들에게 갈애를 생기게 하고갈애는 취착을 생기게 하고, 취착은 존재를 생기게 하고, 존재는 태어남을 생기게 하고태어남은 늙음 죽음과 근심 탄식 육체적 고통 정신적 고통 절망을 생기게 한다.

 
비구들이여, 비구는 여섯 가지 감각접촉이 일어나는 감각장소들의 일어남과 사라짐과 달콤함과 위험과 벗어남을 있는 그대로 반야로 본다. 이것이 이들 모든 [견해들]을 넘어서는 것이라고 반야로 본다.”
 
 
62
가지 견해의 그물에 걸림
 
3.72. “
비구들이여,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 ․ 바라문들은 모두 이 62가지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위로 오르고자 하나 그물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그들은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이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어 숙련된 어부나 어부의 도제가 아주 미세한 구멍을 가진 그물로 작은 호수의 물에 펼친다고 하자. 그에게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이 호수에 있는 [그물 구멍보다] 큰 생명체들은 모두 이 그물에 걸렸다. 그들은 [표면] 위로 오르고자 하나 여기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이다.’라고.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과거를 모색하고 미래를 모색하고 과거와 미래를 모색하며, 과거와 미래에 대한 견해를 가지고, 과거와 미래에 대한 여러 가지 교리를 단언하는 사문 ․ 바라문들은 모두 이 62가지의 그물에 걸린 것이다. 그들은 위로 오르고자 하나 그물에 걸린 채 오르게 된다. 그들은 참으로 그물에 완전히 갇혀서 오를 뿐이다.”
  
3.73. “
비구들이여, 여래의 몸은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 버린 채 머물러 있다. 그런 몸이 머무는 동안에 신과 인간들은 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멸하여 생명이 다하면 신과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 비구들이여, 예를 들면 망고 열매들이 달려있는 가지가 있다 하자. 만일 그 가지가 끊어지면 그 가지에 달려있는 망고는 모두 떨어지기 마련인 것과 같다.
 
비구들이여, 그와 같이 여래의 몸은 존재에 묶어두는  사슬을 끊어 버린 채 머물러 있다. 그런 몸이 머무는 동안에 신과 인간들은 그를 보게 된다. 그러나 몸이 멸하여 생명이 다하면 신과 인간들은 더 이상 그를 보지 못한다.”
 
 
맺는
 
3.74.
이렇게 말씀하시자 아난다 존자는 세존께 이렇게 여쭈었다. “경이롭습니다, 세존이시여. 놀랍습니다, 세존이시여. 세존이시여, 이 법문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
아난다여, 그렇다면 그대는 이 법문을 뜻의 그물[義網(의망)]이라고 받아 지녀라. 법의 그물[法網(법망)]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범천의 그물[梵網(범망)]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견해의 그물[見網(견망)]이라고도 받아 지녀라. 전쟁에서의 위없는 승리[無上戰勝(무상전승)] 라고 받아 지녀라.”

 
세존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은 마음이 흡족해져서 세존의 말씀을 크게 기뻐하였다.
 
이러한 상세한 설명[記別(기별), 授記(수기)]이 설해졌을 때 일만의 세계가 진동하였다.